창작 글

개사료가 될 뻔했지만 세상을 바꾸려 합니다.

"이건 못 쓰겠네, 개 먹이로 주던 대충 묻던 알아서 해."

단안경을 낀 남자는 한 소녀를 노려보며 기사에게 속삭였고, 기사는 소녀의 손목을 우악스레 붙들고 어디론가 끌고 갔다.

소녀는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인지 알지 못하고 그저 공포에 떨었다.

# # #

돌아갈 곳이 없어 거리를 떠돌던 소녀는 광장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있는 것을 보고 인파에 끼어들었다.

"교황 성하께서 너희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신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더는 굶지 않아도 된다! 헐벗지 않아도 된다! 10세 이상 20세 미만의 여자 중 신을 섬기는 고귀한 직책을 맡고 싶은 자는 이 앞으로 나오라!"

광장엔 수많은 사람이 모여 웅성거렸으나 누구도 그 달콤한 말에 넘어가지 않았다.

신녀, 거창한 이름을 가졌지만 그 실체는 끔찍하다. 

신녀가 된 이는 눈과 귀가 망가진 채 높은 의자에 앉아 혀를 달싹이며 신탁을 읊다 결국은 정신이 오염되고 기운이 빠져 떨어져 죽는다. 신과의 소통을 위한 소모품 정도로 전락하는 것이다.

"......"

기사는 아이들을 숨기러 가는 아낙들과 눈치를 보는 남정네들을 슥 훑어보곤 병사들에게 무어라 속삭였다.

"꺄아아아악!!"

광장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아이들은 울어재끼고, 어른들은 비명을 질렀다. 개중에는 정신을 잃는 이들도 있었다.

순식간에 아이들을 포박한 병사들은 눈 깜짝할 새에 자리를 떴다.

# # #

"흠......"

흰 옷을 입은 사제는 단안경 너머로 끌려온 이들을 노려보다 소녀 앞에서 멈춰섰다.

"이건 상태가 많이 안 좋군."

소녀의 얼굴의 반은 화상으로 일그러져 있었고, 목엔 깊은 흉터가 둘러져 있었다.

"개먹이로 주던 묻어버리던 알아서 해."

사제는 역겹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기사에게 속삭였고, 기사는 소녀의 손목을 붙들고 어디론가 향했다.

"아이코!"

걸음을 재촉하던 기사의 발에 누군가가 채였고 기사는 당황한 듯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신녀님, 어째서 이곳까지....."
"이 아이는 누군가요?"

신녀는 기사의 말을 무시하곤 그의 손에 붙들려있는 소녀를 쳐다봤다.

"궁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되나요?"

신녀는 장난기가 가득한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유리조각을 꺼내 손목에 가져다댔다.

"제가 다치면 기사님도 큰일나실텐데."
"그건 또 어디서 주워오신 겁니까......"

기사는 적잖이 당황한 듯 안절부절 못하며 신녀의 손에서 유리조각을 뺏으려 들었다.

"그래요 이건 줄게요. 대신 그 애는 잠깐 제게 빌려주세요. 그러면 앞으론 얌전히 '그 날' 까지 기다릴게요."
"......절대 사제님들께 들키시면 안됩니다."

# # #

"이제 괜찮을거야."

자신의 방에 온 신녀는 별 것 아니라는 듯 담담히 말했다.

"사실, 저 사람들은 네가 어떻게 되던 관심없을테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고맙습니다."
"거기 앉아서 쉬어. 그리고 딱 봐도 내 또래인 것 같은데 그냥 말 놔도 돼."
"으응......"

소녀가 조심스레 의자에 앉자 신녀 역시 맞은 편에 앉았다.

"저기 있는 애들은 한 명만 빼고 전부 죽을거야. 사제의 맘에 드는 애가 없으면 전부 죽을지도 모르지."
"......"
"난 사흘 뒤에 정식으로 신녀가 돼. 눈과 귀를 송곳으로 찔리고 높은 곳에 앉혀지겠지. 좋았던 기억도 나빴던 기억도 먹혀버리고 신이 한 말만 머릿속에 남아버릴거야."

신녀는 창 밖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그래서 말인데, 부탁 하나만 들어주라, 별 거 아니야. 그냥... 날 기억해줘.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 세상을 바꿔줘... 응, 나가는 곳은 이쪽이야 떨어지면 좀 아프겠지만 죽진 않을 거야."

신녀는 창문을 열고 소녀를 바라봤다.

소녀는 신녀의 얼굴에서 자신은 한번도 지어본 적 없는 표정을 보았다.

그것은 오랜 시간을 들여 삶을 끝낼 준비를 마친 이만이 보일 수 있는 여유였다.

# # #

들개 먹이 취급을 받던 소녀가 신녀와 만난 지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신녀는 죽었지만 소녀는 신녀를, 그이와 한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름은 모르지만 아직도 얼굴이랑 목소리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
"그게 천사를 죽이는 일을 시작한 이유와도 관련이 있나요?"

바텐더가 잔을 닦으며 여자에게 물었다.

"아니, 그건 다른 일이야. 사실 난 목이 잘렸던 적이 있거든? 근데 깨어보니 흉터는 남았지만 붙어있더라고, 이 모가지를 붙여준게 누군지 궁금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일을 하는거지. 혹시 만날 수도 있잖아."

여자는 목에 짙게 남은 흉터를 긁어댔다.

"쓸데없는 소릴. 너무 많이 마셨나보군."

얼굴을 가린 거구의 사내가 여자의 어깨를 붙잡았다. 특이하게도 어깨를 붙잡은 손까지도 장갑으로 가려져 있었다.

"주인장, 얘기 들어줘서 고마웠어. 다신 볼 일 없을테니 너무 신경쓰진 말라고."

여자는 남은 술을 단숨에 털어넣곤 탁자에 돈을 올려놓고 자리를 떴다.

"하찮은 취기에 기대 멀쩡한 의식을 흐트러뜨리는 인간만큼 한심한 것은 없다."

거리를 걸으며 사내가 말했다.

"그러는 너도 정신 제대로 안 차리고 다니다 고장났잖아."
"단순 사고였다."

여자는 코웃음을 치며 사내의 얼굴에서 가면을 채갔다.

"그래 믿어줄게. 대신 이제 사람은 없으니까 이건 다시 가져간다."

가면을 벗은 사내의 얼굴엔 눈도 코도 입도 달려있지 않았다. 붉은 문장이 빛나는 금속 구가 목 위에 얹어져 있을 뿐이었다.

여자는 가면으로 흉터를 가리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이제야 마음이 좀 편하네. 당분간 일은 없겠지?"
"고장난 천사가 흔하진 않으니까. 하지만 필요하다면 멀쩡한 것들도 얼마든지 잡을 순 있지"
"됐어, 어차피 이젠 검을 고칠 재료도 적당히 모았잖아?"

여자가 들고 있던 보따리를 슬쩍 흔들자 안에 든 것들이 절그럭거렸다.

"근데 넌 꺼림칙하지도 않냐. 천사의 시체로 만든 검이라니... 너도 천사잖아"
"감정은 잃어버린지 한참 돼서 별 생각없다. 지금은 그저 상황에 맞는 감정을 흉내내는 정도니까. 그리고 천사를 벨 수 있는 금속은 천사의 몸 밖에 없다."
"......매정하네."

# # #

내가 이 천사와 만난 것은 몇 년 전의 일이다.

"사냥꾼이라 불리는 자가 당신이 맞나?"
"음, 맞긴 한데 난 고장난 걸 부수는 사람이지 고쳐주는 사람은 아닌데?"

내게 말을 건 이는 붉은 문장의 천사, 2급 토벌 대상이다.

정상적인 천사의 문장은 하얗게 빛나지만 고장난 천사의 그것은 붉게 물든다.

 

본래 붉은 문장의 천사란 정신이 나가 마구잡이로 날뛰는 것들이나 눈 앞의 천사는 멀쩡히 의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확인할 게 있다."

천사는 다짜고짜 책상 위에 올려져있던 지칼을 집어들고 내 손등을 그었다.

순식간에 손등의 상처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아물었고 그제야 천사는 안심한 듯 내 맞은편에 앉았다

".......너 뭐야"

사실 목이 날아갔다 깨어난 이후로 난 죽지 않게 되었다. 공복에는 작은 상처도 낫지 않지만 든든하게 먹어두기만 했다면 팔이 잘려도 재생할 수 있었다.

여태껏 이 능력을 바탕으로 고장난 천사들을 죽이며 포상금을  타먹고 살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한 적은 없었다.

 

"어디서 보낸 누구냐고."


하지만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계획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게 없다면 겁먹을 이유도 없다.

"그냥 천사다"
"그걸 묻는 게......!"
"너, 교황을 죽이려하고 있지?"

난 반사적으로 천사의 얼굴에 손을 뻗었으나 천사는 담담하게 내 손목을 붙잡고 비틀었다.

"으윽......"
"지금까진 네가 주먹을 내지르면 맞아주고 잡아끌면 넘어지는 것들만 상대했겠지만 난 아니다."
"......"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네 적이라는 것도 아니지."
"그게 무슨 소리야..."
"나도 돕겠다. 교황을 죽이는 것."

4개의 댓글

2023.05.25
0
2023.05.25
@UHwa

2화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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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Hwa

헉 똥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ㅠ

0
2023.05.25
@아이리스샤쇠르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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