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Black Swan

문을 열고 들어가자 좁은 실내는 여전히 칠흑 같은 어둠이 가득했다. 높은 천장에서 기다란 줄로 이어진 전구가 방 한가운데 공중을 떠다니는 먼지를 비추며 숨 막히는 분위기로 내 목을 죄는 듯했다. 나는 줄에 묶여 끌려가듯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뗐다. 전구 아래로 내리쬐는 그 진득한 빛 속에 가슴팍을 집어넣으며 책상 옆에서 걸음을 멈춰 섰다.

 

주광 빛 아래에는 녀석이 네모난 나무 책상에 채워진 양손을 걸치고는 손가락을 까딱까딱 흔들고 있었다. 한숨이 나오려던 것을 간신히 억누르고는 쥐고 있던 담뱃갑을 열어 한 까치 입에 물었다. 주머니에서 꺼낸 라이터가 잠시 어둠을 밝히며 담배 끝에 작은 불씨를 틔웠다. 나는 폐부 깊숙이 숨을 빨아들이며 갑갑한 기분을 담배 한 모금에 얹어 뱉었다. 불빛 속에서 이리저리 일렁이는 연기 사이로 암흑에 드리워진 내 눈을 똑바로 직시하는 녀석의 눈이 번들거렸다. 물고 있던 담배를 빼내어 들이밀자 녀석은 순수히 담배를 물었다.

 

온몸을 빛 속에 구겨 넣으며 나는 녀석의 맞은 자리에 앉았다. 따갑게 내리쬐는 전구 빛은 하얀 담배와 녀석의 이빨에 부딪혀 눈이 부셨다. 녀석이 묶인 양손을 입에 가져가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덕분에 담배 맛을 보군요.”

 

뜨뜻한 담배 연기가 녀석의 얼굴을 희미하게 가렸다.

 

“원하던 담배까지 줬다. 이제 생떼 부리지 말고 얘기하지.”

 

후~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이 내뿜은 연기가 내 얼굴을 강하게 덮쳤다. 저 빌어먹을 놈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여유를 부리며 비웃음을 흘렸다.

 

“아까 어디까지 얘기했었죠?”

 

“그 시답잖은 얘기일랑 집어치우고……”

 

킬킬킬

 

녀석의 날카로운 소리에 귓가가 저릿했다. 두 눈 딱 감고 녀석의 아구창에 한 대만 꽂아버릴까…… 욕망을 억누르자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동안에도 녀석의 웃음소리가 적막한 어둠에서 메아리쳤다.

 

“아이 참, 우리 형사님 성질도 참 급하시네. 다 말씀드린다니까.”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뽑혀 나갈 듯이 두피가 당겼다.

 

“작은 시골마을에서 찢어지게 가난히 살았다까지 했다.”

 

“아 맞아 거기까지 했군요. 하나 덧붙이자면 기억도 나지 않는 애비 새끼는 나와 엄마를 버리고 도망갔다까지죠.”

 

상관도 없는 얘기에 놀아나고 싶지 않지만 일단은 녀석의 장단에 맞추려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병신년이었어요. 요즘은 경계선 지능장애라고 하더군요. 그땐 그런 말이 없었죠. 그냥 병신이라고 했죠. 심지어 글도 읽을 줄 모르는 병신년.”

 

녀석은 말을 멈추더니 담배를 꼬나문 채로 엉덩이를 떼어 가까이 다가왔다. 그 웃는 낯짝은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누가 들을세라 조용히 뇌까렸다.

 

“형사님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녀석이 말을 할 때마다 입에 물린 담배가 내 코앞에서 위아래로 흔들렸다. 거기다 폴폴폴 빠져나온 담배 연기가 내 콧속을 침범해 대단히 불쾌했지만 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먹을 게 없으니 산에 헐거벗은 나무의 껍질을 떼 먹는대요. 어쩌겠어요 배가 고픈데 그거라도 먹어야지. 근데 사람은 나무껍질을 소화할 수 없어요. 그래서 소화가 안 된 나무껍질이 똥구멍을 나오면서 똥꼬가 찢어진대요. 어때요, 재밌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녀석은 뭐가 그리 웃긴 지 혼자 큭큭큭 소리를 흘렸다. 나는 녀석의 눈을 매섭게 쏘아보며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참을 혼자 웃어댔다. 그러다 갑자기 웃음을 뚝 끊은 녀석이 얼굴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그 병신년이 밥을 제대로 안 줘서 항상 배가 고팠어요. 배가 고픈데 밤에 잠이 오겠어요? 그냥 뜬 눈으로 누워만 있었죠. 그렇게 누워 있으면 부엌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났어요. 그래서 살금살금 부엌으로 기어가 문을 빼꼼 열었지요. 뭐가 보였게요?”

 

손을 나란히 붙여 만든 문으로 얼굴을 가린 녀석이 손등을 열어젖히며 잔뜩 찢어진 입꼬리로 내 대답을 기다렸다. 녀석이 고개를 좌우로 갸웃갸웃할수록 내 눈빛이 더 날카로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저 하얗게 반사된 녀석의 이빨 속에서 뱀처럼 쉑쉑 거리는 혀를 노려볼 뿐이었다.

 

“그건 바로 병신년 뒷모습이었죠. 커다란 밥그릇에 얼굴을 파묻고 혼자 밥을 처먹는 병신년 뒷모습이요.”

 

또 뭐가 그리 우스운지 킥킥킥 웃어댔다. 빌어먹을 놈. 녀석이 크게 빨아들이자 불씨가 더 빠르게 담배를 태웠다. 숨을 뱉던 녀석이 진정된 마음에 또 웃음이 터져 후후후 끊어 뱉은 웃음에 연기가 퐁퐁퐁 튀었다.

 

“집에는 사진 하나 없었죠. 먹을 밥도 없는데 사진이 있겠……”

 

“닥치고 이제 말해!”

 

주먹을 있는 힘껏 내려쳐서 책상이 마구 흔들렸다. 부서질 듯한 소리가 사방으로 넓게 퍼져 나갔다. 나는 눈 조차 깜빡이지 않고 녀석의 손가락 하나하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시야에 닿는 모든 것이 멈춘 듯했지만, 덜덜덜 떨리는 책상의 진동만이 주먹을 타고 뇌리를 흔들었다.

 

“생사라도 말해 이 빌어먹을 자식아. 실종된 지 나흘이 넘었어. 네놈 친구들……”

 

퇘!

 

녀석이 뱉은 담배가 바닥을 구르며 빨간 불똥이 어두운 바닥에서 짧게 비산했다. 숨 막히는 적막감이 삽시간에 주변을 에워쌌다. 끼익끼익 기분 나쁜 소음이 바닥에 깔리자, 그제야 천장의 전구가 흔들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전구의 움직임에 맞춰 녀석의 얼굴에 진 음영이 천천히 흔들렸다. 녀석의 퀭한 눈은 그늘이 져 더욱 희미해 보였다. 대신 찢어지게 벌어진 입술 사이로 하얀 이빨이 번들거렸다. 좇 같은 새끼.

 

“계속할까요?”

 

저 빌어먹을 놈의 여유로운 모습이 자꾸만 심기를 건드렸다. 나는 그저 어금니를 꽉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그림을 좋아했어요. 어린 꼬맹이가 그려봤자 얼마나 그리겠어요. 그냥 좋아만 했죠. 도화지 하나 살 돈이 없어 작대기로 학교 운동장 바닥에 그림을

그렸죠.”

 

녀석은 어릴 때 모습을 흉내 내듯이 묶인 손을 들어 작대기를 쥔 손 모양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그렇게 한참을 움직이다 돌연 멈추더니, 허공을 향하던 눈이 고개 돌려 나를 바라보며 어떠냐는 눈빛으로 씨익 웃음 지었다.

 

“하던 얘기나 마저 해 시발놈아.”

 

녀석의 웃음소리가 낮게 울렸다. 최대한 녀석을 자극하지 않으려 마음먹어도, 잃을 게 없다는 듯한 녀석의 표정이 내 인내심을 살살 긁었다.

 

“매번 아이들 앞에서 선생에게 맞았어요. 항상 준비물을 챙겨오지 않는다고 말하면서요. 하지만 형사님도 알잖아요.”

 

녀석이 엄지와 검지를 말아쥐어 동전 모양을 만들었다.

 

“집안 사정 뻔히 다 아는 시골인데 선생이 뭐 하나 기대하고 요구하겠어요? 딱 봐도 별 볼 일 없으니 그냥 화풀이 대상이었죠. 애들도 저를 만만하게 봤죠. 애들이 얼마나 영악한지 알죠? 아, 형사님은 모르려나, 흉악한 어른들만 상대해서? 킥킥.”

 

“그래서, 그 옛날의 앙금으로 이따위 짓을 벌였냐?”

 

“오우 노노. 어린 애들 치기를 담아둘 만큼 속이 좁진 않아요.”

 

나는 좌우로 까딱이는 녀석의 손가락을 부러뜨리려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멈출 수 있었다.

 

“세 명 다 어쨌어? 마지막 행보가 그 마을 산속에 너와 함께 들어가는 거였어! 네놈도 시인했잖아! 얼른 말해! 살아 있어야 네놈 형량이 줄어!”

 

침 튀겨가며 외쳐봐도 녀석은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전과자도 아닌 녀석이 상황이 뻔한 지금 유들유들하게 웃어넘길 뿐이었다.

 

“제가 왕따였지만 나름 도와주는 친구도 있었어요.”

 

나의 말을 무시하며 녀석은 개 죽 쓰는 옛날 얘기나 이어갔다. 자세를 옆으로 틀어 앉아 다리를 꼬는 여유까지 보였다. 등받이에 어깨를 기대고는 묶인 양손을 나에게 뻗었다. 오른손 검지와 중지는 딱 담배 한 까치 끼울 만큼 벌어져 까딱이고 있었다.

 

“……시발 새끼.”

 

나는 녀석의 손에 담배를 끼우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녀석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짓씹듯 낮게 말했다.

 

“분명 한 시간 안에 다 분다는 조건이었어. 한 시간 별로 안 길다. 너 이 새끼 허튼수작 부리면 나 옷 벗는 한이 있어도 너 곱게 안 보내.”

 

녀석이 웃는 낯짝으로 담배를 입에 물더니 여부가 있겠냐며 어눌하게 대답했다. 숨을 깊게 마시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연기를 뿜어내며 말을 이어갔다.

 

“한 친구가 도화지 한 장 줬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알아요? 몇 날 며칠을 운동장 바닥에 연습했죠. 그리고 싶은 그림이 있었거든요. 매일 똑같은 그림을 연습했어요.”

 

녀석은 그때를 생각하듯 잠시 상념에 빠졌다. 아무것도 없는 어둠을 바라보며 몽롱한 눈빛 그대로 입만 벌려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느 정도 됐다 싶을 때쯤 도화지에 그림을 그렸어요. 결과는 나름 만족스러웠죠. 하아……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았어요. 며칠 정도 됐을까요? 병신년이 제 그림을 갈기갈기 찢어 놨었어요.”

 

말을 멈춘 녀석이 담배를 크게 빨아들였다. 그리고 바닥을 향해 짧게 헛웃음을 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린 마음에 상처가 얼마나 컸겠어요?”

 

“어머니가 왜 그랬나?”

 

“글쎄요 마음에 안 들었나 보죠. 그땐 이유가 중요하지 않았어요.”

 

녀석이 바닥에 아무렇게 담배를 털다 깨나 밝아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한 날은 병신년이 기분이 좋아 보였어요. 저에게 도시로 가서 야구 경기를 보자는 거에요. 길에서 표라도 주웠는지 어떤지 몰라도 그 병신년 표정이 참 들떠 보였죠. 그래서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알겠다고 대답했죠. 야구라고는 티브이로도 본 적이 없는데 말이죠.”

 

“어릴 때 어머니가 손찌검을 했었나?”

 

내가 말을 끊은 게 기분이 나쁜지 어떤지 모르게 녀석은 무표정한 얼굴로 담배를 꼬나물고서 어눌한 발음으로 대답했다.

 

“아뇨.”

 

“윽박지르거나 욕을?”

 

“아뇨.”

 

“자네를 사랑하지 않았나? 앞서 얘기한 것들이 있지만.”

 

“저를 끔찍이 아꼈죠.”

 

“그럼 왜 그리도 어머니를 싫어하나? 미우나 고우나 자네를 위해서 혼자 거친 삶을 살았을 터인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녀석의 입꼬리가 실룩였다. 혼자 끅끅대며 웃던 녀석은 책상에 흘린 담배를 집다 몇 차례 놓치곤 했다. 녀석이 헛기침으로 목을 두어 번 가다듬으며 몸을 진정시키고서는 담배를 집어 들어 입에 물었다.

 

“차비는 또 어떻게 구했는지 몰라요.”

 

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빌어먹을 놈.

 

“도시로 가는 길은 참 재밌었죠. 처음 타보는 버스가 신기했고, 가장 저렴한 것이지만 문구점에서 사탕도 하나 사서 먹을 수 있었죠.”

 

잠시였지만 녀석은 어울리지도 않는 행복한 표정을 슬쩍 내비쳤다.

 

“글도 읽을 줄 모르는 년이 경기장까지 어떻게 도착했는지 몰라요. 여기저기 길을 계속 물었던 것 같은데 이 부분은 기억이 가물가물 하군요.”

 

길쭉하게 웃음 짓던 녀석의 입술이 천천히 굳어졌다. 눈가 주름도 서서히 말라가더니 똥 씹은 것 마냥 이마에 주름이 갈라지며 표정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근데 시발 표는 이미 한참이나 지난 거였어요. 하긴 그러니까 길바닥에 굴러다녔겠죠. 글을 모르는 병신년 아니면 누가 그걸 주워요. 표를 새로 끊으라는 직원 말에 시발 차비도 겨우 마련한 마당에 표가 가당키나 하겠어요? 카악 퉷!”

 

바닥에 침을 뱉은 녀석이 분이 풀리지 않는 지 얼굴이 불그스름하게 부풀어 올랐다.

 

“시발 가난한 년이 돈도 없으면서 무슨 애를 싸질러 놔. 지랄 병신년이 배운 것도 하나 없으면서 일찍 잘 죽었다. 카악 퉷!”

 

연이어 침을 뱉는 녀석을 보니 세 명의 목숨을 빼앗았을지도 모를 시발 놈이 입에서 나오면 다 말인 줄 아는지 분노가 치밀었다.

 

“자네 그래도 어머니에게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니가 뭘 알아!”

 

“패륜 새끼! 너 같은 놈은 나가 뒤져야 해!”

 

쾅!

 

녀석이 책상을 주먹으로 때려 박으며 박차고 일어섰다. 밀려난 의자가 바닥을 구르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어둠 속에서 녀석의 핏발선 눈동자가 붉게 타오르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한순간 오싹함을 느꼈다.

 

거친 숨소리가 흐르는 공간에서 나는 손가락으로 녀석을 가리키며 경고했다.

 

“절반 지났어. 슬슬 본론을 꺼내지 않으면 각오해야 할 거야.”

 

녀석이 바닥을 향해 담배를 집어 던졌다. 조그만 담배가 바닥에 부딪히며 딱 하는 소리가 짧게 울렸다. 녀석은 발로 꽁초를 비벼끄는 동안에도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알죠. 아주 잘 알죠.”

 

녀석은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의자를 잡아 세웠다. 그리고 가까이 끌고 와 다시 앉았다. 짙은 어둠 속에서 한동안 적막감이 깔렸다. 나는 녀석의 눈빛을 받아내느라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훔쳐내지 못했다. 분명 내 머리 위로 뜨겁게 피어올랐을 김이 차갑게 식었을 때쯤 녀석이 입을 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혼자서 도시로 갔죠. 숙식 공장에 일하면서 중학교에 다녔어요.”

 

“어머니는?”

 

“고향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었죠.”

 

“일찍 돌아가셨구만 그리고?”

 

“도시로 떠난 지 30년이 지났죠. 그리고 지금은 꽤 성공했죠.”

 

“그래. 그 나이에 삼천 평 부지 작은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니 쥐뿔도 없는 시골 촌놈 새끼가 크게 자수성가했지.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꿈틀댄 눈썹이 녀석의 심기를 나타냈다. 녀석은 불쾌함이 묻어난 듯한 호흡을 뱉으며 입을 열었다.

 

“바쁘기도 했고 가고 싶은 마음도 없어서 그랬지만 오랜만에 고향에 갔었죠.”

 

드디어 기다리던 얘기에 나는 귀를 세웠다.

 

“어느새 주름이 깊어진 초등학교 선생들도 만나고 동네 노인네들도 만났죠. 옛 모습이 남아 있는 옛 친구들도 만났어요.”

 

“마음에 상처를 입힌 사람들이었겠어.”

 

“빈말로도 좋았다 말할 수는 없지만 나름 반가웠어요. 옛날 일들은 개의치 않았어요. 어릴 때 일이기도 했고 시간이 오래 지나기도 했으니까요. 그냥 반갑게 만나서 웃으며 인사했어요.”

 

녀석의 말을 들으며 나는 말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 여럿과 술자리를 가졌어요. 일찍이 떠났기에 공감대가 별로 없었지만 서로 살아온 얘기를 했죠. 간간이 아주 어릴 적 추억을 꺼내어 떠들기도 했고요.”

 

녀석이 눈을 살며시 감았다. 그렇게 잠시 정적이 흘렀다.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곧 녀석이 눈을 뜨며 입을 다시 열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셔댔어요. 밤이 꽤 깊도록 말이죠. 빈 병이 늘어갔고 시간은 깊어갔죠. 저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친구들과 헤어졌죠. 떠나기 전 담벼락 구석에서 오줌을 갈겼어요. 어릴 때처럼 말이죠.”

 

이빨 가지런히 보이게 녀석은 시원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공허해 보였다. 그 텅 빈 웃음에 왠지 불안감을 느꼈다.

 

“인기척이 났죠. 익숙한 목소리의 세 명이요. 친구 세 놈이 담배 피우려 나온 것을 알았죠. 알은 채 하려 했어요.”

 

녀석의 눈은 날카롭게 벼려 있었다.

 

“시발 병신새끼 좇도 아닌 게 생색이네. 야, 그 새끼 표정 봤냐? 그 애미에 그 자식이네. 하여튼 병신년 새끼 아니랄까 봐 꼴값을 떨어요.”

 

녀석은 변해버린 말투를 계속 이어갔다.

 

“시발 가난한 년이 돈도 없으면서 무슨 애를 싸질러 놔. 지랄 병신년이 배운 것도 하나 없으면서 일찍 잘 죽었다. 카악 퉷!”

 

녀석은 터질 듯 부풀어 오른 눈으로 침을 튀겨가며 입을 열었다.

 

“왜 난 그 시발 병신년 좀 오래 살지 아쉽던데. 재밌었잖아. 시발 좇같긴 해도 재미는 있었지. 이집저집 허드렛일 하면서 거지 마냥 받아가는 게 좇같았지. 거지 맞잖아. 킬킬, 그건 그렇지. 시발 쌀 받아갈 때도 내가 시발 애비한테 욕 처먹어가면서 좇빠지게 일군 건데 시발 좇같아서 밤에 그 병신년 집에 몰래 들어가 밥에 모래 처넣고 아주 재밌었지.”

 

책상을 붙잡은 녀석의 손이 빨갛게 변했다.

 

“개거렁뱅이 새끼. 그 새끼 학교에서 선생이 한 명씩 가족사진 가져와서 가족 소개하라고 했을 때 사진 없다고 말했다가 선생한테 처맞았잖아. 그 병신놈 그 뒤에 여기저기 종이 구걸해서 지랑 엄마랑 그려놓고 좋다고 웃는 게 꼴 보기 싫어서 내가 찢어놨거든. 숨어서 병신년이 그거 보고 우는 거 아직도 기억나네. 큭큭 이 새끼 시발놈이네. 좇까 병신아 넌 새꺄 지네 가족이랑 야구장 갔다 와서 병신년한테 표 줬다가 병신년 진짜 거기 갔다 왔다면서 웃던 거 기억하거든 시발놈아.”

 

책상이 덜덜 떨기 시작했다.

 

“시발아 웃긴 거 어떡하냐. 너도 봤어야 하는데 시발. 아직도 똑똑히 기억나네. 해 질 때 돌아오더니 길 걸으면서 뭐라는지 아냐? 그 병신년이 미안해 엄마가 바보라서 미안해라고 하니까 병신놈이 지 애미 다리 붙잡으면서 엄마 괜찮아 나 오늘 무진장 재밌었어 이러는 거야 시발 내가 웃음 참느라 뒤질 뻔했다니까.”

 

녀석이 말을 멈추자 적막감이 흘렀다. 한참 전부터 시뻘겋게 달아오른 녀석의 얼굴은 이제 터지기 직전이었다. 손까지 전해진 책상 진동이 어깨까지 전이된 듯 녀석은 어깨를 떨었다.

 

나는 담뱃갑을 열었다. 한 까치 집으려는데 제대로 집지 못해 자꾸만 미끌렸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입에 물고서 불을 붙이려는데 라이터는 불씨만 힘차게 퉁길 뿐 불이 피어오르지 않았다. 화가 나서 물고 있던 담배를 그대로 부러뜨려 바닥에 집어 던졌다.

 

“이런저런 일들이 속상할 뿐 왜 그런 일들이 발생했는지 생각하기엔 너무 어렸어요. 바닥을 긁어 새로 지은 밥을 저에게 주고 엄마가 남몰래 모래 섞인 식은 밥을 걸러내던 일도, 제가 그린 가족 그림의 조각을 그러모아 울고 있던 일도, 다 지난 표를 들고 있던 일도 왜 그랬지 생각하기에 그때는 너무 어렸어요. 남들에게는 조금 부족한 집에 조금 부족한 엄마로 보일지 몰라도 저에겐 세상 누구보다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어요. 빨리 성공해서 호강시켜 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찍 도시로 떠났어요. 홀어머니를 두고 떠났던 제 심정은 아무도 몰라요!”

 

시뻘겋게 변한 녀석의 두 눈은 좀체 돌아올 기미가 없었다.

 

“엄마가 죽었을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죠. 이렇게 일찍 가는 거였으면 조금 더 옆에 있을 걸 정말 후회했어요. 살아갈 이유가 없었어요. 아픔을 견디며 지금까지 삶의 끈을 붙잡았죠. 이렇게 성공해도 호강 한 번 못 시켜 드린 게 얼마나 서글픈지 몰라요. 그런데 그 시발놈들이!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새끼들이!”

 

녀석이 연이어 책상을 내려찍었다. 책상이 부서질 듯이 울어댔다.

 

“참을 수 없었어요! 치가 떨렸어요! 그 개보다 못한 새끼들을 용납할 수 없었어요!”

 

나는 담뱃갑을 있는 힘껏 구겨 쥐었다. 우그러진 담뱃갑 사이로 안에서 바스러진 담뱃재가 떨어져 흘렀다. 답답한 속내가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막아 눌렀다.

 

“자네 마음은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그 애들은 무슨 죄인가.”

 

“똑같은 심정을 느껴야 하니까!”

 

“아직 어린 애들이 아닌가!”

 

“그러니까 더 의미 있지! 금이야 옥이야 키운 자식새끼들 목 잘린 대갈통 받으면 참으로 볼 만 하겠어!”

 

“뭐, 뭐라고?”

 

“눈깔 뒤집은 자식새끼를 어떤 표정으로 바라볼지 형사님도 궁금하지 않아요?”

 

“그럼 이미?”

 

벌어진 턱은 다물 줄 몰랐고 살짝 떨렸다.

 

“그 산속에 큰 호수가 있죠. 엄마의 뼛가루를 흩뿌렸던 그 호수에 세 명 다 토막 내어 곳곳에 던졌어요.”

 

목구멍이 가득 부풀어 올랐다. 튀어나오려는 말이 많았지만 꾹꾹 눌러 담았다. 그 대신 기다란 한숨이 빠져나왔다.

 

녀석은 고개를 떨구어 얼굴이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녀석의 어깨를 한 번 잡아주고는 취조실을 빠져나왔다. 문을 나서자마자 현장에 나가 있는 김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형사.”

 

- 예, 반장님.

 

“거기 큰 호수 있지? 산 일대 수색 중인 직원들 다 불러서 호수 주변을 수색하고 다이버 연락해.”

 

- 그 말씀은?

 

“그래, 다 불었어. 세 명 다 토막 내서 호수에 던졌대.”

 

- ……. 알겠습니다. 확인되는 대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통화를 끝내고 얼굴을 감쌌다. 얼굴이 달아올랐는지 뜨거운 열기를 느꼈다. 차가운 손으로 얼굴을 식히기도 잠시, 전화가 다시 울렸다.

 

- 형사님 도대체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그 새끼가 뭐라고 말을 안 하냔 말입니다! 우리 애 살아 있답니까!

 

말이 흘러나오는 와중에도 전화기 너머에는 여럿이 떠드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몽둥이 들고 당장 쳐들고 가 대가리를 깨야 한다느니 낫으로 목을 따버린다느니 통화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목청을 높여 댔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호수…… 아니, 진술을 바탕으로 수색을 좁혀가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화기가 시끄러웠다. 더 들을 것도 없이 그냥 통화를 종료했다.

 

몸에 힘이 빠지며 어깨가 축 처졌다. 몸을 돌려 유리창 너머를 응시했다. 그곳에는 어두컴컴한 실내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껴 우는 남자가 있었다.

 

 

□ □ □

 

문을 열고 들어가자 좁은 실내는 여전히 칠흑 같은 어둠이 가득했다. 진득한 불빛이 비치는 책상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의자에 앉는 그 순간까지도 녀석은 얼굴을 들지 않고 그대로였다.

 

“가용 가능한 인원 모두 호수 일대를 수색하고 있어. 다이버도 곧 도착한다니 호수 밑바닥도 금방일 테고. 시신 찾는 것은 시간문제야.”

 

녀석은 반응이 없었다.

 

“내가 자네를 조금 오해했어.”

 

그제야 녀석이 고개를 들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사이코라고 생각했었지. 타인의 고통을 모르는 그런 사이코. 하긴 좀 이상하긴 했어. 자네에 대한 자네 직원들의 평가가 내 생각과는 좀 달랐었거든.”

 

그때 주머니에서 전화가 울렸다. 꺼내보니 현장수색을 진행 중인 김 형사의 전화였다.

 

“잠깐 실례.”

 

전화를 받자마자 김 형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 반장님. 호수 주변에서 아이들 신발과 소지품을 발견했습니다. 지금 막 다이버가 잠수 시작했으니 시신도 곧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래, 유품 잘 보관하고 시신 발견하는 대로 보고해.”

 

나는 통화를 종료하고 끊겼던 얘기를 계속 이어갔다.

 

“유품을 찾았다는군. 부모의 가슴에 대못이 박히겠어. 아까 내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던가? 사실 바뀐 생각은 그것만이 아니야.”

 

나는 담배를 찾아 주머니를 더듬거리다 바닥에 구겨진 담뱃갑을 보고서 손을 멈췄다. 대신 긴 한숨을 뱉으며 녀석을 바라봤다.

 

“어디야?”

 

녀석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녀석이 내 말뜻을 알고 있음을 확신했다.

 

“자네 같은 사람이 화가 난다고 아무 죄 없는 애들을 죽일 리 없어. 애들을 어디에 뒀지?”

 

“글쎄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넌 그럴 놈이 아니야. 홧김에 일을 저질렀겠지. 하지만 자네는 친구들에게 똑같이 되갚고 싶은 것이지, 그 죄 없는 아이들을 해하고 싶은 것은 아니잖아. 직원들이 하나같이 자네를 좋게 평가하더군. 마음이 따듯한 사람은 끝까지 그 마음을 잃지 않아. 내가 잘 알지.”

 

녀석은 이미 처음 봤을 때 느꼈던 차갑고 냉혈한 눈빛이 아니었다. 눈앞에는 어느새 한 마리의 괴물 대신 한 명의 인간이 앉아 있었다.

 

그때 다시 김 형사의 연락이 왔다.

 

- 반장님! 호수 근처 동굴에서 아이들 세 명 다 발견했습니다!

 

“그래? 상태는 어떤가?”

 

- 손발이 묶여 있었지만 비교적 양호합니다. 그동안 보살핀 흔적이 있습니다. 침낭과 식량이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얼른 병원에 데려가고 부모에게 연락해.”

 

나는 통화를 끝내고 조용히 녀석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전화벨 소리가 울릴 때부터 감고 있던 눈을 뜨지 않았다. 그저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릴 뿐이었다.

 

“죄는 죄야. 뭐가 됐든 책임을 피할 수 없어.”

 

나는 깍지 낀 녀석의 손을 감쌌다.

 

“힘이 닿는 대로 돕고 싶네. 다 끝나고 자네 어머니께 함께 인사 드리로 가도 되겠나?”

 

짙은 어둠이 가득한 취조실 한가운데에서 녀석의 뺨을 타고 한줄기 눈물이 고요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1개의 댓글

MrJ
2023.05.03

언젠가 일본인이 썼던 글이 개드립에 올라왔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어느날 엄마에게 야구 관람권이 생겨 엄마와 야구 경기를 보러 갔다.

 

경기장에 도착하니 사실 관람권이 아니라 할인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대로 집에 돌아왔다.

 

그날밤 "엄마가 바보라서 미안해" 라며 눈물을 보인 엄마에게 "괜찮아 오늘 재밌었어" 라고 대답했다.

 

이 사연을 보고 영감을 받아 써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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