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친우

"그리 생각한다면 받아들이겠소"

그가 마지막으로 내게 한 답변이었다.

담담한 목소리에 반해 바들바들 떨리는 그의 동공이 그의 심정을 대변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가지 소원이 있소. 그녀를 보게 해주오."

그가 마지막으로 내게 한 부탁이었다.

떨리는 목소리에 반해 올곧은 그의 동공은 그의 사랑을 대변했다.

나에겐 선택지가 있었다. 당장 눈앞의 이 남자를 곧장 보내느냐. 아니면 하루의 시간을 선사하느냐.

이 남자는 나를 시험에 들게 만들었다. 과연 나는 어떤 인간인가. 이 남자는 어떤 인간인가. 짧은 순간에 결정을 내려야 했다. 머리 속으로 흘러가는 다양한 기억들.

그것들은 나의 기억이 아니었다. 그의 기억이었다. 지금까지 흘려보낸 수많은 은하수들을 바라보며 그와 내가 나누었던 기억들. 친우로써 전우로써 우리는 같은 길위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도 나의 고민을 눈치챈 듯 했다. 조용히 손을 내밀어 나의 무릎에 온기를 담아냈다.

나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이 전쟁이 시작한 이래 따뜻한 온기란 갓 죽은 전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뜨거운 피뿐이었으니. 몸에 닿는 따듯한 온기는 나의 깊은 상처와 감성을 건들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머리에 피가 돌기 시작했다.

아니된다. 미련을 남겨서는 아니된다. 시간은 유한하다. 그 동안의 노력이 허사가 될 수 없다. 이 남자는 가야만 한다. 뒤를 돌아봐선 안된다. 반드시 앞만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다시 뒤돌아보지 않는 굳건한 얼굴을 마주할 것이다.

"...미안하지만 이제 나는 당신의 뒷모습만 볼 것이오. 이 수치스러운 낯을 당신에게 들 수 없소. 만일 우리가 마주하는 날이 온다면... 내 감히 뜨거운 얼굴을 들어 사죄를 하겠소."

나는 일어나 뒤돌아서며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뒤로 작게 흩어지는 발걸음 소리에 반응해 귀가 움찔거렸으나 뒤돌아볼 수 없었다.

남사스럽게 흘러내리는 눈물이며 콧물이며 식은땀이며 도저히 얼굴을 들이밀 수가 없었다. 작게 울리는 발걸음이 잠깐 멈출 때 심장이 덜컥였다.

'그가 마음을 바꿨는가? 아아...그는 내게 실망을 한 것인가...'

이윽고 그런 못난 생각을 한 나를 나무라듯 힘차고 강한 발걸음 소리가 더욱이 커지며 내게서 멀어지지 않음을 느끼게 했다.

"미안하오... 미안하오..."

나는 모두가 방을 나가고 정적만이 곁을 지키고 있을 때에야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 지. 죽음만이 가득한 그 곳에 내가 그를 몰고 갔다. 이리도 조용한 방안에 앉아 나는 그를 내몰았다. 방을 나서 길거리를 지나 한 집의 문을 열면 아내와 자식이 나를 반길 것이다. 그런 내가 그를 전장으로 보냈다. 내게 돌아갈 곳이 있는 것을 전장의 저들이 알면 얼마나 치를 떨것인가. 나를 안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전장의 저들이 알면 얼마나 증오할 것인가. 나의 이 한마디며 손짓이며 대체 무슨 의미가 있길래 저들은 피를 흘리고 살점을 몸에서 떼어내며 고통에 몸부림 치는가.

아 잔혹하고 미련한 나 자신이여. 내심 안심을 하고만 자신이여.

이건 적군과의 전쟁이 아니오. 이건 나와 병사들의 전쟁이오. 이제는 친우까지 직접 내 손으로 내쫓고만 현실이여. 왜 내 손에 온기는 있지 않은 것이오.

왜 당신의 그 손처럼 따뜻하지 않은 것이오. 왜 나는 병사들에게 피가 아닌 살갗의 온기를 주지 못하는 것이오.

나는 방을 나섰다. 어두운 복도 천장에 뜨문뜨문 전등이 켜져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아직 밝은 대낮의 태양이 복도를 비스듬히 비추고 있었다.

발을 움직였다. 친우가 그랬던 것처럼 힘차게 불꺼진 방을 뒤로 하고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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