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어둑시니 - 5

 

 

" 고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지금 말하게. "

 

빛은 어찌 이리도 아름답고 따뜻할까.

 

" 제발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저하! "

 

빛은 어찌 이리도 무자비할까.

 

" 비록 큰 죄를 저질렀으나 그 죄를 뉘우치고

저하의 관자를 되찾기 위해 최선을 다한 점을

기특히 여겨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

 

빛은 밑바닥의 어둠을 그저 몰아낼 뿐.

빛에 닿았다 생각하면 일순간의 변덕으로 사라져버리네.

 

" 그래. 비록 죄는 무거우나 네 행동으로 미루어보아

스스로의 죄를 마음 깊이 뉘우쳤음은 부정할 수 없다. "

 

두 죄인 앞에 앉은 세자가 부드러히 말했다.

여자는 그저 고개를 떨구고 있었고

남자는 세자의 이해심에 연이어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

옆에서 듣던 신하가 한발 나서려 했으나

세자는 한 손을 들어 저지했다.

 

" 관자는 그저 치장품일 뿐, 그것에 손을 댔단 이유로

참수까지하여 목을 효수하면 백성들이

내게 말을 걸고 다가올 수나 있겠는가? "

 

" 허나 왕가의 체통이 ... "

 

세자는 고개를 내젓고는 입을 열었다.

 

" 도성 중앙의 형장에서 교형(絞刑)으로 하라. "

 

세자의 말에 신하들은 여전히 불편한 기색이었으나,

안도하던 남자는 목을 매다는 결정에 식겁한 표정으로 외쳤다.

 

" 저하!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

 

그는 관군에 끌려가면서도 계속해서 자비를 요구하였으나

이미 세자의 눈은 다음 죄인을 향해있었다.

여자는 그저 고개를 떨군 채 미동도 없이 주저 앉아있었다.

 

" 그대는 할말이 없는가?

본디 나는 백성들의 목소리를 듣기위해 궁에서 나온 것.

억울한 것이 있다면 들어줄 터이니 말해보게. "

 

여자는 여전히 말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세자는 신하가 건낸 종이를 꺼내들었다.

아무것도 그려지지도, 쓰이지도 않은 종이는

흙과 발자국들로 더럽혀지고 구겨져 있었다.

 

" 비어있는 종이는 무엇을 위해 가져온겐가?

도둑에게서 숨겨둔 재산의 위치라도 적기 위해서인가? "

 

" 저는 배운 것 없이 길가의 말들만 주워듣고 살아 글을 모릅니다. "

 

" 그렇다면 종이는 무엇을 위해 가져온겐가? "

 

" 그것은 제가 동경해온 빛을 담기 위해서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

 

" 빛? "

 

" 그러나 빛은 닿으려할때마다 변덕스레 멀어져갔고

온기를 느끼려 가까이하면 저를 불태웠습니다.

바라보기라도하려하니 빛은 제 눈을 멀게해

저의 정신을 흐리게했고, 가까이 손을 대니 허상이었습니다.

제 삶의 모든걸 바쳐 담으려하던 빛이 허상이니,

제 삶도 이제는 허상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저 죽고싶습니다. 

죽여주십시오. 저를 죽여 빛을 바란 죄인의 말로를 보여주십시오. "

 

여자의 목소리에선 절망과 허무함이 절여져 나왔다. 

비록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으나 절실한 의중만은 전해져

신하들또한 할말을 잃으니, 그것은 세자도 마찬가지라

그는 알수없는 미소를 입꼬리에 담은 채 여자를 보는 것이었다.

 

" 그대는 오해를 하고있구나. "

 

여자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세자는 가벼히 웃었다.

 

" 비록 목을 참수할 죄라고는하나 나는 죄인 

하나를 벌하기 위해 궁에서 나온 것이다.

왕가의 후계가 궁에 나서며 한 약조도 지키지 못한다면

이 세상의 누가 내 말을 따르겠는가? "

 

 " 그게 무슨... 죽여주십시오! "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외쳤으나,

세자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엇다.

관군이 다가와 그녀의 양팔을 붙잡았다.

 

" 죽여주십시오 저하! "

 

" 저는 죄인입니다! 저하의 치장품을 빼돌린 도둑입니다! "

 

" 관아에 침입해 죄인에게 먹을 것을 준 공범입니다! "

 

" 멋대로 빛을 바라보고 꿈을 꾼 죄인이옵니다! "

 

" 제발 죽여주십시오! 적어도, 적어도! "

 

적어도 빛이 바라보는 아래에서 죽게하소서!!!!!!!!!!!!!!!

 

 

 

 

 

관아에서 내쫓긴 여자는 되는대로 하염없이 걸었다.

그러나 목적지를 잃은 발은 속도가 붙지않고

방향성을 잃은 시선은 그저 허공을 향하니

여자가 돌부리에 걸려 쓰러졌을 때는

땅거미가 내려앉은 무렵이었다.

익숙한 거리에 돌아와있었다.

 

" 그리고 싶은 것은 그곳에 있었습니까. "

 

" 없었습니다. 그리고 싶은 것도, 제가 있을 자리도. "

 

규수의 목소리에 여자가 답하며 고개를 드니, 

어둠 속에서도 선명한 규수는 일렁이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온화하고도 따스한 미소.

 

" 빛은 마지막 바램조차 이루어주지 않았습니다. "

 

여자는 품속에서 먹이 든 유리병을 꺼냈다.

금이 간 유리병에선 주변의 어둠보다도 더 짙은 칠흑이 찰랑였다.

 

" 빛은, 외면받은 이들의 삶 마지막까지도

품에 안겨주지 않은 채 어둠으로 내쫓았습니다. "

 

여자는 유리병을 열고 검지를 푹 담궜다.

따스한 칠흑이 손가락을 휘감았다.

 

" 제가 그리고 싶은 것은 빛이 아니었습니다. "

 

여자는 바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둠보다도 어두운 진한 수묵화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 제가 그리고 싶던 것은 동경조차 허용하지 않는

무섭도록 잔혹한 빛이 아닌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어둠. "

 

바닥의 돌과 날카로운 나뭇가지에 손가락이 베이지만

붉은 피조차 먹에 뒤섞여 그림이 되어갔다.

 

" 환희와 온기로 가득 차 비집고 들어갈 틈 없는 빛이 아닌

아무것도 없이 차가워 서로가 서로를 끌어안아주는 어둠. "

 

먹이 떨어지면 어둠이 손가락에 휘감겨와 그녀의

그림을 그려주었다. 온 사방이 그녀의 물감이었고

온 세상이 그녀의 낡고 헤진 판자였다.

 

" 초라하고도 쓸쓸한 곳. 우리가 태어난 침울한 고향.

외면받은 이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줄 온화한 어둠이었습니다. "

 

그렇게 그려진 것은 외면받은 이들을 품어줄 자비로운 자신.

 

" 그거하시다면, 바라는대로 될 것입니다. "

 

규수는 말과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온 세상에 짙은 어둠이 내리앉아 한치 앞조차 볼 수 없게되었다.

 

어둠과 형태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그림과 화가의 경계도 모호해지니

그녀는 어둠 그 자체가 되어 도성에 퍼져나간다.

불이 켜지고 따뜻한 곳은 지나쳐가고 

어둡고, 축축하고, 싸늘한 구석에는 그녀가 찾아가니.

 

술에 의존해 잠든 이를 품어내 깊은 잠에 빠져들게하고.

 

지푸라기를 덮고 벌벌 떠는 아이를 끌어안아

따스함 속에서 눈을 감게하고.

 

다투고 서로를 상처입히는 악인들의 사이에 끼어

돈독히 끌어안게하고.

 

고통스러운 얼굴로 목이 매달려 죽은 시체도 끌어안아

온기를 나누고.

 

칼에 찔려 위태로히 숨을 쉬어감에도 다툼의 원인인

관자는 포기하지 못한 불량배도 집어삼켜 품어내니.

 

온 도성에 뻗쳐나간 어둠이 햇빛에 거두어질 때 쯤이면

도성의 부랑자들은 하룻밤 새에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것을 기이하게 여긴 사람들 사이에선 소란이 일었으나

부랑자들의 흐릿한 존재감과 같이 금방 사그라 들어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전하는 그저 한가지 이야기가 되었다.

 

 

땅거미가 질 무렵엔 어둑시니가 나타난다

어둑시니는 늦게까지 놀러다닌 

아이를 잡아먹어 몸집을 키우니

 

빛을 시기하는 어둑시니는 빛의 아이들을

잡아먹으니 해가 지면 나가지 말거라

어둑시니는 아이를 먹고 쑥쑥 커져 해를 가리니

 

어둑시니를 바라보지 말거라

어둠은 너무나도 온화하고 따뜻해

바라보면 외면할 수 없으니

 

어둑시니를 바라보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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