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어둑시니 - 3

 

 

귀띔으로 세자의 행차 소식을 들은 뒤

여자는 오로지 돈을 모으는데 몰두했다.

 

여자는 땅거미가 물러나기도 전에 일어나 판자를 모았고

행인을 그리고 남은 시간엔 거리의 풍경을 그려

행인들의 시선을 모았다.

 

그덕에 그녀에게 그림을 부탁하는 행인들은 늘어났고,

비록 적은 액수이나 차곡히 모은 돈은 낭비하지않고

식사도 최저한으로 해 가능한 많이 저축했다.

 

비록 깨어있을때부터 잠들때까지 배가 주리고

목이 말랐으나, 그럴때마다 관자를 꼭 쥐어 남자의 온정을

생각하면 빈속이 따뜻해졌고, 먹이 든 유리병을

보고있을 때면 말라붙은 목이 먹으로 적셔지는 것 같았다.

 

여자는 완성하지 못한 남자의 그림들을 들추었다.

그리곤 작은 주머니를 벌려 오늘의 벌이를 넣었다.

동전 수십개가 부딪치며 청아한 소리를 냈다.

 

여자는 주머니에 들어찬 동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평생 올라간 적 없는 입꼬리는 세자의 행차 소식을 들은 뒤부터

연신 저절로 올라가곤 했다. 남자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과 살면서 처음으로 목표를 가지게 된 덕이었다.

 

' 이 동전을 열개씩 총 다섯뭉치를 가져오면 종이를 주마. '

 

여자가 돈을 모으는데 열중하는 이유는 종이를 사기 위함이었다.

 

남자를 눈앞에서 제대로 본 뒤 그 아름다움을

마음에 간직한 채 돌아와 귀한 먹으로 남자를

종이에 온전히 그려내곤 간직하기 위해서였다.

 

여자는 다시 유리병 속 새까만 먹을 보았다.

 

태어난 곳이자 한 때 머물던 곳.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

이 것에는 빛조차 끌어안을 수 있는 어둠이 있었다.

 

 

세자의 행차 전날.

여자는 판자를 모을 때도.

거리에 앉아 풍경을 그릴때도.

행인을 보며 그림을 그릴때도 마음은 내일에 있었다.

 

필요한 동전은 그림을 그리며 전부 모았다.

당장에라도 잠에 들어 내일을 마주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으나

여자는 욕심을 가졌다.

그의 행차때 던져 앞길을 장식할 꽃 한송이의 욕심. 

 

비록 말의 발굽에 밟히고 짐꾼들에게 밟히겠지만 

남자를 조금이라도 기쁘게하기 위한 아름다운 꽃

한송이를 위해 거리에 남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에겐 꽃 한송이 크기의 소망.

종이 한장의 빛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비열한 미소를 지은 채 다가오는 거한을 보자마자

여자는 다급히 돈 통을 챙기고 일어섰다.

그러나 다급히 도망가기엔 챙겨야할 것이 너무 많았다.

거한은 여자의 팔을 붙잡았다.

 

여자는 벗어나려했으나 머리 한개 반만큼이나 차이나는

거한에게선 제대로 된 저항조차 어려웠다.

거한은 여자의 팔을 붙잡은 채 돈통으로 손을 뻗었다.

 

여자가 거한의 손을 물었다.

거한이 놀라서 팔을 빼자 여자는 다시 도망치려했으나

분노한 거한의 발길질에 나가떨어졌다. 

 

바닥을 구르면서도 여자는 몸의 고통보단 유리병을

쌓인 판자 뒤에 숨겨둬 다행이라는 생각만을 하였다.

 

거한이 돈통을 향해 손을 뻗자 여자는 몸을 던져 

거한을 밀쳐내고는 돈통 위에 몸을 웅크렸다.

저번과 달리 악착같은 여자의 저항에

거한의 이마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거한이 연신 여자를 발길질하고 머리와 등을 짓밟았다.

여자는 입술이 찢어져라 물며 버텼다.

 

이번에도 시선 주는 이들 없이 차가운 무관심 속에서

밑바닥의 오물들이 찌꺼기를 두고 다투고 있었다.

 

어째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건가.

 

필사적으로 지킬 것이 생기니 떠오르는 억울함.

서러움. 노력을 보답받진 못해도,

배불리 살아가진 못해도 동경하고 바라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불합리함에 분노가 치밀었다.

 

여자는 품의 조각칼을 쥐고 남자에게 휘둘렀다.

 

 

여자는 넝마가 되어 쓰러졌다.

꼭 쥔 조각칼은 핏방울조차 내지 못하고

오히려 거한의 화만 부추겨 입에서 피를 토할때까지 맞았다.

돈 통을 챙긴 거한은 씩씩대며 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챙기기위해

고갤 숙였다.

 

그때, 거한의 눈에 여자의 품이 들어왔다.

옷섬 사이의 아름다운 녹색 빛.

거한은 손을 뻗어 벚꽃이 새겨진 옥 관자를 잡았다.

 

" 안.. 돼. "

 

쩍쩍갈라지는 소리를 내며 여자가 손을 뻗었다.

하지만 손은 거한에게 닿지못하고 허공만을 저을 뿐이었다.

거한은 이미 여자는 안중에도 없이 아름다운 관자를 보며

그저 돈이 될거라는 생각만을 했다.

 

" 제발... 돌려줘.. "

 

그건 무정한 세상에게서 처음으로 받은 따뜻함이었다.

비천한 자신도 호의를 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는 물건이며

너무나도 상냥한 그 분의 친절이고,

여자의 마음 속에 선명히 새겨진 희망의 문양이다.

 

" 그러니... 제발.. "

 

유일하게 움직이는 손으로 바닥을 끌고

피를 토하는 입으론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애원했지만,

일생의 소원을 입에 담아도 거한에겐 닿지도 않았다.

 

" 가져가지 말아줘... "

 

거한의 모습은 빠르게 멀어져갔다.

시야에는 여자의 손만이 애처로히 뻗어져있었다.

 

너무나 부당하다.

 

그녀는 한참을 흐느꼈다.

남자를 처음 만난 때와 같이 처참이 엉망이 되었으나

이번엔 찾아오는 이 없이 오롯히 혼자였다.

 

그 슬픔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뚝뚝 떨어지는 눈물조차

살점이 떨어져나가듯 고통스러웠다.

 

여자는 사방이 어두워질때까지 흐느꼈다.

행인이 지나가며 수근대거나 재수없다며 침을 뱉어도

여자는 아무런 반응 없이 그저 흐느끼기만 할 뿐이었다.

 

한동안 흐느꼈을까. 눈이 빠질 것만 같이 아플정도로 부어올라

눈물도 새어나오지 않게 된 깊은 밤이 되고나서야

여자는 일어났다.

 

' 황홀하고 아름다운 기억은 선명히 마음에 새겨집니다. '

 

규수의 말을 떠올리며 여자는 바닥에서 동전들을 찾기 시작했다.

은은한 달빛 속에선 눈으로 분간이 힘들어

손으로 바닥을 쓸어가며 흙에 뒤섞인 동전들을 구분해 주워갔다.

 

' 피사체는 당신의 마음에 있으니. '

 

빛의 따사로움은 옥 관자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온기의 근원은 결국 그것을 건낸 남자의 손의 따뜻함.

그것을 건내는 친절한 마음씨에서 시작된 것이다.

 

여자는 흙과 돌에 베이고 뜯겨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찾아낸 동전들을 꼬옥 쥐었다.

손틈에서 알갱이가 뒤섞인 피가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피는 그녀를 짓누르는 어둠 속에서도

달빛을 받아 은은한 붉은 빛으로 빛났다.

두들겨맞은 온몸이 욱신이고, 눈물로 볼과 눈가가 시큰거리고

피가 떨어지는 손은 쓰라렸으나 여자는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다음날 아침. 여자는 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

한 손엔 남자가 가는 앞길에 던져줄 길가에서 구한

노란 민들레 한송이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는 그의 앞에 꽃을 던질 수 없었다.

 

" 왜.. 왜.... "

 

찢어지고 부르튼 입술이 열리며 갈라지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힘없는 목소리였으나 그 안에 담긴 경악만은 선명했다.

 

" 행차아니였나? 이게 무슨일이야.. "

 

" 세자님이 어째서... "

 

남자는 죄인의 옷을 입고 수척한 모습으로 감옥에 실려있었다.

양손은 밧줄로 묶이고 이마엔 상흔이 있었으며

얼굴은 며칠을 굶은 듯 헬쑥하고 수염이 덥수룩했다.

여자의 흐릿한 기억 속의 온화한 눈빛도 지금은 생기가 없었다.

 

거리의 사람들도 그 모습을 보고 수근댔다.

여자는 벅차오르는 억울함을 토하듯이 외치며

사람들을 헤쳐나가 남자가 갇힌 감옥에 내달렸다.

 

" 왜!!!!! "

 

왜. 여자의 삶은 그저 물음만이 가득했다.

 

왜 자신은 부모도 없이 거리의 고아로 태어났는가.

 

왜 자신은 비천한 주제에 손재주를 가져

기구한 삶을 가늘게 이어가게 되었는가.

 

왜 자신은 늘 당해야만 하는가.

 

왜 세상은 자신에게 빛을 보여줘

자신의 참담함을 실감하게 만드는가.

 

왜 빛은 동경하는 것조차 허용치 않는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는데.

빛의 따스함을 조금만이라도 나눠주길 바란 것인데.

 

왜 빛은 이리도 자신에게 무자비한가.

 

여자는 병사들에게 거칠게 밀쳐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남자는 멍한 눈길로 한 차례의 소란을 바라볼 뿐이었다.

 

 

꺾인 민들레는 바닥을 나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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