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어둑시니 - 1

 

 

도성에 한 여자가 살고있었다.

여자는 거지로 거리에서 구걸을 하며

굶진 않을정도로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다.

 

여자는 가족도 재산도 없는 천애고아였으나

그림을 그리는 재주는 가지고 있어 입에 풀칠정돈 할 수 있었다.

 

여자는 매일 같이 새벽에 일어나 도성 곳곳의 쓰레기장을

전전하며 쓰레기더미 속에서 판자를 찾았다.

 

쓰레기들 속 숨겨진 날붙이에 피를 봐가며 찾아낸,

그나마 형태가 온전한 판자 몇개를 들고는

자신의 움막으로 돌아가 낡은 헝겊으로 닦았다.

 

그리곤 가장 심혈을 기울인 그림 두점과

닳고 닳은 조각칼 하나를 판자들과 함께 들고선

거리로 나가 그림을 그려준다며 구걸을 하는 것이다.

 

이는 아무것도 없이 동정심으로 구걸만하는 거지들보단

확실히 시선이 끌려, 하루의 끼니정돈 해결할 수준이었다.

 

그저 살아가기만 할 뿐인 밑바닥의 삶.

더 밝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은 너무나 까마득하여도,

희망이 보이지 않을정도로 깊기에 더 떨어질 곳이 없는 밑바닥.

 

여자는 그 곳에서 자신이 뉠 자리를 찾는 것만으로도 벅차

현실에 안주하는 것을, 삶에 만족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분홍 연지색의 벚꽃이 만연한 봄.

미소짓는 사람들이 거리에 쏟아져 벌이가 좋은 계절.

그 중에서도 매해 세자가 시찰을 한다고하는 그 날,

거리엔 행인들이 들끓었고 축제와 같이 활기가 가득해

모두가 웃으며 지갑을 여는 날이었다.

 

오늘은 특히 더 벌이가 많겠구나 라는 생각에

여자가 은은히 미소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잘 차려입고 동정심을 과시하는 규수들 덕에

준비해온 판자가 다 떨어질 때 즈음,

왠 거한이 여자를 찾아왔다.

 

여자가 거한을 올려다보았다.

자신보다도 더 한 거적대기에 험상궃은 얼굴.

숭숭빠진 머리와 군데군데 빈 이빨은

그가 그녀와 같은 거지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여자는 천진히 그림을 받으러 온거냐 물었다.

거한은 여자의 배를 걷어참으로 답하였다.

 

폐에서부터 벅차오르는 공기가 새나오지 못했다.

목구멍이 억눌려 들이켜지지 못한 바람이 도로 토해졌다.

남자가 돈 통을 손을 뻗자 여자는 꺽꺽대며 돈통을

제 품에 넣어 몸을 말았다.

 

그러자 거한은 여자를 연신 걷어찼다.

거리의 한 가운데. 많은 행인들이 바라보았으나

그 누구도 그에 관여되려하지 않았다.

 

잃을 것이 많은 이들이 잃을 것이 없는 자들끼리의

촌극에 어울리기엔 얻을 것도, 흥미도 없었다.

결국 버티지못하고 여자가 떨어져나가자

거한은 천박히 웃으며 돈통을 가지고 도망쳤다.

 

여자는 쥐며느리마냥 몸을 웅크려 자신을

물어뜯는 고통을 온전히 삼켜넘기고 있었다.

눈물로 흐려진 시야에서 선명한 것은

피의 비릿한 맛과 악의가 주는 복통.

몸을 싸늘하게 만드는 무관심이었다.

 

하지만 한두번도 아닌 일.

여자는 그저 떨며 고통을 삼키던 것이었다.

 

" 괜찮은겐가? "

 

시야만큼이나 몽롱한 의식 속에서

선명한 목소리가 비집어 들어왔다.

따뜻한 몸이 어깨에 닿자, 차가운 몸에

찌릿한 전율이 가볍게 일었다.

 

손은 그녀의 어깨를 밀며 몸을 위로 향하게 해주었다.

그 손의 주인은 왠 남자였다.

 

남자의 모습은 여자의 눈에 눈물이 가득해,

수채화같이 뭉게어져 흐릿한 모습으로 비춰졌으나.

그가 말끔한 얼굴과 거리의 사내답지않은 곱고 흰 피부.

갸름한 턱과 짙은 눈썹을 지녔음은 알 수 있었다.

 

" 그래도 의식은 있는 것 같아 다행이야.

내 비록 갈길이 바빠 낭자를 의원에게 바래다 줄 수 없으나.. "

 

남자는 그녀의 오른손에 무언갈 꼭 쥐어주었다.

남자의 따뜻하면서도 부드러운 손은 잡는 것만으로도

여자의 헤지고 거친 손을 마치 보듬어주는 것 같았다.

 

" 이것을 팔면 의원에 가 치료를 받고

음식을 배부르게 먹을 정도는 받을 수 있을걸세. "

 

처음 듣는 자신을 향한 따스한 목소리.

목소리에 담긴 호의는 너무나도 포근했다.

 

여자가 여태까지 알고있던 온도는

몸의 기운을 뺏어가는 뜨거운 햇살.

움막을 뚫고 떨어지는 축축하고도 차가운 빗물.

판자를 날리고 피부를 찢는 맹렬한 바람.

무서울 정도로 차갑다 못해 몸이 뜨거워지는 눈의 냉기 뿐이었다.

 

그런 몸에 처음으로 전해진 사람의 온도가 가져다주는 안락함은

그저 손과 목소리로 전해지는 끝자락에 불과했으나.

여자는 주저없이 그것에 정신을 던져 만취하듯 잠들었다.

 

 

 

여자가 깨어난건 어스름한 늦은 저녁 때였다.

거리엔 이따금씩 행인이 지나갈 뿐이었다.

욱신거리는 몸을 움츠렸을 때,

그녀는 자신이 오른손을 뼈가 도드라져 보일정도로

세게 쥐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굳은 손을 힘겨히 펼쳐 보았을 때, 

그녀의 손엔 마치 꿈만 같았던 따스함이 피어올랐다.

벚꽃이 새겨진 옥 관자가 손에 있었다.

 

' 낭자. 꼭 이것을 팔게. '

 

처음으로 들은 낭자라는 호칭.

자신을 걱정해주는 목소리의 울림은 얼마나 감미로운가.

여자는 관자를 품에 넣곤 옆에 널부러져있던 판자를 들었다.

 

판자엔 여자의 가장 자신있는 그림이 새겨져 있었으나

그의 따뜻함과 고결함 앞에선 그저 어린애 낙서에 불과했다.

여자는 판자를 뒤짚더니 아직 떨리는 손으로 조각칼을 쥐어

판자를 깎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남자에 대한 기억이

선명할 때 이를 기록하고 싶었다.

 

물을 가득 머금은 수채화와 같은 기억이었으나

그의 자태만은 선명하니, 여자는 멈춤없이 깎기 시작했다.

손에 힘이 떨어져 칼이 빗겨나가자 양발로 판자를 지지하고,

양손으로 칼을 잡아 깎았다. 

 

그림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본 여자는 

아랫 입술을 찢어져라 물었다. 눈을 그릴 수가 없었다.

 

눈을 그린다는 것은 그림에 끝을 고하는 일.

자신이 보았고, 떠올린 것을 완성했다 인정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눈을 그리기엔 그에게 실례되는 일이었다.

 

그를 담기엔 그림은 너무나 볼품없었다.

쓰레기 장에서 주운 낡은 판자.

닳고 닳은 조각칼로 얼기설기 새겨진 몸의 형태.

그것에 눈을 그려 그를 완성시킨다는건

그가 보여준 고결함과 자신이 느낀 따스함을 모욕하는 행위였다.

 

" ... "

 

명치가 짓눌러지듯이 아파왔다.

북받쳐오르는 감정은 목을 타고 올라와

코로, 코를 타고 올라가 눈으로 흘러나왔다.

 

뜨거운 눈물이. 여태까지 고통에 대한 반응만으로

흘러나오던 차가운 눈물과는 달리 볼이 데일정도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왔다.

 

여자는 처음으로 흐느꼈다.

밑바닥에서 앞을 보는 것만으로도 바빠 위를 올려다보지 않았던

그녀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을 때, 

시야에 가득 들어오는 화사한 빛은 여자를 비추었다.

 

여자에게 내려온 빛은 온화하며 따뜻했으나,

동시에 너무나도 무자비했다.

 

주변까지 비추는 빛은 여자가 있는 밑바닥의 처참함을 드러내

그녀가 얼마나 초라하며 슬픈 존재인지 깨닫게 만드는 것이었다.

 

 

 

2개의 댓글

배에 풀칠을…

ㄷㄷㄷ 혹시 배싸???!

재미는 있다

0
2022.07.23
@소주엔말린엔초비

헷갈렸었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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