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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나라 : 이고갱] 9화. 집착하는 여인들



제 9화
          집착하는 여인들










태환이 여화에게 동정을 뺏길 때,


예진, 서유와 서영이는 현아에게 넓은 온천탕으로 안내 받았다.


호화스러운 목욕시설을 처음 접해 본 서유와 서영이는 온천탕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상에... 언니, 우리가 신수님이 이용하시는 목욕탕에 왔나 봐요."


서유가 넋을 놓고 말했다.




지평선 끝까지 산봉우리가 이어진 경관을 앞에 둔 넓은 온천탕은 


왕실의 욕탕을 경험해 본 예진 조차도 입이 벌어지는 광경이었다.


셋은 옷을 벗어 한쪽에 개어 놓고 탕에 다가 갔다.




"와아! 언니, 물이 따뜻해!"


가장 먼저 탕에 뛰어든 서영이가 신기해하며 외쳤다.




"이게 말로만 듣던 온천이구나..."


예진은 손으로 먼저 물을 만져 보며 중얼거렸다.


이윽고 예진과 서유도 탕 안으로 들어가 몸을 담갔다.




"하아 이게 정말 무슨 일일까... 가을뫼씨랑 주작님은 무슨 사이인 거지? 


 어째서 대주작님이 우릴 구해주시고 또 이렇게 초대해 주시고..."


예진이 혼잣말하듯 서유의 옆에서 말했다.




"그러게요. 저는 신수계에서 10년을 넘게 살았지만 신수님과 그렇게 허물 없이 대화는


 사람을 처음 봤어요. 아니... 사실 신수님조차 처음 뵙는데..."




"흐음... 근데 가을뫼씨는 어디로 간 거지? 남자들 목욕하는 곳은 따로 있는 걸까?"


"글쎄요... 저기 나무벽 너머로 남탕이 있는 거 아닐까요?"


서유는 서영이가 헤엄치고 있는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서유야 나 느낌이 너무 안 좋아... 아까 가을뫼씨를 쳐다보는 주작님의 눈빛이...왠지..."


"설마요... 가을뫼님이 멋진분이긴 하지만 주작님은 신수님인걸요..."




예진은 대뜸 서유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서유 너도... 으... 내가 이런 말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는데, 나랑 가을뫼씨, 그런... 사이거든?

 너가 가을뫼씨랑 너무 가깝게 있는 거, 나 보고 싶지 않아."


"..."

서유는 잠시 말이 없었다.
 

 


"언니가 고씨라는걸 들었을 때부터 짐작은 했지만, 7태녀라는 건, 일곱 번째 왕녀라는 뜻이죠?"



"맞아. 그리고 너도 알겠지만 왕녀의 남편은 첩을 둘 수 없어."




"...언니는 태왕님의 딸은 아니잖아요."


"뭐?"


"지금 태왕님께 따님은 없는걸로 알고 있어요. 직계 공주님이 아니라면 처첩은..."




"그게 뭐?! 그래도 태녀라구! 그래서 뭐...뭐 가을뫼씨를 어떻게 해 보겠다는 거야?"




서유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을 열었다.


"영웅은 3처4첩을 가리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가을뫼님처럼 특출난 분을 독차지 하려는 건 언니가 나빠요..."


"서유 너... 너..."


예진은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졌다.




"저는... 언니가 첫 번째라는 걸 인정해요... 

 언니는 신분도, 외모도, 가을뫼님을 만난 순서도 전부 저보다 앞서니까요.

 하지만... 하지만... 언니도 저를 조금만 받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언니와 가을뫼님의 한 발짝 뒤에 있는 것마저 밀쳐 내지 말아 주세요..."




"너어!"


예진은 벌떡 일어섰다. 


멀리서 헤엄치던 서영이도 이쪽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걸 느꼈는지 멈춰 서 언니들을 바라보았다.


예진은 그대로 탕을 나가 탈의실로 들어갔다.


갈아입을 옷과 함께 놓여 수건으로 대충 물기를 닦고 아직 덜마른 머리를 매었다.


일단 화가 나서 뛰쳐나오긴 했지만, 이 넓은 건물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목욕이 다 끝나셨습니까?"


어떻게 알고 온 것인지 현아가 와서 물었다.


"네..."


"곧 대모님과 저녁 식사가 있을 예정입니다. 방을 안내해드릴 테니 그곳에서 잠시 쉬시지요."


현아는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려 천천히 앞장서 걸어갔다.








"언니.. 언니... 울어?"


서영이가 서유에게 다가와 물었다.


서유는 눈물을 추스르며 말했다.


"응? 아냐... 언니 괜찮아. 그냥 물이 눈에 들어가서 그래..."




****




현아와 주아의 안내로 넓은 식탁에 모여 앉은 태환, 예진, 서유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태환은 바람을 핀 것 같다는 죄책감에 휩싸여 예진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숨 막힐 것 같은 적막에 서영이가 눈치를 보며 잔뜩 풀이 죽어 있었다.




"아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네 들? 목욕할 때 무슨 일들 있었니?"


여화가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여화가 나타남과 동시에 현아와 주아는 식탁을 빼곡히 음식들로 채워나갔다.




"아닙니다. 대주작님, 저희에게 너무나 크신 성은, 깊게 감사드립니다."


예진이 말했다. 




"내가 초대했는걸, 이 정도 가지고 뭘, 그건 그렇고 

 딱 보니까 사정들이 있는 거 알겠는데 지금은 맛있게들 먹어 주겠니?
 
 우리 애들이 열심히 차린 거란다."


여화가 그렇게 말하자 다들 대답하며 수저를 들었다.




식탁 가득 차려진 음식들은 정말 잠깐은 다른 생각을 잊게 할 정도로 빼어난 맛과 모양을 지니고 있었다.


두 세계를 살아본 태환 조차도 처음 보는 음식들이 있었는데 하나 같이 별미였다.


그동안 삼시 세끼 늘 국밥만 먹었던지라 태환은 잠시 죄책감을 내려놓고 열심히 배를 채웠다.




"내일은 우리 애들이 주작봉우리를 구경시켜줄 거야. 

 꽤 걷게 될 테니까 일찍들 자렴.

 각자 방에 필요한 거 있으면 말들하고, 우리 애들이 이불부터 춘화집까지 뭐든 가져다줄테니까."
 


"네..."



"아이쿠 어린애도 있었지... 서영이라고 했던가? 우리 애기 인형 좋아하니?"


"네? 아니.. 아니옵니다..."


"난 다 알고 있는걸?"


여화가 손으로 딱 소리를 내자, 


여화의 손에 꼭 인형 뽑기에 있을 법한 커다란 새모양의 봉제 인형이 나왔다.




"이걸 끌어안으면 잠이 잘 올 거란다. 오늘밤 푹자렴."


서유와 서영이는 일어나 허리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자 그럼~ 해산!"


주아와 현아는 아직 건물에 익숙하지 않은 가을뫼 일행들을 각각의 방까지 바래다주었다.






저녁을 먹고 자기방에 혼자 있게 된 예진은 아까 있었던 일을 곰곰이 생각했다.


서유에게는 마치 가을뫼와 연인인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 가을뫼에게 확실한 말을 들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분했다. 항상 받는 것에 익숙했던 예진은 이런 상황이 익숙하지 않고 자존심이 상하기까지 했다.




'그래 가을뫼씨를 봐야겠어."


예진은 직접 확실히 할 요량으로 복도로 나와 아까 슬쩍 봐두었던 가을뫼 방으로 갔다.




"어머, 우리 태녀, 해가 떨어진 이 시간에 남자방은 무슨 일로?"


바로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예진은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주..주작님..."




"오늘밤 가을뫼는 내가 먼저 찜꽁해 놨는데, 이러면 곤란하거든?"


여화가 예진의 어깨 손을 올리며 말했다.


예진은 여화로부터 느껴지는 엄청난 기운에 다리가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여화는 예진의 눈높이에 맞춰 자세를 숙이며 마저 말했다.




"너는 기회가 많잖니? 안 그래? 7태녀?"


예진은 대답을 못 하고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애휴... 그렇게 겁준 것도 아닌데 왜 기절해 버리니... 

 우리 을뫼 색시감으로는 딱 괜찮다 생각하는데 말이야...
 
 그냥 조금만 같이 쓰자구."


여화는 예진을 복도 벽에 기대어 놓고 가을뫼의 방으로 들어갔다.






****




잠시 뒤 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예진은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으... 이게 무슨 소리지?'


"으흥... 그래... 거기... 흣... 으응.. 그래 ... 아흣"


가을뫼의 방안에서 살끼리 부딪히는 소리와 여화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보다... 더... 단단하네... 흐응.. 뒤로하니까.. 더... 읏.. 꼴려?"


"으... 네에... .."


가을뫼의 목소리 였다.
 


예진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눈에서 눈물이 마구 나왔다.


더 이상 듣고 있을 수 없어 일어나 자기방으로 향하였다.



돌아가는 길에 서유의 방이 눈에 밟혔다.


[똑똑]


"서유야 자니?"


문이 열리고 서유가 나왔다.


"아니요. 언니. 동생만 자고 있어요..."


"서유야, 흑흑흑..."


예진은 서유를 껴안으며 울었다.


둘은 예진의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유야... 가을뫼씨가... 가을뫼씨가... 흑흑흑"


"무슨 일이예요. 언니..."


"내가 욕심이 많았던 걸까? 차라리 너였다면... 그래... 너는 두 번째가 되겠다고 까지 말했는데"


"언니...?"





예진은 자신이 목격한 장면을 서유에게 말해주었다.


"말도 안 돼요... 신수님이... 한낱 인간을 품을리가..."



"내가 봤어... 내가 봤단 말이야... 나 가을뫼씨를... 좋아....하는데...  신한테 뺏겨 버리면...
 
 방법이 없잖아... 흐아앙앙"


예진은 서유에 품에 기대 엉엉 울었다.


서유도 혼란스러웠다. 가을뫼가 영영 신수님의 소유가 되어 버린다면... 가슴이 철렁였다.


한동안 방안에 예진의 울음소리만 맴돌았다.




그때 문이 [드르륵] 열렸다.


놀랍게도 문을 열고 여화가 들어왔다.




"에휴 우리 애기 왕녀, 이럴 줄 알았지..."


"주..주작님"


서유는 황급히 일어나 예를 갖췄다.


예진은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울고만 있었다.



"을뫼 씻으러 간 사이에 몰래 온 거거든? 둘 다 앉아봐."


서유는 예진 옆에 앉았다. 


주작님에게서 은은히 가을뫼의 향이 나는걸 느낄 수 있었다.


여화는 팔을 넓게 벌리더니 어느새 팔은 커다란 날개가 되었다.


그 날개로 예진과 서유를 감싸 안았다.


세상 느낄 수 없었던 포근함과 따스함이 둘을 안아주었다.




"난 말이야. 너희가 알듯 여신이란다... 내가 인간 남자와 평생을 함께 할 수 없는데 

 그 애를 덥썩 가질 생각 없어. 다만 우리 가을뫼는 내게 참 매력적인 유희 랄까...

 가을뫼를 좋아하는 너희에게는 같은 여자로서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내가 양보한만큼 

 너희도 양보해야겠지?"


예진은 선뜻 대답 못하고 훌쩍였다.




"우리 애기, 고집도 쎄지... 그래 그쯤 돼야 가을뫼랑 자리 잡고 살아가겠지... 

 너희가 내 맘에 안 들었으면 가을뫼와 너희 사이를 영영 찢어 놨을 텐데. 

 내가 들여다 보니 맘에 들어 너희까지 내 집으로 초대한 거야.

 우리 애기 왕녀도 그렇고 , 은근 집착하면서 잘해 줄 애기 도사도 그렇고.."


여화는 예진과 서유를 쓰다듬어 주었다. 예진은 펑펑 울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 놓으렴"


여화의 부드러운 손길이 지나가자 예진은 잠들었다.


그러곤 서유를 바라보았다.




"신수계에 살았던 너라면 이게 얼마나 특별한 경우인지 잘알지? 난 원래 인간한테 이렇게 관대하지 않아."


"네... 주작님."


"이리 와봐."


여화는 팔을 좀 더 벌리며 서유를 불렀다.


서유는 여화의 부름대로 더 가까이 다가 갔다.




"그래도 기왕 애기 공주도 달래줬으니 너도 달래 줘야지, 안 그래?"


"영광... 영광입니다... 대모님.."




여화는 서유를 잠시 쳐다보았다.


"자,  우리 애기 도사는 아픔이 많았네... 그래그래 여태 잘 참아왔구나..."


여화는 서유를 안은 채로 다독이며 말했다.


서유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여화의 따스하고 부드러운 기운은 그 자체가 서유의 마음 구석진 곳들을 녹여 왔다.




"어느새 가을뫼에게 마음이 많이 기울고 있었네... 너의 약한점을 이해해 주고 배려심 있는 행동들을 하고...

 가을뫼 이 녀석 이거 순 바람둥이 아냐?"

 


서유는 살짝 웃어 버렸다.  



"가을뫼가 너의 마음도 알아줄 날이 올 거란다. 아가."


토닥이는 여화의 손길에 서유도 아기처럼 잠들었다.




여화는 그렇게 두 명을 재우고 가을뫼의 방으로 돌아갔다.


가을뫼는 씻고와서 뽀송뽀송해진 얼굴로 자리에 누워 있었다.




"엇... 자러 가신줄..."


가을뫼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애휴... 넌 진짜 손이 많이 가는 애다."


"네?"




여화는 가을뫼에게 등을 보이며 옆에 누웠다.


"오늘 내가 잠들 때까지 쓰다듬어. 이유는 묻지 말고, 그 정돈 받아야겠다."


"네?...넵..."




가을뫼는 부드럽게 여화의 등을 쓸어내렸다.


여화는 만족스러운 듯 온화한 표정으로 가을뫼의 손길을 음미했다.


"저... 근데 제가 계속 동정이었다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여화는 고개를 돌려 가을뫼를 쳐다 봤다.



"을뫼야, 누난 하계를 다스리는 신이야, 딱 보면 알지."


문득 가을뫼는 여화의 눈빛이 자신을 꿰뚫어 본다는 느낌을 받았다.






"잠깐, 이 활... 이 활, 두고 왔어?"


"네?"


"너가 장터에서 산 활 말이야."


여화는 가을뫼 볼에 손을 얹더니 가을뫼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하... 재밌네. 그 양반, 나한테는 그리 뭐라 하더니..."


"네?"


"아니 됐다. 재밌는 일이 있었네. 내일 낮에 볼일 좀 보고 말해 줄게."


"에...?"



"어허 손이 멈췄잖아. 빨리 쓰다듬어 줘."


여화는 자기 등을 손으로 토닥이며 말했다.




'귀엽다... 엄청난 분인데... 귀여워...'




가을뫼는 여화가 잠들 때까지 머리부터 허리를 쓸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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