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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나라 : 이고갱] 8화. 격변하는 세계

8화. 

      격변하는 세계

 

 

 

 

 

 

 

'주모가 정보를 흘린 것이라면 모든 게 맞아떨어진다.

 

 가을뫼 일행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어디를 향하는지, 언제 향하는지, 주모는 분명 들을 기회가 많았다.

 

 그리고 여지껏 그냥 놔두다 오늘에서야 우리를 죽이기로 결심한 것은, 오늘 탁상에서 나눴던 대화를 듣고

 팽경지의 정체가 탄로 났을지도 모르니 처리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주모가 팽경지와 공범이라면 가을뫼 일행을 주모가 직접 죽이지 않은 이유도 충분히 납득이 갔다.

 

 모종의 목표를 위해 주모로 변장한 것이라면 주모로 잠입한 지금, 물의를 일으키는 것은 

 그간 노력을 모두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일한 의문은 애초에 왜 자객이 주모로 주막에 잠입한 것인가...

 

 

'... 그동안 그 고운 미소가 다 거짓이었다니...'

 

태환은 믿기 어려웠다.

 

하지만 상태창은 결코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일개 주모가 1차 승급까지한 도적인 것도 우연일리 없다.

 

 

 

태환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돌렸다. 

 

 

아무리 잠입중이라 물의를 일으키지 않으려 한다 해도 팽경지를 조우한, 

 

 

심지어 처리한 지금 주모와 마주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도박이었다. 

 

 

상대가 기를 쓰고 죽이려 들 수도 있다.

 

 

 

 

99단에 불과한 팽경지도 주작의 도움으로 간신히 이겼는데, 

 

 

1차 승급자를 가을뫼 일행이 당해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예진과 서유에게 돌아온 태환은 조심스럽게 입을열었다.

 

 

"너희에게 할 얘기가 있어."

 

 

 

 

태환은 우선 자신이 상대의 이름과 직업 국적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해줬다.

 

 

"헤에? 천제의 축복을 받으면 그런 게 가능해요?"

 

 

"응. 그래서..." 

 

 

"그럼 그동안 왜?..."

 

 

예진은 질문을 하다 멈췄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제 성이 뭔지 말해 봐요."

 

 

'응? 상태창.'

 

 

[주술사] [54] [고예진] [고구려]

 

 

"어? 뭐야 너도 고구려 사람이었어?"

 

 

"네? 가을뫼씨도 고구려사람이예요?"

 

 

"아니 난 부여사람이고 서유가 고구려 사람이길래..."

 

 

"아무튼... 제 성이 뭐예요? 맞춰 봐요."

 

 

"고예진."

 

 

예진은 놀란 듯 입이 벌어졌다.

 

 

서유도 다소 놀란 듯했다.

 

 

 

"헤... 진짜인가 보네... 일단 알겠어요.

 근데 그 능력이랑 방금 어딜 다녀온 거랑 무슨 관계예요?"

 

 

태환은 크게 한숨을 들이쉬고 주모의 정체와 자신의 추리를 들려 줬다.

 

 

 

 

"세상에나..."

 

 

서유는 입에 손을 대며 실색했다.

 

 

예진 역시 믿기 어려운 듯했다. 무언가 말할듯 말 듯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주막으로 가는 건 너무 위험할 것 같아. 

 주막에 놔둔 짐들은 포기하고 서유네 집으로 가자."

 

 

"잠깐만요. 그 주모가 자객이라면 무언가 의도를 가지고 잠입했을 거 아녜요."

 

 

"그렇겠지."

 

 

"그 의도가 분명 좋을 리가 없잖아요. 

 사람을 죽여가며 잠입한 일인데 우리가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하는거 아녜요?

 

 

 

 

"우린 99단짜리 팽경지도 주작의 도움으로 간신히 이겼잖아. 

 

 솔직히 말하면 도움 수준이 아니라 그냥 주작이 우릴 구해 준거나 다름없었어. 

 

 그런데 이번 상대는 승급까지한 자객이야. 구미호 때처럼 열정으로 극복할 만한 대상이 아니라고."

 

 

 

 

"그럼 관청에 가요. 관청에 신고를 하는 거예요."

 

 

"잊었어? 주모를 주막에 배정한 건 관청이야. 

 

 관청 내부에도 그쪽 사람이 있을 수 있단 뜻이야. 

 

 아니 거의 확실히 있겠지. 

 

 99단 도적과 자객이 한패인 집단이야. 어떤 강자가 숨어서 우릴 위험에 빠뜨릴지 몰라."

 

 

 

 

"..."

 

 

예진은 말문이 막힌 듯했다.

 

 

한동안 세 사람 다 말이 없었다.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뜻밖에 서유였다.

 

 

"그럼 이 사실을 글로 적어 관청 안에 활로 쏘아 보내는 건 어떨까요?"

 

 

"엇"

 

 

"와 서유야! 똑똑하다. 가을뫼씨 그렇게 하기로 해요 우리. 

 가을뫼씨라면 아주 먼 거리에서 관청으로 화살을 쏘아 보낼 수 있잖아요."

 

 

태환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관청내에 스파이가 있다고 가정해도 아주 멀리서 화살만 쏘아 놓고

 

 

빠르게 도망친다면 설령 승급자일지라도 가을뫼를 붙잡진 못할 것이다...

 

 

 

 

"그래 그렇게 하자. 그 대신 나만 가서 활을 쏘고 올게. 종이랑 붓 있니?"

 

예진은 글을 적을 종이가 없어서 노란비서 뒷면에 최대한 빼곡히 

 

 

주모의 정체와 팽경지의 정체를 고발하는 글을 적었다. 

 

 

그리고 잘 접어 가을뫼의 화살깃 앞에 달아주었다.

 

 

 

 

"조심히 다녀와요. 빨리 와야 해요. 우리 너무 걱정하니까..."

 

 

예진이 가을뫼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알았어. 최대한 빨리 다녀올게 잠시만 여기서 더 기다려 줘."

 

 

태환은 그렇게 말하고 성 중앙에 있는 관청으로 향했다.

 

 

관청 근처에 도달한 태환은 대략 200M 떨어진 곳에서 관사를 조준했다.

 

 

『피슈웅』

 

 

태환은 자신이 쏜 화살이 확실히 담을 넘어간 것을 확인하고 뒤를 돌았다.

 

 

하지만 태환은 자신이 쏜 화살이 관청 내에 어디에 도달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그의 화살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떨어졌다.

 

 

그 사실을 모르는 채 태환은 다시 예진과 서유를 만나 서유의 집으로 향했다.

 

 

***

 

 

 

 

일행이 꽤 걸어서 엉성한 초가집에 거의 도착하자 그 집 안에서 어린 여자아이가

언니를 부르며 뛰쳐나왔다.

 

 

"언니! 언니!"

 

 

많이 쳐줘 봐야 11살, 12살 일 것 같은 어린아이였다.

 

 

설마 서유의 동생? 

 

 

"서유야, 이 아이가 네 동생이니?"

 

 

아이는 어느새 서유의 치맛자락에 숨어 조심스레 가을뫼와 예진을 관찰하고 있었다.

 

 

"네... 자, 서영아 인사 드려. 언니, 동료분들이야."

 

 

아이는 수줍은 듯 고개를 조금 숙이고 "안녕하세요." 라고 말했다.

 

 

'아니 혼기가 얼마 안 남았다며...'

 

 

"응 안녕~ 서영이라고 하는구나. 서영이는 몇 살이니?"

 

예진은 허리를 숙여 눈높이를 맞춰주며 물었다.

 

 

"11살이예요."

 

예진은 대답하는 서영이를 보고 귀여워 하며 머리를 쓰다듬아주었다.

 

 

"귀여워라. 11살이면 다컸네."

 

 

"이 나라는 몇 살부터 성인인 거야..."

 

태환은 중얼거렸다.

 

 

"서영아 언니가 지금 여기 동료분들이랑 다시 신수계를 다녀와야 해."

 

 

"할아부지 보러 가는 거야?"

 

 

"아니, 저~ 높으신 분 뵈러 갈 거야"

 

 

"나도 나도 갈래. 할아부지도 보고 싶어."

 

 

"그래. 근데 할아버지는 못 뵐거야. 다른 봉우리에 갈 것 같거든."

 

 

"그럼 거북이들도 못 봐?"

 

 

"응. 대신 커다란 새들은 볼 수 있을 거야."

 

 

"와 나 큰 새들 한번 만져 보고 싶었는데."

 

 

 

"가을뫼님 들어가서 간단하게 짐 좀 꾸려 올게요."

 

 

서유는 가을뫼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서유는 가을뫼의 대답을 듣고는 초가집 안으로 들어가서 짐을 꾸렸다.

 

 

서유는 소지품 보따리와 무언가 보따리를 하나 더 들고 나왔고 서영이는 때가 탄 인형을 들고나왔다.

 

 

 

"저희는 준비 다 된 것 같아요."

 

 

"좋아. 그럼 출발하자. 그런데 부여성비서는 한 장인데 4명이서 갈수 있나?"

 

 

태환은 예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흐음... 조금 좁을 것 같긴 한데 얼추 될 것 같은데요? 그 비서를 여기 땅에 내려놔 봐요."

 

 

태환은 예진의 말대로 부여성비서를 발 앞 땅에 내려놓았다.

 

 

부여성비서가 땅에 닿자, 맨홀뚜껑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마법진이 비서를 중심으로 땅에 그려지며 빛을 발했다.

 

 

"저 안에 들어가서 비서를 밟으면 그때 이동할 거예요. 원 안에 들어가서 서 있어 봐요."

 

예진이 말했다.

 

 

태환은 한걸음 디뎌 마법진 안으로 들어갔다.

 

 

'4명이서 서기엔 좀 빡세 보이는데... 괜찮나?'

 

 

"야, 이거 좀 힘들어 보이는데, 이 동그라미에서 삐져나가면 어떻게 돼?"

 

 

"어떻게 되긴요. 애꿎은 비서만 날리는 거죠."

 

 

예진이 가을뫼 앞에 찰싹 달라 붙듯이 안기며 말했다.

 

 

태환은 예진의 뭉클한 감촉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어우, 위험하다... 소중아 나대지 마 지금 커지면 얘 바로 안다. 으..."

 

 

하지만 고비가 하나 더 있었다. 

 

 

서유가 뒤에 바짝 붙은 것이다.

 

 

태환은 앞뒤로 뭉클한 상황이 되었다.

 

 

"서영아, 언니 옆에 딱 붙어."

 

서영이는 인형을 든 채 서유의 옆을 꼭 안았다.

 

 

"... 가을뫼씨?"

 

 

예진은 나무 막대처럼 딱딱해진 그곳을 느끼고는 다소 당혹스러하며 말을 걸었다.

 

 

'어으. 설마 지금 커졌다는 걸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  여기 지금 애도 있다. 말 가려하자 제발...'

 

 

"가...가을뫼씨 읏.. 지금 비서를 밟으면 될 것 같은데요."

 

 

예진은 부끄러운 듯 가을뫼의 품속에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태환은 바로 비서를 밟았다.

 

 

 

 

 

띠디디디딩 휘이휘이이

 

 

 

 

 

일행은 부여성 동쪽에 도착했다.

 

 

예진은 아직도 얼굴을 붉힌 채 얼른 품에서 나왔다.

 

 

서넛의 병사가 일행 앞에서 근엄하게 서 있었고 그중 가장 왼쪽에 있는 병사가 말했다.

 

 

"지금 도착한 사람들은 바로 명패를 꺼내시오."

 

 

태환과 예진, 서유는 명패를 꺼내 보여 주었다.

 

 

'잠깐 근데 얘네 고구려 사람인데 괜찮나?'

 

 

 

"지금은 전시라 수도에서 비영사천문을 쓸 수 없소. 

 갈 곳의 길을 잘 모른다면 지금 내게 물어보시오."

 

 

명패를 훑어본 병사가 명패를 돌려주며 말했다.

 

 

"네? 북쪽 진입로로 가야 하는데."

 

 

"여기서 성문을 따라 북쪽으로 쭉 걸어 꺾으면 해질 무렵 도착할 수 있소.

 헌데 지금은 성 외부로 출입이 막혀 있어 도착해도 진입로에 갈 수 없을 거요."

 

 

"네? 왜요?"

 

 

예진이 끼어들며 물었다.

 

 

"오늘은 선왕 폐하의 제사가 있는 날이오."

 

 

병사는 그것으로 설명이 끝난 것처럼 말했다.

 

 

태환은 어리둥절해하는데 서유와 예진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가을뫼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죠? 이곳 주막에서 하루 머물까요?"

 

 

"선왕의 제사랑 성문이 닫히는 거랑 무슨 관계인 거야?"

 

 

태환이 작게 물었다.

 

 

"가면서 얘기해 줄게요. 일단 주막으로 가요. 우리"

 

 

예진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병사에게 주막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잠시 후 병사들과 멀어지자 예진은 설명을 시작했다.

 

 

"대개 선대왕이나 시조의 제사를 지내는 날은 온종일 성문이 봉쇄가 돼요.

 일종의 의식 같은 거예요."

 

 

"백성들은 참 불편하겠네. 

 근데 너네 둘 다 고구려사람인데 전시 중에 이렇게 부여 수도로 자유롭게 올 수 있는 거야?"

 

 

예진은 자기 명패를 꺼내 들었다.

 

 

[부여 읍루 소예진]

 

 

"엥? 뭐여 이게'

 

 

서유도 명패를 보여 주었다.

 

 

[부여 동부여 신서유]

 

 

"돈 좀 쓰면 가짜명패를 만들 수 있어요. 품질이 좋은 가짜일수록 비싸긴 하지만..."

 

 

"왜 가짜명패를 만들면서까지 부여에 있는 건데?"

 

 

예진은 작게 한숨을 쉬고 대답했다.

 

"나중에 말해줄게요."

 

 

"저는 스승님이 부여에서 수련하는 게 지존이(99레벨) 되기 더 빠를 거라 말씀 하셨어요."

 

 

"왜?"

 

 

"그건 저도 잘..."

 

 

허허... 혹시 옛날에 있던 흉가 차이 때문인가?

(한때 부여성 흉가의 몹이 고구려 흉가의 몹들보다 잡기 쉬웠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일행은 한참을 걸어 서영이가 다리가 아프다 말할 쯤 부여성 주막에 도착했다.

 

 

부여성 주막은 크기가 읍루성 주막의 2배 정도는 돼 보였다.

 

 

 

"햐, 수도라 그런지 다르긴 하네."

 

 

태환은 빈 탁상에 자리 잡고 국밥 4개를 주문했다.

 

 

"서영이도 한 그릇 다먹을 수 있니?"

 

 

태환이 물어보자 서영이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녁을 다 먹은 일행은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출발하기로 하고 

 

 

방을 두 개 잡아 이른 잠을 청했다.

 

 

 

***********************

 

 

 

한밤 중 태환은 시끄러워진 바깥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태환은 옷을 챙겨 입고 눈을 비비며 밖에 나가 보았다.

 

 

밖에는 십여명이 조금 넘어 보이는 모험가들이 방금 도착 했는지 

주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모험가들은 읍루성에서 온 것인지, 태환에게 낯익은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그중에는 태환과 예진이 구미호로 부터 구해줬던 전사3인조도 있었다. 

 

 

태환은 그들에게 다가가 무슨 일인지를 물었다.

 

 

"이 밤중에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

 

전사들은 은인을 알아보고 인사를 드린 후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난밤 해가 막졌을 무렵, 어찌 성문을 쉽게 돌파한 것인지 모르지만,

 

 읍루성안으로 흑건적이 처들어와 온 성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관아를 점거했다는 것이다. 

 

 

읍루성 관아에는 그날 낮에 도착했던 태자의 군량미 지원부대가 있었다.

 

하지만 태자는 관아에 도착하자마자 홀로 밖으로 나가 초저녁부터 보이지 않았고, 

 

우두머리 없이 관아에 머물던 지원부대는 흑건적에게 맥없이 제압당했다.

 

 

그렇게 쉽게 관아 점령을 끝낸 흑건적 무리는 대장 육병관이 

 

직접 주막에 찾아와 모험가들에게 흑건적 합류를 강요했다.

 

강요를 받은 모험가들 중 부여성비서가 있던 일부는 그대로 탈출했는데 그들이 지금, 이곳 부여성 주막에 도착한 것이다.

 

 

 

 

"주모는 혹시 어떻게 되었나요?"

 

 

이야기를 다 들은 태환이 물었다.

 

 

"주모요? 너무 정신이 없어서 주모가 어딨는지 생각도 못 했습니다."

 

 

태환은 생각했다.

 

'몬가..몬가... 일어나고 있다.'

 

 

 

 

소란스러웠던 새벽이 지나고 아침 일찍 가을뫼 일행은 모였다.

 

 

어젯밤, 다시 잠들지 못했던 태환은 일행들이 일어나길 기다렸다가 지난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혹시 이 일이 그 주모와 관련있을까요?"

 

 

예진이 물었다.

 

 

"모르지... 근데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가을뫼 일행은 더 이상 알아낼 수 없는 읍루성 사건을 뒤로하고 북문으로 향했다.

 

비영사천문을 쓸 수 없는 일행은 한 시간쯤 걸어 북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북문에서 간단한 명패 검사를 마치고 성밖으로 나가 북쪽으로 30분 정도 걸으니 [부여진입로]라고 쓰인 이정표가 보였다.

 

 

 

 

"어디 보자, 신수계로 가려면 여기서 어느 쪽으로..."

 

 

태환이 이정표의 나뉜 화살표들을 살펴보는 그때,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검은색 긴생머리를 하고 화려한 장식이 그려진 검정 소복을 입은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가을뫼님 되십니까?

 

 

여자는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태환에게 물었다.

 

 

"네 제가 가을뫼입니다만..."

 

 

"여기서부터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저는 대모님의 명을 받고 가을뫼님을 모시러 온 현아라고 합니다."

 

 

현아는 고개를 숙이며 일행에게 인사했다.

 

 

"아... 반갑습니다."

 

 

태환의 인사하자 예진과 서유도 함께 인사했다.

 

 

"제가 앞장설터이니 저를 따라오시기 바랍니다."

 

 

현아는 그렇게 말하고 뒤를 돌아 걷기 시작했다.

 

 

태환은 따라가며 서유에게 조용히 물었다.

 

 

 

"서유야 저 여자도 혹시 주작이니?"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알기로는 오직 신수님만 인간으로 의태가 가능한 거로 아는데... 

 저분한테는 인간답지 않은 무언가가 느껴져요..."

 

 

"둘이 무슨 얘기해요?"

 

 

예진이 물었다.

 

 

"아니 저 여자도 주작인가 해서."

 

태환이 예진에게도 작게 속삭이며 말했다.

 

 

 

"그 이름이랑 국적 알아내는 능력으로는 알 수 없어요?"

 

 

예진이 되물었다.

 

 

'아 그래... 상태창'

 

 

[주작] [511] [현아]

 

 

'511????'

"허억."

 

 

"왜요? 왜요?"

 

 

"주작 맞고... 레벨이.. 아니 단수가 511단인데?"

 

예진도 말문이 막힌 표정을 지었다.

 

 

 

한껏 조신해진 일행이 현아를 따라 산길을 걷기 시작한 지 얼마 후, 

 

 

옛스러운 미닫이 문이 달린 커다란 바위 앞에 도착했다.

 

 

 

'뭔 바위에 문이...'

 

 

"아... 저건"

 

 

서유는 문 달린 바위를 보더니 뭔가 아는 눈치였다.

 

 

"저게 혹시 신수계로 가는 문이야?"

 

 

태환이 서유에게 물었다.

 

 

 

"네 고구려 진입로에도 저것과 거의 비슷한 문이 있어요."

 

 

현아는 미닫이 문을 손으로 몇 번 어루어 만지더니 부드럽게 열었다. 

 

 

열린 문 안쪽은 안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새까만 검은색이었다.

 

 

"먼저 들어가시지요. 곧 따라 들어가겠습니다."

 

 

"엇... 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완전한 어둠에 조금 겁이난 태환은 서유를 힐끗쳐다 봤다.

 

 

서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이, 무서워."

 

 

서영이는 서유에게 안기며 말했다.

 

 

'그래... 나도 뭔가 섬뜩한데...'

 

 

 

"저 안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돼요?"

 

예진이 현아에게 물었다.

 

 

"신수계로 나오게 됩니다. 두려워하실 것 없습니다. 

 저 어둠은 그저 문을 가리고 있는 검은 천과 같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태환은 용기를 내어 한걸음 내디뎠다.

 

 

 

 

띠디디디딩 휘이휘이이

 

 

 

 

짧은 꽃바람이 지나가고 태환은 어느새 높은 산꼭대기 위에 있는 커다란 분지 위에 서 있었다.

 

 

사방이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로 가득했고 사이사이의 구름이 영험한 느낌을 더해주고 있었다.

 

 

태환은 넋을 놓고 경관을 바라보았다.

 

 

곧이어 문에서 예진도 나타났다.

 

 

 

"세상에... 어머나"

 

 

예진도 주위를 둘러보더니 태환처럼 눈 앞에 펼쳐진 경관에 압도되었다.

 

 

 

"안녕하십니까. 현아 혼자 모시기에 일행이 많으시단 말씀을 듣고 모시러 왔습니다. '주아'라고 합니다."

 

 

이번에도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모르게 가을뫼 뒤에서 현아와 비슷한 

 

 

차림새를 한 여자가 미소 지으며 자기소개를 전했다.

 

 

 

"엇 네... 안녕하세요."

 

 

잠시 뒤 서유가 서영이를 업은 채 문에서 나오자 뒤를 이어 현아도 도착했다.

 

주아가 현아를 보며 말했다.

 

 

"대모님께서 나도 보내셨어"

 

그러곤 말이 끝남과 동시에 거대한 주작형태로 변하였다.

 

 

 

[현아야 어서 출발하자. 네분 중 두 분은 제 위에 타시지요.]

 

 

주아는 다리를 굽히고 등을 대며 말했다.

 

 

주아의 목소리는 전에 보았던 주작이 그러했듯 머릿속에서 직접 울리는 것 같았다.

 

 

 

"너무 무서울 것 같은데요..."

 

예진이 울상이 된 표정으로 가을뫼를 바라보았다.

 

 

"괜찮을 거야. 내가 잡아줄게. 저... 신발 신었는데 괜찮나요?"

 

태환도 내심 겁이 나지만 최대한 괜찮은 척 물었다.

 

 

 

[하하하 괜찮습니다. 여자분도 걱정 말고 오르시지요. 이곳은 신수계, 신수님께서 직접 보호해주십니다.]

 

 

예진은 태환의 도움을 받아 힘겹게 등에 올랐다.

 

 

반대쪽 서유와 서영은 어느새 주작의 형태로 변한 현아 위에 올라타 있었다. 

 

 

"와아 우와아..."

 

 

겁먹은 이쪽과는 다르게 서영이는 잔뜩 설레 보였다.

 

 

사람들을 다 태운 현아,주아는 높이 날아 남쪽에 있는 커다란 산봉우리로 날아갔다.

 

 

 

 

***

 

 

 

"두 번은 못 올 것 같아요."

 

 

주아의 등에서 내린 예진이 헛구역질 하며 말했다.

 

 

주아는 그 모습에 싱긋 웃어 보이더니 거대한 동굴입구로 일행을 안내했다.

 

 

현아와 주아를 따라 동굴속으로 한참 들어가니,

 

 

태환이 주작누님을 처음 만났던 그 공간이 나왔다.

 

 

동굴 속 널찍한 공간 중앙에는 위에 구멍이 뚫린 것인지 한줄기 빛이 강하게 내리고 있었고,

 

 

그 빛줄기 끝에는 붉은색 소파 위에서 일행쪽을 향해 요염하게 누워 있는 주작누님이 있었다.

 

 

 

 

 

 

 

 

 

'저 소파는 언제 갖다 놓으셨데...'

 

 

"대모님, 손님들을 모셔왔습니다."

 

 

"그래 수고들했어. 이제 목욕이랑 식사준비 알지?"

 

 

"네. 분부대로."

 

 

주아는 미소 지으며, 현아는 다소 표정 없이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주작누님의 아우라는 여전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강한 기운과 따스함이 주작누님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서유는 동생을 무릎 꿇게 앉힌 후 자신도 무릎을 굽히며 주작누님에게 입을 열었다.

 

 

"신수계 현무봉 신선 이문갑 휘하 도사 신서유, 대주작님께 인사 올립니다." 

 

 

"그래그래 문갑이가 제자를 뒀다는 말을 어디서 들어 본 거 같다. 예의가 바르네? 그럼 너는?"

 

 

주작누님이 예진을 향해 물었다.

 

 

화들짝 놀란 예진은 서유처럼 무릎을 굽히며 인사를 올렸다.

 

 

"고구려 7태녀 주술사 고예진 대주작님을 뵈옵니다."

 

 

'7태녀? 그게 뭐시여...'

 

 

주작누님은 예진과 서유를 쓱 흝어보더니 가을뫼를 빤히 쳐다보았다.

 

 

"엇... 오랜만에 뵙네요. 주작누님..."

 

 

옆에서 서유는 대경실색한 표정으로 가을뫼를 쳐다보았다. 여신님께 누님이라니...

 

 

 

"푸하하하 우리 을뫼도 잘 있었니."

 

 

"네. 누님 덕분에... 목걸이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래그래 목걸이 덕에 살았겠지... 난 그때문에... 애휴... 됐다. 

 

 먼 길들 오느라 고생했을 텐데 다들 먼저 몸부터 씻고 밥 먹자.   현아~"

 

 

주작누님이 부르자 현아가 바로 뒤에 있었던 마냥 엄청난 속도로 나타났다.

 

 

 

"저 여자아이들, 탕으로 안내 해 줘. 가을뫼는 날 따라오고."

 

 

"네. 분부하신대로."

 

 

현아가 여자들을 데리고 동굴 안에 있는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주작누님은 가을뫼에게 다가왔다.

 

그러곤 귀에 속삭였다.

 

 

 

"약속 지켰네? 어려웠을 텐데."

 

 

"네?"

 

 

"동정말이야 동정. 저만한 기집애들이랑 같이 다니면서 용케 유지하고 있다고"

 

 

주작누님은 태환이 쑥스러워하자 웃으며 따라 오라는 손짓했다.

 

 

 

'아니 아직 동정인걸 어떻게 아시는 거지... 동정 냄새라도 나나..'

 

태환은 주작누님을 따라가며 생각했다.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고급스러운 동양풍의 넓은 정원이나타났다. 

 

 

그리고 그 정원을 큰 목제 건물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정원이나, 

 

 

건물 양식이 한중일 세 나라가 고루 섞인 느낌이었다.

 

 

한쪽 면이 정원 쪽으로 트여 있는 긴 복도를 걷다가 주작누님이 한 방문 앞에서 멈춰 섰다.

 

 

 

"여기가 오늘 너가 잘 방" 

 

 

그렇게 말하곤 귀에다 대고 한마디 덧붙였다.

 

"어쩌면 우리가 잘 방"

 

 

"허업..."

 

 

"하하하. 여기서 짐풀고 있으면 주아가 갈아입을 가운이랑 수건 준비해가지고 올 거야. 좀 이따 보자"

 

 

주작누님은 가을뫼의 볼을 한번 꼬집고 돌아섰다.

 

 

 

"네. 주작누님... 아니. 어... 여화...누님? 이유도 모르지만... 너무 잘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태환은 주작 뒤에 대고 감사 인사를 말했다.

 

 

주작 여화는 '여화 누님' 이라는 말에 우뚝 멈춰 섰다. 

 

 

그러고는 돌연 돌아서 가을뫼에게 말했다.

 

 

 

"이유가 없는 것 같아?"

 

 

주작 여화는 성큼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댓가 없는 호의는 없단다. 아가"

 

 

여화의 손이 옆부터 스며들어왔다.

 

 

"네 얼굴도 귀여워서 맘에 들지만,

 네 목소리가 제일 꼴려."

 

 

그러더니 귓불을 살짝 깨물었다.

 

 

"헙..."

 

 

태환은 가운데가 단단해짐과 동시에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여화는 그대로 가을뫼를 슬쩍 밀더니 복도에서 방 안으로 함께 넘어지며 들어갔다.

 

 

"누님 말고 누나라고 다시 불러볼래?"

 

 

가을뫼를 덮친채로 여화가 말했다.

 

 

"여화...누나....읍"

 

 

여화는 그대로 가을뫼의 입술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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