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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나라 : 이고갱] 3화. 이 섹시한 여우에게 정기를!

 3화.  이 섹시한 여우에게 정기를!

 

 


 태환의 예상과는 다르게 예진의 존재는 의미가 있었다. 
둘이서 몹을 잡으니 생각보다 속도가 더 붙었던 것이다.
둘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뱀굴 끝굴까지 도달 할 수 있었다. 
도중에 예진이 몇 번 물릴뻔했지만, 그때마다 태환이 뱀들을 잘 처단해 주었고, 
예진도 가을뫼 주변의 뱀들을 우선적으로 처리해주었다.


 끝굴까지 가면서 태환이 한 가지 느낀점은 둘이서 사냥하니 몹들이 좀 더 많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어제 혼자서 사냥할 때는 한굴당 대여섯 마리씩 나오던 뱀들이 둘이서 사냥하자 10마리 정도씩은 나왔다.
그리고 이것도 그룹사냥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끝굴에 도착하자 구렁이,왕구렁이가 둘 다 젠 되어 있었다.
예진은 동동주를 벌컥벌컥 마셔대며(동동주는 마력 회복효과가 있다.) 구렁이에 얼음들을 꽂아대었고
자연스레 태환은 왕구렁이에 화살을 퍼부었다. 
그렇게 끝굴까지 사냥하고 또 뱀굴 1굴까지 역으로 사냥해 오자 둘 다 레벨업을 하였다.


"어라?"
금빛 휘광이 예진의 몸을 타고 올라가며 레벨업 소식을 알리자 예진은 다소 당황스러워 했다.


"그쪽도 레벨업 했네 축하... 아니 어.. 단계가 올랐네 축하해."
방금 전 먼저 22레벨이 되었던 태환은 아무렇지 않게 축하해 주었다.


"신기하네요 저 21단이 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이렇게 빨리 승단하다니..."


"응? 이게 빠른 거야?"


"그럼요. 보통 사람들은 70단이 되기 전까지 1단 오르는데 한 달씩은 걸린다구요. 
 그 후로는 당연히 더 오래 걸리구요. 그런데 전 지금 불과 2일 만에 승단을 했어요."


 음... 혹시 그 갈색도포남이 말했던 경험치 상승효과가 그룹원에게도 적용되는 건가? 
아니 그런데 일반적으로 한 달이 걸려야 1업하는 거면 경험치를 4배 얻는 거라쳐도 레벨업이 너무 빠른 데?... 


흠... 아니지 여기 사람들은 지금 내가 하는 것처럼 딱 적절한 사냥터에서 적절한 몹들을 효율적으로 잡는, 
최단레벨업루트를 모를 테니까 훨씬 느리겠지...


"뭐 레벨 업,, 아니 승단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뭐.


"협동 사냥해서 좀 더 빨리 승단한 건가? 흐음..."
예진은 여전히 의아해했다.


"뭐 그건 생각해 본다고 알 수 없는 거니까 됐고, 오늘 계획한 사냥은 끝냈으니까 이제 정산해 보자."
태환과 예진은 본인들이 수확한 뱀고기들을 늘어놓았다. 


우선 태환은 뱀고기 11개, 좋은 뱀고기 1개.
예진은 뱀고기 6개,좋은 뱀고기 1개


'어라? 좀 이상한데 분명히 저거보단 많이 수확했던 것 같은데'


태환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예진을 쳐다보았다. 
예진은 약간 움찔거리더니 말했다


"뭐... 뭐예요?"
태환이 궁사의 예리한 눈초리로 예진을 쭉 살펴보는데 예진의 오른쪽 골반이 뭔가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태환은 활로 예진의 오른쪽 옆 엉덩이를 툭 쳤다.


"꺄악! 뭐하는 거.."
[툭]
예진의 치마춤에서 뱀고기하나가 툭 떨어졌다.


"이야... 첫 협동사냥에서 밑장빼기를 해?"
"이..이건..."


예진은 얼굴이 시뻘게 지고 눈물이 조금 고이더니 말을 토해내기시작했다.


"제가 사냥하면서 조금 계산을 해봤는데요, 요거 딱 하나만 제 몫에 더하면 
 제 외상을 다 갚고도 오늘 하룻밤 묵을 돈이 나온단 말예요.
 속여서 미안 해요. 흑.. 하지만 6:4는 저에게 너무 가혹했어요.. 아니 그게 오늘 하루 만큼은 가혹했어요.. 
 드디어 빚쟁이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주막을 갈 수 있단 생각에.. 흑흑."


태환은 잔뜩 멸시가 담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동료는 신뢰가 생명인데 이러면 쓰나 응? 내일부터는 우리 각자 사ㄴ.."


"안 돼요!! 이제 드디어.. 돈을 갚고 돈을 모으는 그림이 나왔는데...
 진짜 다신 안 그럴게요. 우리 딱 일주일만 같이 사냥해요. 흑흑.. 사냥해요오."


태환아 정신 차리자 이 여자애가 예쁘더라도 니 여친이 되줄 것도 아냐.
어릴 적 할머니가 그러셨지, 당하는 남자가 되지 말라고.


"응 니 사정~"
태환은 그렇게 말하고 자기 몫의 고기들을 챙기고 비영사천문을 썼다.


'그래 이건 매정한 게 아니야. 이 정글 같은 세상에서 안 당하고 살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해. 특히나 저런 꽃뱀류는..'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 어느새 예진이 비영사천문을 쓰고 따라왔다. 
그리고 푸줏간 가는 길 내내 태환에게 매달리며 애걸했다.


"제가 집을 나온 지 어언 2년.. 흑흑..정말 말도 못 할 고생들을 하며 겨우 이 성에 와서 
 이제야 좀 일이 풀리는 것 같단 말예요... 뱀고기 하나에 그걸 날릴 수 없어요... 흑흑 제발.."
그렇게 온갖 소란을 부리며 걸어가니 주위에서 점점 사람들이 쳐다보기 시작했다.


"야야..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잖아 저리 가."
하지만 그 말을 한 게 실수였다.


"아이고 세상사람들! 여기 이 남자가 뱀고기 하나에 저를 팔아버린데요! 
 함께한 세월은 어쩌고 뱀고기 하나에 여자를 내치나 흑흑흑..."


"야 너! 흐지믈라고.. 야 므쳤어?"


"아이고오~ 아이고"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수군거림이 느껴졌다.


"함께한 세월은 개뿔, 무슨 어제 처음 본 사이인 주제에 야! 아오 잘못은 지가 해 놓고는..."
그러자 예진은 작게 속삭였다.


"일주일만 약속하면 얌전히 있을게요."
태환은 분노와 당혹스러움과, 짜증과, 약간의 연민과 복잡함 감정속에서 우선 이곳은 벗어나기로 했다.


"알겠으니까 일단 푸줏간 가고 얘기하자"


"네엡!"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푸줏간에 가서 돈을 바꾸고 나오니 예진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눈물을 쏙 거두고 있었다.


"야 일단 니가 날 속인건 맞지"
"네.."
"내일부터는 7:3"
"에엑? 그..그건 좀.."
태환은 자신이 지을 수 있는 표정중 최대한 매정한 표정을 지었다. 


예진은 다시 울먹이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 저.. 제가 진짜 할 말이 없어야 되는 건 맞구요.. 벌도 달게 받아야 하지만은.. 
 그 내일만 7:3 하고 그다음날 부터는 다시 6:4하면 안 될까요?"


  ...얘는... 진짜다.. 얘는 ...얘는 진짜야. 잘못 걸렸다... 독사보다 더한 것에 물렸어...
태환은 그렇게 생각하며 대답 없이 주막으로 향했다.


 오전 일찍 사냥해서인지 오후에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래서 오후에는 한가로이 산책이나하며 그동안 테스트 해 보고 싶었던 
마법들을 하나둘 씩 써 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 주막에 돌아오자 예진은 주막 입구 근처에서 태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 낮에 일도 있고 해서.. 오늘은 제가 저녁을 살게요. 괜찮죠?"
후우.. 그래라..그 돈도 결국, 나랑 잡은 뱀고기에서 나온 돈일 텐데...쩝. 
태환은 알겠다 말하며 탁상 앞에 자리를 잡았다.


조금 전 예진은 태환과의 사냥을 마친 후 태환이 산책을 나간 사이에 혼자 뱀굴에 다시 가 보았다. 
자기 승단이 왜 이리 빨랐었는지, 그리고 혹시나 이대로 가을뫼에게 내쳐져도 
뱀굴에서 혼자 사냥이 가능할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3시간 정도 사냥한결과 우선 승단은커녕 승단이 되어 가는 느낌조차 받지 못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예진은 확실히 동료가 필요했다.
안 그래도 돈 아낀다고 회복마법도 제대로 안익힌터라 체력회복수단은 먹는 것밖에 없었다. 
3시간 동안 사냥했음에도 먹고 남은 뱀고기는 고작 하나였다.
그래.. 역시 일단은 그 남자를 잡아야 한다. 나의 다짐을 위해서라도...


 태환은 저녁을 먹고 방에 들어와 잠자리에 누웠다. 아직 이른 저녁이지만 
낮에 사냥하고 오후엔 산책 겸 마법을 써대니 제법 피곤하였다.
방금 저녁 먹으면서 예진이 한 말이 떠올랐다.


'내일은 조금만 천천히 출발하기로 해요. 저는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단 말예요.'
예진이 살짝 어리광 부리듯이 말하는 모습은 참 예뻤다. 
인성만 좀 올바라도 참 더할 나위가 없겠는데...
그래도 이전 세상에서 이성에게 관심 한 번 제대로 못 받아 본 태환은 그런 어리광이 조금 좋았다.
 단, 이성에게 호감을 가졌다가 억하게 차였던 이후로 
태환은 여자들이 잘해 줘도 '이것은 절대로 호감이 아니다.' 라고 다짐하며 거리를 두는 습관이 생겨 버렸다. 
그리고 이전 세계에서는 그 습관이 오히려 여자들과 잘 지내게 해주었기 때문에 그런 습관은 더욱더 굳어져 있었다. 
예진이 제법 예쁘고 조금은 오해 갈 법한 행동을 해도 태환이 매정하게 굴 수 있는 이유였다. 


 그 후 3일 정도 별다른 일 없이 둘은 매일 뱀굴로 사냥을 나갔다.
그 결과 각각 1000전 정도 되는 돈을 모으고 둘 다 레벨도 3이나 올렸다.
예진은 이 경이로운 승단 속도에 정말 어쩔 줄 몰라 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이 속도는 가을뫼와 연관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예진과 똑같이 승단했으며 그 사실을 아무렇지 않아 했다.


예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남자는 천제의 축복을 받은게 틀림없다.' 


 과거에 종종 '천제의 축복'을 받은 이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승단이 무척 빠르거나 말도 안 되는 체력회복력을 지니는 등 도저히 알 수 없는, 유난히 
특출난 힘을 갖고 있었고 그 힘들은 하나로 뭉뚱그려져 '천제의 축복'이라고 칭해졌다. 
그리고 그런 힘을 가진 사람들은 '천제의 축복을 받은 자' 라고 불렸다.
하지만 예진은 그런 자기 생각을 굳이 가을뫼에게 물어 확인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계산이 철저하고 자기 미모에도 흔들리지 않는 남자인데 
이런 것까지 말해주면 더욱더 콧대가 높아질게 분명했다. 
 
 사실 그동안 가을뫼의 그런 도도한 점도 예진에게는 조금 충격이었다. 
보통 자신이 이 정도 어리광을 부리거나 말을 섞어 주면 오히려 상대가 귀찮게 다가와 쳐 내는 게 힘들었는데, 
가을뫼는 일절 그런 게 없었다. 
진짜 이름마냥 산 같이 자신을 대할 뿐이었다. 
가을뫼의 얼굴이 적당히 반반하기는 했어도 엄청난 미남까지는 아니라 생각하고, 
단계가 무지 높은 사람도 아니고 말투를 보면 귀족의 자제 같아 보이지도 않는데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지... 
혹시 저번에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말한 건 거짓이고, 
스스로가 이미 천제의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지 하고있는 게 아닐까? 
예진은 사냥 중 가끔 이런 생각하며 가을뫼를 힐끔 힐끔 보게 되었다. 


 협동 사냥 5일째 되던 날, 두 사람은 낮 사냥을 마치고 주막에 들러 늦은 점심을 먹으려는데
그날따라 주막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두 사람이 주막에 들어서자 원래는 탁상이 놓여 있어야 할 자리에 남자 둘이 뉘여 있었고 
여자 전사 한 명이 그 옆에서 넋을 놓은 채 주모에게 상처를 치료받고 있었다.


"언니..? 이게 무슨 일이래요?"
예진이 조심스레 물었다.


듣자 하니 이들은 3인조 전사 그룹이었는데 여우굴 끝굴에 걸려 있다는 
사각방패가 탐나 셋이서 여우굴 사냥을 갔다고 한다.
다만 그들이 간과한 것은 여우굴 끝굴에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구미호가 돌아왔던 것이다. 


 셋은 끝굴에 들어서자마자 구미호의 환각에 걸렸고 여자전사는 간신히
환각에서 벗어났지만 남자전사들은 환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더니 
둘 중 하나가 먼저 구미호에게 정기를 모조리 뽑혔다. 


여자전사는 자신이 환각에서 깨어난 걸 구미호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누워 있다가, 
두 번째 남자전사 마저 정기가 다 빨려 들어갈 때쯤 틈이 보여 
구미호를 칼로 내리치고 남자 둘을 끌고 끝굴을 뛰쳐나왔다. 
칼로 내리친 그 공격이 별 효과가 없었는지 구미호는 매섭게 따라와 여자전사를 물어뜯었었지만 
여자전사는 어깨를 흔들어 뿌리치고 안간힘을 다해 이전 굴로 향했다.
이들을 데리고 여덟 개나 되는 굴을 지나 비영사천문을 쓸 자신이 없었지만 
눈앞에 동료들을 차마 버릴 수 없어 여자전사는 최선을 다해 앞으로 향했다.
천만다행히도 구미호는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고, 
여자전사는 둘을 데리고 주막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그럼 이 남자들은 어떻게 되는거예요?"
이야기를 다 들은 예진이 주모에게 물었다.


"10년 전쯤에도 이런 일이 있었지.. 이렇게 정기를 다 빨린 남자들은 오래 살지 못하고 수 일내로 죽었으요..."
옆에서 그 얘기를 들은 여자전사는 손에 얼굴을 묻었다.


"그럴 수가... 체력회복을 시켜도 안 되는거예요?"


"10년 전 그 자리에 도사가 있었지만 아무리 체력을 회복시켜도 그대로 였으요.. 다만.."
"다만?"


"그 후로 한 두어달 지나고인가? 
 남정네들 서넛이 여우굴 근처에서 실종 되었는데 한 지존주술사가 그들을 구해 온적이 있었으요.
 구해진 이들이 말하길 지존주술사가 구미호를 잡아 죽이고 자기들이 빼앗긴 정기를 되찾아 주었다데요... 
 헌데 지금, 이 성에서 강한 사람들은 전부 전쟁 때문에 상곡성으로 갔으니 이것 참.."
그 말을 듣자 예진이 태환을 돌아보았다.


"우리가 가죠."


"우리 둘이서? 여긴 3명이 가서도 당하고왔는데?"
태환이 누워 있는 전사들의 상태창을 보자 레벨들이 33,31이었다.
자신과 예진은 각각 27,26 암만 봐도 승산이 없어 보였다.


"저 사람들은 전사라 원거리 공격법이 없어서 불리 했을거예요! 
 우리는 둘 다 원거리니까 괜찮아요. 이 사람들을 죽게 할순 없잖아요!"


얘가 이런 정의감 있는 애였나...   


"난 솔직히 좀 가기그런데..."


"아가씨, 나도 여기 전사양반들이 딱하긴 한데 아가씨까지 변을 당하면 너무 속상할 것 같아, 무리하지 마요. 응?"
잠자코 듣고 있던 주모가 말렸다.


"안 돼요! 방법이 있는데 저들이 죽게 내버려 두었다간, 평생 잠은 다 잔거예요. 가을뫼씨, 전 혼자라도 갈거예요."
예진은 그렇게 말하더니 주막을 뛰쳐나갔다.


'하..미치겠네..'
태환도 결국 따라 뛰쳐나갔다.
정기가 거의 다 빨려 반쯤 혼수상태였던 남자 전사는 따라 나가는 가을뫼를 느꼈는지 있는 힘을 다해 중얼거렸다.
"사....사내..는... 가면... 안..안 돼.."


"이봐! 이봐!"
태환은 예진을 불러세웠다.


"왜요! 겁쟁이처럼 주막에 틀어박혀 있을 거면 가 있어요! 그러다 내가 죽으면 제사나 지내주던가!"


"아오 진짜 말하는 거 하고는! 여우굴이 어딨는지는 알고 가는 거야?"
예진은 가을뫼가 따라올 기미를 보이자 태도를 조금 누그러뜨리고 말했다.


"남동쪽 즈음에 있다는 건 알아요."


"그래 정확한 위치는 모르네. 내가 정확히 아니까 남문에서 만나자고. 
 우리가 약속한 일주일, 아직 안 지났잖아. 같이 사냥해야지."


그 말을 듣자 예진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알았어요."
[비영사천문]을 쓰고 남문에서 예진을 다시 만난 태환은 지도를 켜서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고 여우굴로 향했다.
여우들은 과연 뱀들보다 훨씬 강했다. 
뱀들과 달리 여우들은 태환의 공격을 두 번 맞아야 죽었고 예진의 공격은 3번맞아야 죽었다.


'그래도 꽤 비싼 모피를 주고 경험치도 잘 주는 것 같은데 앞으로는 여기서 사냥할까?' 
28렙이 된 태환은 모피를 주우며 생각했다.


"저 혹시 동동주 좀 싸온 거 있어요?"
연신 자무영주를 퍼부어대던 예진이 마력이 좀 부족해졌는지 태환에게 물었다.


"잠깐만 내가 아마 여분으로 사논게 있을 거야."
태환은 소지품 보따리를 풀어 동동주를 예진에게 건네 주었다.
예진은 동동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더니 말했다.


"아까 8이라는 푯말이 있었으니까 이제 저 돌만 지나가면 끝굴일거예요."


"그래.. 아까 들어 보니까 환각을 건다는데, 우리 둘 다 제법 사거리가 기니까 보자마자 공격 마법을 때려 붓자.
 내가 눈이 더 좋으니까 먼저 들어갈게."
태환이 말했다.  
예진은 술기운인지 얼굴이 조금 상기된 채로 입을 열었다.


"같이 와줘서 고마워요..."
".......이 타이밍에 무슨 그런 플래그성 짙은 말을 하냐.."


"네? 뭐라고 한거예요? 가을뫼씨는 가끔 못 알아듣게 말을 한다니까."


"에휴, 아냐, 일단 들어가자마자 입구에서 최선을 다하자 내가볼 땐 선제공격이 제일 중요해."


"네 알겠어요. 후우 자 출발하죠!"
예진은 다짐한 듯 크게 한숨 내쉬며 말했다.
태환도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아무렇지 않게 왔지만 막상 끝굴에 들어가려하니, 
아까 보았던 남자 전사들이 생각나 마음이 불안해졌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사람을 그런 혼수상태에 빠트리는 거야?'
이윽고 들어선 마지막 굴은 이전 굴들과 다르게 돌무더기나 다른 장애물들 없이 평평한 동굴의 모습이었다.
단지 천장에 구멍이 적어서 내리는 빛이 적고 옅은 안개가 끼어 있어 시야가 끝까지 뻗지 못했다. 


[호혈심구혹]!
태환의 눈에 옅은 안개 사이로 멀리 여성이 하나 흐릿하게 보였다.


 여자...? 아냐... 풍만한 미드, 믿을 수 없이 잘록한 허리, 다시 큰 곡선을 그리는 골반... 여신이다.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신은 어느새 눈앞에 다가왔다. 
은빛 눈동자에, 은빛 머릿결, 세상 누구와도 비길 수 없는 몸매..
달콤한 향, 아 천국이다... 천사다...


"우리 같이 홀려볼래요?"
꿀이 떨어질 듯한목소리로 눈앞의 존재가 말했다.


"...네 ... 네 홀려주세요"
여자는 태환의 앞섬을 벗기고 태환 가슴에 손을 얻더니 스르륵 만지며 손길이 점차 아래를 향했다.


"으윽"
태환은 조금 지린 것 같았다. ... 좀만 더...


![자영무주'첨]!!!
동굴 천장에서 태환과 꼬리 아홉달린 여자에게 날카로운 얼음무더기가 쏟아졌다.
여자는 꼬리에 상처를 입고 민첩하게 뒤로 물러났다.
태환은 어깨에 고드름이 박히고는 너무 아파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이 바보 멍청이, 똥멍청이! 정신 차려요!! 뭐하는 거예요! 홀려주긴 뭘 홀려 줘!"
예진이 고함을 질렀다. 
태환이 정신 차리고보니 안개는 걷혀 있었고 멀리 꼬리 아홉달린 여우가 꼬리에 피를 흘린 채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아니 분명히 개지리는 여신이었는데... 어우 이게 말로만 듣던 환각인가.


"아야야.. 정신 차렸어. 근데 정신 차리라는거치고는 너무 공격이 쎈거아냐? 머리에 맞았으면 죽었겠는데?"


"몰라요! 일단 공격이나 퍼부어욧!"
그래 다시 환각에 빠지면 다음은 없을지도 모른다. 
뭐랄까 저 유혹은 견뎌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고자가 아니고서야...
구미호의 위로 얼음무더기가 쏟아지고 가을뫼의 화살이 연이어 몸에 박히자 구미호는 울부짖으며 달려들었다.
태환은 얼음이 박혔던 어깨가 찢어질 것같이 아팠지만 
눈앞에 달려드는 적이 있어 온 힘을 다해 참고 화살을 쏘아 댔다.


구미호는 예진의 코앞까지 와서야 겨우 쓰러졌다. 
예진은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았다. 그러더니 울음을 터트렸다.


"이 바보.. 그대로.. 그대로.. 그 남자들처럼 되는 줄 알고 흑...흑..."
태환은 머쓱해져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때 오랜만에 메시지가 스쳤다.


[띠링 - 구미호를 잡았다. 수확용 칼로 건질 것을 확인해보자]
태환이 죽은 구미호에게 다가가 수확용 칼로 배를 여니 구미호 시체는 스르륵 사라지고 '구미호의 정기'라는 것이 나왔다.
뭔가 빛도 액체도,연기도 아닌 것이 오묘하게 손으로 들 수 있었다. 
감촉은 꼭 연기를 가득 잡은 듯한 느낌이었는데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자 이걸 돌려주면 되는 거 같은데, 주막으로 돌아가자 이제."


 다친어깨를 부여잡고 예진과 함께 주막으로 돌아가니 어디서 온 것인지 도사가 전사들을 돌봐주고 있었다.
우리가 성공했다며 구미호의 정기를 건네자, 도사는 반색하며 받아 들고는 
정기를 풀어헤쳐 뉘여 있는 두 명의 전사들에게 주입했다.
남자 전사들이 서서히 의식을 되찾자 그들을 데려왔던 여자전사는 엉엉울며 기뻐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남자전사 둘은 각각 여자전사의 친오빠와 약혼자였다.


그날 밤, 주막에서는 작은 잔치가 열렸다. 
전사들의 회복과, 가을뫼와 예진의 성공적인 귀환을 축하하는 술판이 벌어진 것이었다.


여자전사는 거듭 감사를 표하며 그날 밤 술값을 전부 치렀고 주모도 기분이 좋은지 덤을 팍팍 챙겨 주었다.


늦은밤, 잔치가 끝나고 태환은 얼큰하게 취해 자기 방에 들어가 겉옷만 대충 풀어 헤치고 곧장 잠에 빠졌다.


따뜻했다.
태환은 아담하지만 옛스럽고 고풍스러운 방에 앉아 있는 자신은 발견했다.
'응? 나는 분명...'
『드르륵』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리더니 붉은아우라를 잔뜩 뿜으며 가을뫼의 신수, 주작이 인간의 형태로 방에 들어왔다.


"주작님?"
"안녕. 내가 만나러 갈 거라고 했지?"
"엇. 네 안녕하세요. 근데... 여긴 어딘가요?"


태환은 자신이 분명 주막의 방에서 잠들었던 것을 떠올리며 물었다.


"음. 이곳은 나만의 공간이랄까. 내면의 세계? 뭐 그런 곳이지. 너가 깊게 잠든 사이에 네 의식을 잠시 불러왔어."
주작은 태환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네... 혹시 무슨 연유로 절.. 엇?"
분명 맞은편에 앉아 있던 주작이 어느새 태환의 옆에서 팔을 감싸고 있었다.


"이유야 많은데 간추려서 얘기해주면 우선..."
주작이 태환의 가슴팍을 검지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그러자 태환은 주작이 두드린 곳에 무언가 생겨나는 것을 느꼈다.
자세히 보니 자신의 목에 목걸이가 새롭게 채워져 있었다.


"내가 조만간 휴가를 가거든? 그동안에는 특별 대우를 못 해줄 것 같아서 요걸 하나 주고 갈 거야."


"이게 뭔데요?"


"일회성 내 대타랄까... 널 지켜 줄 방어구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되."


"네... 그런데 주작님도 휴가를 가요?"


"그럼~ 너 우리 집 와봤잖니. 그런 고리타분한 곳에서 수천 년을 살아간다고 생각해 봐 얼마나 지루해
 우리도 짧게는 몇 주에서 길게는 백 년도 넘게 휴가를 다녀온단다."
허허.. 스케일이 다르시네.


"혹시 어디로 가시는지 여쭤봐도 돼요?"


"음... 우리는 보통 다른 세계로 휴가를 가. 지금까지 거의 모든 이계는 다가 봤는데 마계는 아직 안가 봐서 
 이참에 짧게 한번 맛 좀 보고 오려구."
말을 마치더니 주작은 한층 더 몸을 밀접하게 붙이고 태환의 귀에 속삭였다.


"그리고 난 너가 동정인걸 알 거든. 신수들 사이에서 내 별명이 뭔 줄 알아?"
"뭐..뭔..뭔데요?"


"초보자사냥꾼"
주작은 태환의 귀를 살짝 깨물었다.


"흐익!"


"꺄하하하 역시 귀여워~ 애기라 그런가 귀엽네 귀여워."
주작은 여전히 태환과 팔짱낀 채로 말을 이어갔다.


"나를 신수로 받드는 사람들은 현무를 신수로 두고 있는 사람들을 끌어 당기는 힘이 있어."


주작은 말하면서 태환을 스르륵 자기 무릎 위에 눞히려 했다. 
태환은 자기도 모르게 버텼지만 주작의 손힘에 결국 순응하고 무릎 위에 머리를 베고 누웠다.


"네?"


"사람은 본디 흙과 물을 섞어 거기에 열기와 영혼을 불어 만든 생명이야. 공허와 차가움과는 상극이지.
 그런데 현무를 신수로 두면 자기 중심에 '차가움'을 두는 것이거든. 당연히 그렇게 된 인간들은 따스함을
 갈구하게 될 수밖에 없어.. 근데 너도 날 만날 때마다 느끼지?  따스한 열기. 그건 내 권능이거든.
 그래서 현무를 신수로 둔 사람과 나를 받드는 사람들끼리 만난 커플이 많아.  
 내가 지금, 이 이야기를 왜 해주는지 아니?"


주작은 태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모..모르겠는데요."
태환은 구미호를 마주쳤을 때처럼 조금 지린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꿈속에서 널 앙~ 하고 먹으려 해봤자. 현실에서 재미는 딴년이 볼 것 같아서 그렇거든."
"네?"


"걔가 지금 니 옆에 달라붙어 있는 이유는 고런 거니까 한눈팔지 말라구. 
 적어도 내가 휴가 다녀올 때까지는 동정, 꼭 지키고 있어야 한다~ 
 안 그럼 이런 특별 대우들은 없을 줄 알아."


"무슨 말씀이신..."


"일어나서 옆을 봐바."


『벌떡』
태환은 주작의 마지막 속삭임과 함께 현실에서 벌떡 일어났다.
『툭』
옆에서 무언가 자신과 붙어 있던 것이 떨어져 구르는 것이 느껴졌다. 예진이었다.
예진은 머리를 부여잡고 부스스 일어났다.


"꺄아아아아아악!!"
예진은 태환을 보더니 비명을 질러 댔다. 그러곤 벌떡 일어서더니 태환과 멀찌감치 떨어져 벽에 붙었다.


"무..무슨 짓을 한거예요! 설마 잠자는 사이에 덮친 거예요? 이런 짐승 같은 인간!! 그렇게는 안봤는데!!"
태환도 이제막 꿈에서 깬 상태라 아직 분간이 잘 안 갔지만 예진이 붙어 있는 벽옆 가구들의 배치와
자기 활이 벽에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는 이곳이 자기 방이라는걸 확신했다.


"하.. 넌 정말 익숙해질 법하면 한 번씩 사람을 미친놈 만드는구나. 
 자 잘 봐? 여기 내방이야! 뭔 개뼛따구 같은 소릴 하고 있어."
그제야 예진은 자기 주변을 살피더니 얼굴색이 점점 붉어져갔다.


"뭐예요! 그럼 내가 지금 그쪽 방에 몰래 들어왔다는 거예요?"
"지금 어젯밤 일을 진술하는 거지? 나도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거든? 좀 자세히 설명해 줄래?"
예진은 머리를 부여잡더니 기억을 열심히 되돌려 보는 듯했다.


"아냐...아냐 아냐 그럴 리 없어. 내가 이런 실수를 할 리가 없지. 응큼한 사람! 날 어떻게 한 건진 모르겠지만
 나 오늘 밤은 안전하게 주모언니랑 잘거예요! 흥!" 
 
그렇게 말하고는 예진은 문을 열고 방을 뛰쳐나갔다.
태환은 멍하니 예진 나간 곳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사람 빡치게 하는 게 재주라면 저년은 월드베스트 세 손가락 안에 들거라고.


"끼아아아아아아악!"
아까와는 다른 훨씬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태환은 순간적으로 이것이 심상치 않은 비명이라는 것을 느끼고 방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소리가 난 것으로 추정 되는 곳으로 무작정 뛰어갔다.
주막의 가장 안쪽 방에서 떠듬 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복도를 꺾어 방문이 보이는 곳에 도착하자 멀리 주저앉은 예진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 아냐...안 돼..."
예진의 겁먹은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
태환은 있는 힘을 다해 뛰어갔다.
예진 너머로 검은 신영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것이 보이더니 이내 창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태환이 방에 도착하자 예진은 주저앉은채로 있었고 안쪽엔 주모가 누워 있었다. 
그리고 반대쪽 벽면엔 침입자가 부수고 도망친 것으로 보이는 창문이 있었다.
태환은 재빨리 창문밖을 내다 보았다. 어느새 거리가 멀어진 검은 도복의 사람이 담을 넘고 있었다.


'제발 이 거리에서도 닿기를! 상태창!' 


[도적] [99] [팽경지] [고구려]


'지존도적?'
태환은 우선 쫓아가는 것은 포기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예진은 반쯤 얼이 나간 채로 울고 있었고, 주모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태환은 주모를 흔들어 깨웠다.


"주모..주모?"
하지만 주모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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