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단편 소설 - 고문

3월의 밤은 추웠다. 자정이 조금 늦은 시간 그는 회사를 나섰다. 회사의 중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때라 종종 늦게 까지 일을 하고 퇴근했다. 건물들의 불은 다 꺼지고 띄엄띄엄 있는 가로등 몇 개만 빛을 내는 거리의 버스 정류장에서 그는 택시를 기다린다. 팔짱을 끼고 코트로 몸을 최대한 감쌓지만 추위는 막을 수 없었다. 3월의 날씨는 그의 예상보다 훨씬 추웠다. 저 멀리서 택시 한 대가 쌍라이트를 키며 속도를 줄였다. 그는 택시를 타기 위해서 정류장 앞으로 나아갔다.

--동 파리바게트요.

하얀 장갑을 낀 기사는 아무 말 없이 운전을 시작했다. 피곤한 그는 창문에 머리를 살짝 기댔다. 뼈까지 얼었던 몸을 녹여주는 따뜻한 히터 바람과 창문을 타고 느껴지는 엔진의 무거운 진동은 머릿속에 가득했던 프로젝트에 대한 압박감을 덜어줬다. 긴장이 풀린 그는 자연스레 눈을 감았고 그대로 잠에 들었다.

그는 눈을 떴다. 얼마나 잔 지 알 수 없었지만 꽤 오래 잠든 기분이었다. 잠시 멍한 눈으로 창밖을 둘러봤다. 막 잠에서 깨어난 그는 야밤의 풍경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이상함을 느낀 그는 기사에게 말했다.

기사님 이거 --동으로 가는 거 맞죠?

기사는 고개만 살짝 돌렸다.

거의 다 왔습니다.

기사의 짧은 단답에 그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도대체 어디에 다 왔다는 건가? 애초에 내가 말했던 장소를 기억하고는 있는 걸까? 이 택시는 어딜 향해 가고 있는 걸까? 의문이 참을 수 없을만큼 커져 기사에게 항의하려던 순간에 택시가 멈췄다.

그는 기사를 쳐다봤다. 기사는 핸들을 잡고 앞만 보고 있었다. 백미러로 기사의 얼굴이 보였지만 선글라스에 가려진 눈은 무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기사를 내버려두고 창밖을 둘러보았다. 양 옆으로 줄서 있는 나무들만 보였다. 가지만 앙상한 나무들은 스산했다.  곧바로 그 풍경을 가리는 어두운 두 물체가 나타더니 문이 열렸다. 놀란 그는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한 사내가 그의 팔을 잡고 차에 끌어낸 뒤 흙바닥에 던졌다. 그는 몸을 일으키려했다. 사내는 일어나려는 몸으로 눌렀다. 사내는 한 다리로 그의 두 다리를 제압하고 그의 두 팔을 등으로 넘겨 움직일 수 없게 구속했다. 그리고 다른 사내는 미리 준비해둔 복면을 그의 머리에 씌었고 포승줄로 능숙하게 두 손을 묶었다.    

그는 걸었다. 몸이 묶이고 복면이 씌어진 상태로 산 길을 걷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숨은 거칠어지고 축축해진 복면은 얼굴로 달라붙었다. 산의 매서운 바람은 복면을 무시하고 그대로 얼굴을 강타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그는 침착하려고 노력했다. 기회만 엿보면 이 상황에서 금방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벗어나지 못해도 어떻게든 자신에게 유리하게 상황을 풀 수 있을 거 같았다. 건물에 들어오고 계단을 걸었다. 나선형의 계단을 그들은 천천히 걸었다. 끝 없이 도는 계단에 그는 올라가고 있는 건지 아니면 내려가고 있는 건지조차 알 수 없었다. 구두를 신은 그와 사내들의 발소리가 건물 전체에서 울렸다. 그는 그제서야 꼼짝없이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게 잡혔다는 것을 깨달았다. 

계단에서 벗어나 세 명은 복도로 들어섰다. 양 옆으로 지그재그로 있는 무수히 많은 방 중에서 빈 방에 그는 던져졌다. 방의 문이 닫히고 발길질이 시작되었다. 그는 몸을 웅크렸다. 묶인 두 손으로 최대한 머리를 가리기 위해 애썼다. 흠씬 두들겨 맞은 그를 두 명의 사내가 의자에 앉혔다. 한 사내가 복면을 벗겼다. 그는 거칠게 숨을 쉬었다. 호흡이 잦아들고 그는 주변을 파악했다. 5평 남짓한 크기에 창이 없었다. 작은 전등이 힘겹게 빛을 냈다. 방에서는 기분 나쁜 지린내가 났다. 그의 맞은편에는 단발 머리를 한 덩치 큰 사내가 앉아있었고 그의 앞에는 하얀 종이 한장이 놓여있었다. 덩치 큰 사내는 자신의 품 안에서 펜을 하나 꺼내 그를 향해 툭 던졌다. 펜은 책상 위를 굴러가다 그의 앞에서 멈췄다. 그는 흰 종이에서 자연스레 덩치 큰 사내로 시야를 돌렸다. 덩치 큰 사내는 두 팔꿈치를 책상에 올리고 허리를 앞으로 뺀 채로 앉아있었다. 그거외에는 별 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상당히 거만하고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그는 다시 종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게 뭡니까? 

그는 애써 담담한 척 말했다. 그러나 떨리는 작은 목소리와 주기적으로 경련을 일으키는 오른쪽 허벅지는 그저 그가 겁에 질려있고 안타깝게 보이게 했다. 그러나 덩치 큰 사내는 신경 쓰지 않았다.

선생님이 아시는 걸 전부 적으시면 됩니다. 선생님도 예상 했겠지만 저희는 경찰입니다. 선생님이 한 행동에 대해 저희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습니다. 그냥 솔직하게 전부 적으시면 됩니다. 그게 저희한테나 선생님한테나 편한 길일 테니까요.

그는 생각했다. 어떤 말이라도 해서 이 일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리고 자신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상대에게 알려야했다..

경찰이면 이런 식이라도 괜찮다는 겁니까? 저는 일단 범죄자이기 전에 시민이란 말입니다. 당신과 똑같은 시민이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겁니까? 게다가 그... 체포 당하기전 권리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는 최대한 가다듬어 또박또박 말했다. 그가 말을 하고나서 3초정도 정적이 흘렀는데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얻는 게 더 많았을 거라고 한편으로는 후회했다.

선생님 피차 피곤하게 그러지 마십다. 그냥 적으세요. 그리고 미란다의 원칙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거 같은데. 체포 전에 제대로 고지했습니다. 그렇지? 하고 덩치 큰 사내는 그를 연행한 한 사내에게 고개짓을 했다. 그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걸 안 알렸다 한들 뭐가 달라지기는 합니까? 저희에게는 이미 모든 증거와 진술이 있고 선생님의 죄질을 상당히 나쁩니다. 선생님 같은 사람들이 이미 여기를 많이 거처 갔습니다. 그리고 모두 적절한 처벌을 받았습니다. 저희 조사에 순순히 응하시는 것이 형량을 줄일 길입니다. 선생님 보다 더 한 사람도 우리에게 협조 해서 형식상의 처벌만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특히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처벌에 더 민감하지 않습니까? 이정도면 제대로 알아 들었을거라 생각합니다. 빨리 시작합니다. 

떨리는 손으로 그는 펜을 잡았다. 펜을 잡고 손을 떨던 그는 아무것도 적지 않고 펜을 다시 내려 놓았다. 약간의 정적이 흘렀고 그는 다시 펜을 잡았다. 종이에 펜을 가져다 댔지만 아무것도 적지 않고 그대로 펜을 내려 놓았다.

전 진짜 아는 게 없습니다. 그만 내보내주세요. 그럼 조용히 있겠습니다.

덩치 큰 사내는 불쾌한지 미간을 찌푸렸다. 

참 사람 피곤하게 하네.

그는 다시 고개짓을 했다. 양옆에 있던 사내들은 의자를 발로 찼다. 무방비 상태였던 그는 무기력하게 넘어졌다. 넘어진 그를 향해 다시 발길질이 시작됐다. 그는 다시 몸을 웅크리고 묶인 손으로 머리를 가리려고 했다. 그때 깡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손목에 깨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야 이 새끼들아!

덩치 큰 사내가 소리를 지르자 폭행이 멈췄다. 

머리는 때리지마. 

다시 폭행이 시작됐다. 그는 비명을 지르고 몸을 떨었다. 10분정도 지나자 그는 조용해졌다. 폭행은 다시 멈췄다. 덩치 큰 사내가 그의 곁으로 다가와 쭈그려 앉아 상태를 살폈다. 그는 정신을 잃었다. 덩치 큰 사내는 손짓을 하고 일어서서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한 사내가 양동이를 가져와 그에게 뿌렸다. 그는 숨이 끊어질듯이 기침을 했다. 정신이 든 그를 다시 의자에 앉혔다. 

쉽게 갑시다. 쉽게. 저희야 상관 없지만 선생님은 이 밤에 좀 쉬셔야하지 않습니까?

그는 떨리는 손으로 펜을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써내려갔다.

덩치큰 사내는 탁자위에 쭉핀 다리를 올리고는 그가 써내린 종이를 쭉 읽었다. 

다 좋네. 다 좋은데. 중요한게 빠졌네. 어차피 다 알고 있습니다. 그냥 쓰세요, 솔직하게. 이름들 몇 자 적는 게 어려운 일입니까. 

덩치 큰 사내는 일어서서 그의 옆으로 갔다. 그의 앞에 그가 쓴 종이를 내려 놓고 축 처진 그의 오른손을 직접 책상으로 올려서 펜을 잡아줬다. 그는 절대 쓸 수 없었다. 이미 모든 것을 적었지만 어린 동지들의 이름은 절대 적을 수 없었다. 그러자 통증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숨을 쉴 때마다 갈비뼈가 아팠고 허벅지 근육은 감전이라도 된 것 마냥 저렸다. 몸은 그에게 머리와 다른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적지 않으면 다시 무자비한 구타가 시작될 것 알았다. 그러나 그는 도저히 이름들을 적을 수 없었다. 

그의 앞에 놓인 종이에 커다란 물자국이 한 방울 찍혔다. 또 찍혔다. 그는 울었다.

정말… 정말로 모르겠습니다. 기억이 안나요.

최대한 참으려했던 울음이 결국 터져나왔다. 그는 종이가 다 젖을 정도로 울었다. 

정말… 모르겠습니다. 정말 모르겠어요.

그는 같은 말을 계속 했다. 이 방에 들어와서 가장 목소리가 컸다. 그러나 울음 섞인 목소리는 그 방 누구도 쉽게 알아듣지 못했다. 덩치큰 사내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야 준비해라.

물 속에 잠긴 얼굴의 모든 구멍으로 물이 들어왔다. 그는 몸부림쳤지만 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미 셀 수 없을 만큼 반복된 행동이지만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는 그 행위에서 매 순간 마다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이번에도 그의 몸에 반응이 줄어들자. 사내는 쥐고 있던 그의 머리를 물에서 건져 올렸다. 물이 들어갔던 구멍에서는 그대로 물이 흘려내렸고 그의 목구멍으로 숨이 거칠게 들어갔다.

김--, 김--, 박 --, 이--. 어? 어차피 다 알고 있다고 그냥 종이에 쓰라고! 종이에 어! 이게 어려워? 

덩치 큰 사내는 화를 냈다.

그는 이미 반쯤 정신 나간 상태였다.

죄송합니다. 살려주세요.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는 그 말만 반복할뿐이었다.

하... 시발… 

덩치 큰 사내는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를 연행한 두 사내는 그를 지켜봤고 그는 몸을 떨며 불안정한 호흡을 계속했다. 10분 정도 지나자 덩치 큰 사내가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선생님. 일단 집에 보내드릴게요. 이 진술서로 재판 진행될 겁니다. 그리고 필요하면 선생님을 다시 부를 수도 있습니다.

다시 두 사내는 그에게 복면을 씌었고 차에 태웠다. 차는 그의 집 앞에서 멈췄다. 그들은 차에서 그를 내렸다. 해는 이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정신 없는 상태지만 본능적으로 태양을 향해 고개를 올렸다. 따뜻한 태양빛이 느껴졌다. 두 사내는 그를 부축해 그가 사는 원룸 건물로 들어갔다. 마치 자기 집인듯이 현관에서 비밀번호를 입력해서 건물로 들어갔다. 그의 방 앞에 멈춰서 도어락까지 열고 그를 침대에 눕히고 나왔다. 그는 침대에서 잠들었다.

얌마 너 연락도 안되고 지금까지 뭐하다… 

그가 출근하자. 피곤에 찌든 사람들 속에서  그의 상사 안대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화를 냈다. 안은 성치 못한 그의 얼굴을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일에 있어서…

안은 그의 사수로 둘은 사적으로 만나거나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꽤나 각별한 사이였다. 그는 안이 자신을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안 역시도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현 정부를 싫어했고 종종 강한 어조로 비판했었다. 시위대에 대한 뉴스를 볼 때도 몇 년만 젊었어도 시위대에 참여 했을 거라고 자주 이야기했었다. 그런 그로부터 어쩌면 괜찮은 조언을 얻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일단 일해. 얘기는 이따하자. 밀린 일이 많아.

힘이 잔뜩 들어갔던 안의 말은 이제 어쩐지 슬프게도 들렸다. 그는 자리에 앉아서 평소처럼 일을 시작했다. 

수사 후 긴잠에서 깨어난 그는 일단 이 사실을 알리고자 조직의 채팅방으로 들어갔다. 이미 채팅방은 난리가 난 상태였다. 수백개의 메시지를 하나하나 읽으면서 깨달았다. 이미 조직은 끝났다. 주요 인물들은 대부분 체포된 상태였고 자신과 같이 기여도가 낮은 인물들만 체포를 당했다 풀려난 상태였다. 전부 끝났다. 지금까지 이 모든 게 무슨 의미가 있던 걸까. 생각하던 찰나에 그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이 왔다. 혜연이라는 이름으로 온 메시지는 그를 찾고 있었다. 그는 혜연이라는 인물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일단은 메시지에 응답했다. 

안녕하세요. 저희 ㄱ역 앞에 식당에서 **오빠랑 같이 밥 먹었는데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지금 상황이 많이 안 좋아요. 활동하던 사람들 대부분이 체포 당했고 저희도 감시 당하고 있는 거 같고 안에 배신자도 있는 거 같아요. 아저씨는 괜찮으시죠? 

아무튼 본론을 이야기하자면 지금 조직 운영하는 간부들도 다 잡혀가고 조직 내부에 배신자도 있어서 정상적인 운영이 안되요. 그래서 새롭게 조직을 개편 중이에요. 저희가 다 감시중에 있어서 아마 이번 일이 마지막 일이 될 거 같아요. 저희는 지금 한 명 한 명의 도움이 간절하고 아저씨가 많은 지원을 해줬던 걸로 기억해서 글 남겨요. 관심 있으시다면 답장 남겨 주세요.

글을 읽으면서 혜연을 기억해냈다. 작년 봄, 조직의 재정을 담당하던 **이 자기 일을 도와줄 거라며 데려 온 친구였다. 갓 대학에 입학 했다는 혜연의 첫 인상은 그저 어린 애였다. 그런 어린 애가 도움을 도청하는데 그는 선뜻 도움에 응할 수 없었다. 아직 온 몸에 그 날의 흔적이 남아있었고 욱씬 거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미 체포가 된 상태이고 경찰들에게 감시를 당하고 있는 상태에 다시 운동 조직에 들어간다면 그건 그거대로 폐가 될 것 같았다. 그는 혜연에게 답장을 했다.

제안은 고맙지만 나는 이미 체포를 한 번 당했다 풀려난 상태이고 감시를 당하고 있다. 그러니 내 참여는 폐가 될 것이다.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 응원하겠다. 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는 스스로에게 혐오감이 들었다. 그는 어플을 지웠다. 어차피 조직 일 말고는 사용하지 않는 어플이었다. 그리고 다른 메시지 어플을 켰다. 그 어플에도 수백개의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회사 업무에 대한 메시지였다. 일반인이 보면 이해하지 못한 전문 지식이 난무 하는 메시지들을 보면서 그는 작게나마 솟아오르는 의욕을 느꼈다. 

누군가 그의 어깨를 쳤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안이었다. 그는 군말 없이 안을 따라갔다. 그는 안의 뒤에서 걸어갔다. 안이 걷는 길은 옥상을 가는 길이었다. 둘은 종종 옥상에 갔기에 익숙한 동행이었지만 지금 그는 심리적으로 압박 받고 있었다. 재판장에 끌려갈 때도 이런 기분일까 그는 생각했다.

옥상에는 파고라와 그 옆에 바로 등받이가 없는 벤치 세 개가 붙어있었다. 회사 흡연자들은 그곳에서 담배를 피웠다. 둘이 옥상에 도착했을 때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다들 그가 당한 모든 일을 알고있다는 듯이 눈을 흘겼다. 둘은 그 흡연장에서 좀 떨어진 난간으로 갔다.

안은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난 뒤에 그에게도 하나 권했다. 그는 담배를 안폈으므로 당연하게 거절했다. 안은 미련없이 다시 담배를 갑에 넣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그런 안의 행동을 보며 담배를 거절한 것을 후회했다.

안은 나간 쪽에 서서 담배를 피었고 그는 난간에 팔짱을 올리고 하늘을 쳐다봤다. 푸른 하늘은 그를 진정시켰다.

너 설마 경찰한테 끌려갔었냐?

네.

그럼 너도 쟤네처럼 시위했던 거고. 

안의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그는 안을 따라서 밑을 바라봤다. 밑에서는 대규모의 인파가 시위를 하고 그에 맞먹는 수의 경찰들이 진압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소리가 들렸다. 고무총을 쏘는 소리, 최류탄이 터지는 소리, 시위대의 목소리 등등 그 수많은 소리들이 그가 봐서야 들렸다. 이제야 그 광경을 알아챈 그는 놀랐다. 

니가 쟤네처럼 어린 것도 아니고 어깨가 가벼운 것도 아니고 대체 왜 그랬냐.

시위의 목소리와는 대비되게 안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경찰들에게 무참비 깨지는 시위대를 둘러싼 빌딩은 모두 침묵했다.

해야하는 일이잖아요. 누군가는. 누군가는 해야되잖아요.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니까 그 일을 왜 니가 하냐고. 니가 쟤네랑 같아? 쟤넨 대학생들이야. 나도 대학생 시설이면 당연히 저기 있지. 근데 그게 지금 우리 입장에서 가능한 일이야? 당장 지금 프로젝트만 봐. 너 고작 이틀 없었는데 밀린 일을 보라고. 철 없이 왜 그러냐.

시위는 격렬해졌다. 저항하던 시위대의 소리는 작아지고 전경을 지휘하는 소리와 휘슬소리가 거리에 차기 시작했다.

말도 안되는 정부의 짓거리에 모두가 화를 냈었죠. 모두가 인터넷은 말할 것도 없고 길거리 어느 음식점을 들어가 앉아있어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요. 세상이 달라질 거라 생각했어요. 모두가 분노하고 이 일이 금방 끝날 거라고 생각했죠. 근데 그렇게 됐나요? 길거리로 아무도 나오지 않았죠. 비판 하던 정치인들은 표를 얻어 전 정부와 똑같은 짓거리를 하고 사람들은 욕하기 바빴잖아요. 아무도 일어서지 않을 때, 유일하게 길거리로 나온 게 쟤네들입니다. 많아봤자. 스물다섯,스물여섯인 쟤네라고요. 누군가 해야할 일을 아무도 하지 않아, 결국 나선게 쟤네라고요. 이게 말이 되요? 투표 잘못해서, 병신 같은 정부가 나서도록 둔 우리는 빌딩에 숨어서 자기 직업, 돈 지키기 바쁠 때 길거리로 나온 게 쟤네라고요. 막 대학에 입학한 애들, 군대 전역하고 나온 애들, 이제 취업전선에 뛰어들 애들, 이 정부에 아무 책임 없는 애들이 나섰다고요. 나라를 망친 사람들은 뒤에 숨어서 자기들한테는 책임 없다고 떠들어 재낄 때 책임 지겠다고 길거리로 나온 사람들은 정작 아무 책임 없는 쟤네라고요. 그럼 응원이라고 해줘야하는 게 맞는 거아니에요? 또 뒤에 숨어서 아무 일 없는 척 하라고요? 바로 아래 길거리에서는 이 나라 고쳐보겠다고 사투 벌이고 있는데, 이 빌딩 속에 수 많은 사람들은 숨어서 한다는 소리가 철 없는 짓거리요? 당신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저는 더 이상 못 참겠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서 마지막에는 창문을 연 빌딩의 사무실까지 들릴 정도였다. 흡연하고 있던 사람들은 이제 눈치도 보지 않고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사무실에서 짐을 챙겨 나와 시위대에 합류했다.

시위대를 향한 정부의 강경한 진압은 최후의 발악이었다. 미국의 압박에 정부는 허무하게 무너졌다. 모든 것들이 정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을 때 그는 혜연에게 연락을 받았다. 혜연은 그에게 소개 시켜줄 사람이 있으니 저녁을 먹자 했다. 그는 기쁘게 수락했다.

달빛이 가로등보다 빛나는 날. 혜연이 알려준 식당은 한옥 한식당이었다. 종업원의 안내를 따라 별채로 갔다. 미닫이 문을 열자 가득 차려진 상 앞에 머리가 벗겨진 원숭이상의 중년 남성이 앉아있었고 그 옆에 젊은 여자가 다소곳 앉아 그 남성에게 술을 따르고 있었다. 자세히 보자 그 젊은 여자는 혜연이었다. 

그는 불쾌했다. 조용히 술잔을 들이키며 혜연과 남자를 번갈아봤다. 그 남자는 스스로를 의원이라고 소개했다. 

선생님이 우리 혜연이 일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면서요?  

의원은 혜연의 어깨에 주름진 손을 올리면서 말했다. 

내가 혜연이를 의원으로 밀어줄까해요. 얼마나 대견합니까.

심지어 의원은 자연스럽게 혜연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이십대초반에 나라 위해서 이 한 몸을 던지고 아주 이십일세기 유관순 아닙니까? 하하. 나도 혜연이 같은 딸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는 당장이라도 박차고 일어나 의원을 패고 싶었지만 혜원의 뒷배가 되주겠다는 자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의원을 의원을 째려보거나 혜연에게 눈치를 주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혜연은 그의 눈을 피했다.

갑자기 미닫이 문이 열렸다. 한 사내가 들어왔는데 의원은 그를 혜연을 도와줄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몸을 돌려 들어온 남자를 보았는데 그 남자는 그가 고문실에서 봤던 그 덩치 큰 사내였다. 그는 화들짝 놀랐다. 의원에게 인사를 하고 그를 확인한 덩치 큰 남자도 놀란 눈치였다.  

둘이 아는 사인가? 

의원은 둘 사이에 이상한 기류를 눈치채고 물었다.

그냥 전에 한 번 우연히 만났던 사람입니다.

덩치 큰 사내는 그의 옆에 앉았다.

그럼 공식적으로는 처음 만나는 사이네. 인사하게 이쪽은 혜연이 운동할 때 많이 도와준 선생님. 이쪽은 우리 당 비서실에서 일하는 사람. 곧 혜연이 도와줄 사람이네.

어색하게 둘은 인사를 주고 받았다. 의원은 혜연에게서 술병을 건네 받아 직접 덩치 큰 사내에게 술을 따라줬다. 덩치큰 사내는 공손히 술을 받아 먹었다. 그리고 술병을 들어 그의 잔에 따랐다. 

선생님 그 때 일은 죄송했습니다. 다 위에서 시키는 일이었는데 일개 경찰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의원은 눈치가 빨랐다. 이 친구가 경찰에서 일하다가 이짓거리 더이상은 못하겠다. 환멸을 느끼고 그만 두고 우리 당에 찾아 온 거야. 이런 인재가 제발로 찾아오니 우리 입장에서는 땡 잡은 거지. 

의원은 다시 덩치 큰 남자에게 술을 따라줬다. 그는 의원을 바라보았다. 뭐가 그리 좋은 지 얼굴이 빨개져 덩치 큰 남자에게 뭐라 떠들면서 혜연의 다리를 쓰다듬었다. 덩치 큰 남자는 알랑대기 바빴고 혜연은 내 눈을 피했다. 그는 화도 나지 않았다. 이 모든 게 우스울 뿐이었다. 그는 적당한 핑계를 대고 자리에서 나왔다. 달은 밝게 빛났다. 가로등 역시도 밝게 빛났다.

대리님 올해 집값이 평균 5억이 올랐데요. 

새 직장에서 그는 금방 대리를 달 수 있었다. 그는 담배를 한 번 털었다.

에휴 병신 같은 정부.

정권 바뀌고 뭐라도 달라진 줄 알았는데 이럴거면 정권교체를 왜 했는지 참. 제 대학 동기 중에 아직도 취업 못한 놈들이 수두룩 해요.

공허한 비명만 가득한 빽빽한 빌딩 숲에서 한 빌딩의 옥상에 작은 흡연장에서 그는 조용히 담배만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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