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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백수짓 하면서 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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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어두웠다. 해저(海底)와 같은 밤이 오는 것이다. 나는 자못 이상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배가 고픈 모양이다. 이것이 정말이라면, 그럼 나는 어째서 배가 고픈가? 무엇을 했다고 배가 고픈가?

 

자기 부패작용이나 하고 있는 웅덩이 속을 실로 송사리떼가 쏘다니고 있더라.

그럼 내 장부 속으로도 나로서 자각할 수 없는 송사리떼가 준동하고 있나보다. 아무렇든 나는 밥을 아니 먹을 수는 없다.

 

밥상에는 마늘장아찌와 날된장과 풋고추조림이 관성의 법칙처럼 놓여 있다. 그러나 먹을 때마다 이 음식이 내 입에, 내 혀에 다르다. 그러나 나는 그 까닭을 설명할 수 없다.

 

마당에서 밥을 먹으면, 머리 위에서 그 무수한 별들이 야단이다. 저것은 또 어쩌라는 것인가?

내게는 별이 천문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시상(詩想)의 대상도 아니다.

그것은 다만 향기도 촉감도 없는 절대 권태의 도달할 수 없는 영원한 피안(彼岸)이다. 별조차가 이렇게 싱겁다.

 

저녁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보면, 집집에서는 모깃불의 연기가 한창이다.

 

그들은 마당에서 멍석을 펴고 잔다. 별을 쳐다보면서 잔다. 그러나 그들은 별을 보지 않는다.

그 증거로는 그들은 멍석에 눕자마자 눈을 감는다.

그리고는 눈을 감자마자 쿨쿨 잠이 든다. 별은 그들과 관계없다.

 

나는 소화를 촉진시키느라고 길을 왔다 갔다 한다. 돌칠 적마다 멍석 위에 누운 사람의 수가 늘어간다.

 

이것이 시체와 무엇이 다를까? 먹고 잘 줄 아는 시체─나는 이런 실례로운 생각을 정지해야만 되겠다. 그리고 나도 가서 자야겠다.

 

방에 돌아와 나는 나를 살펴본다. 모든 것에서 절연된 지금의 내 생활─자살의 단서조차를 찾을 길이 없는 지금의 내 생활은 과연 권태의 극 그것이다.

 

그렇건만 내일이라는 것이 있다. 다시는 날이 새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한 밤 저쪽에, 또 내일이라는 놈이 한 개 버티고 서 있다. 마치 흉맹한 형리처럼─

나는 그 형리를 피할 수 없다.

오늘이 되어 버린 내일 속에서, 또 나는 질식할 만치 심심해해야 되고, 기막힐 만치 답답해해야 된다.

 

그럼 오늘 하루를 나는 어떻게 지냈던가? 이런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냥 자자! 자다가 불행히─아니 다행히 또 깨거든 최서방의 조카와 장기나 또 한 판 두지.

웅덩이에 가서 송사리를 볼 수도 있고─몇 가지 안 남은 기억을 소처럼─반추하면서 끝없는 나태를 즐기는 방법도 있지 않으냐.

 

불나비가 달려들어 불을 끈다. 불나비는 죽었든지 화상을 입었으리라.

그러나 불나비라는 놈은 사는 방법을 아는 놈이다. 불을 보면 뛰어들 줄도 알고─평상에 불을 초조히 찾아다닐 줄도 아는 정열의 생물이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 어디 불을 찾으려는 정열이 있으며, 뛰어 들 불이 있느냐? 없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암흑은 암흑인 이상, 이 방 좁은 것이나 우주에 꽉 찬 것이나 분량상 차이가 없으리라.

나는 이 대소 없는 암흑 가운데 누워서 숨 쉴 것도 어루만질 것도 또 욕심나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다만 어디까지 가야 끝이 날지 모르는 내일, 그것이 또 창 밖에 등대하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이다.

 

(12월 19일 미명, 동경서)

이상 - 권태

 

 

 

 

 

 

하루종일 띵가띵가 놀고먹고 백수짓하다가 잠자기전에 배는 출출하고 현타는 와서 아 시발.. 난 언제까지 이러고살까 싶어서

 

내일 걱정하는글

27개의 댓글

2021.09.24

무한육각

1
2021.09.24

이하..

0

진짜 존나 아름답다...

왜 이런 문학가는 현대에 없을까?

사람의 삶 자체가 굵고 짧으니

후세의 내 눈으로 보니 이젠 멋있게만 보인다

1
2021.09.24
@나는모르오모르는일이오

읽다가 감탄했다

2
2021.09.24
@나는모르오모르는일이오

저땐 국민의 과반수가 농민이었고 대부분 해지면 자고 해뜨면 먹고, 일하는 단조로운 삶을 살았지

 

이상은 동경에 유학하고 일찍히 서양문화를 접하면서 자기만의 인생철학을 정립했고,

글을 써서 생활이 가능한 특별계층이기도 했지..

 

근데 요즘은 사람들이 돈만있으면 다 접할 수 있는 세상이니까

특별한 작가가 있다기보단 모두가 작가가 될수있고 모두가 문학가인 세상이지

 

 

30
2021.09.24
@노틀담종소링

막줄 멋있다

0
2021.09.24
@노틀담종소링

이야 너 말하는거 멋잇다..ㄹㅇ

0
2021.09.24
@나는모르오모르는일이오

지금도 멋진 시를 쓰고 멋진 소설을 쓰는 작가들 많다고 생각하는데 난. 천명관의 고래나...

2
2021.09.24
@당신의거울

고뤠에~?

0
2021.09.24
@당신의거울

이제 고래 나온지도 한 15년 된듯 ㅋㅋ

0

팩폭멈춰

1
2021.09.24

권태의 극 ㅋㅋㅋ

0
2021.09.24
1
2021.09.24
0
2021.09.24

이상 드립넷

0
2021.09.24
0
2021.09.24

문장에 그 시대의 향기를 담을 수 있다니

0
2021.09.24

밤 저쪽에 내일이라는 놈이 한개 버티고 서있다.

표현 진짜 멋있다 진짜

0
2021.09.24

날개는 수도없이 읽었는데 그거읽을때는 못느꼈는데 이거는 어째 다자이오사무보다 잘쓴거같네 물론 번역으로 본것이라 비교자체가 이상하다만...

0

백수가 새벽에 읽으면 딱이네...

0

백순데 아직 9렙이면 30렙은 진짜 월급 받냐?

0
2021.09.24

다들겪는일이지..눈꼽떼면 밝아짐

0
2021.09.24

거지같이, 불 안뗀, 얼음이 문에 더글더글들러붙은 하숙집에서 간신히 얀먕하던 학부 시절이 떠오르는 글이다... 시에서 냄새가 난건 처음임..

0
2021.09.24

굉장히 우울하네.

0
2021.09.24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0
2021.09.24

이상드립넷

0

첨에 순간 배우 이상이가 쓴 건 줄 ㅆㅂ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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