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가 동일하니 대강 섞어쓰겠지만 어쨋건 걸그룹판이니만큼 걸그룹 위주로 쓰도록 노력하겠다

 

 

1. 포지셔닝의 시작

 

포지셔닝의 개념을 알기 위해선

대중음악의 시작인 미국의 대중음악사를 좀 알아야 한다

 

현대 대중음악 최초의 아이돌그룹은 보통 잭슨파이브를 꼽는데

잭슨파이브의 구성에는 재즈밴드 (정확히 말하자면 여호와의 증인 신도이던 엄마가 자주 보여준 ccm 밴드) 가 아주 큰 영향을 끼쳤다

 

처음 마잭이 잭슨파이브에 참여하기 전부터 형 셋이 이미 잭슨브라더즈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마잭의 기가막힌 보컬실력이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부터 마잭을 제외한 나머지 넷은 코러스만 잘 맡으면 되겠다는 다짐을 하고

실제로 마잭을 제외한 나머지가 각자 드럼 역, 기타 역 등을 목소리로 내고 나머지는 춤으로 떼운다

 

전설의 시작, 잭슨파이브

단 이 영상은 초창기는 아니다

 

 

 

 

 

악기를 연주하지 않는 그룹이 각 포지션을 철저히 지키는 사례는 이것이 최초인데

이 후로도 또 한동안은 구별없는 그룹만 나왔다

가장 큰 이유는 그룹을 만드는 이유는 그냥 마음이 맞았기 때문이지

프로젝트에 의해 경제적 이유로 모인게 아닌 미국 음악그룹 성장배경에 기인한다

미국은 땅이 쓸데없이 너무 넓고, 인구밀도는 너무 낮다

가수가 되고 싶으면 전국의 인지도를 얻는 건 개소리에 가깝고

동네에서 뛰는 것도 힘들만큼 너무 동네가 넓다

우리나라의 한 세 배쯤 되는 땅에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도 안되는 인구가 흩어져 있기 때문에

도대체 누가 이 동네 짱인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이 시대 가수가 그룹이 되었다는 건 결국 아는 사이 내지는 아는 사이의 아는 사이 정도가 만나서

한 번 해볼까? 하고 시작한 경우가 99%다

 

원래 아는사이였던 둘과 지나가다 만난 사람 하나, 아는 사람한테 소개받은 사람 하나

 

 

 

이런 시점에서, 당연히 나는 나고 너는 너고, 그룹이 흩어질 때를 당연히 염두에 두어야 하고

팀원보단 경쟁상대로서 서로를 판단하게 된다

즉, 서로 주인공이 될 욕심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란 이야기

 

 

 

 

그러던 중 독일의 한 걸출한 프로듀서가 가난한 흑인 몇을 주워서

잭슨파이브의 아성을 뛰어넘을 프로젝트 그룹을 하나 만들게 되는데

이게 바로 요새 한창 유재석때문에 알려진 보니M이다

 

가난에 치여살던 거렁뱅이들 주워 만든 그룹

 

 

 

프로듀서는 처음부터, 자기는 노래할 능력이 없지만 노래를 만들 능력은 뛰어났다고 자신했으며

그래서 자존심 강한 오리지날 아티스트들보단 가난하고 자존심없이 돈만 주면 뭐든 하겠다는 떨거지들을 주워갔다

잭슨파이브는 누구보다 엄한 아빠 밑에서 훈련받으며

누구보다 재능이 넘치는 동생을 위해 희생하는 형들이 있었기에 포지셔닝이 됐다면

보니M은 구성원들이 개좆밥인데 프로듀서는 반쯤 전설일만큼 권력차가 있었기에 포지셔닝이 가능했다

 

그리고 시키는대로, 너는 노래 고음만, 너는 노래 저음만, 너는 춤만 같은 걸 지정을 해 맹 훈련을 시켰고

실제로 놀면 뭐하니 방송 보면 바하마 마마에서 남자 댄서는 말 그대로 춤만 춘다

그리고 이런게 대박을 치게 된다

 

원곡은 못들어봐도 서두는 반드시 들어봤을 써니

정말 남자멤버는 춤만 춘다, 마이크에 대고 써니~ 하는건 립싱크다

 

 

 

 

 

 

그 뒤로 수 많은 댄스+보컬그룹이 명멸하는 동안

대개 댄스는 남자가, 보컬을 여자가 맡는 구조가 탄생하고, 1980년부터 1990년까지 아주 오랜 기간 유지된다

 

 

 

 

이 보니M과 보니M 아류가 인기를 끌게 된 원인이

바로 그룹에서 포지션을 나누는 이유와 일치한다

 

ㄱ. 포지션이 나뉘는 그룹이라는 건 당연하지만 남이 만든 그룹이다

노래와 춤에 자신이 없는 누군가가 자길 대신해 노래와 춤을 부를 떨거지들을 주워서

팀을 짜는 게 바로 포지션된 그룹의 요점인데

이미 춤과 노래를 다 잘하는 사람이면 남이 만든 그룹에 낄 필요가 없으며 실제로 자존심도 개쎄서 의견조율이 안된다

때문에 둘 다 잘하는 존재는 남이 만드는 그룹에 끼지 않게 된다

 

ㄴ. 녹음된 음반시장의 규모는 공연시장의 규모에 비해 경제적으로 적다

모든 가수들의 주수입은 투어, 인기를 얻을수록 범위가 넓어져 최대로는 월드투어인게 당연하다

퀸, 마잭, 비틀즈 등 우리가 아는 그 모든 가수들의 수입은 음반판매로 나온 게 아니라 월드투어 수익으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춤을 출 줄 아는 사람의 춤이라는 게 아주 소중한 능력이 된다

밴드에서의 카리스마는 보컬이 담당하지만 댄스그룹에서의 카리스마는 댄서가 담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ㄷ. 상대적으로 그룹결성이 용이하고 빠르게 멤버를 넣었다 뺄 수 있다

그룹의 결성에는 그룹원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는다

때문에 그룹이 적당히 뜨면 그룹원이 탈출하고자 하는데, 탈출해서 잘 된 사례는 거의 없다

그렇기에 오히려 뜨고싶어 안달인 좆밥들이 인기 그룹에 참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된다

 

 

 

상기한 세가지 이유로 프로젝트로 조직된 그룹은 댄스, 보컬, 코러스의 3요소를 필수로 넣어서 조직하는 게 일반적인 80년대의 흐름이었다

이 시점에서 명심해야 하는 것은

이 시대의 흐름에선 보컬은 노래만, 코러스는 코러스만, 댄스는 댄스만 했다는 것이다

 

 

 

 

 

 

2. 90년대 들어 생긴 변화

 

우리나라에선 1에서 쓴 그 흐름이 서태지와 아이들, 그리고 이상민의 그룹들을 통해 느즈막히 도입되는 시점에

 

 

 

일본과 미국에선 기묘한 게 생겼다

바로 걸 댄스 라는 거다

 

1에서 말했듯 대개 대중음악의 댄스그룹이라는 건 남자가 댄서였다

우리나라의 김시스터즈가 세계 최초의 걸그룹을 구성하여 빌보드에도 진입할만큼 세계적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원인도

여자만으로 구성된 아티스트가 정말 흔치 않기 때문인데, 김시스터즈도 춤은 안췄다

 

김시스터즈 이후로 일본에서는 캬바레를 목적으로 하는 걸그룹이 많은 유행을 하게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게이샤(정확히는 마이코였다가 게이샤가 되지 못하고 떨어진 작부)들이 주로 이런 걸그룹을 하게 되었는데

 

이 때, 대한민국에서 고2 쌍둥이 자매가 만든 "율동형 댄스" 팀인 릴리시스터즈가 데뷔해 한일양국에 쇼크를 주었다

코딱지만한 애들이 짧은 치마 입고 나와 기타 반주에 율동을 하며 첫사랑 같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그야말로 대단히 신선한 열풍을 불러 일으켰고

곧바로 일본에선 핑크레이디 같은, 나이 든 애들이 아닌 10대의 젊은 애들로 구성된 걸그룹이 선풍적 인기를 끌게 된다

참고로 릴리시스터즈의 멤버는 은지원의 어머니다

 

당대 최신유행, 허벅지높이의 청멜빵원피스

 

 

 

이 뒤로 군사정권이 좀 더 엄격한 문화억압을 시도하며 한국에서 "섹시걸그룹"은 사라지게 되고

그 흐름은 일본에 의해 주도된다

핑크레이디 이후 오냥코클럽을 비롯한 수많은 율동형 걸그룹이 탄생하여

일본 연예계에 젊은 여성이 유입되는 유일한 경로로 자리매김할 정도가 되었고

당연히 다수의 빌보드 진입도 있었다

 

크림레몬 보고 있던 2d 씹덕들을 현실로 끌어낸 오냥코클럽의 무대

그덕에 그림보고 딸치던 놈들이 사람보고 딸치기 시작했다

 

 

 

 

 

이 시점까지도 사실 걸그룹은 대중음악그룹의 일반론이 된 "포지셔닝"이 도입되지 않았다

아직 애들이고, 술먹으면서 안주삼아 보는 목적이다보니 굳이 안무가 화려할 필요도 노래를 잘할 필요도 없이

이쁘장한 애들이 동요같은 율동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영국의 한 여성 안무가가 평소 친하던 무명 배우 지망생 몇과 안무가 몇을 불러

야, 우리 랩댄스(옷을 안벗는 스트립댄스)를 전문적으로 하는 팀을 하나 만들자 라고 하여 탄생한

푸시캣돌스가 공전의 히트를 치며 세상 모든 게 바뀌었다

 

사실 저정도 옷 입고 춤 추면 안 벗어도 꼴린다

 

 

 

 

 

보컬 없이 단순히 근처 주점이나 이런 곳에서 랩댄스를 추어 생활비만 좀 벌어보자는 의도였던 그룹이

동네를 넘어 전 유럽을 뒤엎는 열광의 축이 되어버린 것

 

 

여자들이 춤만 추는데, 옷도 안 벗는데도 괜찮게 즐길거리가 되는구나 라는 관점이 1990년에 들어서야 처음 생긴 것이다

그래서 생긴게 바로 걸댄스 라는 개념이었다

 

여자가 율동 그 이상의 격렬한 춤을 추는게 스트립댄스같이 딸치는 목적이 아니라도 괜찮아진 것이다

이 뒤로는 여자도 춤을 잘 출 필요가 생겼다

스파이스걸스, TLC 등의 걸그룹은 이제 단순히 빠른 비트의 소울팝을 부르는 정도를 넘어

남자다운, 한편으론 여자다운 안무까지 추어야 할 운명에 처했다

 

 

 

 

 

 

3. 현재의 걸그룹 포지셔닝의 시작

 

그리고 이 흐름을 이호연이 유심히 지켜보았다

이호연은 한국에 제2 제3의 서태지를 "여자"로 만들고 싶다는 야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호연이 주목한 건

세상 모두가 서태지에 주목하느라 무시했던 "아이들"이다

 

 

상술했듯, 서태지와 아이들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포지셔닝을 도입한 그룹으로

서태지가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부를 프로듀싱하고

대중의 눈을 확 끌기 위해 당대 서울에서 제일 춤 잘 춘다는 사람 둘을 삼고초려로 데려다 세워

말 그대로 춤과 코러스만 시킨 그런 그룹이었다

 

대한민국 스트릿댄스계(겸 뒷골목 왈패) 최고의 리더였던 두 사람과

집에서 베이스랑 씨름하고 (컴퓨터)키보드 두드리던 히키코모리의 만남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포지셔닝이 도입된 사례는 아니었지만, 가장 완성도 높은 포지셔닝을 보여준 사례는 맞았고

이호연은 이 시스템을 여자 판으로 적용시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단, 소방차 스타일을 섞어서

 

 

 

그 결과가 바로 핑클이다

핑클은 대한민국 뿐 아니라 세계 최초로 걸그룹에 포지셔닝을 통해

메인보컬, 서브보컬, 매인댄서, 메인래퍼

의 4가지 구성을 모두 때려박은 그룹으로서

 

제2소방차, 혹은 제2TLC로 기획된 만큼 원래 3인조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메보, 서보, 래퍼 3인조는 소방차의 전형적 구조였으며

3인 모두가 랩과 보컬을 섞어 했던 전형적인 흑인소울의 tlc와도 흡사한 구조로

멤버 모두에게 랩과 보컬 모두를 연습시켰지만

이효리가 들어오며 모든 틀이 바뀌었다

 

이효리는 데뷔 직전에 합류했고

본인의 실력이 모든 면에서 수준급이었지만 모든 면에서 나머지 셋보단 좀 후졌고

그 대신 춤만큼은 한국 그 어떤 여자보다 잘춘다는 자부심이 있었다(가슴부심도 있었고)

게다가 그다지 자기 자신을 숨길 생각도 없었다

양현석처럼 춤만 출래? 라는 질문에 절대 그럴 생각 없다는 답변을 하며

파트를 반드시 챙겼고

그래서 이미 3인조로 녹음된 걸 다 갈아엎고 재녹음까지 하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이호연은 핑클과 적당한 담판을 지었다

 

ㄱ. 옥주현은 이 그룹의 시작이나 마찬가지이므로 클라이막스 파트는 반드시 보장했다

이 시기 댄스곡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사실 클라이막스 파트가 있는 곡과 없는 곡이 혼재되어 있었는데

노래 들을라고 댄스곡을 듣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핑클은 처음으로 "클라이막스를 의무적으로 보장받은" 그룹이다

 

 

ㄴ. 카메라 캐치를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이 당시 음악방송에서 카메라맨의 권한은 절대적이었는데

가수가 기습퍼포먼스라도 내질렀다간 다음 음방에서 잘릴 수도 있는 시대였다

반대로 카메라맨은 꼴리는대로 동선을 바꿀 수 있었다

이호연은 그걸 이용해서 얼굴마담을 그룹에 꽂고, 그 얼굴마담에게 최소 4마디를 보장했다

 

바로 이진이다

이진은 3대얼짱으로 유명했고, 노래는 평균미만이었다

실제로 같은 3대얼짱이던 송혜교 한혜진과 마찬가지로 이진도 배우를 할 생각이었는데

그걸 데려다가 보컬 트레이닝도 없이 전자피아노 하나 놓고 옥주현한테 대충 가르치게 해서 내보냈다

 

다만 불 들어온 카메라를 찾으라는 조언은 아끼지 않았고, 무슨 카메라든 일단 카메라를 보고 절대 찡그리지 말아라는 주문을 강조했다

그 결과 노래를 부르는 멤버 위주로 찍던 보통의 카메라무빙이 변해

옥주현은 노래를 부르는 와중에도 안잡히고, 이진은 춤만 춰도 카메라에 잡히는 기현상이 벌어졌고

그게 팬 몰이에 큰 역할을 했다

 

 

ㄷ. 군무에 강약을 넣었다

이게 뭔 소린지 이해가 안갈 사람들을 위해 두가지 무대를 추천한다

 

서태지 첫곡인 난 알아요와

핑클 세컨타이틀인 영원한 사랑이다

 

보통의 댄스곡은 서태지처럼 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안무의 격렬함이 일정했다

그래서 보통 댄서가 따로 있는 것이었다

시작부터 좌로 우로 뛰었으면 중간에도 뛰어야되고 끝날때까지 뛰었다

 

행사 며칠 뛰었더니 살이 4kg 빠졌다는 난 알아요 무대

 

 

 

 

 

 

하지만 핑클은 노래는 노래대로 해야 했고 춤은 춤대로 춰야 직성이 풀리는 이효리가 있었다

그래서 안무에 강약을 넣었다

1절을 부르는 이진과 성유리는 안무와 보컬을 동시에 할 능력이 없으니 잔잔한 율동을

그러다가 후렴이 되면 갑자기 존나 격렬해지는 안무를 이효리가

내지르는 클라이막스를 옥주현이

맡게 함으로써 노래의 강약을 바로잡았고

그 패턴은 그대로 팬들을 모으는 키가 되었다

 

사실 영원한 사랑의 무대일 때 박수가 터져나온 부분은 둘로 나뉜다

하나는 얼빠들의 이진사랑이지만 다른 하나는 이효리가 항상 하면서 튀어나올 때의 그 무게감이다

 

 

 

 

 

 

 

 

4. 무대의 강약이 팬에게 끼치는 영향

 

이호연의 핑클에 대한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는

시대를 정확히 타게 되며 하나의 "틀"이 되었다

 

기존, 그러니까 옛날가수들이 댄스곡을 원패턴으로 채운 이유는

댄스곡이 애시당초 공연을 목적으로 만들어진다는 한계 때문이었다

음반만 듣기엔 댄스곡은 락과 발라드를 이기기 힘들었고

공연을 봐야 진면목이 발휘되었다

 

하지만 무대에 강약이 생기며, 자연스레 노래에도 강약이 생겼고

비트가 빠른데 들어서 발라드랑 큰 차이가 없는 노래가 된 것이다

 

게다가 노래와 춤의 강약을 동일하게 가져감으로써

듣기만 해도 대충 무대가 상상이 되는 효과까지 생겼다

영상매체에 대한 접근이 수월해진 디지털 시대에선 이는 아주 큰 강점이었다

이는 쉽게 다운받을 수 있는 mp3라는 신문물과 더해져 큰 시너지를 이뤘다

 

앨범을 돈 내고 살 필요가 없다면

끝내주게 좋은 시디 하나에 목맬게 아니라

적당히 흥미롭고 신나며 귀여운

그런 노래를 여러곡 듣는게 나쁘지 않겠구나

 

라는 개념이 생긴 것이다

 

이 결과물은 외려 남자 아이돌들에게도 역으로 적용되기 시작하며

 

한국의 프로듀서들은 곧

"나만의 멤버를 구성해 나만의 노래를 부르게 훈련시키"고자 하는 욕망에 시달리게 된다

아이돌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