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이 한국인보다 명백히 상위종인 이유(스압)

2008년 중국인 성화봉송 폭력시위 사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성화봉송을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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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권단체와 티베트 옹호자들이 나타남

 

그러면서 외치는 말이

 

"인권이 없는 나라에서는 올림픽도 없다

(No Human Rights, No Olympic G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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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듣고 빡친 중국인들이

사진처럼 티베트 옹호자들과

한국 인권 단체들에게 욕설을 하기 시작하더니

 

​시간이 지나자 폭동을 일으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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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단체뿐만 아니라 모든 ​한국인들을 보자마자 무자비로 때리기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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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개요[편집]

2008년 4월 27일 오후 3시 반경 서울 올림픽 공원 평화의 문에서 성화가 출발했다.[1] 대한민국 측에서는 성화의 안전을 고려하여 경찰 9300여 명[2] 을 배치하였고, 올림픽 공원 광장에는 당일 오전부터 6500여 명[2] 의 중국인이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기 등을 들고 집결[2] 해있었다. 한편에는 티베트의 독립 문제와 중화인민공화국의 인권탄압에 반대하는 한국 시민단체 회원 180여 명이 모여 있었고[2], 현장에 모인 6500여 명의 중국인은 그들에게 구호를 외치며 강하게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3]

이들 사이에서 벌어진 성화 출발 전부터 이어진 충돌은, 중화인민공화국의 탈북자 송환과 티베트 문제에 관련하여 "인권이 없는 나라에서는 올림픽도 없다(No Human Rights, No Olympic Games)"[2][4] 를 외치며 시위하자, '사랑한다 중국', '중국의 진정함을 세계에 알리겠다', '티베트는 영원히 우리 중국 땅' 등의 피켓[2] 등을 든 중국인 단체가 몰려가 국기를 휘두르며 욕설이 오가는 등 사태가 격해지기 시작했다.[4] 이후 중국인들은 돌[5][6], 스패너(금속절단기)[6][7], 미개봉 음료수캔[6], 국기 대를 (투창 형식으로[6]) 던지기 시작했다. 이 두 집단을 갈라놓으려는 경찰병력 사이로 이 물건은 계속 한국 쪽으로 무차별 투척되었다.[4]

부상[편집]

올림픽 반대 시위를 벌이던 40세의 최모는 중국인들이 던진 중량의 금속절단기에 흉부를 맞았다.[7] 녹색 살림 배움터 교사인 38세의 장모 또한 중국인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했으며[7]한국일보의 사진기자 홍모[8] 는 20세의 중국인 진모가 던진 개봉되지도 않은 음료수캔[9] 에 두부(頭部)를 맞아 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이송되었다.[7][8][10] 4시 20분 경에는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서있던 미국인과 캐나다인영국인 세 사람이 중국인이 던진 물병에 맞아 머리에 부상을 입었다.[7] 또한, 어느 중국 국기와 국토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중국 청년 두명이 한국인을 붙잡고 발차기를 하였고[11], 이 피해자는 경찰에 의해 이송되었다.[7] 또한 현장에 출동해있던 박모 의경도 중국인들에게 집단 구타를 받았으며[7], 서울 프라자 호텔로 피신하던 평화연대를 중국인 100명이 끝까지 쫓아가 로비에서 둔기[7] 및 중국 국기를 이용한 흉기로 찌르는[4][12] 일도 있었다. "FREE TIBET" 티셔츠를 입고 서울 시청 앞을 지나가던 미국인과 캐나다인 영국인 등 5~6명도 중국인에게 깃대로 머리를 맞는[12] 등의 부상을 입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29&v=mT8EbQYLd_c&feature=emb_logo

 

당시 MBC에서 보도된 중국인 폭력시위 당시 영상

 

 

그리고 체포된 중국인은 한 명도 없었다.

 

중국인들은 한국법 보다 위에 있으므로

 

한국인보다 중국인들이 상위종이 맞다 

 

 

51개의 댓글

2019.11.16

지금 저런 일 일어나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가만히는 안 있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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