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날

요즘은 지난날을 차분히 돌아볼 계기가 없었다.
계기가 없었다는말은 필요가 없다는 말과는 다른 말인가보다.
계기가 없던 이유는 회상은 결핍이 되는 버릇이 있던 까닭이고, 결핍은 미소짓기보단 눈물을 글썽이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단어로만 와닿던 것들을 직접 느끼는 일은 꽤 울렁거리는 일이다.
누구도 일부러 울렁거리려 하지 않을거다. 나같은 사람만 빼고..

 

한번 회상하기 시작하면 울렁거림도 슬픔도 그리움도 알 수 없는 중력을 만든다.
과장 좀 보태면 빛조차 빨아들이는 블랙홀이고 과소평가를 한다면 내일이면 까맣게 잊을 우주의 빈틈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빈틈 없이 채워져 있는, 흩어지기 못해 가라앉은 기억들은, 너무도 선명한 해상도로 기억되어 있어서
마치 잊은게 아니라 안보고 산게 아니냐 내게 질문한다곤 한다.

 

왜 보지 않았을까
혹은 왜 보고싶은걸까

그 답을 찾기 위해 글을 쓴다.

 

부디 이 글이 명쾌한 대답은 아니어도 요즘 드문드문 올라오는 심란함을 가라앉힐 진통제 정도는 되었으면 좋겠다

가장 첫 기억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그다지 확신할 수 없는데, 그나마 강하게 추측되는것은 침대에 겨우겨우 기어 올라가던 기억이다.
4살쯤 되었을까, 침대위로 다리를 올려 겨우겨우 올라갔다.
어처피 눕지도 않을텐데 왜 그렇게 높은곳으로 기어 올라갔던걸까, 그때까지 고양이를 봤던 기억은 한번도 없지만, 고양이를 모방하듯 항상 그랬다. 높은곳에 대한 정복욕 내지 호기심이 있던게 아니었을까.
색바렌 레이스 침대커버가 기억난다.
그늘, 낮에도 항상 잠긴 그늘도.

난 그곳에서 혼자였다.

 

안방에도 거실에도 아무도 없었다. 할어버지는 2층에서 살았고 나는 홀로 1층이었다. 기억난다. 그 어떤것보다 혼자였다는게 가장 선명하다.

그래. 이제야 선명하게 말할 수 있다
첫 기억은 고독과 세상에 혼자 버려진듯한 어리버리함이었다

 

첫기억이 그럴정도니 난 꽤 '혼자'를 꽤 잘했던 것 같다
아직 고독이라는 단어조차 몰랐을때니 지금보다 잘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던 잘해냈다는말이 잔인할만큼 많이 행했다
고독이란 단어를 몰랐으니 내가 왜 한자리에 있어도 방황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지 설명할수가 없었다.
내 작은 머리는 그걸 이해하지 못했다.
난 방황하는 느낌이 났고, 곧 몸은 그 공허감을 따라가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머문다는것은 마음의 빈공간이 있을때 할 수 있는 일이다.
마음의 빈공간이란건 공허와는 사뭇 다른데, 채워넣지 않아도 갈증이 나지 않을때의 빈공간을 뜻한다

나는 빈공간이 없었다.

 

외로움의 도피처는 때때로 상상이었다
투니버스는 내 정겨운 친구였고, 몇번이고 같은 방송을 다시보곤 했다.
재방송이고 뭐고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유의미하게 시간을 쓰는 법을 몰랐다. 단지 고독함이 좀 잦아들만큼 집중할 수 있는게 내게 가장 유의미했던 것 같다
동화책은 꽤 무서운 이야기도 많았고, 당시만해도 비디오테이프로 동화책을 읽어주곤해서 꽤 자주 들었는데, 지금도 동화책 내용을 1장부터 끝까지 외울수도 있다.
상상력이 좋아서인지 어려서부터 두려움이 많았다. 아직도 신랑의 간을 빼먹는 여유이야기에 대한 기억은 어쩐지 섬짓할정도로.
동화와 상상은 내 벗이었고, 만화속 캐릭터는 훌륭한 내 투사체였다.

한동안 그렇게 컸다.
그것들이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진짜 내 보호자였다.

 

기억하지 못할뿐이지, 어쩌면 부모님과의 단란한 기억이 하나둘쯤 있을지도 모르겠다.
유원지에 갔던게 기억난다
울고 껴안았던 기억들도, 단지.. 그 이상도 기억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매일같이 서로 싸웠고, 당시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음주가무의 연속을 달리던 중이었다.
싸움, 싸움이 생각난다. 난 큰 데시벨들이 싫었다.
내 싸움이 아닌것들에 마음을 졸여야 하는 나날도 싫었다

그러니 사실 폭력보단 혼자가 좋았다.
말이 적은편이라 또래 친구와도 어울릴때 신경을 써야 했던 나는 혼자가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좋았던건 아니었다.

함께 쉬는것에 익숙하지 못했던건 뿐이었다

 

나는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편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다지 도덕적이어서 그랬던건 아니었던 것 같다.
공감능력은 좋았지만, 그건 자기애의 결핍에서부터 파생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타인에게 가치있기 위해 내 시간과 마음을 팔았다
억지로 웃곤 했고, 슬픔은 혼자 쥐어짰다
눈물을 쥐어짜고 벽을 머리에 박던 스스로를 상처입혔던.
혹은 입은 상처를 되내였던 시간들이 기억난다
머리를 쥐어뜯고 생을 저주 했다.

사실 삶보단 삶을 저주하는 내가 더 싫었다
그러니 싫은것보단 나에게 뭔가를 줄 수 있는걸 사랑하는건 당연한 일이었던 것 같다

 

지치기엔 너무 어렸었고, 나는 우울이라는 노선에서 누구보다 힘차게 발판을 밟아왔다.


그렇게, 초등학생이 되었고,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지금이라면 꿈도 못꿀 일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난 체격이 작은 편이었다.
자존감도 낮고, 말수도 적고, 체격도 작은편이라면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어떻게 되는지 대한민국의 의무교육을 받은 사람은 대략 알거라고 생각한다.
혹은 독자가 정말 모범적인 초등학교를 나왔다면 모를수도 있겠다
혹은... 혹은.. 피해자가 아니라 잊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툭툭 밀치는 정도였다.
거기엔 뭔가 대단한 악의따윈 없었다.
그냥 장난이다. 서로 가볍게 칠 수 있는, 자기가 가진 힘을 시험해보고 싶은 동물적인 움직임이다.
걔들이 뭔가 대단한 악의를 가지고 행동한건 아니지만
다만 그런 가벼운 움직임이 내게는 삶의 벼랑끝에서 다가왔고, 난 별로 물러설 공간이 없었다. 정말로.

곧 괴롭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마음이 하루에도 수번씩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내 작은 공간들을 하나씩 잃어버려서, 세상과 나만 남을때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당시에 그래서 난 혼자이고 싶었다.
감히 그걸 견딜 수 없음을 알면서도

 

6년이 지났다.
변변찮은, 친구라고 부르지만 교감할 수 없는 이들이 몇몇 생겼지만, 애들한테 이타심을 바랄수는 없는 노릇이다. 매순간 서열과 통제력을 시험해보려는 초등학생들은 어른보다도 서열에 훨씬 민감하다.
난 그들보다 훨씬 민감했지만, 서열이 아니라 내 스스로로부터 민감했으며- 그건 그들의 서열을 나누기 위한 폭력과 욕설에 대한 피해를 증폭시켰다.

 

쉴곳이 필요했다

그러나 내 작은 세상에 그런곳은 없었으니, 뭐 어쩌겠나

필요없다고 착각하는 수밖에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괴롭힘은 사라졌지만 외로움은 온전히 내 맘속에 또아리를 틀었다.
가끔, 공기를 누루는 소리가 들린다

결국 넌 혼자라는, 너의 바램은 좌절되고 있다는

그러나 순응하며 살기로 했었다.
이미 태어난걸 뭐 어쩌겠어. 하면서

 

그러다.. 유경이를 만났다.
유경이는 내가 만난 여자중에서도 가장 나에게 적극적이었고,

본인이 대쉬받는걸 귀찮아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가 회피적으로 반응해도 거기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포용받았다고 느꼈다.
실제로는 어땠을까, 그 애도 많이 힘들었을까
분명 그랬겠지.


우리는 2년을 친구로 연락하고 2년 반간 사귀었다

십대에 사랑의 특징이 모두 거기에 있었다
우리는 뜨거웠고, 서로로부터 결핍을 채웠으며, 복잡한 생각이 없었다.
항상 보고 싶었다.

내 생은 그애로부터 구원받을 것 같았고
그 애의 생은 나로부터 구원될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를 삶의 목적지, 그 이상으로 봤다

 

그러나 균열이 있었으니.. 
내게 그녀는 세상에 포용될 수 있다는 증거였고
특징이 잘나지 않아도,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사랑받을 수 있는 증거였다
그녀가 내게 의미가 있는 이유는 이러한 사실로 너무도 명확했지만

그녀는 본래 주변에 사람이 많았고
나는 증거가 아니라 경험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나를 남자로 사랑했고, 나는 십대 시절 처음으로 사랑을 알려준, 뭐 그런 평범하지 않으면서도 평범한 위치였다.

그러니 이년반간, 성적인 긴장감이 다 소모될쯔음에는

그녀는 끝을 외쳤고 나는 세상이 무너졌다
깨진 세상파편이 나를 뒤흔들었고

처음에는 보내줘야지 생각했던 나도 몇번인가 실패했다

 

헤어지고 나서 항상 말해주고 싶었다 니가 얼마나 나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었는지, 니가 날 어떻게 그 어두운 곳에서 구원해 주었는지
내가 너를 얼마나 열망하였고, 너의 행복을 바라는지

그게 너에게 얼마나 따뜻하기를 바라고 너에 삶에 기여되기를 바라는지

항상 말해주고팠던 것이다.

항상 빚져있던 것이다.

그러나 전할 수 없었다

이미 너에게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내 결핍이 너와 공유되길 바랬던것은 아니지만
내 열망이 너와 공유되기를 바랬던 모양이지만
내가 널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너와 공유되기를 바랬던 모양이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도 남은 시간은 내게 치유가 되었다
이별은 뼈를 깍았지만, 나는 뼈를 깍을만큼은 강해져 있었다
다만 강해졌다는걸 잘 모르고 싶었다

모르고 싶어서 모른 척 했다
너없이도 된다는걸


그러니 정말 너 없이는 안되는 사람처럼 살았었다

일년이 지났다

 

나는 너로 일년을  지세고 나서야 모를수가 없었다

친구로 채우고, 삶으로 채우고, 공기로 채우고, 우울이나 니가 아닌 다른것들로도 나는 채워진다는걸 받아들였다.
그래서 기어이 내 안에 너를 죽였다.

그러니 너를 돌아볼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채워진 것들은 가끔 내 손을 벗어났다
친구며 여러 인정들.

남지 않아도 남는것들이 있다는것은 수확이었지만
내가 아니라 무언가를 사랑해준것은 아니었는지 의심을 떨칠 수 없었다

어느 사이 자기 마음도 모르던 나는
누구보다 예리하게 상대가 나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알게 되었다

꼭 축복은 아닌지, 나는 이해받는 부분만큼이나 이해받지 못하는 부분이 거칠게 느껴졌다.

 

그래도 거친 표면을 타고 박치기도 해봤다
여러 친구들을 붙잡아도 보고, 희생해보기도 하고, 또 사랑해보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걸 버렸다

도둑을 사랑하려면 도둑질에 대해 평가하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
내가 사랑한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나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기로 했다
누가 감히 죄가 스스로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가 감히 니 잘못이 온전히 너의 잘못이라 할 수 있을까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진듯이, 너는 죄인이고 모든 과정이 니가 선택한 것이라고, 감히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너에게.

아니 누가 나에게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를 품듯 그들을 품었었다.

그러나 나는 어미새가 아니었으니, 그들이 품에서 벗어나는것은 당연한 이치였을것이다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 인연을 셀 수 없다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 인연의 이름도 희미하다
만져질 수 없고, 그저 허공에 남은 흉터가 되었다

그래도 큰 흉터는 허공이 아니라 몸에 세겨졌다.

난 가끔 그 흉터들을 무덤에서 꺼내보곤 한다

어떤 이는 벽같아서 혼자 사랑하곤 했고
어떤 이는 너무 물같아서 스스로도 익사했다

다양한 흉터들 사이에서도 나는 뭔가를 길러왔구나
그게 뭘까

사랑일까 정교함일까 정견일까

 

때때로 묻는다
그럴 가치가 있었는지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더라도, 정말 마땅히 반복할 것인지

때때로 답한다

조금 후회한다고, 사실은 대가를 바랬노라고

때때로 답한다

그래도 다시 할 것 같다고 나는 그들을 사랑했노라고

 

나는 그들을, 나를 사랑하고 싶듯이 사랑했노라고

그러나 그들을 향한만큼 스스로에게 열정을 돌리진 못했노라고

 

그리하여 빈 몸을 이끌고 낙원을 찾고 있다

스스로를 향할만큼 내게 열정있는것을 찾아서

그러나 닳고 닳은 나를 이해할만큼 닳은것이
과연 여기 있을까

연옥 밑바닥에서 기다리고 있는건 아닐까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든다

실패에 습관에 길들여진, 아주 비관적인 생각이다.

그래. 그런 생각이다

3개의 댓글

2019.03.26

전부 이해할수있을정도로 감정에 공감을 할수는없지만 옆에있다면 어깨라도 토탁여드리고싶네요

0
2019.03.26
@달구름고양이

고마워요

0
2019.03.26

고생해써...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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