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은 모두 픽션이며, 등장하는 단체 및 인물은 가상입니다.
* 필자가 13년도 군번이 아니므로 고증의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밝힙니다.
"이병 강성태입니다. 행정반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용무는 호출입니다."
강성태 이병은 행정반 문을 두들겼다.
"어 들어와."
인사과 행정반은 깔끔했다.
잘 정돈된 서류들이 각잡힌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최향욱 중사는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다 말고 허리를 폈다.
강성태 이병은 훈련소에서 배운 대로 최향욱 중사의 책상 앞으로 제식을 하며 걸어간 뒤 경례를 했다.
"됐다. 그런 거 하지 마라."
최향욱 중사는 탁자 앞에 종이컵을 슬쩍 보더니
"현조. 가 맥심 두 잔만 타다줘."
하며 컴퓨터 작업을 하던 계원을 시켰다.
그리고는
"너는 여기 앉고."
하며 자기 옆의 의자를 빼서 내 주었다.
커피를 홀짝거리며 최중사는 말을 시작했다.
"그래. 할아버지가 강항춘 준위님 되신다고."
맞은 편의 인사계원은 당황한 눈치가 역력했다.
강항춘 준위는 수송대의 수송대장이었다.
그러고는 곧 그래서 부른 거였나 하는 눈빛을 지어냈다.
"예. 맞습니다."
"오야. 알겠다.
아버지는 강병욱 대령님 맞으시고?"
인사 계원들의 동공이 확장됐다. 눈은 휘둥그레했다.
강병욱 대령은 12연대의 전 연대장이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군인 집안의 아들.
할아버지가 준위이며 아버지는 대령일 뿐더러 해당 연대의 전 연대장.
강성태의 군생활은 눈에 보이는 듯 피었다고 계원들은 생각했다.
최향욱 중사와 강성태 이병은 십여 분동안 대화를 이었다.
그러고서는 최 중사가 먼저
"그래. 니 담배 피우나?"
하고 물으며 가슴팍의 주머니에서 팔리아멘트 한 갑을 꺼내 한 대를 권했다.
"예. 피웁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하고 강 이병은 두 손 모아 공손히 담배를 받았다.
둘은 문을 열고 밖 흡연장으로 향했다.
"아버지가 전 연대장이라 일부러 여기 보낸 거 아닙니까?"
부사수 계원이 사수 계원에게 말을 걸었다.
"전 연대장님이 실적이 워낙 좋아서 사단장님한테 그 정도 양해는 구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사단장님이랑 전 연대장님 둘 다 육사 출신이기도 하고. 우연이라고 보기는 어렵겠지."
부사수 계원은 프린트를 뽑으며 최 중사와 강 이병이 남기고 간 종이컵을 정리하며 말했다.
"그럼 군생활 완전 핀 거 아닙니까? 하버지가 전 연대장이면?"
"모르지. 스타도 아니고 대령인데, 간부들이 챙겨줄까 모르겠다."
"에이. 인사담당관이 담배 꺼내줬으면 말 다하지 않았습니까? 병사한테 그러는 건 처음 봅니다."
최향욱 중사는 흡연장 벤치에 거의 눕듯이 앉았다.
강성태 이병은 뻣뻣이 서 있었다.
"아. 니 라이터도 없제? 아직 PX를 안 갔으니까."
하며 라이터를 꺼내 넘겨주었다.
최 중사가 일방적으로 묻고 강 이병은 일방적으로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 길고 긴 여담을 넘어 최 중사는 결론을 슬그머니 내밀었다.
"그래서, 니는 말뚝 박을끼고?"
강성태 이병은 여태껏 최향욱 중사와 대화하며 처음으로 빙긋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닙니다. 저는 군대에 뜻이 없습니다."
최향욱 중사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한 달 전을 회상했다.
연대본부 수색 중대장이 인사과에 진급시험 결과를 프린트하러 찾아왔을 때였다.
"담당관. 담배 한 대 피우지."
"예. 가겠심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쇼."
수색 중대장은 뭔가 꾸물거렸다.
평소와 다른 게 한 눈에 보일 정도였다.
평소라면 이미 그는 행정반의 오만잡것에 관심을 붙이며 최향욱 중사에게 이것저것 물었을 것이다.
연대나 사단에서 새 지시는 없는지에 관한 것이라던가.
흡연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가 입을 떼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 연대본부 중대장급 이상 회식이 있었어."
군대에서 장교가 부사관을 배척하고 자기들끼리 어울리는 것에는 이미 익숙해진 군번이었다.
최향욱 중사는 별 것 아니라는 듯이 생각했다.
"전 연대장님 아들이 여기로 온다더라고."
그제서야 최향욱 중사는 놀라는 것이었다.
전 연대장이 현 연대 수송대장의 아들이라는 것은 연대 내의 모두가 알고있는 사실이었다.
그로 인해 문제가 생길까 전 연대장은 연대장 임기의 삼분의 이 가량만 채운 채로 보직 교체가 된 것도 유명했다.
"그러모. 연대 본부로 오는 겁니까?"
최향욱 중사는 불안한 듯 물었다.
"그건 아닌가 봐."
연대 수색중대장은 자신이 들은 것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조금 독종인가 봐.
아마 우리 연대장님도 사단장님한테 들은 거니까 잘은 모르겠지.
전 연대장님은 아들을 육사로 보내고 싶어했는 걸 내가 알아.
나는 전 연대장님이랑도 회식을 해 봤잖아.
근데 아들이 안 갔대. 아들은 운동한다더라고. 뭐였더라? 하여튼 운동을 한 댔었어."
최향욱 중사는 잠깐 말을 끊었다.
"그러모. 그러모 가는 부사관 한댑니까?"
수색 중대장은 연기를 후 뱉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그것도 아닌가 봐. 나는 처음에 여기로 온다길래 수송대로 가는 줄 알았어.
할아버지가 거기 있으니까. 강항춘 준위님이 어디 보통 인물이냐고.
사단장님도 그 양반 함부로 못 건들어. 군생활을 40년 한 사람한테 누가 뭐라 그러겠어.
근데 아니라고 하대.
운전병 지원도 안 했대. 나도 뭐하는 놈일 지를 모르겠어."
최향욱 중사는 눈 앞의 강성태 이병을 지긋이 바라봤다.
확실히 전 연대장과 닮았다.
"들어가라. 아버지나 할아버지한테 안부 전해주면 고맙고."
하며 기분 나쁘지 않을만한 속물적인 마음을 슬쩍 던졌다.
4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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