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손 가는대로.


 여느 때와 다름 없는 하교길이었다. 아마 자율학습 시간에 친구가 했던 가장 좋아하는 포르노 배우가 누구인지 하는, 제 딴엔 꽤나 진지하다고 주장하는 물음에 화가 나 있던 상태였을 거라고 추측해본다. 왜냐하면 난 여느 남자 고등학생들 처럼 그런 자극적인 언어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 어쩌면 이런 것들을 통해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아무튼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기분은 썩 좋지 않아 표정도 어두웠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예상했던 늦은 밤의 장대비 때문일 수도 있겠다.

 

 버스에서 내려 우산을 쓰고 늘 걷던 아파트 단지 옆을 지나는데, 웬 거구의 사내가 멀찍이서 우산도 없이 지저분한 비를 고스란히 맞고 있는게 보였다. 솔직히 처음엔 가로등 밑 그 애매한 형상이 거대한 산짐승을 연상시켜 조금 놀랐지만, 그럴 리는 없을 테지. 다른 길을 찾아 보려다 갑작스레 고개를 내미는 알싸한 호기심이 내 발걸음을 그 남자 쪽으로 떠밀어버렸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나는 고양이 눈치를 보는 새앙쥐마냥 조심스레 그 남자가 서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원래 내 생각대로라면, 정말이지 난 그 남자를 흘긋 훔쳐보고는 갈 길 가려던 참이었다. 이런 인적 드문 시간에 그런 거구의 남자가 길 한가운데 서있는 것은 굳이 내가 아니라 누구에게라도 흥미로운 일일 테니, 그리고 그 모습을 훔쳐보는 일이 조금은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내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거짓말처럼(혹은 예정된 듯이) 그 남자와 정확히 눈이 마주쳐버린 것이다. 이젠 무시할 수 조차 없다. 비에 젖은 티셔츠와 청바지, 그리고 우수에 찬 듯한 알 수 없는 눈빛.

3개의 댓글

2015.04.18
좋네.. 근데 마지막에 조금 무섭
0
2015.04.18
두근두근
0
2015.04.18
거기 자네... 하지않겟는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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