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지식

개인적인 곡성 리뷰 - 고통으로 가득한 삶에 대한 물음

곡성(哭聲)


영화를 제법 늦게(16.05.22) 보게 되었다.

개봉일로부터 꽤나 시간이 지난 터라, 각종 리뷰가 쏟아져 나오는 탓에 실수로라도 읽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야만 했을 정도로 여러 의견이 쏟아지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난 후 읽어본 감독의 인터뷰에서 크리스트교적 세계관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리뷰를 쓸 생각이 들었다.

감독이 인터뷰에서 관객 각각의 해석과 시각을 존중한다고 했으니 지극히 개인적인 리뷰를 써보도록 하겠다.

읽기만 하고 쓰는 것은 오랜만인지라, 조금 두서없고 거친 리뷰를 쓰는 것을 양해바란다.


 

-


영화를 감상하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욥'이었다.


부자이면서 고결한 품성을 가진 욥은 신의 '허락'하에 사탄의 시험을 받게 된다.

자식들과 재산을 잃고(피해자들도 가족을 살해하고, 집이 전소하는 등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피부에 종기(온 몸을 덮은 두드러기)를 얻어 거지꼴이 된다.

욥을 위로하기 위해서 왔다는 세 친구는 그가 자초한 일이라거나, 그의 고통에 논리나 목적이 있지 않겠느냐는 의문을 던지는 등 실제로는 욥의 고통만을 증가시킨다(황정민 또한 이러저러한 무속적 지식을 기반으로 종구를 도우려고 하지만 실제로 그는 교묘하게 종구가 겪는 상황을 악화시킨다).

신실한 욥은 마지막까지 믿음을 잃지 않고 믿음의 시험을 이겨내 잃었던 모든 것을 되찾지만, 신을 만난 자리에서도

'왜 선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가'에 대한 답변은 얻지 못한다.

신은 설명하지 않고 다만 믿음을 요구한다.(천우희도 마지막 순간까지 중구에게 믿을 것을 요구한다.)


이 영화는 '왜 삶은 고통으로 가득한가'에서 '정의롭고 선한 신은 존재하는가'로 이어진 물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다.

 

영화에서 저주와도 같은 힘에 노출된 희생자들(가족을 죽인 가해자이기도 한)에게선 어떤 원인을 찾기가 어렵다.

무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식의 암시를 던져두기는 한다.

 

낚시를 하는 일본인의 곁에 다가갔던 아주머니에게 일본인이 '암캐'라고 하는 장면과 술집에서 아주머니가 남자의 술시중을 드는 장면, 종구의 딸이 일본인을 만나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을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식의 대화와 사타구니 사이에서 두드러기가 시작되는 장면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다그치는 종구에게 효진이 대답하듯,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던져둔 미끼를 물고기가 물듯, 세상엔 고통이 만연하고 그 대상이 누가 되는가에는 뚜렷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저마다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하지만, 마지막까지 누구도 이유를 찾아내지는 못한다.

그리고 설령 그들에 대한 의혹이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의 '죄'가 그런 초자연적인 '벌'을 받아야 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만약 피해자들이 벌받을 짓을 해서 벌을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원죄의식과 유사한 사고방식을 지나치게 내면화한 것이 아닐까.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노출이 심한 복장을 했다거나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성관념을 실생활에서 보였기 때문이라고 은연중에 합리화하는 것처럼 말이야.

범죄의 책임을 그런 식으로 피해자에게 일정 부분 전가하는 것에는 고통의 근원에 원인이 없다면 고통이 가득한 삶이 너무 가혹해지기 때문일 거야.

 

세상에는 설명할 수 없는, 납득하기 어려운 고통과 아픔이 존재한다.

노화, 천재지변, 인간의 욕망이 난망으로 얽힌 대참사들이 어우러진 현실의 고통은 대상자의 조건을 가리지 않는다.

종교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세계의 근원에 대한 질문도 있겠지만, 가혹한 현세를 이겨내기 위한 노력도 있을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교적 설명은 원죄에 기대어 많은 부분을 설명함으로써 전지전능하고 착하지만 인간을 돕지 않는 신에게 알리바이를 준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가 겪는 고통들은 종종 인간의 인지를 뛰어넘어 자신을 돌아보고, 의심하고 고뇌하게 한다.

그 중에서도 다 자라지 않은 어린 아이(효진)들이 겪는 이유없는 고통은 우리 모두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화두를 던진다.

 

아이들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러한 고통을 겪는가?

 

그리고,

 

전지전능하고 선한 신은 존재하는가?

 

작품에서 무명은 크리스트교적 신을 대변하고 있는 듯 하다.

어디에나 있으며, 모든 것을 알고, 선한 의도를 가졌으되 악을 직접 징벌하지 않는 등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단 한 번, 무명은 종구의 물음에 너희가 믿지 못하고 의심하기 때문이라고 지나가듯 답하지만, 대체 종구는 무엇을 믿지 못하고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죽였을까.

밑도 끝도 없는 죄의식의 강요가

 

인간이란 본래 불완전한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들 잘 알 것이다. 무명의 대사를, '너희가 인간이기 때문에 고통받는다'라고 이해한다면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일까.

설명되지 않고, 납득되지 않는 모호한 선의를 믿는 것이 인간에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딸을 보호하기 위해 이해하기 힘든 초자연적 현상과 맞선 중구에게 주어진 것은 가족의 주검과 실성한 딸아이다.

절규하고 또 절규하던 종구에게 던져진 건 끝 없는 믿음에의 강요와 미지의 공포, 납득하기 어려운 부조리 뿐이다.


 

간혹 그런 말을 접하게 된다.

"하느님에겐 원대한 계획이 있다."

"그 분의 큰 뜻을 인간이 알기란 어렵다."

인간의 인지를 벗어난 고통 앞에 선 피해자에게 건네곤 하는 종교적 위로다.


 

전지전능한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선하지 않고

선한 신이 있다면, 그는 전지전능하지 않다.


 

인간의 고통과 피로 큰 그림을 그리는 신이 있다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 앞에서 인간은 '울부짖는 것(哭聲)' 말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7개의 댓글

2016.05.24
종교를 믿는 건 개인의 자유지만 인류의 탄생까지
과학이 증명해 주듯, 그런 곡성에서의 일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다.

그렇지만 극중 너무나 무능한 주인공을 보면서 현실이랑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했다.
0
2016.05.24
@G알렉스
종교를 믿는 건 개인의 자유지만,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도 '사필귀정'같은 개념은 어느 정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 나 또는 누군가에게 닥친 악재에 대해 피해자가 그럴만한 사람은 아닌가 하고 생각해버리는 것처럼 말이지. 마찬가지로 죄를 짓고도 그 어떤 벌을 받지 않는 자들을 보면서 '정의'나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을 잃기도 하고.
곡성에서 벌어진 일들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건 당연한 일이야. 작품은 현실을 반영해서 작자의 관점을 담아내는 것이지, 현실을 그대로 그리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종구가 내린 판단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리고 난 종구 정도면 꽤나 노력했다고 생각해. 인지범위를 벗어난 사건 속에서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인간은 드물거야.
0
2016.05.24
@밥왔어밥먹어
나는 굉장히 현실 판단 제대로 못하고, 그 악마가 되는 일본인 집에 가서도 굉장히 허술한 모습을 보여주고, 만나서도 허술하고, 굉장히 허술하고 어눌한 사람으로 묘사해서 현실이랑 너무 동떨어진 거같다.
0
2016.05.24
@G알렉스
응. 맞아.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해. 초반부터 겁이 많고 유약한 인상을 심어주려고 노력을 많이 하더라. 특히 일본인의 집에 처음 갔을 때가 가장 답답하게 묘사되었다고 봐. 감독이 일부러 인물을 제한시킨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어. 그래도 관점에 따라선 평범한 사람의 범주에는 들어가지 않나 하고 생각해.
0
응ㅂㅁ
0
2016.05.26
좋은 의견이다! 천우희를 선으로만 보기 어려운게 사실 의심의 씨앗을 심은건 천우희아님? 그게 시련울 주는 행위라면 왜 구래놓고 믿음이 없다고 하느지 모르겠어
0
2016.05.26
@제8690부대
고마워. 첫 글에 비추가 두 개라 슬펐는데. 천우희는 이렇다 저렇다 딱히 말이 없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편인데 의도 자체는 선해 보여. 겉으로 드러난 면만 보면 해를 끼치기 보다는 도와주려고 하니까. 다만 종구는 뭐가 뭔지 도통 모르겠는데 무턱대고 믿으라고 하니 오히려 그 자체도 시험이 되는 게 아닌가 싶어. 그리고 욥 같은 케이스는 진짜 별로야. 그런 게 진짜 신인가 싶네.
0
무분별한 사용은 차단될 수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추천 수 날짜
12413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그녀는 왜 일본 최고령 여성 사형수가 되었나 8 그그그그 5 1 일 전
12412 [기타 지식] 최근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국내 항공업계 (수정판) 14 K1A1 19 2 일 전
12411 [역사] 인류의 기원 (3) 식별불해 4 2 일 전
12410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재벌 3세의 아내가 사라졌다? 그리고 밝혀지... 그그그그 4 4 일 전
12409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의붓아버지의 컴퓨터에서 발견한 사진 3 그그그그 7 6 일 전
12408 [기타 지식] 도카이촌 방사능 누출사고 실제 영상 21 ASI 2 6 일 전
12407 [역사] 지도로 보는 정사 삼국지 ver2 19 FishAndMaps 14 8 일 전
12406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지구 2부 21 Mtrap 8 6 일 전
12405 [기타 지식] 100년을 시간을 넘어서 유행한 칵테일, 사제락편 - 바텐더 개... 5 지나가는김개붕 1 8 일 전
12404 [기타 지식] 오이...좋아하세요? 오이 칵테일 아이리쉬 메이드편 - 바텐더... 3 지나가는김개붕 2 10 일 전
12403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지구 1부 31 Mtrap 13 10 일 전
12402 [기타 지식] 칵테일의 근본, 올드 패션드편 - 바텐더 개붕이의 술 이야기 15 지나가는김개붕 14 10 일 전
12401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인류 2부 22 Mtrap 14 10 일 전
12400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인류 1부 13 Mtrap 20 10 일 전
12399 [역사] 군사첩보 실패의 교과서-욤 키푸르(完) 1 綠象 1 9 일 전
12398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체포되기까지 28년이... 1 그그그그 6 11 일 전
12397 [역사] 아편 전쟁 실제 후기의 후기 3 carrera 13 12 일 전
12396 [과학] 경계선 지능이 700만 있다는 기사들에 대해 34 LinkedList 10 12 일 전
12395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두 아내 모두 욕조에서 술을 마시고 익사했... 그그그그 2 15 일 전
12394 [기타 지식] 서부 개척시대에 만들어진 칵테일, 카우보이 그리고 프레리 ... 3 지나가는김개붕 5 15 일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