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사람과 사람에 대해) 복공증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비가 내리고 난 뒤 올라오던 그 흙냄새에도, 땅거미가 져서 어둠이 짙게 깔린 한적한 도로변에도, 
어느 한산한 시간에 네가 혼자 서있기 좋아하던 버스 정류장에서도, 내겐 다 마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우유병처럼,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추운 10월이었나, 가을바람이 몹시 불어 차가운 그것이 너와 내 사이를 지나갈 때였었다. 여느 때처럼 나는 헛헛한 복공증에 시린 마음이 시달리고 있었다.


  그 당시 너와 나는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지금은 생각나지 않지만 어쨌든 우리는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다퉜고 서로에게 화가 잔뜩 나서 그저 아무 말 없이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몇 분을 걸었을 때 문득 ‘왜 아무 이유 없이 우리가 다투고  있을까?’라는 생각에 울컥 화가 치밀었다.


 이윽고 나는 그 순간을 참지 못해 너에게 소리쳤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건데!」


 그 소리에 멈칫거린 너는 스르륵 뒤를 돌아보며 나에게 말했다.


 「… 없어졌어.」


 「뭐가  없어졌는데?」


 걸음을 멈추며 내 쪽을 향해 돌아선 네가 볼멘소리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 네가 없어졌어.」


 그렇게 말을 마친 너는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듯 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


 할 말을 잃고 너를 보았다. 둥그스름한 너의 눈망울엔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눈물이 뭉쳐 떨어지려 했다.


「왜 변한 건데?」


 이해할 수 없었다. 너는 뭐가 그리 슬프고 속상해서 그렇게 서서 울고 있는 건지. 그리고 변하지도 않은 내가 변했다고 말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너의 물음을 뒤로 두고 그 자리서 이제껏 걸어온 길의 반대편으로 발을 움직였다.

{쏴아아-}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렸다.

우산을 들고 오지 못한 너와 나는 야외 차양막이 설치된 근처 카페테라스로 자리를 옮겼다.


자리를 옮긴지 얼마  안 되어서 비가 거세졌고 거센 빗줄기는 우리가 서있던 테라스 위 차양 막을 두드려댔다.


그 시끄러운 소리에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몇 초쯤 지났을까? 결국 우리 사이에 드리워진 정적의 벽을 허물었던 건 역시 너였다.


여느 때와 같이 너는 나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웃으며 내게 말했다.


「다시 만났네.」


 눈물이 흐른 뒤라 퉁퉁 부은 너의 눈가가 빨갛게 보풀아 올랐다.


하지만 너는 방금 전까지 울었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환한 미소를 내게 지으며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나지막한 나의 말, 나의 말에  불현듯 스친 불길한 생각을 현실로 만들기 싫었는지 너는 내가 말한 그 모든 것들을 바로잡으려 애써 웃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들이 낯설고 덧없게만 느껴졌다.


 「미안해.」


 너의 한마디, 나는 너에게  사과받고 싶은 생각조차 없었는데, 너는 왜 내게 사과를 하는 것일까.


 「상관없어.」


 기계적으로 내가 대꾸했다. 아니, 그냥 이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 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나를 바라보던 너는 나를 보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내가 알던 너는 그렇게 ‘목석’ 같지 않았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변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변한 것 같지 않은데, 내가 뭐가 변했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시 또 네가 말을 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대화는 캐치볼이라 생각해.」


 너는 그렇게 말하곤 한 박자 말을 아꼈다. 일 초… 이 초… 그리고 삼 초… 시간과 너는 마치 내가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기다리는 것처럼 조용하고 느리게 흘러갔다.


 「…….」


 하지만 나는 좀처럼 너에게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잠시 잠깐의 정적, 그 일, 이초 되는 잠깐의 시간이 몇 시간 이 흐른 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다.


쭈뼛 거리며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당황스러운 표정이 역력한 나를 보며 너는 다시 내게 말을 이었다.


 「나는 아직도 네가 좋아.」


 너는 내가 너에게 여태껏 해왔던 말과는 반대로 너는 나를 다  이해한다는 듯이 말해줬다.


다시 네가 벙 쪄있는 표정을 짓고 있는 나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했다.


 「너에게 공을 던졌어. 이제 네 차례야.」


 그래 잘 알고 있다. 내 차례다. 그런데…


 「…….」


 누가 내 입에 풀을 발라놓았는지, 딱 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못했다.

{후드득-}

 차양 막을 세차게 두드리며 떨어지던 빗방울도 그 빗방울이 만들어낸 작은 물줄기도 이내 내가 해야 할 말을 기다리다 지쳤는지, 다들 한 숨 잦아들었다.


너는 회색으로 식어버린 그런 하늘을 올려다보며 다시 내게 말했다.


 「너는…」


 「잠깐.」


 왠지 두려웠다. 그 두려움에 나는 말을 이었다.


 「하지 마. 더 이상  얘기하지 마.」


 순간, 다시 돋친 이 허한 증세는 시간이 들수록 잦아들지 않았고 오히려 마음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썽을 부렸다.


불현듯 내 앞에 있는 네가 무섭고 두려웠다. 그저 ‘헛헛해진 마음이 만들어낸 공포’였으리라 생각했다.


 내가 만들어낸 잠시 잠깐의 틈을 타 나는 너에게 벗어나려 테라스 밖으로 쫓기듯 뛰쳐나왔다.


나오는 그 찰나의 순간, 바로 뒤에 서있던 너를 보았을 때 너는 그저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서 있었을 뿐 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끝맺음을 잊지 못한 너의 말이 내 마음 안으로 제멋대로 비집고 들어와 무언가를 ‘쑹덩’ 뽑아 허기진 마음의 틈으로 내던져 버렸다.


다시 또 바람이 불어온다. 내 마음 한 구석이 밑 빠진 항아리처럼  더욱더 허한 느낌이다.


몇 분 뒤, 허한 마음을 달래 보려고 정처 없이 돌아다니느라 정신이 팔려서 일까? 어느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버스를 타고 익숙한 거리를 벗어나 교외로 나와 있었다.


내가 탄 버스는 낯선 기을 따라 한참을 나아갔다. 한 참을 가다 보니 때마침 무언가에 홀린 듯 어느 한 정류장에서 내리게 되었다. 버스 밖으로 나온 나는 주변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사위는 아무것도 없었고 오로지 탁 트인 들판과 그 위로 잿빛 하늘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하늘 바로 밑으로 내 마음과 같은 텅 빈 거리가 홀로 모습을 보였다.


  「텅 빈…」


  그야말로 텅 빈, 그것도 아무것도 없는 그 거리에 나도 모르게 반한 건지, 한 걸음씩 내딛고 있었다.

 {너는 그렇게 ‘목석’ 같지 않았어.}

 네가 한 말이 생각나기 시작한다.


 「내가 뭐가  달라진 걸까.」


 거닐던 거리를 바라보며 들려오지 않는 대답을 허공에 내뱉었다.


하지만 대답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나는 그 의문을 뒤로 밀어둔 채 다시 거리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들판이 보이는 풍경, 저 멀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 그리고 내가 밟고 서있는 이곳의 흙은 거닐수록 그 냄새와 소리와 풍경이 더욱 짙어졌다.


문득 떠올랐다. 네가 좋아하던 흙냄새, 비가 내린 후에 올라오던 그 흙냄새가 그렇게 좋다던 네가, 감색 우산을 높이 치켜들고 비에 옷자락이 젖어 들어가는 줄도 모르는 체 내 앞에서 환한 미소로 뒤 돌아보며 웃음 짓던 네가 들숨을 통해 허기졌던 내 마음을 한 김 가라 앉혔다.

  희한하게도 오늘 처음 봤던 이곳, 이 거리에서 오래 봐 왔던 너의 모습이 사근이  포개어져 마음이 어릿해졌다. 


비 온 뒤 갠 하늘 밑에 드리워진 흙 길은 몇 시간 전에 내린 빗방울이 그려놓은 테석테석한 모양을 띄고 있었다. 그 구부렁한 길을 지나 슬슬 걷다 보니,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는 거리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렇게  몇십 분이 흘렀을까, 뒤를  돌아왔던 거리를 다시 걸어갔다. 이번에는 올 때 봐왔던 너의 모습들이 마치 미술관에 온 듯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헛헛했던 복공증과는 다른, 허기가 맴돌았다.


터덜거리는 발걸음으로 기신 거리며 아까 내린 정류장에 도달했을 때, 눈앞은 한적하고 근사한 버스 정류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류장 의자에 걸터앉아 올려다본 하늘은 역시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아무것도 없었다.


티끌 하나 없이 반짝이는 하늘을 쳐다보니, 아무런 느낌도, 감정도 없었다. 그저 외롭고 공허하고 쓸쓸했다.


다시금 헛헛증이 도진 것 일까? 다른 생각을 해보자, 풍경을 보아하니 네가 좋아했던 것처럼 버스정류장 주위에는 사람 하나 없이 한적하고 고요한 풍경의 연속이었다.

「참…….」
나는 문득 네가 무엇이 그렇게 좋아 이런 곳을 좋아했는지, 참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처음 만나 같이 앉아있던 정류장이 떠올랐다. 서로 아무 말 없이 앉아있던 정류장 의자에서, 서로 입 맞추던 그때가....... 어떤 느낌이었더라? “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역시 너의 말 그것 그대로 ‘목석’으로 변해 있었나 보다.

 한 참을 추억에 젖어 있다가. 멀리 엔진 소리가 들려온다. 아무 말 없이 소리가 들려오는 도로를 바라본다.

멀리 버스가 온다. 정류장 바로 앞으로 버스가 정차하자 나는 버스에 올라타 뒤쪽 끄트머리 창가에 자리를 잡고 밖을 바라보았다.


어두컴컴해진 밖은 아무것도 아무런 것도, 아무랄 것도 없었다. 어두워진 밖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나는 나를 왜 여기 이곳으로 이끌었던 것일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단순히 우연으로 여기 온 것일까?’ 물어본 내가 바보지, 대답이 있을 리가 없다.


「무슨 생각인 거지 나도…….」


그렇게 생각을 입에 물고 있을 때였다. 어느덧 버스는 낯선 교외를 등지고 빠르게 움직이는 도시 한 가운데로 방향을 틀며 나아가고 있었다. 조용한 버스 안에는 다음 목적지를 알리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번 정류장은 ‘D역 2번 출구’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방송이 흘러나왔고 버스가 잠시 멈추었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들어온다. 문이 닫혔다. 방금 전까지 한산했던 버스 안은 듬성듬성 사람들로 채워졌다.


문이 닫히기 전, 나는 창가를 바라보았다. 회색 구름 사이로 내려오는 한 줄기 빛 무리가 서서히 걷혀가는 비층구름 사이로 새하얗고 뭉실뭉실 켜켜이 쌓인 적운, 가만히 바라보다, 문득 유리에 비친 내 얼굴이 비쳤다.  그때였다.

{삐이익-}
문이 열리고

{휘이익-}
유압이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부우웅-}
그리고 버스가 출발했다.

 몇 초,  몇십 초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이 그 찰나에 시간에 계속해서 창에 비친 나를 바라보았다. 바라봤다. 그리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벨을 누르며 소리쳤다.


 「세워주세요, 죄송합니다.」


 버스가 정차했다. 나는 한달음에 버스에서 내려 거리를 내달리고 다시 또 내달렸다. 조금 낯설던 거리에서 익숙해진 거리가 나올 때까지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고통도 잊은 채 달렸다.

 {대화는 캐치볼이라 생각해.}

 헤어질 때 네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젠장!」

 네가 왜 그런 말을 했을지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역시 나는 너에게 있어서  무책임하다는 걸, 나를 향했던 너의 마음을 완전히 무시했던 것이다.


 {나는 아직도 네가 좋아.}

 도대체 왜? 의문이 든다. 내가 처음 너에게 ‘이별을 말했을 때 네가 나에게 이 말을 해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왜 너는 나에게 이 말을 전하기 위해 이토록 오랜 시간을 주었나. 너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비가 내린 거리, 어둑해질 무렵 거닐었단 인도, 어느 한산한 시간대에 우리 둘을 빼곤 아무도 기다리는 이 없는 버스 정류장, 우리가 나눠가졌던 수많은 그리고 소중한 기억들.......

 거의 다 왔다. 아직 그곳에 네가 있을까?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거기 가만히 서서 나를 기다려줄까? 아니,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나의 발은 힘을 잃어갔지만, 나는 속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한 발자국 딛기조차도 어렵고 힘겹긴 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네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아서…….



  이윽고, 우리가 헤어진 그 장소로 다가갔을 때,

  거기 그곳엔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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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댓글

2018.07.22
그 사람과 그 장소
0
2018.07.22
글 예쁘게 잘 쓴 거 같은데 괄호가 넘모 다채롭자너;;
0
무분별한 사용은 차단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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