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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금) 국제봉사단체의 원조, 구호기사단에 대해 알아보자 (역사)



http://www.dogdrip.net/164259204← 지난번 글


안녕 개드리퍼들?
오늘은 지난 시간에 다루었던
성전기사단에 이어서
그들의 영원한 라이벌이자 동료였던
구호기사단에 대해서 알아볼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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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호기사단의 뿌리는 1023년 이탈리아 출신 상인들이

세례자 요한의 무덤이라 전해지는 곳에 세운 병원에서 시작됐어

병원은 의료활동 등 순례자들을 구호하는 역할을 했지

1차 십자군을 따라 이탈리아 아말피 또는 브루군트 출신으로

추정되는 베네딕트회 수사 제라드도 이 곳으로 오게되는데

1080년즘 되면 그가 이 병원을 이끌게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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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구호기사단장 제라드, 그의 정확한 성은 알려져 있지 않다


1차 십자군이 성공을 거두고 그들이 세운

예루살렘 왕국이 성지의 온갖 부를 빨아드리자

제라드의 병원에도 힘과 재력이 모이기 시작했어

1113년에 이르면 성지 순례길을 잇는 요충지들은 물론,

이탈리아와 프랑스 곳곳에 자매 병원을 거느린 단체로 성장하게되


이 즈음에는 도리어 이들이

명목상 상위기관이었던 성 마리아 라틴 수도원에 

영향력을 행사할 지경에 이르기되지


이를 꽤뚫어본 교황 파스칼 2세는 이들을 

주권단체로 만들 경우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알아보고

그 해, 제라드의 의료단체를 공식적인 기사단으로 인가했어


예루살렘의 성 요한의 구호형제회라는 

이름으로 기사단이 창설되었고

이들은 병원을 뜻하는 Hospital 에서 따와

Hospitaller, 구호(병원)기사단이라고 불리게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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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기사단은 검은색 바탕에 

특유의 흰색 십자가를 상징으로 사용했어

 기사단으로 개편된 뒤에는 

기존의 의료, 구호활동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군사활동에 중점을 두기 시작했지


hospitaller.PNG


기사단으로 개편된 초창기에는

예루살렘 주변 경계나 순례자 보호 등의

소규모 군사 임무를 주로 맡았지만

점차 조직이 확대 되가면서 

레반트 일대에 백여 곳의 성과 요새를 소유한

거대 군사집단이 되었어


구호기사단은 라이벌이기도 했었던

성전기사단과 함께 예루살렘 왕국을 

지탱하는 기둥 역할을 했지


rivaly.PNG

구호기사단과 성전기사단 사이가 항상 화목했던건 아니야


레반트 전역에서 구호기사단

여러 괄목할만한 군사적 성과를 냈는데

비록 패배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용맹함을

보여주는 예로 크락 데 슈발리에 전투가

많이 알려져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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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리아에 있는 크락 데 슈발리에 성의 모습


프랑스어로 "기사들의 성채"라는 뜻의

크락 데 슈발리에는 십자군 국가중 하나인

트리폴리 백국이 기존에 있던 요새를 

확장 공사해서 세운 곳인데

12세기 중반엔 구호기사단의 소유가 되어

기사단의 지역 거점으로 사용되고 있었어


13세기 후반엔 십자군이 쇠퇴하고

이슬람군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는데

맘루크 술탄 바이바르스가 주변 요새들을

함락시키고 1만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이곳을 포위공격해


당시 요새에 있던 구호기사단 병력은 700여명에 불과했지만

약 한달 동안 초인적인 힘으로 공격을 버텨냈어

결국 성벽이 무너져내려 외성이 돌파당했지만

기사단은 내성으로 후퇴해 필사적으로 저항했고

열흘을 더 버텨냈지 혀를 내두른 이슬람군은

트리폴리에 있던 구호기사단장이 

"더 이상 가망이 없으니 그만 항복하도록해~♡"

라는 편지를 보낸 것 처럼 수작을 부렸고

성에 있던 기사단은 편지가 가짜란걸 알았지만

내심 속은척하면서 성을 내주었어

뭐 덕분에 술탄은 이들을 모두 풀어주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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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 말기의 구호기사단


13세기 중반 교황 인노첸시오 4세의 칙령 이후부터 

구호기사단은 기존의 검은색 대신 붉은색 바탕에 

흰색 십자가를 상징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어

검은색은 고위 간부들의 예식용으로만 사용됐지


아무튼,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울어가는 예루살렘 왕국을 구할 길은 없었고

결국 마지막 거점 아크레가 함락당하면서

예루살렘 왕국은 멸망하고말아


갈 곳 잃은 기사단들은 인근의 섬으로 도망쳤지

튜튼기사단은 이미 발트해 쪽에 자신들만의 나라를 일구고 있었고

성전기사단은 서유럽에서 돈장사하는데 정신이 팔려있었지

따라서 두 기사단이 성지에 대한 흥미를 급속도로 잃었던 것과 달리

구호기사단은 성전 외에는 몰두할 것이 없었어

이들은 언젠가 성지를 다시 되찾을 것이라 믿었고

당시 동로마제국이 소유하고 있었던

로도스섬을 빼았아 거점으로 삼았어

바다 건너 아나톨리아 반도의 해안가 마을과

몇몇 항구도 점령해서 

이슬람과의 전쟁을 계속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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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형당하는 성전기사단원들


그러던 중 14세기 초 

오랜 라이벌이자 전우였던 성전기사단

이단으로 몰려 말그대로 개박살 당하는 대사건이 발생하고 말아

 이건 구호기사단에게 가뭄의 단비로 작용했는데

성전기사단이 해체되면서 성전기사단의

일부 자산과 인력들이 구호기사단으로 유입되었어

덕분에 구호기사단은 유럽 곳곳에 지부를 둘 수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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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중반 동지중해 세력도. 가운데 파란색이 구호기사단의 영역


구호기사단은 로도스 섬 일대를 영토로 

튜튼기사단이 그러했던 것 처럼 기사단국가로 변해갔고

이 시기 슬슬 구호기사단이란 이름보다

로도스기사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해


기사단은 15세기에 이르면 이슬람 항구를

약탈하거나 이슬람 선박을 습격하는 일종의 

해적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어

 주 활동 무대가 섬과 바다가 되다보니 기사단은

해상전과 상륙전의 전문가가 되어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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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초반의 구호기사단


하지만 기사단의 해적질에 시달리던 오스만 제국은

결국 1522년 슐레이만 1세가 친히 로도스 원정을 감행했고 

기사단은 주민과 병사가 합심해 수개월 동안

공세를 버텨냈지만 결국 로도스를 상실하고

섬에서 축출당하고 말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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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주인이라 불렸던 카를 5세


 영토가 없는 실향민이 되버린 기사단은

잠시 갈곳 없이 떠돌다가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해적으로 고심하던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가 해적을 막을 요량으로

1530년 몰타 섬을 구호기사단에게 내주었어

해적은 해적으로 막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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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타 섬과 그 일대 구호기사단의 영토


몰타 섬에 자리를 잡은 기사단이

안도의 숨을 내쉬기도 전에

또 다른 시련이 기사단에 닥치는데

종교개혁의 광풍이 기사단에도 몰아친거야


당시 독일에서 촉발된 구교와 신교의 대립은

기사단에서 똑같이 재현되고 있었어

1540년 기사단의 영국 지부가 재혼 문제로

교황과 마찰을 겪던 영국 국왕 헨리 8세에 의해

영국성공회로 돌아섰고 

16세기 후반에 이르면 브란덴부르크 지부를

중심으로 독일지역 구호기사단이 

루터파 신교로 돌아서기 시작해

30년 전쟁이 끝난 뒤 폐허가 된 독일 지역 기사단은

이 후에 프로이센이 신교 기반으로

요한기사단(Johanniterorden)이라는 이름으로 재건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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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불씨를 당긴 마틴 루터


아무튼 유럽 곳곳의 기사단 지부와 단절되어 갔지만

몰타의 구호기사단은 건재했고

이들은 이곳에서 독립된 주권을 가진

기사단 국가로서 전성기를 맞이하게되지


몰타의 구호기사단과 단절된 각 지부들은

여전히 구호기사단이라는 명칭을 사용했기 때문에

구별하기 편하게 이제부터 몰타의 구호기사단을 

몰타기사단이라고 부르도록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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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몰타기사단


1565년 오스만의 대군이 몰타를 침공했지만

기사단은 최후의 순간 부상자까지 나가 싸우는

결사항전을 벌여 오스만군을 격퇴하고

 

1571년 기사단 함대도 참전한 레판토 해전에서

기독교 연합 함대가 오스만 함대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면서

몰타기사단은 지중해의 강자로 올라서기 시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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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판토 해전


강력한 함대를 바탕으로 지중해의 제해권을 장악한 

몰타기사단은 이슬람 선박들을 습격하고

아프리카와 중동 항구들을 공격해 

노예사냥을 벌이는 한편 노예로 잡혀간 기독교도들은

구출해서 다시 유럽으로 데려오는 활동을 했어 


이를 통해 기사단은 지중해 노예무역 중심지가 되었고

막대한 부를 빨아들였어

또 강력한 해군을 지속적으로 육성할 수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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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에 기사단이 바로크 양식으로 개축한 카스티야 궁

현재 몰타 공화국의 총리 관저로 사용되고 있다


이후 수백년간의 해상전 노하우가 쌓이고 쌓이다 보니

기사단은 해군 분야의 권위자로 대우 받았고

많은 수의 기사단원들이 유럽 각국의

해군으로부터 초청받아 각종 요직에서 근무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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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해군장관, 피에르앙드레 드 그랑드베스-카스텔레


특히 프랑스 해군과 러시아 해군이

몰타기사단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는데 

기사단원이었던 프로방스 귀족 출신 피에르앙드레

18세기 후반, 7년 전쟁 때 영국 해군에 대항해 프랑스 해군을 지휘했고

말년엔 프랑스 해군장관 자리에까지 올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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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 건너 카리브해에 기사단이 보유하고 있었던 영토


또 카리브해에 있는 프랑스령 서인도제도에

행정관으로 파견된 기사단원 필리프 드 롱빌리에

 말년에 카리브해의 섬들을 사들였고

이 땅들은 몰타기사단의 영토로 남았는데

흥미를 잃은 기사단이 프랑스 서인도회사에

섬들을 매각할 때까지 잠시나마 기사단은 

해외 식민지도 보유하고 있었던 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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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해군 제독, 줄리오 레나토 리타

 

1788년 제정 러시아의 여황제 예가테리나 2세

임박한 스웨덴과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당시 몰타기사단장이었던 엠마누엘에게 

러시아 해군 재건을 위한 고문관 파견을 요청했고  

이에 따라 밀라노 출신 줄리오를 필두로 한 

몰타기사단이 러시아 해군에 파견되었지


이들은 제정 러시아 해군을 거의 무나 다름 없는 상태에서

다시 일으켜 세웠기 때문에 러시아 해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어

러시아에 고문관을 파견한 기사단의 선택은

후대에 결정적인 신의 한수가 되지, 아무튼

기사단의 도움으로 러시아 해군이 승리를 거두자

예카테리나 2세 뿐만이 아닌

해군에서 복무했던 황태자 파벨과도

기사단은 두터운 친분 관계를 쌓을 수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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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 유럽을 혼란의 소용돌이로 

밀어넣는 대사건이 발생하는데

바로 프랑스 혁명이 터진거야

1793년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는 단두대에서

성난 군중에 의해 목이 잘렸어

곧이어 프랑스에는 혁명정부가 들어섰고

혁명정부는 귀족과 종교로 대변되는 구체제를 불살랐어


프랑스에 있던 기사단 지부를 비롯한

기사단의 많은 자산들은 종교라는 구체제의 유산이었기에 

혁명정부에 모조리 몰수 조치 당했지


그리고 뒤이어 역사의 희대의 먼치킨이 등장하는데

그게 누구냐면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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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이 아저씨야

나폴레옹은 아직 인기 많은 일개 장군에 불과했고

그의 대중적 인기를 두려워한 혁명정부는

나폴레옹으로 하여금 바다 건너 

영국령 이집트를 공격하도록 했어

당분간 얼굴 안보겠지~

가서 아예 못돌아오면 더좋고~


이집트를 치려면 지중해를 건너가야 했고

중간에 보급을 받을 수 있는 기착지가 필요했는데

나폴레옹 눈에는 몰타 섬이 최적의 장소로 보였어

1798년 나폴레옹은 함대를 이끌고 

몰타의 수도, 발레타 항으로 왔고

전 함대의 기항을 요구했어

기사단장 페르디난트 폰 홈페쉬

기사단의 중립을 지키기 위해서 프랑스 함선은 

한번에 두척씩만 들어올 수 있다며

나폴레옹의 요구를 거절했지


나폴레옹은 홈페쉬가 자신의 요구를

거절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발레타를 공격하라고 명령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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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타에 상륙하는 프랑스군


프랑스 함대가 포격을 시작했고

곧이어 프랑스 상륙부대가 섬의 주요 거점 일곱 곳을 점령했어

같은 기독교도와 싸우지 않는다는 규율

그리고 기사단원들의 상당수가 프랑스 출신이었기에

기사단의 뚜렷할만한 반격은 없었고

약 2천명의 몰타 주민들만이

다음날까지 침략군에 저항했지


발레타의 기사단 요새는 장기간의 공방전도

견딜 수 있었기 때문에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던

나폴레옹은 홈페쉬와 협상을 했어


결국 홈페쉬는 자기 자신과 남은 기사단원들의

거처를 프랑스가 제공해준다는 조건으로

프랑스군에 항복하고 말았지


400년 가까이 기사단의

집이 되주었던 몰타

프랑스 손에 넘어가고 만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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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대 구호기사단장 페르디난트 폰 홈페쉬


 홈페쉬몰타를 떠나 트리에스테에 새로운

기사단 본부를 차렸지만 단원들은

그에게서 등을 돌렸고 1799년 조용히 단장 자리에서 내려왔어

류블랴나에서 지내다가 1804년 프랑스 몽펠리에로 왔고

프랑스 정부로부터 연금을 보장받았었지만

 말년은 무일푼으로 비참하게 살다 천식으로 죽었어


이제 구호기사단도 그 운명이

다한 것 같아 보이지만

아직 슬퍼하기엔 일러


우리의 구호기사단

앞서 사라져간 다른 기사단들처럼 

그렇게 간단히 역사의 한 페이지로 잊혀질

그런 기사단이 아니야!


갈 곳 잃은 기사단원들은 또 다시

유럽을 방황하기 시작했는데

이들 다수가 다시금 재기를 꿈꾸며 향한 곳이 있었어

이미 수십년 전부터 동지들이 거처를 마려한 곳이었지

어디일 것 같아?



그래 맞아, 

전대 기사단장 엠마누엘이 내린 

신의 한수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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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황제 파벨 1세  


어머니를 이어 1796년 차르의 자리에 오른

새로운 황제 파벨 1세는 

황태자 시절 해군에서 복무하면서

고문단으로 와있던 구호기사단원들

특히 줄리오 레나토 리타와 

두터운 친분관계를 맺고 있었어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와있던

구호기사단원들은 몰타의 함락 소식을 듣고는

황제 파벨 1세를 새로운 기사단장으로 추대했지

황제도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고

1798년 공식적으로 자신이 새로운

구호기사단장이 되었음을 알리는 칙령을 내렸어

당시 나폴레옹에 의해 프랑스에

감금되어 있던 교황 비오 6세는 

이 소식에 축성(blessing)까지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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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기사단 예복을 입은 파벨 1세


이에 차르를 도와 언젠가 몰타를

되찾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400명에 이르는 기사단원들과 간부들이

러시아로 향했어


파벨 1세는 구호기사단을

전폭적으로 도와주었는데

1810년까지 기사단 예산의 9할이 

러시아 정부로부터 나올 정도였어


하지만 기사단을 도와주던

파벨 1세는 1805년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게되

그 뒤를 이은 알렉산드로 1세

정교회 신앙을 이유로

기사단장 자리를 계승하는 것을 거절했어


St._Angelo.jpg

현재 몰타 섬에 남아있는 기사단의 요새


따라서 파벨 1세가 사망한 1805년부터

구호기사단장 자리는 공석이 되었고

1879년 교황 레오 13세가 로마에 기사단을

위한 새로운 본부를 마련해줄 때까지 

단장 없이 부관들로만 운영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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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외곽에 있는 기사단 본부. 빌라 델 프리오라토 디 말타 


로마로 거처를 옮긴 뒤 

구호기사단은 조직이 맨 처음 탄생했을 때

내세웠던 조직 목표인 의료지원, 구호 활동이라는

본연의 임무로 돌아갔어

일종의 국제의료봉사단체가 된 거지


양차 대전을 거치는 동안

기사단은 의료 봉사와 인류애에 기반한 

구호 활동에 매진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지금도 과거 기사단이 그러했던 것 처럼

여러 나라에서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 대우를 받고 있어


Palazzo_di_Malta_(Roma).jpg

로마 시내에 있는 기사단 본부. 몰타기사단 국기가 걸려있다.


재미있는 건 여러 나라에게 독립 국가로

인정 받고 있기 때문에 구호기사단이 본부로 사용하는

건물들은 일종의 외국 영토로 간주한다는 사실이야.

그래서 만약 개드리퍼들이

"이 세상에서 제일 작은 나라가 무엇이냐?"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고민없이 구호기사단이라고 답해도

문제가 없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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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몰타기사단군


소규모이긴 하지만 자체적인 군대도 갖추고 있어

기사단의 군사 조직은 약 30대의 차량과

의료장비, 의료요원들로 이루어져 있고

정비 인력은 이탈리아육군 철도공병연대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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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 본부에 게양되어 있는 몰타기사단 국기



당연히 기사단은 참관국의 자격으로 

유럽연합에도 참여하고 있어

기사단은 지금 이 순간에도 기사단 국기를

어깨에 달고 세계 곳곳에서

질병, 재난, 내전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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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베들레헴에 있는 몰타기사단 성가족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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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무슬림 난민들을 검진하는 몰타기사단 의료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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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파리 테러 당시 몰타기사단 의료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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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기사단인 만큼 수사와 수녀들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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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일 80대 구호기사단장으로 선출된 지아코모 달라 토레 델 템피오 디 상구이네또 

이름 겁나 기네


이렇듯 구호기사단은 900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어

그리고 그 긴 역사 만큼이나

이번 글도 엄청나게 길었다..

쓰다 죽는줄..


medieval_knight_by.jpg


암튼 스크롤 내리느라 

고생 많았고

다음에는 또 재미있는

글로 돌아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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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개의 댓글

2018.05.23
자작추
0
2018.05.23
캬 역시 기사단하면 구호기사단이지
0
2018.05.23
난 저 16세기 갑옷이 넘모 좋아
0
tan
2018.05.23
@중갑옷빌런
닉값....
0
2018.05.23
@중갑옷빌런
닉값 ㅇㅈ합니다
0
2018.05.23
ㅊㅊ
0
2018.05.23
개재밌다
0
2018.05.23
난 성전기사단 보다는 구호기사단이 더 좋음. 살라딘도 성전쪽은 그렇게 싫어했다는데 그래도 구호쪽은 전투는 하더라도 적 아군 가리지 않고 치료해줘서 인정했다고.
0
@뭘로해야되냐
대단하네 ㅋㅋ 근데 그렇게 살려내면 고문관이 데려가는거 아녀?? ㅋㅋ 개종하라고
0
2018.05.23
와 대박이다..
0
2018.05.23
십자군 전쟁보면 종교에 미친 사람들이 어디까지 갈 수 있나를 알 수 있는듯.
0
@백수입니다
종교 없이 더 막대한 피해를 낸 1, 2차 세계대전을 보면 종교 아니더라도 다른이유로 사람이 어디까지 갈수 있나 궁금해지지
0
2018.05.23
이정도면 시공사 통해서 책 하나 내도 될 듯하다. 내 마음속에선 너도 기사다. 추천박고 간다.
0
2018.05.23
저번글도 그렇고 브금이좋아서 다읽고 브금켜둔다 ㅊㅊ
0
사랑에빠져버렷어
0
다음번에는 바둑기사 장기기사 소개ㄱㄱ ㅋㅋ
0
2018.05.23
참고로 개붕이들이 좋아하는 환타지 게임의 클래릭들은 구호소기사단이 모티브란다.

왜 치료를 한다는 성직자가 철판갑옷을 입고 철퇴를 휘두르고 다니는지 의아해했을 개붕이들도 있을탠대

이유는 실제로 그랬으니깐 이야.
0
2018.05.23
@ㅋㅋㅎ
이해가 가는구만
0
@ㅋㅋㅎ
성기사가 구호기사단이 모티브였군요.
성기사이즈킹!!
0
2018.05.23
재밌는데 졸려서 도저히 마저 못읽겠다 와드박아두고 내일 읽을게
0
2018.05.23
구호 기사단하고 성전기사단 보니까 그 겜 생각난다 마운트 앤 블레이드였나? 거기서도 구호하고 성전 기사단은 최강으로 나오는데 흑기사 제외하고
0
2018.05.23
빨아'드리'자랑 이끌게'되' 에서 내렸다...
하지만 정성글 같으니 추천은 박는다
1
2018.05.23
여기서 포인트는 동롬에게서 로도스 섬을 뺏었다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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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라이너
마 그럴수도잇지 돈도안갚는 동롬 말이많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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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3
와 재밌네 계속 이어줬으면 좋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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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3
성전기사단보다 훨씬 멋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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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3
기사단 수녀 ㅗㅜ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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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3
이정도면 구호기사단 여행 안해봤을리가 없겠네..
아침 출근길에 역사공부 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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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3
이정도면 구호기사단 여행 안해봤을리가 없겠네..
아침 출근길에 역사공부 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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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3
이정도면 구호기사단 여행 안해봤을리가 없겠네..
아침 출근길에 역사공부 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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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타 십자가 씹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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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3
성기사 조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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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3
재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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