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이야기

[발 페티쉬 문학] 후미코의 발 -다니자키 준이치로


개드립에도 발 좋아하는 변태들이 많은거 같으니 어디 한번 이 고전작 읽으면서 꼬츄 부여잡고 헉헉대보시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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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단 한번의 면식도 없는 백면서생인 제가 돌연 이 같은 글을 올리는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부디 지금부터 제가 선생님께 말씀드리는 이 긴 얘기를 끝까지 읽어 주시기를, 바쁘신 와중에 대단히 황공스럽습니다만 미리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다소 제멋대로 생각한 것이라 여겨집니다만, 제가 말씀드리는 이 얘기가 선생님께는 그다지 흥미 없는 일은 아니리라 저는 은근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조금이라도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이 얘기를 언젠가 선생님 작품의 소재로 쓰셔도 저는 한치의 이의도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큰 영광으로 여기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훗날 선생님께서 반드시 이 이야기를 소설로 써주시길 바라고 있기 때문에 내심 그런 심정으로 이 편지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선생님이 아니라면, 제가 늘 존경하는 선생님이 아니고서는 이 얘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딱하고 불가사의한 심리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이 주인공의 신세를 동정의 눈길로 봐주실 분은 선생님뿐입니다. 이렇게 생각한 것이 제가 선생님께 글월을 올리게 된 첫번째 동기입니다. 그리고 이 얘기를 들어만 주신다면, 물론 그것으로 저는 충분히 만족하겠습니다만, 가능하면 부디 소설의 소재로 써주시기를 바랍니다. 너무 비위 좋은 부탁을 드려 역정을 내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 해주시면 이 얘기의 주인공도 필시 기뻐할 것입니다. 아무튼 이 얘기 속에 들어 있는 일은 선생님처럼 상상력이 풍부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신 분에게는 일독의 가치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저처럼 글재주 없는 남자가 쓴 탓에 특별히 이렇다 할 것은 없지만, 부디 사실 그 자체에 흥미를 가지고 끝까지 읽어 주시기를 거듭거듭 부탁드립니다.






 이 얘기의 주인공은 일전에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성은 쓰카코시라 하는데 에도 시대 때부터 니혼바시의 무라마쓰초에서 전당포를 생업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제가 얘기하려는 이 쓰카코시는 정확히 선대에서 10대에 해당되는 사람입니다. 지금으로부터 두 달 전인 금년 2월 18일쯤에 죽었는데, 나이는 예순두 살이었습니다. 마흔 살 전후부터 당뇨병에 걸려 씨름 선수처럼 푸석푸석 불어난 몸이 정확히 5,6년 전에 발병한 폐결핵 때문에 해마다 여위어 가다 죽기 1,2년 전부터는 꼬챙이처럼 바짝 말라 오랫동안 가마쿠라에 있는 시치리가 해변 별장에서 요양을 했는데, 당뇨보다도 폐가 점점 나빠져 급기야는 돌아가신 것입니다. 가마쿠라로 옮기면서 자신은 은퇴하고 양자인 가쿠지로에게 전당포를 물려줬기 때문에 가족들은 그를 <인쿄隠居>라 부르게 됐답니다. 저도 지금부터 그를 <인쿄>라 부르겠습니다. 인쿄는 도쿄에 사는 가족들과 대단히 사이가 좋지 않아, 환자가 숨을 거둘 때 임종을 지켜본 가족은 외동딸이자 가쿠지로의 아내인 하쓰코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쓰카코시 집안은 에도의 유서 깊은 가문으로 도쿄 시내에만도 내로라 하는 친지들이 대여섯 집이나 있는데도 병문안 한 번 오지 않았고, 장례식도 지극히 간소하고 쓸쓸하게 치렀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인쿄의 병 상태나 죽기 전후의 상황 등을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그때 머리맡에서 시중을 들던 잔심부름꾼 오사다와 첩 후미코 그리고 저 세 사람뿐입니다. 여기서 잠시 밝혀 둬야 할 것은 저와 인쿄의 관계, 더불어 제 처지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야마가타 현의 아쿠미 군 태생으로 올해 스물다섯살 된 미술 학교 학생입니다. 저희 집은 쓰카코시 집안과 아주 먼 친척뻘로 제가 처음 도쿄에 왔을 때 달리 의지할 곳이 없어 우에노 정거장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의 편지를 품고 무라마쓰초의 전당포를 찾아갔습니다. 그 무렵은 아직 인쿄가 전당포 주인이었을 때라, 저는 여러모로 그분의 신세를 졌습니다. 이런 연유로 저는 그후에도 일년에 두서너 번 정도 무라마쓰초에 얼굴을 내밀게 되었습니다만, 인쿄와 제가 형식상의 의리 이상으로 밀접한 관계가 된 것은 극히 최근으로 만난 지 일년인가 반년 이후의 일입니다. 그런데 이 얘기의 주인공은 인쿄지만 그외에도 여주인공인 후미코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제 자신도 다소 이 얘기 속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 주십시오. 결코 저는 순전히 방관자적인 위치가 아닌, 보기에 따라서는 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인쿄의 심리를 설명하는 부분은 제 자신의 심리 해부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인쿄와 어떤 연유로 친한 사이가 되었는지보다는, 어떤 이유로 제가 인쿄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는지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야마가타 현의 벽촌에서 자란 저와 집안 대대로 구 막부 시대의 번화가에서 태어난 인쿄와는 취향이나 지식 수준, 인간 전체의 기질에서도 공통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저는 촌뜨기 서생으로 서양 문학과 미술 등을 동경해 장래 서양화가가 될 꿈을 안고 살아가는 젊은이입니다. 인쿄는 에도 토박이 중에서도 순토박이로 도쿠가와 시대의 오랜 관습과 전통을 숭상하고, 제가 보기에는 다소 젠체하는 구석도 있으며, 세상 물장에 통달한 은근하고 멋들어진 취향을 가진 노인입니다. 그런 까닭에 누가 보아도 저희 두 사람은 완전히 영역이 다른 인간으로 처음부터 얘기가 통할 리 없는 그런 사이입니다. 이런 두 사람이 서로 친하게 된 것은 제 쪽에서 먼저 인쿄에게 접근한 결과입니다. 인쿄의 입장에서 보면 친척과 가족들은 하나같이 자기를 꺼리거나 멀리하는데, 먼 친척뻘이기는 하지만 <어르신네, 어르신네>하며 제가 자주 찾아뵌 것이 내심 즐거웠을 겁니다. 특히 돌아가실 즈음에는 첩인 후미코는 예외로 치더라도, 제가 매일 병실에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야단이 났습니다. 그렇지만 처음에 제가 먼저 접근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절친한 사이가 될 리 없었겠지요.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제가 친지가 자공들에게 소외당한 인쿄의 처지를 동정해 그렇게 자주 찾아갔다고 상당히 선의의 해석을 하는 것 같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저로서는 정말이지 얼굴 붉어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인쿄에게 접근한 것은 결코 그런 특별한 동기 때문이 아닙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제가 인쿄를 만나러 갔던 것은 인쿄보다 실은 후미코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녀를 만나 어떻게 하겠다는 흑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며, 설령 그런 야심이 있었다 한들 저 같은 시골 서생은 언감생심 바랄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후미코의 모습이 시종 눈앞에 아른거려 열흘만 얼굴을 보지 않으면 마음을 진정하지 못할 만큼 그리워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이런 저런 구실을 붙여 볼일이 없는데도 인쿄 집을 방문하곤 했습니다.

 인쿄가 친척들에게 배척당하게 된 것도 야나기바시(柳橋, 에도시대부터 유곽이나 술집이 즐비하던 됴코의 지명)의 기생이었던 후미코를 빼내 자기 집에 들어앉힌 이후입니다. 그것은 정확히 재작년 12월 연말경으로 인쿄가 예순 살, 후미코 나이 열 여섯으로 이제 막 정식 기생이 된 직후였습니다. 실은 이전부터 인쿄의 방탕한 생활이 문제가 되었지만, 젊은 시절부터 여색에는 통달한 사람이고 이제 나이도 예순이나 되었으니 그러다가 잠잠해지겠거니 생각해 그때까지는 친지나 가족들도 그다지 이러쿵저러쿵하지 않았지요. 제가 들은 바로 인쿄는 스무 살에 처음 결혼하여 그 후 세번이나 부인을 갈아 치웠는데, 서른 다섯 살에 세 번째 부인과 이혼하고 지금껏 혼자서 지냈다고 합니다. (고명딸인 하쓰코는 첫째 부인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라 합니다.) 이렇듯 몇 번씩이나 부인과 이혼을 한 데에는 단순히 난봉꾼이라는 점 이외도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어떤 은밀한 이유가 인쿄의 성격 속에 숨어 있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극히 최근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습니다. 부인뿐 아니라 기생들을 데리고 놀 때에도 변덕이 상당히 심해서 한 여자를 가까이하는가 싶으면 한 달도 채 안 돼 금세 싫증을 느끼고 다른 여자에게 열중하는 그런 식입니다. 게다가 그 정도의 난봉꾼에게는 어울리지 않게 그는 단 한 번도 진실한 의미의 연인을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즉 여자 쪽에서 반한 경우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인쿄가 열을 올리며 푹 빠진 여자는 많았습니다만, 단지 돈 때문에 몸을 맡겼을 뿐 진심으로 인쿄의 애정에 보답하려는 여자는 없었습니다. 화통한 에노내기에 자타가 인정하는 트인 사람으로 남자다운 풍채도 보통 사람만큼은 되는데 긴 세월동안 깊은 관계인 여자 한 사람쯤 생길 법도 하건만, 이상하게도 여자들로부터 배척을 당하거나 속기만 할 뿐 이었습니다. 이 점도 지금 말씀드린 대로, 변덕이 심한 성격 탓에 한때 아무리 여자에게 빠진다 하더라도 여자 쪽에서 정분이 깊어질 만한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저 사람 같은 난봉꾼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여색을 멈추지 않을걸. 여자를 거느리는 것도 좋지만, 한 사람 딱 정해서 첩이라도 삼으면 오히려 마음을 잡을 텐데 말이야.」

 친척 중 누군가가 자주 이런 얘기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의 후미코만큼은 특별했습니다. 인쿄가 그녀를 처음 안 것은 재작년 여름쯤이었습니다만, 그녀에 대한 열정은 그후에도 도무지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식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푹 빠져 갔습니다. 그러다가 그해 12월에 그녀가 예비 기생에서 정식 기생이 되었을 때, 자기가 일체를 떠맡아 준비해 주고 그녀가 독립해서 영업할 수 있을 만큼의 돈까지 건네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론 성이 차지 않았는지 결국에는 그녀를 첩삼아 뜨내기 마누라삼아 무라마쓰초의 집에 들어앉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인쿄의 그 열정에 비해 여자 쪽은 결코 인쿄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마흔 살이 넘게 차이가 나니 멍청이나 미친 사람이 아닌 이상 물론 당연한 얘기지만, 후미코가 얌전히 인쿄의 뜻대로 따라 들어온 것은 그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내다보고 재산을 목적으로 들어온 것임에 틀림없었지요.

 제가 처음 무라마쓰초 집에 이상한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작년 정월 연초, 인쿄의 안부를 물으러 갔을 때였습니다. 전당포 뒤쪽에 있는 살림집 문에서 전갈을 전해 주기를 바라며 여느 때처럼 후미진 별채의 인쿄 방으로 그려는데, 그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여보게 우노, 잘 왔네. (제 이름은 우노키치입니다. 그걸 언제부터인지 인쿄는 줄여서 우노라 불렀습니다. 우노라는 이름은 왠지 장인(匠人) 냄새가 풍기는 것 같아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잘 왔구먼. 들어오게. 자, 이쪽으로 쭉…….」

 아마 그때까지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쿄는 단단한 사각형 이마를 번들거리며, 집 안에서도 모직으로 된 따뜻한 목도리를 두른 채 각로(脚爐, 이불 밑에 넣어 다리를 따뜻하게 하는 화로, 고타츠)에 파묻혀 에도내기 특유의 능숙한 혀놀림으로 만담가의 말투 같은 매끄러운 어조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인쿄의 건너편에 각로를 가운데 두고 앉아 있는 세련된 낯선 여자를 발견했습니다. 제가 방에 들어가자 여자는 한쪽 팔꿈치를 각로 틀 위에 대고 살며시 무릎을 펴고는 제 쪽으로 몸과 몸체를 틀었습니다. <목>과 <몸체>를 틀었다고 표현한 것은 그때 그 두 개가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지닌 별개의 것인 양 제 눈에 따로따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몸체를 틀었다고 한 것은 그때의 인상을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나긋나긋하고 늘씬한 목덜미와 갸냘프고 유연한 몸매가 하나의 파도가 되어 또 다른 파도로 넘실넘실 파문을 일으켜 가는 듯이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똑바로 제 쪽을 향한 후에도 아직 그 파문이 몸 어딘가에, 예컨대 누키에몬(일본옷을 앞깃을 올려 뒤로 젖혀서 목덜미가 나오게 입는 방식) 식으로 옷을 입어 미끈한 목덜미가 훤히 드러난 어깨에 잠시 하늘하늘 흔들리며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만큼 그녀의 모습은 나긋나긋하고 우아하면서도 부드러웠습니다. 그녀를 감싸고 있는 가모노 탓에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요즘 유행하는 화려한 기모노와는 달리 시대에 뒤떨어진 수수한 도잔 무늬(감색 바탕에 빨강, 연노랑 줄무니를 세로로 넣은 에도 시대 무명 직물의 하나) 에 동정이 달린 기모노의 옷자락을 길게 끌고 있었습니다. 인쿄는 별로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나와 그녀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말했습니다.

 「이쪽은 우노키치라고 하지. 내 먼 친척뻘 되는 미술 학교 학생이야. 고향에 계신 그의 아버님께서 부탁하셔서 별로 힘은 안되지만 내가 여러모로 보살펴 주고 있지…….」

 인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애매한 시선을 보내며 싱글벙글 웃었습니다. 이렇게 인쿄는 저를 그녀에게 소개했지만, 제게 그녀가 누군지는 한마디도 얘기해 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후미코라고 합니다. 부디 편안히…….」

 그녀는 조금은 부끄러운 듯 입 속으로 이렇게 말하며 머리를 숙였습니다. 저도 얼떨결에 인사를 했습니다만, 마치 여우에 홀린 기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아 , 필시 이 여자는 첩이로군.>

 나는 틀림없다는 생각으로 인쿄의 얼굴을 훔쳐보았습니다. 불그스름한 코 양쪽에 두꺼운 주름이 파여 <두꺼비 입>이란 별명이 붙은 그는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채로 그 큰 입가에 여전히 히죽히죽 기분 나쁜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웃음 저변에는 <네 추측대로 이 아이는 내 첩으로 이번에 집에 들어와 살게 되었네> 하는 긍정적인 암시가 내포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쿄가 그녀를 너무나 귀여워하고 있다는 것을 저는 단박에 알아차렸습니다. 왜 그런고 하면 그녀는 결코 대단한 미인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야말로 인쿄가 좋아할 세련된 모습에다 에도의 풍류에 딱 들어맞는 상큼한 키와 몸집과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자 인쿄의 히죽거리는 미소 뒤에는 <어떤가, 정말이지 근사한 여자를 찾아내지 않았는가?> 하는 만족스런 빛이 숨겨져 있는 듯했습니다. 첩이면서 옷자락이 길게 끌리는 기모노를 입고 있는 것이나, 에나멜처럼 반들거리는 검은 머리를 틀어 올린 것도 다소 이상했습니다. 기생이 좌중에 나와 앉아 있는 듯한 매무새는 아마도 도잔 무늬의 동정 달린 기모노와 더불어 인쿄의 취향 때문에 일부러 그런 식으로 입게 했겠지요. (인쿄는 그 정도로 에도 취향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추측이 맞았다는 것은 나중에 가서야 알았습니다.) 제 취향은 이국적인 여자를 더 좋아 합니다만, 그녀처럼 에도 정취를 거의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것을 보니 그다지 언짢은 기분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완벽하다는 의미는 눈매나 코 생김새에 결점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결점이 오히려 일종의 정취를 자아내 더욱더 호협하고 멋들어진 여자로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즉 그 정도의 아름다움을 발휘하기 위해 그녀에겐 꼭 필요한 결점만 있을 뿐 불필요한 결점은 없다는 의미입니다.

 동그스름한 얼굴에 조금 뾰족한 턱, 볼은 생각하기에 따라 약간 깎인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딱딱한 느낌은 아니며, 말할 때마다 입운동으로 인해 살이 파르르 물결치는 모습은 부드럽고 풍요롭게 보였습니다. 이마는 좁은 편인데 앞머리가 후지비타이(여자 이마의 앞머리 가장자리가 후지 산 봉우리 모양으로 생긴 것, 예로부터 미이들은 이 머리형이 많았다고 함)는 아니었지만, 후지 산 형태의 머리 끝에서 조금 아래의 앞머리 좌우는 양쪽 모두 같은 모양으로 조금 벗어져 올라간 곳이 있고, 또 원래 후지 산 모양으로 곧장 눈꼬리 쪽으로 벌어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후지 산 형태의 정형을 깨고 직선이 약간 흐트러진 부분의 새까만 머리 속 사이로 하얀 이마의 일부가 홀연히 가물거리며 청청히 휘어진 곳, 그것이 면적이 좁은 이마에 말할 수 없는 변화와 여유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형태는 검은 머리 빛깔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진한 눈썹은 조금 치켜 올라간 편이지만, 다행히 머리칼과 반대로 옅은 붉은빛을 띠고 있어 그렇게 기가 세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곧게 뻗은 오뚝한 코는 잘생긴 생김새이지만, 결코 결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코끝에 다소 살이 붙어 있어 눈썹과 눈썹 사이에서 코끝까지 완만한 선을 이뤄야 할 콧마루의 직선이 콧망울에 장딴지 살 모양으로 불거져 있어 그 예리함을 둔감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보기엔 만약 이 코 모양새가 조각처럼 매끈하게 빠졌다면, 전체적으로 차가운 얼굴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경단 모양의 코도 곤란하겠지만, 콧망울이 어느 정도 도톰한 편이 왠지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은 입 모양새입니다만, (이렇게 얼굴 생김새를 저의 졸렬한 문장으로 일일이 설명드려 필시 선생님도 귀찮으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저는 될 수 있는 한 이 여자의 얼굴을 자세히 설명드리지 않을 수 없 없습니다. 후미코가 얼마나 용모가 빼어난 여자인가를 선생님께 어떻게든 이해시켜 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오니 다소 지루하시더라도 참아 주시길 바랍니다.) 달걀처럼 오므린 턱 안에 균형 있게 자리잡은 작고 귀여운 입, 특히 더 귀여운 것은 에노내기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합죽이 입의 아랫입술입니다. 그 아랫입술이 평범하게 들어갔더라면 그 얼굴은 더 단엄(端嚴)해 보이기는 하겠지만, 교태를 부리는 듯한 아취나 교활하며 영리한 듯한 분위기는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특해 보이는 곳으로 치면 단연 눈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또랑또랑하면서도 청패색(靑貝色)의 맑은 흰자위 한가운데 유리처럼 빛나는 위대한 검은 눈동자는 참으로 영리한 듯 깊이 가라앉아 있어, 마치 햇빛이 비치는 맑은 물위에 날렵한 몸을 가만히 안정시킨 채 조용히 지느러미질을 쉬고 있는 물고기와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물고기 몸을 감싸고 있는 수초처럼, 눈동자 위를 덮고 있는 속눈썹은 눈을 감으면 끝이 볼의 반까지 닿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처럼 훌륭하고 근사한 속눈썹을 본 적이 없습니다. 속눈썹이 그렇게 길면 오히려 눈동자에 거슬리지 않을까 염려가 앞설 정도이니까요. 눈을 크게 뜨고 있으면 속눈썹과 검은 눈동자의 관계가 확실히 구분이 가지 않아, 검은 눈동자가 눈꺼풀 밖으로 불거져 나온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특히 그 속눈썹과 눈동자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얼굴 전체의 피부색입니다. 요즘 젊은 여자치고는(특히 기생 출신 여자로는) 참으로 깨끗하고 엷은 화장을 한 피부가 그리 야하지 않고, 뿌연 유리처럼 둔탁하고 핏기없고 꿈같이 희읍스름함을 띠고 있는 가운데, 그 검은 눈동자만이 종이 위를 기어다니는 한 마리 딱정벌레처럼 또렷이 살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사실 제가 이 여자의 아름다움을 과장해서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제 느낌을 그저 정직하게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평소 같으면 연초의 인사도 그쯤에서 끝내고 물러가야 할 터입니다만, 저는 왠지 뜻밖의 횡재라도 한 듯한 기분이 들어 그날은 아침부터 오후 두세 시경까지 점심을 대접받으며 인쿄의 상대가 되어 드렸습니다. 그 여자가 따라 주는 술에 인쿄도 저도 상당히 취했다고 생각됩니다.

 「우노, 실례지만 난 아직 자네가 그린 그림을 본 적이 없는데, 서양화를 배우고 있다니 유화 초상화 그리는 솜씨는 괜찮겠지?」

 술기운이 상당히 올랐을 때 인쿄가 불쑥 이런 말을 꺼냈습니다.

 「괜찮겠지라뇨, 너무하시잖아요. 당신 화를 내세요.」

 후미코는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며 긴 목덜미를 슬쩍 꼬는 듯 혹은 예의 그 합죽이 입으로 물건을 들어올리는 듯한 모습으로 고개를 약한 제 쪽으로 내밀었습니다.

 「괜찮으냐고 물어 본 것은 우노를 깔보고 그런 게 아니야. 알다시피 난 구식 사람이라 유화란게 좋은지 어떤지 모르잖나…….」
 「아이, 정말 이상하네요. 모르니까 더더구나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법이 아니지요.」

 이런 조숙한 말투로 인쿄의 얘기를 야유하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하는 후미코는 이제 겨우 열일곱 살의 청춘이었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인쿄는 일일이 변명을 하면서도 눈가와 입가에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그 흐뭇한 표정이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오히려 제 쪽이 민망스러울 정도였으니까요.

 「하하하, 고 녀석 내가 한 수 졌어.」

 인쿄는 머리를 긁적이며 일부러 겸연쩍은 척해 보였습니다. 그 모습은 완전히 후미코의 손안에 놀아나는 호인이 되어, 마치 큰아기처럼 사리분별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세 사람 중 인쿄가 예순하나, 제가 스물넷, 방금 말했듯이 후미코가 열일곱 살로 제일 어린데도 말하는 투로는 그 순서가 완전히 뒤바뀐 것같이 여겨졌습니다. 후미코가 앞에 있으면 인쿄도 저도 똑같이 어린애 취급을 당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인쿄가 불쑥 유화 얘기를 꺼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저에게 후미코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잘 그리는지 못 그리는지는 모르지만 유화가 어딘지 모르게 일본화보다는 진짜 같아 보이니까 말이야.」

 인쿄는 이렇게 말하며 될 수 있는 한 그녀의 모습을 사실 그대로 그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제가 과연 인쿄의 주문대로 만족할 만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어떨지 참 막연했습니다만, 이것을 기회로 후미코와 친해지고 싶다는 야심이 앞서 흔쾌히 승낙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당분간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인쿄 집을 방문에 후미코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도쿄 번화가의 낡은 상인의 집 구조는 어디나 그렇듯이 폭이 좁은 반명 안쪽은 넓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햇빛이 차단되어 한낮에도 움막처럼 컴컴합니다. 쓰가코시의 집도 이런 구조라 인쿄가 기거하는 별채는 날씨가 조금 좋지 않은 날이면 오후 세 시경부터는 신문 글씨가 안 보일 정도로 어두웠습니다. 게다가 그때는 낮이 짧은 정월이라, 학교를 마치고 도착할 즈음이면 밖은 아직 밝은데 인쿄의 방에는 벌써 희미한 어둠이 깔려 있었습니다. 이런 방안에서 유화를 그린다는 것은 참으로 무리였습니다. 그나마 의지할 광선이라고는 방 앞에 5평 남짓 되는 안뜰에서 태양에게 버림 받은 듯 쓸쓸하고 희미하게 비쳐 드는 힘없는 겨울 햇빛뿐이었습니다. 어둠 속에 가만히 앉아 있는 후미코의 갸름한 얼굴, 뚝 하고 어깨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과감하게 누키에몬 식으로 옷을 입어 드러난 목덜미가 희미하게 반사되어 창백한 기운이 감도는 광선은…… 뭐라 얘기하면 좋을까요. 아무튼 저의 혼미할 정도로 제 신경을 교란시켰습니다. 그림 따위는 당장 집어치우고 그 희고 유연한 몸의 곡선을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드디어 작업에 들어가려는 단계에 이르자, 인쿄는 눈치 빠르게 60촉짜리 푸른 전구에다가 가스등까지 켜서 눈이 아릴 정도로 실내를 밝혀 주었습니다. 조명은 그럭저럭, 아니 너무 충분할 정도로 보충이 되었습니다만 그 다음엔 모델의 포즈를 정하는 데 까다로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처음 인쿄의 주문이 초상화였기 때문에 저는 상반신이나 뭐 그런 걸 그리면 되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불쑥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어요.

 「어떤가 우노, 그저 이렇게 앉아 있는 모습을 그려 봤자 재미없으니 이런 식으로 이 그림 속에 있는 자세릴 취하게 해서 그려 줄 수는 없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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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닦는 여자 - 구사조시[이나카 겐지]>





 인쿄는 선반 아래쪽에 있는 작은 벽장에서 낡은 구사조우시(에도시대의 삽화가 삽입된 대중 소설의 총칭)를 한 권 꺼내 와 그 안에 인쇄된 삽화 하나를 펴 보였습니다. 그것은 다네히코의 <이나카 겐지>라는 책으로 그림은 구니사다가 그린 것이라 기억됩니다. 그림은 마치 후미코처럼 구니사다 식의 미모를 지닌 젊은여자가 먼 시골길을 맨발로 걸어와 막 낡은 절간 같은 빈집에 다다른 장면을 묘사한 것입니다. 여자는 그 빈집에 올라가려고 툇마루에 앉아 진흙으로 더러워진 오른발을 손수건으로 닦아 내고 있었습니다. 상반신을 획 왼쪽으로 기울여 거의 쓰러질 듯 비스듬히 된 몸체를 가느다란 한 팔로 겨우 지탱하며, 왼발의 발톱 끝으로 살포시 땅을 밟으면서 오른쪽 다리를 く자 형태로 구부려 오른손으로 그 발바닥을 밖고 있는 자세. 그 자세는 옛날 유명한 우키요에 화가가 여자의 매끄러운 몸매 변화에 얼마나 예민한 관찰을 했으며, 얼마만큼 깊은 흥미를 갖고 있었는가를 증명하기에 충분할 만큼 올라울 정도로 교묘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제가 특히 탄복한 것은 여자의 유연하고 나긋나긋한 손발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구부러져 있는데, 그저 쓸데없이 구부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예민한 힘의 균형이 전신에 가늘게 퍼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자는 툇마루에 걸터앉아 있었지만 결코 안정된 자세로 앉아 있는 건 아닙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상반신을 왼쪽으로 기울이고 오른발을 바깥쪽으로 굽히고 있어, 마룻바닥을 짚고 있는 왼팔을 약간 잡아당기기라도 하면 금세 균형을 잃고 푹 쓰러져 버릴 듯이 위태로운 자세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 위태로움을 감당이라도 하려는 듯, 유연한 몸의 근육을 철사줄처럼 긴장시키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기운이 온몸에 넘실거리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밑으로 처지려는 어깨를 지탱하고 있는 왼팔 끝은 손바닥을 마룻바닥에 착 붙이고 있었는데, 그 다섯 손가락이 마치 경련이라도 이는 듯 넘실넘실 물결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땅에 살짝 닿아 있는 왼쪽 다리도 그저 의미 없이 축 늘어뜨리고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발등과 정강이가 거의 수직을 이루어, 엄지발가락 끝이 마치 새의 주둥이처럼 뾰족하게 뻗어 있는 것으로 보아 힘을 꽉 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구부러진 오른쪽 다리와 그 발을 닦으려 하는 오른손과의 관계가 가장 미묘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런 자세를 취할 경우 반드시 그래야만 하겠습니다만, 구부러진 오른쪽 다리는 실은 오른손으로 억지로 구부렸기 때문에 만약 그 손을 발에서 떼면 다리는 뚝 하고 땅으로 나가떨어지고 말 겁니다. 따라서 손은 발을 닦고 있는 동시에 그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잡아당기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런 면에서 우키요에 화가의 치밀한 주의력과 넘치는 재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손이 발을 끌어당길 때 복사뼈를 쥔다든가 발등을 잡는다면 비교적 간단한데, 일부러 그렇게 그리지 않고 둘째발가락과 가운뎃 발가락 사이에 손을 집어 넣어 겨우 새끼발가락과 둘째발가락만 잡고 힘들게 다리 전체를 지탱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리는 금방이라도 그 귀엽고 작은 손 안에서 두 발가락을 빼내려는 듯 눌린 용수철처럼 튕겨 나오려는 힘을 계속 휘게 만들어 공중에 떠 있는 무릎을 부들부들 떨게 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제가 설명하려고 애쓰는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선생님께서는 대강 아셨겠지요? 아름다운 모습을 한 여인이 수양버들처럼 팔다리를 느슨히 풀고 멍청히 멈춰 서 있거나 흐트러져 잠든 모습도 정취가 있습니다만, 이 그림처럼 전신을 굽이굽이 완만하게 구부리며 채찍처럼 탄력성을 표현해야 할 곳을 그 특유의 아름다움을 손상시키지 않고 그린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거기에는 <유연함>과 동시에 <강직함>이 있으며, <긴장감> 속에 <섬세함>이 있으며, <움직임>의 이면에 <유약함>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소리를 쥐어짜며 목구멍이 찢어져라 쉴새없이 지저귀는 꾀꼬리의 필사적인 귀여움이 나타나 있습니다. 사실 이런 자세에서 이 정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그 여자의 손가락과 발가락 하나하나의 끝에 이르는 근육에까지 무진장한 생명이 깃들여 있는 것처럼 묘사해야 합니다. 이 여자의 이런 자세는 결코 교태를 보이기 위해 묘안을 짜내거나 과장을 하지 않았다고는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그러나 결코 부자연스럽거나 무리한 자세는 아닙니다. 단지 그 자세에서 이만한 교태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나긋나긋하고 요염하며 선천적으로 타고난 늘씬한 몸매를 갖춘 여자가 필요합니다. 만약 자태가 빼어나지 못하고 짧은 다리에 발목이 통통한 두루뭉실한 여자가 이런 자태를 취한다면 그야말로 꼴불견이겠지요. 필시 이 그림을 그린 구니사다는 일찍이 어떤 미인이 이런 자세를 취했던 장면을 목격했음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자세의 요염함에 마음이 끌려 언젠가 꼭 응용하리라 준비했을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단순히 상상력만으로 그처럼 어려운 자세를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그려 낼 수는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인쿄의 주문대로 후미코에게 이 포즈를 취하게 하여 유화로 그려낸다는 것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저의 졸렬한 실력을 시험해 본다 한들 어찌 구니사다의 판화와 같은 아름다운 효과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서양화의 사정을 모르는 인쿄라고는 하지만 너무나 비위 좋은 주문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마 인쿄는 무채색의 목판 인쇄 그림도 이렇듯 생생한 아름다움을 살려내는데, 살아 있는 인물을 모델로 하여 이 그림을 유화로 그린다면 그 아름다움이 얼마나 증폭되겠는가, 이런 식으로 생각했겠지요. 판화니까 그렇게까지 면밀히 그려 낼 수 있었지, 유화로 그와 똑같은 효과를 내려면 상당한 재능과 천부적인 소질과 숙련 없이는 안 된다는 이유를 제가 간절히 설명드리고 질릴 정도로 사양 했습니다만, 아무리 얘기해도 인쿄는 쉽게 물러서려 하지 않았습니다. 방 한가운데 여름에 평상으로 사용하는 듯한 대나무 걸상을 갖고 와서 거기에 후미코를 앉히더니 그녀가 발을 닦고 있는 모습을 꼭 그려 달라는 것입니다. 잘 드리든 못 드리든 어차피 자기는 잘 모르니까 조금이라도 모델의 모습과 닮게만 그려 준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겠으니 아무튼 그려만 주면 돈은 얼마든지 지불하겠다며 몇 번이고 머리를 숙여 실로 집요하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저, 그렇게 말하지 말아 주게. 부디 한 번만 부탁하네. 부디 응?」

 이렇게 말하는 인쿄는 <두꺼비 입>이란 별명이 붙은 큰 입가에 예의 기분 나쁜 웃음을 히죽히죽 지으며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미적지근한 어조로 계속 똑같은 말만 반복하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지극히 딱 부러지고 세상 물정에 익히 통달한 인쿄에게 그렇게 집요한 일면이 숨어 있다는 걸 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인쿄에게 이렇듯 지근덕지근덕하고 사람 발 밑에 친친 들러붙는 듯한 끈질긴 구석이 있었다는 전혀 의외의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게다가 그때 인쿄의 표정은 참으로 이상야릇했습니다. 말투나 태도 등은 평소와 그리 다를 바가 없었지만, 어느샌가 눈의 표정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저에게 말을 걸면서도 뭔가 계속 다른 사물을 주시하는 것 같은, 눈동자가 눈구멍 밑으로 흡착되어 가는 듯 이상하게 핏발이 선 그런 눈매였습니다. 그것은 확실히 머리 속이 갑자기 뒤죽박죽이 되어 미친 듯한 그 신경이 그쪽을 엿보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습니다. 그 눈매 속에는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이 숨어 있음에 틀림없었습니다. 친척들이 인쿄를 좋지 않게 생각하는 원인이 혹 이런 눈매의 그늘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저는 갑자기 그런 직감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동시에 온몸이 오싹하는 충격에 사로잡혔습니다.

 특히 저의 이 직감에 힌트를 준 것은 그때 후미코의 태도였습니다. 후미코는 인쿄의 눈빛이 변하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또!> 하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양미간을 찌푸리며, <아유, 좀……> 하며 혀를 찼습니다. 그리고는 응성받이를 꾸짖는 듯한 말투로 이렇게 말하며 인쿄를 노려보았습니다.

 「뭐예요, 당신? 우노 씨가 안 된다는데 그렇게 무리하게 얘기해도 소용없는 일 아니에요? 정말이지 당신처럼 뭘 모르는 양반은 없을 거예요. 우선 방 한가운데 걸상에 걸터앉아 그런 번거로운 흉내를 내는 일 따윈 제가 당장 그만두겠어요.」

 그러자 인쿄는 이번엔 후미코에게 누차 애원하기도 하고 치켜세우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여러모로 기분을 맞추며 제발 걸상에 앉아 발을 닦고 있어 달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부탁할 때도 얼굴은 싱글벙글거리고 있었지만 눈만큼은 더욱 심하게 핏발이 서 있었습니다.) 저는 제 일은 어떻든 간에 후미코에게 동정이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구니사다 그림은 어떤 여자의 한 순간의 동작을 포착해 그린 것이라 그런 포즈를 취하는 모델에게도 상당한 어려움이 있어, 필시 이 자세를 3분 동안 계속 취하고 있을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멋대로 구는 후미코가 의외로 쉽사리 인쿄의 간청을 받아들여 걸상에 걸터앉은 데에는 필시 뭔가 깊은 사연이 있으리라고 저는 조심스레 추측했습니다. 만약 후미코가 계속 싫다며 허락하지 않았다면 인쿄의 미친 눈빛이 점점 더 심해져, 나중에는 이상한 데가 눈뿐만 아니라 어떤 언동으로 이어져 발작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두려워 한 까닭에 그녀가 자기를 꺾지 않았을까? 저는 왠지 그런 식으로 생각했습니다.

 「정말이지 우노 씨께는 미안한 일이지만, 이 사람은 정상이 아니라 어떻게 손을 써볼 도리가 없군요. 그릴 수 있든 없든 관계없으니 본인의 직성이 풀리도록 흉내만이라도 내주세요.」

 후미코가 걸상에 걸터앉으며 이런 말을 내뱉었기 때문에 저는 더욱더 제 추측이 적중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아무튼 해보죠.」

 저도 어쩔 수 없이 이젤 앞에 섰습니다. 물론 진지하게 그런 결심을 한 것이 아니라, 후미코의 뜻에 따라 인쿄에게 거역하지 않으려고 생각했던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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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를 취하는 후미코 - 후미코의 발 드라마편에서>









 이윽고 후미코는 인쿄가 내민 구사조우시 속의 여자를 흉내내어 왼팔을 걸상에 대고 <く자> 모양으로 구부린 오른발의 발가락 끝을 오른손으로 잡아 올려 원화와 조금도 다름없는 자세를 취해 보였습니다. 이렇게 간단히 말씀드리는 것만으론 도저히 그때 저의 놀라움이란 글로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후미코가 걸상에 걸터앉아 자세를 취하자마자 금세 구니사다가 그린 여자로 변해 버렸다고 말씀드리는 쪽이 어느 정도 사실에 가깝지 않나 생각됩니다. 저는 아까 그 자세에서 그 정도의 교태를 그려내는 데는 타고난 요염함과 늘씬한 몸매를 갖춘 여자가 아니면 힘들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만, 그 말은 뜻밖에 후미코의 나긋나긋한 손발을 형용한 가장 적절한 말이 되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후미코처럼 멋들어진 몸매를 가진 여자가 아니면 어떻게 그렇게까지 쉽게, 그렇게까지 완벽히 원화의 여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후미코는 기생 시절 춤을 아주 잘 추었다고 합니다만, 정말이지 그 말은 사실일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보통 모델들은 흉내도 낼 수 없는 까다로운 자세를 취하면서도 저렇듯 우아하고 단아하게, 게다가 자유자재로 몸을 놀릴 수 있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잠시 얼빠진 사람처럼 멍청히 그림속의 여자와 후미코를 몇번이나 비교해 보았습니다. 어느쪽이 그림이고, 어느쪽이 인간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비교해 보았습니다. 후미코의 몸매와 그림 속 여자의 몸매, 후미코의 왼팔과 그림 속 여자의 왼팔, 후미코의 왼쪽 검지발가락 끝과 그림 속 여자의 왼쪽 검지발가락 끝……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비교해 가보니 어느쪽도 똑같은 부분에 똑같은 힘이 서려 있고 똑같은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장황스러운 것 같지만 후미코의 몸매가 얼마나 요염했는지 여기서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보통 여자 모델이라도 이 그림 속의 여자와 같은 자세를 흉내내는 것이 반드시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그 자세를 흉내내는 것 다음에 가냘픈 근육 곡선 하나하나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과 힘을 똑같이 표현하는 것은 후미코가 아니면 흉내낼 수 없습니다. 저는 후미코가 그림 속의 여자를 흉내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여자가 후미코를 흉내낸 것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구니사다는 후미코를 모델로 삼아 이 그림을 그린 것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구사조우시의 삽화 중에서 인쿄가 특히 이 그림을 골라 후미코에게 적용시킨 이유가 무엇일까? 어재서 이 자태가 그토록 인쿄 마음에 든 것일까? 인쿄의 열망의 도(度)가 격렬했던 만큼 저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런 포즈를 취하면 후미코의 요염한 몸매가 평범한 자세를 취할 때보다 한층 더 돋보이는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만, 단지 그런 이유만으로 인쿄가 그렇게 미친 듯한 눈빛을 할 정도로 푹 빠져 열중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인쿄의 그 <눈빛>에 대해 어떤 의혹을 품기 시작한 저는 이 포즈 속에 분명 뭔가 인쿄의 마음을 끌어당긴 것이 숨어 잇을 거라고 재빨리 상상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보통 자세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여인의 곡선 일부가 드러났다고 한다면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벌어진 기모노 옷자락에서 흘러 나온 양다리의 움직임, 정확히 정강이에서 발톱 끝에 이르는 부분의 곡선에 있을 겁니다.

 저는 원래 어릴 때부터 젊은 여자의 단아한 발을 볼 때마다 이상한 쾌감을 느꼈던 인간이기 때문에, 실은 벌써부터 후미코의 멋들어진 맨발의 곡선에 황홀해 있었습니다. 껍질만 벗기고 칠하지 않은 쭉 뻗은 나무를 정성스레 깎아 놓은 듯한 정강이가 아래로 내려갈 수록 점점 가늘어져 발목 부분에서 일단 꽉 조여진 다음 완만한 경사를 이루머 부드러운 발등으로 이어지고, 그 경사 끝 부분에 다섯개의 발가락이 새끼발가락에서 조금씩 앞으로 쭉 뻗어 가다가 엄지 발가락 끝을 목표로 하여 죽 늘어서 있는 형태는 후미코의 얼굴 생김새보다 훨씬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후미코와 같은 <생김새>는 세상에 다소 있지만, 이렇게 단아하고 멋진 <발>은 지금껏 일찍이 본 적이 없습니다. 발등이 너무 평평하거나 발가락과 발가락 사이가 너무 벌어져 그 틈새가 보이는 발은 추한 용모와 마찬가지로 보는 이로 하여금 불쾌감을 자아냅니다. 그런데 후미코의 발등은 적당히 살이 붙어 있고, 발가락 다섯 개가 영어의 m자와 같은 형태로 착 달라붙어 치열처럼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습니다. 쌀떡을 발 모양에 맞춰 찍어 그 끝을 가위로 동강동강 자르면 바로 이런 발가락이 되겠구나 싶을 정도로 발가락들이 얌전히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발가락 하나하나를 떡 모양새에 비유한다면 그 끝에 붙어 있는 귀여운 발톱은 무엇에 비교하면 좋을까요? 바둑알을 늘어 놓은 것 같다고 말하고 싶지만 실제로 바둑알보다 애교 있고 훨씬 오밀조밀합니다. 세공의 장인이 진주 자개를 얇고 가늘게 도려내 그 한 조각 한 조각을 정성을 다해 간 다음 핀셋이나 그 무엇으로 살짝 끝을 집어 박는다면 아마도 이런 멋들어진 발톱이 완성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렇듯 아름다운 것을 대할 때마다 저는 새삼스레 조물주가 인간 한 명 한 명을 만드는 데 얼마나 불공평했는가를 느낍니다. 보통 짐승이나 인간의 발톱은 <나 있는> 것이지만, 후미코의 발톱은 <나 있는> 것이 아니라 <박혀 있는> 것이란 표현이 적합할 겁니다. 그렇습니다, 후미코의 발가락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하나 보석을 꿰차고 있는 셈입니다. 만약 그 발가락을 발등에서 잘라 내 염주알로 엮는다면 정말이지 근사한 여왕의 목걸이가 되겠지요.

 그 두 발이 그저 아무렇게나 지면을 밟거나 혹은 다다미 위에 내던져져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하나의 장엄한 건축물에 맞설 만한 미관을 부여합니다. 게다가 왼쪽은 옆으로 살짝 넘어지려고 하는 상반신의 영향을 받아 힘있게 아래로 쭉 뻗어 가다가, 지면에 겨우 닿아 있는 엄지발가락 하나가 다리 전체의 무게를 지탱하며 발가락 끝으로 땅을 디디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발등에서 다섯 발가락 전부가 피부를 팽팽히 당기고 있는 동시에, 어디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두려워 오싹하는 듯한 표정을 보이며 움츠리고 있는 것입니다. (표정이란 말을 쓴 것이 이상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발에도 얼굴과 마찬가지로 표정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정이 많은 여자나 냉혹한 인간은 발의 표정을 보면 금방 알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정확히 그 무엇인가에 위협당하여 막 날아가려는 작은 새가 날개를 바싹 오므린 채 온 배로 숨을 모으고 있는 찰나의 느낌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그 발은 발등을 활 모양으로 쫙 구부리고 있어 발바닥의 부드러운 살이 겹친 모습까지 모조리 볼 수 있습니다. 발바닥 쪽에서 보면 오므린 다섯 발가락의 머리가 조개관자를 늘어놓은 듯 고르게 있습니다. 또 다른 한 발은 오른쪽으로 지상에서 두세 척 정도 위로 당기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발이 웃고 있다>고 하면 보통 사람들은 배를 쥐고 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께서도 고개를 갸우뚱하시며 의아한 얼굴을 하시겠지요? 그러나 저는 <웃고 있다>는 말 이외에 달리 그 오른발의 표정을 묘사할 말을 모르겠습니다. 그럼 그 발이 어떠한 형상을 하고 있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새끼발가락과 둘째발가락 두 개를 잡아당겨 허공에 매어 두고 있었기 때문에 나머지 세 개의 발가락이 각각 사이가 벌어져, 마치 발바닥이 간지러울 때처럼 묘하게 교태를 부리며 뒤틀려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발바닥이 간지러울 때, 발등과 발가락은 종종 이런 표정을 보입니다. 간지러울 때의 표정이니까 웃고 있다고 해도 상관없겠지요. 제가 교태를 부리고 있다는 표현을 썼습니다만, 발가락과 발등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한껏 젖혀져 그 경계의 관절에 깊은 파임이 있는 형태, 즉 발가락 전체가 와카자리(둥글게 짚을 엮어 상록수 잎 따위를 붙이고 몇 오라기의 짚을 드리운 설날의 장식물로 대문이나 실내에 달아 둠)의 새우처럼 휜 형태, 그것은 보는 사람의 눈에는 일종의 교태를 부리는 것 처럼 보인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후미코처럼 춤에 소양이 있어 몸 전체의 관절이 자유자재로 하늘하늘 오므렸다 폈다 하지 못하면 도저히 그렇게 요염하게 뒤로 젖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농염한 모습의 여인네가 몸을 휘날리며 춤추는 듯한 교태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놓쳐서는 안 될 것이 동그스름한 발뒤꿈치입니다. 대개 다른 여자의 발은 복사뼈에서 발뒤꿈치에 이르는 선 사이에 주름이 있습니다만, 후미코의 것은 거의 한 점도 나무랄 곳이 없습니다. 저는 몇 번이나 필요 이상으로 후미코의 뒤로 가서 앞에서는 충분히 관찰할 수 없는 발뒤꿈치의 곡선을 살며시, 그러나 머리 속이 타버릴 정도로 뚫어지게 탐닉했습니다. 밑에 어떤 뼈가 있으며, 거기에 어떤 식으로 살이 감싸고 있기에 저리도 부드럽고 원만하며 윤기 도는 뒤꿈치가 되었을가요? 후미코는 태어나서 열일곱 살이 될 때까지 이 뒤꿈치로 다다미와 이불 외에 그 어떤 딱딱한 것도 밟아 본 적이 없었겠지요? 저는 한 남자로 태어나 살기보다는, 이렇듯 아름다운 뒤꿈치가 되어 후미코의 발 뒤에 붙을 수 있다면 그쪽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후미코의 발뒤꿈치에 밟히는 다다미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저의 생명과 후미코의 발뒤꿈치 중 이 세상에서 어느쪽이 더 존귀하냐고 묻는다면 저는 일언지하에 후자 쪽이 존귀하다고 대답할 겁니다. 후미코의 뒤꿈치를 위해서라면 저는 기꺼이 죽을 수 있습니다.

 이성의 발에 대한 저의 이런 마음 - 아름다운 여자의 발만 보면 어느샌가 억누르기 힘든 동경의 정념이 불타 올라 그 발을 신처럼 숭배하려는 불가사의한 심리 작용 - 의 작용은 어릴 적부터 저의 가슴속 깊숙한 곳에 잠재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마음에도 꺼림칙하고 병적이라는 것을 깨달아 될 수 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노력해 왔던 것입니다. 그렇게 이런 이상야릇한 심리 작용을 느끼는 인간이 단지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 이 세상에서는 이상의 발을 갈앙(渴仰)하는 배물교도(拜物敎徒) 즉 풋 페티시스트(Foot-Fetishist)라 불리는 사람들이 저말고도 무수히 많다는 사실을 아주 최근에 어느 책에서 읽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나의 동지가 어딘가 한 사람 정도는 있겠지 하고 내심 조심스럽게 찾고 잇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이 쓰카코시 인쿄가 나타나 제 동지가 된 것입니다. 저와는 달리 인쿄는 새로운 심리학 책을 읽었을 리 만무하고, 물론 풋 페티시즘이라는 단어를 알 리 없으며 자신의 동지가 이 세상에 많이 있으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겁니다. 필시 제가 어릴 적에 생각했던 것처럼 자신만이 그런 께름칙한 성벽(性癖)을 숭상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겠지요? 특히 저와 같은 청년이라면 또 몰라도 솔직담백한 에노내기임을 자처하는 인쿄의 가슴속에 그런 근대적인 병적 신경이 깃들여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시대 착오니까 말입니다. <나같이 세상 물정에 통달한 사람이 어째서 이런 이상야릇한 병이 있는 걸까?> 라고 인쿄는 정히 눈썹을 찡그리며, 분명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꽤나 모양새가 좋지 않은 일이라고 걱정했을 겁니다. 만약 제가 같은 병을 앓고 있지 않고 미리 의심의 눈으로 인쿄의 거동을 관찰하지 않았다면, 인쿄는 아마도 제게 영원히 마음속의 비밀을 털어놓지 않았을 겁니다. 처음부터 노인의 거동에 어딘지 모르게 심상치 않은 점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챈 저는, 그가 때때로 훔치듯 후미코의 발 모양을 보고 있는 눈빛을 참으로 괴이하게 느꼈습니다.

「실례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후미코 씨의 발 모양새는 참으로 빼어나군요. 저는 매일 학교에서 여자 모델을 보아 왔습니다만, 이렇게 훌륭하고 아름다운 발은 지금껏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며 일부러 인쿄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러자 인쿄는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면서 그 특유의 기분 나쁜 눈알을 번뜩이며, 언짢음을 억누르는 듯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제 쪽에서 적극적으로 발 곡선이 여체의 아름다움에 얼마나 중대한 요소인가를 설명하며 아름다운 발을 숭배하는 것은 보통 사람이면 누구나 다 갖고 있는 감정이라는 얘기를 꺼내자, 인쿄는 점점 안심하는 빛을 보이더니 조금씩 꼬리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저 어르신, 제가 아까 반대는 했습니다만, 어르신이 후미코 씨에게 그런 자세를 취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확실히 일리가 있습니다. 그 자세를 취하면 발의 아름다움이 유감없이 나타나기 때문이죠. 어르신도 그림에 대해 전혀 모르신다고는 할 수 없네요.」

 「아니, 고맙네. 자네가 그렇게 말해 주니 나도 참으로 기쁘네. 뭐 서양 것에 대해선 모르지만 일본 여자란 옛날엔 모두 발이 예쁜 것을 자랑으로 여겼지. 그러니까 이것 좀 보라구. 구막부 시대의 기생들은 모두 발을 보이고 싶어 한겨울에도 결코 버선을 신지 않았지. 그게 멋들어지고 좋다며 손님이 모두 기뻐했는데, 지금 기생은 방에 들어올 때 버선을 신으니 정말이지 옛날과 뒤바뀌었다니까. 게다가 요즘 여자들은 발이 추해 버선을 벗고 싶어도 벗지 못하는 게야. 그래서 난 이 후미코의 발이 드물게 아름다워 어느 때건 간에 결코 버선을 신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지.」

 그러면서 인쿄는 뿌듯함에 턱을 치켜 들며 우쭐해했습니다.

 「자네가 그 기분을 알아주니 난 더 이상 할말이 없구먼. 그림을 잘못 그려도 상관 말게. 그러니까 혹 귀찮으면 쓸데없는 곳은 그리지 않아도 좋으니 발만이라도 정성스럽게 그려 주면 좋겠네.」

 결국에는 우쭐대며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얼굴만 그려 달라는 것이 당연하건만, 인쿄는 발만 그려 달라는 것입니다. 그가 저와 똑같은 병을 가진 인간이라는것은 이제 이 한마디로 의심할 여지가 없어졌습니다.



그후 저는 거의 매일 인쿄의 집에 드나들었습니다. 학교에 있어도 후미코의 발이 시종 눈에 아른거려 일이 전혀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쿄 집에 가서 부탁받은 일에 정성을 쏟는 것도 아니었고, 그림은 그저 적당히 둘러대고 후미코의 발을 바라보며 인쿄와 둘이서 찬미의 말을 주고받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인쿄의 병폐를 잘 알고 있는 후미코는 지루한 모델을 하면서 때때로 싫은 얼굴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만, 그저 대개는 잠자코 두 사람의 말을 흘려 듣고 있었습니다. 모델이라고는 하지만 그리기 위한 모델이 아니라, 정신이 이상한 노인과 청년의 네 개의 눈에서 쏟아지는 황홀한 시선 - 당사자로선 기분 나쁜 시선 - 의 표적이 되어 숭배 받는 모델이니 후미코의 입장도 꽤나 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아름다운 발을 갖고 태어난 것이 엉뚱한 성가심이 아니겠습니까? 평범한 여자라면 이런 당치도 않은 역할을 거절했겠지만, 그런 쪽엔 영리한 후미코인 까닭에 얌전히 노인의 장난감이 되어 시치미를 고 있었습니다. 장난감이 되었다고는 해도 그저 맨발을 보여 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상대가 까무러칠 정도로 기뻐하니,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처럼 쉬운 역할도 없을 겁니다.

 인쿄와 저 사이에 허물이 없어짐에 따라 인쿄는 점점 그 병폐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저는 일종의 호기심에서 노인의 관심을 그쪽으로 끌기 위해 더욱 열을 올렸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론 제 쪽에서도 스스로 자신의 게걸스러운 성향을 고백할 필요가 있었지만, 저는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과장해서 과거의 추한 경험을 얘기하여 인쿄의 머리 속에서 될 수 있는 대로 수치의 관념이 제거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저는 타인의 비밀을 알고 싶어하는 단순한 호기심뿐만 아니라, 가슴속 깊숙이 잠재된 억누를 수 없는 욕구가 치솟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인쿄와 동행자가 되어 함께 꺼림칙한 감정의 밑바닥을 더듬으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저의 고백을 듣자 인쿄는 심히 동감하며 그와 비슷한 자신의 경험을 꾸밈 없이 얘기해 주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육십여 세란 기나긴 세월의 경험은 우스꽝스러움과 추태와 기발한 점에서 저보다도 훨씬 풍부한 재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것을 일일이 여기에 쓴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 전부 생략하겠습니다. 단지 그 기발한 일례를 든다면 인쿄가 모델판대신 사용한 대나무 걸상은 이번에 처음 이 방 한가운데 갖다 놓은 것이 아니라, 그가 전부터 종종 밀폐된 이 방안 걸상에 후미코를 앉혀 놓고 자신은 개 흉내를 내며 그녀의 발에 달라붙었던 적도 있다는 것입니다. 후미코에게 주인 어른으로 대접받기보다는 이런 흉내를 내는 것에 훨씬 쾌감을 느꼈다고 인쿄는 말했습니다.

 마침 그 해 3월 말 인쿄는 정말로 은퇴를 하기 위한 절차를 끝내고 전당포를 딸 부부에게 넘겨준 후 시치리가 해변 별장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표면상의 이유는 당뇨병과 폐결핵이 점점 심해졌기 때문에 거처를 옮겨야 한다는 의사의 권고에 따른 것이었습니다만, 실은 세상 사람의 눈을 피해 후미코와 아무 거리낌없이 맘껏 희롱하며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별장으로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인쿄의 병세가 더욱 악화되었기 때문에 표면상의 이유는 결국 진짜 이유가 되고 말았습니다. 병에 대해서 꽤 강한 사람으로 당뇨병이라고 하는데도 술을 많이 퍼마시니 건강이 나빠지는 것도 당연했습니다. 게다가 당뇨병보다는 폐병이 우려되는 상태가 되어 저녁나절이면 연일 38, 9도의 열이 계속되었습니다. 전부터 조금씩 마르기 시작한 몸이 급속도로 쑥 빠져 반달 정도 사이에 몰라보게 수척해져서 후미코와 질펀하게 즐기며 소란을 떨 그런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별장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에 세워진 남향집인데, 인쿄는 햇빛이 잘 드는 10첩짜리 큰방에 기거했습니다. 밝은 툇마루 쪽에 머리를 두고 누운 인쿄는 하루 종일 이불 속에 있거나 삼시세때 식사 시간 외에는 일어날 기력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가끔씩 각혈을 하고 나면 새파란 이마를 천장으로 향한 채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이미 각오를 한 듯한 비장한 모습을 보이곤 했습니다. 가마쿠라의 **병원의 S라는 의사가 하루 걸러 왕진을 와서는, <아무래도 상태가 좋지 않군요. 이렇게 열이 안 내려가면 의외로 빠를지도 모르며, 그렇지 않더라도 일년은 못 갈 것입니다> 하고 후미코에게 살며시 주의를 주는 상황이었습니다. 병세가 악화되자 노인은 차츰차츰 신경질적으로 변해 식사 때 음식의 간이 맞지 않다며 잔심부름을 하는 오사다를 붙잡고 자주 야단을 치곤 했습니다.

 「이렇게 달아서 어디 먹겠냐구! 넌 나를 환자로 여겨 병신 취급을 하고 있는 게냐…….」

 인쿄는 얼굴을 찡그리며 괴로운 듯한 목소리로 험악스런 말을 내뱉고는, 소금을 너무 많이 넣었다느니 조미료가 너무 과하다느니 이런 저런 생트집을 잡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원래 몸 상태에 따라 혀의 감각도 달라지는 법이라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여도 환자 맘에 들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인쿄는 드디어 발작을 일으켜 끼니때마다 오사다를 호되게 꾸짖었습니다.

 인쿄의 타박이 너무 심해지면 후미코는 늘 이런 식으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또 그런 당치도 않은 말씀 하고 계시네. 음식이 맛이 없는 건 오사다 탓이 아니잖아요. 당신 입맛이 변했기 때문이잖아요. 환자 주제에 아무 말이나 막 하고 있네. 오사다! 상관없으니 치워라. 그렇게 맛없으면 안 먹으면 그만이지 뭐.」

 그녀에게 이런 소리를 듣고 나면 마치 괄태충이 소금을 맞은 것 처럼 풀이 죽어 노인은 쓱 사라질 듯이 슬며시 눈을 감고 얌전해집니다. 이럴 때 후미코는 마치 맹수 사육사가 으르렁거리는 호랑이나 사자를 다루는 분위기여서 옆에서 보고 있는 사람은 가슴이 조마조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막무가내 인쿄에게 어느새 이 정도의 권위를 휘두르게 된 후미코는 그때부터 가끔씩 환자를 내버려둔 채 별장을 비우고 어디론가 사라져서는 반나절이나 하루 종일 돌아오지 않는 날도 있었습니다.

 「여보, 잠깐 물건 사러 도쿄에 다녀올게요.」

 이렇듯 혼자말처럼 지껄이고는 인쿄가 좋다 싫다는 대답이 없어도 개의치 않고 외출 준비를 했습니다. 장에 가는 것치곤 화장이나 옷매무시에 지나치게 신경을 써 몸치장을 하고는 쏙 나가 버리는 것입니다. 후미코의 이런 난행(그렇습니다. 그것은 난행임에 틀림없습니다. 인쿄가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그녀는 적지 않은 재산을 챙겨 배우였던 T씨와 결혼했습니다만, 필시 그때부터 사람들 눈을 피해 그 남자와 만났겠지요.)은 대단히 방약무인 격이었지만 본가나 친척들은 옛날부터 인쿄의 치정에 정나미가 떨어졌기 때문에 뭐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늘내일을 알 수 없는 병상에 누운 노인이 지금에 와서 박정한 첩에게 학대당하는 운명에 빠진 것도 자업자득이니 도리가 없다는 식으로 친척들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후미코 입장에서 보면 젊은 나이에 그만한 미모를 갖고 해골이나 다름없는 노인 옆에 붙어 매일매일 단조로운 바다빛만 지켜보며 하루하루를 지낸다는 것도 참으로 심사가 뒤틀리는 일이었겠지요. 처음부터 애정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었을 테니, 이렇게 인쿄가 친지에게 버림받고 거동도 못하는 큰 병에 걸린 것을 호재로 삼아 빼낼 수 있는 것은 모두 빼내 이제 기회다 싶어 인쿄의 죽음을 채 기다리지 못하고 본성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후미코는 닷새에 한 번 정도 반드시 모습을 감추어 버렸습니다만, 그런 날따라 환자는 특히 기분이 안 좋아집니다. 후미코가 뭐라 한마디만 하면 형편없이 위축이 되어 고양이처럼 얌전해지는 주제에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불끈불끈 화를 내며 식모에게 애매한 화풀이를 하는 겁니다. 그렇게 화풀이를 하다가도 후미코가 돌아오는 게다 소리라도 들리면, 인쿄는 갑자기 꾸중을 멈추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자는 척해 버립니다. 그 태도의 변화가 너무나도 이상해서 식모인 오사다도 웃음을 터뜨리지 않고는 못배겼던 것입니다.

 별장에는 인쿄와 후미코 외에도 잔심부름을 하는 오사다와 찬모인 오산돈과 목욕탕 일을 돌보는 남자 도합 다섯 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후미코는 지금까지 말씀드렸다시피 환자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환자를 간호한 것은 주로 오사다 한 사람이었습니다. 의사는 간호원을 두라고 권했지만 인쿄는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인쿄는 지금도 가만히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도 못하는 몸이면서, 아직도 그 비밀스런 버릇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간호원이 있으면 즐거움에 방해된다고 생각했겠지요.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름다운 발을 가진 후미코와 저와 오사다 세 사람 뿐입니다. 저는 인쿄가 가마쿠라로 이사한 뒤, 후미코보다는 오히려 후미코의 발이 그리워 계속 별장에 놀러 갔습니다. 후미코도 그렇게 매일 외출을 나갈 수도 없었고 말벗도 없어 심심해하던 차에 제가 찾아가면 언제나 대개 환영해 주었습니다. 저는 학교를 빠지고 2,3일 내리 별장에서 묵는 날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미코 이상으로 제 방문을 환영한 사람은 인쿄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 제가 없으면 인쿄는 그 비밀스런 욕망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병상에 누운 그에게 저의 존재는 후미코와 동일한 정도로 필요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등뒤에 욕창이 생긴 상태로 변소에도 못 가는 몸이 되어버린 까닭에 더 이상 개 흉내도 못 내고 가끔 후미코의 발을 보면서 자신은 어떻게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득이 예의 그 걸상을 자기 머리맡에 갖다 놓게 하여, 후미코를 거기에 앉히고 저에게 개 흉내를 내게 하면서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경우, 그것을 바라보는 인쿄는 쇠약한 체력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강한 자극을 느껴 마치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쾌감에 빠졌으리라 생각됩니다. 동시에 개 흉내를 내는 저 자신도 인쿄와 똑같은 자극을 받았고, 동일한 쾌감의 순간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저는 기꺼이 인쿄의 부탁에 응했습니다. 때때로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제가 자진해서 흉내를 연출해 보였습니다. 이러한 광경 하나하나는 지금 이 얘기를 쓰면서 회상해 보아도 정말이지 생생히 떠오를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후미코의 발이 제 얼굴 위를 밟아 줄 때의 그 기분, 그때 저는 밟히고 있는 제 쪽이 그걸 넋을 잃고 보는 인쿄보다도 확실히 행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컨대 저는 인쿄의 대역이 되어 후미코의 발을 숭배하고 신성시하는 짓거리를 그의 눈앞에서 숱하게 해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후미코쪽에서 보면 두 남자가 자신의 발을 장난감처럼 다루는 모습을 보고는 정말 이 세상에는 얼빠진 놈들도 다 있구나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인쿄의 광란 증세는 저라는 적당한 짝을 찾아낸 까닭에 폐결핵의 증세와 더불어 나날이 심해 갔습니다. 그 가련한 노인을 이 지경까지 몰고 간 데에는 제게도 죄가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쿄는 이윽고 제 짓거리를 구경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도 어떻게든 후미코의 발을 만져보고 싶다고 애원하는 것이었습니다.

 「후미코, 제발이지 네 발로 내 이마를 잠깐 밟고 있어 다오. 그래만 준다면 이제 죽어도 한이 없겠다…….」

 가래가 가르랑 거리는 목으로 인쿄는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숨을 헐떡이며 가느다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후미코는 아름다운 미간을 찡그리며 유충을 밟았을 때처럼 언짢은 표정으로 환자의 시퍼런 이마 위에 그 보드라운 발바닥을 잠자코 얹는 것입니다. 빛깔이 곱고 싱싱하며 기름기가 자르르 감도는 발 아래에 뼈만 앙상한 볼을 세우고 조용히 눈을 내리감는 환자의 얼굴, 그 흙빛을 띤 무표정한 병자의 얼굴은 아침 해에 녹아 가는 얼음 알갱이처럼 무한한 은총에 감사하면서 쌔근쌔근 잠자는 듯이 죽어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어느 때는 그렇게 한 채 말라 빠진 양손을 가만히 머리 위로 가져 가 후미코의 발등을 만져보는 일도 있었습니다.

 의사의 예언대로 금년 2월이 되자 인쿄는 결국 위독한 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의식은 제법 또렷해 때때로 생각이 난 듯 후미코의 발 얘기를 계속하는 것입니다. 식욕은 완전히 잃었지만 그래도 후미코가 우유라든지 수프 따위를 면헝겊 조각이나 뭔가에 적혀 발가락 사이에 끼워 입 쪽으로 가져 가면 환자는 그것을 탐욕스럽게 언제까지나 핥아댔습니다. 이 방법은 처음에 인쿄가 생각해 냈는데, 병이 깊어지고 나서는 줄곧 그게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먹여 주지 않으면 누가 무엇을 갖고 와도 일체 응하지 않았습니다. 후미코도 손을 쓰지 않고 발로 해야 했습니다.

 임종날에는 후미코도 저도 아침부터 머리맡에 내내 붙어 있었습니다. 오후 3시경에 의사가 와서 강심제 주사를 놓고 돌아간 뒤 인쿄는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낮은 어조였습니다만, 확실한 발음으로 얘기했습니다.






111.jpg


<후미코에게 밟밟 당하는 인쿄 - 후미코의 발 드라마편에서>





 「아, 아, 이젠 틀렸어…… 이제 곧 숨을 거둘 거야……. 후미코, 후미코, 내가 죽을 때까지 발을 얹어 다오. 나는 네 발에 밟히며 죽는다…….」

 후미코는 예전처럼 무뚝뚝한 표정으로 잠자코 환자의 얼굴 위에 발을 얹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녁 5시 반에 인쿄가 숨을 거둘 때까지 정확히 두 시간 반 동안 계속해서 밟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계속 서 있어 발이 피곤하면 머리맡에 걸상을 놓고 앉아 오른발과 왼발을 번갈아 가면서 얹어 놓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인쿄는 딱 한 번 <고맙군……> 하고 희미하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나 후미코는 역시 잠자코 있었습니다.

 <별도리 없지 뭐. 이젠 이것으로 끝이니까 참고 있어 주지……> 라고 말하는 듯한 엷은 웃음이, 제가 그렇게 생각해서인지는 모르지만 그녀의 입가에 훤히 들여다보이는 듯했습니다.

 죽기 30분 정도 전에 니혼바시의 본가에서 달려온 딸 하쓰코는 그 이상야룻하고 게걸스럽고 우스꽝스럽고도 놀랍다고 할 수밖에 없는 광경을 목격해야만 했습니다. 그녀는 부친의 마지막을 슬퍼하기보다는 오히려 민망한 듯이 얼굴을 숙이며 앉아 있기 힘든 듯 몸이 굳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미코는 태연히 부탁받은 대로 그러고 있는 것이라며 노인의 이마에 발을 얹고 있었습니다. 하쓰코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만, 후미코는 후미코대로 본가 사람들에 대한 반감에서 그들을 우습게 여길 생각으로 일부러 그렇게 고집을 부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 고집이 뜻밖에 환자에게는 더없는 자비를 가져다 준 셈이었지요. 후미코가 그렇게 해준 덕분에 노인은 무한한 환히 속에서 숨을 거울 수 있었습니다. 죽어 가는 인쿄에게는 얼굴 위에 있는 아름다운 후미코의 발이 자신의 영혼을 맞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자색 구름으로 보였겠지요.


 선생님!
 쓰카코시 노인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을 맺겠습니다. 저는 그저 간단하게 줄거리를 말씀드릴 생각이었는데 어느새 길어져 장황한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의 서툴고 장황한 얘기 때문에 다소나마 선생님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은 것을 참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씀드린 인쿄의 얘기는 결코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일까요? 예를 들면 뿌리깊은 인간의 성정이라 할 수 있는 것, 그러한 암시가 이 얘기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제 문장은 지극히 졸렬하지만, 선생님의 붓으로 거기에 분식(紛飾)을 가해 고쳐 주신다면 이상의 얘기만으로도 훌륭한 소설이 완성되리라고 저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끝으로 진심으로 선생님의 문필이 나날이 번창하시기를 빌겠습니다.



                                                                                다이쇼(大正) 8년 5월 모일
                                                                                다니자키 선생님께
                                                                                노다 우노키치.




















참고로 드라마에 나오는 여배우 좀 이쁨
근데 노출 없으니 기대말고

10개의 댓글

2018.01.16
발하나 표현하려고 캐릭터 죽이네 ㄷㄷ
0
2018.01.16
켰다
0
2018.01.16
스타킹이 최고야
0
일본문학전집이라고 어릴 때 읽은 세로쓰기된 책이 있었는데, 그 중에 이 사람이 쓴 열쇠란 거 읽고 첫 몽정함. 아내하고 젊은 자기 제자하고 쎽쓰시키는 내용.
0
2018.01.16
발이 최고야 핥핥 핡핡 흐하아아아아
0
2018.01.17
저드라마 어디서봄 검색해도안나오던데
0
2018.01.17
@띵기의증띵
http://m.pandora.tv/?c=view&ch_userid=keigoo&prgid=37453723
0
2018.01.17
@ㅂㅅㄱㅁㄱ
판도라티비 아직 살아있냐?ㄷ
0
2018.01.17
@동정꼬꼬마
중요한건 이런 귀한 자료가 저기에 있다는거지
0
2018.01.17
하도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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