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을 거슬러 1968년
56년부터 시작된 베트남 전쟁은 미국이 손쉽게 끝낼 줄 알았으나,
베트콩들의 정글을 이용한 소모전은 68년 까지 미국을 명분 없는 전쟁에 빠뜨렸습니다.
더럽고 의미 없는 싸움에 이골이 난 미국의 젊은이들은 거리로 나와 전쟁 반대를 외쳤고
베트남 전쟁을 일으킨 케네디-존슨으로 이어졌던 민주당 대통령 라인의 지지율은 대폭 하락하게 됩니다.
반대로 전쟁 반대를 외치며 '침묵하는 다수' 에게 호소했던 공화당은 60년대 후반 들어 큰 힘을 얻습니다.
('침묵하는 다수' 모토는 후에 같은 보수 출신 도널드 트름프도 사용합니다.)
거기다 60년 대선 때 간발의 차이로 낙선한 리처드 닉슨은 와신상담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고,
소련과의 관계 개선(데탕트)을 위해 힘쓰고, 중국까지 직접 방문하는 등 반전의 이미지를 보이자, 닉슨의 인기는 고공행진하게 됩니다.
결국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닉슨은
압도적인 표차(60%)로 이미 너덜너덜해진 민주당 후보를 찍어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이 흐름은 1971년까지 이어졌으나, 1972년 이 사건 이후로 미 전역은 왈칵 뒤집히게 됩니다.
닉슨이 1972년 재선을 위해 위원회를 만들고 전략회의 때, G 고든 리디 라는 사람이
도청, 위장납치, 공갈협박 등의 계획을 100만 달러에 내놓았습니다.
당시 닉슨 재선위원회 위원장이자 법무부 장관 존 미첼과 그 외 위원회 수뇌부들은 고든의 이러한 구상을 못마땅해했으나
고든의 애걸에 그만 계획을 통과시키고 맙니다.
그 계획에는 민주당 전국위원회가 있는 워터게이트 호텔에 도청기를 설치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1972년 6월 17일 워터게이트 호텔에서 5명의 괴한이 경비원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경찰은 신고를 받고 호텔에 출동해 5명의 괴한을 모두 체포하였습니다.
그들 모두 단순히 절도가 목적이었다고 했으나, 이후 그들에게 거물급 변호사가 선임되었고, 그들 중 한명의 수첩에
닉슨 대통령의 보좌관 하워드 헌터의 연락처가 발견되어 의혹이 점점 더 커져갔습니다.
FBI는 수사를 통해 그들은 단순 절도가 아닌 이미 설치된 도청기의 수리, 교체가 잠입의 목적이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이후 FBI이는 이 사건에 직접적으로 발을 들이게 됩니다.
이에 닉슨은 이를 굉장히 예민하게 받아들여 CIA를 통해 FBI를 최대한 방해하라고 명령했으나
CIA는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쓸만한 검은 돈이 없었기 때문에 증인을 매수하는 데 실패하고 맙니다.
하지만 1972년 대통령 선거가 과열되자 국민의 눈은 대선에 쏠리게 되었고,
워터게이트 사건은 차츰 잊혀져 갔습니다.
1972년 대선 때에도 민주당 내 상황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민주당 대선후보 조지 맥거번과, 휴버트 험프리 간의 치열한 경선으로 인해 민주당의 표는 두쪽으로 갈라지게 되었고
그 와중에 맥거번의 부통령 후보는 중도에 사퇴까지 합니다.
결국 또다시 1972년 대선에서 닉슨은 선거인단 538명중 520명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재선에 성공하였습니다.
여담으로 민주당 대선후보 조지 맥거번은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별 일 아닌 것으로 여겨 크게 가시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는 대통령 선거의 일이지, 대선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워터게이트의 사법적 처리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결국 1973년 5명의 '도청기 수리공' 들은 전부 유죄판결을 받았고, 닉슨 자신도 청문회에 불려나갔습니다.
여기서 닉슨은 예상치도 못한 인물에게 강펀치를 맞게 되는데,
바로 그의 부 보좌관인
알렉산더 버터필드가 청문회에서 닉슨이 백악관 내에 수십개의 도청기를 설치했으며,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해 닉슨이 CIA에 사주한 전화 녹음도
존재한다는 증언을 해버립니다.
특별검사 아치볼드 콕스는 닉슨에게 녹음 내용을 공개하라고 요구했으나, 닉슨은 국가 보안이라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거절합니다.
닉슨은 청문회 이후 어느 토요일 밤, 법무장관 엘리엇 리처드슨과 법무부 장관 월리엄 러클하우스에게 콕스를 해임하라고 명령했지만
둘은 거절과 동시에 사임을 표했고, 서리 로버트 보크 차관이 명령을 받아 아치볼드 콕스를 해임합니다.
이 토요일 밤의 대학살로 인해 1973년 미 대통령의 운명은 사실상 끝나게 됩니다.
신임 특별검사 레온 자르포스키는 이러한 닉슨의 갖은 은폐행위에 대해 항소를 올렸고, 그 이의는 연방대법원에 갔습니다.
대법원은 9명 만장일치로 "헌법 위에 대통령이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심의를 내려 닉슨의 테이프 제출을 강제한다고 판결했습니다.
테이프에는 닉슨이 전화로 직접 CIA에게 FBI를 방해하라는 사주 내용이 녹음되어 있었으며, 미국 사회는 다시한번 뒤집어졌습니다.
분노한 국민들의 성화를 도무지 견딜 수 없었던 대통령은 결국
(영화 [포레스트 검프]中)
사실 따지고 보면 리처드 닉슨의 공화당 이외에 다른 세력들은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법원 또한 식물에 물을 주면 자라나듯이 순리대로 했을 뿐이었죠.
게다가 도청기를 설치했던 민주당 전국위원회에도 일급 비밀은 커녕 닉슨의 뒤통수를 가렵게 할 자료조차도 없었습니다.
때문에 민주당 입장에서도 그것을 통해 닉슨을 공격할 필요? 아니, 공격할 수가 없었죠.
리처드 닉슨은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직을 사임해야 했습니다.
이 엄청난 사건은 단순한 위증 때문에 벌어진 것이었습니다.
음음음
2016년에 다른나라가 가져갔습니다
쇼온
수도방위사령부
아리베데르치
혼세마왕
어랏
너도 나도 거짓말~
곰형
헌법이야 말로 국민의 뜻일테니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이 해줬으면...
999k
럴럴럴
근데 조사가 끝난 후 닉슨은 무죄로 판결
정교분리
츄잉잉
분의1
유한려
거짓말 저 정도 밖에 못함?
이걸로뭔짓을할까
재미없네
국위선양 캬
뒷짐진강아지
근혜가문재인걸안철수
츄잉잉
물론 최순실 게이트랑 비리규모가 엄청나게 차이나긴 하지만
진행 자체만 놓고 보면 최순실 사건은 빨리 진행된거임.
박정희
따라해요
생각만큼 그정도는 아니었네.
최순실이랑 박근혜때문에 면역되서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