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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기업농의 구조적 한계와 가능성을 좀 더 짚어봄

 

일단 경제학 얘기들이 보통 그렇듯, 전제조건부터 달고 시작해보자. 

 

1) 기업농이란, 농토를 대량 소유한 일종의 초대형 부재지주라고 정의하자. 즉 땅은 내가 댈테니 근로자 너네가 와서 농사를 지어라 식의. 

 

2) 기업농은 전통적인 지주와 비교시 세가지 큰 차이점을 지님. 첫째는 기업농의 규모는 전통지주보다 수십 수백배가 큼. 둘째는 전통지주는 대대로 자기 가문이 보유한 토지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만, 훨씬 큰 규모의 땅을 전문경영인이 운영하는 기업농은 개별 토지 하나하나에 대한 상세한 이해가 상대적으로 떨어짐. 즉 대리인 문제 (agency problem) 에 있어서 더 취약함. 셋째는 기업농은 전통 향촌사회와 달리 소작농이나 임노동자의 자유를 구속할 권한이 없음. 

 

3) 기업농은 투자에 대한 이익 창출의 의무가 있고, 취급하는 상품은 독과점이 힘들어서 마진이 낮음. 즉 비용이 조금만 크게 증가해도 가격경쟁력 또는 주주환원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함. 

 

4) 자영농이나 소작농은 기업 주주에 비해 가격 리스크에 둔감함. 농부는 생산량의 상당수를 본인 가족이 소비하는, 일종의 헷지를 장착했지만, 주주는 한 분기만 가격 하락으로 실적이 떨어져도 개난리를 피움. 

 

 

즉 이러한 전제조건 하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패턴을 볼 가능성이 높아짐. (윗 가정들은 나중에 하나씩 살펴볼테니 일단 이렇게 가보자) 

 

즉 이러한 전제조건 하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패턴을 볼 가능성이 높아짐. (윗 가정들은 나중에 하나씩 살펴볼테니 일단 이렇게 가보자) 

 

A) 소작농/노동자는 생산물의 100%를 가져가는 자영농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짐. 인풋 대비 아웃풋이 달라서 열심히 일을 해야할 동기가 자영농에 비해 낮으니까. 특히 일을 회사에서 잘릴 정도만 아니면 최소한만 하는게 가장 이득인 월급쟁이 노동자는 이 경우에 특히 생산성이 더 낮아짐. 

 

B) 소작농/노동자는 자신의 노력을 최소화 하면서 단기적인 결과 증대에 집중함. 즉 지력 황폐화 같은 문제가 생김. 그로 인한 중장기적인 문제는 기업의 비용으로 산정되지, 맘에 안 들면 언제든지 떠날수 있는 소작농/노동자가 고려할 사항이 아니까. 이 경우 sharecropping 인센티브를 받는 소작농이 동일 임금만 받는 노동자보다 지력소모 위주의 농법을 남용하거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뻘짓을 할 소지가 더 많음. 

 

C) A와 B를 막으려면 다음과 같은 방법을 일차적으로 고려해볼수 있음. 

 

- 중간관리자를 두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비용이 상승하고, 안 그래도 적은 마진이 더 안 좋아짐. 게다가 중간관리자가 일을 꼭 성실히 할거라는 보장도 없음. 그들의 생산성은 뭐로 측정할건데? 얘네들이 지력을 안 빨아먹으리라는 보장은? 

 

- 기업이 보유한 토지를 여럿으로 나눠서 “지주이면서 주주” 인 이익집단 또는 (스톡옵션 비스무리한) 사내 관리 계층을 만들어보면? 

 

근데 그러면 전통지주에 비해서 나은게 뭐임? 게다가 전통지주는 소작농의 자유를 구속하는게 가능하지만, 기업의 경우 소작농들은 벌이가 시원찮거나 지주-주주가 맘에 안 들면 얼마든지 튀어버릴텐데?

 

- 기업이 소작농이나 노동자에게 농삿일에 일일히 개입하는 촘촘한 시스템을 구축하면 되지 않을까?

 

그게 가능할지도 의문이지만, 그렇게 자세히 컨트롤하려고 들면 비용이 크게 상승함. 관리자 수 추가에, 농사 관련 정보를 지역마다 체크해야하고, 일이 제대로 안 풀렸을 때 책임 소재를 기업에 미룰 수가 있음. 

 

덤으로 농부들의 권한을 제한시키는 행위 자체가 생산성을 크게 해칠수 있음. 호모 사피엔스란 종은 지 멋대로 일을 처리할 권한을 주지 않으면 대개 그냥 매뉴얼 대로만 움직이고, 창의적인 솔루션 개발을 회피하는 습성을 가졌거든. 제가요? 이걸요? 왜요? 식의 행위에 취약해진다는거. 

 

결국 이런 가정 하에서는 자영농 대비 기업농의 비용이 상승하고, 기업이 책임져야 할 리스크 역시 더 커지는걸 발견할 수 있음. 뭐 기업농이 이걸 다 무시할수 있을만큼 개쩌는 생산성 향상 기술이 있다면 모를까. 

 

 

그렇다면 오버테크놀러지를 제외한 현실적인 조건 하에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은 뭐가 있을까? 

 

바로 위에 언급했던 전제조건들을 깨버리면 됨. 

 

1a) 기업농을 소규모로 굴리겠다면 토지의 이해도 문제는 해결됨. 예를 들어 부리는 직원의 수가 5명 (농장 5개) 일 경우에는 마이크로 컨트롤이 가능하지만, 500명 또는 농장 500개의 경우에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 처럼. 경영 컨설팅에서는 이런 한계치의 최적화 문제를 optimization of spans and layers of control 이라고 부름. 다만 이렇게 효율 최적화를 따지다 보면 낮은 마진의 한계 때문에 기업농이 대기업으로 크기는 힘들어짐. 

 

1b) 농업의 기계화는 1인당 커버 가능한 재배면적을 크게 상승시켜서 스케일의 확장을 가능케함. 극히 단순화한 예를 들어 보자면, 기계화 이전에 소작/노동자 5명을 각각 1km^2 의 땅을 경작해서 총 5km^2의 땅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었다면, 기계화는 노동자 1명당 4km^2의 땅을 경작하게 함으로써 총 20km^2 의 높은 생산성 토지를 보유하게 되는 식으로 규모의 한계치 자체를 올려버리니까. 

 

2) 기업이 노동자의 자유를 구속할 수 있다면 대리인 문제가 상대적으로 줄어듬. 즉 농노제나 노예제의 경우 열심히 일을 안하면 죽을지도 모르니 최소한의 열의는 생김. 이건 극빈국의 플랜테이션에서도 마찬가지임. 일 열심히 안하면 맞아죽거나 굶어죽을텐데? 라는 무적의 명령어가 나오니까. 사실 노예도 생산성은 그닥 별로였던걸 보면 딱히 모범답안은 아니지만, 밑의 3과 연계되는 경우가 있긴함. 

 

하지만 남북전쟁 이후 (특히 임금이 높은) 미국이나 서구 사회에서는 indentured servitude 같은 특수한 상황을 제외한다면 그런 식의 구속이 사실상 힘듬. 

 

3) 열대 과일이나 (예를 들어 돌, 유나이티드 프루츠) 기타 상품작물은 독과점을 이용해서 고마진 사업을 창출하는게 가능한 경우가 종종 있음. 그러면 중간 관리자를 고용하는 것에 대한 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어짐. 여차하면 그 비효율의 피해를 소비자에게 떠넘겨버려도 되고. 

 

게다가 인건비가 매우 낮은 지역에서는 큰 비용을 지불하지도 않으면서도 사람을 무식하게 더 때려박는 방식으로 생산성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바나나 공화국 같은 성공(?) 사례가 종종 나온거. 

 

4a) 기업이 다른 주체에 리스크를 전가하면 되긴 함. 

 

기업이 직접 농사를 짓는 대신에, 상품성 높은 종자나 농산물 보관 창고, 생산물 도정이나 가공업 같은 농사에 필수적인 아이템들을 구독경제 방식으로 지주나 자영농들에게 팔아먹으면, 농사 자체의 리스크를 통째로 타인에게 전가하면서, 기업 본인들은 규모를 빠르게, 그리고 스케일의 제한 없이 크게 불리는게 가능해짐. 대리인 문제고 흉년 리스크고 가격 폭락이건 상관 없이 내가 땅 주인도 아닌데 알빠노 하면서 매년 서비스 수수료만 챙기면 그만이니까. 

 

흔히 곡물 메이저라고 불리는 카길, ADM, 벙기 같은 대기업들은 대개 이런 식으로 커진 회사들임. 

 

4b) 맥도날드 전략으로 큰 회사들도 있음. 얘네는 농장보다 부동산 업자에 가까운 존재들인데, 농장은 그냥 돈 좀 만질 정도로만 돌아가게 내버려두고, 대신 이익금을 연관된 식품 도소매업이나 주변에 인프라와 관광지, 주거지역을 깔아버리는데 투자함. 

 

그러자 농장 주변의 땅값이 오르기 시작했고, 수십년이 지나자 농장이 대도시나 휴양도시 한복판에 있는 노른자 땅이 되면서 기업이 대박남. 이런 방식으로 큰 대기업 중 가장 유명한 예시가 LA 밑의 오렌지 카운티에 위치한 농장과 그 주변 땅을 신도시로 개발하면서 20조에 가까운 돈을 벌어들인 미국 최대의 부동산 회사 중 하나인 The Irvine Company 고, 하와이의 대지주이자 (서류상으로는) 사탕수수 농장 주인인 Alexander & Baldwin 역시 이와 비슷한 케이스임.

 

다만 이 경우에는 농장이 하와이나 플로리다, 캘리포니아 같은 미래의 개꿀땅 동네 근처에 위치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음. 

 

 

요약) 농업의 현대화 이전에 대형 기업농으로 성공하려면, 기계화를 때려박던지, 바나나 공화국에서 저임금 노예를 굴려가며 고마진 상품작물을 독점하던지, 농사를 짓는 대신 종자 같은 필수재 시장을 구독경제로 팔아먹던지, 용도변경을 노리고 도시개발로 부동산 대박을 내면 됨

 

https://m.dcinside.com/board/alternative_history/1004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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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댓글

13 일 전

ㅇㄷ 이따 봐야지

1
13 일 전

농작물이 수요는 절대로 안없어질 재화 아닌가

0
13 일 전
@charlote

반대로 독점이 불가한 재화이기도 하지

0
13 일 전
@년째숙성주

기업이 아니라도 누군가가 생산하면 댓가를 받을 수는 있겠지. 그 댓가가 지금보단 훨씬 비싸지더라도.

0
13 일 전
@charlote

ㅇㅇ 그러니까 기업에선 매력이 없는거지

0
12 일 전
@charlote

가치사슬의 이익창출이 유통쪽에 몰려있고, 농산물수집이 쉽지않아..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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