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난 기생충을 보는 내내 불편했다

고등학교시절 씨네21에 수록된 봉준호 관련 글을 읽을 때마다 항상 부러웠다

 

어린시절 부유한 예술가 가정에서 자라면서 밖에서도 배울 수 없는, 집에서 내재된 예술가적 감각과 열린 사고방식 그리고 부모로부터 이어진 유전자도 부러웠다

 

 

우리집은 정반대였지만 나도 어린시절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돈이 없어서 영화관은 못 갔지만 동네 비디오가게 사장님보다 가게내부에 비디오가 어디어디 꽂혀있는지 빨리 찾을 수 있을만큼 영화를 자주 빌려봤다. 중고등학교시절은 돈이없어서 영화를 불법다운해서 봤다. 혼자 시놉시스를 써본다거나 시나리오의 틀을 상상하며 혼자 재미있어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작은 카메라 하나를 가지고 동네사람들앞에서 자신이 찍은 영상을 보여주며 놀래켰던 스티븐 스필버그, 예술가 가정에서 자라면서 감각을 키워온 봉준호감독처럼 나는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집까지 담보로 잡혀가며 자신의 영화 '똥파리'를 만든 양익준감독같은 패기도 없었다. 난 실패하면 떠받쳐줄 기본적인 사회지지망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오히려 우리집은 양익준감독의 영화 '똥파리'에 나온 주인공의 가정이나 기생충에 나온 송강호의 집과 비슷했다. 

제대로 된 경제적수입이 없는 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무언가를 사달라고 조른건 7살때가 마지막기억이었다. 난 장난감이 가지고 싶다고 했고 부모님은 그럴 능력이 없었다. 내게 주어진 건 모래먼지를 일으키는 동네놀이터밖에 없었다. 

 

영화 중반부를 지나가며 비가 많이 와서 홍수가 나는 장면이 있었다. 화장실 똥물이 역류하고 집안은 물로 잠긴 장면에서, 박소담은 변기위에서 담배를 피웠다. 싸구려가면을 쓰고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것처럼 연기를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학창시절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그와 비슷했다. 이번 중간고사에서 90점을 받으면 부모님이 용돈을 올려준다거나 설날에 100만원을 받았다며 말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집으로 돌아올때의 내 모습같았다. 

 

 

누군가는 송강호가 이선균을 찌른 장면이나, 최우식이 지하실로 내려가 아저씨를 죽이려하는 장면이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냄새가 나고 퀘퀘한 지하철냄새와 같다는 이야기, 바퀴벌레같다는 비유에 화를 낸 척 연기했다고 말한 송강호의 모습을 보며 그냥 작품을 감상하듯 본 사람들도 많았던 것 같다.

 

 

가장 슬펐던 장면은 송강호가 동네체육관에 누워 무계획이 계획이라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성공한 사람들은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10년 20년뒤에 자신이 무엇이 되어있을것인지 말이다.

초등학교시절 교장선생이 아침조회에서 늘 뱉던 말이었지만 난 공감하지 못했다. 오히려 송강호의 말이 더 공감이 갔다.

가난한 집에서는 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 실패한 계획만 존재할 뿐, 반복된 무기력의 학습은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다. 그저 오늘과 내일의 시간차이만 있을 뿐 흘러가는 대로 살게 된다.

 

 

 

지금은 나도 예전과는 달라졌지만 성향만은 그대로 남아있다. 

영화마지막장면에서 최우식이 집을 사서 아버지를 나오게 해드릴게요하는 부분에서 난 실소를 터뜨렸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부자들이 사는 동네로 들어간다? 나도 어릴때 그런 꿈을 꿨던게 생각나서 그냥 웃어넘겼다.

기생충은 정말 불편한 영화다.

11개의 댓글

2019.05.31

그걸 어떻게 그 따위로 생각할 수가? 그걸 어떻게 이해를 못하지?

이런 말 하는 새끼들은 싸대기 한 대 씩 맞아야됨. 좋은 글 ㅊㅊ

1
2019.05.31
@Sylvian

가난을 겪어본 사람이면 아마 뼈저리게 느꼈을거라고 생각함

 

타인 앞에서 아무렇지 않아하지만 쌓이고 쌓인 감정이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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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31
@등급개붕이

다른 계층이 가진 감정들을 몰래 방귀뀌는거마냥 자연스럽게 흘려내는게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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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31
@깅닝딩링밍

맞아 서서히 장면들이 고조되면서 자연스레 진행되더라

 

송강호가 이선균네 집에서 도망치면서 뛰어가는 장면과 집으로 가는 장면, 집에서 똥물이 넘치는 장면들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면서 자연스레 감정이 이입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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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31

봉준호가 진짜 천재감독인 이유는 언더독의 삶을 겪어본적이 없음에도 그 심리와 피해의식을 소름끼치도록 파고든다는 점임

 

한국영화에선 하류계층이 그래도 선하고 가정적이며, 상류층의 희생물로 소비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기생충 보고 존나 감탄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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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31
@K1A1

맞아 그 부분에서 봉준호의 재능이 정말 부러웠고 시기하게 되더라

 

 

그래서 더 불편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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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1
@K1A1

나도 가난한 가족은 부자가족의 희생물 처럼 묘사될줄 알았는데

그런거 없어서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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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31

진짜 좀 돈없이 살아봤으면 뼈저리게 느끼는 감정들이지

상대적 박탈감, 학습된 무기력함, 피해의식 등등

그걸 진짜 엄청나게 잘표현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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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1
@닼린이

똥물이 된 집에서 돈이 될걸 가져가는 것보다 메달,

옛날 자신이 기우만할때 꿈이있던 시절 받은 메달인지 아니면 어린 시절 기우나 기정이 꿈이 가득할 때 받은 메달인지 모를,

그 메달을 챙기는 모습이 결정적인 것 같다. 감독이 마냥 이 사람들이 악하고 천한 성질을 가지 된게 아니고

작성자가 말하는 것처럼 희망찬 사람이더라도 가난에 서서히 무너져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걸 표현해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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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2

학벌에 대한 동경심부터 고소득자에 대한 선망까지...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한 영화는 진짜 오랜만에 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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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5

감정이 불편했다면 의도전달에 성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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