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평소에 위 안 좋은 사람들 보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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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합니다. 촉에 등용 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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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년 당시 삼국 지도. 삼발이 솥이 한가지 색깔로 물들기 직전의 모습이다>

 

제갈량 사후 약 30년 만에 촉한이 멸망한다. 삼국지연의에서 이 30년에 걸쳐 벌어지는 일을 달랑 16화 안에 압축해 놨으니, 사람들이 새삼스러워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촉한은 화덕의 나라답게 망국의 운명 앞에서 맹렬히 저항했고, 그 중심에 강유가 있었다.

 

때는 263년, 위의 전권을 잡은 사마소는 끊임 없이 내려지는 왕공 서훈도 고사한 채, 돌연 촉한을 정벌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다. 대장군 사마소는 일찌기 전함을 대대적으로 건조하라는 명을 내린 바 있는데, 진작부터 촉한을 치기로 마음먹은 사마소의 전략적 속임수일 뿐이었다. 사마소의 속내는 위의 말년을 살펴보면 짐작할 수 있는데,

 

249년 고평릉 사변 / 강유의 1차 북벌

250년 왕창이 동오의 강릉을 공격 / 강유가 위의 서평을 공격

253년 제갈각이 위의 신성을 공격했다가 20만 대군을 잃고 참패 / 강유의 2차 북벌

254년 강유의 3차 북벌

255년 관구검의 난 / 강유의 4차 북벌

256년 강유의 5차 북벌, 단곡전투

257년 제갈탄의 난 / 강유의 6차 북벌

262년 강유의 7차 북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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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태조 사마소. 천자를 둘씩이나 갈아치우고도 황위에 오른 그의 인생이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가>

 

이렇듯 시대가 위를 향해 절을 하는 와중에도 강유와 촉한만은 꿋꿋이 덤비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사마소가 당면한 최대의 외적은 물론 덩치가 큰 오나라였으나, 253년 제갈각이 죽은 이후 오는 지저분한 권력 다툼을 일삼느라 위에 대항할 여력이 없었다. 또한 마음 놓고 오를 치고 싶어도 촉한을 뒷통수에 두고서 원정을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때문에 사마소 정권이 촉한을 먼저 공격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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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한 정벌군의 진군 경로. 진령산맥의 험준한 땅 곳곳에 요새를 세워 촉한은 빗장문이 단단한 나라였다>

 

사마소는 모략에 능한 종회와 함께 촉멸 계획을 추진했고, 그 결과 만슈타인의 낫질 작전과 같이 예술적인 전략이 탄생한다. 촉한 정벌전의 요체는 "강유 전담 마크" + "속전속결"로, 자꾸만 변경을 침범하는 정예 강유군을 고립시킨 사이 비어있는 촉한을 침공해 끝장내는 것이다. 강유를 도발해 정면에서 들이받는 병력은 강유와 오래도록 맞붙어 본 숙장인 정서장군 등애(3만 軍), 강유가 퇴각하려 할 때 뒤를 끊는 병력은 옹주자사 제갈서(3만 軍), 이 둘이 시간 끄는 동안 촉한의 항복을 받아내는 최대의 공적을 가져갈 병력은 진서장군 종회(10만 ~ 12만 軍)가 지휘하기로 했다.

 

당시 강유가 주둔한 곳은 답중으로, 한중과 더불어 중요한 방어 거점이었다. 강유는 단곡전투에서의 대패로 자기 직책마저 대장군에서 후장군으로 깎는 등 복기를 거듭한 끝에, 촉한의 대북 방어 전략에 일대 혁신을 가한다 : 험지에 의존해 적의 침입을 원천봉쇄하는 기존 전략을, 적의 본대를 영내로 깊숙이 유인한 다음 보급로를 끊어 고사시키는 쪽으로 수정한 것이다. 강유는 명백히 "이득"을 거론하며 한타의 대성공을 통한 일발역전책을 준비한 것인데, 그 전략의 요충지가 바로 답중과 한중이다. 적군이 그나마 평지인 한중 땅으로 들어오면 한중을 청야해 자원을 낙성 + 한성에 모아두고 버티는 동안, 답중에 주둔하는 유격대가 뛰쳐나와 후방을 끊고, 이렇게 적의 대군을 섬멸한 후 공세로 전환하는 것이 요지. 그러므로 신중하게 운용해야 할 유격대인 답중군은 강유가 맡는 것이 옳다. 이에 강유는 258년부터 줄곧 답중에서 둔전하며 군을 강화하고 있었다.

 

때문에 위군 역시 강유가 주둔 중인 답중을 포위할 필요가 있었다. 흡사 빌바오전에서 메시를 막기 위해 쓰러져 간 5인의 선수들이 생각나는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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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촉멸전 진행도. 시간 순서에 관계 없이 그려져있다>

 

강유는 당초 위의 움직임을 수상쩍게 생각했던지, 양안관구와 음평, 교두에 군을 배치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으나 후주 유선은 환관 황호가 불러들인 무당의 말만 듣고 전쟁 대비를 소홀히 한다. 양앙관구는 한중 남쪽의 요새로 강유가 입안한 방어 전략의 요지였고 음평과 교두 또한 검각 ~ 면죽 ~ 성도로 이르는 관문인만큼 역시 중요한 곳이었다. 그러나 촉한은 263년 9월이 되어서야 원군을 파견해 요화는 음평으로, 장익과 동궐은 양안관구로 지원한다. 위군이 8월에 남하했으므로 늦어도 한참 늦었던 것이다.

 

9월, 한중의 전투 소식을 접한 강유는 답중을 나와 아군을 지원하고자 했는데, 때마침 등애군이 당도해 교전이 벌어졌다. 여기서 패배한 강유는 음평을 통해 퇴각하려 했는데, 이미 제갈서군이 교두를 점령하고 있어 길이 통하지 않았다. 앞으로는 등애, 뒤로는 제갈서. 강유는 이 전투를 이겨낼 수도 없거니와, 설령 천운으로 이겼을지라도 종회군을 막지 못해 패전할 것이었다. 그렇다고 무리하게 혈로를 뚫을만큼 병력에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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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두에서의 추격전. 제갈톰, 강제리를 놓치다>

 

이 때, 강유는 기지를 발휘해 난국을 타개한다. 음평에서 길이 막힌 강유는 북부에 위치한 공함곡 방면으로 "진군"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함곡에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상규, 가정을 범하게 되니 도리어 위군의 후방이 무너지는 꼴이 된다. 옹주자사 직위였던 제갈서는 이를 접하고 기겁하여 강유를 추격했는데, 30리를 따라붙었다.

 

그게 바로 강유가 노리던 바였다 ! 강유는 제갈서군을 예의주시하다가 일군이 교두를 버리고 쫓아오자 그대로 회군, 비어있는 교두를 빠른 속도로 통과한다. 이 예술 같은 회피 기동에 기만 당한 제갈서가 급히 강유를 따라나섰으나 하루 차이로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강유는 자신을 지원하러 온 요화군과 합류할 수 있었다.

 

종회의 10 여 만 대군이 한중을 공격할 적에, 양안관구를 지키던 촉장 장서와 부첨은 "영격해야 한다" vs "수비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견해 차이로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가서 싸우자고 주장한 장서는 사실 자신이 중임을 맡지 못한 것에 불만을 품고 투항하려는 뜻이 있었고, 부첨과 투닥거리다가 멋대로 종회군에 합류하는 바람에 양안관구는 함락 되었다. 강유의 빅 픽쳐는 한성 + 낙성 + 양안관구 등 주요 거점에 부딪혀 적의 대군이 시일을 지체하는 사이, 뒷문을 닫아 저절로 말려죽도록 하는 구도였는데 오히려 정문인 양안관구가 열림으로써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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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의 요새 검각. 검각 관문을 뚫어내지 않고는 저 미친 높이를 자랑하는 산을 타야 진군할 수 있었다>

 

할 수 없이 강유는 검각으로 후퇴하여 길을 누르고 방어 태세에 돌입하는데, 종회는 10월이 되도록 바로 이 검각에서 가로막혀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인다. 가뜩이나 20만에 가까운 대병력이 험지를 건너느라 보급도 불안정한데, 날씨는 추워지고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 해 병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니, 종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씨알도 안 먹히는 도발이나 어설프게 내지르는 것 뿐이었다.

 

등애는 음평으로 돌아가 700리 길을 산행하여 검각 서쪽의 강유(江油), 남쪽의 면죽을 뚫는 것으로 상황을 해결해 보려 했지만, 당시까지는 기책이었다기보다 무모한 기행에 불과했다. 강유관도 검각관 못지 않은 천연 요새에다 등애군은 공성병기가 없었기 때문에 애초부터 공격력에 한계가 있었는데, 그마저도 산 꼭대기 약수터 뜨러 가듯 경무장한 병력이 몇 날 며칠을 고생해서 공략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시대의 부름이었을까, 강유관을 지키던 마막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눈앞에 나타난 위군을 보고선 싸움 한 번 벌이지 않고 항복하는 선택을 하고야 만다. 뒤이어 면죽에서의 방어전도 실패, 위장군 제갈첨이 전사하고 성도마저 위태롭자 강유(姜維)는 잘 막던 검각까지 포기하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강유는 검각 수비대와 각지에 흩어진 패잔병들을 아득바득 긁어모아 그야말로 성도까지 쾌진격하는데, 등애군을 성도에서 박살내고 바로 되돌아 종회군을 막으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후주 유선은 그런 강유의 헤아림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항 대신 투항을 선택하고 말았다. 이로써 촉한은 11월에 조위의 땅으로 복속됐다. 강유는 항복하라는 유선의 교지를 받들어 전군에 전했는데, 장졸들이 칼로 바위를 내려치는 등 분함을 참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요화, 장익, 동궐과 함께 종회군에게 항복한다. 성도에 있던 등애가 아니라 굳이 종회에게 나아가 항복한 것은 강유 최후의 자존심 때문에 라이벌 등애에게만큼은 굽히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한다.

 

사마소는 그토록 사양해왔던 진공(晉公) 책봉을 받아들인다. 배수 著, 「우공지역도」 서문에 "대진이 용흥하여 천하를 통일하고 우주를 깨끗하게 하는데 있어 용촉(庸蜀)으로부터 시작하였으니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험난하였다" 라고 했으니, 사마소가 촉한을 멸한 것으로 자신의 정통성이 바로 섰다고 여겼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강유는 이에 반발하듯, 이듬해인 264년 들어 요화, 장익 등 촉한 항장들과 종회를 꼬드겨 반란을 일으킨다. 그는 실권자인 종회를 조종해 적장들을 잡아가두고 거병하려 했으나, 정촉부터 어설프게 행동하던 종회가 일을 우유부단하게 처리하는 바람에 사태를 그르친다. 결국 강유는 예순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 분전해 몰려오는 위군을 손수 대여섯 참살하기까지 했지만, 역부족으로 살해 당하면서 운명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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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 백약(伯約). 항장 출신인데도 대장군까지 오른 몸으로, 삼국지연의 덕에 공명의 후계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강유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 부족한 촉의 국력을 쓸데없이 축낸 전쟁광 vs 쓰러져가던 촉을 온몸으로 지탱한 영웅. 사실 강유는 많은 전투에 임하여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둔 바 있으나, 제갈량조차 인재 소모를 우려해 하지 않았던 대군 운용을 보여 큰 낭패도 보았다. 이러한 강유의 행보를 본 사람들은 그가 정말 유능했는지, 운이 좋았을 뿐인지 왈가왈부가 많았다.

 

나는 강유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가 옹주를 깊숙이 찌르는 3, 4차 북벌에서 보여준 대승, 한중을 청야하여 대군을 몰살하려는 계책, 위촉멸전에서 보여준 곡예와도 같은 회피 기동 등에서 보여주는 군재는 매우 뛰어난 수준이다. 다만, 나는 강유의 재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강유 정도로 재주가 뛰어났다면, 저 위치에서 아름다운 족적을 남길 수 있었을까? 원소를 위해 조조의 3대까지 모독하고도 조조 밑에서 일한 진림, 역시 조조에게 빅엿을 여러 차례 먹이고도 조조와 붙어먹은 가후 등 능력이 출중하면 원수하고도 일을 함께 할 수 있었던 시대다. 마침 망조가 들어 고추 없는 환관 놈이 다 해 먹는 판에, 딱 한 번 굽히면 나도 살 길이 열리고 호의호식하며 지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천하의 도의와 시비는 이미 땅에 떨어져, 내 편 아니면 네 편의 선택이 생사를 가르는 진영 논리가 중요했다. 나 같은 범부도 깨달을 수 있는 이치를 강유만 한 사람이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런데 강유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

 

강유의 인생은 실패로 점철되어 있고, 천명이 그에게 주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굴하지 않았다. 거듭된 실패 속에서 걸어나간 강유의 뒷모습이 보여주는 바는, 숱한 실패를 담담히 관조하는 자세와 자신의 신념을 위해 다시 일어나는 용기의 가치이다. 대세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도, 엉망으로 나가떨어지는 자신의 운명에도 거칠게 저항하며, 마지막까지 불꽃처럼 타오른 강유의 일생은 그 자체로도 사람들에게 많은 울림을 준다. 이것이 강유가 매력적인 이유이다. 


 

11개의 댓글

글 진짜 병신 같이 썼네

1
2019.08.12
@한그르데아이사쯔

지가 딜넣고 탱하고 다 하고 있누.

4
2019.08.13
@한그르데아이사쯔

그렇다면 ㅂㅁ 한 송이 놓고 가겠습니다

2
2019.08.12

아 읽판에 있다는걸 방심햇네 자존심상해

1
14
2019.08.12

ㅂㅁ

1
2019.08.13
1
2019.08.13
1
2019.08.13

오 꽤 잘 썼다. 나도 삼국지 좋아해서 전투전개과정같은거 다 찾아봤는데ㅋㅋ

1
2019.08.14

사람들이 위나라보다 촉을 조조보다 유비를 사마위보다 제갈량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 그나라에 남자의 로망이 깃들어서인거 같아

쥐뿔도 없으면서 황제가 될거라고 말한 돗자리장수 유비 서주대학살이후 형주로 도망처왔지만 유비에게 세번 처맞고 죽을때까지

촉한의 충신으로 남은 제갈량

조조가 더 좋다고? 당신은 여백사한후 서주한다음 찬합을 먹을것입니다

2
2019.08.14

진짜 위 안좋아서 걱정이엇는데 ㅈ같네

2
2019.08.14

진짜 위 안좋아서 호다닥 들어왓는데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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