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펌글)중국의 통일을 묶어낸 2가지 비기, 대운하와 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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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중국을 파괴할 수 있을까? 를 고민해 온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서 중국은 파괴되지 않았을까 2천년 동안? 을 먼저 고민해봐야 한다.

사실 중국의 파괴(=분열)에 대해서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연구해온 사람은 당사자인 중국인이다.

중국인은 저 큰 대륙을 하나의 제국으로 묶어내기 위해서 부단히 많은 노력을 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대운하와 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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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권의 통일

대운하는 남북의 경제권을 통일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1) 넘쳐나는 화북의 인구를 먹여살리기 위해서 화남의 생산물을 북쪽으로 수송하기 위해서,

2) 화남과 화북의 군대를 신속히 북쪽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이다.

중국의 지리는 서고동저이기 때문에 모든 강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

그래서 남북으로 케이크처럼 분할될 수 밖에 없다.

황하는 중화문명의 시작과 함께 한 강이고 화북평원의 한복판에 있기 때문에 중화=화북=황하이다.

그리고 황하의 물이 노란 것은 고대부터 황하유역 일대에 개간을 통한 환경파괴가 심했기 때문에 토사가 대량으로 유실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런 토사유출 때문에 황하는 물길이 계속해서 변하는 걸로 유명하다.(황하 하구의 위치 변화는 한반도 크기를 넘어섬)

그런데 양자강은 황하같은 토사유출이 심하지 않아서 그냥 일반적인 강이다.

대신 ㅈㄴ 크고 긴 강. 세계에서 3번째고 아시아에선 1번째로 길다.

그래서 고대에 양자강은 거대한 자연장벽 역할을 했다.

그런데 군사력으로 화북과 화남을 통일해도 사람과 물자의 교류가 안 되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그래서 중국인들은 지금부터 1400년 전에 대운하를 뚫었다.

상상실험을 해서, 만약 양자강폭이 지금보다 3배 이상 넓고, 지금 대운하에 놓여진 화북평원 하류가 뻘이어서 운하 건설에 적절치 않고 운하건설 할 때마다 지진이 발생하는 등으로 대운하가 안 만들어졌다면 어땠을까?

중국 영토는 화북평원으로 그치게 되고 양자강 이남은 다른 문명권에서 다른 정체성을 지닌 국가가 들어섰을 것이다.

중국이 중원 크기에 그쳤다면 고구려는 멸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의 핵심영토는 사실 화북+화남이고 나머지 영역들은 별 관심을 안 보였던 곳이다.

하얼빈, 흑룡강의 동북지역은 동이 오랑캐의 성지였고, 북부와 서북부는 사막이다.

서남부의 티벳은 등산가들만 좋아할 땅이다.

청나라 때 확립된 현재의 중국 영토는 화북+화남의 엑기스 영토에 동서남북으로 배후지를 결합한 형태이다.

내가 관심 있는 땅은 화북과 화남 뿐이지만 중화의 안보를 위해서 순망치한으로 배후지까지 점령해둔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영토확장의 처음 단추가 바로 중원의 화남정벌이었는데, 남북을 경제적으로 통합시킨 첫단추는 대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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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권의 통일

한자는 특이한 문자다. 표어문자(logogram)으로 글자 하나에 뜻 하나, 발음 하나가 고정되어 있다.

한자의 강점은 조어력(새로운 단어를 만들기 용이함)이 좋고 그 덕에 압축력이 뛰어나다.

또한 추상적인 개념을 담는데에도 발군이다. 그래서 동아시아에서 어려운 단어나 개념은 전부 한자어로 되어 있다.

그런데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글자에 획수가 많아서 가독성이 떨어지고 필기할 때 시간이 오래걸린다.

그러나 가장 큰 단점은 알아야 하는 글자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숫자는 문명이 발전할 수록 늘면 늘었지 절대 안 줄어든다.

그래서 배우는데 너무 불편하고 어려워서 국민들의 문해력이 높아질 수가 없는 글자이다.

그런데 중국은 워낙 넓은 대륙이라 화북과 화남의 말이 달랐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도 중국에서 외계어로 인식되는 광동어는 그냥 다른 언어라고 보면 된다.

만다린 화자와 광동어 화자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사물을 지칭하는 한자도 광동어는 상당부분 만다린과 다른 한자를 쓴다.

쉽게 말해서, 만다린과 광동어는 그냥 한자를 쓴다는 것만 공통점이고, 입말은 완전히 다르며 글말도 상당부분 다르다.

지금도 이럴진대, 고대 중국에게 양자강 이남은 그냥 외국인을 넘어서 오랑캐였다.

이 부분에서 난 오랫동안 궁금점이 있었다.

아니, 대륙의 상황이 저러하면 대체 한자를 고집해야 할 이유가 뭐가 있지? 장점이 많은 문자이지만 단점도 못지않게 많잖아?

대기업이 아무리 좋다한들 퇴사자가 나오는 것은, 그 무수히 많은 대기업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내가 못 참겠는 단점들 때문에 관두는 것이다.

그러면 똑같이 문자에서도 아무리 한자가 장점이 있다한들, 이런 단점(배우기 어렵다, 복잡하다)이 있으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지- 라는 게 내 의문이었음.

내가 생각한 건 표음문자의 도입이다. 쉽게 말해서 한자 대신 병음부호로 글 쓰면 안 되나?

이렇게 되면 한국어의 한글이나 베트남어처럼 된다.

베트남어는 과거 쯔놈이라는 한자를 개량한 문자를 썼는데, 배우기 복잡해서 글자를 알파벳으로 바꿔버렸다.

이게 너무 급진적이면 일본처럼 한자와 표음문자를 병행하는 방법도 있다.

이런 생각을 왜 안 했을까? 근데 중국에서도 그런 고민을 했었다고 한다.

가깝게는 모택동부터 한자는 타파해야 할 구습이므로 싹 갈아엎어버리고 병음부호로 글 써라-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함.

이 아이디어는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그리고 캐나다에서 고대중국사 박사과정인 분한테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무려 "중세" 중국 때에도 한자를 폐기하고 표음문자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그 움직임도 결국 시도되지 않았다고.

난 이렇게 단점 많은 한자를 결국 폐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끌고온 것이 중국인의 정신을 하나로 묶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언어라는 게 생각보다 쉽게 변한다.

특히, 입말은 매우 말랑말랑한 것이어서 한 200-300년 흐르면 완전히 다른 언어가 된다고 함.

언어학에 의하면, 방언 격차, 나아가 외국어로의 변형과 지리상 거리는 생각보다 큰 영향이 없다고 한다.

즉,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화북평원처럼 사방이 고속도로인 지역에서는 방언 격차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언 격차를 심화시키는 요인은 교류 빈도이다.

그래서 평면상으로는 얼마 안 떨어져 있다해도 그곳이 험준한 안데스 산맥이라면, 우리 동네 말이랑 바로 옆 골짜기 말이 완전히 말이 안 통하는 외국어로 진화할 확률이 높다는 뜻.

그래서 중국어 방언 지도를 보면 북부는 화북평원에서 동북평원까지 전부 매끈하게 만다린인데, 남쪽에는 오어, 감어, 상어, 민남어, 객가어, 월어 등 잘게 쪼개지는 것이다.

지형도에 볼 수 있듯이 중국 남부는 산맥 투성이이기 때문에 방언그룹끼리 교류가 많을 수가 없었다.

결국 이래서 중화의 조상들은 그 불편한 한자를 그냥 내비둔 거 같다.

막말로 춘추전국시대 때 양자강 이남 사람들이 중원 사람들 보면서 무슨 동질감을 느꼈겠나?

기후 다르지(화북은 물이 부족하고 건조한 대륙성 기후/화남은 비가 많이 오는 아열대 기후), 주식 다르지(화북은 밀농사/화남은 쌀농사), 지형 다르지(화북은 평원/화남은 산맥), 말 다르지(그냥 서로 외국어 수준), 문화 다르지, 인종도 다르지(화남은 월남인이나 동남아인에 가까움). 다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배우기 불편하다고 문자를 표음문자로 바꿔버리면 어떻게 될까?

이러면 남과 북을 이어줄 매개체가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런 매개체가 없는 상황에서 군사력만으로 통일한다고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될까? 안 되지.

중국이 표음문자를 도입하면 남과 북은 그대로 유럽처럼 진화하게 됨.

이러면 중국을 통일하는데에도 진통이 커지게 된다.

그래서 말은 지방마다 여기저기 풀려있지만 글은 강력하게 통제하는 한자의 특성을 중화의 조상들은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자를 쓰면 필담일 지언정 남과 북이 같은 글자를 쓴다는 강력한 공통점이 생기니까.

13억 중국인이라면 날 때부터 걸리는 풍토병이 있다. 그건 난 분열이 ㅈㄴ 시러- 라는 노이로제병이다.

역사를 중시하는 중국인이 2천년에 걸쳐 얻은 교훈 중 하나는 중국은 분열되서는 안 된다는 강박이다.

근데 이게 강박이라는 건, 현실에선 자꾸 분열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중국은 사실 분열하려고 하는 원심력이 강한 곳이다. 그걸 철권통치로 어떻하든 묶어두려는 노력을 2천년간 해 온 거고.

그래서 좀 더 정확하게 표현을 하자면, 제국이 중국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니고 분열과 통일을 반복하는 상태가 중국의 디폴트 세팅이다.

그게 진짜 중국이다. 그 거대한 공전주기 중에서 현재는 중국이 통일되어 있는 주기에 들어와있다.

그래서 중국을 공격하려면 분열에 노이로제 걸려있는 그 풍토병을 공략해야 한다.

 

15개의 댓글

2020.12.12

친구중에 후난성에 사는 소수민족이 있는데, 자기는 한족은 아니지만 중국인이다라고하더라

사람들이 중국 소수민족 다 쪼개버리고 독립시켜야한다는데 실제로 그게 가능한 소수민족이 5개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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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철학가

안되는걸 알지만, 또는 모르지만 중국이 ㅈ되고 쪼개지는걸 원하니까 하는 뻘소리에 가깝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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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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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2

근데 왜 한자를 쓴 한반도와 베트남은 중화에 편입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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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2
@쉽지않은남자

말 그대로 교류 빈도가 하남보다 적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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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2
@쉽지않은남자

한반도나 베트남이나 둘 다 멀기도 하고, 한반도는 특히나 요동 같은 척박한 지역을 지나서야 통치가 가능하면서도 딱히 중국의 이익선을 직접 침해하는 일은 적었기 때문에 한사군 이후로는 직접 통치는 좀 거리를 둠. 그래도 한, 당 같은 통일 제국이 한반도에 집적거렸지만 둘 다 개발리고 나갔고 그렇다고 작정하고 정벌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듬.

 

베트남은 북부 지역은 오랜 시간 직접 통치권에 넣었지만 양자강 아래 강남 지방은 거의 다른 나라 수준의 격차인데 거기서 거기서 더 민족적 색채가 다른 베트남을 묶기에는 한자 이상의 민족적 의식 공유가 없었음. 이건 한반도 비슷한데 다만 한반도에서는 주에서 나온 기자가 조선에 땅에 봉분을 받았다는 식으로 중국과 연계되는 의식의 공유 꺼리가 있기는 했음.

1
2020.12.13
@쉽지않은남자

이미 정체성이 어느정도 생성된상태로 만났으니까.

기존정체성을 부수고 통합하는건 매우 힘든일임.

일단, 베트남은 중국의 수도와는 너무나멀어 중요도가 떨어졌다. 그래도 꽤오랜기간 복속되어 고통받음.

반면에 우리나라는 가까워서 견제를 많이 받았지만 국가운영이 꽤나 중앙집권적이였고 지형과 날씨도 ㅈ같은데 군사력은 높고 외교적으로 잘 대처해서 버팀.

가끔 망할뻔도 하지만 중국의 국가수명이 우리나라국가수명의 반밖에 안되서 틈도 잘 안보여줬고

2

반대로 왜 중국은 통일과 통합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지도 궁금하네

물론 제국의 건설이 인류의 종특이라지만 중국인은 특히 강박적인것같음

0
2020.12.13
@해양수산부장관

분열되면 동내북되는게 여러번이여서 그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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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3
@해양수산부장관

분열-전쟁-사람많이죽음

이걸 2천년 넘게봐서 너와나 가족들의 죽음이 싫음

그래서 통일-전쟁안남-살기개판-근데사람 덜죽음-만족

이게 아닐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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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3

재밌게 읽고 감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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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5

좋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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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5

중국통일제국을 무시하면안되는게 역사적으로 점점 중국의 통일집권시기가 길어지고있음

큰 제국이 아니면 망하기 일쑤이고 현대로 올수록 더 심해져서 지금은 제국들밖에안남았잖아

쪼개지고 분열 반복하던 유럽마저 이젠 EU라는 평화적 제국을 실험하고있고

0
2020.12.18

아.. 삼국지마렵네..

 

0
2020.12.20

중국 ㅇㄷ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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