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펌) 한국전쟁 당시 북진 실패 원인에 관한 글

심심하면 나오는 이야기가 한국전쟁 당시 북진작전때 청천강선이나 평양원산선에서 방어선 건설후 중공군 공격을 방어하기인데

이게 실제로는 전혀 불가능했다는 건 흔히 잊혀진다.

이걸 몇 장의 지도로 깔끔하게 설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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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보면 딱 나오지만 북진작전 시작부터 남한지역에 게릴라가 창궐한 걸 알 수 있음

38선 이남의 붉은 동그라미가 다 게릴라임

이들은 기존의 게릴라 + 북한군 잔당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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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맥아더는 이미 푸른 점선으로 된 맥아더 라인을 두차례나 그어서 적절한 선에서 진격을 멈추려고 했음

맥아더 라인을 넘어서 북진 가능한 군대는 한국군 뿐인데 한국군 단독으로는 한만국경선에 접근도 못함

그러니 자연스럽게 한국군도 맥아더 라인에 멈추면서 방어선 형성이 가능해짐

특히 10월 2일의 1차 맥아더 라인이 딱 청천강 - 함흥선과 거의 비슷함

 

문제는 이승만과 한국군이 북진통일에 미쳐서 맥아더 라인을 두차례나 씹어먹었다는 거고...

애초에 북진작전이 미국 허가도 안난 상황에서 10월 1일에 단독북진을 시작한 이승만과 한국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애초에 답없음.

 

결국 한국군만 돌출되서 포위섬멸당하고 유엔군만 남아서 병력부족으로 인해 한반도 철수하는 거 막으려면

유엔군까지 한덩어리로 전부 최종돌격해서 빠르게 국경선을 장악해서 전쟁종결하는 방법밖에는 안남음

 

그렇다면 중공군 개입 직후에 빠른 방어선 건설하면 버틸수가 있을까?

그것도 불가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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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 1차 공세후 유엔군이 크리스마스 대공세를 시작하기 직전의 상황임

여기서 유엔군 공세가 무너지면서 1.4후퇴가 시작되는 것임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전선 후방의 낭림산맥과 태백산맥에 게릴라가 넘침

덕분에 이미 청천강선은 딱 중류까지만 차지했는데 후방에 게릴라가 바로 있어서 샌드위치공격 당하고

평양원산선은 애초에 평양 - 원산간 연결이 차단된데다가 원산은 게릴라에게 자동으로 포위된 상황임

결국 공세를 안하고 현 위치에서 참호파봤자 동쪽과 서쪽이 연결 안되고

그나마 만든 방어선도 중공군과 게릴라의 연합공격 처먹고 빠른 붕괴된다는 이야기임.

이 와중에 동부전선은 뒷감당 따위는 던져버리고 한국군이 고속북진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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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상가상으로 게릴라가 북한지역에만 있는게 아니라는 건 아까 언급했지?

그 중에서 서울을 위협하고 북진작전의 보급선을 끊어놓을 세력만 간단하게 언급해도 저 정도다.

붉은색 점선이 차지하는 위치를 보면 딱 답이 나오지

 

그리고 말이 게릴라지 북한군 패잔병이 주축이 된 장비 충실한 놈들이라서

유엔군이 파악한것만 숫자가 6만명이 넘어감

 

설상가상으로 게릴라 주제에 특정지역만 점유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공세를 펼침

일례로 게릴라 4만 5천명이 모여서 서울 재함락을 시도하는 통에

서울에 계엄선포까지 하고 미국 제25사단이 대게릴라전 담당이 되버리고

그나마 이들마저 북진작전에 투입해야 하니까 필리핀군이 투입되어서 간신히 서울 - 평양간 보급로를 확보함

 

그리고 전선 후방 안정을 위해 전선에 배치된 미국 제2사단이 전차와 항공기까지 동원해서

평양 북방 35마일에서 게릴라 2천명을 상대로 포위작전했다가 실패하기도 하고

 

원산 서북지역에서는 파악된 것만 400명의 게릴라가 출몰해서 원산이 고립화되고

38선 부근에서도 파악된 것만 2천명의 게릴라가 춘천을 함락하고 가평을 위협하는 개막장이 펼쳐짐

이러니 서울 - 원산간 통로인 경원선 일대는 차단된 것임.

 

심지어 최후방인 부산 근방에서도 게랄라 수백명이 출몰하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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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인해 북한지역에서의 방어선 건설은 애초부터 불가능했고

준동하는 게릴라 때문에 1.4후퇴 당시 38선에 만들어놓은 방어선도 빠른 붕괴되었고 서울이 재함락됨

지도 보면 알겠지만 남한 지역내에도 붉은색 점선의 게릴라가 설치고 다니는 꼴임

 

이래서 전선에서 중공군과 북한군을 상대하면서

동시에 후방에서 게릴라 토벌을 해야 하는 답없는 일이 생김

그나마 이 때 어느 정도 위협적인 게릴라를 토벌해서 그 이후의 상황이 나아진 것임

 

결론적으로 실제 벌어진 북진작전에서 그나마 가능성 있는 승부가
맥아더가 했던 것인 빠른 최종진격으로 한만 국경선 확보라는게 아이러니임.

 

맥아더도 방어 생각해본 적이 있지만 저렇게 답이 없으니 누구를 데려다놓아도 마찬가지임

그리고 이렇게 된 원인은 후방 게릴라 토벌은 반쯤 던져버리고 북진만 외치며 폭주한 이승만과 한국군 책임이 큼.

 

* 사진의 출처는 육군사관학교 한국전쟁사 부도 2005년도 버전 민간인 판매용임.

 

 

원출처 : 군사 마이너 갤러리 (현재 글삭테러로 인해 원글이 터짐)

43개의 댓글

글삭테러는 무슨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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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예할때아니요함

디씨 어떤 네임드가 갤러리 주딱 파딱(관리자들) 계정 해킹해서 3개월치 정보글 싹다 날려버린 사건이 있었음

퍼가서 몇개 살아남은 글 빼고는 싹다 날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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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그러면 저때 그냥 멈췄으면 저대로 종전났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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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ko

중공이 한번 멈칫 하긴 했겠지만, 저대로 종결 나더라도 북한의 국가 유지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서 중공에 흡수됬을 가능성이 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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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Hiko

통일신라 됬을수도있음

2
2020.11.02

런승만... 그는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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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런승만이 잘못한건 차고 넘치지만 저 좆같은 빨갱이 게릴라새끼들을 민족해방투사라고 포장해대던새끼들도 잊어선 안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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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빨치산이 한곳에만 있던게 아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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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네비두라

혹부리가 지가 게릴라짓거리 하던 전력이 있어서 게릴라짓거리를 적극 권장했다고 하더라. 정전 후에도 괜히 무장공비를 수시로 내려보내고 한게 아니라니까...

 

문젠 우리나라는 지형 자체가 각잡고 토벌 들어가면 게릴라 수준에서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환경이란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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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이승만이 고집하난 진짜 ..

조금만 신중해도 중국과 소련을 고려해서 대신 내실을

다지는 선택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장인환 전명훈 변호 거부한 시절부터 임정, 해방이후, 한국전쟁이후 과보다 공을 찾는게 더 빠르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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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3
@도리토스00

과보다 공이 현저히 적어서 찾기 쉽다는 말이지요?

2
2020.11.02

글쎄 압록강까지 무력점령하고 항복 받아내고 게릴라들 섬멸하는게 옳다고 보는데

 

저기서 방어선 구축하고 시간끌었으면 소련이 개입해서 적당히 하지 ㅇㅇ? 하면서 종전 내고

 

남북한 갈라지는건 똑같은 결과를 냈을터임

 

오죽하면 마오쩌뚱이 중공군을 들이부었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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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포도음료

이미 압록강까지 진출한 시점에서 중국은 가만있을 수 없었고 소련도 개입가능한 상황이었지 않을까?

만일 북한땅을 완충용으로 엉성하게라도 조금 남겨놓고 북진 잠시 멈추고 게릴라정리하고있었으면, 중국 명분도 약해지니까.

예를들어 평양만 먹고 전쟁멈췄어도 북한은 자연스레 남한에 밀려 흡수통일될 수 있었는데 괜히 끝까지 밀고갔다가 국경이 맞닿을 걸 걱정한 중국과 소련을 자극한거 아니냐 이거지. 어디서 주워듣기로 저우언라이가 반대한 참전을 마오가 강행한 이유도 그런거라고 했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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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도리토스00

중국이든 소련이든 선전포고 없이 일으킨 전쟁에 참전할 명분이 전혀 없었음

 

그래서 종전까지 소련의 개입이 없다시피 했고

 

2차세계대전 직후 패권국이 미국과 소련임을 확실해졌고

 

UN군 참전한뒤 부터 김일성이 우리도 연합군 달라고 소리 꽥꽥 질렀지만

 

이미 전쟁범죄에 반응할 국가는 있을리가 없었지 누가봐도 연합군 쪽이 정의였으니깐

 

소련이 씨발 좆밥새끼가 내말 안쳐듣네 하니깐 마오쩌뚱이 벌벌 떨면서 중공군 어택땅 시킨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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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포도음료

소련은 엄밀히는 2차대전 끝나고 정신없을때니까 당연 확전이나 직접개입은 싫어했지.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주도하는 국가와 국경을 맞닿는게 소련에 좋은 일은 아니니까. 소련 입장에선 김일성이 괜히 전쟁하려는게 여간 고까웠겠지.

근데 중국은 조금 달랐다고 봄.

미국이 참전해서 UN이랑 같이 밀고 올라오는거 엄청 신경쓰였을 거고 확전을 바라지 않았던 소련과 달리 실제 연변에까지 폭탄이 잘못 떨어지고 그러니까 결단을 내린거고.. 거기다 맥아더가 중국 무시해서 애초에 개입가능성 알고도 지른것도 있고 복합적으로 작용한거지 뭐.

물론 본문은 그래도 맥아더는 압록강까지는 안밀어붙이려했고 이승만이 단독행동한게 더 큰 잘못이라는 논지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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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도리토스00

중국이 소련보다 상황 엄청 안좋았음

 

중국은 2차세계대전때 일본때문에 병신 됐었고

 

2차세계대전 끝나고 국공내전 발발해서

 

한국전쟁 한달전에야 국공내전이 종결됐음

 

이런 상황에 항미원조라는 명분세우고 갈아넣은거지

 

비뢰포라고 드럼통에 폭약넣고 터트리는 급조무기까지 들고왔을정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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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포도음료

뭐 주관적인 평가니까 둘 다 맞는 말인데, 국공내전하면서 길러둔 당장 실전투입 가능한 병력이 많았다는 측면도 컸으니까. 그리고 뭐 마오가 그런거 일일이 따지면서 들이받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아무튼 아쉽지 중공만 없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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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포도음료

틀렸음. 명분따위는 아무의미없음. 당시 김일성의 개전전 지원 요청에 소련은 오히려 전쟁에 반대했고 중국은 적극적으로 찬성했음. 스탈린은 미국하고 충돌하는 가능성을 최대한 피하려고 했고 김일성에게 소련은 절대로 참전하지 않을거라고 못 박음. 반면 마오쩌둥은 전쟁이 시작하기 전에 이미 개입을 약속했음. 중국내에서 저우언라이는 반대했지만 마오쩌둥이 밀어붙임. 이미 개전 전부터 모든 사항이 조율되고 시작된 선제침공임.... UN군이 빠르게 진격하고 나발이고 의미없음. 인민군이 한창 낙동강에서 밀어붙이고 있던 시점부터 대만 코앞 광둥성주둔 2군단부터 시작해서 대대적으로 만주로 재배치되고 있었음. UN군이 빠르게 올라가면 더 빠르게 개입했을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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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도리토스00

사실 애시당초부터 UN군 개입할 시간 안주고 전쟁 바로 끝낼 수 있었음

 

지금이야 DMZ도 있고 한국에서 북한 갈 길도 없지만

 

저당시에는 서울 평양 다니던 길이 한두곳도 아니고 산맥도 없고

 

탱크 앞세우고 새벽 기습공격 했는데 서울 점령까지 사흘씩이나 걸린게 더 레전드임 ㅋㅋ

 

독일이나 러시아식 진군속도였으면 충분히 용인까지 하루컷 가능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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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토스00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난 니 생각에 동의해. 중공은 유엔군이 압록강에 접근할때 참전을 결정한거라고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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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애니애플치즈팡

역사적으로 엄밀히는 위에 댓글에도 언급되지만 참전 자체는 이미 결정되어있었음.. 그래도 일찍 멈췄으면 중공도 그 이후에 추가적으로 몆십만씩 퍼붓는 후속타가 없었을거고 서울을 다시뺏길일도 없었을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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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토스00

이미 결정이 되어 있었구나.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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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애니애플치즈팡

중공은 유엔군의 38선 돌파하면 참전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포했었음. 유엔군과 국군이 압록강에 가까워질 땐 이미 중공군이 한반도로 진출할 시점이고.

 

맥아더는 그렇다쳐도 트루먼 행정부는 이 문제를 충분히 고려해야 됐는데 애매하게 굴다가 북진을 질러버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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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그르르

우습게 본 게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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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kbs 역사저널에서 보니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아는게 중공군이 물량으로 밀고 내려와서 답이 없었다~ 이러는데

빨갱이 vs 연합군 참전수 보니까 실질적으로 비슷하거나 연합군이 더 많았드만

마오쩌둥이 선택과 집중을 잘해서 뚫렸다~ 이렇게 보더라

 

게릴라 저렇게 창궐했음 저것 부터 정리를 해야지 전략게임해본 사람이면 중고딩도 저 정도는 알겠다

하여튼 ㅈ같은 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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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케럼

모택동이 아니라 당시 중공 사령관 펑더화이란 양반이 명장이었음. 중공군 좆같은거와 별개로 맥아더랑 유엔군이 펑더화이한테 한방 크게 당한거로 봐야지.

 

근데 얘 나중에 문혁때 모택동한테 숙청당해서 홧병으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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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3
@극초음속벤젠

근데 모택동도 명장이긴 함.. 게릴라와 친농정책을 결합해 애초 정강산 마을공동체 수준으로 전락한 중공으로 대륙을 통일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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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맥아더 말대로 멈췄으면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흡수통일 됐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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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1d79a449

그것도 모름. 미군 특히 맥아더도 중공군 경시가 매우 심한 상황이었고 대대적인 반격들도 처음에는 아시아 2류 군대라고 비웃기 바빴음. 결국 경질되고 UN군이 화력전으로 전략을 바꾼뒤에야 다시 중공군을 밀어내기 시작함. 근대 그쯤부터는 미국이 전쟁의지를 잃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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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런승만이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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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게릴라가 뭐 저리 많어..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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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하리보젤리

저때만해도 나라에 빨갱이가 존나많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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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저거 오류 천지의 글임. 저거 반박한다고 쓴 내 글도 군갤 난리났을 때 같이 날아갔는데 일부는 살아있기도 하고 기억나는 게 있어서 시간 루팡해서 댓글에다 쭉 써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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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그르르

오 나중에 정리되면 좀 올려주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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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핑그르르

1. 38선 돌파는 이승만 단독의 결정인 게 우리나라의 6.25전쟁사 공식 의견이지만, 주한미군사고문단kmag의 활동과 미국의 공간사에는 다른 서술이 있음. NARA에 잠들어있던 미군 통신부대의 사진 자료서 9월 말 이미 38선 돌파 기념판 사진이 촬영되었음이 확인(이거 우리 국가기록원 인터넷 자료에도 있음)되는데 이때 기념판 설치에 참석한 이들은 국군만이 아닌, 38선 돌파 사단의 선임 군사고문관도 있었음. 이때까지 유엔사와 미 8군의 공식 의견은 38선 돌파는 아직 가능하지 않다, 였으니 미 8군의 통제를 받는 kmag가 독단을 부릴 개연이 부족함. 물론 진짜 자기 마음대로 했을 수 있고 국군 수색대가 사전에 월경 작전을 한 사실이 있어 꼬투리 잡는 거 아니냐 할 수도 있겠다만.... 미국의 공간사 「낙동강에서 압록강까지」에 역시 9월 말 미 8군 명의로 동부전선의 국군에게 38선 돌파 후 원산으로 진격하라는 명령서가 전달된 사실이 있어 그와는 다름을 확인할 수 있음. 게다가 수신자는 상술한 저 군사고문관 에머리히. 당시 미 군사고문관이 국군의 지휘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배경도 있는만큼 미군, 정확하게는 맥아더의 의향이 녹아있을 거임.

 

그리고 미국의 움직임은 국군의 움직임과는 별개로 흘러간 것이 일단 미국 내에서 이래저래 격론을 치르다 문제의 9.27 훈령으로 일단 제한된 북진이 승인되었음에도 맥아더의 발언들은 복종 대진 조건 없는 자유 재량권을 요구하고 있었음. 트루먼 역시 그런 발언을 인정만 해주었으나 확실한 답이 고팠던 맥아더는 반복적으로 자유 재량권을 요구한 끝에 아예 본국에서 답을 회피할 거면 자기 스스로 판단하겠다고 선언했고, 미국 정부는 쓸데 없이 떠들지 말고 어디 맘대로 하라고까지 답을 보냈음. 허나 통한 결의안을 통한 명분 획득을 염두에 뒀는지 확실한 답까지는 해주지 않았음. 말인 즉, 맥아더도 38선 까자고 안달난 상태였단 것이며 우리가 알게 모르게 이중플레이를 했을 공산이 컸지 이승만의 불도저에 억지로 끌려가지 않았을 거란 말임. 당장 미 8군이 북진 명령 전달할 때 맥아더가 이승만에서 38선 돌파 ㄴㄴ하는데 뭔 이중인격도 아니고, 속내도 자기도 올라가고 싶었는데 이게 뭐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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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핑그르르

3. 게릴라 위협도 과평가와 왜곡된 설명이 끼어있음. 북진기 북한군 패잔병 규모가 상당하고 남북 각지서 준동한 것은 사실이나,

 

1) 평양 원산 간 게릴라는 대개 원산이나 함흥을 위협했고 이들이 유엔군 보급에 상당한 방해를 한 것까진 사실이나, 이거 평정 못한 거 아님. 미 해병 등이 정리하다 후속 부대에 인계하고 북진했음. 애당초 미 8군의 의견대로 미 10군단을 육상으로 동부전선으로 북상시켰다면 시간 낭비도 병력 부족도 게릴라의 심각한 준동도 없거나 문제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을 거임.

2) 서부전선의 경우 게릴라 규모에 비해 평정작전으로 보급선은 유지했음. 그리고 여긴 상대적으로든 객관적으로든 한동안 얌전했음. 문제는 보급선이 지나치게 신장된 상태서 미 10군단의 원산상륙작전을 이유로 인천항의 기능이 마비되면서 보급 자체가 간당간당해진 거지. 둘을 섞어서 왜곡하면 안됨.

3) 서울에 계엄 사례 다 찾아봤는데 상기 이유로 발령된 거 안보임.

4) 몇몇 전투 사례 중엔  내기억상 라주바예프 보고서의 기록을 참고한 듯 한데 이건 거의 풍문에 가까움. kmag와 달리 소련 군사고문단은 후방서 소식 듣고 정리했던데 연락도 변변찮은 게릴라들에 대해 어떻게 상세한 정보를 모으냐.

5) 서부전선에서 게릴라 활동이 심각해진 것은 중공군의 2차 공세와 유엔군 철수 때였음. 이들은 각지에서 국군과 유엔군의 퇴로를 끊고 피해를 강요하였으나 차단에는 실패함. 당장 청천강 전투에서 궤멸 직전의 피해를 입고 후퇴 중이던 이성가의 사단이 연천인가에서 중포까지 쏘는 북한군 패잔병 수 개 연대의 기습을 받았음에도(심지어 차량 및 중장비는 선행부대가 따로 가져갔음에도) 포위를 뚫고 갔음. 그래서 실속이 없다 평가됨.

6) 그리고 본문의 위협이 현실에 가까워진 게 중공군 3차 공세인데 후방 교란/유격전을 목적으로 북한군 군단이 침투 + 상대할 국군 3군단은 뉴비인데 이미 허벌창 상태 + 중부전선의 4차 공세까지 터졌음에도 현실은 3군단 방어선 회복 및 유지 후 미 10군단과 합세해서 포위섬멸함. 참고로 북한군도 다른 군단 끌고 와서 남북 협공했는 데도 저 결과였음. 오죽하면 마오가 하지 말라 했겠냐. 또 게릴라가 지형과 규모를 타더라도 한국의 산에서 장기농성은 개뿔 저기 남부군처럼 굶고 얼고 하다 죽음. 군경의 포위소탕과 민사작전까지 합해지면 더 신속하게 정리되고.

7) 남한 지역의 게릴라들을 손 놓긴... 신생 국군 사단들 편성해서 투입했고, 전투경찰도 수 만 단위로 편성됨. 위협이 상당했다 하면서 원문서도 유엔군 대처도 썼는데 이건 좀 자승자박급 설명 아닌가. 그리고 사실 후방 정리도 청천강서 국군이 개박살이 나고 3차 공세서도 지옥행 특급열차 타는 바람에 그 신생 사단들이 전선에 끌려갔는데 그들마저 현리서 박살나는 덕분에 휴전협상 시작해서야 대대적 토벌을 할 수 있었던 거임.

7) 그리고 무엇보다 북진 레이스한다고 적 병력 섬멸 뒤로 미루다 나중 가서야 공수작전 쇼만 한 건 이승만이 미 8군 지휘해서 그랬나? 또 그가 유엔군사령관이라 8군과 10군단 경쟁 붙이기라도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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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핑그르르

4. 그럼 답은 무엇이냐?

 

본문이 부정한 청천강선 정지 혹은 평양 원산선 정지임.

 

후대에 밝혀진 중공군의 개입 초 계획은 유엔군과 국군을 청천강선에서 정지시킨 뒤 공세를 펼친다는 것이었음. 그런데 유엔군이 쭉 밀고 올라오고 자기네 집결지에까지 미치니까 급히 역공세를 개시해 적의 공세를 깎아치려고 1차 공세를 하게 된거임. 만일 맥아더가 중공군의 의도를 바로 파악하고 청천강 이남에서 방어를 굳혔다면 수복지구만큼은 지킬 가능성이 있었음. 상술한 대로 평정 작전, 유격대 격퇴도 할 수 있었고.

 

설사 그게 아니더라도 종전 공세/크리스마스 공세는 완전히 정신 나간 짓이었음. 분명 중공군의 규모와 위협을 체험하였음에도 위협을 또 오판하고 아예 중공군의 기만전까지 당했음. 그결과 공세-역공세 패턴에 완전히 농락되면서 전군이 붕괴될 뻔한 위기를 초래했지.

 

만약 진격 못해서 죽는 병에 걸린다 치더라도 신속한 진격을 위한 조치들이 부족했음. 미 10군단을 원산 상륙시킨다고 시간 낭비하느라 가용 병력도 줄고, 인천항 물자 하역도 정지돼서 미 8군 진격도 느려지고, 금천 전투처럼 병력 섬멸에 집중해야 되는데 평양 레이스하느라 기회 놓치고 이후 공수작전도 낭비하고... 안정화작전도 유엔이 북한 수복지구 통치를 한국에 안맡긴다고 해서 서로 행정관 앉혀다가 지랄하고 국군은 사고나 치고 다니고...

 

이러니 뜬금없이 맥아더에서 이승만으로 떠넘긴다는 건 어불성설임. 이건 트루먼 행정부, 맥아더, 한국 정부 모두 오판해서 저지른 실패작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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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핑그르르

재밌게 읽었당

딱히 이승만 하나만 깔게 아니라는 거구만..

진짜 청천강에서 멈췄다면 동아시아역사가달라졌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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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그르르

ㄹㅇ 미군이 한국군을 너무 과대평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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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그래서 종전후 빨치산 잡는네 혈안이였구나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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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군갤에서 게릴라의 위력을 이렇게 높게 치는게 재밋네

창칼로 싸우던 중세면 모를까 총탄,화력보급이 안되는 게릴라는 후방교란이 최대성과인데

막말로 전차중대있는 연대가 사단규모 게릴라를 발라먹음 화력자체가 비교가 안되니까

 

지도상에 부대배치를 봐도 전선 촘촘하게 배열한게 아니라 드문드문하고

산맥이 부대 사이를 갈라놨음

 

첫짤에 38라인부대 배치는 빽빽하고 이북부대들 배치는 널널함

막짤 방어라인 부대배치는 레알 촘촘하고

 

북한 정규군을 떡발라서 거침없이 진격하는 군대가 게릴라땜에 전선을 비운다는것도 말이 안되고 (당연히 빨리 전쟁끝낼려고 막 들어가니까)

그냥 전략패착임 중공군의 규모를 예상못했고, 개들이 잘 싸울거라고 생각도 안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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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중공군이 개입안했으면 즉 중국놈들만 아니었으면 저때 통일 되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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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지형도 한몫했지.. 유럽 평야지대도 아니고 , 산지가 70% 인데

산으로 숨어들면 찾을 엄두를 못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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