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중국 왕조사, 상(商)나라 이야기.

중국 역사상 첫번째 왕조는 상(商)나라 입니다.

은허유적, 갑골문 발견으로 유명한 나라죠

흔히 은나라 라고 부르는 것은 마지막 수도가 이름이 은(殷)이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은상(殷商)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보통 '은허'라고 닥치고 암기하죠 '은허'가 도시 이름이 아닙니다

은허(殷墟)란 은(殷)땅의 유적(墟)이란 뜻이죠 

 

1.jpg

 

​(외계인 크롭써클 흔적 은허 항공사진.)

 

 

2.jpg

 

(은허에 복원된 상나라 궁전 건물, 2000년대 이후 중국이 이딴거 많이 합니다.)

 

원래는 신화일뿐 역사로 인정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 화북지방에 있는 안양시에서 상나라 도성 유적인 은허殷墟가 발견되었죠 

때문에 신화가 현실에서 그 실체가 증명되었고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3.jpg

은허 덕분에 상나라 마지막 수도인 '은殷' 이 유명하지만

사실 그것만 수도가 아니었죠

상나라는 중남미의 마야, 아즈텍 처럼 수도를 여러번 이전 한 왕조입니다.

위치가 비정되어 확실하게 밝혀진 건 위와 같이 대략 8개 정도를 일단 추정을 합니다

상나라는 성읍국가였습니다.

우리가 아는 제국이나 왕조의 개념과는 다소 거리가 먼 국가체제입니다.

당시 중국 대륙은 아열대 기후의 정글지대였고 사용한 도구는 청동기였죠​

그 시절에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큰 나무를 벌목할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농업이라고 해봐야 원시농경으로 기껏해야 정글에서 화전을 하는 정도였습니다

 

이를 '상나라 농업분전(焚田)설'이라 합니다.

상나라의 수도가 자주 이전 된 이유를 이를 통해 보통 설명합니다. 

화전농법과 농업생산력의 쇠락에서 그 원인을 찾는 주장입니다.

 

물론 그 밖에 무슨 권력다툼설이니 귀족세력 성장설이니 잡다한 주장이 있습니다 

그냥 국뽕에 이성을 잃은 중국 애들이 상상의 나래를 폈다고 보면 됩니다.  

상나라가 그만큼 정치가 고도화 되었다 그딴 뻥튀기를 한번 해보자는 건데  

이정도 수준의 국가단위에 그딴게 있단게 말이 안되죠

 

그나마 설득력 있는 주장이 황하유역의 범람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전한 수도 위치가 강과 더 가까운 경우도 있음으로 기각되었습니다 

화전농법에 의한 수도 이전 설이 현재 가장 그럴듯한 가설입니다. 

 

이런 방식의 원시적인 화전 농업은 지력을 금방 쇠하게 합니다. 

필연적으로 일정 시기가 지나면 생산력이 급격히 떨어지게 되죠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다른 지역으로 수도를 이전해야 했습니다.

이는 남미지역의 국가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 현상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이 당시 국가라는 개념은 조금 다른 성격을 가집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국가처럼 무슨 통치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4.jpg

지도에 나온 상나라의 세력권이라고 그리넣은 보라색 점들이 의미하는 바는

그곳에 관리를 파견하여 백성을 보호하고 통치하며 세금을 걷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상나라의 약탈. 사냥 범위를 뜻 합니다.

5.jpg

6.jpg

 

이 당시 상나라 주변에는 다양한 이민족들이 뒤엉켜 공존을 했습니다.  

각자 결혼하고 아들 딸 낳아 잘 먹고 살던 주변의 야만족입니다. 

그저 부모님께 효도하고 가정에 충실하며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야만족이지만 

상나라 입장에서는 이들이 도시 가까이 있으니 너무 무섭고 걱정 되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상나라는 주기적으로 쳐들어가서 약탈하고 사냥해서 붙잡아 노예로 삼곤 했습니다 

그냥 노예로 삼은게 아니라 죽여서 제물로 썼습니다

 

7.jpg

 

오늘날 백성을 나타내는 한자인 민(民)자의 원형은 좀 특이한 기원을 가집니다. 

갑골문에 나온 글자의 뜻은 눈알을 뽑아서 눈을 멀게 한 사람을 말합니다.

 

당시엔 백성을 잡아와서 눈을 뽑아서 눈을 멀게한 뒤

뒤로 손을 묶어 꿇어 앉힌 후 제물로 죽였거든요

상나라 백성들의 일상 생활과 복지수준을 알수 있는 글자이기도 하죠.

 

갑골문에 보면 다양한 인신공양의 기록이 나옵니다

당시에는 사람을 토박내서 제물로 바치고 그 뼈는 도구로 사용했죠.

실제 상나라 유적을 발굴해 보면 톱질을 한 인골이 다수 발견됩니다.

 

8.jpg

(인신공양으로 죽은 상나라 유적의 인골)

 

이쯤되면 이 시대에 백성의 존재라는게 사람인지 도구인지 헷갈리죠 레알 인적자원

이는 남미 마야, 아즈텍도 이와 비슷했습니다

다만 남미 대륙의 경우 사람을 사냥한 이유가 잡아 먹기 위함 즉 단백질 보충의 이유도 있었죠

남미 대륙에는 라마를 빼고는 가축으로 삼을 동물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남미지역의 문명은 만성 단백질 공급 부족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대신 보이는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 있죠. 네 사람입니다. 

아즈텍 문명 주변의 이민족들은 훌륭한 고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문화인류학자인 마빈헤리스가 주장한 나름 유명한 단백질 공급 가설입니다. 

 

다행이? 상나라는 이와 다르게  인육을 즐겨 먹진 않은듯 합니다

물론 출토되는 청동기 솥에서 삶아진 사람 머리가 나오기도 합니다 

종종 조용히 유물 발굴하던 학자들이 놀라서 기절 하곤 하죠 

 

unnamed.jpg

(이 시대 청동솥은 왜 이렇게 죄다 큰지 짐작이 가능하죠. )

 

대부분 제사의례를 위한 것입니다. 

 

주문왕의 고사를 보듯 이 시기 인육을 제공한 묘사는 긍정의 의미가 아닙니다 

그 자체가 상대방을 모욕하는 행위였음을 짐작하건데 식인이 타부였음은 최소한 인식했다고 봅니다

즉 제사를 위해 사냥해 삶고 요리를 하지만 식인을 즐기진 않았던 것이 아닌가 싶은거죠

구대륙은 신대륙과 다르게 가축으로 삼을 동물이 많습니다. 

당시 주변에도 동물이 많았을테니 사람 고기가 꼭 필요하진 않았을 것이라...

제발!!! 추측해 봅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이때 인신공양의 방법은 매우 잔인했습니다. 

갑골문에 거의 주기적으로 이런 인신공양과 각종 고문의 기록이 나옵니다   

우리가 역사책에 익숙한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다.

상나라 마지막 왕인 폭군 주왕이 쫓겨낸 이유로 그가 했다는 악행이 나오죠 

포락지형이니 사람의 심장을 산채로 빼서 죽이기 등등 

상나라 역사에 폭군 주왕이 했다는 잔인한 형벌에 대한 기록은

어쩌면 ​상나라 왕조 전 기간에 벌어진 상나라의 끔찍한 만행이었을지 모릅니다 

그 내역을 압축하여 마지막 왕의 이야기에 몰아 넣은 것일 수도 있죠. 

9.jpg

더불어 상나라의 경우 건축 기술이 매우 낙후했습니다

일단 기와를 발명하지 못하여 짚으로 지붕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건축기술이 낮아 건물이 구조적으로 매우 불안정했습니다

이는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이 되는데 건물이 쉽게 무너지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때문에 건물이 무너지지 않도록 기원하는 의식을했습니다 

갑골문에 제사를 지내며 기원하는 기록이 다수 발견이 됩니다.

 

아하...! 건물 무너지지 말라고 또 그놈의 제사를 드리네요

그럼 제사에는 뭐가 가장 필요할까요?

 

네 사람이죠

 

 

상나라는 건물을 건축 할 때 무너지지 말라는 주술적 의미로 사람을 잡아서 그 밑에 뭍었습니다

때문에 상나라 건물지 유적이나 건물로 추정되는 터에는 반드시 다수의 인골이 무더기로 발견이 됩니다

 

상나라의 또 다른 특징은 매우 정교하고 아름다운 청동기를 만들었단 것입니다. 

 

11.jpg

12.jpg

 

 

(상당히 쩔어주죠 하나 하나 전부 국보급 보물입니다)

 

상나라때 만들어진 청동기는 매우 정교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하죠

심지어 후대에 만들어져 발견되는 주나라 시대의 청동기가 더 단순하고 볼품 없습니다. 

 

보통 유물의 경우 한 국가, 한 지역의 특징을 알 수 있는 공동된 양식이나 문양을 공유합니다. 

고고학에서 이런 특징들을 통해 각 대표적인 지표 유물을 명명하고 구분하고는 합니다

결국 사람이 사용하는 것이고 많이 만들다 보니 공유하는 특정 양식이란게 생기기 때문이죠 

하지만 상나라 청동기는 그 특정 양식을 확인 할 수 없습니다

그저 매우 다양한 개성과 취향으로 화려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이게 다른 의미로 무슨 말인가 하면  상나라의 청동기는

그것이 대량으로 만들어진게 아니란 것입니다.

 

역사책에는 상나라 이전에 하나라(夏)나라가 있었다고 하지만 구라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물론 중국 정부랑 중국 국뽕학자들은 이리두 유적니 하가점이니 하며 하왕조의 존재를 주장합니다. 

지금도 열심히 발굴하는 중이고 종종 하왕조의 증거를 찾았다고 충격 보고 어쩌고 발표하죠 

이따금 유물을 역순으로 붙여가며 주작질까지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피똥싸는 노력을 했다 한들 없던 역사가 만들어지는게 아니죠

대부분은 하왕조의 존재를 역사로 여기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간단히 생각해 봐도 걍 알죠

아니 상나라 조차 저런 수준의 도시국가인데 그 보다 이전의 문명은 어떤 수준이겠나요 

설령 그게 있다고 해도 하나라의 존재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종류의 문명일 수가 없습니다.

 

13.jpg

(갑골문)

 

처음 갑골문은 그 정체를 몰랐습니다

옛 사람들은 이것을 발견하면 한약방에서 용의 뼈라고 약재로 고아서 먹었죠

뭔지 모르지만 특이해 보이니 몸에 좋은거다 일단 쳐먹자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홍삼처럼 먹던 것을 어느날 청나라 금석학자 '왕의영'이 보게 됩니다.

그리고 우연히 거기에 글자가 써있는 것을 보았죠  으엉? 시붕 이게 뭐여! 

그리하여 좀 더 조사해 보니 그게 나온 땅에서 은허 유적을 발견했다 합니다 

아주 유명한 에피소드죠 

 

과거에는 상나라도 그 존재가 부정되었습니다. 내용 자체도 신화였으니까요 

하지만 놀랍게도 갑골문의 발견으로 상나라는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사례입니다. 

때문에 하나라의 존재를 찾는 사람들은 봐라! 갑골문의 사례가 있다! 라고 주장하죠. 

하왕조도 유물을 통해 그 존재가 증명 될 수 있다고 예상했고 그러리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하(夏)왕조의 실존이 부정 된 결정적인 이유는 갑골문 때문입니다

 

일단 갑골문에는 하(夏)라는 글자가 없었습니다

상나라 시절에는 지금 처럼 봄,여름,가을,겨울 춘하추동 春夏秋冬으로 계절을 나눈게 아닙니다. 

그냥 춘추(春秋) 봄,가을 이라고만 했죠

위에 처음 언급했듯 상나라 시절에는 아열대 기후였거든요

(* 때문에 춘추(春秋)라는 말은 그 자체가 1년을 의미하는 것으로 곧 역사라는 뜻입니다. )

 

그럼 하(夏)나라가 아니라 혹시 다른 이름이나 명칭을 쓴건 아니냐? 주장해 봅니다 

근데 그것도 갑골문에서 조까 아니거든이라고 밝혀졌습니다. 

상나라의 경우 특이하게 왕의 이름을 갑을병정~~ 이렇게 갑자 순서로 정해서 불렀습니다.

갑골문에 나온 상나라 왕의 연대는 규칙적인 패턴ㅇ로 나아 가기에 그 순서를 파악하기 매우 쉽습니다

그를 통해 상나라 역사 연대를 확인해 보니까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하나라를 멸망 시키고 상나라를 건국했다는 상나라 시조? '탕'임금은 건국자도 시조도 아닙니다.

상나라의 시작은 더 멀리 제곡까지 올라가며 탕왕은 그냥 중흥군주에 불과합니다. 

그럼 탕임금은 제위를 하며 무슨 특정 왕조를 정벌한 기록이란건 있냐? 그런 기록도 아예 없습니다

 

네. 하(夏)나라는 없었던 것이죠.

즉 상나라 시절 최소 주나라 초기까지는 그 이름도 존재의 기록조차 없는 허구의 왕조입니다. 

아마도 후대에 주왕조의 정통성을 미화하는 과정에서 창작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봅니다.

설령 최대한 양보하고 관대하게 봐줘서 하왕조 비스무리한게 있었다 해도

그 문명의 수준이라는게 촌락 정도 규모였을 것이니 그걸 왕조라고 볼수 없죠

앞서 언급한 중국 정부가 대대적으로 발굴하는 하(夏)왕조의 유적이 그러합니다.

후기에 발견된다는 이리두 문명의 증거?라는 청동기 유적도 상나라 시기와 겹칩니다. 

상나라 수도 박과 인접하여 이게 상나라 유적이 아니냐? 논쟁중입니다.

 

 

14.jpg

(상나라를 멸망 시킨 주나라, 목야전투)

 

2222.png

(목야 전투를 기록한 청동기 유물)

 

이런 상나라를 멸망 시킨 나라가 주나라입니다. 

상왕조의 멸망은 기록은 물론 출토 유물로 그 연도까지 확인이 될 정도로 자세합니다. 

당시 대단한 사건이었음이 틀림없죠. 기원전 11세기의 일입니다

(기원전 1027 또는 1046으로 논쟁이 있습니다)

 

아마도 상나라의 폭정에 주변의 국가들이 단체로 들고 일어난게 아닌가 합니다

이후 주나라는 정복한 상나라 영토를 같은 성씨를 가진 가족들에게 분봉하였습니다 

주나라 봉건제를 실시하였고 각 지역에 나라를 세우게 했죠

 

상나라 망국의 유민들은 차별과 핍박을 받으며 나라들 여기저기를 떠돌았습니다. 

마치 오늘날의 유태인처럼 장사에 종사하며 그렇게 생업을 이었죠.

 

 

15.png

 

오늘날 우리가 장사치를 가르키는 '상인'이란 단어의 상(商)이란 글자가 바로 상나라 사람이란 뜻에서 유래합니다

 

주나라는 상(商)나라의 유민들을 모아서 봉토를 주어 살게 해주었고 나라 이름을 송(宋)나라 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상나라 유민들은 다른 제후국에 비해 멸시를 받았죠

우리가 현재 배우는 춘추시대 수 많은 고사성어에도 그 흔적이 나옵니다.

고사성어 등장하는 멍청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 우스꽝 스런 사람을 이야기는

전부 그 주인공이 상(商)나라 유민 즉 송(宋)나라 사람입니다.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가만히 토끼가 와서 죽기를 기다리는 어리석은 송나라 사람 일화

 

비올때 신발장수 아들, 맑을 때 우산장수 아들을 걱정하는 송나라의 어리석은 아낙 일화

 

벼가 빨리 자라게 하기 위해 모를 다 뽑아 버려서 결국  작물을 죽인 멍청한 송나라 농부 일화

 

문신을 하고 머리를 미는 월나라에 모자를 팔러가는 멍청한 송나라 상인 일화

 

등등등 

 

16.jpg

 

심지어 송나라 군주는 송양지인이란 어리석음의 대명사로 배우죠.

전부 망국의 유민과 그 잔존 국가를 비웃었던 당시의 문화 흔적이 아닌가 합니다.

 

마지막으로

 

중국 통일 왕조의 정통 국가명칭은 이런 순서로 이어집니다 

 

상(商)나라 (송宋나라) -> 주(周)나라 - 한(漢)나라 - 진(晉)나라 - 당(唐)나라 

 

보통은 정통성 차원에서 선양 전에 부여받은 국명으로 그대로 삼았죠  

당나라가 망하고 들어서는 5대10국의 혼란기 속 다시 등장한 중원의 정통왕조는

그 교체 과정에서 과거의 통일왕조 국명이 역순으로 재탕되는 재미 난 현상이 벌어집니다. 

 

당나라를 후량이 멸망한 후  후당(後唐)이 건국되었고

후당(後唐)이 멸망한 후 후진(後晉)이 건국되었고

후진이(後晉) 멸망한 후 후한(後漢)이 건국되었고

후한(後漢)이 멸망한 후 후주(後周)가 건국되었고

후주(後周)가 멸망한 후 마지막에 송(宋)나라가 건국되었죠

 

중국사 통일왕조가

상(商) -주(周) - 한(漢) - 진(晉) - 당(唐) 순서로 진행되었는데

후당(唐) - 후진(晉)- 후한(漢)- 후주(周)-상(商) 그 역순이 되죠

진시황의 진(秦)나라를 빼고 올라 가면서 국명을 정한 사례입니다.

 

상(商)나라 다른 명칭 송(宋)나라

 

그 마지막이 고려시대에 중국에 있던 바로 포청천의 송(宋)나라 입니다.

상나라 이전에는 더이상 중국 정통 왕조가 없듯 송宋나라는 이후에도 없죠

몽골족의 침공을 받아 역사상 최초로 한족왕조가 대륙에서 완전히 소멸되어 멸망했습니다.

이후 건국한 명(明)나라는 그 국명을 보면 알 듯 좀 다릅니다.

지명에 근거한 국명을 탈피해 글자 자체에 의미를 부여했고 명(明)이란 새로운 국명을 썼습니다. 

이는 청(淸)나라에 이어 현대 중국도 그러해 중(中)이라는 글자를 쓰죠

 

중국 왕조사 상나라 이야기였습니다.

 

 

 

 

끝.

 

 

 

39개의 댓글

2020.09.29

시간가는줄모르고 읽었네 추추천

0
2020.09.29

오늘도 인문학적 현실도피 잘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0
2020.09.29

나는 중국고대역사가 되게 흥미롭더라

신기하고 재밌음

이글도 매우 잘봤음

0
2020.09.29

ㄹㅇ 하나라가 없는 나라임? 우왕 탕왕 말희 얘네들 기록이나 유품은 있지않나?

0
@아Q

견우직녀라고 생각햐

0
2020.09.29
@아Q

걔들도 상나라인듯

0
2020.09.29
@쉽지않은남자

그렇게 보기에는 하나라 걸왕이 말희한테 빠져서 나라말아먹고 은나라(상) 탕왕이 하나라를 멸망시켰다는데.. 이것도 소설이라면 상나라도 부정하는게 아닌가

0
2020.09.29
@아Q

소설이어도 상나라가 부정되는건 아니지. 주나라가 상나라를 토벌한 후에 상나라의 역사를 왜곡한 걸로 보면 되는거니까.

0
2020.09.29
@아Q

본문의 글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갑골문의 내용상 상나라 왕조가 제곡까지 올라간다고 나오자너. 제곡은 하왕조 전의 임금임.

1
2020.09.29
@아Q

우리가 아는 하나라 역사는 춘추시대 처음 기록에 나타나며 신화의 내용 뿐입니다. 또한 그 역사라고 전해지는 모습이 상나라와 유사하여 상나라의 역사를 쪼개서 두개로 기록한 것이 아닌가 추정해 왔죠. 말씀하신 말희 이야기는 상나라 달기의 이야기와 완전 똑같습니다. 멸망 패턴 역시 동일하죠. 즉 이야기에만 존재하는 나라고 그 이야기 조차 신빙성이 의심받는 나라입니다.

유물상으로도 그 존재가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 현재 중국에서 다분히 정치적 의도로 하왕조의 실존을 주장하고 있으나 그 유적이라는 양소문화는 신석기 문명이고 이리두 문화는 그것이 하왕조와 연관이 있는지 증명이 안됩니다. 설령 뭔가 나온다고 한들 고작 작은 마을 단위 성읍에 불과한 흔적을 두고 무슨 왕조라고 연관하는게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역사서에 삼황오제 요순 등의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그 내용을 우리가 배우죠 그 자체로 소중한 기록이고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실존했다고 하는 것은 또 다른 논의 영역이라 보시면 됩니다. 참고되셨음 합니다.

1
2020.09.29
@오향왕족발

나도 사실 인정받지 못하는 역사라고는 알고 있는데 딱 '없다'라고 하니까 혹시 존재했다는 뭔가가 남아있지 않을까 싶어서 댓을 단거임. 팩트 체크 고마워!

0
2020.09.30
@오향왕족발

마치 성서에서 아브라함이 했던 짓을 그 아들내미 이삭이 똑같이 하는 짓거리랑 비슷하구만...ㅋㅋ

0
2020.09.30
@마리괭이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는게 아니라 주나라가 자신들이 상나라를 토벌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상나라도 같은 일(하나라 폭군을 토벌)로 만들어진 나라다 라는 프로파간다를 만들어낸 걸로 봐야지

0
2020.09.30
@쉽지않은남자

ㅇㅇ성서 이야기도 그냥 자료 짜깁기하다가 거의 같은 내용이 두번 들어갔단 얘기가 있거든...

0

하은주 라고 배웠었는데

은이 아니라 상나라구나..

0
2020.09.29

잘 봤습니다.

0
2020.09.29

수나라는 통일왕조가 아니였나요?

0
2020.09.29
@껄껄껄풉

진이나 수는 2대만에 망해서 기간이 너무 짧다고 본듯

0
2020.09.29
@껄껄껄풉

위에 분이 잘 말씀해 주셨네요 진, 수는 우리에게는 매우 유명한 통일왕조이지만 역사적으로 고작 십수년 만에 망해서 어떤 정통성이나 상징으로 삼기에는 좀 무리가 있는 왕조죠. ^^

0
2020.09.29

잼있게 보고 갑니다

0
2020.09.29

송양지인 고사나 송나라인 얘기는 좀 더 살펴보는게 좋을듯. 송양공 실제 행보를 보면 송양지인 소리 들을만 함. 뭐 나중에 맹자는 송양공이 올바르다고 얘기도 했고ㅇㅇ

0
2020.09.29
@연구소노예

춘추시대 기록에 대한 텍스트 비평 수준의 서술이니 그냥 그러려니 읽어주시면 좋을 듯 합니다. 제 의견이 아니라 이 시대 기록에 대해 이야기할 때 종종 언급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또한 송양지인 고사에 대한 다른 시각의 가벼운 해석일 뿐이고 말씀처럼 다른 의견과 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한 영역인지라 송양공의 행적에 대한 평가는 당연 아닙니다. 말씀처럼 또 다른 시각이 존재할 수 있고 진짜 그런 의미로 사용했는가 여부는 증명되는 사안이 아닙니다. 가볍게 봐주시면 좋을 듯 합니다.

0
2020.09.29
0
2020.09.29
0
2020.09.29

개꿀

0
2020.09.29

상나라 은나라

0
2020.09.29

항상 잘 보고 있슈

0
2020.09.30

그렁 삼황 오제도 없는건가요?

0
2020.09.30
@choi감자

단군신화에서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된 것처럼 신화의 영역입니다. 신화는 어떤 사건이 구전되며 이야기화 되었겠지만 그 자체가 사실을 기록한 것은 아니죠. 삼황 오제 전설 역시 비슷한 것이라 보시면 됩니다. 역사적으로 실제 증명되는 사실은 아닙니다.

0
2020.09.30

일단 하는 애초에 전설의 영역으로 봐야 맞을 듯.... 하는 어찌보면 중국식 환빠일지도...?

3황5제나 복희신농을 건국신화로 가르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중국의 행보를 보면 그걸 의도적으로 실제 역사 영역으로 들이려고 하는 시도 자체가 불순해보임 애초에 현 중국역내에 그 창세신화만 있는게 아니라 다른 민족들의 이야기도 있는데 그건 싸그리 뭉게 없애고 말살하는거 보면 뻔함

중국은 지배계층의 신화화나 영웅화가 유독 심한 나라인걸 감안해야 할 듯요

0
2020.09.30

그러면 결국 상나라는 영화 아포칼립토를 전부 동양인 배우로 바꾼 그림이라고 이해하면 되는거군요!

0
2020.09.30

상나라 청동유물 눈으로 보고싶다면 국립중앙박물관 중국관 가라

박물관 소장품 외에도 대영박물관에서 대여해온 유물들 새롭게 전시해둬서 은근 알찼음

0
lsp
2020.09.30

재밌당 ㄱㅅㄱㅅ

0
2020.10.03

주나라다음에 진나라아님?? 왜 한나라임?

0
2020.10.03
@승연이조아

그러게 주-진-한-당 아닌가?

우리가 모르는 뭔가 있나?

0
2020.10.05
@적당히 싸워

진시황의 진나라는 너무 빨리 폭망해서

0
2020.10.05

근데 화전으로 옮겨가는 조그마한 국가면 정주국가라고 해야하나 유목국가라고 해야하나 애매하네영.. 그 둘다 인가

0
2020.10.06

요즘 쉬시는 중인가요. 인문학적 도피 하고 싶은데....

0

너무 재밌네요

0
무분별한 사용은 차단될 수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추천 수 날짜
1208 [역사] 송파장과 가락시장 1 Alcaraz 3 10 시간 전
1207 [역사] 미국인의 시적인 중지 2 K1A1 12 2 일 전
1206 [역사] 역사학자: 드래곤볼은 일본 제국주의사관 만화 16 세기노비추적꾼 13 5 일 전
1205 [역사] 애니메이션 지도로 보는 고려거란전쟁 6 FishAndMaps 6 15 일 전
1204 [역사] [English] 지도로 보는 광개토대왕의 영토 확장 3 FishAndMaps 4 20 일 전
1203 [역사] 지도로 보는 우크라이나 전쟁 2년 동안의 기록 9 FishAndMaps 12 22 일 전
1202 [역사] [2차 고당전쟁] 9. 연개소문 최대의 승첩 (完) 3 bebackin 5 27 일 전
1201 [역사] [2차 고당전쟁] 8. 태산봉선(泰山封禪) 3 bebackin 4 28 일 전
1200 [역사]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 이야기 3 에벰베 6 29 일 전
1199 [역사] [2차 고당전쟁] 7. 선택과 집중 bebackin 4 29 일 전
1198 [역사] [2차 고당전쟁] 6. 고구려의 ‘이일대로’ 2 bebackin 4 2024.02.27
1197 [역사] [2차 고당전쟁] 5. 예고된 변곡점 1 bebackin 3 2024.02.26
1196 [역사] [2차 고당전쟁] 4. 침공군의 진격 1 bebackin 3 2024.02.25
1195 [역사] [2차 고당전쟁] 3. 몽골리아의 각축 1 bebackin 5 2024.02.24
1194 [역사] [2차 고당전쟁] 2. 당나라의 ‘수군혁명’ 4 bebackin 9 2024.02.23
1193 [역사] [2차 고당전쟁] 1. 서설 & 참고문헌 목록 2 bebackin 6 2024.02.23
1192 [역사] 광개토대왕의 정복 전쟁 애니메이션 맵 14 FishAndMaps 5 2024.02.16
1191 [역사] 비트코인 화폐론, 나무위키를 곁들인. 23 불타는밀밭 14 2024.02.13
1190 [역사] 역사) 한산, 망국을 막아낸 전투. 5 2NAUwU 7 2024.01.30
1189 [역사] 해리 터틀도브의 대체역사소설 열전 시리즈 1부 5 식별불해 6 2024.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