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오랜만에 오는 고려사입니다. 신라 말기의 상황

대토지겸병과 전장(논밭)의 확대

 

1. 녹읍

 

신라의 귀족들은 국가의 관직에 복무하는 보수와 대가로 녹읍을 지급받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녹읍은 지역, 촌락을 의미하는데 귀족관료가 국가의 관직에서 복무하는 보수와 대가로 녹읍을 지급받았다고 함은 한 지역과 촌락에 대한 지배권을 부여받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견해차가 조금씩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조세를 비롯하여 전세와 공물, 심지어는 노동력까지 수취까지 가능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관료에게 녹읍을 부여함에 따라 관료는 한 지역과 촌락의 토지를 취득하고, 그 지역에 거주하는 인간의 노동력에 대한 징발권까지 부여하는 고대적인 지배 양식이었음을 알 수 있거니와, 이와 동시에 당시의 귀족관료들이 얼마나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녹읍은 귀족관료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힘을 키우게 만드는 것 중 하나이기에 왕권이 강화되었던 신문왕 9년에는 귀족관료들의 힘을 약화하고자 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과 녹봉을 지급하는 제대로 대체되어 녹읍제가 폐지됩니다. 하지만 귀족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경덕왕 16년에 이르러서는 기존에 지급되고 있었던 녹봉을 폐지하고 녹읍제가 부활하게 됩니다.

 

사담으로 왕권이 강화되어 있었던 신문왕 9년에는 녹읍을 폐지하여 귀족관료들의 힘을 약화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후대 왕인 경덕왕 16년에 녹읍의 부활을 보고 바로 왕권이 약화 되고, 신하들의 권력이 강했다고 보시게 될 겁니다. 하지만 이때 당시의 상황을 보면 녹읍제도의 부활은 신권이 강해서 관료들의 힘이 왕을 능가하면서 생긴 문제보다는 왕의 의지에 의해서 녹읍이 부활되었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당시 부인이었던 태후 김혜명의 아버지이자 외척인 김순원의 힘이 강해지자 반외척인 세력들과 함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녹읍을 부활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때 경덕왕의 생각은 녹읍의 부활은 국가에서의 실질적으로 토지 관리가 잘 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부족한 국가 재정을 확보하는 기회라고 본 것 같습니다.

 

2. 전장의 확대와 문란

 

신라의 토지지배관계가 하대의 정치적 혼란과 더불어 크게 문란해지기 시작하였다는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귀적의 사적인 대토지 소유를 의미하는 전장이 확대되어 간 점입니다. 전장도 통일기 이전부터 귀족세력의 경제적 기반의 하나로 형성하고 있었지만, 그 후 특히 하대에 있어 귀족들에 의한 대토지 지배가 만연되면서 급속도로 진전되어 갔던 것입니다. 전장의 성립으로는 국가로부터의 사전이나 신간지의 개척, 권력에 의한 농민 토지의 강점과 약탈, 고리대 등등의 방법을 동원하여 귀족들이 대토지를 소유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토지를 소유하게 되자 장사를 두고 지장을 파견하여 관리하였습니다.

 

<당서> 신라전에 따르면 재상가에는 녹이 끊이지 않고 노동이 3천인이요 갑병(甲兵) 우 마 저가 이와 상등하였다.”는 유명한 기사가 실려있습니다. 여기서 재상가는 고위층 귀족을 의미하는 것 같으며, 녹은 녹읍에서 나오는 수입을 말한 것으로 해석되고, 이 정도 규모의 경제적 기반은 하대의 대토지겸병 현상과 깊은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경제적 기반 위에서 노동 등을 사병으로 양성, 정권 쟁탈전에 뛰어든 것으로 짐작합니다.

 

원래 전장은 불수의 특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중앙의 통제력이 해이해지자 촌락을 완전히 장악하는 기능을 상실하게 됩니다. 기능이 상실하자 전장은 불법적으로 나라의 공과(公課) 공부(公賦)를 부담하지 않게 됩니다. 전장이 조세를 부담하지 않자 국가의 재정을 고갈시켰고, 국가 재정의 궁핍은 호족들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 각기 자기 세력권을 형성하면서 더욱 심화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수습할 수 없었던 신라는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

 

3. 사원의 전장 소유

 

사원도 대토지를 소유하여 전장 경영의 한 중심이 되고 있었습니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이래로 왕실과 귀족들의 두터운 비호를 받으면서 많은 전지와 노비를 기부받아 사원이 경제적으로도 크게 번영한 것은 다들 알고 계신 사실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원을 경제적으로 번영하게 된 것이 국가의 경제에는 큰 폐단을 끼쳤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로는 문무왕 4년에 마음대로 재화와 전지를 불사에 기부하는 것을 금하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명령이 내려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의 사정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왕명으로까지 사원에 기부하는 것을 금지하였지만 사원경제는 계속하여 비대해져 갔습니다. 신라 하대에 들어와 애장왕 7년에도 새로운 불사의 창건을 금하고, 또 호화로운 불사를 하지 말라는 교령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금령을 내린 장본인인 애장왕이 그에 앞서 해인사를 크게 창건하고 거기에 전지 2500결을 기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 교령이 어느 정도로 지켜졌을 지는 의문입니다.

 

신라말에 사원들이 막대한 양의 전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실시되는 데 이점은 해인사 소유 전장에 대한 논밭의 토지 소유의 문서가 발견되었기에 사원이 막대한 토지를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하여 더욱 확실해 졌습니다. 게다가 해인사가 내란기에 처하여 자기네가 소유하고 있는 광대한 토지를 지키기 위해 다수의 승군을 거느리고 있었다는 것으로 사원의 경제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대의 사원들이 대토지겸병을 함으로써 토지지배질서를 문란케 하고 재정을 고갈시켜 역시 신라의 멸망을 촉진시키는 하나의 요인이 된 것입니다. <삼국사기>의 저자인 김부식도 12권 경순왕본기 말미 사론에서

 

신라는 불법을 받들었으므로 그 폐해를 알지 못하여, 백성들이 거주하는 곳에 이르기까지 탑묘가 즐비하고 백성들은 도망하여 중이 되매, 병농이 점차 줄어들어 나라가 날로 쇠하여졌으니 어찌 난망치 않으리요.”

 

라고 말하며 사원의 대토지겸병이 신라가 망하는 것에 일조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질문을 환영하며, 저도 조금씩 공부해나가는 입장이라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미숙한 부분을 알려주시는 것에 대해서 환영합니다.

 

18개의 댓글

2020.09.19

진짜 오랜만에 쓰시네요 ㅎㅎ 추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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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9
@오향왕족발

전역하고나서.. 방황을 좀 많이 했어요. 근데 님 글 보다가 갑자기.. 저도 써야겠다고 생각이 들어서요 ㅎㅎ

0
2020.09.19

지방의 호족들이 스스로 왕으로 칭하기 시작하고 세금도 경주로 안주니까 신라왕은 통치범위에 있던 경상도지역에 과다수취를 존나 때렸다고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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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9

아니 논문보면서 공부하는갑네ㄷㄷ 경제사가 뭔가 복잡하면서도 겁나 중요한데 쳐다보기가 싫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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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9
@연구소노예

맞음. 시대의 주요한 제도, 변화같은거는 대부분 경제와 관련이 있는데 경제라서 보기 싫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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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9
@쉽지않은남자

이게 나는 전공분야가 제도사라서 경제랑 떼기가 힘듬. 근데 경제사가 현대 경제논리같은건 없지만 한자 하나하나 분석해서 정리해야함. 거기다 직관성이 떨어짐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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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9
@연구소노예

아직 학부생입니다..논문은 그저 읽기만 하지 제대로 이해는 하지 못해요.

게다가 주 분야는 근현대사이기에 고려사는 주 분야를 공부하기 싫을 때 봅니다.

0
2020.09.20
@키시구루

학부생이면 굳이 주 분야를 정하지마셈. 대학원 생각 있어보이는데 전 시대사를 기본적인 흐름과 사건만 파악해둬도 큰 메리트가 될거임.

0
2020.09.20
@연구소노예

아 일부러 정해놓은 거에요. 주 분야를 정하지 말라고 이미 많이 듣긴 했는 데 ㅎㅎ.. 제가 더 자신있어하는 것이 근현대사라는 것이지 전 시대사를 공부안한다거나 놓친다거나 그런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학부 수업에서 겪은 게 많아서요.

그래도 이왕 공부하는 거 항상 논문이랑 같이 보려고 합니다.

0
2020.09.20
@연구소노예

교수님과 컨택도 끝난 상태이기도 하고.. 연구소도 다녀보면서 결정했는지라. 우려는 감사합니다. ㅎㅎ

그리고 학부생의 특권인 시간 많은 것을 누리기 위해서 이뿐만 아니라 관심있어하던 유럽사, 일본사, 독일근현대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0
2020.09.20

글재밌게 읽었습니다 선생님.

 

녹읍제도는 봉건제와는 달리 녹읍에 대한 상속적 권리까지는 인정되지 않는것같은데, 녹읍을 댓가로 귀족들이 왕에게 제공하는것은 관직복무에 따른 행정적 이익 말고 어떤게 있었나요?

0
2020.09.20
@스카우루스

제가 알고 있는 선에서는 녹읍을 지금받은 귀족관료들이 왕에게 제공하는 행정적 이익을 제외하고는 다른 건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이 부분에 따른 논문이 있는 지 확인해 보았으나, 녹읍과 관련한 설명은 대부분 당대 왕과 신하의 권력싸움을 보여주는 설명 또는 그 행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끝났을 뿐 행정적 이익을 제외하고 어떤 이익이 있었는 지는 확인 할 수 없었습니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귀족관료들에게 지급하는 녹읍이 귀족관료들의 경제적으로 여유를 줌으로써 오직 일에 집중 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흔히 말하는 반역같은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풍요로우니 말이지요.

0
2020.09.20
@키시구루

서양,중동처럼 군사적 이득을 제공하는 제도는 아니였나 보군요.

 

말기에 행정력이 소멸하기전까지는 녹읍이 토지총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과도하지 않았고, 녹읍을 부여받은 귀족계층의 행정력 제공과 녹읍과 전장을 제외한 토지에서 얻은 세수로 충분히 중앙집권적 정부를 꾸릴수있었다.

 

이렇게 해석하는게 맞을까요?

0
2020.09.20
@스카우루스

녹읍이 토지 총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과도하지 않았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 녹읍을 토대로 호족이 발생하였고, 이 녹읍을 지급하며 생기는 노동력으로 인해 주인없는 땅인 불모지를 개간하여 귀족들의 토지 재산을 더욱 확대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이 부분을 전장의 확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때문에 말기의 녹읍은 기존의 토지를 다시 한 번 조사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조세 취득의 이익을 보기 위해서 한 것으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녹읍을 부여받은 귀족계층의 행정력 제공으로 녹읍과 전장을 제외한 토지에서 얻은 세수로 충분히 중앙집권적 정부를 꾸릴 수 있엇다." 라고 하셨는 데, 이점은 그렇게 볼 수 없습니다. 신라 말기에서는 대부분의 토지가 녹읍과 전장으로 귀족 즉 호족의 소유, 또는 사원의 소유가 되면서 왕이 거주하는 경상도 지방을 제외한 부분에서만 더욱 세금의 고열을 짜낼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세수의 확보는 어려워지고 중앙집권적이기 보다는 귀족연합으로 간신히 이어나가는 정부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게다가 중앙집권적 정부가 된다면 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하는 일이 없어야 할 터인데 이 시대에는 왕위찬탈이 엄청나게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1
2020.09.20
@키시구루

머리속에 기본템플릿으로 박혀있는 조선적 제도나 서양 중세적 봉건제와는 확실한 차이점들이 있군요. 차라리 카롤링거 사후에 봉건제로 변화는 과정이 그나마 비슷한 비유겠네요.

 

상세한 답변 감사합니다. 고려 건국초기의 호족유화적인 태도가 어디서 비롯됬는지, 왜 필수적이였는지 더 명확하게 이해가되네요.

0
2020.09.20
@스카우루스

맞습니다. 고려도 똑같이 지방 호족들을 융합해서 세운 나라인데 고려를 세우면서 만약 호족을 배척하였다면 고려는 긴 역사가 아닌 짧은 역사로, 끝없는 내전으로 역사가 이어졌을 것으로 봅니다.

0
2020.09.20
@스카우루스

제가 서술한 부분의 녹읍의 부활은 당대 진골귀족의 세력이 정치적으로 성장함에따라 재실시 된 것으로도 보이지만, 다른 측면으로는 관료들의 녹봉에 해당하는 수조권을 각 지역과 연계시켜 분급함으로써 행정의 효율적 운용을 위해서 실시한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한편 농민층의 궁핍과 유망(流亡) 등으로 인한 국가 재정수입의 감소로 인한 재정궁핍을 타개하기 위한 것 또는 관료들에 대한 경제적 대우를 충분히 하기 위해 전조 이외에 공부·역역까지 함께 지급함으로써 관료제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재실시 한 것으로 보입니다.

 

0
2020.09.20
@스카우루스

질문을 받으면서 조만간 녹읍을 통한 군사적 이득이 제공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한 번 확인해보겠습니다.

다만, 신라는 군인을 징발하는 형식보다는 모집병 형식으로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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