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IV. 지역 교류와 제국들 위의 제국 ~ V. 세계체제의 청사진: 포르투갈 - Plus Ultra

너무 길어서 읽기 힘들다는 말이 있어서 목차별로 나눠서 이미지 첨부해서 올려봅니다.

원본은 https://pgr21.com/freedom/87858 아리랑쑤리랑 님이 제작했습니다.

다른 글들도 정말 좋으니 가서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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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체제 그리고 초 양극화 
IV. 지역 교류와 제국들 위의 제국

교양 역사 개설서에서도 이미 많이 논하고 있듯 로마나 한나라의 비단길이라던가 그런거는 잘 아실거라 믿습니다.

하지만 보통의 역사책들은 거기서 설명을 끝내는 경우가 잦은데 오히려 더 많은 물류는 초원길과 바닷길

특히 광동 -> 베트남 -> 스리랑카 & 남인도 등의 소위 남중국해-인도양 루트로 갔습니다.

강남개발이 본격화 되는 송나라때부터 특히 그랬고요.


이게 무슨 상관이냐고? 하실 분이 있겠지만 국제무역과 교류는 소위 거대한 대륙 사이에 걸쳐져있는 제국들이

하나로 이어지고 추후 설명드릴 세계화와도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교류란 별게 아닙니다. 심지어 앞서말씀드린 부족들간의 조우나 국가간의 중소규모 전쟁도 어떻게 보면 일종의 교류인것입니다.


그렇게 하나 둘씩 관계를 맺고 접점이 생겨날때마다 연결망이 생겨나고

거기서도 갑과 을 즉 누가 우위에서 이끌어가느냐 이끌려 가느냐가 결정나기 시작했죠.

비록 18세기 전근대까지만해도 이것이 크게 강하지 않아 멀리 있는 어디 국가 심지어 대제국이 망하더라도

타지역에 크게 영향받는 경우는 잘 없었긴 하지만 이런 소규모 교역이 발단이 되었다는점을 놓쳐서는 안되겠죠.


여하튼 고대에는 로마-페르시아-한, 당나라에는 더 활발해져 동로마-이슬람-당

혹은 당-위구르 or 토번 - 동로마 등으로 이어지는 길이 열리고 이때부터 남중국해와 인도양으로 가는 해양로 또한 열리기 시작합니다.

광동 지역에 이슬람 상인들 수백명이 있다고 할 정도로 점차 규모는 커지고 세계체제를 향해서 내달리고 있었으며 이것이 송나라때 절정을 맞이합니다.



송나라 시절에는 국가에서 수군 상당수가 대외 무역을 위한 상선들을 호송하는 호송전단이 따로 꾸려질정도로

-아시다시피 근대 까지만해도 바다는 위험한곳으로 해적들이 많았습니다 -

나름 전근대 기준으로는 대규모 해양 운송이 되었으며 이는 육상운송의 그것을 추월했습니다.

이렇게 점점 지역경제와 문화의 통합에서 늘어나는 교류로 대륙 경제까진 아니더라도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고 그 위의 발전상이 어떨지 추측해볼 정도까진 진행이 되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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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가 터진것이 13세기 전 시대를 뒤흔든 몽골입니다.

몽골은 크게 3가지 의미로 세계체제가 형성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는데 나열해보자면 이렇습니다 :



1. 유라시아의 절반 가까이를 점령해서 동-서를 잇는 지역의 교류에 대한 리스크와 그에 따른 안전 비용 절감으로 국제 교역 촉진

2. 그 자체가 이동하고 각국 및 부족들과 교류하는 유목민의 상업적 특성으로 이전까지 상당수는 공무역 내지 국가에서 규정해놓은 룰에 따른 극도의 보호무역에 대해 친무역 & 친상업적 정책으로 선회

3.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과 그 후 몽골-중국일대에서 발원한 흑사병이 신속히 오아시스 도시 국가등 일종의 중간 교류지에 대한 돌이킬수 없는 파괴 및 타격을 주게되었으며 몽골의 지배에 대한 반감으로 중국을 위시로 하여 아시아 지역 상당수는 무역과 대외 교류보다 안 그래도 자급자족인 전근대 사회를 더욱 폐쇄지향적으로 전환시킴.




즉 몽골제국은 호라즘과 서요, 금나라, 송나라등의 제국과 동유럽의 대국인 키예프 공국을 집어삼켜

하나의 환(Trans) 대륙 제국을 형성해냈으나 이후 후속조치로 이것이 유지되고 그리고 단순 정복지사이에서의 교류가 아닌

현재와 같은 전세계를 잇는 하나의 체계적인 연결망을 통한 체제를 구축하는데는 실패했습니다.

실제로 정복지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게 드러나는게 몽골제국이 정복을 하지 못한 서유럽이나 혹은 지중해 근동지역 및 인도등의 교역이란게 이전과 크게 다를바 없거나 혹은 오히려 감소하는 모양새까지 보였습니다.


다시 말해 몽골은 로마와 한나라가 교역하던 기존 통로를 이어붙이고 확대하는데는 성공했고

그로서도 나름 의의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여러 제국을 집어삼킨 거대 '제국' 이란걸 초월한

하나의 세계 체제로 연결되진 못했다는것이 되겠는데요.

아이러니하게 인구 1억 당시 세계 인구 23~24%에 달하고 지구 면적의 18%에 달하는 지상 최대의 대칸국이 달성하지 못한것을

인구 150만의 조그만 국가가 물꼬를 트면서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대항해시대의 시작인것이죠.



V. 세계체제의 청사진: 포르투갈 - Plus Ultra


Plus Ultra는 라틴어로 보다 더 멀리 나아가다 혹은 더 먼세계로란 뜻으로

몽골의 파괴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으면서 동시에 서유럽에서 가장 궁벽한 지역인 포르투갈 지역에

이만큼 적합한 구절은 없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포르투갈은 지중해 무역에서도

사실상 베네치아, 제노아, 아라곤 (축구를 좋아하시는분이라면 아실 바르샤지역의 연고지인 카탈루냐의 전신) 왕국에 밀렸는데

농사를 짓기에도 썩 좋은 지역이 아니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 먹고살기 팍팍한 동네였다는것이죠.

실제로 농업생산력이 곧 인구규모와 거의 동치되던 전근대에서 영토가 작더라도

인구가 100~150만이라는건 땅이 비옥하지도 않았다는것이였고 그렇기에 포르투갈은 사실상 상업과 항해에 목숨을 걸은 국가였습니다.

포르투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위인중 하나로 꼽히는 엔리케 왕자에 따로 붙는 별칭이 '항해왕자' 일 정도로 말이죠.


당시 포르투갈은 15세기초 까지만 해도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과 경쟁하면서 레반트 지역

지금으로 치면 시리아-레바논등이 위치한 근동 혹은 콘스탄티노플을 찍고 흑해 쪽으로 가는 그런 무역을 통해

없는 재정을 확충해가며 성장해가던 나라였는데요.

그때 제일 무게 대비 이윤이 많이 남는 상품들중 하나는 바로 후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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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역사 논문에서도 오류로 기록되는 바가 있는데 실제로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싸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속설이 돌 정도로 고가의 상품이였다는것은 분명하죠.

그래서 포르투갈은 그걸 구하기 위한 소위 무역 루트를 뚫을려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고 좀 기시감을 느끼시는 분들도 있으실텐데요. 왜냐면 '아니 원래 가던길로 가면 되는거 아냐?'

라고 의문점을 가질수 있을테니까 말이죠.


그런데 그게 힘들어졌습니다.

왜냐면 금방 몽골제국이 소위 뚫어놓았다던 그 무역로와 연결망들이 몽골제국 이전보다 더 파괴되거나 못쓰게 되었고,

터키와 근동일대에 새로운 세력이 생겨납니다.

아나톨리아 지방에 터키란 이름을 자리잡게한 오스만 제국 당시 기준으로는 오스만 베이국이 지배세력으로 떠오르고

관세 및 통행료부터 안 그래도 힘들어진 무역을 더더욱 까다롭게 만듭니다.

윗 문단에서도 몇번 지적한 사항이지만 전근대 무역이란 해적부터 육상에는 도적까지

현대인 기준으론 거의 북두의 권에 가까운 치안 상황에다 정확한 길을 찾거나 기후 예측하는것도 불가능한 상황인만큼

장거리 무역일수록 그 난이도가 무지막지하게 올라갔기에 이것은 매우 중대한 사안이었습니다.


물론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서 목격하는 사건들도 그렇고 역사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현상들은 기본적으로

복합적인 원인이 결합되어서 나타나는만큼 오스만뿐 아니라 당시 항해술의 발전이라던가

갤리에서 캐럭이나 갈레온의 발전까지 다 다루어야 되지만 이 글에선 큰 거시적 맥락을 잡는쪽을 지향하는만큼

설명이 부족하다 생각하신다면 이해를 부탁드리는바고요.

2019060500969_1.png


여하간 그렇게 하여 포르투갈은 아프리카의 최남단인 희망봉을 돌아서 인도와 향신료 제도라 불리는

말레이-인도네시아 제도에 발견 및 진출하는데도 성공하고 포르투갈의 북동부 지역에도 발을 디디고 무역 기지를 짓는 업적을 이루어냅니다.

이것은 나중에도 몇번 언급될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매우 중요한것입니다.

언뜻 보기엔 단순 새로운 항해로와 지역 발견 정도로 여기실지 모르고

태어날때부터 전 세계 지리가 인공위성으로 생생하게 제공되는 현대인들에게는 별 것 아닌것 같이 느껴질수도 있으나,

세계체제란 집을 짓는데 일종의 구조물 스케치를 한 셈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포르투갈이 해내지 않았다면 이 항해로를 통해 네덜란드, 영국등의 후발주자가 온전히 새로 탐사하고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리고

혹은 아예 시작하지도 않고 더 긴 수백년동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당시 플랑드르 (현 네덜란드-벨기에)-영국 - 한자 (현 북독일) 지역으로 이어지는 양모 무역만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죠.



어쨌든 이렇게 되어 포르투갈이 세계체제의 새로운 막을 열지는 않았지만

이전에도 말했던 연결망과 접점을 새로 만들어놓고 그걸 따라서 이후의 식민제국

그리고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체제가 세워지는것에 큰 시발점이 되었다는점에서 포르투갈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긴 힘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 포르투갈을 언급한 연유는 인지하셨을테고

 

본격적으로 네덜란드, 영국 그리고 최종적으로 미국으로 이어지는 세계체제에 관해서 논해보도록 합시다.

1개의 댓글

2020.09.02

나는 포르투갈이 지금의 양극화, 유럽권과 동양권의 차이를 만드는데 가장 큰 기여를했다고 본다..

포르투갈이 원래는 지역적으로 에스파냐와 더불어서 종교 싸움이 심했던 곳인데(이슬람, 크리스트) 그 종교 분쟁이 사그라드니까 싸움쟁이들을 해외로 보내게 국가에서 만들어버린거지. 그게 결국 인도-동남아를 거점으로 한 무역망 혹은 약탈지가 되어버렸고

다음으로는 동양 무역의 흥망성쇠를 다 쥐고 있었던 송나라 영락제..

영락제가 국제 무역에대한 반감을 갖지 않고 계속 무역을 했다면 그 이후에 있을 네덜란드 , 영국 , 프랑스의 약탈 산업 , 동인도회사 , 산업혁명 등은 그때 그 장소에서 일어나지 않았을거라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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