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중국 왕조사, 주(周)나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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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나라를 멸망 시키고 등장한 주나라 이야기입니다.

 

기원전 11세기 경 상나라는 멸망하고 주나라가 중국 중심부를 장악하게 됩니다.

이는 놀랍게도 고고학적으로 증명이 되는 내용입니다.  

은허 유적을 비롯한 중국 내 발굴 유물에서

기원전 1040년 경을 전후로 상나라와 주나라 유물의 교체가 진행되기 때문이죠  

주나라 청동기의 특징이 명문을 새겨서 기록을 남긴 것인데

해당 명문 기록에도 그 비슷한 연도에 왕조가 교체되었음을 전합니다  

더불어 목야대전의 내용을 기록한 토기가 국내에서도 발견되어 논란이 된 적이 있죠

갑자 계산과 연대 측정과 같은 디테일한 부분에서 논쟁이 있지만

대충 기원전 11세기 경이라고 편하게 때려 맞추며 이야기 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주나라는 조상님이신 고공단보 시절에 삼국지 제갈량이 출사표 던지고 나간 땅 

기산 남쪽에 있는 주원 周原이란 곳에 처음 정착을 했다고 합니다.

 

'주원'이란 지명 자체가 주나라 근원이란 뜻이니

당연히 원래의 땅 이름은 아니고 주나라가 발원한 후 붙여진 이름이겠죠

주인(周人) 주족(周族)이 건국 한 나라라는 뜻의 주나라인 것입니다.

 

뭔가 특이하죠 상나라를 '은'이라 부르듯 보통은 지명으로 그 국명을 부르는데  

여긴 지명이 아니라 종족명이네요?

 

네. 일단 주나라를 세운 사람들은 기존의 중국 대륙에 살던 사람이 아닙니다.

서쪽에서 넘어 온 오랑케라고 나오죠

 

때문에 다양한 상상력이 튀어 나오곤 합니다

주나라 사람을 백인종 계통 유목민이다 보는거죠

왠지 흥미롭고 그럴듯 하죠.

 

서쪽에서 왔으니 주나라는 백인 유목민이다

이걸 또 그냥 뇌피셜로 주장하는게 아니라 나름 고고학적 유물이라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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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허에서 발굴 된 청동인면상입니다.

무릎 꿇고 눈깔 깐거 보니까 (상나라 이야기 참조)

제물로 곧 죽을 사람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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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주나라 유적에서 나온 주나라 청동인면상입니다.

이렇게 비교해 보면 진짜로 확 다르죠!

 

상나라 사람은 눈이 작고 눈깔을 파낸..

주나라 사람들은 눈이 깊고 코도 높은게 진짜 꼭 백인 같습니다.

이를 두고 서역에서 온 아리아인 어쩌고 판타지가 종종 만들어집니다 

 

근데 제가 보기엔 그냥 전부 억지라고 봅니다

그럼 다음 사진을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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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 병마용의 용사 상입니다

디테일 한 묘사로 유명한 인형이죠

이런 유물을 외관을 두고 단지 주관적 인상 따위로 인종을 구분하면

병마용에 나온 사람들은 전부 백인, 아랍인 아니지 멕시코인으로 볼 수 있겠네요

보세요 콧수염 큰 코를 보면 칠리소스랑 타코 겁나 잘 먹게 생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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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상나라와 같은 시기에 지금의 사천성(촉나라) 삼성퇴에서 발견 된 청동인면상입니다.

상나라와 전혀 다른 문명으로 동시대 황하문명 이외에도 고도의 문명을 이룬 대표적 유적입니다.  

이것도 주관적 인상비평에 의지해 추론하면 당시 촉나라에는 외계인이 살았었나 봅니다??

 

말씀드리면 유물에 나온 형상은 그냥 상징인 것이고 그 주관적 감상은 결코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이따금 고대사 영역에서 고고학 유물을 두고 상상력을 펼치다 주화입마 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조심해야 하는게 이런 것이죠 신라 기마유물에서도 이런류 주장을 본거 같은...

 

솔까말 서쪽에서 왔다고 죄다 백인이면 북방에서 내려오면 백귀들인가요

그냥 전부 현대인의 상상력일 뿐이고 정확히 말하면 "알수 없다" 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와서 

이주민 출신인 주족이 주원에서 다시 동쪽으로 와서 지금의 시안 부근 풍읍(풍경)에 자리를 잡습니다 

스스로 서백(西伯)'서쪽 백작'이라 하였고 나중에 바로 옆 호경으로 천도하였죠

전부 오늘날 시안 부근의 관중평야 입니다

 

주나라가 상나라와 다른 큰 차이점은

상나라가 약탈, 사냥에 의존한 원시농경 국가였다면

똑같은 도시국가 수준이지만 주나라는 본격적인 관개농경을 한 국가란 것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주나라는 자신들의 시조를 농업의 신인 후직(后稷)이라 합니다

 

한국을 포함 농경국가의 왕조는 모두 사직단에서 농사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죠

서울에 있는 사직 공원이 바로 그 흔적입니다.

 

종묘,사직을 지키자 할때 그 사직이 토지의 신 사(社)와 곡식의 신 직(稷)을 말합니다.

여기서 직(稷)이 바로 곡식 농사를 처음 알려줬다는 농사의 신 후직을 말합니다. 주나라 시조입니다.

이런 신화는 주나라의 성격을 분명히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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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황하를 이용한 본격적인 농경국가의 등장은 주나라 부터란 것이죠

 

위 그림에 나오는 동그라미 부분이 그 유명한 황토고원의 관중평야입니다.

주나라가 자리잡은 호경이 위치한 지역이죠

 

동으로 함곡관이란 험준한 관문이 있고 남으로는 진령산맥이 가로막으며

서로는 진산과 거대한 숲 북으로 초원지대로 연결하는 황토지대와 다시 엄청난 규모의 숲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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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나라의 첫 정착지 '풍경'이나 무왕이 천도한 서주시대의 '호경'은

전부 지금의 시안시 주변 역대 왕조가 장안이라 부른 지역에 있습니다.

 

이 중요한 관중평야에 자리잡은 후대의 왕조가 제국을 만들었던 것 처럼 

엄청난 인구 부양력을 가진 기름진 옥토가 된 건 

수백년 후 진나라 시절의 대대적인 관개시설 정비 사업 덕분이고

 

주나라 시절에는 아직 여전히 반농반유의 경제를 유지하는

황하범람에 의존한 기초 농업 단계였습니다

이들 지역의 특징은 황토지대로 주기적인 황하의 범람과 쓸림으로

숲이 아닌 평야지대가 형성된 지역입니다

 

이 시절은 자연적 여건이 허용하는 한 다양한 민족의 이동이 있던 때죠 

농경민족이 우세할 때는 관개농업을 지으며 농사를 지었고

유목민족이 우세할 때는 유목민들이 가축을 유목하며 지냈습니다 

 

실제 관중의 이 시기 유적에는 농경 다음 유목 다시 농경이 나오는 순서로 

이런식의 유목민 농경민이 주기적으로 교체된 흔적이 나옵니다

주나라의 경우 주변의 이런 유목민과의 극심한 투쟁을 통해 성장했습니다. 

전쟁을 통해 정착지를 지키고 확장하며 농업을 본격적으로 정착시킨 국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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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내용이 유명한 주나라의 농업경제라 주장되는 정전제(井田制)입니다

 *후대에 나오는 당나라의 정전제(丁田)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우물 정(井)자로 땅을 9등분 하여 8개의 사전을 나눠주고

가운데 공전을 함께 농사지어 공전을 왕에게 세금을 냈다는

아주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토지제도죠

세금도 따로 안내고 백성들이 함께 농사지어 왕의 땅을 대신 경작했다고 하니

일종의 공산주의를 보는듯 하기도 합니다 

 

사실 공전이니 사전이니?? 하는건 우리에게 낯설은 용어가 아닙니다

네 우리가 입시공부하며 한국사에서 배운 조선시대 공전과 사전이 여기서 나옵니다

 

조선왕조는 주나라를 이상적인 국가로 모방해서 현실에 구현하겠다고 만든 나라죠

주나라 정전제를 그대로 시행은 못하지만 비스무리하게 개념은 적용했으니

경기도 토지를 공전으로 그 외 토지를 사전으로 두어 관리를 한

과전법이 바로 이 개념의 일부 가져온 것입니다

물론 살짝 변형해서 공전이고 사전이고 죄다 백성 수탈하며 뜯어먹는다는 

약간의 사소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정전제가 진짜로 시행된 제도인지는 그 누구도 알수가 없지만

다만 이를 통해 분명히 알수 있는건

 

1. 주나라는 농업중심의 국가였다.

2. 주나라는 정전(井田)이란 개념을 알듯 경지를 정리하는 관개농업을 했다.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런식의 농업에 올인하는 국가의 경우

큰 차이점이 그나마 평화로운 방식의 주변 통치가 가능하단 것이죠.

상나라의 경우 부족한 생산력을 보충하려 주기적인 약탈과 살인을 필요로 했지만 주나라는 안그랬거든요

전쟁 보다 중요한게 사실 치수사업이고 노동력입니다. 

 

앞서 연재한 상나라 이야기에게 하(夏)나라가 존재하지 않았음을 말하며 

그 왕조는 아마도 주나라의 정통성을 위해 주나라가 창작했을 것이다 한 바 있습니다.

 

일단 하왕조의 시조는 우임금으로 치수사업을 통해 왕이 된 인물입니다.

어라? 뭔가 익숙한 스토리죠

더불어 황하 서안지역에 왕조를 세운 인물이죠

당시 관중평야 지역은 서쪽 변방으로 중국문명의 땅이 아니었고

주나라는 서쪽에서 온 오랑케에 불과하지만 

 

하왕조란 창작 신화로 인하여

 

1. 서쪽지역도 중국문명의 땅이다

2. 상나라가 하나라를 멸망 시켰듯

주나라도 상나라를 멸망 시킨 것이다

 

이런 당위성이 부여가 됩니다

역사책에 나오는 하나라와 상나라의 마지막이 ctrl + c + v 복사 붙여넣기 마냥 똑같은 이유죠

 

더불어 중국문명인 중원 지역을 화하의 땅이라 여기고

주변의 사방을 오랑케의 땅이라 여기는 이런 이념적인 화이사상 구분도

모두 주나라 이후에 등장한 것이니

 

하왕조 신화는 주나라 건국 후 상당 기간이 흐른 후 만들어 진

다분히 정치적인 창작 설화인 것이죠

 

일단 주나라가 상나라를 멸망시킨 힘은 상나라의 약탈과 폭정을 못 견딘  

주변 이민족과 연합해 달성한 것이라 봅니다

 

역사책에 나오는 주나라 문왕에 대한 각종 핍박

그리고 상나라 주왕의 폭정과 잔인함 등이 바로 이런 상황에 대한 기록이겠죠

 

주나라는 이를 바탕으로 동쪽으로 진격해 상나라를 멸하고 막대한 영토를 얻었습니다. 

당연히 도시국가 수준에 불과한 주나라가 이런 지역을 다스릴 능력은 없습니다

 

또한 도시와 도시들 여러 성읍들은 그 사이에 자리잡은 거대한 숲과 정글로

서로 떨어져 있는 일종의 점과 같은 지역들이죠

 

때문에 각 중요 지점들에 주나라 출신의 가족, 친지들을 봉해서 다르리게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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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나라 봉건제라고 합니다.

상나라도 일종의 봉건제를 실시 했고 서양도 중세에 봉건제를 실시했는데

주나라의 봉건제와 차이점은 주나라는 죄다 가족들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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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에서 부터 제후에 이르기 까지 적자는 대종으로 그 외는 소종으로 삼고

소종도 다시 대종과 소종으로 나뉘며 세분화 되어 체계적으로 혈연이 상호 이어 집니다. 

서양의 봉건제와 같이 쌍무계약 관계가 아닌 종법제도에 의한 혈연적 유대감과 예법으로

지역을 통치하는 방식이죠

 

이렇게 광범위한 지역을 혈연 분봉하는게 가능한가 싶은데 

비슷한 사례로 러시아의 류릭왕조 혈통 공후들이 루스 지역 광범위한 지역에 흩어져

같은 류릭혈통이라 공유하며 통치를 이었던 시기가 있죠 

물론 진짜로 이들이 혈연이 있는지 알수는 없죠. 

다만 주나라 시기 각 지역으로 분파된 주나라 문화권 국가들이

자신들을 같은 혈연 같은 동류로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주나라 시기 중화와 이민족의 구분이란 개념이 자리잡게 됩니다. 

 

 

 

 

때문에 이런 귀하신 혈연 지배층은 정복자로 성을 쌓아 성읍에 살게 되고

피지배층은 성밖에 살며 빵셔틀이 되죠 

 

도시 성읍(城邑)에 살면 그게 국인(國人)이고

도시 밖에 살면 그게 야인(野人)입니다

 

이 당시 국민은 성안에 사는 사람을 의미했습니다. 

도시국가로 주로 토성으로 구축한 성읍 안에는 대부를 비롯한 사인(士人)들이 살며

유사 시에 전차를 타고 전쟁에 나가곤 했습니다 

 

이들은 평소 육예(六藝)라고 하여 문무를 익히고 닥는게 

국민의 의무를 다하는 일종의 사인 계층 의무였습니다.  

서양의 기사들 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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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요

 

한편 국가의 국력을 위 그림에 나오는 수레의 숫자로 나눴다는 말이 있습니다

천자인 왕의 경우 만승(萬乘)지국

제후의 경우 천승(千乘)지국

대부의 경우 백승(百乘)지국이라 부릅니다.

 

물론 진짜로 수레가 만대가 있단 말이 아닙니다

무슨 수레 1대당 보조인원이 8명이네 하며 군사력의 숫자 어쩌고 뇌절 하는 경우가 있는데

전부 의미없는 삽질입니다 그냥 일종의 관용어구죠.

 

천자인 황제는 만(萬)이란 숫자로 제후는 천(千)이란 숫자로 표현한 것으로

주나라가 아닌 전국시대 맹자의 기록에 나온 말입니다.

그냥 그만큼 중요하고 많다는 뜻이죠

 

비슷한 관용구로 삼천(三千)이란 말이 있습니다

고대 기록이나 표현에서는 관용적으로 그냥 무지 많다는 보통 삼천이라 표현합니다 

 

의자왕의 삼천궁녀가 대표적이죠

진짜로 의자왕이 삼천명의 궁녀를 두었다 이해하면 큰일 납니다.

해당 기록은 문학 '시'에서 나왔어요 당연히 '많다' 라는 형용사죠

 

예를 들어 할리 아재가 "뚝배기 억수로 맛있네예~"했다고

진짜로 뚝배기를 1억번 먹었다고 계산하며

"아니! 이렇게 먹다니 미쳤네..마약을 진짜로 했군..."

이딴 결론을 내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 돌아와 주나라 이야길 계속하면

 

상나라를 정복하고 이런 통치체제를 세운 주나라는

상나라와는 근본 부터 전혀 다른 나라였습니다

일단 민족이 다르단건 앞서 말했고 당연히 언어도 달랐죠.

 

오늘날 상나라와 주나라 기록을 담은 상서(尙書)를 번역하는게 힘든 이유가

상나라와 주나라가 같은 상형자를 쓰지만 그 언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유로 갑골문 역시 해독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갑골문의 해석을 주나라의 갑골문 격인 금문(金文)을 통해서 해석 했거든요

 

주나라와 상나라는 상호간 모시는 신(神)도 달랐습니다. 

주나라가 이를 교체를 했습니다

 

상나라 시기 나오는 갑골문에 따르면 상나라의 신은 제(帝)입니다

황제할 때 그 '제' 라는 뜻이고 이는 우리가 하는 일종의 조상님 신이죠

과거에 죽은 왕들이 곧 신이 되는 개념입니다

이들이 영험하여 후손들에게 영향을 끼치니 인신공양 제사의 대상이죠

때문에 상나라의 왕은 왕인 동시에 신으로 제정일치의 신정국가 사회였다고 여깁니다

 

어라? 조상신이라는 개념이 어쩐지 익숙하죠 

유교에서 말하는 조상신 개념 때문입니다. 

공자가 바로 상나라 유민 혈통이고 어려서 제사 지내는 것을 즐겨했죠 

상나라의 예법과 종교는 유교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반면 주나라의 경우 신神은 사람이 아니라 바로 하늘 천(天)입니다

레알 농업국가의 위엄이 여기서도 보이죠

 

때문에 왕의 존재는 신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대신해 농업을 주관하는 자로 

하늘의 아들 즉 천자(天子)인 것입니다

 

종교적 의미로 조상님 숭배에서 하늘 숭배로 대상이 바뀐 것은 물론

주나라 시기에 이르면 제정일치의 사회를 탈피해 인문적인 가치와 이성, 정치이념을 담은 것으로

보다 발전된 사회가 구축되었단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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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의 신화도 그래서 나오죠

 

천자는 천하를 주관하기에 천하를 9개로 나눠서 그 지역을 상징하는

아홉개의 솥을 국가의 보물로 삼았습니다

 

구정(九鼎)이라 합니다

 

각각의 표면에는 지역의 지리와 문화를 담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고 하죠

상나라 시대 사람을 잡아 제물로 쓰는데 실제로 사용한 솥은

이제 그런 목적이 아니라 일종의 정치적 의미를 담은 상징적 용도로 바뀌었단 뜻이기도 합니다

 

상나라에서 주나라로 교체되며 신앙중심에서 보다 이성적인 국가가 되었죠 

그 의미를 알수 있는 대표적 사례가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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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춘추 전국시대 사람이 사람을 배반하고 죽이는게

매일 벌어지고 패륜이 일상이 된 참흑한 현실에서

 

유교를 창시한 공자는 과거에 존재한 주나라를 이상향으로 봤습니다 

보다 인문학적이고 이성적인 삶을 지향한 주나라의 정치제도와 통치방식이야 말로 

가장 이상적인 사회제도라 찬미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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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일평생 주나라 시절로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쳤죠

 

그 공자가 주장하고 만든것이

주나라의 제도와 예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를 따라 사람 사이에 주나라식 예절을 지키자 라는 학문입니다. 

 

유학(儒學)이 그렇게 생겨난 것입니다

 

그도 그런것이 주나라는 예법이란 이름으로

사실상 사회의 모든 것을 정리해서 기록해 남겼습니다

 

6경이라 부르는 것이죠

 

주역 : 삶의 태도, 점술

시경 : 문화, 풍습, 노래

서경 : 행정서식, 문서작성, 공문

주례 : 관직, 정치제도, 통치 제도

예기 : 예절, 명칭, 건축, 음악, 직업, 행사

의례 : 왕 제후 대부 계급 질서, 신분 질서

 

이들의 디테일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관직과 정치제도 구성 방법 그 명칭에서 부터 건물을 배치하는 방법, 그 명칭

각종 장인과 공인들을 나누며 물건을 만드는 방법

노래를 하고 가사를 붙이는 방법

문서를 쓰고 전달하며 이를 읽는 방법

심지어 하루를 생활하고 점을 치는 방법까지

주나라는 전부 기준을 정했고 그걸 기록했습니다

 

유교라는게 바로 이런 것을 공부하는 학문이죠

공자가 말한 '군군 신신 민민'의 정명이란 이런 것을 공부해서 지킴으로 시작합니다.

이것이 종교가 되어 유교가 되면 이 6경을 공부해 익히면 그게 군자고 인간의 완성이라 보죠 

그래서 과거시험에서 이걸 배웠는지 확인하는 시험을 치르고 그런 사람을 관리로 선발하게됩니다. 

 

한나라때 국교로 유교를 정한 이래 무려 2천년을 거치며 심화시켜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주나라의 삶의 방식은 지금도 우리가 너무 익숙한 것들입니다

사극이나 조선시대의 단어 하나도 그 기원이나 어원을 살피면 전부 주나라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유교의 영향 때문이죠

 

현대 유대교나 이슬람교에서 소위 율법이란 것을 경전에 담고 있고

이슬람의 경우 샤리아란 그들의 종교 율법으로 국가 운영과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하죠

지금처럼 기록문화와 정보가 많지 않던 시절에는 생활 관습 종교로 지혜를 후대에 전했습니다 

고대시절에 중요한 생활습관과 중요한 지침을 후대에 전하는 방식이죠 

중동 지역 종교에 나오는 소위 율법문화가 그러하죠 

대부분 그냥 선지자의 행적, 대화, 일상을 기록한 것을 토대로 분석한 이런 초보적인 율법들은

개인적인 생각으로 2천년 전의 유교 율법?인 유교 경전에 비하면 솔직히 귀여운 수준입니다

주나라가 만든 소위 '경전'이란게 이런 것이고 주나라가 이런 종교?를 가진 나라였습니다.

 

물론 그 모든 것이 이 당시에는 작은 도시국가를 다스리는 방법과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한 기록이었고 기준이었습니다 

 

하지만 훗날 공자의 등장으로 유교라는 것이 창시가 되면서

이 모든 것들이 고도의 종교화 이념화 과정을 거치고

또 심화되 발전한 결과물은 동아시아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습니다.

무려 수천 년이 지나 등장한 조선의 수도 한양조차 

바로 주례의 예법에 따라 건물을 배치하고 방위를 정하며 건설되었고

지금 우리가 일상에서도 유교식 예법이 익숙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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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와.

 

그런 주나라가 상나라를 정복하고 현실적으로 통치한 방식은 앞서 말한 봉건제였다고 했습니다

위 지도를 보면 알지만 수도인 호경은 결국 변방의 도시에 불과하죠

절대 다수의 인구와 생산력을 가진 동쪽의 중원의 나라들을 통제할 지역이 아닙니다

그 우려가 실제로 벌어져 반란사건인 '삼감의 난'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 교훈을 얻은 주나라는 새로운 통치방식을 도입했습니다. 

이때 과거의 상나라 영역인 지역에 새롭게 낙양이란 도시를 개발한 것이죠 

낙양을 동쪽의 수도로 세우고 2개의 수도를 운영합니다

 

중국 역사에서 향후 2천년을 지속 한 중국 왕조의 양경兩京제도

즉 2개의 수도 운영제도가 시작합니다. 

 

관중평야에 위치한 호경은 서쪽의 오랑케인 서융과 견융을 막으며

정치적, 군사적 중심지로 수도 역할을 하였고

 

하남에 위치한 낙양은 동쪽의 수 많은 제후국을 통제하는 도시이자

동방의 제후들이 조공과 공납을 바치러 오는 장소로

경제적, 문화적 중심지로 수도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때 만들어진 장안 - 낙양 양경 체제는

천년간 역대 중국 왕조의 수도로 역할을 했고

 

정치적, 군사적 중심 수도 + 경제적, 문화적 중심 수도

라는 2개 수도를 통한 국가운용 개념이 중국문화에 자리잡습니다. 

생활권과 경제권의 변화에 따라 도시가 바뀌어 가며 

명나라 청나라 시절까지 북경 - 남경 체제와 같은

중국 특유의 국가 운영 방식으로 꾸준히 유지 되었습니다

지금도 정치중심지는 북경이고 경제 중심지는 상해죠  

 

더불어 이 당시 국가의 개념은 도시국가로

국가의 경계는 면이나 선이 아니라 점과 점으로 이어진 형태입니다

도시와 도시는 숲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도시 밖에는 야인이 살아가죠

 

2개의 수도인 호경과 낙양 사이에도 다양한 이민족이 살아가고 있었고

다양한 민족이 자유롭게 이동을 하던 시절입니다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국경이나 방어선의 개념이란 애초 존재하지 않던 시대입니다

그냥 수도 호경 주변에도 서융, 견융같은 이민족이 수시로 들락거렸죠  

 

그러던 이민족들이 어느날 '포사의 이야기'로 알려진 사건을 이유로

호경을 기습 공격해 함락하게 된 사건이 터지게 됩니다. 

 

다시 회복하긴 했지만 더이상 이민족을 막아낼 자신감을 잃어버린

주나라 왕실은 호경과 그 주변의 땅을 진(秦)땅에 봉해진 작고 약한 제후에게 버리듯 줘버립니다 

그리고 동쪽의 수도 낙양으로 이전 해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호경과 관중평야가 의미하는 정치적, 군사적 힘을 상실한

이름만 남겨진 주나라의 시대가 시작되었으니  

 

호경 시절을 서주(西周) 낙양 시절을 동주(東周)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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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주시기를 이후 중국 역사에서 춘추시대(春秋時代)라고 하죠

 

중국왕조사 두번째 주나라 이야기.

 

끝.

 

 

* 이전 글 

 

중국 왕조사, 상(商)나라 이야기. 

https://www.dogdrip.net/282653271

11개의 댓글

2020.11.11

깔끔데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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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1
@가리지않아요

정말 글과 잘어울리는 댓글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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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1

뭐 실제로 저 사이즈였을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호경이 통치에 적합하지 않은 위치인 것도 맞긴 하지ㅋㅋㅋ

관롱지역=>관중+농서 지역은 당 때까지도 중국 중심지였던 것 보면 확실히 지리적 이점이 남달랐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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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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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2

읽판의 보배가 돌아오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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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2

제후 분충들은 어서 짐을 구하러오는 데챠-----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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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잘했습니다. 읽기 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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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2

댓글달려고 회원가입했어요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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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내려가는게 아까울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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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2

넘 재밌다. 다음 글도 기대돼 헤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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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제도 신기하네. 생각해보니 미국도 뉴욕과 워싱턴으로 나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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