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경신 대기근 - 上. 경술년의 재앙

조선국 현종 11년(경술), 12년(신해)간 걸친 대기근인 경신대기근은 나라에 닥친 기근 중 가장 참혹한 재해로서, 천하의 기상에 이변이 일어나 홍수, 지진, 우박, 서리 등의 각종 천재지변이 팔도를 덮쳤으며 많은 질병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해치고 농사의 일은 흉작뿐이었으니 백성들의 고난은 극에 달하였다.

 

종친들과 대신들 또한 백성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먹을 것이 없어 아사하고 질병으로 연이어 쓰러져 죽으니 나라의 행정 또한 마비될 지경에 이르렀다. 이 전무후무한 대기근으로 100만 명이 넘게 죽으니 실로 이는 임진년의 참변이나 병자년의 굴욕과 비교될 수도 없는 중대한 사직의 위기였다.

 

 

 

 

현종 11년(경술년) 1월 1일

햇무리가 지고 양이(兩珥)가 있었다. 햇무리 위에 대(戴)가 있었다. 색은 안은 적색이고 밖은 청색이었다.

 

- 1월 1일부터 이상한 낌새가 보인다. 1월부터 시작된 이상 징후는 거의 2~3일에 한번 꼴로 기록되는데 신해년에 들어설 무렵에도 진정되지 않는다.

 

 

 

 

현종 11년(경술년) 2월 15일

충청도에 염병이 크게 번져 죽은 자가 80여 명이었다.

 

현종 11년(경술년) 3월 20일

예조가, 기우제를 지내자고 아뢰었다.

 

- 봄에 다다른 3월 말인데도 비가 오지 않았다. 경술년 농사가 망할 징조가 이미 보인다.

 

 

 

 

 

현종 11년(경술년) 3월 25일

지평 유연이 아뢰기를,

 

"올해의 가뭄은 전에 없던 바라서 서울에서는 이미 기우제를 지냈습니다만, 외방에는 늘 겨를이 없어서 지내지 못합니다. 지난 무신년 봄에 경연 신하의 건의를 인하여, 민충단(愍忠壇)·강화(江華)·토산(兎山)·금화(金化)·쌍령(雙嶺) 등지에 전쟁에서 죽은 장사(將士)들을 위하여, 거의 모두 특별히 근신을 보내어 치제를 하였습니다만, 임진년 난리에 남원(南原)·금산(錦山)·진주(晉州)·달천(㺚川)에서 전쟁으로 죽은 자들에 대해서는 유독 제사를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사전(祀典)에 있어 매우 큰 흠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재변을 만난 때이니 의당 폐기했던 법전을 다시 거행하여야 됩니다. 근신을 보내어 날을 가려 치제하게 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 예전에도 이렇게까지 비가 오지 않는 일은 없었다. 지방에 기우제를 지내기 않았으니 이번에는 지내자라는 말이다. 현종은 이에 따랐다.

 

 

 

 

현종 11년(경술년) 4월 7일

평안도 창성(昌城)·선천(宣川)·이산(理山)·박천(博川)·가산(嘉山) 등의 고을에 3월 25일 서리가 내렸다.

 

현종 11년(경술년) 4월 9일

상이 양심합에 나아가 대신 및 비국의 여러 재신들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여러 차례 기우제를 지내어 비록 조금 비가 내리기는 하였으나 농사에는 이익됨이 없으니 매우 염려가 된다." 하니, 우상 허적이 아뢰기를,

"요즈음 내린 비로 양맥(兩麥)이 겨우 소생하였으나 파종[付種]은 할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 몇번씩 기우제를 한 끝에 비가 아주 조금 내리긴 하였으나 벼를 심을 수준이 안된다. 농사 자체가 4월 초에도 아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현종 11년(경술년) 4월 10일

상이, 가뭄이 너무나 심해 상규(常規)만 지키고 있을 수는 없다고 하여, 특별히 대신을 보내어 종묘 사직 및 북교(北郊)에 기우제를 지내게 하였다.

 

- 기우제 몇번씩 해도 아직도 비가 안온다. 또 기우제를 지낸다.

 

 

 

 

현종 11년(경술년) 4월 14일

평안도 위원(渭源)에 3월 26일에 이틀 밤을 연이어 서리가 내렸고, 영원(寧遠)에 이달 6일에 서리가 내리고 눈이 왔으며, 평양(平壤)·은산(殷山)·삼등(三登)·성천(成川)·중화(中和)·순천(順川)·순안(順安)·강동(江東) 등의 고을에 이달 7일에 우박이 내려서 싹이 튼 각종 곡식과 삼[生麻]·목화들이 모두 손상을 입었다.

 

현종 11년(경술년) 4월 19일

경상도 의성(義城)·의흥(義興) 등지에 이달 8일에 서리가 내렸으며, 의흥에는 9일에 우박이 내렸다.전라도 금산(錦山)에 서리가 내렸다. 양남이 모두 심하게 가물었다.

 

- 4월 중순인데 아직도 서리가 내린다. 쑥쑥 자라야 할 작물들이 서리로 얼어죽으니 농사일이 한층 더 힘들어진다.

 

 

 

 

현종 11년(경술년) 5월 2일

상이 하교하였다.

 

"아, 내가 즉위한 이래로 천재와 시변이 달마다 생기고 가뭄과 수해가 서로 잇달아 없는 해가 없어 밤낮으로 걱정하며 편안할 겨를이 없었는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가뭄이 더욱 참혹하여 봄부터 여름까지 들판이 모두 타버려서 밀 보리가 수확할 수 없게 되었고 파종도 시기를 놓치게 되었다.

 

가엾은 우리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아, 허물은 나에게 있는데 어째서 재앙은 백성들에게 내린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니 미칠 것같고 마음이 찢어지는 듯하다. 백성은 양식에 의지하고 나라는 백성에게 의지하는 법인데, 백성들이 곤궁을 당하고 있으니 장차 어찌해야 하겠는가.

 

가만히 생각건대, 어찌할 바를 모르겠고 마음이 급하다. 넓은 대궐이 무엇이 편안하겠으며 먹는 것이 무엇이 맛있겠는가. 오늘부터 정전(正殿)을 피해서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도리에 더욱 힘쓸 것이며, 자신을 꾸짖고 허물을 반성하여 조금이나마 하늘의 꾸지람에 답하려 한다.

 

승지는 나를 대신해서 교서를 지어서 널리 바른말을 구해서, 나의 부족한 바를 돕게 하라. 내가 덕이 없어 하늘에 죄를 얻었는데 여러 신료를 면려시키자니 실로 마음이 부끄럽다. 오늘날 인재가 비록 없다고는 하나 어찌 모두 쓸모없는 사람이겠는가.

 

아, 너희 대소 신료들은 사사로움을 버리고 공도를 따르며, 정성과 마음을 다하여 함께 공경하고 화합하라. 위아래가 서로 덕을 닦고 바로잡아 주면 어찌 조금이나마 도움이 없겠는가. 반찬 수를 줄이고 술을 금지하는 등의 일을 해조로 하여금 즉시 거행케 하고, 또한 천관(天官)으로 하여금 인재를 발탁하게 하여 낮은 직위에 침체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

 

- 현실의 참혹함에 현종은 안타까워하나 별 도리가 없다. 그저 행실을 바르게 하고 도리를 다할 뿐. 이런 현종을 비웃듯이 재앙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현종 11년(경술년) 5월 10일

상이 일렀다. "가뭄의 재앙이 이토록 혹심하니 백성들의 일이 망극하다. 8차 기우제를 대신을 보내어 거행하라."

 

- 기우제를 7번을 했는데도 비가 안온다. 5월이지만 아직도 비가 안오는데 마땅한 대책도 없다. 8차 기우제를 거행했다.

 

 

 

 

현종 11년(경술년) 5월 12일

경기 마전(麻田)에 이달 9일에 우박이 내렸다. 교하(交河) 등 아홉 고을에 황충이 크게 번졌다.

 

현종 11년(경술년) 5월 13일

상이 희정당에 나아가 대신 및 비국의 여러 재신들을 인견하였다. 상이 여러 신하들과 마주 앉아 가뭄을 걱정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호조의 저축이 거의 바닥이 나서 진구하는 정책도 두루 베풀 수가 없으니, 더욱 염려스럽다."

하고, ...

 

- 내년까지 지속되는 대기근을 막기에는 턱없이 모자른 재정이었다. 호조의 재정이 거의 바닥을 보인다. 

 

 

 

 

현종 11년(경술년) 5월 14일

부제학 이민적이 교지에 응하여 상소하기를,

"전하께서 임어하신 지 10년 동안에 덕을 잃은 일이 없는데도 백성들의 곤궁함이 한결같이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정치는 오류를 답습하는 데에서 폐단이 생겼고 세속은 구차히 동조하는 데에서 무너져서 공리(功利)를 위한다는 의논이 성행하여 백성들이 그 피해를 받아, 원망이 쌓이고 쌓여 하늘의 마음을 흔든 것이 아니겠습니까.

 

... 아, 참으로 아주 심합니다. 양민(良民)은 늘어나지 않는데 군적은 날로 증가하고, 군미(軍米)는 해마다 늘어나는데 백성들의 생산은 하나도 남은 게 없습니다. 공사간에 수레는 서울로만 모여들어 시장의 쌀값이 흙만큼이나 헐한데, 외방의 사람들은 먹을거리가 없어 하늘에 대고 울부짖습니다. 경기 지방 강가의 백성들은 시장(柴場)에서 고생을 하고 있으며, 고기잡이를 하거나 소금을 구울 만한 땅은 빠짐없이 특별 세금을 내는 땅으로 편입되어 있습니다. 농민들은 농사를 지을 수가 없으며 상인들은 장사를 할 수가 없습니다살아갈 방도를 잃은 백성들의 원성이 온 나라에 가득합니다. 호적에 빠진 사람들을 변방으로 이사를 시키는 일은 참으로 예전에 없던 일입니다. 수천 명의 노인과 어린 것들이 길을 헤매며 변방에서 통곡을 하고 있는데, 일찍이 살아갈 길을 하나도 열어주지 않으니, 이것이 또한 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상께서 참으로 검소하고 절약할 마음을 지니신다면 모든 줄일 만한 것들을 필시 한 번에 줄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진작시켜서 가슴을 열고 말을 받아들이실 수 있는 마음을 지니신다면 대신 및 여러 신하들이 필시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떨쳐 일어날 것입니다. 참으로 백성을 보기를 다친 사람을 보듯이 하는 마음을 지니신다면 지난날의 세금을 많이 거두고 이익을 많게 해야 한다는 공리(功利)의 말들이 자애롭고 선량한 의논으로 바뀔 것입니다.

아, 크게 뉘우치며 자신을 반성하고 크게 변혁시키는 일은 하지 않고서 늘상 하던 대로의 법전으로 이 큰 재변을 막으려 하신다면 또한 어려울 것입니다."

하고, 그대로 사직하였다. 상이 따뜻한 말로 비답을 내리고 윤허하지 않았다.

 

- 부제학 이민적이 사직하며 올린 상소. 검소하고 절약하는 것을 직접 보여주어 돈 나갈 곳을 줄이자는 상소였으나 현종은 따르지 않았다.

 

 

 

 

현종 11년(경술년) 5월 16일

전라도에 큰 가뭄이 들었다. 원양도 원주(原州) 등의 고을과 황해도 황주(黃州) 등의 고을에 우박이 내렸다.

 

현종 11년(경술년) 5월 17일

평안도 평양(平壤)에 이달 9일 우박이 내렸는데, 크기가 오리알만하였고 땅에 반 자나 쌓였으며, 네 살 된 아이가 우박에 맞아 즉사하고, 꿩·토끼·까마귀·까치들이 매우 많이 죽었다. 강서(江西)·중화(中和)·선천(宣川)·곽산(郭山)·증산(甑山) 등의 고을에 같은 날 우박이 내려 벼곡식이 모두 손상을 당하여 남은 것이 없었다.

 

- 사람이 맞아죽을 만한 우박이 하늘에서 내린다. 어렵게 뿌리를 내린 곡식도 우박으로 상하게 되었다. 백성의 어려움은 날이 갈수록 더해간다.

 

 

 

 

현종 11년(경술년) 5월 23일

당시에 큰 가뭄이 시절을 넘겼는데, 이날에 비로소 큰 비가 내렸으나 절기가 이미 늦어 결국 큰 흉년이 들었다.

 

- 5월 말이 되서야 비가 쏟아진다. 근데 이미 파종시기를 놓쳤으니 이제와서 어쩌랴.

 

 

 

 

현종 11년(경술년) 6월 8일

경상도에 큰물이 졌다. 산음(山陰) 교생 정이원(鄭以元)의 집이 폭우가 올 때 산사태에 깔려, 정의원 및 자녀 손자 남녀 6명이 모두 죽었다. 휼전을 거행하라고 명하였다.

 

- 여기저기 죽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니 빈약한 재정에 관례대로 지급하는 휼전이 부담이 되기 시작한다.

 

 

 

 

현종 11년(경술년) 6월 10일

상이 양심합에 나아가 대신 및 비국의 여러 재신들을 인견하였다. 좌상 허적이 아뢰기를,

 

"바야흐로 농사철인데 청나라 사신이 또 나오니, 양서(兩西)의 백성들이 장차 감당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평안 감사 민유중(閔維重)의 계청에 따라 이미 관향 모미(管餉耗米) 2천 석을 지급했는데, 황해도에도 이 예에 의거하여 참수(站需)을 헤아려 지급하소서."

 

하였는데, 상이 이르기를,

"황해도에서 참(站)을 내는 읍이 몇 고을이나 되는가?"

 

하니, 허적이 아뢰기를,

"평안도는 참을 내는 곳이 30여 고을이고 황해도는 24고을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평안도에 견주어 절반으로 정하여 지급하라."

 

- 나라가 망할 지경인데 재앙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청나라 사신이 온다. 청나라 사신이 한양으로 들어오는 경로인 평안도와 황해도가 이러한 상황을 감당할 수 없으니 없는 재정을 긁어 여기에 쓰고 세도 감면한다.

 

 

 

 

현종 11년(경술년) 6월 20일

경기에 큰물이 졌다. 당시 각도에 모두 큰 물난리가 났는데, 호남이 더욱 심하였다.

 

현종 11년(경술년) 7월 6일

전라 감사 오시수가 도내에 굶주린 사람들이 많다고 아뢰자 상이 휼전을 거행하라고 명하였다.

 

현종 11년(경술년) 7월 12일

함경도 삼수(三水)에 우박이 내렸는데 크기가 비둘기 알만하였고, 황충(蝗虫)이 온 들판에 퍼져 각종 곡식을 먹었다.

 

현종 11년(경술년) 7월 19일

경상도에 큰 기근이 들어 함양군(咸陽郡)에서 백성들이 많이 굶어 죽었는데, 상이 휼전을 거행하라고 명하였다.

 

- 재해들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홍수가 지속되고 굶주린 사람들이 넘치며 그들을 비웃듯 남아있는 곡식마저 메뚜기떼가 먹어치운다.

 

 

 

 

현종 11년(경술년) 7월 22일

사간 이규령(李奎齡) 등이 아뢰기를,

 

"백성을 다스리는 임무는 수령에게 있고 한 도를 보살피는 책임은 감사에게 있는데, 이렇게 전례없는 가뭄과 물난리를 당하여 구제할 방책을 생각지 않아서 참혹하게도 굶어죽는 일이 있게 되었다면 직무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하겠습니까. 소문에 들으니, 호남의 남원(南原)과 영남의 함양(咸陽)에서 백성이 굶어죽었다는 보고가 잇달아 올라왔다고 합니다. 일이 매우 놀랍고 참혹합니다. 두 고을의 수령은 파직하고 두 도의 감사는 추고하소서."

 

하니, 상이 감사와 수령을 일체로 추고하라고 명하였다.

 

- 자연재해는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재해가 지나간 현장을 잘 추슬러 수습하는 것은 사람의 영역이다. 조정은 책임자로서 이러한 일을 하지 못한 관리들을 파직했다. 그러나 이 대기근은 사람의 수습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고 몰아치기 시작한다.

 

 

 

 

현종 11년(경술년) 7월 23일

상이 양심합에 나아가 침을 맞았다. 진료를 마치고 대신 및 비국의 여러 재신들을 인견하였다. 영상 정태화가 아뢰기를,

 

"올해의 흉황은 팔도가 다 마찬가지인데, 각읍에 절반씩 창고에 남겨두었던 곡식마저 모두 백성들에게 꾸어주어 남은 것이 없으니, 앞으로 진휼할 자본이 없습니다. 오늘날의 계책으로는, 온갖 일들을 정지시키고 번잡한 비용을 줄여서 오로지 구황 정책에 뜻을 두는 것만한 것이 없는데, 진휼청 당상 가운데 민정중이 외방에 있으니 재촉하여 들어오게 하고 조복양을 또 더 차임하여 진휼하는 정책을 함께 주관하게 하소서."

하니, 상이 윤허하였다. 정태화가 또 아뢰기를,

 

"전일에 백관들에게 녹봉을 더해줄 때에 밖의 의논이 이미 계속 주기가 어려울 것을 염려하였습니다. 올해는 재난이 이와 같으니 줄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 신료들에게 자문하여 미리 강구해 정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모두들, 줄이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니, 상이 이르기를,

 

"10월부터는 도로 줄이도록 하라."

하였다. 정태화가 또 아뢰기를,

 

"우리 나라 사람들이 흰옷[白衣] 입기를 좋아하니 금지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만, 가난한 선비들이 이러한 흉황을 당하여 갑자기 바꾸어 입기는 어렵습니다. 시한을 늦추어 주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따랐다.

 

- 나라 살림이 어려워지니 조정은 긴축을 시작한다. 각종 사업이 정지되고 돈 나갈 구멍을 막아 빈약한 재정을 조금이나마 충당해본다. 관리들의 녹봉도 삭감되고 돈이 많이 드는 흰옷 착용도 금지된다.

 

 

 

 

현종 11년(경술년) 7월 24일

 

부제학 김만기(金萬基) 등이 차자를 올려 아뢰기를,

"기근과 여역이 없는 해가 없다가 금년의 가뭄과 물난리의 재앙에 이르러 극도에 달하였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국가에 도를 잃은 일이 무엇이 있기에 하늘이 재해를 내리는 것이 이 지경이 되었단 말입니까. 지금은 마땅히 임금과 신하들이 모두 안일하게 지낼 겨를이 없이 하늘의 꾸지람에 답하고 백성들의 목숨을 살리는 방도를 강구해야 하는데도, 묘당은 느긋하게 평소와 다름이 없고 전하께서도 여러 재신들을 자주 만나 분명하게 전교를 내리시어 그들의 투박하고 나태한 습속을 경계하지 않으십니다. 인견하는 일이 매우 드물고 임금 앞에서 묻고 아뢰는 것이 병정(兵丁)을 보충하는 일이거나 기계(器械)를 수선하는 일에 불과하며, 군덕(君德)의 궐실과 백성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임금 곁에서 경계시키는 자가 없으니, 본말 경중의 차서가 이와 같이 어그러져서는 안 됩니다.

... 부세를 줄이고 기근을 진구하는 정치는 더욱 우선으로 강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대신과 회계를 맡은 신하에게 오로지 책임을 맡겨, 각종 세금 및 경상 비용의 액수에 대해서 면제하거나 줄일 만한 것을 헤아려 계산하게 하고 또 각도와 각 아문의 저축에 대해서 옮겨서 사용하거나 백성들에게 나누어 줄 만한 것을 요량하게 하여, 전체의 계산을 맞추어 두었다가 군읍에서 점검하여 아뢰기를 기다려 그 분수(分數)에 따라 들어다 쓰게 한다면, 일이 미리 확립되어서 백성들이 실제적인 혜택을 받을 것입니다.

 

- 죄를 지은 것이 없거늘 하늘은 진노하여 조선에 자연재해라는 벌을 내린다. 부제학 김만기은 조선이 무엇을 잘못했길래 하늘이 이리 분노했는지 이해하지 못해 답답한 기색을 보인다. 김만기도 특별히 상황을 타개할 방도는 없어 긴축할 것을 상에게 아뢴다.

 

 

 

 

현종 11년(경술년) 7월 25일

평안도 용강(龍岡) 등 바닷가 여섯 고을에 큰 바람이 불어 배가 뒤집혀, 타고 있던 사람들이 많이 빠져죽었다. 상이 휼전을 거행하라고 명하였다.

 

현종 11년(경술년) 7월 29일

황해도 서흥(瑞興) 등 여덟 고을에 서리가 내렸다.

 

현종 11년(경술년) 7월 30일

평안도 창성(昌成)에 우박이 크게 내렸고, 충청도 대흥(大興) 등 고을에 지진이 있었고, 원양도(原襄道) 영서(嶺西)의 여러 고을에 서리가 내렸으며 원주(原州)에는 우박이 내렸다.

 

- 7월 말에도 끊임없이 우박과 서리가 내린다. 지진도 간간히 닥치고 사람이 재해로 죽는 일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현종 11년(경술년) 8월 1일

제주에 윤2월부터 비가 오지 않다가 5월 그믐께에 와서야 비가 내렸는데, 퍼붓는 듯한 빗발이 여러 달 개이지 않아 높고 낮은 전답이 침수되지 않은 곳이 없으며, 또 바람의 재난이 참혹하였다. 목사가 계문하였다.

 

- 제주는 5월부터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는데 정도가 극심해 비바람이 몇달째 계속되며 제주의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 본토와 떨어져 있는 제주도 재앙을 피하지 못했다.

 

 

 

 

현종 11년(경술년) 8월 2일

영중추 이경석(李景奭)이 차자를 올려 재난을 만나 수성(修省)할 도리를 진달하고, 각 아문과 병영, 수영의 토목 공사를 혁파할 것을 청하였다. 또 부마들은 우선 살고 있는 집에 거처하다가 풍년 들기를 기다려 옮겨 짓도록 하며, 강도(江都)의 곡물을 방출하여 기민을 구제하며, 내탕고의 저장 물품과 감영과 병영의 비축을 꺼내어 구제할 밑천에 보충하며, 쓸데없는 군병을 돌려보내 백성의 원망을 받지 말며, 어사를 파견하여 관리들의 정치를 살피고 백성의 병폐를 찾아서 고치도록 하며, 또 감사로 하여금 종자(種子)를 힘써 구하여 기민을 구제할 터전이 되도록 하라고 청하였다. 상이 부드럽게 비답을 내리고 묘당으로 하여금 의논해서 처리하게 하였다. 

 

- 재난을 수습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된다. 영중추 이경석은 중요한 국방상 사업과 병사 소집도 모두 중지하고 모든 관청의 물품을 꺼내며 종자를 구해 다음 농사를 대비토록 하는 계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러한 계책도 끝없이 이어지는 재난에는 역부족일 뿐이었다.

 

 

 

 

현종 11년(경술년) 8월 9일

사간 이익상(李翊相)이 아뢰기를,

"팔도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어 죽는다는 보고가 잇달아 들어오니, 진구하는 정치를 마땅히 불에 타는 사람을 구하고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듯이 해야 합니다. 각도 감사로 하여금 각읍에 분부하여 굶주리는 사람들을 뽑아 기록하여 우선적으로 진구하게 하소서. 그리고 올해는 서리가 매우 일찍 내려 가을 일이 이미 끝났으니, 경차관과 도사(都事)를 때맞춰 내려 보내어 속히 연분(年分)을 완결짓고 서둘러 진구하는 정치를 행하게 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 백성들이 아사하기 시작한다. 현종은 굶주리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구휼하도록 했으나 그 수효는 너무 많아 다 구제하기 어려웠다.

 

 

 

 

현종 11년(경술년) 8월 9일

함경 남·북도에 여러 달 큰 비가 내려 곳곳에 전답이 모래로 뒤덮였고 남은 곡식은 또 충재(虫災)를 당하였다. 갑산(甲山), 삼수(三水) 등의 고을에 7월 16일 서리가 내렸는데, 눈이 온 것과 같았다. 함흥부(咸興府)에 큰 우박이 내렸는데 달걀만하기도 하고 새알만하기도 하였으며 각종 곡식이 쓰러지고 부러졌다. 또 누런 기운과 흰 기운이 일시에 뒤덮였고 그 기운이 덮였던 곳에는 싹이 말라 죽었는데 흰 기운이 누런 기운보다 손상이 심하였다.충청도 태안(泰安) 등 연해의 네 고을에 모진 바람으로 배가 침몰하여 죽은 자가 90여 명이었다. 감사가 보고하였는데, 휼전을 베풀도록 명하였다.

 

- 북방의 척박한 함경도에서도 재해는 극심하다. 홍수와 비바람, 메뚜기떼, 서리, 우박등이 연이어 몰아닥치니 사람이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종 11년(경술년) 8월 10일

전라도 용담(龍潭) 등 고을에 큰 바람이 불고 큰 비가 내렸으며 또 서리가 일찍 내렸다. 영하(嶺下)의 여러 고을에 찬 비가 물을 퍼붓듯 하였고 큰 바람이 불어 지붕을 날렸으며, 벼가 모두 쓰러졌다가 햇볕을 보자 곧 말라 버렸다. 백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죽은 시체가 길에 널렸는데, 무리를 지어 겁탈하기까지 하였다. 혹 전답의 주인을 묶어 놓고 그 화곡을 베어갔으며, 들판에 방목하는 소와 말을 대낮에 잡아먹었다. 감사가 보고하였다.

 

현종 11년(경술년) 8월 11일

경상도에 큰물이 졌는데 낙동강 일대가 더욱 심하게 침수되었다. 밀양(密陽)의 영남루(嶺南樓) 아래 백 년된 큰 나무들이 거의 다 떠내려갔으며, 언양(彦陽) 등 여섯 고을은 수백여 집이 침수되어 무너졌는데 빠져 죽은 자가 50여 명이었으며, 남해(南海), 양산(梁山) 등지에는 언덕이 무너져 깔려 죽은 자가 7명이었다. 상이 휼전을 베풀도록 명하였다.

 

현종 11년(경술년) 8월 11일

북도(北道) 행영(行營) 추방(秋防)의 역을 정지하라고 명하였다. 당시에 함경남도 홍원(洪原) 등 여섯 고을에 큰물이 져서 빠져죽은 사람과 가축이 매우 많았고, 북청부(北靑府)에는 바람과 우레가 크게 일어나고 우박이 내렸는데 큰 것은 바리만 하고 작은 것도 주먹만하였다. 높은 곳이나 낮은 곳이나 논밭이 일시에 폐허가 되었다. 맞아서 다친 사람들이 많았고 열두 살짜리 아이가 우박을 맞아 죽었으며, 새와 짐승과 하천의 물고기들까지 맞아죽은 것이 많았다. 7월 30일에 갑산(甲山), 단천(端川) 등지에 눈이 내렸다. 남북의 각읍이 모두 가뭄, 물난리, 바람, 우박의 재난을 당하여 각종 곡식은 전혀 거둔 것이 없었고 도토리까지도 익지를 않았다. 농민들이 모여서 통곡을 하는 소리가 들판을 진동하였다. 부방(赴防)나갈 군인들이 모두 감영에 와서 호소하였는데, 감사가 이를 계문하고 이어 부방을 정지시키기를 청하니, 상이 윤허하였다.

 

현종 11년(경술년) 8월 15일

경기 각 고을에 된 서리가 연일 내려 익지 않은 벼가 모두 말라 죽었다. 또 소의 전염병이 크게 번져 거의 남은 종자가 없었다. 가을갈이를 사람이 소 대신 하였는데, 9명의 힘으로 겨우 소 한 마리의 일을 해낼 수 있었으므로 농사일을 포기하는 백성이 많았다.

 

-대참사가 전국에서 일어난다. 농민들은 모여서 통곡을 하고 시체는 길가에 널렸으며 범죄자들이 들끓는데다 심지어 시간을 하는 무리도 생겼다. 집이 무너져 죽고 산사태에 깔려죽고 우박에 맞아죽고 이리저리 죽는 백성이 많으니 실로 참담할 노릇이었다.

 

 

 

 

현종 11년(경술년) 8월 17일

백성을 모집하여, 버려진 아이들을 거두어 길러 노비로 삼게 하였다. 이때 떠돌며 빌어먹는 자들이 길에 가득하였고 어린 아이들을 길가에 버리는 일이 잇따랐다. 경상 감사 민시중(閔蓍重)이, 신축년의 전례대로 백성을 모집하여 거두어 기르게 할 것을 청하였는데, 비국이 회계하기를,

"내년 보리 추수 때까지 거두어 기를 것을 허락하고, 또한 자세히 허실을 조사하여 간사한 짓을 막게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뜻을 아울러 각도에 분부하소서."

하니, 상이 윤허하였다.

 

- 지옥도에서 제일 먼저 버려지는 것은 노인과 아이들이다. 내다 죽게 할 수 없으니 조정은 임시방책으로 백성을 뽑아 버려진 아이들을 노비로 삼아 기르게 하였다. 그러나 자기도 굶어죽게 생겼는데 새로 생긴 아이들이 눈에 보이겠는가. 아이들은 또 다시 버려질 뿐이다.

 

 

 

 

현종 11년(경술년) 8월 18일

경상도 영천군(榮川郡)에 큰 바람이 불어 오래된 큰 나무가 모두 뽑혔다. 칠원현(柒原縣)에 큰 비가 내려 집이 침수되어 무너졌으며 산기슭이 무너져 사람이 많이 깔려 죽었다.전라도 곡성현(谷城縣)에 폭우가 내려 빠져 죽은 자가 많았다. 상이 모두 휼전을 베풀도록 명하였다.

 

현종 11년(경술년) 8월 19일

사간 이익상(李翊相) 등이 아뢰기를,

 

"올해 재변이 거듭되고 농사가 흉년이 든 것은 근고에 없던 바이고, 백성들이 죽었다는 보고가 잇달아 올라옵니다. 이러한 때에는 군신 상하가 마음을 합하고 힘을 다하여 한결같이 백성을 돌보고 불쌍한 사람을 보살펴 주기에 힘써도 오히려 구제하지 못할까 두려운데, 하물며 긴요치 않은 일에 급급하여 풍년이 든 넉넉한 시절과 같이 해서야 되겠습니까. 지금 공주의 집을 고쳐 짓는 일은 부득이한 일이기는 하나, 두 공주의 집짓는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또 두 공주의 집을 지으라는 명을 내리시어 크게 토목 공사를 일으켜 미포(米布)를 많이 꺼내어 쓰며 기한을 정해 놓고 독책을 하시니, 비용을 줄여서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는 도리가 아닙니다. 숙휘 공주(淑徽公主)와 숙경 공주(淑敬公主)의 집을 짓는 일을 중지하소서."

...

 

하였는데, 상이 따르지 않고, 세초 군병에 대한 일은 묘당으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하게 하였다.

 

- 주상의 공주 사랑은 백성 사랑보다 강했다. 이익상은 '공주 집짓는 일을 중지해 그 비용으로 굶주린 백성을 구제할 것'을 청했으나 끝내 윤허하지 않았다.

 

 

 

 

현종 11년(경술년) 8월 19일

경상도 울산부(蔚山府)에 큰물이 져서 빠져 죽은 자가 10여 명이었다. 상이 휼전을 베풀도록 명하였다.

 

현종 11년(경술년) 8월 19일

울산의 사비(私婢) 향춘(香春)이 평소에 시어머니 봉양에 효성을 다하였는데, 홍수가 났을 때에 온 마을이 침수되자 향춘이 그의 시어머니 및 두 아들과 함께 지붕에 올라가 물을 피하였다. 이윽고 집이 무너져 동시에 물에 빠졌는데, 자기 두 아들을 버리고 시어머니를 구출하여, 효성이 가상하였다. 감사가 계문하니, 상이 정려(旌閭)하라고 명하였다.

 

- 재난 상황에서도 미담은 있다. 조정은 아들보다 시어머니를 먼저 구한 향춘의 효성을 표창하였다. 아이를 구하기보다는 먹어치우는, 노모를 봉양하기보다는 버리고 도망가는, 이웃과 정을 나누기 보다는 죽이고 빼앗는 자들이 훨씬 많았기에 향춘의 효성은 의미가 있었다.

 

 

 

 

현종 11년(경술년) 8월 21일

상이 양심합에 나아가 대신 및 비국의 여러 재신들을 인견하였다. 좌상 허적이 아뢰기를,

"금년의 흉황은 신축년에 비하여 배나 심합니다. 신축년에는 양남(兩南)이 큰 흉년이 들었다고는 하나 전남좌도는 완전히 흉년이 들지는 않았고 양서(兩西)는 자못 농사가 되었기 때문에 관서(關西)의 곡식 10여 만 석을 운송하여 다른 도의 굶주린 백성들을 진구하였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팔도가 모두 흉년이 들어 다시 옮길 곡식이 없습니다. 신들은 재주와 지혜가 짧아 구제할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상께서야 또한 어찌 백성들이 다 굶주려 죽게 되었음을 아시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인후하시니 결코 나라를 망칠 임금은 아니시며, 신들이 비록 보잘것은 없으나 또한 어찌 어쩔 수가 없다고 내버려 두고서 망해가는 것을 보고만 있겠습니까.

 

... 하니, 상이 이르기를,

"올해에 또 이런 재변이 일어나 어좌(御座)를 범하였으니, 더욱 놀랍고 해괴하다."

 

하였다. 허적이 아뢰기를,

"근래에 백성들이 수없이 죽는데, 얼핏 들으니 연천(漣川) 아문 안에서 강도의 재변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장리(長吏)를 죽이고 관고(官庫)를 터는 일이 일어날 조짐입니다. 서울의 백성들도 허둥지둥 겨를이 없어 아침 저녁도 보전하지 못하게 되었는데강도(江都)의 쌀을 어찌 군향이라고 하여 아낄 수가 있겠습니까. 신이 어제 수상을 만나 상의를 하였더니, 그도 ‘공물주인(貢物主人)에게 단지 은포(銀布)만 지급하고 미곡을 지급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모두들 원망한다. 지금 만약 강도의 쌀을 옮겨다 지급하고 그 은포는 각 아문에 나누어 보관하였다가 풍년이 들면 곡식으로 바꾸어서 그 원래의 쌀을 보상한다면 편리하고 합당할 듯하다. 그리고 1만 석을 값을 낮추어 서울에서 팔되 호(戶)의 대소를 나누어 차등을 두면 도성 안의 굶주린 백성들이 조금은 구제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강도의 군량이 비록 중요하기는 하나, 달리 어떻게 해볼 방책이 없는데, 어찌 이러한 때에 도리어 아깝게 여길 수 있겠는가."

하였다.

 

- 작년에도 흉작이 있었으나 팔도 모두에서 흉작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올해는 팔도가 모조리 흉작이었다. 이러한 전무후무한 재난에 제일 부유한 서울의 백성들도 하루 한끼 먹기도 버거울 지경에 이르렀으니 실로 나라의 대위기였다. 국방상 가장 중요한 지역이었던 강화도에 보관된 군량도 모조리 털어 백성들을 궁휼하는데 써야만 했다.

 

 

 

 

현종 11년(경술년) 8월 23일

물에 빠져 죽은 자가 경상도에 5명, 전라도에 20명, 함경도에 4명이었는데, 감사들이 계문하였는데, 모두 휼전을 베풀었다

 

현종 11년(경술년) 8월 25일

상이 양심합에 나아가 뜸을 맞았다. 진료를 마치고 도제조 정치화가 아뢰기를,

 

"불행히도 기근이 참혹한데 나라의 저축이 이미 바닥이 나서 진구할 길이 없습니다. 단지 신역을 줄여주어 굶주린 백성들을 침탈하지만 않게 한다면 각자 생계를 도모하여 거의 구활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상께서 덕을 잃은 일이 없는데 하늘이 돕지 않으심이 이러하여, 굶어죽는 사람 이외에도 물난리에 휩쓸려 죽거나 벼락을 맞고 죽은 사람도 많으니, 더욱 참혹합니다."

하였다.

 

- 5월에 바닥을 보였던 국가재정이 끝내 동이 났다. 이제 구휼도 나라에 돈이 없어 거의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렀으나 재난은 끊이지 않았다.

 

 

 

 

현종 11년(경술년) 8월 27일

전라도 화순현(和順縣)에 큰 바람이 불었다. 아홉 살 난 아이가 바람에 날려 떨어져 죽었다. 노인들은, 을해년 이후로는 없던 악풍(惡風)이라고 하였다. 부안(扶安) 등의 읍에도 큰 바람이 불었다. 변산(邊山)의 금송(禁松) 수백 그루가 일시에 부러지고 뽑혔다.

 

현종 11년(경술년) 8월 28일

이 당시에 팔도에 기근이 들어 사망의 보고가 잇달아 이르렀다. 서울에도 굶어 죽은 백성이 많았다. 상이 진휼청으로 하여금 양식을 내어 구활하게 했는데도 모두다 구제할 수가 없었다.

 

현종 11년(경술년) 8월 28일

황해도에 죽은 소가 8천여 마리였다. 큰 바람에 나무가 뽑히고 서리가 잇달아 내려 폐허가 되어 화곡이 남은 것이 없었다.

 

- 현종 11년의 대재앙은 노인들도 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큰 바람에 나무 수백그루가 일시에 뽑혀 나가니 이는 사람 이외의 생물에게도 대재앙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현종 11년(경술년) 8월 30일

경상 감사 민시중이 치계하기를,

 

"다른 도의 유민들이 진주(晉州)·함양(咸陽) 등 10여 고을에 가득하여 도둑질이 날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노약자는 구렁에 엎어져 죽을 것이며 건장한 자는 도적이 될 것이니, 제때에 구제해서 다른 근심이 없도록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였는데, 진휼청이 회계하기를,

 

"조금이나마 농사가 된 영남 고을에 나누어 보내 스스로 살길을 찾도록 하되, 특히 의지할 곳이 없는 자들은 현재의 그곳에서 죽을 끓여 진구하여 몸을 의지하고 살게 해야 합니다."

하니, 상이 따랐다.

 

현종 11년(경술년) 9월 1일

경기 포천현(抱川縣)에서 벼랑이 무너져 깔려 죽은 자가 3명이었으며, 황해도 배천군(白川郡)에서 어선이 뒤집혀 물에 빠져 죽은 자가 30여 명이었다. 상이 모두 휼전을 베풀도록 명하였다.

 

현종 11년(경술년) 9월 2일

경상도에 도적이 곳곳에서 일어나, 각읍의 세폐(歲幣) 방물(方物)과 군포(軍布)를 싣고 오던 것이 도적에게 겁탈당하기도 하였다. 여염에는 명화적이 날뛰고 도로에는 살인을 하는 변고가 즐비하게 일어났다. 도신이 이 사실을 계문하였다. 상이, 토포사(討捕使)들을 신칙하여 특별히 기찰을 엄하게 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 백성들은 먹고살 길이 없으니 끝내 도적이 되었다. 조정에 올라오는 물품들이 도적에게 빼앗기는 것은 물론이요 애먼 백성들을 겁박하여 재물을 빼앗고 살인하는 일이 끊이지 않으니 인간으로서의 도리는 이미 땅에 떨어진 지 오래였다.

 

 

 

 

현종 11년(경술년) 9월 9일

제주 목사 노정(盧錠)이 치계하였다.

"7월 27일 강풍과 폭우가 일시에 닥쳐, 하룻밤 사이에 큰물이 갑자기 불어나 수구(水口)의 홍성(虹城)과 누각까지 아울러 무너져 바다 속으로 떠내려갔으며, 침수된 민가가 아주 많고 물에 빠져 죽은 자가 6명입니다.

 

밝은 대낮이 컴컴해졌고 성난 파도가 눈처럼 흩날려 소금비가 되어 온 산과 들에 가득하였으며, 사람이 그 기운을 호흡하면 꼭 짠물을 마시는 것 같았습니다. 초목은 소금에 절인 것 같고 귤·유자·소나무·대나무 등이 마르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각종 나무 열매는 거의 다 떨어지고 기장·조·콩 등은 줄기와 잎이 모두 말랐습니다. 농민들이 서로 모여 곳곳에서 울부짖고 있으니, 섬안에 인간이 앞으로 씨가 마르게 되었습니다. 이는 실로 만고에 없었던 참혹한 재변입니다."

 

현종 11년(경술년) 9월 10일

제주 목사 노정이, 세 고을에 유치해 둔 적곡(糴穀)이 8천 석에 불과한데 인민의 숫자는 무려 4만 2천 7백여 명이므로 사람은 많고 곡식은 적어 결코 구제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연해의 곡물을 얻어 한 섬의 다 죽게 된 목숨을 구제할 것을 청하였다. 허적(許積)이 아뢰기를,

 

"제주 흉년의 참혹함은 옛날에도 듣지 못한 일입니다. 목사 노정이 촌가를 출입하며 백성이 먹을 것이 있는지 없는지를 친히 살피고 기근이 더욱 심한 자는 지성으로 구제하고 있습니다만, 관에 있는 곡식이 매우 적어 이렇게 곡식을 옮겨 줄 것을 요청하였으니, 통영(統營)곡(穀)으로서 호남 연해의 각 고을에 있는 것을 보내준다면 거의 구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각사 노비 신공도 완전히 감해 주어 진념하여 구휼하는 뜻을 보여야 합니다."

하니, 상이 모두 허락하였다. 그리하여 쌀 2천 석, 조(租) 3천 석을 배로 실어다 구제하였다.

 

- 제주의 비바람은 끊이지 않는다. 제주의 모든 것은 비바람에 젖었고 마를 새도 없이 몰아닥치는 비바람에 귤, 유자 같은 과일은 물론이고 기장, 조, 콩 등 식량도 남아나지 않았다. 제주의 백성들은 4만 2000명에 달하는데 먹을 것이라곤 8000석 밖에 없었으니 제주 섬에 있는 만백성이 모조리 굶어죽을 위기였다. 조정은 급히 호남 연해의 부족한 곡식이라도 긁어모아 제주로 보내주었다.

 

 

 

 

현종 11년(경술년) 9월 17일

전라도 고산(高山) 등 30여 고을에 지진이 발생하였다. 광주(光州)·강진(康津)·운봉(雲峰)·순창(淳昌) 등 네 고을이 더욱 심하였는데, 집이 흔들려 무너질 듯했고 담장이 무너졌으며 지붕의 기와가 떨어졌다. 이런 참혹한 지진은 근래에 없던 일이었다. 감사가 보고하였다.

 

현종 11년(경술년) 9월 17일

원양도 평해(平海) 등의 고을에 큰 바람이 불고 큰 비가 내려 지붕의 기와가 모두 날아가고 도로가 시내가 되었으며 벼곡식이 모두 물에 떠내려가 손실되었다. 고성(高城) 등의 고을에 우박이 내렸다. 이달 1일에 금강산에 눈이 한 자나 쌓였다.

 

- 전례없는 지진이 전라도 일대를 닥쳤고, 강원도에는 비바람이 불고 우박이 내려 사람이 만든 것은 모조리 망가졌다.

 

 

 

현종 11년(경술년) 9월 25일

함경 감사 홍처후(洪處厚))가 치계하기를,

"본도에 정배된 죄인이 그 가속을 합하면 무려 2천 50여 명이나 되는데 이들을 육진(六鎭)과 삼수(三水)·갑산(甲山)에 나누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전에 없던 이런 큰 흉년을 당하여, 정배된 죄인들이 잇따라 도망하고 보수(保受) 토졸(土卒)들도 죄받을까 두려워 흩어지고 있습니다. 전가도류 죄인(全家徒流罪人)을 모두 함흥(咸興) 이남으로 옮겨서 주객이 다 도망하는 근심을 면하도록 하소서."

하였다. 비국이 평안도의 전례대로 죄명이 조금 가벼운 자를 옮기게 할 것을 청하니, 상이 따랐다.

 

- 삼수갑산이라는 고약한 유배지로 유명한 함경도 북부에는 일전에 유배된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러한 대참변이 끊임없이 반복되자 더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죄인들은 물론이고 이들을 감시하던 병사들 마저 달아나니 조정은 중죄인을 뺀 자들을 그나마 살만한 함흥 이남으로 옮기게 하였다. 

 

 

 

 

현종 11년(경술년) 10월 7일

경상도 합천에서 암탉이 수탉으로 변하였다.

 

- 나라에 각종 재해가 일어나니 괴상한 일도 발생하게 되었다.

 

 

 

 

현종 11년(경술년) 10월 23일

상이 양심합에 나아가 대신 및 비국의 여러 재신들을 인견하였다. 좌상 허적이 아뢰기를,

"대간이 조적을 등급을 나누어 수량을 정할 일로 논계를 하였습니다. 한결같이 그 고을의 재난을 당한 경중을 따라, 아주 심하게 재난을 당한 곳은 3분의 1을 받아들이게 하고, 그 다음은 절반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하니, 상이 윤허하였다.

 

- 많은 고을이 재해를 입어 중앙에 도움을 요청하니 관청에 보관된 쌀을 배부하기로 하였다. 아주 심하게 재난을 당한 곳은 관청에 보관된 쌀의 3분의 1을 배부하기로 하였다. 중앙정부가 가진 쌀은 바닥난 지 오래여서 지방에 보관된 쌀을 백성들에게 나눠준 것이었다.

 

 

 

 

현종 11년(경술년) 10월 29일

좌상 허적, 형판 정지화 등이, 경성 안에 도로에서 얼어죽은 자가 많다고 상께 아뢰니, 상이 하교하였다.

"이 말을 들으니, 마음이 몹시 참담하다. 큰 기근 뒤에 추운 절기를 만났으니, 얼어죽는 자가 틀림없이 많을 것이다. 해조와 해청으로 하여금 한성부에 분부하여 그중 의지할 데가 전혀 없어 얼어 죽게 된 자에게는 유의(襦衣)을 주거나 옷감을 지급하게 하라."

 

- 기아와 질병으로 고통받다 결국 10월 말임에도 추위에 죽는 사람이 급속도로 많아지니 이제는 길가에 시체가 널리게 되었다. 현종은 이를 안타까워하며 이번 추위를 이길 수 없는 자에게 옷감을 지급하도록 하교하였으나, 길가에서 쓰러져 죽는 백성들은 끊이지 않았다.

 

 

 

 

현종 11년(경술년) 11월 17일

영의정 정태화가 37차에 걸쳐 사직소를 올리니, 상이 비로소 체직을 허락하였다.

 

- 현종은 드디어 정태화를 놓아주었다. 중풍으로 심한 병증에 시달리던 정태화는 사직의 소를 37번이나 올린 끝에 관직생활을 끝마치고 돌아가게 된다.

 

 

 

 

현종 11년(경술년) 12월 3일

부제학 이민적(李敏迪)이 상소하여 사직하고 또 아뢰기를,

"아, 온 천하가 한가지로 재난을 당하여 공사간에 모두 재정이 바닥났습니다. 창고를 열어 곡식을 옮기려 해도 또한 베풀 곡식이 없습니다. 단지 씀씀이를 절약하는 한 가지 일만이 혹 조금이라도 구제할 수 있는 길일 뿐입니다. 적은 재물이나마 절약하는 것이 어찌 다소라도 백성을 구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오늘날 씀씀이를 절약하는 일은 마땅히 대혼(大昏)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 의장(儀章)이나 절문(節文)은 비록 큰 흉년을 당했더라도 또한 어찌 조금이라도 줄일 수가 있겠습니까만, 물려내려온 전례로서 지나친 것과 쓸데없는 비용으로서 재물을 손상하는 것이 또한 작지 않습니다. 수백 개의 과반(果盤)과 수백 가지 예폐(禮幣) 등에 대한 항목이 있기까지 한데, 대부분이 궁궐의 고사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성상께서 일체 없애버려서 줄여 간략히 하기를 힘쓰신다면 실로 검소함을 숭상하는 성상의 덕에 빛이 있게 될 것이고 또한 성자(聖子)에게 가르침을 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원근의 굶주린 백성들로 하여금 다 죽어가는 가운데서도 기뻐 감동하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상께서 이미 대혼의 많은 비용을 줄이시고 나면, 무릇 재물을 사용하는 관사에서는 또한 마땅히 차례로 절약할 것이고, 여러 대소 관원들이 어찌 감히 다시 긴요치 않은 작은 비용이라고 하여 작은 재물이나마 허비하겠습니까. ...

 

하였는데, 상소가 들어간 지 수십일 만에 계(啓) 자를 찍어서 내렸다. 그가 체직을 청하였기 때문이다.

 

- 신하들은 계속해서 현종에게 씀씀이를 줄일것을 건의한다. 신하들의 녹봉은 이미 줄였으나, 궁궐에서 쓰는 재물의 비용이 그렇게 줄어든 기색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주상이 모범을 보이면 백성들도 기뻐하고 관료들도 이를 따라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며 부제학 이민적은 사직 이전 마지막 상소를 올렸다.

 

 

 

 

현종 11년(경술년) 12월 11일

전라도 순천(順川)의 민가에서 소가 새끼를 낳았는데 한 몸에 머리가 둘이었다.

 

- 나라에 각종 재해가 일어나니 괴상한 일도 발생하게 되었다.(2)

 

 

 

 

현종 11년(경술년) 12월 11일

당시에 기근을 치른 끝에 전염병까지 극성을 부렸으므로, 사망하였다는 각도의 보고가 거의 없는 날이 없었다.

 

현종 11년(경술년) 12월 19일

경상도 사량진(蛇梁鎭)에 불이 나서 집 2백여 호가 불탔다.

 

현종 11년(경술년) 12월 27일

제주에 세 읍이 또 기근을 보고하니, 조정에서 또 쌀과 벼 도합 5천 석을 이전하여 구제케 하고, 또 각종 씨앗 1천 5백 석을 주었다.

 

- 나라의 변고는 연말까지 끊이지 않는다. 굶어죽고 병들어 죽는 자가 팔도에 끊이지 않았으며 각종 재해는 경술년이 끝날 때 까지 백성들을 괴롭혔다.

 

 

 

 

이로서 경술년은 끝나고 신해년이 다가왔다. 경술년의 대재앙으로 조선팔도가 쑥대밭이 되었으며 많은 백성이 굶고 병들어 죽었다. 사람들 사이의 인의는 사라져 버렸고 서로 살기 위해 몸부림칠 뿐이었으니 실로 참담한 해였다. 백성들은 새로 올 신해년에는 이렇게 참혹한 재해들이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했으나, 하늘은 조선 만백성의 소망을 끝내 외면했다. 현종 12년(신해년), 더 큰 재앙이 조선땅을 덮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4개의 댓글

왕 해먹기 겁나 빸쎘구나

0
2020.09.12

와 너무 끔찍하네.. 빨리 다음편도 써줘

1

저러고도 나라가 안망한게 이상하네

0
2020.09.13

어떻게 버텼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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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7 [역사] 미국인의 시적인 중지 2 K1A1 12 2 일 전
1206 [역사] 역사학자: 드래곤볼은 일본 제국주의사관 만화 16 세기노비추적꾼 13 5 일 전
1205 [역사] 애니메이션 지도로 보는 고려거란전쟁 6 FishAndMaps 6 15 일 전
1204 [역사] [English] 지도로 보는 광개토대왕의 영토 확장 3 FishAndMaps 4 21 일 전
1203 [역사] 지도로 보는 우크라이나 전쟁 2년 동안의 기록 9 FishAndMaps 12 22 일 전
1202 [역사] [2차 고당전쟁] 9. 연개소문 최대의 승첩 (完) 3 bebackin 5 27 일 전
1201 [역사] [2차 고당전쟁] 8. 태산봉선(泰山封禪) 3 bebackin 4 28 일 전
1200 [역사]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 이야기 3 에벰베 6 29 일 전
1199 [역사] [2차 고당전쟁] 7. 선택과 집중 bebackin 4 29 일 전
1198 [역사] [2차 고당전쟁] 6. 고구려의 ‘이일대로’ 2 bebackin 4 2024.02.27
1197 [역사] [2차 고당전쟁] 5. 예고된 변곡점 1 bebackin 3 2024.02.26
1196 [역사] [2차 고당전쟁] 4. 침공군의 진격 1 bebackin 3 2024.02.25
1195 [역사] [2차 고당전쟁] 3. 몽골리아의 각축 1 bebackin 5 2024.02.24
1194 [역사] [2차 고당전쟁] 2. 당나라의 ‘수군혁명’ 4 bebackin 9 2024.02.23
1193 [역사] [2차 고당전쟁] 1. 서설 & 참고문헌 목록 2 bebackin 6 2024.02.23
1192 [역사] 광개토대왕의 정복 전쟁 애니메이션 맵 14 FishAndMaps 5 2024.02.16
1191 [역사] 비트코인 화폐론, 나무위키를 곁들인. 23 불타는밀밭 14 2024.02.13
1190 [역사] 역사) 한산, 망국을 막아낸 전투. 5 2NAUwU 7 2024.01.30
1189 [역사] 해리 터틀도브의 대체역사소설 열전 시리즈 1부 5 식별불해 6 2024.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