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마약왕 영국의 아편전쟁 이야기. 1편 영국과 청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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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기 영국의 공장)

산업혁명의 시대.영국은 방직산업을 중심으로 산업혁명을 주도하며 본격적인 서구영국산업문명 킹왕짱 체제를 구축하는 중이었습니다.흔히 산업혁명을 서구유럽에서의 사건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산업혁명은 그냥 영국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실제 전 세계 역사에서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를 혼자 힘으로 달성한 나라는 오직 영국이 유일하죠.

솔까말 유럽은 그냥 영국이랑 가까워서 위대한 영국느님의 영향을 빠르게 수용한 것 뿐이죠.

영국느님의 위엄을 알 수 있는 대표적 사례가 나폴레옹 시대 당시의 프랑스와의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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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시대 유럽인구 )

 

지금과는 다르게 당시 서유럽 최대 인구빨은 프랑스였습니다.

프랑스 유럽의 곡창지대이자 문명 중심지로 어마어마한 인구를 자랑했던 시절이었고 그 힘을 바탕으로 유럽최강국이 되었죠.

나폴레옹은 당시 영국 전체 정규군 숫자인 20만명을 매년 뽑아 낼수 있다! 라고 공개적으로 호언장담하였습니다

위에 표에 나온 인구를 보면 이 당시 나폴레옹의 프랑스가 어째서 강력했는지 보다 직관적으로 알수 있죠 

또 그런 나폴레옹의 프랑스를 제압한게 오스트리아 제국도, 스페인도, 프로이센도 아닌 뜬금 러시아였는지도 바로 알수 있죠.

18세기 육군강국은 프랑스, 러시아 2강 체제였습니다. 

 

그리고 영국느님이 있었죠 

 

나폴레이옹이 전 유럽을 제패하였을 때 공교롭게도 그 나폴레옹의 프랑스 대육군은 영국산 군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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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육군 병사들의 군복은 요크셔(Yorkshire) 산이며, 술트(Soult) 원수를 포함하여 그의 군단 병사들의 군복 장식품은 버밍엄(Birmingham) 산이다"

 

-1812년 영국 의회-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을 하고 있는 마당에 프랑스 군대의 장교와 사병들이 입는 군복은 전부 영국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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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요래요래 가내수공업으로 만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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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요래 요래 대량생산 했습니다.

 

이 지경이니 나폴레옹이 이른바 "대륙봉쇄령"을 내려서 유럽에서 영국을 고립시켰을 때를 잠깐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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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

 

우리가 학교서 배우는 그 유명한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 간단히 영국의 선박이나 물품은 유럽에 들어 올 수 없고 교역을 금지한다!!

근데요 프랑스 해군은 진작에 영국에 쳐발려서 항구 밖을 나갈 수도 없고 영국 함대가 바다를 장악한 상황에서 대체 누가 누구를 봉쇄했던 것일까요?

 

이 대륙봉쇄령에 대한 당시의 풍자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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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풍족한 식탁과 쫄쫄 굶어 뒤질거 같은 나폴레옹에 대한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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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지금처럼 레이더로 해상을 감시하던 때도 아니고 당연히 밀무역이 성행했죠

위 처럼 대놓고 밀무역 루트가 있었을 정도입니다. 그거로 유럽이 겨우 영국산 상품을 공급받아 살았습니다. 

말로만 프랑스가 인구빨로 영국을 제압한다 패기일 뿐 이미 영국과 경쟁할 산업력, 경제력 격차는 넘사벽이었습니다.

 

물론 영국도 나폴레옹과 유럽 전쟁이 장기화 되며 국가 부채가 무진장 높아지긴 했지만 그 보다 못 한 프랑스는 아예 죽을 맛이었거든요 

때문에 불패의 나폴레옹이 또 다른 인구대국 러시아에서 한번 패전하자 기다렸다는 듯 

바로 프랑스가 유럽에서 다굴 쳐맞고 나폴레옹이 급격히 몰락하게 됩니다. 그게 그냥 그런게 아닙니다

영국이 본격적인 왕언니 대영제국으로 거듭나며 세계 최강국이 되었던 시절의 일입니다

그런 영국이 성장한 원동력은 다름 아닌 인도 덕분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미국의 독립으로 가장 중요한 식민지였던 아메리카 대륙을 상실하게 되자

영국은 이를 대체할 지역으로 아시아를 선택했습니다. 

인도가 분열되어 혼란한 틈을 타 영국은 뛰어난 군사력을 바탕으로 야금 야금 인도 잠식을 진행하였죠 

당시 세계에서 2번째로 부유한 국가였던 인도 전체를 모두 정복해 버리는 기염을 토하게 됩니다  

 

본격적인 왕언니 대영제국 시대를 열었던 시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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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이어 세계 2번째로 부유한 지역이었던 인도의 리즈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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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우파 정치인 : "19세기, 평균적인 유럽국가보다

조금 더 부유한 국가였던 우리 영국은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가 됐습니다. 비결이 뭘까요?"

 

답변 "그것 참 이상하네요,

1700년 세계에서 2번째로 부유한 국가였던 인도는

1945년까지 가장 빈곤한 국가 중 하나가 됐거든요.

 

참 기묘한 우연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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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위터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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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영국의 제2 식민지 제국이라 부릅니다.    

영국은 인도라는 엄청난 국가를 식민지로 삼아 원료공급과 상품시장으로 활용하였고 이을 바탕으로 산업혁명을 이룩했죠

아메리카 대륙 식민지의 경우 자원의 공급지는 적합하지만 인구 수준이 낮아 상품 시장의 가치는 없습니다

반면 인도의 경우는 원료의 공급지인 동시에 상품시장 기능도 무한이 가능한 지역입니다.

인도 한 국가를 식민지로 독식함으로써 영국은 독자적인 블록경제가 가능한 수준에 도달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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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화 재배지를 바탕으로 한 전통 인도 면직물 산업은 완전히 몰락하게 되고, 영국산 면직물이 거꾸로 아시아를 지배하게 됩니다)

 

산업혁명 당시 중요한 발명품을 가만히 보면 모두 식민지를 정복 운영과 긴밀하게 연결 된 것들입니다. 

식민지 정복에 필요한 무기생산 과정에서 제철산업의 체굴, 석탄 운송, 제철용 증기 기관차 등에서 시작해 식민지의 막대한 자원을 인구가 적은 본토 영국, 유럽으로 가져와 인력을 대신해 가공하기 위한 방직산업 기계 등이 그러합니다. 
서구 유럽의 산업혁명과 제국주의 팽창이 동시에 이뤄졌음은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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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경제성장과 쇠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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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들에게 선진적인 서구문명의 가르침을 알려주는 영국)

 

간단히 말해 역사상 대영제국이라는 것은 인도를 먹으면서 시작했고 인도가 독립하며 종을 쳤습니다. 

 

이런 영국이 인도를 넘어 다시 본격적으로 아시아로 동진을 시작하면서 극동의 중국에 이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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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건륭제와 메카트니 백작의 만남)
 
영국은 사랑스럽고 고마운 인도와의 소중한 인연이 그러하였듯 청나라와 인연도 공정한 "자유무역" 을 통해 시작하고자 하였습니다. 
 
1792년 영국왕 조지 3세는 메카트니 백작과 수행원 100명을 청나라로 보내 유럽이 첨단 과학문명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이쁜 자명종 시계, 재밌는 지구본, 신나는 망원경, 아기자기한 피규어 등 위대한 선진문물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하지만 무식하고 미개한 청나라 건륭제는 이들 물품을 고작 장난감 취급하였죠 
그리고 다음과 같은 답변을 했습니다. 
 
---------------------------------​....전략

 

영국 국왕이 이번에 보낸 선물들은 먼 곳에서 보낸 정성을 생각하여 각 아문에서 그냥 받으라는 특명을 내린 바 있다.

사실 천조는 멀리까지 덕망과 위업이 전해져 만국의 왕이 온갖 귀중한 물건을 보내와 없는 것이 없도다.

이는 영국 정사 역시 친히 목격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진귀한 것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았으며, 더군다나 영국의 물건은 필요한 것이 없도다.

영국 국왕이 북경에 영국인을 주재시키고자 요청한 일은 천조 체제에 부합되지 않은 뿐만 아니라 영국에게도 별다른 이득이 없다.

멀리서 온 정을 가륵하게 여겨 특별히 이처럼 상세히 알려주노니 사절단은 편안하게 귀국토록 하라.

영국 국왕이 짐의 뜻을 깨닫고, 더욱 노력하고 정성을 다하여 영원히 공손함을 잃지 않음으로써 나라를 보존하고 태평의 복락을 향유하기를 바라노라.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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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면 그래 너네가 보내준 장난감은 잘 가지고 놀았다.

근데 무역을 하자고 하는데 우리 천조국은 잘 살고 풍족해서 니네 물건이 필요가 없음 빠이 빠이~

 

근데 이게 무슨 허풍이 아니라 레얼 진짜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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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국제관계는 유럽, 다른 지역과 기본 베이스가 전혀 다릅니다.

동아시아 지역의 영토, 인구, 물산, 경제의 90%를 단 1개의 국가가 모두 독점하는 체제죠 

이를 중심으로 주변의 국가들이 공존하는 형태입니다 

특히 중심 대륙에서 자연 지형적인 장애물이 없어 주기적으로 이런 현상이 반복되었습니다 

천하(天下) 또는 중국이라 불리워진 국가입니다. 당시 동아시아의 관념으로 세계의 전부죠 

이미 세계 1위의 경제력이자 세계 인구의 1/3을 가진 나라입니다. 

 

때문에 동아시아 역사에서 국가와 국가의 관계는 서구나 중동지역처럼 평등하고 대등한 관계가 아닙니다

지리구조상 중요 문명지역인 중국대륙의 통합이 쉽기에 주기적으로 완전 비대칭 관계가 형성되는 지역이죠

이 중요 문명지역에 자리잡은 국가를 중심으로 힘이 약할 때에는 주변부 국가의 주기적 약탈이 이뤄지고 

힘이 강력할 때에는 문명을 존중하는 조공체제가 구축이 됩니다. 이런 현상이 반복된 지역이죠 

 

조공무역이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동아시아에서 무역은 무슨 물자의 대등한 교환을 통해 상호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전통적으로 주변 국가는 약탈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중국의 우위를 인정하고 그 댓가로 물자를 나줘주는 의미를 가졌습니다.

북방 유목민들을 상대로 말시장(마시)을 열였던 것이 대표적 사례고 주변 국가들과 조공무역 관계를 맺었던 것이 그러합니다. 

임진왜란이 터졌을 때 명나라에서는 일본이 저러는 이유가 직접 명나라에 조공을 하고 싶어서 저 난리를 치는 것이다 착각했을 정도죠

명나라에서는 일본의 왕이 덴노인지 쇼군인지 정체를 알수 없단 이유로 조공을 금지했거든요

 

다시 돌아 먼 서역에서 왔다는 영국에 대한 당시의 청나라의 반응도 똑같았습니다

마치 북방 유목민들에게 말 무역을 허락해 주었듯 남해 광저우 지역에 한정해 무역을 허락 하였습니다. 

정체를 모를 오랑케들 같은데 난리 치지 말라는 뜻에서 청나라가 지정한 상인을 통해 교역을 허락 하였죠

 

그 상인을 공행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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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행무역이 이뤄진 광저우 항 모습)

 

당시 청나라와 영국 사이에 이뤄진 이 무역체제를 공행무역이라 부릅니다. 
이때 영국이 중국에서 주력으로 수입한 상품이 차와 도자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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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차 이야기를 하면 차는 차나무에서 자란 잎을 말하죠 중국, 한국, 일본에서 재배가 됩니다.

이 식물을 재배해 음용하는 주요 목적은 카페인을 섭취하는 것입니다. 

고대 부터 동아시아의 승려나 유학자들을 중심으로 명상이나 공부를 하며 맑은 정신을 유지하는 용도로 섭취한 음료입니다.  

차 잎을 쩌서 말린 다음 물에 우려내면 우리가 먹는 녹차가 됩니다

그 잎을 쩌서 반쯤 발효시킨 다음 우려내면 그게 우롱차가 되죠  

그 잎을 쩌서 완전히 발효시키면 그게 푸틴이 사랑하는 홍차가 됩니다 

그보다 더 오래 묵혀서 발효 시키면 그게 꾸리꾸리한 냄새가 나는 보이차입니다

음식이 부패하기 쉬운 남방 지역에서는 주로 발효차가 발달하였습니다.

소수민족이 마시던 보이차의 경우 청나라 시절 황실에 진상이 되면서 최상급 고급차로 위상이 변하였죠 

청나라 시기 중국에서는 발효차가 특유의 풍미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유럽으로 수출되는 차는 당연히 발효차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랜 항해를 거쳐야 하기에 장기간 보관이 가능해야 하죠  

이런 차를 서양인들은 차잎의 색깔을 보고 흑차라 불렀고 우려 낸 찻물의 색깔을 보고 홍차라 불렀습니다

기후가 좋아 신선한 차를 바로 우려내 마시는 한국에서는 홍차나 우롱차 보이차를 잘 마시지 않죠 그냥 녹차를 즐깁니다

하지만 덥고 습한 중국의 남방지역에서 차는 보통 우롱차나 보이차를 말하고

먼 지역에서 중국산 차를 수입해 마셔 온 서양에서 차의 의미는 보통 홍차를 말합니다

 

차는 산업혁명이 진행된 영국에서 17세기 왕실과 귀족을 중심으로 중국산 차를 마시는 문화가 자리잡았습니다

이것이 점차 전 국민들 일반에 퍼지며 영국의 중요한 일상 소비제가 되었습니다

근대에 진입하며 일일 노동시간이 늘자 낮에 맑은 정신으로 깨어있기 위해 카페인을 섭취하는 문화가 퍼지기 시작한 것이죠

영국 일반 가정 소득의 5%가 차를 구매하는데 지출되었고 차에 대한 관세는 영국 재정수입의 약 17%를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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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카페인은 차에만 존재하는게 아니죠 커피에도 짙은 농도로 존재를 합니다

유럽 국가들은 모두 초창기 중국산 차에 의존하였습니다 하지만 터키를 통해 커피가 유행하기 시작하자 차를 대체하는 음료로 각광을 받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자신들이 식민지로 삼은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지에 비슷한 효과를 내는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했죠

점차 중국산 차를 대체한 음료로 소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의 경우 자신의 식민지인 인도에서 차나무를 재배하는데 성공한 케이스입니다. 

인도 아삼지방 차를 값싸게 확보하게 되었기에 지금도 커피가 아닌 차를 주로 마시게 되었습니다다만 인도산 차의 경우 중국산과 다르게 쓰고 떫은 맛이 강합니다.이를 희석하기 위해 차에다 우유를 타서 마시기 시작했고 그게 지금의 밀크티 문화를 만들었죠

 

다시 돌아 중국과의 무역으로 오면 이런 중요한 중국산 차를 무역하는 과정에서 영국은 중국산 도자기와 차가 매우 필요 합니다 

근데 반대로 청나라의 경우 건륭제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영국산 물품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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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는 강희제 시절 더이상의 세금을 만들지 않겠다 선언한 뒤 옹정제 시절에 이르러 호적에 따른 인두세도 폐지합니다 

정부에서 토지에만 세금을 부과한다는 정책을 발표하자 이제 호적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 조세부담과 무관하게 된 것이죠 

이 여파로 청나라 후기 부터 호적에 등재된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를 하게 됩니다

1억명이던 청나라 인구는 건륭제 연간에 이르면 인구가 무려 4억명에 육박하게 되죠 

사실상 과거 호구조사에서 이탈되었던 원래의 중국인구와 소수민족들이 파악되어 실제 인구가 집계되기 시작한 것이라 봅니다

청나라 인구 4억명이란 건 당시 유럽 전체의 인구를 2배를 넘는 엄청난 숫자입니다

 

기본적으로 산업혁명이란 건 그 의미가 사람의 노동 인력을 대체하여 증기기관으로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한다 입니다 

그런 생산효율의 우위를 바탕으로 제품의 경쟁력을 얻는 것이죠 근데 이런 기초적인 산업 경제 개념이 중국에서 먹힐 수가 없습니다

청나라는 이미 넘처나는 값싼 노동력으로 산업혁명 따위는 그냥 씹어 먹는 수준의 공장제 수공업 제품을 대량 생산하는 중이었거든요

인력을 갈아서 만든 중국산 싸구려 제품이 넘치는 마당에 영국산 면직물 따위가 경쟁력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영국은 청나라에 팔 물품이 없으니 결국 중국산 차를 전부 은으로 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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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은은 중국의 기준 화폐입니다. 

명나라-청나라 시기를 거치며 세금제도로 지정은제와 일조편법이 이미 정착 되었죠 

청나라에서는 은이 곧 세금을 납부하는 용도였기에 매우 중요한 재화였습니다

때문에 영국에 차에 대한 결재 대금으로 은을 요구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이건 영국이 처음도 아니거든요

 

명나라 시절부터 포르투갈과 스페인 상인들이 마카오에 와서 아메리카에서 채굴한 은을 주고 중국산 도자기와 차를 수입해 갔습니다. 

전 세계 은무역의 최종 종착지는 언제나 중국이었고 아메리카-유럽-중국을 연결하는 은 무역은 역사가 이미 수백년이 된 무역입니다.

명나라 이후 세금을 은자로 걷고 중국에서 은자를 통한 화폐경제가 발달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영국도 별반 다르지 않아 중국으로 가는 영국선박은 물품의 90%가 은괴였고(보물선) 대신 차와 도자기를 수입해 갔죠

모두 청나라 정부가 지정한 상인 공행을 통해서 말이죠

당시 13개의 지정상인 집단이 영국과 무역을 했고 이를 13공행이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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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13공행 중 이화행의 대표 오병감)

 

 

이 당시 세계 최고의 갑부는 청나라 공행의 대표자인 오병감이었습니다

자발적으로 공식 발표한 자산만 2600만 은원으로 청나라 1년 재정의 절반 가량에 달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영국 동인도회사의 최대 주주이자 채권자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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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경제지 포브스지의 원조도 바로 청나라 오병감의 양자로 8년간 모시다 오병감이 준 돈으로 미국에 건너가 철도재벌이 된 경우입니다. 

전부 공행이 영국과의 무역을 독점한 결과 물이고 그로인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죠 

 

흔히 아편전쟁을 두고 이 당시 일어난 이런 영국의 대청 무역적자와 은자의 일방적인 청나라 반입이 전쟁의 이유였다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죠 정확한 인과가 아닙니다. 

사실 영국 정부나 동인도 회사는 은이 청나라로 가던 말던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동인도 회사는 여전히 차를 수입해 유럽에 팔며 막대한 이익을 얻는 중이었죠 

영국 정부는 그런 차에 관세를 부과하며 막대한 세금 수입을 얻는 중이었습니다

또 그 은이라는 것도 어차피 영국에서 채굴한게 아니라 전부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약탈하듯 뺏어 온 것인데 그게 청나라로 간다 한들 뭔 상관일까요

솔직히 말하면 은을 통한 청나라와의 공행무역이 영국에 무슨 큰 피해를 준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큰 이익이었죠 

그냥 다른 식민지에서 약탈에 가까운 착취로 이익을 내던 것과 비교해 청나라와의 무역은 그닥 재미가 없다 딱 그정도 차이 밖에 없습니다

다만 공행무역 체제가 19세기에 이르면 이런 기존 영국의 무역 구조에 작은 변화가 생깁니다

그동안 영국은 인도산 값싼 면화를 재배하고 그 원자재를 영국에서 면직물로 만들어 되팔아 막대한 이윤을 얻어 왔습니다 

 

근데 아메리카 대륙에서 본격적인 면화 재배가 시작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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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부에서 아프리카 흑인을 잡아와 면화를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고 남아메리카 지역 역시 면화를 재배하기 시작하였죠 

그 결과 기존에 솔솔한 재미를 봤던 인도에서 면화를 재배해 팔아 먹는다는 기존의 식민지 경영이 영 재미가 없어진 것입니다

 

안그래도 전쟁을 벌이며 어렵게 쟁취한 인도인데 여기서 최대한 뽑아 먹어야합니다. 그래도 배고프고 부족합니다 이 소중한 인도에서 인도인 굴려가며 만들 막대한 이윤을 주는 생산품이 또 뭐가 있을까요

그때 마침 공교롭게도! 프랑스에게 뺏은 뱅골 지방에 가보니 어라? 면화 대신 이익이 엄청 큰 작물 재배가 가능하네요?
 

그렇게 영국은 면화 대신에 인도에서 새로운 고수익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했으니... 

 

바로 마약인 아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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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 본 글과 관련한 다른 견해나 사실관계 정정은 언제든지 적어 주시면 항상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역사적 사실관계와 관련한 부분은 개인의 주관적 느낌이 아니라 합당한 근거를 함께 써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야 제가 놓친 부분이 있다면 배우고 다른 분들께도 도움이 될 듯 합니다.  

편하게 읽기 쉽게 요약한 글인지라 디테일에서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이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마약왕 영국의 아편전쟁 이야기. 2편 아편무역.

https://www.dogdrip.net/281199558

마약왕 영국의 아편전쟁 이야기. 3편 1차 아편전쟁.

https://www.dogdrip.net/281222519

마약왕 영국의 아편전쟁 이야기. 4편 최종 2차 아편전쟁.

https://www.dogdrip.net/281349078

 

6개의 댓글

2020.09.19

아조시 왜이럭게 똑똑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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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9

차에서 커피라기 보단 커피에서 차로 바뀌었다는게 맞을거임 이미 중세부터 유럽은 이교도들이 먹는 검고 쓴 음료에 대해 알고 있었고 르네상스경이되면 어느정도 익숙해지는 음료로 자리잡음 사실 실론섬도 커피 재배지로서 유명했고 영국의 커피 공급지 역할을 했으나 18세기 커피나무가 흉작 밎 병으로 딘 죽어나가면서 이것의 대체제로 작용했던게 차임 그 밀크티도 커피에 우유를 넣어 먹는 방식을 차에 적용한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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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9

그리고 차쪽 설명을 좀 잘못했는데 글쓴이 말대로 아쌈티는 진하고 떪은 맛이 강해서 블랙퍼스트티 블렌드에 많이 쓰이기긴 하지만 문제는 인도에서 차를 지배하는 곳이 아쌈만 대표적인 곳이 아니라는 거임 닐기리랑 다즐링도 차 산지로 유명한 곳이고 이곳의 차맛은 아쌈이랑 확연히 다름 특히 다즐링은 1년에 세번 수확기가 있는데 그 수확기마다 맛과 향이틀려짐 뭐 따지고 보면 지역별로 차이가 큰게 차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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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9
@년째 숙성주

커피가 유럽에 알려진 것은 십자군 전쟁 시절부터이지만 커피의 산지는 중동, 아프리카로 종교적 정치적 이유로 이 지역의 문화가 대중화 되기는 어려웠으며 터키를 중심으로 지중해 무역을 하는 이탈리아 지역에서 일부 유행했을 뿐이죠. 본격적으로 유럽에 알려진 것은 1683년 빈포위 전 이후로 알려져있습니다. 프랑스 귀족층에서 터키식 커피 음용이 귀족문화로 유행했죠. 중동지역에서 묘목의 반출을 통제하던 것을 극복해 커피가 네덜란드 식민지인 인도네시아에 재배를 시작한 것은 1699년 부터입니다.

언급하신 실론섬의 커피는 중동지역의 커피가 이전 부터 재배가 되었다가 네덜란드가 식민화 하면서 1670년에 플렌테이션 농장화를 시도했으나 실패하였고 이후 영국의 식민지가 되며 본격 재배가 된 것은 1800년 대 이후입니다. 실론섬의 커피 녹병유행은 1877년이죠 본문의 홍차 이야기와는 크게 거리가 있는 내용입니다.

반면 차의 경우 네덜란드가 포르투칼을 밀어내며 동아시아 무역을 장악하기 시작한 1600년 경부터 이미 차무역을 시작하였으며 1650년이 되면 네덜란드에서는 일반 대중도 차를 음용할 정도로 일반화 되었고 이는 영국, 프랑스, 플랑드르 지방에 판매를 시작하며 크게 유행을 했습니다. 이미 중국과의 무역을 통해 차문화를 귀족문화로 수용한 포르투칼의 공주가 영국과 혼인을 하며 1663년 영국에 차문화를 크게 알렸고 영국의 차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러시아 제국 조차도 육로로 차를 수입하며 차는 오데사 항의 중요 무역품이 되었을 정도입니다. 차와 커피가 비슷한 시기 유행을 하였다고 하나 차가가 무슨 커피 보다 늦게 들어와 대체한 개념이 아니며 오히려 유행의 시기나 규모로 보면 차가 커피보다 먼저 유행했습니다. 

본문에 차와 커피의 관계를 언급한 이유는 동시대 유행한 두 기호품의 우열을 논하는게 아니라 그 공급방법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합니다. 차의 경우 다른 지역에서 재배가 안되었음으로 전량 중국에서 수입을 해야하는 귀한 상품이었고 반면 커피는 유럽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확장하면서 개척한 지역에 플렌테이션 농장으로 재배가 가능함으로 비싼 홍차를 대신하여 커피 대체제로 소비한 기호품입니다. 점차 재배지역이 확대되며 1750년 중앙아메리카 지역을 시작으로 19세기까지 꾸준히 재배지역이 확대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홍차에 대한 거부 운동으로 커피 마시기 운동이 있었을 정도입니다. 커피와 홍차가 거의 비슷한 시기 유행하였다고 하지만 그 공급방식과 대중화의 이유는 크게 달랐습니다.

본문에 인도 아삼지방 홍차를 언급한 것은 동아시아를 제외한 지역에서 최초로 차나무 재배에 성공한 지역이 인도 아삼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영국 식민지였죠. 영국이 유럽과 다르게 홍차문화가 더 중요시 되며 자리잡은 큰 이유죠. 댓글로 알려주신 그 맛과 향이 어떤 차이가 있다는 것과 인도차가 지역별로 맛이 다양하다는 것은 알겠지만 역시 본문의 내용과 다소 거리가 있는 내용 같습니다.

본문에서 짤막한 이야기로 차와 커피를 다룬 목적은 영국의 차문화와 유럽의 커피 문화 유행이 식민지에서 공급이 가능한가 여부로 차이가 있었다는 뉘앙스로 서술한 부분입니다. 차는 반드시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상품이었고 이것이 나중에 아편무역으로 변질되기 때문이죠 차와 커피의 관계를 규명하는 목적이 아니라 이후 전개되는 아편무역의 배경을 이야기 하기위해 다룬 주제입니다. 이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또한 본문은 아편전쟁을 설명하기 위해 그 배경이 되는 내용을 서술한 것으로 커피와 차에 대한 전문적인 글쓰기가 아님으로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위에 서술한 커피와 차에 대한 내용도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의 백과사전이나 일부 서적의 내용을 발췌한 것 뿐이지 연구서적을 통해 규명한 것이 아님으로 디테일에서 오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점 역시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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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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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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