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짧았던 대한민국 통치 아래의 평양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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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이모저모(1)>

[평양에서 본사특파원 金基永 18일발] 평양의 새벽은 대동강변에서 빨래 빠는 표모의 그림자에서부터 밝아온다. 지나간 공산폭압정치 하에서 갖은 쓰라린 억압의 추억마저 씻어버리려는 듯 표모의 빨래방망이 소리에 겨울의 긴긴밤 장막은 길어진다. 이처럼 총성이 사라진지 벌써 1개월 전 오늘 19일 국군과 유엔군의 진격으로 평양시는 민국의 품에 돌아왔고 그 동안 1개월간 과거의 적색 적성을 씻고 한 걸음 두 걸음씩 민주도시로 전진하고 있다. 이에 기자의 눈에 비친 수복 1개월만의 평양특별시의 치안·민심·통화·교육 등을 비롯하여 각 부문의 이모저모를 전하는 바이다.

 

▹시민생활

50만 시민의 살림살이를 맡아보고 있는 평양시 당국에서는 눈코 뜰 새 없이 시민생활에 긴급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그 결과로 수도는 지난 10일부터 나오고 있으며 시내 중요 시설에 대한 전기는 오는 20일부터 켜지게 되어 있다. 그리고 식량문제는 아직 해결하지 못하여 1차의 배급조차 없었는데 시 당국자가 말한 바에 의하면 당분간은 각자가 식생활문제를 해결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곳 평양의 쌀값은 소두 한말에 1,800원에서부터 2,000원을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다.

 

특히 신탄문제에 있어서는 방금 사동탄광에서 석탄을 캐내고 있으며, 또 평양시에 재고하여 있던 다량의 저강탄이 있으므로 시민들은 별로 고통을 느끼고 있지 않다. 방금 석탄 1톤에 2,000원의 호가이므로 이로 미루어 보아도 그리 당국자의 머리를 쓸 문제는 아니 되고 있다.

 

▹치안

국군이 이곳 평양에 진주하자 지방 애국청년들은 자치대를 조직하고 약 일주일간 치안을 맡아보고 있었으나 시정이 발족하자 경찰관을 모집하여 현재 평양시에는 2,000명의 경찰이 각 파출소에 배치되고 있다. 그리고 헌병과 CIC의 눈부신 활동으로 밤에는 총성은 별로 들을 수 없을 만큼 치안은 확보되어 있다. 더욱 지난 11월 6일 중공군의 불법 북한 침입이 있었으나 시민의 표정은 아무 변동이 없다.

 

▹통화

평양시내에는 개업한 은행이 아직 하나도 없고 따라서 통화의 원활을 기하지 못하고 있으나 관례법에 의하여 구북조선은행권과 한국은행권이 1대 1의 동등한 가치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곳 시민들은 한국은행권을 더욱 환영하고 있다. 따라서 구조선은행권은 이곳에서도 사용하지 못하며 더욱이 100원 권 ‘48’은 서울지방에서 금지됨과 동시에 사용 불통이었다.

 

▹시장

평양 유일의 창전리 자유시장이 본격적으로 개시하여 장사치들이 우글우글 끓기 시작한 것은 지난 11월 5일부터이다. 이 시장에 나타난 물품은 서울 자유시장에 나타나는 물건이 모두 있다. 그러나 대충 가격으로 본다면 사치품은 서울 물가와 비등하고 식료품이 서울의 절반이다. 그리고 상표로 미루어보아 이곳 물품은 거의 홍콩무역품이 많이 시장에 나타나고 있다.

 

▹상가

和信 앞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뻗은 메인 스트리트 양편에 늘어진 상가가 문을 열기 시작한 것은 11월 10일경부터이다. 상점의 쇼윈도를 들어다보면 별로 신통한 상품은 없고 우선 급조의 음식점 간판이 많이 나붙어 있으며 각 상점은 이제부터 전진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학교

아직 1개월이 되었어도 대·중·소학교를 물론하고 개교한 곳은 하나도 없다. 이렇게 된 이유는 과거 5년간 교직자는 거의 공산당 열성분자였으므로 그들의 대부분이 도피하였고, 또 지금에 와서는 교재가 없어서 학교 문을 열지 못하는 것도 큰 이유의 하나라 한다.

 

▹명소풍경

을밀대, 모란봉은 예와 다름없이 오늘도 머리 위로 지나가는 구름과 비행기를 바라보고 있다. 바로 눈앞에 바라보이는 능라도도 여전하고 능라도 강가에 늘어선 수양버들은 누런 빛을 띠고 그대로 북풍에 흔들리고 있다.

벌써 전선은 청천강을 건너 북상하고 있다. 평양시의 鼓動은 재건과 건설보다도 과거 5년간의 공산주의 적색책를 씻어버리려는데 있는 것 같았다.


경향신문 1950년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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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이모저모(2)>

[평양에서 본사특파원 金基永 19일발] 평양의 새벽은 또 하나 교회당에서부터 울려나오는 종소리에서부터 밝아온다. 이곳의 야간통행금지 시간은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로 되어 있는데 새벽 6시를 알리는 천주교회 3종소리는 舘後里 드높은 언덕에서 전 평양시민에게 자유와 평화의 복음을 전하는 듯 울려오고, 그 여음은 북으로 칠성문 밖 남으로 사동 벌판에까지 퍼져 간다. 이리하여 평양의 새벽은 밝아 오는 것이다.

 

▹신앙생활

비록 공산 암흑정치가 이 지방에서 5년간 세도를 부리고 매서운 눈초리로 감시와 탄압을 가하였다 하지만 카톨릭교를 비롯한 기독교의 근본 신앙심을 말살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일부 배교자의 집단체이었던 기독교연맹이 있었으나 신앙자들의 대부분은 지하에서 무저항 투쟁을 하여 왔던 것이다. 이곳 평양에서 민심을 수습하는 첩경은 역시 진정한 신앙심을 앙양하는데 있는 것이다.

 

▹병원

수복 1개월 동안 민간용 구호소나 치료소는 3개소밖에 문을 열고 있지 않다. 기독병원과 중앙치료소 그리고 서울서부터 파견된 천주교 구호반 등 3자의 활동이 눈물겨운 바 있으며 그 외의 병원시설이 개업한 곳은 보기 힘들었다. 다만 뜸뜸이 약방이 문을 열고 고객을 기다리고 있는 정도이었다.

 

▹교통

평양시내의 전차는 아직 통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전기가 아직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그리고 철도 교통은 평양-신안주, 평양-개천, 평양-진남포 등의 중요 간선이 움직이고 있으며 철로 공부의 철야의 복구공사로 비교적 완화되어가고 있으며 앞으로 2주일이면 완전히 여객수송까지 할 수 있으리라 한다.

 

▹오락

극장이 문을 연 곳은 구 金千代舘 한 곳 뿐이다. 이곳에서 정훈국 평양분실의 후원을 얻어 서울에서 파견된 연극인의 상연이 한번 있었다. 그때 젊은 관람객은 장사진을 치고 입장을 기다리는 성황을 이루었는데 한 관람객이 솔직히 말하는 바에 의하면 그들은 이러한 극이나 영화에 굶주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 대중과 개악 양대 극장은 그대로 남아 있으나 아직 영화상연을 보지 못하고 있다. 오락면에 속한 것인지 그 한계는 불문에 부치고 다방이 서너 군데서 개업하고 있다. 5년간 그대로 계속하여 문을 열고 있었던 이 지방 유일의 세르팡이 지난 12일에 개업을 시작하였고 이를 전후하여 서울 등등의 다방이 문을 열었다. 茶값은 서울과 대등하다. 커피 한잔에 300원

 

▹유흥

정식으로 허가를 얻은 고등요리업 바·카페 등의 유흥시설은 하나도 없다. 다만 무허가 고등요리집이 평양의 색다른 거리인 경제리 일대에 만거하고 있는데 밤이면 가끔 야차처럼 나타나는 유두분면의 종류가 있는 정도이다. 화대는 1인당 5,000원이 공통가격인 모양이었다.

 

▹민심

한마디로 평양시민의 민심은 酸味가 많았다. 과거 5년간 지령과 명령으로 마치 기계처럼 움직였던 타성으로 인하여 자발적이라는 면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거리에 범람하는 젊은이들의 발걸음에서 아직 명랑을 찾아 볼 수 없으며 휘파람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기자는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웃음을 주며 마음을 어루만져 민족의 피와 피가 서로 흐르게 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을 솔직히 느꼈다.


경향신문 1950년 11월 20일

 

 

 

http://db.history.go.kr/item/level.do?sort=levelId&dir=ASC&start=1&limit=20&page=1&pre_page=1&setId=-1&totalCount=0&prevPage=0&prevLimit=&itemId=dh&types=&synonym=off&chinessChar=on&brokerPagingInfo=&levelId=dh_019_1950_11_19_0080&position=-1

 

안타깝게도 평양은 짧디 짧았던 2달간의 대한민국 통치기가 끝난 이후 다시 북한의 손에 넘어갔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음

 

8개의 댓글

2021.06.03

ㅠㅠ

0
2021.06.03

경향신문 저때도 있었구나;;

0
2021.06.03
@lllIIlllIII

저땐 천주교 계열 신문이었고 쿠데타 직후에는 주인 바뀌면서 지금 조중동 싸닥션 날리는 신문이었어 덕분에 화형당한 전력도 있지

지금 논조로 바뀐건 1998년 이후부터일거

3

저때 싹 통일시키고 김일성 참수시켰으면 더 발전했을텐데 싯팔

0
2021.06.04

이 기사에 당시 시대상에 대한 몇 개의 힌트가 있네... 뭔가 쓸데없이 쓰는 것 같지만 적으면 재밌을 것 같아서 씀.

 

(1) 사동 탄광은 구한 말 개발되었다가 일본이 낼름한 곳인데, 벌이가 좋았다고 함. 1910년대까진 사동 탄광이 한국의 석탄산업에서 주도적인 위치에 있었고 1920년대에도 이곳에서 채굴된 무연탄이 한반도 무연탄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했거든. 일본은 평양탄을 일본 해군의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사동 탄광의 평양광업소 소장 자리에 일본 해군 대좌를 앉혀 운영을 맡겼음. 그렇기에 6.25전쟁기 평양이 다른 건 몰라도 석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던 듯 함.

 

(2) 전황에 대해선 짧게 언급되었는데 사실 기사에서 언급한 11월 6일은 중공군 1차 공세가 돌연 종결된 날임. 중공군은 국군 6, 8사단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고 1달 뒤 벌어진 중공군 2차 공세에서 다시 그들을 집중 공격하여 유엔군과 국군에게 최악의 패배를 안겨주게 됨. 물론 평양에서 전선의 상황을 알기란 쉽지 않고, 또 알아도 검열을 받았겠다만 기사가 발표된 11월 중순까지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중공군의 전투 능력과 의지를 얕잡아보고 있었음.

 

(3) 당시 한국은 전쟁 중에 구조선은행권을 한국은행권으로 대체하여 사용하고 있었고, 북한은 북조선은행권을 사용하고 있었음. 짐짓 전쟁 중 혼란상에 통화교환까지 하여 혼란을 부추기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한국 정부가 긴급통화교환조치를 해야만 하던 이유가 있었음. 왜냐면 서울 함락 때 지폐 인쇄 설비랑 105억 원 어치 미발행은행권을 북한에게 뺏겼거든. 북한은 한국 경제를 교란하기 위해 구조선은행권을 불법발행했고, 한국 정부는 화폐 가치가 박살이 나기 전에 급하게 새 도안의 한국은행권을 도입하게 됨. 기사에서 사용이 금지됐다고 하는 구조선은행권 100원권은 북한이 제일 많이 불법발행한 지폐였음.

5
2021.06.04
@핑그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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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4
@핑그르르

(4) 철로가 부분 단선되어 있고 철로 복구가 진행 중이라고 되어있는데 이는 그간 유엔 공군이 북한 지역의 철도 시설을 철저히 박살냈기 때문. 6.25전쟁 초부터 유엔군은 북한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보급선인 철로에도 폭격을 퍼부었음. 덕분에 북한군의 보급은 악화되어 갔다만... 정작 인천상륙작전 이후 유엔군이 반격하고 북진하기 시작하자 그들 역시 철로로 보급을 할 수 없었음. 기사에선 2주 뒤면 여객수송도 가능할 것이라고 하고 있으나 그 사이 유엔군은 연료도 탄약도 부족한 상태로 진격해야 됐고, 그만큼 느려진 진격 속도로 인해 작전을 수행하는 데 차질을 빚었음. 심지어 기사가 발행된 시기면 유엔군이 종전공세를 기획하고 있었을 때인데 이때도 유엔군은 여전히 보급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음. 북진의 실패라고 한다면 여러가지가 있지만, 교통의 문제도 있음.

3
2021.06.12

김성칠이라고 역사학자가 쓴 625일기가 있는데 거기보면 남한정부기관원이 평양으로 들어가서 하도 패악질을 저지르고 강간을 많이해서 다 치를 떨고있다고 한다라는 내용이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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