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독일은 반성하는가?

 

 

 

 

일본이 아직도 전쟁범죄를 반성하지 않고 있음을 비난할 때, 우리는 흔히 그 반면사례로 독일의 예시를 듭니다. 일본인들과 달리 독일인들은 과거의 전쟁범죄를 철저히 반성하고 있으며, 교육을 통해 그 과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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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말 그러한가라고 묻는다면, 저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고 싶군요.

 

 

국가사회주의 시대(1933~1939년)와 제 2차 세계대전(1939~1945년)을 직접 겪었거나 그 속에서 자라온 세대는 1960~1970년대까지 독일(서독) 사회의 중심축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개전(1939년) 당시 20세의 나이로 참전했다고 가정해봅시다. 종전(1945년) 당시에 그는 26세가 되었을 것이며, '60~'70년대에는 41~51세였을 겁니다. 그 나이대면 여전히 사회의 주류로서 담론을 주도하는 세대입니다. 즉 '60~'70년대 독일 사회를 주도해 나가던 사람들은 폴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 유고슬라비아, 그리스, 북아프리카,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카프카스를 정복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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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의 파란 부분이 모두 독일의 영토이거나 보호국이거나 동맹국이었다. 이 대제국을 만들고 확장하고 패망시켰던 바로 그 사람들이 전후 독일 사회를 이끌었다.>

 

 

그렇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내고 말하지는 못해도, 이들은 강대했던 독일 제국 -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건설했던 바로 그 제국에 대한 향수를 저마다 지니고 있었습니다. 나치당의 계승을 표방한 정당들이 유무형의 지원을 받아가며 서독 사회에서 계속해서 살아남은 것도 그 덕분이죠. 오히려 대놓고 나치와 히틀러를 비난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독일 사회에서 전혀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Nestbeschmutzer'라는 멸칭으로 불렸는데, 직역하자면 '둥지를 더럽히는 자'라는 뜻이고 쉽게 말하자면 '내부총질 하는 놈' 정도의 의미를 지닙니다. 심지어 'Volksschädling'라는 멸칭도 종종 사용되었는데, 이는 '민족의 기생충'을 뜻하죠. 게다가 이러한 단어가 매우 널리 사용되었다는 점에 그 심각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단어가 자주 등장하게 된 것은 그것이 공감을 얻었기 때문일 겁니다. 이는 곧 독일인들이 나치와 히틀러를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해 정말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의 방증이겠지요.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가 바로 그렇게 곤욕을 치른 사람의 하나입니다. 빌리 브란트는 반나치 인사로서 나치가 집권했을 때 독일을 탈출했고, 제 2차 세계대전기에는 노르웨이에 망명한 상태였습니다. 브란트 반대파는 그가 노르웨이에 있을 적에 연합군 소속으로 독일군에 맞서 싸웠다는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즉 민족을 배신했던 것이 아니냐는 공격이었죠. 브란트는 평생 이 소문을 반박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나치에 맞서 싸웠다는 것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열심히 반박하며 그렇지 않았다고 부정해야 할 만한 부끄러운 이야기였던 겁니다. 또한 그가 총리 재임시 폴란드를 방문하여 유대인 위령비 앞에 무릎꿇은 일은 우리에게는 '업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오히려 그 당시의 독일인들은 이 또한 배신이라고 여겼습니다. 동프로이센의 수복을 주장하던 사람들부터가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 심각하게 빌리 브란트를 비난하고 나섰는데, 여기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았던지 드디어는 내각불신임 결의(= 탄핵 투표)가 진행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원래 브란트파였던 의원마저 그에게 실망하고 불신임에 투표하는가 하면 브란트파에서 몰래 뇌물을 돌리기도 했고, 심지어는 동독 비밀요원들이 공작을 벌이기도 하는 등 여러모로 혼란한 상황이었습니다. 단 2표 차이로 브란트는 불신임만은 면했으나 워낙에 아수라장이었기에 스스로 내각을 해산하고 다시금 연방의회 선거를 치러야 할 지경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도 따져보자면 결국은 독일인들이 여전히 국가사회주의 시대와 제 2차 세계대전을 반성하기는 커녕 그리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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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브란트가 무릎을 꿇으면서 - 즉 오더-나이세강 선을 인정하면서 - 독일이 영원히 잃게 된 영토들. 지도의 초록색 부분과 노란색 부분이다.>

 

 

그랬던 독일 사회 분위기도 1968년의 68혁명을 기점으로 크게 변화하였습니다. 중장년층이 사회 담론을 주도하던 위치에서 끌어내려지고, 제 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에 태어난 신세대가 사회 전반에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이들 신세대는 국가사회주의 시대와 제 2차 세계대전을 실제로 겪은 것도 아니었고 어른들이 말하는 '그때의 영광'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태어나보니 조국이 잿더미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이 잿더미만을 남겨준 나치와 히틀러에게 보다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들 신세대로부터 독일의 역사인식은 조금씩 바뀌게 되었습니다...라는 것이 우리의 흔한 인식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신세대가 등장하여 이전 세대와는 다른 태도를 취하게 된 것은 맞지요. 그러나 그들 신세대는 나치와 히틀러에 대해 별로 그리움을 느끼지 못한 동시에 나치와 히틀러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레 다루어야 할 필요성 역시 느끼지 못했습니다. 나치와 히틀러를 좋아할 이유도 없지만 굳이 싫어할 이유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세대는 이전 세대가 머릿속으로는 하면서도 감히 입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던 말들을 당당히 내어놓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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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혁명. 제 1차 인도차이나 전쟁(1946~1954년), 알제리 독립전쟁(1954~1962년), 베트남 전쟁(1955~1975년) 등의 사회적 배경 속에 벌어진 운동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이며 약간은 문란하게까지 느껴지는 서구의 분위기는 사실 이때 형성되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특히 인류 최악이자 최대의 전쟁이었던 독소전쟁(1941~1945년)에 대한 해석을 두고 신세대에 의해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졌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을 침공했던 것은 소련이 먼저 독일을 공격하려는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며, 공산주의를 막기 위한 선제 공격은 올바른 선택이었다'라는 것이 그들의 주된 논리입니다. 에른스트 토피취, 귄터 길레쎈, 에른스트 놀테, 요아힘 호프만 등의 역사학자(이들이 어중이 떠중이인 것도 아닙니다. 에른스트 토피취는 하이델베르크 대학 교수, 귄터 길레쎈은 구텐베르크 대학 교수, 에른스트 놀테는 베를린 대학 교수, 요아힘 호프만은 독일연방군 군사사연구소의 과학감독이었습니다. 다들 그야말로 내로라하는 명문대학의 교수들이었던 겁니다.)들이 이러한 학설을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심지어 독일연방군(서독군)은 군 차원에서 발간하는 군사지에 이 학설을 기재함으로써 이를 간접적으로 지지하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이 시도를 맹렬히 비난한 사람도 있었으니, 바로 위르겐 하버마스입니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역사학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비난은 피상적이거나 도덕적인 내용만에 국한되었을 뿐 엄청난 공격력을 지니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하버마스 같은 이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신세대의 수정주의는 더 깊은 곳까지, 더 먼 곳까지 퍼져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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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6월 22일 독소전쟁의 개전. 앞으로 5년 동안 양국은 인류 최대이자 최악의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신세대 수정주의자들은 이것이 '독일의 침략'이 아니라 '소련에 맞선 대응'일 뿐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독일 사회의 우경화 문제는 다만 하루이틀의 일만은 아닌 것입니다. 이미 서독부터 통일 독일로 이어지는 20세기 후반기 동안 독일인들은 나치와 히틀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시도를 꾸준히 해왔고, 오늘날 인터넷과 미디어 매체의 발달로 더 자주 수면 위에 드러나게 되었을 뿐입니다. 물론 모든 독일인이 나치와 히틀러를 좋아하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모든 독일인이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 역시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ㅡㅡㅡㅡㅡㅡ

 

 

 

 

* 전후 나치당(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을 계승하며 탄생한 정당들.

 

 

 

 

<서독>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NSDAP) ► 독일우파당(DRP) + 독일사회주의제국당(SRPD) ► 독일제국당(DRP) ► 독일국가민주당(NPD), 현재

 

 

 

 

<동독>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NSDAP) ► 독일국가민주당(NPDP)

 

 

 

 

<설명>

 

1. 독일우파당(DRP) : 1946년 설립. 나치 출신 및 보수인사들이 중심. 우익 성향. 1950년 해산 후 독일제국당(DRP)에 흡수됨.

 

2. 독일사회주의제국당(SRPD) : 1949년 설립. 나치당 간부들과 전 나치당원들이 중심. 국가사회주의 성향. 나치 부활을 외치며 인기몰이를 하다 1952년 강제 해산 후 독일제국당에 흡수됨.

 

3. 독일제국당(DRP) : 1950년 설립. 독일우파당 출신들이 중심. 국가사회주의 성향. 독일사회주의제국당 출신 영입 후 나치 색채가 짙어짐. 1965년 해산 후 독일국가민주당(NPD)에 흡수됨.

 

4. 독일국가민주당(NPD) : 1964년 설립 후 지금까지 존속 중. 독일제국당 출신들이 중심. 나치 시절 성장한 기성세대의 지지를 중심으로 성장했으나 68혁명 후 나치 청산이 본격화되고 나치를 겪지 않은 세대가 늘면서 인기가 하락. 통일 후 동독 인구의 유입,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외국인 노동자가 늘자 국가사회주의보다는 인종주의를 강조하는 성향이 크게 강해짐.

 

5. 독일국가민주당(NPDP) : 1948년 설립. 나치당 간부 출신들이 중심이 되어 전 나치당원들과 친나치 인사들을 규합해 만듦. 동독 지역에도 워낙 나치당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아 소련 당국이 적당히 타협을 본 결과로 탄생한 정당. 규모는 컸지만 동독 공산정권 치하에서 구색정당 노릇만 하다 동독 붕괴후 자유민주당(FDP)에 흡수됨. 국가사회주의 성향.

16개의 댓글

2020.05.31

재밌당.

0

헌법에서 방어적 민주주의 공부할때 봤던 독일 정당들을 여기서 다시 보네 ㅋㅋㅋ

 

독일 법학의 발전은 진짜 끊임없이 투쟁의 역사였구나

0
2020.05.31

식민지에는 사과 안했지 ㅋㅋ 더러운 유럽새끼들 종특임

0

자기에게 도움될 강자에게만 사과함

약자는 개좆무시

0
2020.05.31

그, 동독 공산주의자가 통일할떄 가장 역겨웠던게 나찌새끼들 설치고 다니는거였다는데

0
2020.05.31
@년째 숙성주

천안문을 보고 배워야 된다던 동독 공산당이 그런 말을 하긴 좀..

2
2020.05.31
@Volksgemeinschaft

그때면 에릭 호네커 시절일텐데 이미 동독 공산당 맛간 시점 아니었나?

0
2020.05.31

일본도 특별히 독일보다 더 나쁜 새끼라기 보다는 그런 변화를 유도 할 압력이 부족했다고 봐야지.

0
2020.05.31

밀덕이라 예전에 독뽕 잔뜩 차있었는데 독일 유학다녀온 선배 얘기 듣고 싹 빠짐 군축으로 병신되기도 했고

0
2020.05.31

반성은 독일하는가?

0
2020.05.31

일본과 비교하기 위해서 독일에 대한 환상이 한국에 많이 퍼져있지..

2
2020.06.01

내가 독일사람이여도 유럽의 절반을먹었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지지하지 ㅋㅋ 그게 본능임

1

먹고살기위한 반성 마케팅

0

하지만 교과서에서 프랑스는 언제나 나치 청산의 모범국가

독일은 반성할줄 아는 누구와는 다른 민족으로 나오지. ㅋㅋ

0
2020.06.01

반성하는 척한거지 ㅋㅋ 자원도 없는 나라가 뭐로 먹고 살아 수출로 먹고 살아야지

0
2020.06.0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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