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역사를 공부하고 싶어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서양편 1

이 글은 5년 전 읽판에 작성했던 책 추천 글을 다시 끌어올린 것임.

https://www.dogdrip.net/109182294

 

 

물론 과거 내용을 그대로 복붙한 것은 아니고 두 가지 측면에서 약간의 수정, 보강을 거쳤다. 우선 새로 나온 신간들 중 재밌게 읽었던 책들을 꼽아보았다. 2016년 역사 추천 글을 작성했을 때와 비교해보면 2020년 한국의 출판계는 놀랄만큼 암울해졌다. 그럼에도 몇몇 출판사들은 돈 값 못하는 인문학 서적들을 꾸준히 번역, 출간했고 그것을 우선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다음으로는 신간이 아니더라도 지난 5년 동안 재미있게 읽었고 또 시의적절하다고 여기는 책들을 추가하려고 노력했다. 논문을 매개로 벌어지는 첨예한 논쟁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학계 또한 단행본을 통해 일반대중들에게 학계의 연구 성과나 최신 논쟁을 소개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앞으로 소개할 몇몇 책들은 그러한 노력들 중 일부다.

 

끝으로 이 글은 역사를 1도 모르는 문외한을 겨냥한 글도, 그렇다고 현재 해당 분야를 전공하고 있는 (예비)연구자를 겨냥한 글도 아니다. 내가 설정한 독자는 그 중간에 존재하는 비전공자 독서 애호가 혹은 학부 2,3학년 수준의 독자를 위해 작성된 것이다.  또한 논문 찾아 보긴 싫지만 그렇다고 해서 설민석 선생님의 책같은 말랑말랑한 대중서나 환빠, 덕사마류의 어처구니 없는 불쏘시개들을 읽기는 싫은 사람들을 위해 작성된 것이다. 심지어 이 추천목록은 작성자 본인의 취향이 있기에 분야가 편중되어 있고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그런 경우에는 댓글로 자신이 생각하는 추천 저서를 작성해주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거라 생각함) 그러니 내가 추천하는건 일종의 키워드 내지 개인의 독서 이력쯤으로 생각하고 정확한 추천을 받고 싶으면 전공자 지인에게 물어보거나 교수님께 메일을 보내보자

 

 

 

 

들어가기 - 이른바 2대 개론서?

 

서양사총론.jpg서양사강좌.jpg서양사강의.jpg새로운 서양 문명의 역사.jpg

차하순, <새로 쓴 서양사총론>/ 박윤덕 외, <서양사강좌>/ 배영수 외, <서양사강의> / 로버트 스테이시 외 <서양 문명의 역사>

 

2000년대, 넓게는 10년대 초반까지 사학과 학생들에게 개론서로 자주 읽히던 책들이 있었다. 서강대학교 차하순 선생님이 내신 <새로 쓴 서양사총론>과 서울대학교 민석홍 선생님이 내신 <서양사개론>이 그것이다. 2016년 역사 추천 글을 작성했을 시점에서도 꽤나 오래된 책들이었기에 추천하기 꺼려지는 책이었지만 워낙 잘 쓰인 책이라 추천 목록에 넣어놨었다. 다행히 이후 서양사연구의 양적, 질적 팽창이 일어나 여러 신진연구자들이 나타났고 그것의 결과가 여러 중견연구자들이 펴낸 <서양사강좌>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출간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차례의 개정도 없었다. 그럼에도 기독교 초기 교리논쟁과 전파과정에 대한 최신 학설들, 중세사에 있어 14세기 위기론, 로페즈 등으로 대표되는 르네상스의 경제적 설명에 대한 제고찰, 근대사에 있어 군사혁명 개념과 영국혁명에 대한 부정적 시각 등 국내 개설서에서 접하기 힘든 논의들을 가볍게 접할 수 있는 몇 없는 책이다. 서양사를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학부생 1,2학년, 교양 수준의 지식을 습득하고 싶은 역사 애호가들에게 이만한 책은 없고 또 한동안 나오지 않을것이라는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 외에도 한울아카데미에서 배영수 선생님이 여러 연구자들과 엮은 <서양사강의>도 자주 거론되는데 분명 좋은 책이지만 개론서로 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고 생각함. 기본적으로 꼭지 마다 연구자들의 관심 분야에 대한 상세한 서술이 담겨져 있어 세세한 역사적 사실을 알기는 좋지만 역으로 말해 전반적인 내용 이해가 없으면 책을 독파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임. 그리고 여기에 개인적 감상을 보태면 개개의 글은 좋았지만 그것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느낌이 없어서 논문집 같다는 느낌이 들었음. 어느 정도 역사 지식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추천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른 책을 먼저 읽어보길 권함. 국내저자들의 책 외에도 영미권에서 쓴 서양사개론서도 추천 목록에 올려둔다. <서양 문명의 역사>는 첫 출간 당시에도 꽤나 오래된 책(1984년에 출간된 10판을 번역)이었고 무엇보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개론서라는 이름을 가려버릴 정도로 번역이 괴랄했다. 하지만 20143세대 저자들이 쓴 16(2008)의 번역본은 이런 문제를 꽤 많이 개선했다고 느껴졌다. 그러니 해외 저자들의 개론서를 보고 싶은 사람은 이쪽을 추천. 참고로 이건 <서양사 강좌>와 다르게 두 권짜리니 감안해서 볼 것.

 

 

고대

 

서양고대문명의역사.jpg서양고대사강의.jpg

루카 드 블로와 외, <서양 고대문명의 역사> / 김진경 외, <서양고대사강의>

 

서양고대는 수업시간에 배운거 말고는 독서이력이 일천해서 소개해줄건 딱히 없음. 그러니 아래에 나오는 책들은 내가 읽은 것도 있지만 사학과에서 처음으로 서양 고대사를 배웠을 때 실라버스의 맨 윗줄에 있었던 책들이거나 주변으로부터 추천 받은 책들임. 사학과에서 서양고대사를 소개할 때 자주 언급되는 책으로 루카 드 블로와의 <서양 고대문명의 역사>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후술할 책이 나오기 전까지 서양고대사에 입문하기 위한 국내서로 유일무이한 위치를 가지고 있었다. 현재는 절판되어 복사집에서 불법적으로 제본되고 있는 것 아니면 구하기 쉽진 않겠지만 만약 학교 도서관에 있다면 이 책을 먼저 볼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만약 이 책을 구했는데 막상 다 보기에는 부담스럽다면 313계속되는 팽창과 새로운 사회적 긴장(BC 264~133)”새로운 사회적 긴장파트와 심성의 변화파트는 꼭 읽어 볼 것. 영토 팽창으로 인한 풍요와 그 이후 다가올 사회적 모순을 아주 짧은 분량 안에 압축적으로 담아낸 좋은 글이라고 생각함.

 

다음으로 추천할 책은 국내 저자들의 책으로 김진경 선생님 외에 여러 저자들이 쓴 <서양고대사강의>, 전남대학교 최혜영 선생님의 <그리스.로마의 역사와 문화>가 있다. 김진경 선생님은 한국에서도 매우 드문 그리스사 전공자이시고 그 중에서도 그리스 민주정에 대한 연구로는 국내에서 최고 권위자로 알고 있음. 최혜영 선생님의 경우에도 그리스사를 전공하셨는데 김진경 선생님이 정치사쪽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최혜영 선생님은 문화사쪽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으로 안다. 여담으로 하나 더 추가하면 2007-2008년 한국서양사학계에서 내놓은 독자적 성과 중 하나인 고대 영웅숭배에 관한 연구에 있어 주축을 이뤘던 연구자이기도 했음. 따라서 추천한 두 저서 모두 검증된 연구자들의 훌륭한 책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서양고대사강의>를 추천함.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국내 저서들 중에 이 책만큼 고대사를 상세히 다룬 개론서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내용이 방대하고 또 각 저자들이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라 이후 공부를 하는데도 좋은 나침반이 되어준다.

 

 

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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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마틴, 고대 그리스사/ 김봉철, 그리스 신화의 변천사-시대와 신화/ 최혜영,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

 

서양고대사 수업시간에 그리스 파트를 들어갈 때 심심찮게 등장하는 책이 있었는데 토마스 마틴의 고대 그리스사가 바로 그것이다. 본디 2003년에 1판을 번역 출간 했었고 이후 학부 교재로 간혹 보여 리스트에만 넣어두었던 책인데 최근에 다시 검색해보니 2015년에 동명의 저자가 쓴 고대 로마사와 함께 2(2013)이 새로 번역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됨. 1판 기준 아주 딱딱한 교과서 같은 책이고 내용이 그렇게 깊이 있지는 않지만 한국에서 고대 그리스사만을 다룬 전문적인 개론서가 사실상 없는 실정이기에 이 책을 통해서 시작하는 것이 거의 강제된다고 생각함.

 

다음으로 이야기할 책들은 국내의 연구자들이 쓴 책이다. 국내 서양고대사 연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경향 중 하나는 문화사 분야에 강점을 보인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하면 으레 떠올리게 되는 전쟁사나 정치사 쪽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10년의 동향을 일별했을 때 신화, 종교, 예술, 심성 등을 역사학의 관점에서 다루는 논문이 많았고 그것은 고스란히 연구자들이 내놓은 단행본에서도 드러난다. 이렇듯 문화사에 치중된 경향이 정치, 사회사에 몰두했던 선배연구자들에 대한 반작용인건지 아니면 역사학의 흐름에서 문화사가 강세를 보이는 최근의 경향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음. 하지만 한글로 된 책만 주로 읽는 입장에서 자연스레 이쪽 역사에 대한 책 추천도 문화사에 어느 정도 치중되어 있다는 점은 양해해주길 바람.

 

그리스 신화의 변천사-시대와 신화를 쓴 김봉철 선생님은 헤로도토스에 관한 연구를 주로하셨다. 하지만 이 분의 작업이 단순히 헤로도토스 저술에 대한 연구, 번역 작업에 한정된 것은 아님. 이후의 연구 방향은 다소 엉뚱하게도 그리스 신화에 대한 연구로 나아가는데 이를 통해 그의 연구 방향이 단순히 그리스 역사서에 대한 문헌학적인 탐구를 넘어 고대 그리스인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로 나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저자가 헤로도토스를 연구한건 기록으로 남은 역사 이전 시대의 신화들을 탐구하고 이를 통해서 그리스 인들이 본래 가지고 있었던 심성의 변천과정을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그런 점에서 본 저서는 사실상 선생님이 가진 문제 의식의 핵심을 관통하는 책임. 800페이지에 근접한 책 분량이 상당히 압박이고 또 그리스 신화에 대한 기초 지식을 요하며 나열식에 가까운 서술이 많이 보여 가끔 읽으면서 졸립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신화라는 것이 얼마나 변화무쌍한 서사인지 알 수 있다는 점에서충분히 가치 있는 책임. 또 책에서 개괄적으로만 다뤘던 각 시대별 신화의 수용, 변형 양상이 후속 연구에서 심화, 보충 서술되어 나오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책이기도 했음.

 

최혜영 선생님의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는 일종의 문학사 연구라고도 볼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책에서 다루고 있는 분야는 흔히 사회사라고 통칭되는, 예술작품의 역사적 맥락을 분석한 책임. 문학사에 대해서는 1도 모르기 때문에 국내 연구가 얼마나 활성화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리스 비극에 대해 내가 이해할만한 정도로 쉽고 자세하게 서술된 책은 이것밖에 없었음. 그렇기에 이 책은 단순히 전공자들을 위한 책이 아니라는 점에서도 추천해줄만한 책임.

 

 

로마

 

하이켈하임로마사.jpg로마사.jpg아우구스투스연구.jpg

프리츠 하이켈하임 외 하이켈하임 로마사/ 허승일, 로마사 - 공화국의 시민과 민생정치/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 아우구스투스 연구 - 로마제국 초대 황제, 그의 시대와 업적

 

시오노 나나미라는 막강한 빌런이 한국을 강타한 이래 로마사에 대한 저서는 꽤나 많이 출간되었고 그것은 일반인들을 위한 개론서의 출간, 번역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걔 중에는 날림 번역과 부실한 내용으로 지탄을 받는 책들도 있었고 그럴수록 대중의 로마사에 대한 오해는 쌓여만 갔다. 그러한 상황에서 김덕수 선생님이 번역한 하이켈하임 로마사(1999년 번역, 2017년 개정 번역)는 저열한 읽을거리에 지쳐가던 나 같은 사람에게 가뭄의 단비와 같은 책이었다. 해외에서는 꾸준히 판본을 넘겨가며(2013년 제6) 팔리고 있는 교과서 같은 책이고 한국에서도 로마사에 대한 수업을 들을 때 심심치 않게 올라오던 책이다. 1000페이지가 넘어가는 압도적 분량이 읽기에 부담이 되고 워낙 나온지 오래된 책이라(초판은 80년대에 출간) 최신의 학계 연구 성과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방대한 로마사의 내용을 이만큼 요약해주는 책은 국내에 없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임. 좀 더 최신의 내용을 알고 싶으면 원서를 뒤지거나 다른 책(메리 비어드의 왜 로마는 위대해졌는가같은 책)을 보강해서 읽기를 권함.

 

한편 해외 저자들 이외에도 국내 저자들 중에서도 90년대에 입문 성격의 책을 쓰려는 연구자들이 등장했는데 허승일 선생님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선생님이 쓴 로마사 - 공화국의 시민과 민생정치(2019)1995년 출간된 증보 로마 공화정 연구을 저본으로 하며 로마 공화국 시기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다루는 책이다. 오래전에 나온 책을 근간으로 하고 있음에도 최신 연구성과를 적용해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려는 노력이 보여 좋게 읽혔던 책이었다. 왕국에서 공화국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신분투쟁의 의의, 고고학의 발굴성과를 활용해 그라쿠스의 개혁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것은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역사 애호가들이라면 꽤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함. 끝으로 허승일 선생님의 책이 공화국 시기의 전반적인 내용에 대한 통사적인 책이라면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에서 펴낸 아우구스투스 연구는 로마 제국 초대 황제를 중심으로 그의 시기에 있었던 이모저모를 학문적으로 살펴보는 책이다. 단일 인물에 대해 각 전공자들의 심도 깊은 내용을 알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좋았지만 로마사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논지를 따라가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로마사에서 자주 읽히는 시기가 이른바 ‘3세기의 위기라고 불리는 시기와 그것을 종결했다고 평가 받는(물론 이 또한 논쟁거리다) 디오클레티아누스 시기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책들인데 이쪽 분야에 몇몇 번역서들이 있지만 나는 관련된 분야의 책을 단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다. 국내 번역서로 한정하면 램지 맥멀렌의 로마 제국의 위기, 에이드리언 골즈워디의 로마 멸망사, 피터 히더의 로마 제국 최후의 100 등이 이에 해당하는 책인데 혹시 읽어본 사람이 있으면 평가를 부탁함.

 

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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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타이어니 외, 서양중세사/ 유희수, 낯선 중세

 

학부에서 중세사를 배울 당시 봉착했던 한 가지 난관은 수업이 끝난 직후 막상 내가 배운 내용을 문장으로 요약한 책을 찾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어차피 기본 내용이야 교수님 강의로 채우면 되었으니 사학과 내에서도 막상 개론서의 필요성을 못느꼈던 것이다. 그런 고로 바로 다음에 후술할 기라성 같은 석학들의 책들을 추천 받았을지언정 단권화된 개론서를 추천받지는 못했었다. 브라이언 타이어니가 집필하고 숭실대학교 이연규 선생님이 번역한 서양중세사는 그런 고민을 해결해준 책이었다. 이 책은 고대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교과서 같은 책들이 그렇듯 기본에 충실하고 각 챕터별로 사전처럼 꺼내서 살펴볼 수 있는 말 그대로 개론에 충실한 책이다. 20세기 중후반 학계를 뜨겁게 달궜던 온갖 테제들의 향연과 난해한 사회 경제적 논지들에 머리가 아파온다면 이 책으로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참고로 책 자체는 1978년 출간 이후 1989년에 처음 번역되었으니 오래되기도 오래되었는데 웬일인지 2019년에 재출간되었다. 번역자인 이연규 선생님이 연구자로서는 창창한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지가 십수년이 넘었고 이후 후속 번역에 대한 소식이 없기에 디자인만 바꾼 버전일 가능성이 높다.

 

브라이언 타이어니의 책이 중세 전반의 역사를 평이하게 풀어낸 교과서 같은 책이라면 유희수 선생님의 정년 기념 연구서(확실치는 않음)낯선 중세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새로운 관점으로 중세사를 개괄하는 책임. 이 책에서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우리가 아래로부터의 역사라고 통칭하는 민중사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도입한다는 점에 있다. 이른바 포스트모던 역사관이라 불리는 일련의 역사 서술 방식이 이 책에 녹아들어갔다는 얘긴데 이것은 최근 한국의 중세사학계에서 사료들에 대한 적극적인 재해석을 시도하고 있는 경향과도 맞물리는 것으로 보임. 음식, 의복 등 일상생활의 여러 면모를 중세사 서술에 들여오고 아날 3세대의 연구 이후 중세사 연구 주제의 중요한 축으로 떠오른 이른바 망탈리테(심성사)가 대중서의 수준에서 깊이있게 다뤄진 책은 이 책이 거의 처음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함. 보다 최신의 중세사 연구가 개설서에 어떠한 방식으로 반영되었는지 알고 싶으면 읽어보기를 추천함.

 

 

20세기의 위대한 중세사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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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 블로흐, <봉건사회>, 프랑스 농촌사의 기본성격, 서양의 장원제/ 에띠엔 질송, <중세철학사>/ 월터 울만 외, <중세 유럽의 정치사상>/ 앙리 피렌, <마호메트와 샤를마뉴>

 

서양에서 중세 연구는 합리주의 광풍이 끝난 양차대전 이후에나 제대로 시작되었다고 과언이 아님. 마냥 암흑의 시대로 설명하는 것이 아닌 나름의 논리적 설명, 사료적 근거를 갖춘 중세사 연구가 나온것도 이 시점에 들어서임. 오늘날의 고지에서 현재의 중세사 연구의 토대를 닦은 일군의 프랑스, 영국의 연구자들을 20세기의 위대한 중세사가들로 통칭하는데 크게 4, 마르크 블로흐, 에띠엔느 질송, 월터 울만, 앙리 피렌이 거론되고는 함. 이들은 각각 사회사, 지성사, 정치사, 경제사 분야에 있어서 탁월한 업적을 이뤄냈는데 오늘날 고등학교 때 지겹게 등장하는 "신앙과 이성의 조화, 쌍무계약관계, 봉건적 구조" 등이 이 시대 석학들의 연구들을 토대로 나온것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이후의 연구사에 있어 서양 중세사의 전통적인 연구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신권과 속권의 문제, 봉건제와 장원제의 문제, 신학과 정치사상의 문제 등이 이 시기 뿌리내려져 후속 세대 연구에서 싹을 틔웠다고 할 수 있다. 비단 중세사라는 한정된 범위뿐만 아니라 역사학 일반의 영역에서도 이들의 연구는 꽤나 중요한데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중세사 연구는 비단 중세사라는 협소한 시대연구에 그치는게 아닌 자본주의 이행 논쟁이라는 20세기 역사학계를 관통한 굵직한 논쟁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이쪽 분야의 논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이 4명의 대표 저작들 주장을 알아야 이행논쟁의 기본 전제들 몇 가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거라 생각함. 물론 이 글들이 절대 읽기 쉬운 글은 아니기에 그것은 감안하고 읽을 것.

 

 

르네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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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콥 부르크하르트,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 이블린 웰치, <르네상스 시대의 쇼핑>

 

보통 르네상스라 하면 사람들이 다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와 같은 미술가들을 떠올릴 정도로 이 시기는 문화의 융성기, 인문주의의 부활기로 많이 알려져 있다. 전통적 해석이라 불리는 이러한 르네상스 긍정론은 유럽에서도 꽤 오랫동안 정설로 여겨졌고 그것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위에 소개한 야콥 부르크하르트와 그의 제자인 하인리히 뵐플린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르네상스 연구가 사회사,경제사 측면에서 연구되고 그에 따라 기존의 전통 학설을 뒤집거나 새로운 측면으로 보완하는 연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가령 앞에서 잠깐 언급한 로페즈의 경우 기존의 전통적 연구를 밥상 엎듯이 뒤엎고 소위 "르네상스 불황론"이라는 (당시로서는)충격적인 학설을 주장하는데 이는 경제사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서구 유럽 학계의 르네상스사 연구 성과로 오늘날까지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이 르네상스 불황론이 제대로 소개된 번역서가 전무하다. 그러니 본 글에서는 60년대 이후 르네상스 연구의 새로운 축으로 등장한 소비문화로서의 르네상스론을 소개할까한다. 앞서 보았듯 부르크하르트와 로페즈로 대표되는 르네상스 인식은 각각 문화사, 경제사에 기반을 두고 있는 학설이었다. 60년대 이후 등장한 소비문화로의 르네상스론은 이 두 경향을 적절히 융합하여 문화 소비의 양상을 르네상스의 등장 동력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미시사 연구로 보완하는 형태의 학설이다. 국내에 이 이론이 반영된 책으로는 이블린 웰치의 <르네상스 시대의 쇼핑>, 마르케사 이리고의 <프라토의 중세상인> 등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어려움 없이 읽혔다.

 

 

종교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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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식 미완의 개혁가, 마르틴 루터/ 파이트-야코부스 디터리히 마르틴 루터와 그의 시대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로 국내외 가릴 것 없이 다양한 학술서들이 출간, 번역되었다. 박흥식 선생님의 미완의 개혁가, 마르틴 루터, 파이트-야코부스 디터리히의 마르틴 루터와 그의 시대는 그러한 책들 중 하나임. 박흥식 선생님은 본래 중세사 전공인데 최근에는 종교개혁에 관한 연구를 더 많이 진행하고 있는 분이심. 특히 이절로 테제, 즉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 애초에 게시되지 않았다는 도발적 주장을 국내에 소개한 장본인이기도 함. 미완의 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비텐베르크에서의 루터 사건이후 종교개혁의 진행 상황을 다각도에서 분석한 저서임. 하나의 개혁운동으로 마냥 긍정적인 면을 서술한 것이 아닌 그 한계 또한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특히 토마스 뮌처 등으로 대표할 수 있는 당시 민중 운동과의 연계 측면에서 루터가 드러낸 한계, 개혁 운동이 진행되면서 보여준 각 개혁가들 사이의 이합집산과 지리멸렬한 공조 등을 냉정하게 지적하고 있음. 제목 자체는 무슨 전기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16세기 독일 사회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비단 종교개혁 그 자체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충분히 재밌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 자체가 비교적 얇으니(284) 날 잡고 며칠 정도 투자하면 금방 독파가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박흥식 선생님의 책은 사실 마르틴 루터 개인의 생애를 다룬다기보단 종교개혁 시기의 역사를 살펴보는 책에 가깝기에 입문서의 성격도 가지고 있을듯. 이외에도 파이트-야코부스 디터리히 마르틴 루터와 그의 시대도 마찬가지로 시대적인 맥락에 집중해 종교개혁을 서술하고 있는 책이었다. 다만 이쪽은 전부 다 읽어보지는 못해서 뭐라 말을 못하겠음. 어느 쪽이던 분량이 길지 않고 평이하게 읽히니 적당한거 찾아서 읽으셈

 

 

 

 

 

글이 길어졌으니 다음에 계속

 

 

16개의 댓글

아 이런 책 봐야 하는데 표지만 봐도 편안해지면서 하품나오네 ㅅㅂ.. 일단 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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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31

박윤덕쌤 수업이 참 졸렸었는데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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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31
@국정치사연구

글은 참 재밌게 읽었는데 또 수업은 다르구만 ㅋㅋ 그래도 좋은 선생님 밑에서 공부했다는건 부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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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31

사학과 학부생인데 모르는 책이 절반이 넘네... 서양사는 안가르치고 한국사만 가르쳐서 그런가.. 한국사 책 추천해준 것들만 봐도 우리학교 수준이 너무 낮다는 걸 알 수 있다. 쩝... 사학과 학부생도 많이 배워갑니다 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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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31
@키시구루

근데 사학과 전공이면 책에서 소개하는 내용들은 알음알음 다 배웠을거임. 나도 나중에 책으로 다시 접하면서 수업시간에 배웠던 개념들을 상기시키는 경우가 많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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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31
@복사집

흔히말하는 지잡이여서 전공책들이 다 개거지같은 책들이라 스스로 공부해야하는 경우가 많음...그래서 공부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어서.. 그나마 한국사 길잡이로 논문공부시작하는것임...

서양사는 일체안배워서 서양사는 따로 손대는 정도고 개념서보단 특정 국가 시대 정해놓고 혼자 공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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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31
@키시구루

사학과에서 전공책 수업했다는건 좀 신기하네. 난 1학년 1학기 때 빼고는 전부 개인 발표였는데ㅇㅇ 주제 던져주시고 한 명씩 논문, 책 조사해서 발표문 작성. 덕분에 1학년 2학기부터 디비피아, riss 달고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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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31
@국정치사연구

우린 특정교수님이 그렇게 하셨고 고고학, 근현대 제외하고는 전부 토론수업이었음.

대학이 별로다보니 역사자체를 모르고 들어온 애들이 너무많음...그래서 일방적인 수업이 꽤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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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31

오오오오오 책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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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31
[삭제 되었습니다]
2020.03.31
@맛난오리

사실 책을 그렇게 많이 읽지는 않고 각 분야에서 유명하다 싶은 사람들 책 중심으로 읽었던거 같음. 교수님 한테 도움 받기도 했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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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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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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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31

블로크니뮤...앀발롬의 나치새끼들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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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책 추천도ㅜ좋지만 인강이나 유튜브 추천이 더 많이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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