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려사 한 걸음

고려시기 역사의 시대구분 문제

 

사회경제사가들의 견해

 

1). 백남운

 

서구의 여러 나라가 거친 것처럼 우리나라에도 노예제나 봉건제 사회의 단계가 우리나라의 역사에도 있었을까 하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대부분 학자들은 서구의 나라처럼 우리나라가 노예제나 봉건제 사회의 단계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습니다만 1930년대 사회경제사가의 등장함에 따라 여러 사람이 긍정하기 시작합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백남운 선생님입니다.

 

사회경제사가들의 주 주장은 이겁니다. 그의 대표 서적인 조선사회경제사와 조선봉건사회경제사를 통해 우리 역사의 발전과정이 문화형태 등 외형적인 면에서 서구의 여러 나라와 다소의 차이를 지니고 있었다 하더라도 사회구성의 내면적 발전법칙은 전혀 세계사적인 것으로서 저들과 거의 같은 길을 밟아 왔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시선을 가지게 됨에 따라 백남운은 삼국시대를 노예노동에 의한 농업생산이 이루어진 노예제사회로 보고 있었고, 통일신라기에 전쟁을 통한 포로 노예의 공급이 끊기게 되자 생산도구로의 노예들은 보다 생산적인 농노로 전환되어 결국 무너지고 동양적 봉건사회가 형성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노예들이 생산적인 농노로 전환되면서 일반 농민들도 농노화가 진행되어 중앙집권적 지배 체제하에서 이들에 의한 농노제적 생산양식을 기초를 이룬 집권적 봉권제가 고려를 거쳐 조선 말기까지 계속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견해들은 일제관학자들에 의해 도출된 정체성이론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었습니다.

한국사의 체계적인 이해라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한 것이었지만 실제의 역사적 사실과는 부합되지 않아 이에 대한 반문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반문으로는 우리나라의 역사과정에서 노예노동에 의한 생산이 사회생산의 주류를 이룬 시기가 없었다는 것, 우리 역사에서 노예들보단 사회생산의 주류를 이뤘던 것은 언제까지나 농민들이었습니다.

 

2). 전석담

 

전석담은 삼국시대를 초기봉건제사회에 들어섰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국가재정의 기초가 농민들로부터 거둬들이는 조세, 곧 지대에 입각하고 있는 것은 봉건제적 사회구성에 해당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주요 근거로 드셨습니다. 노예에 대한 수취형태로서 조세란 있을 수 없으며, 원시공동체사회가 무너지면서 곧바로 봉건제 사회가 형성되어 고려 조선까지 오랜 기간 동안 계속되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하나의 가설에 지나지 않는 사적유물론의 일원론적 역사법칙에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뜯어 맞춘 흔적이 뚜렷한 매우 도식적인(사물의 본질이나 구체적인 특성을 밝히기 위한 창조적 태도 없이, 일정한 형식이나 틀에 기계적으로 맞추려는 경향 같은) 시대구분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3). 강진철

 

강진철은 유럽식 노예제나 봉건제의 개념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아시아 내지는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그에 적합한 개념을 따로 설정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가지고 한국사의 발전과정에서 노예제사회와 봉건제사회의 단계를 설정하는 것은 가능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세계사적인 안목을 가지고 한국사를 인식하려는 태도는 바람직하다는 의견까지 피력하고 있습니다.


강진철은 이러한 주장을 통해 한국사를 이렇게 분리하였습니다.

 

고려전기까지 – 고대 노예제 사회

고려시대 무신집권기 ~ 고려말 –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 중세 봉건제 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

조선시대 – 중세 봉건제 사회

 

이에 대한 근거로는 신라의 장적문서에 의하면 9등호제(9등호제는 신라, 고려시기 때 호를 빈부 또는 인정의 많고 적음을 기준으로 아홉 등급으로 구분하는 제도였습니다)로 편성하고, 인간의 노동력을 수취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하였습니다. 이때 당시에도 토지로 조세를 걷었으나 이것이 수취관계에서는 미미한 정도를 끼쳤을 뿐 중점은 노동력의 수탈이었습니다.

 

신라 고려는 농민을 토지의 소유자가 아니라 노동력의 소유자로서 파악하여 인신적 수취에 중점을 두었으니 고대 노예제 사회라고 볼 수 있다는 겁니다. 또한 고려 전기 사회의 관인은 지주적인 성격이 희박했고 농민들은 혈연적 유대에 얽힌 미분화 상태에 있어서 이들에 의한 토지 소유 관계도 지극히 낮은 단계에 있었다는 점도 주장의 근거였습니다.

 

주장에 대한 추가적인 내용은 이러한 고대적인 요소는 1170년에 일어났던 고려시대 무신란 이후 고려말까지의 농장체제에서 점차 해제 극복되어 갔다고 보았으며, 조선조에 들어와 중세봉건제 사회가 이루어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세종조에 호등(가호(家戶) 별로 조세나 역(役)을 차등 부과하기 위해, 가호를 재산이나 노동인구의 많고 적음을 기준으로 등급화한 제도.)이 인정의 다과(많고 적음)가 아니라 전결 즉 토지재산의 다소에 따라 편성되고 그에 의거하여 조세는 물론 공부(나라에 바치던 물건(物件)이나 세금(稅金)) 역역(직접(直接) 노동력(勞動力)을 제공(提供)하는 요역)까지도 부과함으로써 수취 관계 전반이 일종의 지대로 전환되고 있는 데서 그 중요한 징표를 찾을 수 있으며 토지에 대한 개별적 사유의 확립 및 지주제적 토지경영 등도 이 같은 주장의 뒷받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초안이라 되게 이상할 것이기도 하고 많이 빈약하기도 할겁니다 한 번 읽어봐주시고 부족한 부분 지적해주시면 바로 추가하고 보완하겠습니다 __ 게다가 이 부분은 제가 요약 보완하는 것보단 최대한 학계에선 이렇게 보고 있구나를 전달하기 위해 인용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점은 양해부탁드립니다.

 

연재는 장기적입니다 아마 1년동안 꾸준히 매주마다 쓰거나 2주에 1편이 나오게끔 공부하면서 작성할 예정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고려 초기의 형성은 대략 2주라는 시간이 들어가야 한 편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 할 듯 합니다.

41개의 댓글

2019.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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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Miracle31792

읽어주셔서 감사 할 따름입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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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역사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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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봉건제가 정확하게 뭐라고 정의해야됨?

대충 군주-영주-농노 이런 관계인건 알겠는데

굳이 한국사를 봉건제 틀에 우겨넣어야되나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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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유입받어라

한국사에서 서양 개념의 봉건제는 맞지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게 고려시대 당시에 봉건제라고 하기에는 쌍무적계약관계보단 중앙집권국가로써 국가가 이끌어졌고 지방관이 파견 된 것만 보더라도 맞지않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설명하자면 고려시대 초기 당시의 호족들은 서양의 영주들이 가졌던 불수불입권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중앙 귀족으로 편입되게 됩니다. 이게 가장 큰 이유로 서양의 봉건제 개념은 한국사에 굳이 끼워맞출 이유가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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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유입받어라

봉건제는 쌍무적계약관계 즉 주군과 가신의 계약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주군은 가신에게 자기 영토에 대한 통치권을 부여하고 영주는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여 군사적으로 지원을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으시면 말씀해주시면 더 자세하게 작성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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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키시구루

더 듣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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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Alike

봉건제 제도는 서양 프랑크 왕국시대 가신제도와 은대지제도가 결합해서 10세기~13세기에 걸쳐 전형적으로 발달한 특수한 정치적 조제입니다.

 

이 제도의 발생은 게르만민족의 이동과 그에 따른 이후의 혼란과 불안 속에서 약자가 강자에게 탁신(몸을 맡기다)함으로써 비롯됩니다.

이때 탁신받은 상전과 주군은 탁신한 가신에게 보호와 부양의 의무를, 가신은 상전 주군에게 공경과 봉사의 의무를 주게 되는 데 이 부분이 서로 상호 주고 받는 모습이 보이면서 쌍무적 계약관계라고 말을 하게 됩니다.

 

좀 더 자세히 들어가보면 주군은 가신의 생계를 위해 은대지, 봉토를 수여하고 가신은 주군에게 봉사 특히 군사적 봉사와 충성의 의무를 담당하면서 양자 사이에 주종관계가 이루어져 성립됩니다.

 

봉건제도는 주군과 가신간에 보호와 봉사를 교환조건으로 하는 쌍무적 꼐약관계 위에 탁신의 의식과 성실의 서약이 있는 뒤에 봉토를 수여함으로써 성립된 통치조직입니다. 여기서 추가적으로 나타나는 게 있는 데 서양에서는 봉건영주가 독자적인 통치권을 가지고 대개의 통치임무를 수행합니다. 영주가 왕으로부터 불수불입권을 획득함으로써 나타나는 데 영주는 자기의 영지 보통 내에 왕권이 개입하는 것을 배제하고 독자적으로 수조권과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이게 되면서 왕이 영주가 통치하는 곳에 대해서 개입을 못하게 되니 지방분권적 통치형태를 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책을 보면서 조금의 요약을 하다보면 글이 이상 할 수 있습니다. 이부분 양해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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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키시구루

음....군벌에게 땅과 물자를 주는 대신 너는 나를 지켜라 이런계약이네요

 

동양에서 이래됬음 통수치고 자기가 왕했을듯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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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그냥 고려는 불완전한 중앙집권국가라고 정의하면 되는거아냐??중앙집권국가라고하기에는건국때 호족 연합정부의 성격이 너무강해서....

개인적으로는 유학들어오고신진사대부랑 기존의 기득권층이 업치락 뒤치락하다가 이성계가 무쌍찍는거 좀 자세히보고싶긴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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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닉네임은2

그렇다고 하기에는 고려 초기 이후에는 호족들이 중앙귀족으로 포섭되기 때문에 중앙집권이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귀족정치가 강했다고 한다면 모르겠으나 호족 연합정부라고 하기에는 납득하기 어렵네요. 만약 연합정부 성격이 강했다고 한다면 지방관리의 힘이 약했어야 했고, 불수불입권을 가지고 있어야 연합정부라고 보는 입장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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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키시구루

고려때 지방관리 힘 존나 강하잖아??? 그래서 불완전한중앙집권아니냐고 한 거고...

얼마나 지방관리 힘이 강하고 삥을많이 뜯었으면 청산별곡같은노래가 나오겠음...

사람이 산에들어가서 머루랑다래따먹으면서 살고싶다는소리나올정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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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닉네임은2

 아마 중앙에서 파견된 안찰사나 관리들은 조선시대의 관찰사나 관리들에 비해 힘이 약했고, 오히려 그 지방세력이었던 예전에 호족이라고 불렸던 이들이 향리로 활동하게 되면서 문제가 생겨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중앙에서 파견된 이들은 지방에 관한 사정이 어둡다보니 실무행정은 향리들이 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게 아닌가 보고 있습니다. 특히 조선시대에 비교해서 고려시대의 지방통치는 많이 부실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중앙에서 향리에 대한 견제를 한다곤 하지만 과연 제대로 이뤄졌는 지 실효성이 있었는 지 추후에 다뤄보겠습니다.

 

추후 공부를 깊이 하게 되면서 어느 쪽으로 바뀌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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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닉네임은2

청산별곡은 시대적 논란이 있음. 후삼국시절이냐, 아니면 고려 후기의 모습이냐 등등. 즉 고려 초기의 정치적 모습을 드러내는 모습은 아니라는 소리임.

또 고려 초기에 보면 왕건의 지배를 받아들이지 못한 몇몇 호족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모습들을 보이고는 하는데, 그 이후로는 반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음. 이런 점으로 볼 때 호족연합정권이냐, 중앙집권적 정권이냐는 문제는 확실하지 않고, 오히려 팽팽한 주제임. 최근에는 중앙집권적 정부로 보는 견해가 많더라. 뭐, 혜종 대에 들어서면서 일어나는 정쟁의 모습을 불완전한 중앙집권의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긴 하겠다만.

근데 유학은 이미 들어온 지 꽤 되었었음. 광종 대에 들어온 후조의 쌍기도 유가적 질서체제가 성립되는 모습 중에 하나고, 성종 대에 들어서면 유가적 지배체제가 완전히 성립되는 모습을 볼 수 있음. 유가적 질서가 성립된다는 말은 필연적으로 지방에 대한 억제력을 중앙정부가 쥐고 있다는 말임. 또한 지방을 견제하기 위해 보낸 중앙의 외관들이 점차 자리를 잡고 지방사회의 한 축이 되었고, 총체적인 인구조사를 주기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고려 초기는 불완전했다고 볼 수는 있겠지만 이후에는 확실히 중앙집권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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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reason

저보다 더 잘 아시는 것 같아요. 몰랐던 것도 있고 알고 있었는데도 정리를 못한 부분을 잘 적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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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키시구루

얼마전에 전공으로 배웠던 터라 기억에 남아있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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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reason

사학계열이신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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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키시구루

내맞워요~ 고려사 보실거면 박용운 교수님 책도 추천드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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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reason

제가 참고하여 쓰는 책이 고려시대사 박용운 교수님의 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음..제가 정사판에서만 얘기해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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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키시구루

박용운 교수가 말은 많아도 고려사의 대부라서 책 재밌음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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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reason

그런 것 같더라구요. 원래는 다른 걸 해볼까 하다가 교수님께서 고려를 연구자의 자세로 읽어보고 공부하고 싶으면 박용운 교수님의 책이 좋다고 추천해주셔서 이쪽으로 굳히고 하고 있어요. ㅎㅎ

원래는 조선사 일제강점기 중추원이 주로 하는 부분이라 원래는 이쪽을 공부해야 하는 게 맞긴한데...고려 이때 안해보면 거들떠도 보지않을 것같아서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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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키시구루

퍄퍄 그럼 열심히 연재하십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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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reason

고건몰랐네.. 내가 수험용으로 국사를 배워서 좀 많이 피상적임...흥미는 있어서 더 배우고 싶긴 한데 국사만으로붙는것도 아니고 뭐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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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닉네임은2

원래 역사는 내가 공부하는 것보다 남이 가르쳐주는게 더 재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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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reason

배워서잼있으려면 가르치는사람하고 배우는사람성향이 잘맞거나 가르치는사람내공이 어마무시해야해서 배우는사람이 완전압도될수준이어야한다생각들어서 정통파 교수님들 책보거나 관심분야 논문 깔짝거리는게.. 좋다고 생각함다...이러면 진도 안나가고 판타지를쓴다는단점도있긴하겠지만 어차피 취미 영역으로 하는 공부면 뭐 ㅎㅎ개인적으론어떤 목적성을가지고 하는공부를 않좋아해서 후딱붙고

나작나작 논문이랑잘정리해놓은책이나 읽으면서 내 페이스 대로 파고 싶네요....정말 전형적인 한량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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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닉네임은2

그 부분은 상당히 뒤에서야 나올 것 같습니다. 고려시대를 처음부터 천천히 보려고 하고 있고 상당히 자세히 다를 부분은 지금 군사와 정치 둘 중 하나를 고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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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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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유럽은 워낙 적은 인구가 온 사방에 흩어져 살았기 때문에 중앙집권화가 불가능에 가까웠던 반면

동아시아는 흘러넘치는 인구와 비교적 좁은 거주구역 때문에 아주 고대부터 중앙집권국가였다

 

동아시아사에서 정치적으로 봉건제라 할만한 건 주나라 춘추전국 시대 뿐인데

그 시대 조차도 주왕의 신권적 통치권한은 인정된다는 점에서

프랑스에선 태양왕이 정립한 왕권신수설이 이미 기원전천년부터 있었다고 봐야한다

그리고 동아시아에선 왕, 혹은 황제가 나와바리의 절대자라는 개념이 단 한 번도 깨진 적이 없다

 

그래서 정치체계를 통한 구분에 있어서 동아시아는 약 2천5백년간 동일한 시대에 불과하다

때문에 난 그 누군지 기억은 안나는데 동아시아사의 시대구분을 정치체계가 아니라 경제체계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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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살랑꼬리박이

저기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일제시대에 걸쳐서 활동한 사람들임. 그 시대의 핵심은 우리도 서구처럼 옳바른 역사 발전을 거쳤다는 증거를 찾는거임.

 

그 때문에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 태동, 산업시대라는 서구의 체제를 한국의 왕조에 억지로 끼워맞추려고 했었음. 1980년대 넘어가면서 너가 얘기한 방식 등 다양하게 한국사의 시대를 구분하려는 시도들이 등장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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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랑꼬리박이

봉건제가 그럼 유럽에서만 있는거야?

아프리카, 중동, 인도, 동남아쪽에도 봉건제 비스무리한게 없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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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30
@닉갈다보니할말도없음

자연발생적 봉건제도는 "유럽의 특성"으로 보는 게 맞다

물론 봉건제의 개념을 정확히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조금씩 의견이 갈릴 수는 있겠지만

 

일단 난 봉건제를 정치적인 면에 한정해서 말하고 있고

그 특징으로

1. 좆같이 미약하며 사회계약적으로 성립된 왕권

2. 좆나게 강대하며 신수적으로 성립된 신권

을 꼽고 있는데

 

이는 모든 신하들이 천부적으로 타고난 강한 권력(이 권력은 땅과 병사에서 나온다)을 지녔고

그 수많은 신하중에 계약적으로 하나가 그냥 감투만 왕을 쓰고

일종의 반쯤 선출직에 가까운 "총리직" 왕을 하고 있는게 봉건제의 가장 러프한 개념이다

물론 각 신하들은 또 각자 그 밑에 아주 동일하게 지방유지나 그런 애들이 모였고 그 중 가장 괜찮은 놈이 귀족이라는 그런

물고물리는 관계가 성립되긴 하는데 그건 그냥 넘어가고

 

 

 

일단

근세 이전까진 전 세계에서 유럽이 면적 대비 인구수, 즉 인구밀도가 가장 낮았다 (신대륙 제외)

너무 낮았다

동아시아는 지금도 인구가 흘러넘치긴 하지만 중세까지는 사실상 세계 인구의 30~40%를 차지할 만큼 사람이 발에 치였고

아프리카, 남아시아, 서아시아도 모두 유럽보단 인구밀도가 높았다

 

그리고 아프리카와 서아시아의 경우는 그 넓은 땅 중 사람이 살만한 공간이 한정적이라는 부분까지 고려해야 하고

남아시아는 공간이 한정적인 걸 넘어 자연과의 사투를 벌여야 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렇다 할 적도 없고 인구도 흘러넘치는 동아시아는 그 특수성 때문에 이천년째 "사대관계"라는 독특한 정치체계가 유지됐었다

신이 내린 단 하나의 대리자(어찌보면 비슷한 시점에서 유럽에도 교황이라는 단일 통치자가 탄생할 수 도 있었겠는데)에 의한

전 영토의 통치체계가 바로 사대관계다

황제는 하늘이 내린 유일한 지배자고 그 외 모든 왕들은 황제에게 조공하며 반하지 않는 선에서 서로의 관계를 유지하고

왕권은 황제의 임명에 의해 이루어지며, 황제가 인정하는 그 자체로 정통성이 생긴다

 

 

서아시아의 경우 서기전부터 일관되게 프린켑스라고 할만한 공화주의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는데

로마의 공화제와 차이점은 서아시아의 공화제는 제정일치라는 점이지

큰 틀에서 종교지도자와 왕은 차이가 없고(그 종교는 자주 바뀌었지만)

신하들이 해당 종교의 신도인 이상 왕의 말에 거역하는 것은 교리를 거부하겠다는 말과 동등했다

이건 또 당연하지만 봉건제와는 완전히 다르며 동아시아의 황제와도 다른 면이 있다

서아시아의 제국과 샤힌샤(왕중왕, 즉 황제와 비슷한 개념)는

각 왕 겸 종교지도자들 중 가장 교세가 크며 교리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맡는 일종의 "교황"에 가까운 개념이다

 

 

남아시아의 왕국과 제국은 3천년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바뀌지 않는데

단 하나의 정치체계란 바로 카스트이다

용어적인 카스트는 힌두교의 어쩌구 할텐데, 개념적인 카스트만 받아들여보면 인도와 그 근역의 모두가 일치한다

타고난 혈통에 따라 가질 수 있는 권력이 정해지며, 그건 절대 뒤집히지 않는다

이건 하물며 신이 내린것도 아니라는 측면에서 더욱 악질적인 면이 있는데

동아시아의 황권이라는 건 맹자가 지적했듯 민심을 어기면 천심이 바뀐다고 위협할 건덕지라도 있지

남아시아의 카스트는 "니들이 그렇게 사는 건 신이 아니라 니들 탓이다"라는 개념에 의해 유지된다

때문에 아무리 악질적인 지도자가 나와도 혁명이 일어날 여지가 없는 것

그 이유가 바로 남아시아의 환경적 특성에 기인한다

민심을 따지기엔 너무 강대한 자연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에

민심을 죽이고 모든 걸 운명 탓으로 돌려야 나라가 유지되는 것

 

 

아프리카는 중세부터 봉건제가 작동했다라고 우기는 학자들도 있긴 하던데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중세 이후로 아프리카의 왕국과 제국들이 유럽의 괴뢰정부였기 때문이다

그 전까진 아주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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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랑꼬리박이

ㅊㅊㅊ

근데 중세이후면 르네상스잖아

대항해시대 이전에도 아프리카가 괴뢰정부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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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30
@닉갈다보니할말도없음

중세 이후 니까 대항해시대 부터지....... 르네상스 중에 대항해시대가 열린거고

르네상스도 중세에 포함되는게 상례니까

 

사실 중세를 구분하는 가장 큰 기준도 봉건제에서 걸리는데

봉건사회가 구성된 시기 = 중세 라고 말하는 학자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뭐 하여튼 그게 중한게 아니고

대항해시대의 시작은 대충 포르투갈이 아프리카의 첫 영토인 세우타를 확보하면서 시작됐는데

그 시점이 천사백년대 초다

 

세우타를 시작으로 포르투갈이 대충 한 50년에 걸쳐 서서히 남아프리카로 띄엄띄엄 가면서

중간중간 만난 약소 왕국들에 무기를 전해주고 받아온 게 흑인노예의 시작인데

처음엔 포르투갈은 흑인노예를 살 생각은 고사하고 그런 상품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아프리카의 왕국들에 노예는 일반적인 문화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거래상품으로 오른 것

그래서 몇 데려다 쓰다보니 아 이게 제법 흥할만하다 이거지

약소 왕국이었던 것들이 유러피언 감성의 무기 받고 대국으로 거듭나기도 했고

 

그래서 만들어진게 대표적으로 콩고왕국이다

좆밥 약소부족이던 콩고가 포르투갈 뽕을 맞고 초강대국이 되어

서아프리카의 콩고강 강역을 전부 지배하는 제국이 되었으며

(kingdom으로 번역되는게 상례지만 정치적 특성상 empire에 더 맞다)

제국이 되기 전부터 이미 벌써 크리스트교로 개종하고 태자의 이름을 엔리케로 지을만큼 대단히 포르투갈뽕에 심취했다

그 결과가 바로 포르-네덜 합작의 콩고내전인데 이야기 길어지니까 넘어가고

 

하여튼, 그 시기, 즉 1400년대 중반 이후 서아프리카의 왕국들은 한 70% 정도는 원래 약소부족이었고

포르투갈 무기를 받고 커져서 대왕국이 되었다

그리고 그 운영적 측면에서 포르투갈 식 정치를 많이 본받아

헤이(왕) 하 인판테(세자), 프린시페스(총독 및 대공), 두퀴 콘데스 세뇨르 카발레이(공후백자남) 등등의 작위와 봉작체계 등

 

다시 예를 드는 콩고도 왕인 은징가 음벰바(딱 천오백년쯤부터 시작)는 콩고의 작위체계를 새로 해

음웨네콩고(왕), 이하 각 지역의 음웨네ㅇㅇ들(호족장), 아응공고(기사단장 정도?)로 이어지는 체계를 만들었고

드넓은 영토를 쪼개 봉작했다

아응공고는 딱 40~300 정도의 소부족체계로 우리가 말하는 "원시부족"이 가장 근접한 단위를 다스리는 족장이며

해당 부족의 청년들을 이끌고 전투에 참여하게 되며

영토 내의 부족들을 총괄하며 아응공고에게 명령을 내리는 위치가 바로 음웨네ㅇㅇ(ㅇㅇ은 지역명)이다

그리고 음웨네ㅇㅇ들의 연합체인 귀족의회의 수장이 바로 포르투갈로 유학을 갔다 온 음웨네콩고, 본인인 것

 

딱 봐도 봉건제도의 냄새가 물씬 나는 이 체계는 포르투갈이 내전을 유발하기 위해 권장했다는 게 정설인데 넘어가고

 

 

하여튼 그런 느낌으로다가 이맘때 쯤부터 아프리카에 봉건제가 들어갔다 이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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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2
@살랑꼬리박이

오 콩고얘기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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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2
@tdtd

동아시아에서 삼국지는 인간군상의 암중모략과 대전략의 결정체라서

중국에선 열번 읽은 새끼는 인간같지 않는 암귀를 쓸테니 상종하지 말라그러고

조선에선 열번쯤은 읽어야 머리쓰는 솜씨가 사람다워지니 상종하라 그럴만큼

대단히 중요하게 취급받지만

 

유럽권에선 삼국지가 그다지 인기가 없는데

 

그 이유가 저런거다

저새끼들은 쬬의 귀계와 제갈의 신산정도는 우스울 정도로 악마같은 전략을 실제로 활용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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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30
@닉갈다보니할말도없음

애초에 유럽에서 쓰는 개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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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확실히 예전 분들이 중심이라서 노예제, 봉건제에 집중하네 학설들이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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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국정치사연구

저때야 뭐 맑스이론에 끼워맞추려고하다보니 저리된거니까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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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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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2

고려는 그렇다 치고, 조선 들어서 강력한 중앙집권 정책 중 하나인 '사병 혁파'가 이루어졌는데 이걸 봉건제 사회로 봐야 하나...?

조선은 중앙집권적 관료제 국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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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4

여기에 역사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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