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독일 근현대 산책] 9.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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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편은 프랑스 혁명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1848년의 독일 「3월 혁명」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으로 삼으시면 좋을 것입니다.

 

 

 

 

다시, 혁명 프랑스로! 7월 혁명

 

 

 

 

1824, 빈 체제의 개막과 함께 승전국들의 도움으로 즉위한 루이 18(1755~1824)가 사망하고 샤를 10(1757~1836)가 즉위했습니다. 그는 철저한 왕권신수설 신봉자로서 전제 정치의 재현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의 뜻을 받든 폴리냐크 내각은 의회를 해산하고 반 왕당파를 탄압하는 여러 조치를 취했으나, 18307월에 치러진 선거에서 반 왕당파에게 크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위기를 느낀 샤를 10세는 의회 해산·언론 검열·선거권 제한을 골자로 하는 7월 칙령을 발표하여 난관을 벗어나려고 했지만 이것은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습니다. 분노한 파리 시민들은 시내 곳곳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왕에게 맞섰으며, 3일에 걸친 격렬한 충돌 끝에 비로소 샤를 10세가 굴복하고 퇴위한 뒤 영국으로 망명함으로써 7월 혁명은 성공적으로 완수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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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10세. 막강한 왕권을 휘두를 수 있는 전제 정치의 재현을 원했지만 막상 그럴 만한 능력도, 배짱도 되지 못했던 인물이다.>

 

 

Eugène_Delacroix_-_La_liberté_guidant_le_peuple.jpg

<외젠 들라크루아의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7월 혁명」을 묘사한 것이다.>

 

 

7월 혁명의 결과, 자유주의적인 성향을 가져 인망이 높던 오를레앙 가문의 루이 필리프 1(1773~1850)가 프랑스의 새로운 왕으로 즉위하게 되었습니다. 루이 필리프 1세는 개인적으로 매력적인 인물이었고 훌륭한 인품을 가졌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나, 그가 이끄는 7월 왕정은 프랑스 인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전제 정치로 회귀하기를 바라는 반동파의 경우는 입헌 정치를 도입한 7월 왕정에 당연히 만족할 수 없었으며, 공화파는 공화파대로 자신들은 공화국 건설을 위해 7월 혁명을 일으키고 피를 흘린 것인데 그 결과가 또 하나의 왕정이었으니 크게 상심할 수 밖에 없었죠. 7월 왕정치하에서는 과거보다는 확대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선거권이 극소수의 상류층에게만 부여되어 있었고, 당연히 선거권을 갖지 못한 노동 계급은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크게 불만을 가진 것은 이 시기 새로이 떠오르고 있던 신흥 강자, 산업 자본가들이었습니다. 루이 필리프 1세의 치세에서 정치적 권력을 쥐고 있었던 것은 대지주들로, 선거권이 보유한 토지에 비례하여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산업 자본가들은 자신들이 가진 능력과 부에 비하여 그에 합당한 정치적 권력을 얻지 못한 것에 불만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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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필리프 1세. 특유의 머리 스타일 때문에 배(pear)처럼 생겼다는 원색적인 놀림을 당했지만 그마저도 호탕하게 웃어넘길 정도로 인자하고 인덕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인품과는 별개로, 그의 7월 왕정」은 프랑스 인민들의 이상과는 거리가 먼 정치를 펼쳐나갔다.>

 

 

 

 

비참한 이들

 

 

 

 

이러한 각계각층의 불만들은 7월 왕정을 위태롭게 하는 요소였습니다. 우선 혁명의 이상을 배신당한 공화파의 불만이 가장 먼저 터져 나왔죠. 183262, 열성적인 공화파이자 천재 수학자였던 에바리스트 갈루아(1811~1832)가 결투를 벌이다 사망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모여든 공화파들은 다시 한 번 혁명을 일으켜보자는 서로의 의지를 확인하게 되었고, 보다 많은 인원이 모여 큰 파급력을 가질 만한 하나의 사건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Gal_Lamarque.jpg

<라마르크 장군.>

 

 

 

 

장 막시밀리앙 라마르크(1770~1832)장군은 프랑스 대혁명과 혁명전쟁, 나폴레옹 시대에 혁혁한 전과를 올리며 혁명 프랑스를 수호해낸 국민적 영웅이었습니다. 특히 말년에는 자유주의 이상을 내세우며 사회적 약자를 돌보았기 때문에 7월 왕정치하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이들 중 하나가 됐습니다. 그런 그가 콜레라에 걸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공화파는 국민 영웅인 라마르크 장군이 죽은 후 그의 장례식에서 사람을 모아 봉기를 시작할 생각이었습니다.

 

 

 

 

183265, 라마르크 장군의 장례식이 거행되었습니다. 그의 운구 행렬이 아우스터리츠 다리로 향하고 있을 때 공화파가 행렬에 뛰어들었고, 그것은 곧 하나의 거대한 시위 행렬로 변했습니다. 이를 진압하려는 정부군과 벌인 65일의 전투에서는 결착이 나지 않았으나 차츰 열세에 놓인 공화파는 시가지 내로 이동하여 바리케이드에서 항쟁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공화파의 예상과는 달리 항쟁에는 노동 계급만이 일부 참여했고, 큰 힘을 보태줄 수 있었던 산업 자본가라던가 자유주의적 조야 정치권에서는 정작 항쟁에 참여하기를 꺼렸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파리 시민들이 이 봉기에 그다지 관심을 보내지 않았던 탓에 성공 여부가 아주 불확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대중 동원에 실패한 1832년의 6월 봉기는 결국 이틀 만에 완벽하게 진압되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루이 필리프 1세가 6월 봉기의 진압 과정에서 보여준 결단력과 자비로운 모습 덕분에 잠시나마 7월 왕정의 인기가 상승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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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 미제라블(2012)」 중에서.>

 

 

봉기 자체는 실패했지만, 6월 봉기1789년 대혁명의 공화주의 이상은 결코 얌전히 잠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줬습니다. 대문호 빅토르 위고(1802~1885)6월 봉기라는 사건과 그 주도자들에게 큰 매력을 느끼고 이를 취재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소설 레 미제라블을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6월 봉기레 미제라블전체를 관통하는 일대 사건이며, 1789년 대혁명, 혁명전쟁, 나폴레옹 시대, 빈 체제, 7월 혁명이라는 시대의 풍랑 속에서 이상을 꺾이고, 배신당하고, 소외당하고, 착취당한 수없이 많은 비참한 이들의 삶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서사가 바로 레 미제라블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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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은 단순히 인간 장 발장이 미리엘 신부의 인도로 회개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짓밟힌 1789년 대혁명과 위대했던 「나폴레옹」 시대의 잔해 속에서 비참하지만, 그럼에도 꿋꿋이 살아가는 1830년대의 프랑스 그 자체이다.>

7개의 댓글

2019.12.29

레미제라블이 7월 혁명이 아니라 6월 봉기를 기점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의외였네요. 잘 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여기서 궁금한 점은 7월 왕정의 행동이 궁금합니다. 공화파들은 7월 왕정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는데 그렇다면 이들은 아직 전제왕정에 머물렀단 소리인지 아니면 공화정처럼 정치를 행했지만 공화파들이 만족을하기엔 너무 제한된 정치였는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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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키시구루

루이 필리프 1세의 「7월 왕정」은 전제 군주제가 아니라 영국처럼 헌법에 기초한 입헌 군주제를 지향했지만, 완전한 공화국을 원했던 공화파는 입헌 군주제 역시 못마땅했던 겁니다. 아무리 시민들의 권리가 신장되었다고 해도 왕이 존재하는 한 공화파는 만족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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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Volksgemeinschaft

공화파들은 완벽한 공화정을 원했던 것이군요. 한마디로 왕의 존재가 없어지길 원했던 이들 같네요. 왜 이렇게 왕의 존재를 부정했는 지 궁금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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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키시구루

왕이 있다면 에갈리테의 이상은 절대 실현될 수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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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Volksgemeinschaft

에갈리테가 평등 균등 대등 이걸 뜻하는 게 맞지요? 왕의 존재면 귀족의 존재도 인정하게 되니 같은 국민이 아니라 계급이 그대로 존재하는 형태가 이뤄지게 되니까 그런 듯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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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여신누나.. 쥬지가 이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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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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