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동양(조선)에 플레이트 아머가 없었던 이유?

이 글은 낮은 수준의 아마추어 밀덕이 쓴 글입니다. 재미로 읽어주셈. 지적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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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독일의 플레이트 아머)

 

서양에서는 14세기 말 트렌지셔널 아머가 완성되고 15세기에 드디어 플레이트 아머가 탄생했다.

또한 갑옷의 발달로 방패가 필요없어짐으로써, 대 갑주용 검술에 하프소딩이나 칼날을 반대로 잡고 손잡이 쪽으로 후리는 독특한 방식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런 특이한 검술은 동양쪽에서는 보기 힘들다. 서양에서 이토록 전쟁 기술이 발달할때, 동양에서는 뭔 일이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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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두정갑. 조선 초인 14세기 말부터 널리 사용되었다. 오히려 출현은 서양의 브리간딘이 14세기 초반으로 빠르다.

고려시대에도 썼는지는 자료가 없어서 모르겠다.)

 

한국 갑옷의 최종 태크는 중무장한 판금류 갑옷이 아닌, 이미 서양에서는 한물 간 두정갑이다.

그리고 이 두정갑과 비슷한 개념의 갑옷이 서양에서는 14세기 초반 브리간딘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왜 조선은 브리간딘의 개념 이상으로 갑옷을 발달시키지 못하고 머물렀을까, 이유가 뭘까?

왜 한국에는 온몸을 판금으로 중무장한 멋진 기사가 없을까? 

ad373509d4f07bce842b8799fcf53252fec232de300d72bfa74235aed373196f06473ad73d22d51453b8bacf3cce2136c6a6434826403fee930e265a42a.jpg이유는 간단하다. 승자총통때문이다.

 

저런 판금갑옷으로 발달되기 이전에 이미 최무선이 한반도의 전쟁의 개념을 물량전에서 화력전이라는 개념으로 바꿔놨기 때문이다.

화약무기 연구소인 화통도감은 1377년, 즉 14세기에 이미 고려에 등장했으며, 화약무기는 그 이전부터도 사용했었다.

(<고려사> <병지(兵志)>에는 공민왕 5년(1356)에 총통(銃筒)을 사용하여 화살(箭)을 발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고려의 화약무기는 고려말 왜구 격퇴에 아주 커다란 도움이 됬다.)

 

심지어 동양 전체를 놓고 보자면, 이미 화약무기는 13세기, 정확히는 1260년대중동에서 맘루크와 몽골군이 싸울때 최초의 핸드캐논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판금갑옷이라는 개념을 생각하기도 전에 갑옷을 박살내버리는 무기들이 보병용으로 보급되면서 서양처럼 극단적으로 방어력에 올인한 갑옷들이 등장할 기회가 없었다. 멋진 플레이트 아머도 화약무기 앞에서는, 그것도 보병용 핸드캐논 앞에서는 무용지물이기 때문.

 

심지어 조선 초의 토종(?)전법인 오위진법에 보면 이미 총통수가 등장한다. 다만 북방의 침략을 막기 위한 용도의 진법이였기에, 창병등 궁병등과 혼용해서 사용했다. 이보다 늦게 등장한 전열보병과 고대 중세의 백병전을 위한 진법들 사이의 과도기적인 진법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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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t-de-fer. 서양에서 100년전쟁(1337~1453)에 처음 사용된, 초기형 대포이다. 유럽에서는 1340년경에 최초 실전 사용했다고 한다.

유럽 ​​대포의 초기 형태를 기록한 그림은, "De Nobilitatibus Sapientii Et Prudentiis Regum", 1326작이다.

유럽 최초의 핸드캐논은 1326 년에 나타났으며, 생산이 됬다는 증거는 1327 년부터이다.)

 

100년전쟁 당시 유럽에서의 화약무기는 대인전보다는 공성용으로 주로 사용됬으며, 이에 백병전을 극도로 발전시키게 되어 기사가 등장한 것.

 

그러니까 결론은, 비교적 보병들의 대인전용 화약무기의 등장이 빨랐던 동양에서는 판금갑옷같은 (백병전 한정으로) 변태적인 방어력을 자랑하는 방어무기들이 필요 없었기 때문에 등장하지 않았다.

71개의 댓글

2019.10.16

물론 다른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동북아에 플레이트 아머가 없던 이유는 단 하나임.

 

우물 안 개구리라서.

 

조오금 더 좋은 말로 바꾸어보자면, 더 발전된 세상과의 교류가 부족해서. 우물 안에서 저희들끼리 행복하게 살고 있었어서.

 

플레이트 아머는 동북아에 완전히 없던 개념이 아님. 섬나라라는 특징으로 서구와의 교류가 더 많았던 일본에서는, 플레이트 아머를 극찬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함. 다만 당시에서는 다이묘나 쓸 법한 고가품이라 가성비가 맞지 않았음. 그저 사치품의 영역에서 머물렀을 뿐이지.

 

만약 초기 화약 시대에 동북아 국가들이 플레이트 아머를 생산할 필요와 능력이 되었다면, 적극적으로 그것을 생산하고자 노력했을 것이며 이는 전국시대를 거친 일본의 기록들이 증명함. 다만 동양에서는 서양에 비해 압도적으로 긴 평화기, 전문군이 아니라 주로 농민 집집병들으로 진행되는 전쟁 등의 요소로 인해 서구처럼 전문 병사들을 중무장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음.

따라서 기술도 발전하지 않았고. 그러는 시기 화약 시대는 성큼 다가와버림.

 

또 명/조선은 생각보다 추운 지역이고 특히 주적은 더 추운 곳에 사는 북방 유목제국들임. 특히 위의 여러 요소들 때문에 근세 동북아에서는 야전보다는 산성을 끼고 하는 화약병기/궁수들의 사격전이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음.

그런 상황에서 갑옷은 발달하기 힘들지. 체온 보호 목적도 겸하는 두정갑이 가성비상 싸게 먹힘.

2
2019.10.16
@합성캐

결국 정리하면 굳이 만들 필요가 없다인데

국토 대부분이 산지고 성벽을 끼고 싸우는 전쟁이 주류고 추운 조선에서 만들어서 입을 필요가 없다는거지.

만약 조선이 서양 열강과 교류가 많고 외세의 침략이 잦다고 해도 이 점은 변함이 없음. 우물안 개구리가 아니라 우물밖 호랑이라도 똑같다는 말임. 

 

조총을 조선 후기에 적극적으로 보급한 이유도 활에 비해서 요구 숙련도가 낮아서 많은 인원을 편제하기 쉽다는 이유인데 그런 흐름을 거스르고 소수의 정예 인원을 위해 플레이트 아머를 만들고 실제로 군사력이 증강되는 효과를 낳았다고 볼수 있을까?

 

13세기 유럽과 조선이 한판 붙는다고 해도 조선은 그들이 운용하는 화약병기에 큰 관심을 보이고 이걸 참고해서 기존의 화학병기를 개량하겠지 그들이 입고있는 플레이트 아머를 도입할거같진 않다 

 

0
2019.10.16
@gogogog

 서양 열강과 교류가 많고 외세의 침략이 잦아진다면 그쪽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다른 무기체계와 전술이 필요해지는 거지. 척계광이 왜구들을 토벌하기 위해 왜구들의 무기를 도입해 절강병법을 만든 것처럼, 동아시아 국가들이 서구의 침략에 자주 노출되었다면 결국 서구의 갑옷을 카피한 오스만처럼 서구의 발전된 무기체계를 도입할 수밖에 없었을 것임. 물론 그들도 동아시아의 전장에서 싸우기 위해 변화는 주겠지만. 기본적으로 발전된 서구의 군사기술이 주가 되는 형태일 것.

 

 초창기 플레이트 아머를 한반도 국가들이 도입하지 않을 거라는 건 플레이트 아머에 대한 편견이야. 플레이트 아머로 무장한 중무장 병력은 고대 그리스의 장갑 보병 이상으로 모든 전쟁에서 압도적으로 우월한 병력이었어. 적어도 16세기 전까지는.

 

 발전된 군사기술과 마주한 자들은 그 발전된 군사기술을 받아들이려고 한다는 것이 역사적 진실임. 두정갑은 동아시아의 특징을 잘 맞춘 갑옷이지만, 그 이전 시대의 플레이트 아머보다도 절대적 방어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능력이 된다면 동아시아 국가들도 당연히 플레이트 아머의 보급을 추진했을 것임. 대표적인 예시로 중동 이슬람 국가들을 들 수 있지. 태양 아래에서는 플레이트 아머가 뜨겁게 달궈지기 때문에, 중동의 사막에서는 비효율적인 환경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슬람 군주들은 서구와 로마에 대항할 마갑까지 갖춘 중기병 전력을 양성하기 위해 노력했고, 적어도 서구와의 전투에서는 그들의 갑옷을 쓸 수 있도록 보급했음.

 

  동아시아도 마찬가지임. 암만 두정갑이 동아시아 특화네 뭐네 해도, 결국 그건 가성비의 문제일뿐. 실제 전장에서의 효용 가치는 플레이트 아머의 압도적인 우위야. 냉병기 시대와 초기화약 시대를 통틀어서.

2
2019.10.16
@합성캐

병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중 하나가 가성비인데 그걸그냥 넘기면 어캄

3
2019.10.16

남아메리카(아즈텍)의 꽃 전쟁이나 흑요석 무기도 그 땅과 전쟁이 일어나는 환경에 맞춘 합리적인 선택이었음. 그러나 스페인 침략자들의 무기와 전술 앞에서는 그저 무력했지. 두정갑이나 조선의 화약무기도 정도만 다르지 마찬가지임. 당시 동북아의 환경을 반영해 진화한 결과이고, 필요 이상으로 비하할 필요는 없지만 추앙할 필요도 없음. 객관적인 전력 자체는 서구에 떨어짐.

6
@합성캐

박식추

0
2019.10.16

조선의 군사력 증강 및 화약무기 발전?

세조의 치세로 대체되었다

0
2019.10.16

시대, 주변정세, 지형특성, 자원

 

모든것의 콜라보

0
2019.10.16

개인적으론 봉건제가 아닌점과 군편제도 크게 한몫 했다고 본다 군 규모 자체가 국가 단위 규모 이기 때문에 소규모로만 교전해야 할 필요도 없고 마을단위 자위병력에 크게 의존할 필요도 없고 전쟁에서도 기사처럼 일반 병사들과 차별을 둘정도로 개개인이 뛰어난 전사가 크게 필요가 없었다는점에서도 굳이 기백명 정도만 입히게 위해 코스트 높은 갑옷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본다

0
2019.10.16

화력전 (대포 만들 구리 없음, 화약 만들 초석 없음)

0
2019.10.17

방어구가 플레이트까지 발전하는 과정도 재밌던데 써주라 ㅋㅋ

0
2019.10.17

대한민국 전국구 칼잡이 vs 조선시대 전국구 칼잡이

누가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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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7
@허언

총든 놈이이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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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7
@허언

고려시대 척준경이 이긴다

0
2019.10.18

플레이트 아머가 쇠퇴하는 과정을 보면, 이 갑옷이 왜 망하는 지 대충 알 수가 있는데....

플레이트 아머의 쇠퇴는 플레이트 아머 자체의 방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기 보담도, 가성비의 문제 때문에 퇴출된 것에 더 가깝다.

제대로 만든 플레이트 아머 자체의 방어력이나 효용성은 이미 여러 동영상에서 입증되었다시피 거의 무적에 가깝다.

하지만, 문제는 이 갑옷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이 워낙에 비싸서 대규모의 병력을 무장시키는 데에는 너무 어렵다는 데에 있다.

서양이 이런 갑옷이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다음과 같은데,

 

1. 전쟁이 동양에 비해서 굉장히 잦았다.

2. 갑옷을 입는 계급인 기사 계급 자체가 동양에 비해서 훨씬 소수고 귀족적인 부류에 속한다. 그 기사 양반들은 돈도 많았고....

3. 유교 문화권인 동양은 무사 계급 자체를 천시했으며, 대신 선비 계급이 더 발달한다.

 

자, 그럼 다시 플레이트 아머의 쇠퇴 과정에 대해서 아라보면....

플레이트 아머 자체는 당대에 무적에 가까운 방호력을 자랑했으나, 화약무기가 등장하고 이러한 화약무기들의 관통력에 대항하기 위해서 갑옷은 점점 더 두꺼워지고 무거워졌다. 그리고 그렇게 더 두꺼워진다는 것은 제작 비용도 더 비싸진다는 의미이며, 그리 무거운 갑옷을 입고 장시간 전투를 벌일 수 있는 무사들의 훈련은 또 다른 차원의 어려운 일이다.

그니까, 돈도 비싸고, 쓸 수 있는 사람조차도 얼마 없다는 거다.

 

반면, 유럽이 점차 봉건제에서 전제군주정으로 넘어가면서, 전투를 더 이상 소수의 기사들에게만 의존하지 않고, 국민군대를 징집하여 채워넣기 시작하는데, 이로 인하여 불어난 병력의 숫자를 보자면, 100년 전쟁 시 전투 하나당 동원된 병력의 숫자가 많아봐야 3만 안팎이던 정도 수준에서...루이 14세 제위 기간 동안 벌어졌던 9년 전쟁 동안의 총동원된 병력의 숫자를 보면, 프랑스는 40만이고, 동맹군이 35만이라고 한다.

물론 9년 전쟁은 전쟁 총 기간 동안 동원된 병력을 말하는 것이고, 100년 전쟁에서 든 인원은 전투 하나에 동원된 병력을 말하는 것이지만, 동원되는 병력의 단위 자체가 달라졌다는 점은, 전쟁의 양상 자체가 판이하게 달라졌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참고로 루이 14세 시절의 프랑스 육군 총원은 30만에 육박했다고 한다.)

 

이 막대한 규모의 군민군대를 무장시키기에 플레이트 아머라는 것은 말도 안되는 비용이 드는 것이다. 따라서 플레이트 아머류의 중갑은 대부분 그 정도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기사들이나 부유한 용병집단들에게만 허용되는 것들이었고, 국가로부터 징집되어서 배치된 국민군대는 이런 무장은 꿈도 꾸지 못한다.

 

"군대 무기에서 조총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어린아이도 항우를 대적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참으로 천하에 편리한 무기다."

숙종 조에 영의정을 지냈던 허적이 조총에 대해서 한 말이다.

화약 무기가 등장함으로서, 플레이트 아머가 쇠퇴하게 된 것은, 화약 무기가 다른 무기들에 비해 플레이트 아머를 손쉽게 관통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누구라도 플레이트 아머를 관통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100년전쟁 시기를 보더라도, 롱보우를 이용해서 플레이트 아머를 꿰뚫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플레이트 아머를 꿰뚫을 정도로 롱보우 시위를 당길 수 있는 사람들은 근력이 엄청나야 했고, 화살이 제대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적절한 사거리까지 들어왔을 때, 제대로 맞출 수 있는 숙련도가 있어야 했다. 알다시피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

(당시의 플레이트 아머의 품질 자체가 천차만별이기도 했고, 이에 따라 비싼 갑옷을 입은 기사들의 갑옷은 화살에 뚫리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갑옷을 입은 기사들의 갑옷은 화살에 뚫릴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반면, 화약무기는 그다지 비싸지도 않고, 1개월 정도만 훈련시킨다면, 어느 누구라도 사용할 수 있다. 징집병들의 낮은 숙련도와 근력의 불균형을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무기인 것이다.

 

그럼 정말로 화약무기가 등장하자마자 플레이트 아머는 순식간에 사라졌느냐?

뭐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플레이트 아머의 친척들은 아주 늦게까지도 살아남았다.

대표적으로 나폴레옹 전쟁의 흉갑 기병들을 들 수 있다. 사실 흉갑 기병들은 그 때 당시의 발달된 화약 무기에 대해서 그다지 큰 방호력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제대로된 사거리에 들어가면 흉갑 기병들의 갑옷은 권총 사격이나 막아내는 정도 수준으로, 전열 보병들의 화망 앞에서는 무력하기 짝이 없는 방호력을 지녔으나, 이들이 진가를 발휘하는 것은 다름아닌 대기병전이었다고 한다.

경기병들의 경우, 후방에 포진한 포병대를 급습하거나, 도망치는 적병들을 추격하여 끝장내는 데에 아주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다고 하는데, 이 경기병들과의 회전에서 흉갑 기병들은 흉갑의 방호력으로 인하여 꽤 높은 승률을 기록했다고 하며, 흉갑과 투구만 착용하면 되기 때문에, 비용도 풀플레이트 아머에 비해 훨씬 저렴하여 비교적 많은 규모의 기병대를 무장시키는 데에도 비용 부담이 훨씬 덜했다.

 

전쟁에 있어서 비용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근대 이후 유럽에서 금융이 크게 성장한 것의 배후에도 전쟁이 있다. 전제 군주들은 적국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금융가들로 부터 어마어마한 돈을 빌렸고, 이 막대한 부채의 이자만 갚는데에도 천문학적인 세금을 낭비해 국가가 망한 케이스들도 많다. (대표적으로 부르봉 왕조의 프랑스)

그런데 이러한 비용에서 비효율적인 무기 체계라면, 그 체계가 아무리 뛰어난 방어력을 지녔다 한들, 계속해서 중용될 수는 없다.

3
2019.10.19
@개소리꾼

글 잘쓰네 내가 딱 말하려고 하는 점이 딱 이거네

쌀의 압도적인 효율로 동시대 높은 인구수를 유지한 동양은 수십만명씩 동원한 전쟁도 자주 보이는데 그런 대규모 병력을 최대한의 효율로 무장할려면 가성비가 우선시될수밖에 없다. 조총이 대세가 된 이유도 양산하기 쉬워서인데 더 말할것도 없지. 아즈텍의 흑요석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기술격차를 보여주는 예고 조선시대가 무슨 청동기 시대도 아니고 기술격차가 나서 플레이트 아머를 안만든건 아니지

0
2019.10.18

엥 이거 다음 글 어디갔음

0
2019.10.18

내 생각엔 화약무기의 등장이 빨라서 라기보단 봉건시스템이 서양과 한반도가 달랐고 결정적으로 기사계급으로 대치될만한 계급이 한국에 없기도 하고 군사원정이 거의 없었다는점 때문에 중갑옷이 발달하지 못했다고 봄 중갑옷이란게 방호력도 방호력이지만 과시용으로도 통한다는걸 본 것 같기도 하고

0
2019.10.19

이런 글 좋다 넘모 재밌잖어~ 댓글도 다 읽게됨 ㅋㅋ

0
2019.10.20

한겨울에 플레이트아머 입어봐

0
2019.10.23

한반도에서 판금갑옷 입으면 여름엔 갑옷째로 통구이되고 겨울엔 갑옷째로 얼어 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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