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법학박사 램지어의 위안부 자료 왜곡 논문 사건 2편

법학박사 램지어의 위안부 자료 왜곡 논문 사건 

2편

 

본 글은 다음 글에서 그대로 이어진다.

『법학박사 램지어의 위안부 자료 왜곡 논문 사건』

https://www.dogdrip.net/308929390

이글부터 먼지 읽은 뒤 다음 글을 읽도록 하자

 

역사학과 전혀 무관한 법학박사 램지어는 역사학계 정설을 부정하는 위안부 관련 논문을 썼고 이 논문은 역사학계에서 학문적 진실성을 위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하버드 역사분야 교수들인 앤드류 고든과 카터 에커트 교수에 이어 다음 다섯명의 역사학자들도 램지어가 학문적 진실성을 위반했음을 지적한 논문을 썼다.

 

1. 램지어의 왜곡을 지적한 다음 다섯명의 역사학자들은 누구인가

 

해당 논문을 쓴 다섯명은 일본과 그 제국에 대한 역사학자 그룹이다. 이들이 하는 연구와 학술서의 분야는 성매매의 역사, 성의 역사, 이주와 제국의 역사, 태평양 전쟁의 역사, 식민지 한국의 역사이다. 이들에 따르면 이 논문은 다섯명의 만든 작품이지만 논문에 담긴 전문지식은 전세계 역사학자들과 동료들이나 훨씬 더 넓은 네트워크 내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다.

주석1

 

에이미 스탠리.PNG


에이미 스탠리

 

역사학 교수

노스웨스턴 대학

주석2

2007년 동아시아학 하버드 박사학위

 

에이미 스탠리 박사는 하버드에서 최우등(Summa cum laude )으로 동아시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에이미 스탠리 박사의 분야는 아시아 역사, 세계사, 도시역사, 젠더 및 성별에 대한 역사, 근대 일본사이다. 에이미 스탠리 박사는 2007년에 하버드 박사학위를 받고 여성/젠더 역사와 세계사 분야를 연구하는 일본 근현대사 분야 역사학자이다. 

주석3

 

한나 세퍼드.PNG

한나 셰퍼드

 

일본사 및 한국사 연구위원

케임브리지 대학교, Trinity College

주석4

2018년 하버드 역사학 박사학위

 

한나 셰퍼드 박사는 2018년에 하버드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와세다 대학(도쿄), 연세 대학교(서울), 큐수 대학(후쿠오카)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다.주석5

 

 

사야카 카타니.PNG

사야카 카타니

 

역사학부 조교수

싱가포르 국립 대학교

주석6

2014년 컬럼비아 대학 역사박사 

 

사야카 카타니 박사는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2014년에 역사, 국제와 세계사 분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구분야는 근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세계 아동과 청소년사, 근대 일본과 근대 한국이다.

주석7

 

 

데이비드 앰바라스.PNG

데이비드 앰바라스

 

역사학 교수

노스캐롤라이나 주 주립대학

주석8

1999년 프린스턴 대학교 역사학 박사학위

 

데이비드 앰바라스 박사는 1999년에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과 그 제국의 사회사를 연구한다. 2019년에는 앰바라스 박사의 연구는 2019년 국제 아시아 학술대회 인문학 도서에 후보에 올랐다.

주석9

 

 

첼시 샌디 샤이더.PNG


첼시 샌디 샤이더

 

경제학부 부교수

아오야마 가쿠인 대학

주석10

2014년 컬럼비아 대학 동사이아 언어와 문화 및 역사학 박사학위

 

첼디 샌디 샤이더 박사는 2014년 컬럼비아 대학에서 동아시아 언어와 문화 및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분야 역사학자이며 사회운동과 젠더 정치에 초점을 맞춘 연구를 하고 있다.

주석11

 

2. 램지어가 먼저 역사학계에 도발

 

램지어는 역사학계와 무관한 견해로 논문을 제기한 것이 아니었다.

 

1월 12일 기사에 나온 램지어는

"한국 위안부 노예화에 대한 주장은 역사적으로 진실이 아니다" 

"순수한 소설"

라고 말하며 ‘역사적으로 진실이 아님’(historically untrue)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주석12

 

이에 따라 다섯 역사학자들은 충격을 받았다. 왜냐면 일본군의 후원을 받은 위안부 구역에서 생존자들이 감금됐다는 걸 뒷받침하는 학술작업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주석12

 

역사학계에 먼저 도발한 건 램지어였다.

 

3.램지어 논문의 왜곡과 오류

 

1_자료 왜곡과 누락때문에 놀라다

 

램지어의 발언에 충격을 받은 다섯 역사학자들은 논문을 검토하다 또 놀라고 말았다. 왜냐면 왜곡, 사실과 다르게 전하기, 잘못된 방향, 역사관련 출처 누락 때문이었다.

주석13

 

2_과거와 다른 해석을 하고, 불쾌하거나, 정치적으로 불편한 역사 연구라도 존중하고 사려깊게 논의할 가치가 있으나 램지어의 논문은 ‘학문적 진실성’을 위반했다.

 

다섯 역사학자들은 이점은 분명히 지적하고 넘어가고 있다.

역사학자에게 다섯명에게 

'학자들이 과거에 대해 다른 해석을 하는 것은 높이 평가해야하는 것'이며 

그런 해석이 

'아무리 인기가 없고,' 

'불쾌하고', 

'정치적으로 불편하다'고 해도 

'근거가 좋은 역사연구는 존경과 사려 깊은 논의를 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다섯 학자가 보기에 램지어 논문은 그런 범주에 들어가지 않았다.

 

왜냐면 램지어 논문의 부정확성은 겉으로 들어난 오류 이상이다. 해당 오류들은 램지어가 쓴 논문의 주장을 완전히 훼손한다. 그런 이유로 다섯 학자들은 주장한다.

'그 논문을 철회해야 한다.'

주석13

 

다섯 학자들이 본 논문에서 지적하는 건 논쟁을이나 정치적, 법적, 도덕적 파급효과가 아니다. '학문적 진실성'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다.

주석13

 

이들은 다음 논문을 준비하며 미국역사협회(American Historical Association)의 '전문가 행동기준에 관한 성명서'를 인용했다. 주석13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역사행위에 대해 전문가로서 진실성은 자신의 편견에 대한 인식과 그들이 이끌 수 있는 모든 곳에서 건전한 방법과 분석을 따를 준비가 필요하다. 역사학자들은 조사 결과를 문서화하고 인터뷰를 통해 만든 모든 문서를 포함하여 출처, 증거 와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한다.

역사학자들은 본인들의 출처를 잘못 전달해서는 안 된다. 역사학자들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가능한 한 정확하게 보고해야 하며, 자신의 해석에 반하는 증거를 누락해서는 안 된다. 역사학자들은 표절을 범해서는 안 된다. 역사학자들은 그러한 거짓 또는 잘못된 사용을 무시하거나 숨기려는 노력이나 거짓 또는 잘못된 증거를 사용하는 행위에 대해 반대해야한다.』

주석13

(다만 별개로 학문적 위반행위도 개인마다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 짚고 넘어갔다. 주석14)

 

3_램지어는 증거가 없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일본의 전후에 허가된 성매매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여성과 사창가 업소간에 계약상 합의가 있다고 주장한다. 

성매매에 대한 계약은 에도시대(1600~1868), 메이지시대(1868~1912년), 다이쇼시대(1912~1926), 쇼와시대(1926~1986)에도 남아 있다.

 

그런데 램지어는 일본인 여성, 한국인 여성, 또 다른 여성들에 대한 '위안부 구역'에 대한 근로 계약에 대해 어떠한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실제 계약, 다시 말해 지급 및 서비스 조건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출처인 그런 그런 실제 계약서가 램지어 논문에서 완전히 부재한다.주석14

그리고 램지어는 위안부 구역에서 일하는 한국 여성들이 맺은 계약의 예시를 전혀 제공하지 않으면서도 이에 대한 사실을 논문에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또한 산만하고 간접적인 근거에서 어떻게 추정이나 일반화가 가능한지에 대한 방법을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다.주석14

 

또한 램지어는 본인이 제시한 간접 근거가 특이하기보단 대표적인 사례로 가정할 것을 읽는이들에게 요청한다. 그런데 그런 사례에서도 그런 여성들이 얼마나 돈을 받는지나 임기가 어느정도인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램지어가 인용한 자료들을 실제로 보면 그 여성들도 일의 실체에 대해 속았고, 일의 임기가 끝났는데도 자유롭게 떠날 수 없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주석15

 

이미 이런 문제들에게 대해 앤드르 고든과 카터 에커트가 지적한 바 있고 이에 대해 램지어가 인정해야한다는 점 역시 이미 두 학자가 지적하였다.주석16

 

4_10살 일본인 소녀에 대한 강제 성매매 사례를 허위인용

 

램지어는 위안부 구역에 일한 오사키라는 10살 일본 소녀 이야기를 인용하며, 본인이 논문에서 쓴 근본적인 주장에 대한 증거로 사용한다. 

 

그것은'여성들은 계약에 동의했다.', '많은 돈을 선불로 지불받았다.', 일찍 돈을 벌 기회가 왔다.' '근무 기간동안 자유롭게 떠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램지어는 10살 소녀 오사키를 이야기하며

'오사키가 10살일 때 한 채용 담당자가 그 여자아이에게 300엔을 먼저 주겠다고 말했다. 모집자는 그 여자를 속이려 하지 않았다. 그 여자는 10살이지만 그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주석16

 

실제 오사키의 증언에 따르면

'매춘부가 무엇인지는 짐작은 했지만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고 (매춘부 일은 아직 시작하지 않은) 우리도 묻지 않았다.' 나중에 업소에서 손님들과 섹스할 것을 처음으로 요구받았다. 이에 대해 오사키와 다른 여자아이들은 그것에 저항했음을 명백하게 증언하고 있다.

 

"너는 그런 일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우리를 여기로 데려왔고, 이제 너는 우리에게 손님들을 데려가라고 말한다. 이 거짓말쟁이!" 

 

그리고 첫날밤을 보낸 뒤에 상황을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우린 겁에 질려 있었다. 우리는 이것이 남자와 여자가 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너무 끔찍해서 믿을 수 없었다.

주석16

 

이것은 명백하게 램지어가 해당 증언을 근거로 주장한 '채용자가 그 여자들을 속이지 않았다'는 서술과 모순된다.주석16

 

또한 램지어는 '오사키에게 돈을 제공하는 모집자'를 설명하나 실제 증언을 보면 '모집자는 먼저 그 여자아이의 오빠와 그 문제에 대해 의논하고 돈을 제공했고, 오사키는 그 사실이 있는 뒤에야 동의했다고 증언하고 있다.주석16

 

그리고 램지어는 또 주장하길 여성들이 "열심히 일하며"돈을 저축할 수 있고, 계약기간이 만료되기전에 도을 벌고 사창가를 떠날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그 근거로 오사키 사례를 설명하는데 "열심히 일하면 한달에 100엔을 갚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논문에 썼다. 주석17

 

실제로 오사키는 열실히 일했고 한달만에 100엔을 갚았다고 증언했으나 본인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여부와 본인이 받은 급여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 같다고 증언했다.

 

'달마다 사장은 수입을 말하고 하였으나 어떻게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사장은 마음대로 장부를 조작할 수 있었다.' '우리가 잘하지 못한 몇달동안과 유별나게 고객이 많이 왔던 몇달동안 같은 월급을 받자 상황이 잘못되었음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또한 '고객을 차별하지않고 열심히 일했고 한달에 100엔을 갚았는데도 대출금 이자가 계속 늘어났다.'며 램지어의 인용과 전혀 다른 증언을 하고 있다. 주석17

 

오사키는 첫번째 고용주가 죽은 뒤 새로운 위안소 구역으로 가기 싫었고 배를 타고 도망쳤다. 램지어는 이것을 증거라 주장한다. 

'해외에서도 위안부 구역의 작업을 싫어했던 여성들은 갈 수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오사키는 두명의 "자매"들과 함께 배를 탔는데 이 때도 새고용주가 쫒아오고 있었다. 이들은 도망가고 있었다. 이들은 벗어나기 위해 한 여성 사창가 주인에게 자비를 구했다. 그러나 그 사창가 주인은 그들 중 한명만은 돌아가야한다고 설득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차아 주인은 투자한 것을 잃어버려 화가 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도망간 여성들은 지푸라기를 뽑아야했고 그 중 한명을 돌아가야했다. 결국 위안부의 여자들은 원하는데도 갈 수가 없다.주석17

 

램지어는 오사키의 증언을 증거로 사용했지만 실제 오사키의 증언은 램지어의 핵심과 완전히 모순된다. 10살 여자아이 오사키는 모집자에게 속았고, 성매매 직업이 뭔지도 이해하지 못했으며, 열심히 일한만큼 벌수도 없었고, 원하는데로 가버릴 자유도 없었다. 그런데도 램지어는 그 오사키 사례를 위안부 구역에 대한 일반적인 패턴이라 추정한다. 그러나 실제 10살 여자아이의 사례는 램지어의 일반화한 추정사례와 전혀 다르다.주석17

 

5_문옥주 씨 증언왜곡

 

문옥주 씨는 돈을 많이 모았고 그덕분에 저축을 해서 많은 돈을 모았다고 증언했다. 램지어는 이 증언을 근거해 '위안부들이 상당한 돈을 벌고 저축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인용했다. 그러나 실제 문옥주 씨 증언을 확인하면 그 돈은 위안부 주인이 준 것이 아니라 '팁을 받고 절약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다시말해 찾아온 사람들이 팁을 많이 준 것이지 위안부 주인이 보상한 것이 아니다.주석18

 

또한 실제 문옥주 씨 증언을 보면 램지어가 인용오류가 있음을 알 수 있는데 해당 증언에선 '완전한 자유는 아니지만 허락을 받으면 일주일에 한번, 아니면 한달에 두번정도 밖에 나갈 수 있었다.'고 증언한다.

 

그리고 실제 해당 문옥주 씨의 증언을 보면 문옥주씨는 만주에서 강제로 납치 후 인신매매를 당했다고 한다. 문옥주 씨는 16세 나이로 어느날 저녁에 친구의 집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일본인 하나, 조선인 하나로 된 헌병과 한국인 사복 경찰에게 제지당해 헌병 경찰서로 끌려가 다른 어린 여자 한명과 함께 하룻밤을 보내야했다. 그후 헌병과 다른 사복경찰에게 넘겨졌다고 증언한다. 그 뒤 문옥주씨는 다른 만주 토안성에 도착하고 나이많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구역ㅇ로 옮겨졌고 20여명의 다른 한국 여자아이들과 있게됐다. 문옥주씨는 거기서는 찾아온 남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야했다. 문옥주는 "나는 언제나 울었다. 하지만 내가 우는 만큼 남자들은 계속 찾아왔다."주석19

 

문옥주 씨는 하루에 20~30명의 일본군인과 헌병들과 성관계를 가져야했으며, 본인은 16살이지만 대구에서 인신매매된 다른 여자아이들중 일부는 14살~15살이라 증언했다. 그리고 문옥주 씨는 ‘필수품을 살 돈 말고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만큼 돈을 받지 못했지만 일을 해야했다.’고 증언했다. 주석19 문옥주 씨는 친해진 헌병 하나에게 '어머니가 아프다'고 말해 탈출할 수 있었다. 그뒤 문옥주씨는 결혼할 수 없는 처지가 됐고 이 때 일을 하기 위해 버마로 가는 일에 뛰어들게 되었는데 이때도 이 일이 위안부라는 언급은 없었다고 한다. 그 일에 뛰어든 여성들은 매점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배를 타고 도착한 뒤에야 그 일이 위안부 일이라는 것을 알게됐다. 문옥주 씨 본인은 이미 경험해서 '놀라면서도 말이 된다'고 생각했으나 '다른 여자아이들은 그런 일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탓에 이루말할 수 없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증언했다.주석20

 

또한 여자아이들을 데려온 사람들은 도착을 한 뒤에야 여자아이들에게 작업조건을 밝혔다고 증언한다. 마츠모토라는 자는 우는 여자아이들 앞에서 그제야 위안부 구역이라 밝히며 군인들을 섬기면 돈을 벌 수 있으니 이악물로 계속하라, 돈을 벌 수 있으니 열심히 일하라고 말하였다고 한다.주석21

 

문옥주 씨 증언 어디에도 위안부일을 알았다는 증거가 없다. 오히려 명백히 계약이 없었다 증언한다. 오히려 문옥주 씨 증언에는 '강제'와 '기만'을 나온다.주석22

 

그리고 램지어가 인용하지 않은 중요한 사실: 문옥주 씨는 우체국 저축으로 2만 5천엔을 모았지만 전쟁이 끝나도 돈에 접근하지 못했다. 1993년에 한 일본지원 단체는 문옥주씨가 돈을 돌려받는 것을 도와주려했으나 실패했다. 시모노세키 우체국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1952년 이후 문옥주 씨는 더 이상 일본시민이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주석22

 

램지어가 다루고 있는 사례는 오직 오사키 씨와 문옥주 씨 뿐이다. 이 두 사례는 일반화하는 근거조차 부족한데 그 일반화하는 근거로 사용된 근거인용조차 실제 인용을 왜곡한 허위인용이다.  주석22

 

6_미군정보원의 증거 왜곡

 

램지어는 미국정보원의 자료를 근거하여 한국 여성들이 계약에 맺고 그 작업을 하였다고 주장했다. 실제 미군정보원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 여성들은 계약을 맺었다고 나온다.

그러나 그 문서를 보면 위안부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추정한 것으로 나온다. 미군 문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42년 5월 초, 일본 요원들은 새로 정복된 동남아시아의 일본 영토에 있는 '위안부'에 한국 여성들을 입대시키기 위해 한국에 도착했다. 이 '위안부'의 성격은 구체적이지 않지만 병원 내 부상자 방문, 붕대 감기, 그리고 병사들을 행복하게 해주기로 추정되었다. 요원들이 사용한 유인책을 풍부한 돈, 빚을 갚을 기회, 쉬운 일, 그리고 새로운 땅 싱가포르에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전망.』

이 문서에 따르면 여성들은 성노동을 위해 계약에 동의한 것이 아니다. 램지어의 주장과 모순된다.주석23

 

7_일본 내부문서 인용 오류

 

램지어 한 자료를 'Naimusho 1938'라 언급하며 인용한다. 이에 따르면 '일본 여성은 2년 임기로 600-700엔을 지불받았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램지어가 제시한 자료는 실제 계약서도 아닌 견본계약서다. 그리고 램지어는 실제로 600-700엔을 지급받은 사례를 전혀 인용하고 있지도 않았다. 출처에서 검증할 수도 없다. 그리고 실제 문서들을 보면 민간 관리들의 우려가 나와있는데 '군대에게 일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모집자들이 여성들을 속여 중국에서 매춘을 시키기위한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는 민간관리들의 우려였다. 또한 '의심쩍은 남자 3명이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 주변으로 서성거리고 있다는 보고도 나온다며 관련 여성들이 제대로 동의하지 않았다며 걱정했다.

주석24

 

또한 램지어는 '위안부 구역'을 세심하게 규제하고 관리했으며, 일본 정부가 해당 시설에서 일하는 여성들에 대한 기만과 착취를 막기위해 결정했다고 주장했다.주석24

 

그런데 해당 실제 문서들을 보면 위안부 모집에 광범위한 불법행위가 벌어져 경고가 발령됐고 '납치'같은 방법이 사용됐다 서술된다.

위안부 모집 방식에 '유괴를 방불케 하는 모집 수법이 사용되어 경찰당국에게 체포된 사례가 있다'고 나와있다

주석25

 

8_"한국인 위안부 구역 관리인의 일기" 인용 왜곡

 

램지어는 한국인 위안부 구역 관리자 일기를 출처로 인용한다. 그런데 램지어는 이 때 실제 출간된 일간 자료가 아닌 블로그에 있는 PDF 자료를 인용하고 있으며 이 인용에서도 페이지를 전혀 적지 않았다. 그래서 다섯 학자들을 램지어가 인용한 출처가 무엇인지 찾느라 고생해야했다. 

주석26

 

그러나 램지어가 사용한 PDF파일을 보면 거기조차 여러 사례가 있다고 주장한다.

 

PDF  의 해당 자료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위안부들이 직장을 그만두거나, 휴가를 받거나, 집으로 돌아가는 사례가 많이 있었지만 버마에서 근무하게 된 뒤부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위안부 사업을 그만두는 게 쉽지 않았던 것 같다.

하루요와 히로코는 무라야마 씨의 위안부 구역에서 일했지만 남편과 함께 살기 위해 떠났다. 군수팀은 돌아오라고 명령했고 지금은 위안부로 일하고 있다.”

주석26

 

또한 해당 일기를 보면 여성들이 자신들만의 저축 계좌는 가졌으나 접수 담당자가 해당 여성들 대신에 예금을 했고, 고용주는 이런 방식으로 저축계좌에 강제저축을 하였다. 그리고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에 근거하면 일본 고용주는 강제저축을 한국인 근로자들의 도주를 막는 전략으로 사용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전쟁이 끝날 때 까지도 그 저축한 것을 절대 회복하지 못 했다.주석26

 

또한 해당 일기를 보면 위안부 여섯명에게 돈을 보내준 사례가 나오나 이것은 귀국할 때만 처리됐다. 귀국할 때 보내준 게 처음으로 돈을 송금한 것이었다.  또한 일기는 여성들이 돈을 받지 못 했다는 전보를 세통 받았음을 언급이 있는데 그 뒤 전보에 대한 언급이 없다. 주석26 일한 값이 강제로 저축되는 상황인 탓에 위안부들은 원하는대로 귀국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9_’12명이 위안부로 일하는 동안 527명이 무허가  매춘부로 일했다’는 주장

 

램지어는 논문에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였다.

'젊은 여성들은 수십년전부터 성매매를 위해 해외에서 일해왔다', '한국여성들은 무허가 매춘부 여성으로 일하기 위해 해외여행을 계속했다.'

‘12명이 위안부로 일하는 동안 527명이 무허가  매춘부로 일했다.’

주석27

 

램지어가 인용한 자료들을 논문 저자들이 찾아봤다. 거기 통계에서 'shakufu'('여자 바텐더' 무허가 매춘부를 뜻하는 말)에 대한 통계가 나온다.  'shakufu'는 527가구에서 고용했고 위안부는 12가구에서 고용했다고 나온다. 그런데 여기 통계에서 가르키는 건 가구의 숫자지 개인이 아니다.주석27  숫자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은 없다.주석27

 

그리고 통계에서 말하는 'shakufu'('여자 바텐더')가 무허가 매춘부를 가르키는지도 불분명한데 오히려 반대되는 문서가 존재한다. 1938년 2월 23일 일본 내부문서에 따르면 '상하이나 중국의 다른 지역에 있는 군 위안부 구역에서 일할 여성들을 모집할 때 기만적인 방법으로 모집'하는 행위가 존재했고 '기만적인 방식으로 여성들을 모집된' 피해 여성들을 가르키는 용어가 바로 'shakufu'('여자 바텐더')였다. 분명 이것은 일본정부의 내부 문서에서도 가르키는 용어였다. 주석27

 

10_학술서 인용 오류

 

램지어는 본인의 주장을 뒷받침하기위해 한국인의 학술서를 인용했다. 

주석28

 

램지어는 이들 연구를 근거로 하여 '한국인에 대한 매춘제도와 모집 방법에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 책의 주장은 다른데 실제 책에선  여러 자료를 근거로 오히려 '일본군의 관리를 받았다'는 결론을 내고 있다. 이들 학술서는 오히려 램지어의 주장과 반대된다. 그런데 램지어는 이들이 자료를 근거로 내놓은 결론(램지어의 결론을 부정하는 내용)에는 아무런 반박을 하지 않으면서도 이들 자료를 오히려 본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사용했다. 주석29

 

11_여러 인용 오류 사례

 

4쪽:

 

Park, 2014: 451. “Park, Yu-Ha, 2014. Teikoku no ianfu [Comfort Women of the Empire] (Asahi shimbun shuppan).”(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책은 336쪽이라 451쪽은 존재하지 않는다.

 

Fujinaga, 2004. [citation at top of column two] Fujinaga’s article (p. 147)

램지어가 인용한 통계와 출처의 통계가 다르다.

 

Footnote 4, Nihongun 2020. Works Cited reads “Nihongun, 2020. ‘ianfu’ kankei shiryo shusei [Collection of Materials Relating to the Japanese Military “Comfort Women”] (Akaishi shoten).” A similar title is listed under “Suzuki, Y., et al., 2006. Nihongun ‘ianfu’ kankei shiryo shusei [Collection of Materials Relating to the Japanese Military ‘Comfort Women’]. Akashi shoten, Tokyo).

2020년에 출판된 책중 비슷한 제목이 없다. 출처가 무엇인지 특정 정보가 필요하다.

 

각주4, Chosen 1906. Suzuki, et al. 

제목이 유사한 문서가 없다.

 

각주 4가 있는 단락

위의 두가지 출처가 존재하지 안기 때문에 해당 단락을 뒷받침할 출처나 증거가 없다.

 

Nihon yuran, 1932. 

텍스트로 된 인용문에는 "461쪽"이라고 쓰여있다. 허자먼 인용문헌에는 "858쪽"이라고 쓰여있다. 858쪽은 1932년 대만 총독부의 일반적 엔터테이먼트 산업에 대한 자료이다. 한국시장과 관련이 없다. 같은 책 461쪽은 위안부 구역에 관한 군사 문서이다. 한국의 매춘에 대한 문서가 아니다.

 

Nihon, 1994. This is: Song Yŏn ok, “Nihon no shokuminchi shihai to kokkateki kanri baishun” [Japan’s Colonial Control and the State Management of Prostitution], Chōsenshi kenkyūkai ronbunshū 32 (Oct 1994): 37-87. 
해당 정보는 63쪽이다. 램지어는 해당 통계를 한국 공동체에 대한 것이라 쓰지만 실제 책의 글에서는 그곳을 "평양"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Michiya, 1928. 

실제 책에서 나온 숫자와 인용된 숫자가 다르다.

주석30

 

5쪽:

 

Kitashina, 1938. This is: Murota Torao,  “Sainan yuki ryokaku no seigen teppai ni kansuru ken” [On Lifting the Limitation of Passengers Bound for Jinan], Mar. 1, 1938, in Suzuki, et al. (2006: 1-143).

이 출처엔 "한국에선 온 무허가 매춘부 81명"에 대한 언급이 없다.

 

각주 5, Takei (2012: tab. 6)

해당 파일에 인용된 정보가 없다.

 

“...많은 개혁가들도 모집자들이 젊은 여성들을 속여 위안부 구역에서 일하게 했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Senda, 1973: 89).

해당 페이지에 개혁가 또는 모집자에 대한 정보가 없다. 대신 88~89쪽에 도망 시도에 대한 정보가 있고 '위안부 구역에 데려온 젊은 조선 여성들이 충격(shocked )을 당했다'는 내용이 쓰여있다.

 

Senda, 1973: 89. [Second appearance on this page] 

해당 출처에는 그런 정보가 없다.

 

Yamashita, 2006: 675. 

실제 책에는 위안부 채용 당시 사용한 기만적인 방법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주석31

 

6쪽:

 

Footnote 7, Shina (1942). 

관련 페이지 번호는 13-15쪽이다.

 

Footnote 7, SCAP (1945).

관련 페이지 번호는 141-154쪽이다.

 

Josei, 1997: 1-19.

램지어가 사용한 주장과 실제 출처가 무관하다.

 

Naimusho, 1938.  This is: Naimushō keihokyoku, “Shina tokō fujo no toriatsukai ni kansuru ken (Chofuken)”, February 18, 1938 (Japan Center for Asian Historical Records [JACAR]: A05032040800; Japan National Archives call number: 平9警察00285100).
해당 출처는 여러 보고서와 명령서를 54 페이지라는 분량으로 편집한 것인데 해당 출처중 어디인지를 램지어는 지정하지 않고 있다.

 

Maree, 1943. Page numbers are 433-439. 

관련 페이지는 437쪽. 여성들의 이자는 강제 예금이 만들어진 뒤에 적용됐다.

 

KIH, 2016a.

"한국사 연구소"는 익명 블로그 제목이다. 이 블로그에는 이념적 의제를 논의하는 또 다른 웹사이트로 이어진다. 램지어의 글에는 웹사이트에 대한 설명이 없다.

 

Choe, 2017b.

해당 뉴욕타임즈 기사는 지배인 일기와는 관련이 없다.

 

Senda 1973 (26-27)

해당 내용은 1937년 말 일본인 100명의 일본인과 소수민족인 조선 여성 몇명을 상하이로 파견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내용이다. 이것은 1941년 아시아태평양 전쟁[전쟁과 전투가 벌어지는 무대를 뜻하는] 무대에 대한 증거가 아니다.

주석32

 

7쪽:

Mainichi shimbun (1944). The source is from the colonial government’s Korean-language mouthpiece, the Maeil sinbo. (Mainichi shinpo in Japanese). 해당 신문은 1944년까지 유일하게 남아있는 한국어 신문이다. 해당 출처에는 "우리나라는 우리를 필요한다"에 해당하는 표현이 없다.

주석33

 

12_출처가 개인의 익명블로그

 

램지어는 문옥주 씨의 증언을 인용했는데 그 출처는 자칭 '한국역사연구소'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역사연구소'가 아닌 익명의 블로그의 자칭이다. 해당 블로그는 2016년 4월부터 위안부 문제에 대한 39개 블로그 게시글로 구성되어있다. 램지어는 회고록이 아닌 익명 블로그의 미발표 번역문을 인용했다.주석18

 

또한 램지어는 조선인 위안부 구역 관리자 일기를 출처로 인용한다. 그러나 램지어가 인용하는 것은 실제 일기내용이 아니라 마찬가지로 블로그이며 역시 자칭 '한국역사연구소'란 익명의 블로그이다. 그 블로그 자료는 다시 역사 수정주의 사이트인 "역사 사실 전파를 위한 사회"의 PDF파일로 연결된다.

주석26

 

'역사연구 과정에서 익명 블로그르 인용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문젝 없지만 그 경우 인용정보를 명확하게 표시해 읽는이들이 정보의 출처를 파악하게 해야한다. 더군다가 특정 익명 블로그가 특정한 이념적 지향성이 있다면 그것은 더욱 중요하다.' 그리고 '원본 출처가 따로 있는데도 익명의 블로그에서 퍄편조각을 인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주석34

램지어 일베.jpg

https://www.dogdrip.net/309944763

 

4. 학문적 진실성을 이정도로 어긴 글은 동료평가를 통과하거나 학술지에 게재되면 안 된다.

 

램지어의 논문을 검토한 다섯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다섯학자들은 '글의 주장이 램지어가 인용한 출처로 뒷받침되는지 여부를 평가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다섯학자 증거를 제시했듯이 실제로 그러지 않는다. 

 

'램지어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부족한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생존자들의 증언을 알아보기 힘들정도로 잘못 설명한다.'

'중요한 주요 출처를 사용할 때 역사적 맥락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렇게하여 그것들을 잘못 해석한다.'

'램지어는 본인의 주장과 정반대 주장을 하는 역사학 학술 출처를 본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인용한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5명의 역사학자]는 학문적 위반 행위가 이정도 수준이나 되는 글을 동료평가를 통과하거나 학술지에 게재되면 안 된다 생각한다.'

주석35

논문.PNG

https://apjjf.org/2021/5/ConcernedScholars.html

 

5. 주석

 

주석1

Amy Stanley와 Hannah Shepherd와 Sayaka Chatani와 David Ambaras와 Chelsea Szendi Schieder,『“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 The Case for Retraction on Grounds of Academic Misconduct』 The Asia-Pacific Journal | Japan Focus | Volume 19 | Issue 5 | Number 13 | Article ID 5543 | Mar 01, 2021, 1쪽

(https://apjjf.org/2021/5/ConcernedScholars.html)

(https://apjjf.org/-Amy-Stanley--Hannah-Shepherd--Sayaka-Chatani--David-Ambaras--Chelsea-Szendi-Schieder/5543/article.pdf)

 

주석2

Amy Stanley와 Hannah Shepherd와 Sayaka Chatani와 David Ambaras와 Chelsea Szendi Schieder, 같은책 21쪽

 

주석3

https://history.northwestern.edu/people/faculty/core-faculty/amy-stanley.html

https://history.northwestern.edu/documents/people/faculty/cvs/cv-stanley.pdf

 

주석4

Amy Stanley와 Hannah Shepherd와 Sayaka Chatani와 David Ambaras와 Chelsea Szendi Schieder, 같은책 21쪽

 

주석5

https://www.ames.cam.ac.uk/people/dr-hannah-shepherd

 

주석6

Amy Stanley와 Hannah Shepherd와 Sayaka Chatani와 David Ambaras와 Chelsea Szendi Schieder, 같은책, 22쪽

 

주석7

https://nus.academia.edu/SayakaChatani/CurriculumVitae

 

주석8

Amy Stanley와 Hannah Shepherd와 Sayaka Chatani와 David Ambaras와 Chelsea Szendi Schieder, 같은책, 22쪽

 

주석9

https://history.ncsu.edu/people/faculty_staff/dambaras

 

주석10

Amy Stanley와 Hannah Shepherd와 Sayaka Chatani와 David Ambaras와 Chelsea Szendi Schieder, 같은책, 22쪽

 

주석11

https://aoyama.academia.edu/ChelseaSzendiSchieder

 

주석12

Amy Stanley와 Hannah Shepherd와 Sayaka Chatani와 David Ambaras와 Chelsea Szendi Schieder, 같은책, 1쪽

 

주석13

같은책, 2쪽

 

주석14

같은책, 3쪽

 

주석15

같은책, 3~4쪽

 

주석16

같은책, 4쪽

 

주석17

같은책, 5쪽

 

주석18

같은책, 6쪽

 

주석19

같은책, 7쪽

 

주석20

같은책, 8쪽

 

주석21

같은책, 8~9쪽

 

주석22

같은책, 9쪽

 

주석23

United States Office of War Information, “Japanese Prisoner of War Information Report No. 49” in Josei 1997 v.5, 203. Miscited by Ramseyer as “U.S. Office of War Information, 1944. Interrogation Report No. 49, Oct. 1, 1944, in Josei (1997: 5-203).” In our letter “Josei 1997” refers to Josei no tame no Ajia heiwa kokumin kikin, Seifu chōsa ‘jūgun ianfu’ kankei shiryō shūsei (Ryūkei shosha 1997) 5 volumes.

Amy Stanley와 Hannah Shepherd와 Sayaka Chatani와 David Ambaras와 Chelsea Szendi Schieder, 같은책, 9~10쪽에서 재인용요약.

그리고

Amy Stanley와 Hannah Shepherd와 Sayaka Chatani와 David Ambaras와 Chelsea Szendi Schieder, 같은책, 10쪽

 

주석24

같은책, 11쪽

 

주석25

같은책, 12~13

 

주석26

같은책, 14쪽

 

주석27

같은책, 15쪽

 

주석28

그것은 Kim Pu-ja and Kim Yŏng, Shokuminchi yūkaku: Nihon no guntai to Chōsen hantō (Tokyo: Yoshikawa Kōbunkan, 2018) 이다. Amy Stanley와 Hannah Shepherd와 Sayaka Chatani와 David Ambaras와 Chelsea Szendi Schieder, 같은책, 16~17쪽과 주석 45~46 참고

 

주석29

Amy Stanley와 Hannah Shepherd와 Sayaka Chatani와 David Ambaras와 Chelsea Szendi Schieder, 같은책, 16~17쪽

 

주석30

같은책, 18~19쪽

 

주석31

같은책, 19~20쪽

 

주석32

같은책, 20~21쪽

 

주석33

같은책, 21쪽

 

주석34

같은책, 18쪽

 

주석35

같은책, 21쪽

2개의 댓글

부활하셧군요

0

후원 받은만큼 왜곡을 해야되는데 그게 불가능한건 알고

결국 창의력을 짜내고 짜낸 결과가 개인블로그 인용

0
무분별한 사용은 차단될 수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추천 수 날짜
1208 [역사] 송파장과 가락시장 1 Alcaraz 3 3 시간 전
1207 [역사] 미국인의 시적인 중지 2 K1A1 11 1 일 전
1206 [역사] 역사학자: 드래곤볼은 일본 제국주의사관 만화 16 세기노비추적꾼 13 5 일 전
1205 [역사] 애니메이션 지도로 보는 고려거란전쟁 6 FishAndMaps 6 15 일 전
1204 [역사] [English] 지도로 보는 광개토대왕의 영토 확장 3 FishAndMaps 4 20 일 전
1203 [역사] 지도로 보는 우크라이나 전쟁 2년 동안의 기록 9 FishAndMaps 12 22 일 전
1202 [역사] [2차 고당전쟁] 9. 연개소문 최대의 승첩 (完) 3 bebackin 5 27 일 전
1201 [역사] [2차 고당전쟁] 8. 태산봉선(泰山封禪) 3 bebackin 4 28 일 전
1200 [역사]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 이야기 3 에벰베 6 29 일 전
1199 [역사] [2차 고당전쟁] 7. 선택과 집중 bebackin 4 29 일 전
1198 [역사] [2차 고당전쟁] 6. 고구려의 ‘이일대로’ 2 bebackin 4 2024.02.27
1197 [역사] [2차 고당전쟁] 5. 예고된 변곡점 1 bebackin 3 2024.02.26
1196 [역사] [2차 고당전쟁] 4. 침공군의 진격 1 bebackin 3 2024.02.25
1195 [역사] [2차 고당전쟁] 3. 몽골리아의 각축 1 bebackin 5 2024.02.24
1194 [역사] [2차 고당전쟁] 2. 당나라의 ‘수군혁명’ 4 bebackin 9 2024.02.23
1193 [역사] [2차 고당전쟁] 1. 서설 & 참고문헌 목록 2 bebackin 6 2024.02.23
1192 [역사] 광개토대왕의 정복 전쟁 애니메이션 맵 14 FishAndMaps 5 2024.02.16
1191 [역사] 비트코인 화폐론, 나무위키를 곁들인. 23 불타는밀밭 14 2024.02.13
1190 [역사] 역사) 한산, 망국을 막아낸 전투. 5 2NAUwU 7 2024.01.30
1189 [역사] 해리 터틀도브의 대체역사소설 열전 시리즈 1부 5 식별불해 6 2024.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