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는 한국 사회 전반에 메가톤급 충격을 주었다. 대중문화 또한 예외가 아니다. 갑남을녀의 마음을 울리는 가요는 더욱 그렇다.
6·25 당시 피난을 가지 못한 유호(1921~2019)는 서울 수복을 맞아 명동에서 박시춘(1913~96)을 만나 술자리를 갖는다.
그들은 밤새 술을 마시며 북진·통일·해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유씨는 “박 선생이 북진 통일이 임박했으니 이제 우린 살았다. 그러니 군인들의 사기를 돋울 노래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1절은 낙동강, 2절은 추풍령, 3절은 한강, 4절은 삼팔선으로 골격이 정해졌다.
하지만 노래는 1·4후퇴 즈음에 육군본부에 의해 금지된다.
진격의 노래이건만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2절)가 불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노들강변 언덕 위에 잠들은 전우야’(3절) ‘흙이 묻은 철갑모를 손으로 어루만지니’(4절) 등의
비극적 노랫말이 퇴각하는 한국군에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전우여 잘 자라’는 휴전 직후 복권되며 6·25를 대표하는 진중(陣中)가요로 남았지만 70년 전 급박한 전쟁터의 명과 암을 돌아보게 한다.
[출처: 중앙일보] [박정호 논설위원이 간다] 진중가요 ‘전우여 잘 자라’는 왜 금지곡이 됐나
12개의 댓글
무분별한 사용은 차단될 수 있습니다.
모루게쏘요
ㅇ이거 어떤 개붕이가 찾던데 ㅋㅋㅋ 알려주고 싶따
제 1900부대
참전용사 인터뷰보는데 방금전까지도 같이있던 전우가 포탄이 한발 터지더니 옆에있던 나뭇가지에 널려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꽃잎처럼 스러져간' 이라는 가사가 그다지 추상적이지는 않았구나 싶었더랬다....
악마지망생
포탄 터지면서 핑크색 연기가 팍! 터짐
대대본부중대장
포성이 멈추고 한송이 꽃이 피었네 평화의 화신처럼
나는 꽃을 보았네 거친(거칠은) 들판에 용사들의 넋처럼
오 나의 전우여 오 나의 전우여
이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면 내 너를 찾으리
오 나의 전우여 오 나의 전우여
이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면 내 너를 찾으리
realpolitik
전후 고무줄 놀이 노래로 사용되는데...
링잉블룸
저 사람들은 공산주의 막으려고 그렇게 죽어나가면서 대한민국을 지켰는데 후손새끼들은 북한에 뭐 못해줘서 안달남 ㅅㅂ ㅋㅋㅋㅋㅋ
진짜 역사에 아이러니가 아닐수없다
시드니여우
음. 과학이군.
루젠
너혹시 일베하니?
링잉블룸
북한욕하면 일베로 몰아가는 근첩새끼 등장 ^^
부정형물질
가까운 이웃, 가족에게는 못 배풀어도 북한에게는 무한정 베풀고 싶어하는 친구 등장
고사리
ㄹㅇ 북한욕하면 곧바로 일베 몰아감 이거 무서워서 살겠나
삥삥뽕뽕
머야 전선야곡 아니였냐! 고지전 재밌게 보긴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