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종대왕, 어머니께 둔갑술을 시전하다

 

브금

 

 

 

 

원래 조선시대 여제厲祭에 대한 글을 좀 긴 호흡으로 써보려고 논문들을 뒤적거리고 있었는데 재밌는 내용을 봐서 짧게 함 소개해보려고 함.

 

 

 

바로, 둔갑술遁甲術.

둔갑 무사부대 데브그루

둔갑술 하면 보통 이런 허무맹랑한소리...

 

 

 

 

사람으로 둔갑한 여우 ㅗㅜㅑ

여우 요괴나 쓸법한 판타지적인 소리라고 생각할텐데...

 

 

 

과학군주 세종대왕님이 무슨 나루토 등장인물도 아니고 둔갑술을,, 그것도 본인의 어머니(원경왕후)한테 시전했다니 그게 정말일까?

 

 

우선, 사료를 보자. 

 

 

 

 

양녕·효령과 함께 대비를 모시고 개경사에 가서 피병하다

임금과 양녕·효령이 대비를 모시고 개경사에 가서 피병(避病)할새, 술사둔갑법(術士遁甲法)을 써서 시위를 다 물리치고 밤에 환관 2인, 시녀(侍女) 5인, 내노(內奴) 14인만 데리고 대비를 견여(肩輿)로 모시어 곧 개경사로 향하니, 밤이 이미 삼경[三鼓]이라, 절에 가까이 이르러 임금이 다만 한 사람만 데리고 먼저 본사(本寺)에 가서 있을 방을 깨끗이 쓸고 돌아와, 대비를 맞아 절에 머문 지 나흘이 되도록 사람들에게 알리지 아니하고 낙천정 시위를 평상과 같이 하니, 안팎에서 그 향방을 알지 못하였다. 임금이 친히 약사 여래에 가 정성껏 부지런히 불공하고 중에게 시식하되, 병세는 오히려 감하지 아니하였다.

세종 2년 6월 6일 

 

임금과 양녕·효령이 대비를 모시고 도가류(道家流)의 중 해순(海恂)으로 하여금 먼저 둔갑술(遁甲之術)을 행하게 하고, 풍양 오부(吳溥)의 집으로 향하려 하였다가 잘못 길을 잃어 다른 집에 이르니, 집이 심히 좁고 누추한지라, 또 풍양(豐壤) 남촌(南村) 주부(注簿) 최전(崔詮)의 집을 찾아 가서 이에 머물러 기도하였으나, 병이 오히려 낫지 아니하였다. 上及讓寧、孝寧奉大妃, 令道流僧海恂先行遁甲之術, 欲向豐壤 吳溥家, 迷失路, 誤到他家, 家甚隘陋。 又尋豐壤南村注簿崔詮家, 乃留祈祝, 病猶未愈。

세종 2년 6월 10일 

 

 

 

 

 

  진짜로 실록을 보면 어머니께 본인이 직접 시전한 것은 아니고 '도가류(道家流)의 중 해순(海恂)' 이라는 사람으로 하여금 대신 시전하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도가류의 중 해순? 중이면 중이지 도가류의 중은 또 무엇인가 해서 봤더니 원문에는 도류승道流僧 이라고 쓰여있다. 다시 도류승에 대해서 검색을 해봤더니 논문 한 개가 나왔는데, 슬쩍 읽어보니까 도류승은 맹인으로서 도류(道流)의 업을 익힌 사람이 삭발하고 승복을 걸치고, 법명까지 가지고 있었던 승려라고 할 수 있는 존재였다고 한다. 그니까 머리는 빡빡 깎았지만 불교의 스님이 아니라 도교의 도사같은 느낌인데 둘 다일 수도있고 둘 다 아닐 수도 있고 아무튼 무언가 요상스런 유사승려들임. 

 

이 도류승들은 파보니까 정말 멋진데 다음 시간에는 도류승들에 대해 글을 써보도록 하겠음.

 

 

세종이 임금이되고 태종이 아직 상왕으로 있을때, 세종의 어머니이자 대비였던 원경왕후는 앓고 있었음. 다음은 둔갑술한 다음날의 기사임. 

 

 

 

 

 

상왕이 피병소에 거둥하다

상왕이 다만 근시 군관(近侍軍官) 10여 기(騎)를 거느리고 피병소(避病所)에 거둥하여 대비를 보고, 임금에게 음식을 권하고, 병조 당상과 도진무(都鎭撫)에게 명하여, 시위 군사를 거느리고 피병소에 나아가 1리(里)쯤 띄어서 장막을 치고 들에서 숙직하라 하니, 이에 이르러 군신이 비로소 임금의 계신 바를 알게 되었다, 상왕이 드디어 이궁에 돌아갔다. 원숙이 낙천정으로부터 이궁에 나아가니, 상왕이 명하여 피병소에 나아가라 하고, 인하여 말하기를, 

"대비의 병이 비록 전쾌하지 않으나, 언어와 형용은 여전하다." 

하였다. 원숙이 이에 나아가 문안하니, 임금이 숙과 대언 한 사람을 명하여 근처에 와서 시종하라고 하였다. 

세종 2년 6월 11일 무신

 

 

 

 

 

같은 날 실록에 따르면 세종은 이때 매우 크게 걱정하고 불안해하고있었던 것으로 보임.

 

 

 

 

 

도류승 14인을 모아 밤에 도지 정근을 베풀다

도류승(道流僧) 14인을 모아서 밤에 도지 정근(桃枝精勤)을 베풀었는데, 임금은 깊이 근심하므로, 정신이 흐리었고, 역마를 탄 자가 연락하여 그치지 아니하였다.

세종 2년 6월 11일 무신

 

 

 

 

 

   참고로, 여기에 나오는 도지정근은 말그대로 복숭아 나뭇가지 들고 귀신을 쫓는 도교 의식이었음. 복숭아 나무 가지는 귀신을 쫓는 힘(벽사의 힘)이 있다고 여겨졌다고 함. 원경왕후는 당시 말라리아(학질)을 앓고있는 중이었는데 이건 역귀가 일으키는 것이라고 여겨졌음. 역병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전염성이 있어서 옮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았을거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눈에 안보이고 옮겨다니고 붙고 떨어지기도 하는 귀신의 개념하고 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랬던거 같은데 이에 대해선 또 나중에 제대로 글을 써보겠음. 

 

  암튼 세종은 이때 본인이 직접 하루 온종일 복숭아 나뭇가지를 들고 어머니의 병이 쾌차할 수 있도록 기원했다고함. 마구잡이로 흔드는건 아니고 세종이 복숭아 나뭇가지를 들고 있으면 옆에 독경하는 사람(한마디로 주문외는 사람. 이 사람도 맹인 도류승이었을 것.)이 앉아서 계속 경전을 외다가 갑자기 나뭇가지가 흔들리면(귀신이 들어오면) 준비해둔 병에 귀신을 가둬 땅에 묻는 의식이라는데 과연 그때 정말로 이런과정을 거쳤는지는 안나와있어서 몰겄다 아마 안흔들려도 대충 형식상으로나마 흔들고 땅에 묻었겠지?

 

여기서도 도류승이 나오는데 아마도 이 도류승들은 소격전(조광조가 기를 쓰고 혁파하겠다고 한 소격서임. 이때는 소격전이라고 불림.)의 정식 관원(공무원)들이었을 것임. 최고로 실력있다고 여겨지는 베스트 라인업이었겠지.

 

마찬가지로 전날, 세종이 어머니의 병세를 낫게 하기 위해서 부른 이 해순이라는 도사도 아마 소격전의 정식 관원이었을 것임. 그 중에서도 소격전의 둔갑도류(遁甲道流), 또 그 중에서 최고의 실력자였겠지. 뭔가 무협지 같다. 

 

 

 

 

 

학질을 다스릴 자를 찾으라고 한성부와 유후사에 교지를 내리다

임금이 한성부와 유후사(留後司)에 교지를 내려 이르기를, 

"대비의 학질이 오래 되어도 낫지 않으니, 능히 다스릴 자가 있으면 장차 두터운 상을 줄 것이니, 널리 찾아 구하거든 역마를 주어서 보내라." 

하였다. 이 때에 대비 병환이 점점 심하여 가매, 임금이 주야로 모셔 잠시라도 곁을 떠나지 않고, 탕약과 음식을 친히 맛보지 않으면 드리지 않고, 병환을 낫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있으면, 어떠한 일이든지 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방술하는 자가 말하기를, 

"방소(方所)를 피할진대, 모름지기 시종을 간단하게 함이 좋다." 

하므로, 이에 시위하는 군사들을 다 보내어 한 사람도 가까이 하는 자가 없게 하였다.

세종 2년 6월 20일

 

 

 

 

 

며칠뒤의 이런 실록 기사를 보면 둔갑술이나 도지정근같은 행위들이 그렇게 효과적이진 못했던 것 같지만 여전히 방술하는 자(대충 점쟁이라고 생각하면 될듯)의 말을 따르는 등 세종은 민간신앙에 많이 의존하는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이 다음엔 밤낮으로 도술을 썼던 몇몇 도류승들에게 상으로 옷을 내리기까지 함. 세종은 왜 그랬던 것일까? 

 

 

둔갑술의 실체

 

  우리가 생각하는 둔갑술은 사람이 짐승으로 변한다던지 아니면 토둔 목둔 화둔처럼 뭔가 엄청난 차크라를 뿜어낸다던지 그런 획기적인 변신술인데 세종을 포함한 조선시대의 왕실구성원들 + 유학자 양반 엘리트 나리들은 과연 병신들이라 이런 것들을 믿었던 걸까?

 

  물론 아니다. 이 시대 사람들도 그런식의 둔갑술이 허무맹랑하고 말도안된다는 것 정도는 경험적으로 당연히 알았다. 그럼 도대체 아파서 죽을랑 말랑하는 원경왕후에게 아들인 세종은 왜 도류승 시켜서 둔갑술을 시전한 것일까? 그것은 아까전에 어렴풋이 말했던 질병=귀신 논리를 알면 매우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마디로 사람의 눈이 아니라 귀신의 눈을 피하기 위해 둔갑했던것이다.

 

도지정근이 직접적으로 귀신=역병을 잡아 쳐넣어서 봉인하는 식의 적극적 의료행위라면 반면에 아예 귀신=역병으로 부터 사람이 피하는 소극적 의료행위의 일환으로 둔갑술이 사용된 것이었다. 이것을 피병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도류승이 원경왕후보고 "어 뭐야, 이 귀여운 고양이 뭔데 개 귀여워 너무 귀여워 고양이 너무좋아"라고 말하면 세종이나 그 옆의 신하들은 도류승을 미친놈 취급하고 사형시키겠지만 귀신은 아니라는 거다. 

 

"어? 사람을 죽여야되는데 고양이였어 아 귀여운 고양이 죽일뻔ㅋ" 하고 착각해서 다른 데로 가버릴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둔갑술이나 도지정근같은 의식들도 세종을 비롯하여 당시 사람들에겐 그렇게 허무맹랑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나름의 논리적 타당성과 전통을 지닌, 어떻게 보면 당연히 해야하는 필수적인 의료행위 중 하나였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왜 과학군주라고 불리는 세종이 직접 복숭아 나뭇가지를 흔들고 어머니를 둔갑시켰는지, 왜 끝끝내 병을 치료하지 못한 도류승들에게 그래도 수고했다고 상을 내렸는지, 왜 아픈 어머니를 직접 모시고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밤을 지냈는지, 왜 점쟁이의 말을 듣고 방에 아무도 들이지 않았는지 우리는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복숭아 나뭇가지를 임금 본인의 손으로 흔들고, 이 집 저 집 모시며, 점쟁이의 말을 듣고 직접 혼자서 어머니를 봉양했던 것은 효심의 발로였으며, 최선을 다한 도류승들에게 의복을 하사한 것은 귀신을 상대하여 언제나 반드시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을 임금 본인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요약: 둔갑술은 변신술이라기보다는 귀신으로부터 숨는 은닉술이었고 세종대왕은 어머니가 병에 걸리자 역귀로부터 숨겨드리기 위해 도류승을 불러 둔갑술을 시전했다.

 

 

 

참고문헌:

정다함 (2009). 조선전기의 정치적ㆍ종교적 질병관, 醫ㆍ藥의 개 념범주, 그리고 치유방식. 한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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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내 티스토리 블로그 https://sickstarfiresun.tistory.com/169

 

3개의 댓글

2021.01.14

꿀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0

아 고양이는 봐 줘야지 ㅋㅋㅋㅋㅋㅋㅋㅋ 항상 좋은 글 고맙습니다

0
2021.01.15

야 왜 참고문언이 하나야!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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