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임진왜란 조선군 육지의 맹장들 3편 [고언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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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일본에서 발간된 소설 그림책 회본조선정벌기에 등장하는 고언백)

 

고언백(高彦伯) ??~1608

 

최종 관직 : 경기 방어사

 

 

고언백은 어떤 사람인가?

 

- 고언백은 교동의 향리였다. 궁마를 잘 다루었는데 적을 만나면 몸을 돌보지 않고 분격하였다. 공으로써 양주 목사 겸 경기 방어사가 되었는데, 진을 쳐 대전한 적은 없고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적으로 하여금 그가 있는 곳을 알지 못하게 하였다. 또 적의 형세를 잘 염탐하여 혹 야경도 하고 혹은 숲속에서 저격하였는데 자신이 사졸들보다 앞서서 싸웠으며 그가 쏜 화살을 적중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전후하여 헌괵한 것이 얼마인지 모를 정도로 많았으므로 적들이 매우 두려워하였다.

(선조 25년 임진(1592) 12월 27일(계축))

 

신립이 패하자 잔병들과 함께 군사를 모으다.

 

“처음에는 북병의 군관이 되었고 또 평안 병사의 군관이 되었으며 ... 임진년에 척후,장으로 신립을 따라 경상도에 갔다가 달천에서 군사가 패하고 장수가 죽은 뒤에는 신이 외로운 군사 50명과 함께 양주와 연천 사이를 출입하면서 장정을 불러모으고 있을 때 왜구는 이미 경성에 들어왔습니다. 신은 남은 군사를 이끌고 누원에 이르러 길에서 적을 만나 속희동까지 추격해 40명을 목베고 신 역시 6~7군데 창상을 입었습니다.”

(선조 30년 정유(1597) 1월 21일(임자) 선조와 고언백의 대화)

 

1차 평양성 전투에 참가하다.

 

- 공(이원익)이 고언백ㆍ문신언과 함께 전사 수백 명을 거느리고 밤에 강을 건너 적의 보루를 결딴냈는데, 죽인 적병의 수가 매우 많았고 빼앗은 말이 80필이었다. 적이 매우 놀라 육박전을 벌이게 되었는데, 사상자가 또한 서로 반반이었다.

(기언 제38권 / 동서기언(東序記言)

 

점령된 평양성에 잠입해 적들을 혼란시키다.

 

고언백이 밤에 평양에 들어가 적을 놀라게 하여 적의 무리 2백여 명이 저희들끼리 서로 쳐 죽이고 이로 인해 후퇴해 도망갔으므로 곧 그 사람을 등용하여 양주 목사로 삼았다고 한다. (난중잡록)

 

왕릉을 지켜내 승진하다.

 

- 비변사에서 아뢰기를..강릉과 태릉의 변은 실로 고언백이 공격하여 죽여 흩어지게 한 공으로 인하여 그 흉한 모의가 중지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참한 24급은 공이라고 할 것은 없으나 선조의 능묘가 이로 인하여 보전되었으니 매우 가상합니다.

(선조 25년 임진(1592) 12월 22일(무신))

 

-임금이 특별히 당상관으로 올려 양주 목사에 임명하고 능침을 보호하라 하였다. 고언백은 장사를 모집하여 산꼭대기 험한 곳에 모여 있으면서 때때로 나와 뒤떨어진 적군을 습격하였다. 적군은 대군을 풀어 수색하였으나 언백이 기회를 엿보아 잘 피하고 숨었으므로 끝내 그를 해치지 못하였다. 고언백은 항상 여러 능에 복병하였다가 때때로 적군을 쏘아 죽였다. 그러므로 적군이 일찍이 태릉을 침범한 적이 있었으나 고언백이 쫓아버렸으므로 여러 능이 온전할 수 있었다.

 

*해당 전투를 노원평 전투라 부르며 행주대첩 만큼이나 큰 승전이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본 작성자는 판단을 유보하도록 하겠습니다.

 

벽제관 전투에서 선봉으로 싸우나 패배하다.

 

- .. 당시 경성에는 아직 수만의 적이 있었는데, 제독(이여송)이 먼저 보낸 사대수ㆍ조승훈 등이 정예기병 3천여 명을 거느리고 우리 나라의 방어사 고언백과 함께 가다가 영서역앞에서 적을 만났다. 사대수는 고언백과 함께 군사를 풀어 급습하여 적의 수급 6백여 급을 베었는데, 여러 장수들은 이로 인하여 더욱 적을 가볍게 여겼다. ..

(선조 26년 계사(1593) 2월 5일(경인))

 

- 총병이 군사를 거느리고 엄습하자 적들은 당하지 못하고 흩어져 달아나다 거의 다 참획되었고, 고언백의 군대도 사살한 것이 많았습니다.

(선조 26년 계사(1593) 2월 10일(을미) 유성룡의 보고)

 

또 다른 용장인 김응서와 서로 반목하여 권율의 골치를 썪이다.

 

- 도원수 권율이 장계하기를,

“김응서는 젊은 나이로 용맹이 있는 데다 왜인의 인심을 얻었고, 고언백은 군졸을 사랑으로 보살피며 또 훈련하는 일을 열심히 합니다. 다만 언백과 응서가 서로 좋아하지 않아 사사 건건 의견을 달리하는 사이인데..

(선조 27년 갑오(1594) 6월 4일(신해))

 

- 도원수 권율이 치계하였다.“모든 장수가 화목하지 못한 것이 참으로 작은 걱정이 아닙니다. 일찍이 이 뜻을 아뢰었으므로 여러번 간곡하신 전교가 내렸고 신도 반복해서 타일렀더니 고언백과 김응서 등이 비록 전의 유감을 다 풀지는 못했으나 서로 맹세하며 협동하기로 기약했었습니다. 이제 들으니, 원한이 전보다도 심해서 서로 해를 당할까 의심까지 한다 합니다. (생략)

(선조 27년 갑오(1594) 8월 9일(갑인))

 

적장 가토 기요마사의 암살을 건의하다.

 

경상 좌병사 고언백이 치계하기를,

신이 이달 20일에 사졸들과 더불어 무술을 겨루고 있을 때 항왜 주질지(酒叱只)ㆍ학사이(鶴沙伊) 등이 신의 좌석 앞으로 돌진하여 좌우를 물리치고 은밀히 말하기를 ‘우리들은 이미 본국을 등졌으니, 조선 사람이 된 것이다. 이미 조선 사람이 되어 조선에서 옷도 입고 밥도 먹으니 무슨 일을 해야 하겠는가. 우리들은 마땅히 적의 괴수를 베어서 우리들의 뜻을 보이려고 한다.

...(중간생략)...

또 3월 3일에 청정이 반드시 임랑에 갈 것이니, 그때가 거사할 만한 기회다.’ 하기에, 신이 답하기를 ‘만일 일이 성취되면 마땅히 전하에게 주달해서 너희에게 높은 벼슬을 제수하여 자자손손이 영화와 복록을 길이 누리게 할 것인데, 모든 말이 어찌 너희들의 진정이겠느냐.’ 하고, 또 거짓으로 ‘조선은 본래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다.’고 하며 이익될 방향을 타일렀더니, 그 항왜들은 스스로 피를 내어 혈서로 맹세하는 글을 써서 바쳤습니다.”

(선조 28년 을미(1595) 2월 29일(임신))

 

정유재란 때에도 계속해서 공을 세우다.

 

- 고언백은 성주 목사 이수일ㆍ별장 문신언 등과 함께 성주 등지에서 싸워 21급을 베었고..

- 도원수 권율이 치계하기를, ..(중간생략).. 방어사 고언백 등이 합세하여 돌격해서도합 13급을 참획하였으므로 올려보냅니다.

 

임난이 끝나자 교만함을 이유로 파직당하다.

 

비망기로 정원에 제수의 명을 받고도 올라 오지 않는 경기 방어사 고언백에 관해 전교하다

- 사간원이 무사들의 교만함과 경기 방어사 고언백 명시령 민완을 파직할 것을 아뢰다

- 정언 임수정이 와서 경기 방어사 고언백을 국문할 것과 수원 독성의 수성장 이여염을 파직시킬 것을 아뢰다

- 장령 권경우가 경기 방어사 고언백의 파직과 함종 현령 홍준의 추고를 청하다

- 사헌부가 경기 방어사 고언백의 파직을 청하다

- 사헌부가 잇따라 경기 방어사 고언백의 파직 건을 아뢰니, 상이 따랐다.

(1599년 2월 ~ 9월 까지의 기록들)

 

선무 3등 공신에 책정되다.

 

- 정기원ㆍ권협ㆍ유사원ㆍ고언백ㆍ이광악ㆍ조경ㆍ권준ㆍ이순신(李純信)ㆍ기효근ㆍ이운룡

 

광해군에게 숙청당하다. 공신에서 제외되다.

 

- 지평 민덕남, 정언 이사경 등이 아뢰기를,

“무장 고언백ㆍ박명현 등이 은밀히 이심을 품고 있으니 급속히 잡아다가 가두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답하였다.

 

- 고언백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다.

 

“신은 본디 향리의 자손으로 평시에 과거에 급제하여 변장도 지냈고 경직도 지냈으며 군관으로 아홉 번 부경했었습니다. 임진 왜란 때 왜적이 바다를 건너온 뒤 신립의 척후장이 되어 적의 수급을 바쳤었고 해령에서의 싸움에서 적의 수급을 베었으며평양에서는 야격 대장으로 대동강의 왜적 7진 1천여 명을 격파하였고 추격하여 공격한 것이 12진이었으며 또 중화에서 싸워 수급을 베었습니다. 양주 목사로 나아가서 왜적에게 투항한 백성 6천여 인을 효유하여 모아서 날마다 왜적과 싸웠으므로 왜적이 진을 거두어 성으로 들어간 곳이 일곱 군데나 되었습니다. 주상께서 돌아와 이천에 머물면서 하서하여 포유하기를 ‘평안도가 지금까지 보존된 것은 고장(高將)의 공이다. 경성을 수복하는 것도 또한 장군에게 달려 있으니, 태만히 하지 말아서 후세로 하여금 그대의 이름을 죽백에 쓰게 하라.’ 하였습니다. 또 특별히 방어사에 제수하여 경상도로 내려가 함안에서 싸웠고 또 본도의 병사가 되어 청정(가토 기요마사)과 울산에서 대진(對陣)하여 8, 9년 사이 2백 57번을 싸웠으니, 매달 싸운 것이 20여 번을 밑돌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전후 망극한 은혜를 받았고 피를 마시고 함께 맹약하기에 이르렀으므로 나이 60여 세에 이르러 지위가 정2품에다 봉군이 되기에 이르렀으며, 녹봉은 부자가 받는 것이 1년에 60여 석이나 됩니다. 따라서 무슨 부족한 것이 있어 왕자군의 집에 출입하면서 불칙한 일을 모의하겠습니까. 기해년에 경기 방어사로 있을 때 임해군에게 한 번 가서 배알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뒤 임해가 사람을 시켜 환도를 요구했으나 응부하지 않자 임해가 대로 하였으므로 그뒤로는 만나지 않았으니, 교결하여 복심이 되었고 은밀히 이심을 품었다는 것은 전혀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 사헌부가 아뢰기를,

“청림령, 고언백 등은 모두 지극히 흉패한 사람으로서 역적 이진의 심복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강인하고 거세게 형장을 참아내어 끝내 굴복하지 않고 죽었으니, 실로 역당의 괴수입니다.

 

- “고언백ㆍ박명현이 역적 무리의 심복 장수로서 흉폭하고 잔인하여 자복하지 않고 죽었으나, 그들의 속셈은 역적들의 공초에 여지없이 드러났으니, 훈적(勳籍)에 그대로 둘 수 없다. 그들의 이름을 모두 삭제토록 하라.

 

고언백의 용맹에 대한 당대의 평가들

 

- 이시언, 김응서, 고언백, 이광악은 크고 작은 싸움을 백여 차례나 치르는 동안에 일찍이 좌절한 적이 없었고, 한마의 노고와 참획한 것이 많기로 항상 여러 장수의 선두가 되었다. (백사집)

 

- 본국의 여러 장수 이빈, 고언백, 홍계남, 선거이 등도 범이나 표범이 산속에 있는 듯한 위세를 힘입어 패잔한 군졸들을 거두어 의령ㆍ울산ㆍ경주 사이에서 각기 지키면서 날마다 혈전을 벌였습니다. (서애집)

 

- “그대는 서생으로서 전쟁터에 임하여 돌격하는 것은 그대의 장기가 아니다. 부하인 양주 목사 고언백이란 자가 용감히 싸움을 잘하므로 그대는 다만 군병만 수습하고 실제 전투는 고언백이 하는 것이 옳을 것이오.” (서애집)

 

- 우리 나라 군사 중에 중국군과 협력하여 기각의 형세를 이룰 자는 다만 권율ㆍ고언백 등 몇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선조 26년 계사(1593) 2월 11일

 

- 그러나 현재 적의 기세는 결코 우리 나라의 병력만 가지고 감당하기는 어렵습니다. 박진ㆍ고언백ㆍ이시언 등이 아무리 명장이라고 하나 그들이 거느리고 있는 병력이 몇백 명도 채 되지 못하니, 선조 26년 계사(1593) 5월 27일(경진)

 

- 우리나라에 흥복의 조짐이 여섯 가지가 있으니,..

..육전에 김응서ㆍ고언백ㆍ홍계남 등의 용맹한 장군이 있는 것이 그 여섯 번째입니다.” (약포집)

4개의 댓글

2021.01.08

재밌다 정기룡도 부탁한다

0
2021.01.09

ㅠㅠ...

0

갓기룡장군이 아녔군

0
2021.01.09

게릴라 대장이었네ㅋㅋㅋㅋ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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