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중국 왕조사, 춘추시대(春秋時代)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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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나라가 호경(시안)을 잃고 동쪽 낙양으로 도읍을 옮긴 뒤

진시황제가 통일하기 전 까지의 기간을 춘추,전국시대라 합니다

 

다른 말로 동주(東周)시대라고 하는데 말이 주나라지 그냥 이름일 뿐이고

그냥 많은 국가들이 각자도생한 시기죠

 

왜 그리 부르는지 그냥 쓸데없이 알아 보면  

주나라의 낙양 천도 이후의 시기를 나눠서   

전반부는 춘추(春秋)라는 역사책을 따라서 춘추 시대라 부르고    

후반부는 전국책(戰國策)이란 역사 책을 따라 전국 시대라 부릅니다

 

춘추(春秋)란 춘하추동 계절의 변화 즉 시간의 흐름을 말하는 역사의 다른 말입니다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을 만들던 기관의 이름이 그래서 '춘추관'이죠

 

원래 노(魯)나라 역사책으로 공자님이 주석을 달아 유교 경전의 반열에 오른 책이죠

역사를 배우려면 꼭 알아야 하는 서적으로 해커스 토익 또는 수학 정석이랑 비슷하다 보면 됩니다

관우가 항상 한손에 들고 있는 책이 이 책에 주석이 달은 '춘추좌전'입니다 

흔히 문무를 겸비했단 상징으로 표현되는 아이템이죠. 

 

노나라는 상나라를 멸한 주무왕의 동생 주공이 봉해진 국가입니다 

주공은 주무왕이 죽자 어린 조카를 대신해 섭정으로 주나라를 다스렸죠

다들 그가 왕위를 찬탈할거라 봤는데 안했습니다. 

알고보니 레알 선비였거든요

진짜 섭정만 하다 제도와 예법을 정비하고는 시크하게 노나라로 돌아갔어요

그래서 공자가 여기에 뻑이가 일평생 주공 빠돌이로 흠모했습니다 

 

그런 노나라 역사책이니 선비기질 농후하게 담아 주석서를 만들었죠

대의 명분 중시, 옳고 그름의 비판, 술이부작(서술하되 창작하지 않는다) 등등 

이런 공자의 역사 편찬 원칙은 공식표준이 되어 장장 2천년간 동아시아에서 써 먹었고 

이 역사 원칙 '춘추필법'이라 부릅니다  

 

이 춘추라는 역사책은 당시의 노나라의 상황만 담은게 아닙니다

노나라와 교류한 주변 제후국의 역사를 모두 담았으니 시대를 모두 담은 역사 책입니다

또한 노나라가 역사를 편찬했단 의미는 제후국에서 별도의 역사책을 만든다

즉 주나라 중심 세계가 와해 되었단 뜻이죠 시대구분으로 쓰기 좋은 이유입니다.

 

전국책이란 서적은 한나라 때 만들어진 서적입니다

삼진(三晉)이 분열 된 이후 벌어진 각종 모사들의 책략과 이야기를 모은 책이죠 

중원의 강력한 국가인 진(晉)나라가 위(魏), 조(趙),한(韓)으로 나뉘어진 삼진(三晉)분열은

결국 대부(大夫)에 불과한 일개 신하가 주나라 종법질서에 따라 임명된 제후를 힘으로 몰아낸 사건입니다

하극상으로 주나라 봉건제가 최종적으로 무너진 것이죠

과거 사회질서가 모두 재편된 시대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따라 이 시대를 전국시대라 부릅니다

 

진(晉)나라와 비슷한 이유는 제나라에서도 있었죠

제후인 강씨를 대신해 대부(大夫) 전田씨가 왕이 되었습니다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전국시대를 나누는 입장도 있습니다

진(晉), 제(齊)모두 이 시대 중요국가이지만

더 중요한 삼진(三晉)분열을 보통 기준으로 삼습니다.

 

춘추시대를 기원전 770년~ 기원전 403년

전국시대를 기원전 403년~ 기원전 221년

 

물론 위의 연도는 전혀 쓸데없는 구분입니다. 

실제로는 그 누구도 이 시대를 두고

언제가 춘추시대고 전국시대인지 연도로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 합니다

 

춘추 역사는 기원전 722년~ 기원전 481년까지 기록

삼진 분열이 사실상 완료 된 건 기원전 453년

주나라에 공식승인을 받은 건 기원전 403년

제나라 전씨가 나라를 먹은건 기원전 386년

이렇게 제 각각인데 뭐가 맞는지 누가 알까요

 

그냥 삼진 분열 이후는 전국시대 라고 대충 뭉뚱그려 때려 맞춥니다 

그러다 그 조차도 귀찮다 싶으면 그냥 죄다 퉁쳐서 선진시대(先秦 진시황 이전)라고 부릅니다  

 

춘추,전국시대 이름 부터 쓸데없는 사족이 너무 길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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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지도의 빨간 점들이 춘추시대 국가들의 위치와 이름입니다

 

이 시대 국(國)이란 곧 도시를 말한다고 지난 번에 말씀 드린 바 았습니다

이 때의 국가들은 국경이란게 없습니다

그냥 지도에 빨간 점으로 표시한 작은 성읍 하나가 곧 국가인 것이죠

 

국가와 국가 사이에는 광활한 숲이 존재를 해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들판에는 야인들이 거주했으며 이민족과 이주민들이 자유롭게 이동했죠 

심지어 군대도 수시로 통과를 했습니다 

그렇게 서로 떨어져 조용히 살아가던 나라들이 서로 충돌하고 전쟁을 하게 되었으니

 

철기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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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나라는 청동기 시대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청동기와 철기를 무기의 변화로 구분하며 이렇게 배우죠 

철기가 더욱 더 강력하지만 철의 녹는점은 청동기 보다 높아 만들기 어렵다 

때문에 청동기보다 우수한 철기가 나중에 만들어 졌다

 

하지만 실제는 좀 다릅니다

이 시대에 만들어진 금속기의 경우

사실 청동기 무기가 철기 무기보다 더 우수했습니다

 

당시 야금기술의 수준은 초보적인 단계로  

철을 지금과 같은 탄소강으로 단단하게 만들던 것이 아니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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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기 역시 그냥 주물로 녹여서 만들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철기의 경우 청동기 보다 질이 매우 떨어졌습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청동기와 철기의 차이점을 깊게 배울 수 없어 

고작 금속의 녹는점 온도 차이다 라고 단순 무식하게 암기 하기에

철기는 그냥 철광석을 녹여서 만드거라 종종 착각을 하게 됩니다.

그건 제철이 아니라 그냥 환원이라 합니다  

 

실제 그것도 현대 중국에서 대약진 운동 때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중국인들이 손에 손잡고 모두 미쳐 버린 시절  

고작 철강 생산량을 통계상 올려 보겠단 발상으로 

가정집 마다 마을 마다 소위 제철을 한다고 철을 모아서 죄다 녹이는 미친짓을 했죠

그렇게 만들어진 철은 죄다 그냥 깨져버렸고 고철이 되었습니다

전 국민이 삽질을 하고 함께 망해버린 기막히게 황당한 일화죠

 

물리현상은 춘추시대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 당시 조잡한 제철 기술로 만들어진 철제무기는 역시 매우 조잡 했죠 

때문에 청동기와 부딪치면 청동 무기는 휘어졌지만 철기는 그냥 부셔져 버렸습니다

우리가 아는 철제무기, 단철의 개념은 훨씬 나중에 제철기법이 발전한 이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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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왕 구천의 청동검)

 

지금의 상해 주변 지역인 오,월 지역은 청동검을 잘 만들기로 유명했습니다  

명검의 장인 간장, 막야의 전설이 그런 사례죠.

춘추시대 월왕 구천의 청동검이 지금도 실존하여 내려오는 중입니다

아직도 날이 살아서 종이도 자를 수 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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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진나라의 경우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 하는 그날까지

청동검을 주력 무기로 사용하였습니다

 

지금 시안의 병마용 박물관에 가보면 병마용에서 출토 된 진나라 청동검을 전시중입니다. 

그 앞에 설명서에는 크롬도금 기법으로 표면을 처리했다고 

주물 기법으로 제작 했음에도 강도와 경도를 매우 우수하게 만들었다라고 설명하죠

이런 야금기술은 서구에서 1930년대에 가서야 독일에서 겨우 가능 했다며

국뽕 당당하게 써 놓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최근 이처럼 중국이 자랑하는 크롬 도금기법은 실제 기술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냥 병마용이 매장 된 토지에 크롬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출토 유물에 우연히 뭍어 있었을 뿐이라는!

충격적인 연구가 나와서 논쟁 중이기도 합니다

그게 진위가 어찌하던 현대 중국이랑은 전혀 관계 없기에 쓸데없는 논쟁일 뿐이지만

은근히 이런거에 목숨거는 사람들이 많죠 

 

춘추시대 진(晉)나라, 진秦나라 등은 병사들이 청동무기를 썼지만

북방의 연(燕)나라 남방의 초(楚)나라는 철제 무기를 사용했습니다   

청동무기를 쓰는 나라와 철제무기를 쓰는 나라가 동시대 붙어서 전쟁을 하던 시대죠  

당연히 철기를 쓰는 연나라, 초나라의 기술력이 중원의 국가들 보다 우수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들은 변방이라 중원의 부유한 국가들처럼 구리, 주석 같은 다양한 금속재료를 쉽게 구할 수 없었기에

어쩔수 없이 철제무기를 쓴 것 뿐입니다

 

그럼 철기시대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철기의 경우 당장은 그 성능이 청동제 무기에 떨어질지 모르지만

철의 최대 장점은 매우 흔하고 싸고 쉽게 구할 수 있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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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기시대의 가장 큰 변화는 생산도구로써의 효용입니다. 

바로 철제 농기구 철제 도구를 대량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단 것이죠

 

청동기의 재료는 구리와 주석으로 원재료가 귀할 뿐만 아니라 산출량이 적은 금속입니다. 

때문에 소수 지배 계급의 장신구 또는 무기로만 썼습니다

우리가 무덤에서 청동제 장신구와 무기를 그토록 많이 발견하게 되는건

그런 유물이 죽어서 무덤까지 가져 갈 정도로 귀한 금속이었단 의미입니다.  

 

그런 청동기 시대에는 일상에서 쓰는 도구나 농기구 등에 감히 청동을 쓸수 없었죠

 

아니 불가능했습니다

때문에 도구는 여전히 석기, 목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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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류의 중요 청동기 문명이 큰 강 주변에서 발생해야만 하는지 짐작이 가능하죠

석기로는 정글이나 숲의 큰 나무를 결코 자를 수 없거든요

마당에 나가 짱돌로 땅을 파보면 알겠지만 힘들어서 땅도 깊게 파지 못합니다

 

춘추 시절에 진행 된 철기의 보급은 농기구와 도구를 철기로 바꿨습니다.  

덕분에 보다 깊게 땅을 파 농사하는 심경(深耕)이 가능하게 해주었고

더불어 이 시기 우경(牛耕)의 시작은 농경의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심경,우경 즉 보다 깊게 파서 농사짓고 소를 가지고 편하게 농기구 돌린다

비옥한 토지에 대규모 농사가 가능해지고 생산량도 크게 늘게 됩니다. 

 

이런 철기사용과 농업생산의 증가는 인구를 증가 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가와 국가 사이를 갈라놓았던 큰 나무들도 사라지게 했습니다 

철기를 도구로 사용하면 드디어 벌목가능하게 됨에 따라 정글과 숲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시기를 전후해 기후 역시 변하여 아열대 기후가 온대기후로 변하기도 하였죠

 

즉 춘추시대에 이르면 철기의 보급과 함께 국가와 국가 사이 중간지대가 사라지게 됩니다 

늘어난 인구와 변화된 기후로 인해 부족해진 물자를 찾아 사람들이 팽창하며  

국가 간에 상호 충돌하게 되는 분쟁 현상이 발생한 것이죠

 

춘추 전국시대 전쟁이 끊임 없이 발생하고 이어진 이유입니다

 

모두 철기의 보급 덕분입니다

이런 철기제작과 제철기술의 가장 선진적인 지역은 바로 산동 제나라였습니다

 

제나라 산동지역은 철광자원이 풍부하여 춘추시대 철광산만 3600개소에 달하였습니다 

제나라는 이 시대 철기생산의 중심지이자 동아시아의 가장 선진적인 철생산 지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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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라 수도 임치 유적 임치에서 발견 된 제철 작업장만 10만 제곱미터에 달합니다.)

 

제나라 수도 임치는 춘추시대 가장 중요한 도시이자 가장 부유한 도시로 그 명성이 높았습니다. 

 

춘추시대 제나라 수도 임치에는 중국 전역에서 각종 인재들과 학자들이 모였고

임치의 학당은 제자백가들이 모여 토론하고 학문을 논하는 아고라와 같은 공간이 되었죠  

동아시아의 실리콘밸리 같은 곳으로 이런 임치의 학당의 지식을 모은 백과사전이 '관자'라는 책입니다.

(고조선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나오는 책이기도 합니다.)

 

모두 제나라의 우수한 제철기술과 그 결과물인 경제적 부가 만들어 준 선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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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제나라의 이런 선진제철 기술은 한반도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철의 왕국이라 부르는 가야지역의 철기문명도 제나라의 제철기술이 바다를 건너와 한반도에 전파 된 경우죠

 

오해를 살까 첨언하면 한반도 청동기, 철기는 북방민족, 전국시대 중국의 영향을 모두 받았습니다 

제나라 제철기술의 전파는 그 중 일부로 한 사례입니다.    

 

제나라의 이런 철기산업을 육성시킨 인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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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관포지교의 주인공 관중)

 

'관중'이라는 인물입니다.

 

춘추시대 가장 중요한 인물이죠 

제나라의 재상으로 각종 개혁을 진행 시켜 국가를 부유하게 만든 것으로 유명한데

그가 추진한 가장 중요한 정책이 철기산업과 염전산업이었습니다.

철광과 바다가 인접한 산동지역 특성에 맞춰서 국가를 키운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런 지역 생산품이 국가에 부를 가져다 줄 수 있단 것의 의미는

춘추시대 국가와 국가간에 길이 뚫리며 그 사이를 오고 가는 상업행위가 융성했단 뜻이죠

실제 관중 본인이 이런 상인출신이기도 합니다

 

관중의 개혁과 경제육성으로 제나라는 춘추시대 최강대국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관중이 모신 군주는 춘추전국시대 최초의 패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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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齊)환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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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지도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건  

넌 춘추시대 국가명을 전부 암기 할 수 없다죠

나라들이 겁나 많거든요 140개에 달합니다.

 

그래서 우린 중요 국가만 간추린 요약본으로 배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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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처럼요

 

춘추시대 역사는 그냥 중요국가인 춘추오패의 이름만 알면 되죠  

그 첫 번째가 바로 위에 언급한 제환공입니다.

패자라는 개념을 처음 만든 군주이자 춘추시대를 상징하는 군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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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나머지 춘추오패로 언급되는 국가가 좀 됩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제(齊)환공, 진(晉)문공, 초(楚)장왕

진(秦)목공, 송(宋)양공, 정(鄭)장공

오(吳)왕합려, 오(吳)왕부차, 월(越)왕구천

 

춘추5패라면서 9명이네요? 그럴만한 사정이 있죠

그냥 위의 명단 중에서 니 맘대로 조합하면 됩니다

 

역사적으로 수 천년 간 사람마다, 서적마다 각자의 기준으로 5명을 선정했고 그 구성이 모두 다릅니다

다만 이 중에 제환공, 진문공, 초장왕은 꼭 포함되고 나머지 2명만 바뀌는게 일반적인 기준이죠

 

패자(覇者)라는 것은 춘추시대 나타난 독특한 질서체제입니다.

주나라가 상나라를 정복한 후 동방의 국가들을 통제하기 위해

제나라에 봉해진 강태공을 관백(방백)으로 임명한 것이 시초라고는 합니다  

(일본 섬나라 애들이 이 단어를 나중에 또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부를 때 재활용하죠)

 

춘추시대에 이르면 사실상 주나라의 통제력이 사라지며 기존 봉건질서가 무너지게 됩니다. 

이때 등장한 제나라의 제환공이 와해 된 질서를 수습했죠

그러면서 기존 관백(방백)이란 의미를 가져와 '패자'라는 신개념을 도입하였습니다

 

제환공 시기 주변국을 모두 압도한 제나라는 '회맹'이라는 방식으로

주변의 국가들을 모두 모아서 제나라를 맹주로 추대하는 의식을 치뤘고

이 패자는 주나라 왕을 대신하여 다른 국가를 통제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패자, 회맹, 맹주?? 무협지에서 본 익숙한 장면이죠

뭐 비슷하다 보면 됩니다. 그게 이거 보고 따라 한거라서요

 

제환공의 등장과 나온 패자라는 개념은 이미 망한 종법제도 질서를 대체해  

국력을 바탕으로 한 국가간 질서를 재편한 것입니다 

형식상 주왕실의 존중이란 절충안을 통해 기존 질서를 유지하였고

더불어 주나라의 봉건질서를 수백년 간 연장시키는 일종의 완충제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가 배우는 춘추시대는 사실상 제환공과 관중이 만든 것이나 다름 없죠

모두 패자라는 개념이 생기며 주나라 체제를 모두가 일단 존중하고

나름의 규칙과 질서가 재구축되어 만들어진 현상입니다.

 

제환공 이후 진(晉)문공이 패자가 되었습니다

이후  중원의 중심국가 진(晉)나라의 제후가 방백의 지위를 꾸준히 세습해 승계했습니다

이런 진(晉)나라라는 존재 마저 사라진 삼진(三晉)분열을 춘추시대의 끝으로 보고

전국시대와 나누는 기준으로 삼는 건 이런 내막이 있기 때문입니다  

 

춘추오패 중의 3국인 제(齊나라 환공, 진(晉)나라 문공, 초(楚)장왕은

실제 압도적인 국력으로 위세를 떨치고 회맹을 열어 다른 국가의 복종을 받았죠 

때문에 이들을 패자라 부르는데는 큰 이견이 없습니다 

 

하지만 진(秦)목공, 송양공,정장공 등은 회맹의 형식은 비록 지켰지만

정작 실질 국력은 너무도 약하거나 좀 애매한 경우입니다 

국력이 약하거나 듣보잡 제후로 빵셔틀이 어느날 반장이 된 경우입니다  

그럼 뒷 자리 일진이 막 무시하거든요

실제 일진 초나라는 니들의 뭔 패자인데? 하며 걍 뚜까 패고 무시했습니다

 

주나라의 호경, 시안 땅을 이어받은 진(秦)나라는 이 시기에는 변방의 소국이었고 

심지어 다른 제후들에게 따돌림 당하거나 야만족 취급을 받는 처지였죠

또한 오나라 월나라는 압도적인 국력을 떨지만 중원 국가와 다른 변방의 국가입니다.

일종의 전학생 같은 느낌입니다

 

원래 중국, 중원이란 황하강 주변의 하북, 하남 지방을 말합니다

주나라 수도 낙양이 위치한 땅 주변이자 가장 중요한 국가 진(晉)나라가 있는 위치죠

 

반대로 스스로 왕을 자처한 초(楚)나라의 경우 대표적인 이민족 국가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삼국지 형주지역에 위치한 국가로 수도는 '영' 으로 삼국지의 남군성입니다

이 당시는 남방 오랑케인 만蠻족의 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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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삼천포에 들렸다 가자면 여기서 말하는 만족蠻族이란

제갈량이 정복한 남만과는 다른 민족으로

이 시절엔 그냥 남쪽에 위치한 오랑케는 전부 만蠻족이라 불렀습니다

북쪽에 살면 전부 적狄 동쪽에 살면 전부 이夷 서쪽에 살면 전부 융戎 으로 지칭하였죠  

 

동이 서융 북적 남만이란 명칭은 특정 민족을 지칭하는게 아닙니다 

방향을 가르켜 그 지역에 사는 이민족을 통칭하는 단어입니다.

당연히 한민족도 동쪽에 살기에 후대에 동이족라 통칭해서 불렀죠

제갈량이 운남지역을 정벌하며 이들을 남만이라 부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환빠들이 종종 그 전매특허인 단어가 비슷하면 '전부 우리꺼'라는 기적의 논리로

산동지방, 회수 지역에 살던 동이족을 한민족이라 우기는 경우가 있는데

그야말로 미친소리죠

꼭 따지면 지금의 홍콩 주변에 사는 묘족과 더 가까운 전혀 다른 민족입니다

 

춘추시대 탄생한 이런 화이사상 중화와 이족의 구분 개념은

철기의 보급과 함께 팽창을 시작한 중원 국가들의 생활영역이

어디까지 확장가능한 범위인지 스스로 한계를 규정하는 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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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강 중류지방 즉 삼국지 형주지역에 세워진 초나라가   

중국과 융화 된 대표적인 이민족 국가입니다

다시 수백년 후 양자강 중류의 초나라에 이어 양자강 하류의 오나라와 월나라도

비슷한 방식으로 성장이 이뤄지자 다시 중원 국가와 충돌하며 융화 되었죠.

 

과거 황하 유역만을 중원이라 여긴 지리적 관념이

양자강 유역으로 확장되는 과정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춘추시대를 거치며 중국문명의 영역은 황하유역을 넘어

양자강으로 확대되었고 춘추시대 초기 남만 동이라 불리워진

회수, 양자강 유역은 중국에 포함되었죠

 

때문에 춘추시대 역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2가지 축이

양자강 지역에 나타난 2개의 국가의 성장입니다. 

 

1. 춘추시대 전기에 일어난 양자강 중류 초(楚)나라의 성장과 중원국가 진(晉)나라의 충돌

 

2. 춘추시대 후기에 일어난 양자강 하류 오나라와 월나라의 팽창입니다

 

춘추시대 남방의 이민족 초나라가 왕을 칭하며 강성해졌고 북상을 시작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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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 가장 중요한 전투인 "필의 전투" 에서 진나라 군대를

무참히 격파해 버리자 중원이 국가들은 난리가 납니다.

 

앞서 주나라 글에서 이야기한 유명한 구정九鼎에 관한 설화도 여기서 탄생하죠

초나라가 북상하여 주나라 관리를 만나 말하기를 "솥의 무게가 얼마나 되냐?" 질문 하였고

주나라 관리는 "솥은 무게가 중요한게 아니라 왕의 덕이 얼마나 있느냐다!! 초나라가 감히 그것을 물어 볼 이유는 없다"

라고 괴상한 답변했다고 하죠

 

이를 두고 후대에 평가하여 말하길

 

이때 초나라가 주나라를 대신해

"구정을 옮겨와 천하의 왕으로 군림하겠다"

도발적인 질문을 한 것이고

 

주나라는 이에 대해

"천하는 힘이 아닌 덕으로 다르려야 한다 초나라가 감히 질문 할 것이 아니다"

라고 겁나 간지 쩔어주는 대화를 한거라고

이 기록을 설명 합니다.

 

이를 두고 구정(九鼎) 신화와 전설이 한나라 시절까지 꾸준히 추가되죠

제왕의 상징이자 천하의 상징인 보물 구정 어쩌구 저쩌구 입니다

하지만 이런 관점도 있습니다

 

왜? 하필 밥 먹는 솥이냐? 대체 그게 뭐라고?

제사 의식의 도구 상징 어쩌고하는데 아니 제사를 솥으로만 하고 누군 제사를 안지내나요

 

이이에 대해 혹자가 말하길

기록에 나온 초나라의 말은 진짜로 사용하는 솥의 무게를 물은 것으로

그냥 "너네 밥 먹는 인구가 얼마냐? 작는 나라 주제에 우리 감당 가능해?" 라고 질문 한 건데

주나라 관리가 대꿀멍해서 할 말이 없으니 도덕이니 제왕의 덕이니 하며 헛소리 답변을 했고

후대에 이를 읽은 사람들이 상상력을 넣어 이 솥의 의미를 천하의 상징이니

천하의 보물인 아홉게의 솥이니 하며 구정 신화를 만들어서 주작질을 한거다...

중원의 중국문명이 남방 이민족 보다 더욱 정통성있고 우월하다는 정신승리로 만들었단 주장이 있습니다.

 

어차피 구정 설화란게 존재하지 않는 하나라에서 기원하는 허구의 신화입니다

결국 신화와 이야기에 대한 해석 영역이라 각자의 다양한 관점은 자유라 봅니다

 

분명한 것은 춘추시대 초기에 중원에 등장한 초나라는 주변의 소국을 멸망 시키며 큰 위협이었고

기존 황하유역의 국가들은 각자 도생을 멈추고 강력한 국가를 중심으로 회맹도 하고

패자라라는 것을 인정하기도 하며 연합으로 초나라를 막았단 것이죠

 

춘추시대 국제 질서를 재편하는데 초나라의 존재는 큰 역할을 했습니다

봉건제 소국들이 다수인 중원 국가들은 남방에서 큰 규모로 건국된 국가 앞에서 열세였고 

이를 방어할 국가는 부유한 제(齊)나라 또는 인구 부양력이 가장 큰 중심지에 위치한 진(晉)나라가 유일했거든요

 

정장공, 송양공의 경우 회맹을 했음에도 그 궁극목표 초나라에 상대가 안되었고

또 실제로 처참하게 발렸음으로 결국 패자로 인정 못하는 경향이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 회맹이니 패자니 하는 질서를 재편하는 이유가 초나라 방어인데 이걸 못 막으면 의미 없죠 

 

즉 양자강 중류 지역의 변방임에도 규모의 경제가 곧 국력임을 이민족 초나라가 세상에 보여줬습니다 

그 반작용으로 이런 위협과 전쟁의 시대에서 작은 소국으로 생존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국가가 국가를 병합하고 지배하며 보다 큰 국가로 보다 큰 국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강력한 원동력을 제공하였으니

춘추시대 국가는 이제 시대를 지나면서 병합되어 점차 합쳐져 큰 국가로 변모해 나가게 됩니다

 

한편 그럼 이런 춘추시대에는 전쟁이란 것을 어찌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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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끄는 전차를 차고 나가서 싸웠습니다

이 시기에 주로 싸운 장소는 평야지대였습니다

또한 등자를 이용한 기마술이 아직 없었기에 전차를 모는 기술이 매우 중요했죠

 

싸우는 사람들은 전부 귀족입니다

대부 또는 사(士)인 계급 아니면 국인(國人)죠

성안에 거주하는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합니다

 

때문에 전쟁이 벌어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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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부(虎符)

 

제후가 호랑이 모양 인형 반쪽을 장군에게 주면

장군은 그 반쪽을 들고 증명으로 삼아 성안을 돌며 여기저기 보여주었고

대부와 사인, 국인들을 소집하여 전쟁터에 나가 싸웠습니다.

 

이때 장군은 성 밖에 나가 싸워야 하니 군대를 유지하고 보급을 해야 하죠 

그 역할을 위해 제후가 아님에도 독자적인 행정조직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특별히 장군들이 전시에 행정청을 만들어 운영하였습니다 

이런 권한을 개부(開府)라고 합니다

훗날 매우 높은 관직을 가진 사람들에게 개부의동삼사 어쩌고 부르죠 

스스로 독자적 부서를 창설할 수 있을 정도의 권한을 가진 고귀한 신분이란 뜻이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관청을 막사의 관부라는 뜻의 막부(幕府)라고 불렀습니다

훗날 일본에서 쇼군이 만든 '막부'란  용어가 여기에서 유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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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 초기는 이런 전차 전투였기에 대규모의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엄청난 규모라고 해봐야 몇 백대 정도의 전투가 최대였습니다

 

고대국가 시절 저런 전차를 타고 활을 쏘는 전문 병사들은 그 자체로 충분히 무서운 존재죠

주나라와 봉건제후들이 성 밖의 야인들을 지배 하기에도 딱 그 정도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춘추시대를 거치면서 국가의 전쟁은 이제 단순한 분쟁의 차원을 넘어

국가의 멸망과 흡수를 목표로 확대가 되자 그 양상이 좀 변하게 됩니다

 

더불어 지속적인 개간과 확장으로 생활터전도 점차 늘어나며

황하 연안의 평야 지대만이 아니라 과거에는 사람들이 잘 안 가던

산, 구릉, 계곡 등 험준한 지역도 전쟁터가 되어 감에 따라

전차를 이용한 전쟁은 이제 잘 안통하게 된 것이죠

 

본격적인 보병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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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 후기로 가면 보병이 주력이 되고 전차는 보조적 수단으로 그 위상이 바뀌게 됩니다.

 

과거 성안에 거주하는 대부,사인, 국인만 전쟁을 수행하였던 징병의 방식도 바뀌어

성 밖의 야인을 비롯한 평민들이 전쟁에 나가는 그런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당연히 값싼 철제무기의 보급이 큰 역할을 하였고

이를 주도한 나라가 등장했으니 바로 남방의 양자강 하류에서 나타난 신흥 국가

 

오나라와 월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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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나라와 월나라 지방은 주나라 시절 부터 이미 우수한 청동기 무기를 제작하기로 유명했죠

 

이들 국가에서 철기를 이용한 대량생산 무기를 전면적으로 보급하였고

본격적으로 평민 보병을 활용한 국가 단위 전쟁을 시작합니다

 

춘추시대 고사성어에 보면

오나라와 월나라 사람은 서로 지독한 원수라고 나옵니다

전쟁이 만약 일부 계층이나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죠

평민들은 상대방 국가의 사람이 누군지 알 필요가 없기에 그들에게 감정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오나라와 월나라는 전쟁을 하며 상호 간 평민들을 동원해 전쟁을 하였고

가깝게는 가족, 친구, 멀게 친지 이웃이 죽임을 당한 경험이 축적되면서

오나라와 월나라의 일반인들 조차 서로를 지독히 원수로 여긴다는 고사성어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을 이런 평민보병으로 하였기에 이들 국가에서 병법, 진법이란게 발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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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손자병법의 저자 손자가 오나라에서 활약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손자병법의 내용은

"전쟁은 하지 않는게 가장 좋지만 꼭 해야만 한다면 백성의 피해를 최소화 하도록 국가전체가 신속하고 완벽하게 수행하라"죠

 

즉 국가총력전의 개념이 등장한 것입니다. 

특히 전투에 미숙한 평민 보병을 효율적으로 통제 하도록 소위 진법과 진형이란 것을 훈련시켰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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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나라와 월나라의 등장은 이런 신개념의 전쟁 방식을 알렸습니다

당장 남방의 강국 초나라를 격파했고 북상하여 중원 국가를 위협하였으니

춘추시대 후기의 전쟁 페러다임을 바꾼 것이죠  

이는 다른 국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며 모든 국가가 평민 보병을 징병하고

모든 국가가 사력을 다해 전쟁하는 시대 전국시대로 발전하게 됩니다

 

한편 춘추시대는 가족이란 개념이 형성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가족과 성씨는 상속이 가능한 소유 토지가 있어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영지를 봉작 받은 귀족만 썼죠

성씨가 없단 것의 의미는 친부의 개념도 없단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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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건성 토착민들의 공동주택)

 

개인 소유나 땅이 없는 사람들은 보통 집단 공동생활을 합니다

개인의 집이 존재하는게 아니라 공동으로 거주하는 방이 있을 뿐이죠

 

교과서에서 배우는 씨족 혼인, 부족 혼인의 개념이죠

과거 동굴에서 집단 군혼을 하던 방식이 보다 발전한 것으로

아버지 집단, 어머니 집단이 존재할 뿐 모두가 공동으로 소유하고 공동생활 합니다

한국의 경우 고구려 신라에서 5부체제 6부체제로 아내를 배출하는 부가 그런 흔적이고

북방 유목민들에게서도 나타나며 형사수취제와 같이 아내를 공유하는 방식에서도 흔적이 보입니다

 

과거 공동체 집단생활을 하며 생활하던 방식도 이 시기 변화하게 됩니다. 

 

춘추시대 철기를 통한 농경의 발전은 확장된 농경지를 통해 평민이 소유하는 토지를 만들게 하였죠

평민도 이제 소수 가족 단위로 분화되어 토지를 소유하고 집을 지어 살아가게 됩니다

 

공자집단, 묵가집단 같이 유량민 형태로 공동생활하거나

'食客식객' 이라 하여 타인의 가문에 들어가 공동생활을 하는 문화도 여전히 잔존해 이어졌지만

 

개인 소유 토지를 가진 평민의 등장과 철기를 통한 가족단위 농경의 시작은

평민 보병이 등장한 또 다른 이유가 되었습니다

 

춘추시대는 중국문명의 영역은 철기 도구의 사용과 함께 급격하게 팽창하며

황하 유역을 벗어나 양자강 유역을 비롯한 주변지역으로 확산 된 시대입니다

상나라, 주나라 왕조가 세워지고 해당 지역에서 문명이 태동할 때 

같은 시기 지금의 사천성인 촉나라 지방이나 양장강 중류, 하류 지역 요서, 요동 지역 등등에서

비슷한 수준의 청동기 문명이 함께 태동하고 발전했습니다.

 

국가와 국가 사이를 가로막던 숲이 사라지면서 국가간의 충돌과 교역 상호 흡수가 벌어지게 되었듯

이는 문명과 문명 사이에도 적용되어 춘추전국 시대는 그런 주변부 문명과 중심부 문명이 서로 마추치게 되며

교역을 하고 또는 전쟁을 하며 흡수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습니다

 

문명의 전파란 삼투압 현상과 같아서

보다 발전되고 고도화된 문명은 꾸준히 주변부로 확산이 됩니다.

그 방식은 가까운 지역은 전쟁이었고 먼 지역은 교역의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한국사의 최초국가인 고조선이 역사책에 처음 등장하는 시기도

바로 춘추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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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라 무역 관련 기록을 통해서 나오죠

고조선에 대한 역사적인 최초의 기록이 산동지역 문헌에서 처음 나온것이 이런 지리적 이유 때문입니다 

산동반도와 요동반도는 해안으로 이어져 한반도 남부까지 연결되는 고대 가장 중요한 해로가 있던 지역입니다 

 

때문에 요동반도 남부에는 중국계 청동기와 중국계 유물이

고조선의 비파형 동검과 함께 발견 됩니다.

 

초나라, 오나라, 월나라 역시 춘추시대를 거치며 중국문명이 확산되어 상호 교류가 이뤄진 지역이죠 

다만 그 지역의 역사를 춘추시대로 배우는건 해당 지역은 동화 흡수된 사례이고

고조선의 경우는 그냥 무역만 한 사례이기 때문이죠

 

좀 불편한 이야기를 하자면 고조선 엄청난 국가라서 흡수가 안된게 아니라 

그냥 그닥 중요한 지역이 아니였기 때문입니다.

 

춘추시대 고조선 관련 이야기를 하면 조심스러운데 그래도 꼭 해야 하는 것이

인터넷에 도는 춘추시대 고조선 자료를 보면 태반이 환빠류의 미친소리 투성이입니다

 

상나라 조차도 도시국가 수준의 원시농경을 하던 문명이고

주나라, 춘추시대의 국가들이란 이제 막 도시국가 수준을 벗어나는 초기 문명단계죠

 

당장 동아시아의 중심부 문명이 이 지경인데 하물며 주변부의 한반도에 무슨 대제국을 운운하고

상나라가 동이족이네 고조선의 영토와 강역의 크기가 어떠하다는 택도 없는 헛소리를 하죠

 

우리가 교과서에서 비파형 동검과 그 시대 대표 유적인 고인돌을 배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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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의미인지 설명을 안해줘서 그런가 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비파형 동검, 민무늬 토기 등 한반도 청동기 지표유물은

무슨 거대 도시 유적이나 성벽이 있는 궁궐에서 발견된게 아닙니다.

중국문명 조차도 도시국가 수준일 때 이 지역은 그냥 부락 수준이었단 말이죠.

 

이게 이상한게 아닙니다.

문명의 변방이고 성립이 늦는다는게 무슨 우열의 기준이 되는게 아닙니다  

이 시기 유럽, 일본은 존재조차 안했죠 

역사를 가지고 종교, 이념, 정치를 넣어 착각하는 사람들이 만든 환상일 뿐입니다. 

 

중심부 문명의 주변에 위치한 주변부 문명의 경우 중심부와 교역을 통해 성장하고 국가를 이룹니다

전 세계 모든 지역이 그러하죠  

한반도의 초기국가는 중국과의 교역을 통해서 탄생했습니다

중국과의 무역을 주도한 세력이 주변을 통합했고 그 결과 국가가 성립한 것이죠

일본열도의 국가 성립도 이와 같습니다

야마토 지역의 특정 세력이 한반도와 무역을 통해서 우위를 점했고 이런 힘을 바탕으로 국가를 세웠죠

 

요서지방 지금의 조양시 유적을 보면

초기에 비파형 동검과 북방 유목민 계열 동검이 다양하게 혼재하며 함께 발견되다가

점차 중국계통의 동검과 유물이 주류가 됩니다

비슷한 성읍 국가들이 고만 고만하게 살며 수시로 여기 저기 오가던 시절을 거쳐

강력한 정복국가가 본격 등장하는 과정입니다.

 

춘추시대가 바로 그런 변화의 태동이 일어난 시대입니다. 

 

과거 성읍국가 수준에 머물던 고만 고만 하던 나라들은  

점차 팽창 하고 상호 병합하며 거대한 국가로 통합해 갔고 

소국은 강력한 중앙집권 성향의 국가 등장과 함께

점차 몇개의 국가로 통합되며 거대국가로 변모해 가기 시작하죠 

그렇게 춘추시대 140여개에 달했던 나라들은 사라지고 

 

이제 진(秦) 초(楚) 조(趙) 위(魏) 한(韓) 제(齊) 연(燕)

7개의 국가만 남겨지게 됩니다.

 

전국시대입니다.

 

중국 왕조사 세번째 춘추시대 이야기

 

끝.

 

 

* 이전 글 

 

중국 왕조사, 상(商)나라 이야기. 

https://www.dogdrip.net/282653271

중국 왕조사, 주(周)나라 이야기. 

https://www.dogdrip.net/290089247

 

 

24개의 댓글

빅 - 잼

0
2020.11.12

진(秦) 위치만 봐도 왜 전투민족이었는지 예상이 감. 땅부터 주나라의 대 서융 전진멀티에, 국군들도 싸우다 죽은 사람이 부지기수고 아마 나라 인적구성도 실상 서융쪽에 가까웠을거라 봄.

 

상앙의 비인간적인 수준의 변법이 적용되고 유지됐던 사례나, 순자가 진 둘러보고 개미굴같다고 표현했던 것도 괜히 나온 말은 아닌듯. 저놈들이 백기를 부려서 파촉을 먼저 먹었으니 통일을 하지..

0
2020.11.13
@문틈

애초에 주나라가 서안에 있었을때 서융족을 토벌한 대가로 진 영토를 받게 된게 시초였으니까

 

진나라가 중원에서 거리가 먼 위치적 한계가 있었지만 여러 자원에서 보면 진작부터 강대국이 될수 있었는데 순장 풍습때문에 뭐 좀 일궈 놓으면 다 묻어버려가지고 ㅋㅋ

0
2020.11.14
@아Q

ㄹㅇ 진이랑 초랑 둘 중 누가 먼저 정신차리나 싸움이었는데ㅋㅋㅋㅋㅋㅋ

0
2020.11.12

좋은 역사공부 추천

0

와...

0
2020.11.12

정말 재미있다

0
WA
2020.11.12

넘모 재미있다 일도 못하고 계속 읽었네ㅎㅎ

고마워!

0
2020.11.12

진짜 너무 재밌다

계속 글 올려줘

0
2020.11.12
0
AiA
2020.11.12

이렇게 재미있는글은 정말 오랫만이다

0
2020.11.13

복귀하셔서 연속으로 두다다다 쏟아내주시네

재밌게보고 있습니다

계속 연재 부탁드립니다

0
2020.11.13

오 요새 다시 돌아왔구나! 잘보고있어요!

0
2020.11.13

재밌게 잘보고있음요~

0
2020.11.13

이거 재밌는 개붕이들은 공원국저 '춘추전국이야기' 강추. 저때 진나라가 통일을 못했으면 지금 중국은 유럽처럼 되었을까 싶기도 한데 중원은 워낙 탁 트여 있어서 통일 못하기도 힘들었을듯.

0
2020.11.13
@charlote

중국은 해안선이 단순해서 통일 못하기가 힘들었겠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항해술이 유럽보다 발달했음에도 항해를 안하게 되었고, 이후 세계 패권이 유럽쪽으로 넘어갔지

0
2020.11.13
@아Q

유럽처럼 여러나라로 나뉘어 투닥투닥 하고 있었을지 궁금하다는 거지.

0
2020.11.13
@charlote

지리적 여건상 유럽수준으로 투닥거리는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음... 나눠져봐야 두셋정도? 아님 많아야 넷?

이후 중국이 두 자리 숫자 이상으로 분열하는건 오호십육국과 오대십국 기간밖에 없는데 오호십육국은 남조는 사실상 하나의 덩어리로 유지된 상태였고 오대십국은 우리나라 후삼국 수준과 비슷한 기간으로 그렇게 오래 간 상태는 아니라서....

 

굳이 집어넣면 중화민국 군벌통치기까지 하나 더 집어넣을 수 있긴 하겠네

1
2020.11.13

너무 재밌다..

0
2020.11.13

아이언로드 저건 좀 애매하긴 한데.... 일단 요동쪽 라인 제외하고 서해 가로지르는 해상교통로라면 산둥-백령도 라인하고 산둥-덕적군도 라인 두 가지가 될거임. 물론 남쪽으로 조금 쏠리면 격렬비도 라인까지 가능하긴 한데 어청도 항로는 직항을 타기보다는 격렬비도-외연도-어청도 이렇게 타고 내려왔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이거든. 근데 도서간 간격을 보면 직항을 의도하진 않았을 듯 싶은데....(물론 겨울철이었다면 저쪽으로 바람타고 밀려갔을 수는 있겠다 싶음)

0
2020.11.14

관중과 포숙아, 송양지인, 양두구육정도 수준으로 알고 있던 저에게

너무 재밌는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0
2020.11.14

재밌다!

0
2020.11.14

매번 업로드해주시는 글 재미나게 잘 읽고 있습니다~ 고마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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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6

이 글이 전반적인 역사 이야기라 각 상황과 인물에 대해 깊게 다루지 않았는데 관중이나 손무 따로 다룬 글 보면 진짜 지금시대에서 봐도 개쩌는 천재임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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