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마약왕 영국의 아편전쟁 이야기. 3편 1차 아편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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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전쟁 이후 중국은 세계에서 차지하는 GDP 비율이 반 토막나고 나라가 망조가 들게 됨)

 

서양이 동양을 압도하게 된 시기를 대분기( Great Divergence)라 합니다.

그 시점이 언제인가를 두고 다양한 의견과 논쟁이 있어 왔습니다. 

정확한 시기를 특정을 할 수는 없지만 대략적으로 1750~1800년 사이로 추정합니다.

켈리포니아 학파로 알려진 이 분야 떡밥 전문 경제사학자들의 주장이죠

2000년대 등장해 수정주의적 시각에서 동,서양 논쟁을 일으킨 바있습니다. 

대충 요약하면 18세기까지 경제수준, 소득수준, 생활수준, 기술수준에서 큰 차이가 없거나 대부분 동양이 우월하였다.

하지만 양 지역의 격차는 유럽, 특히 영국에서 석탄으로의 에너지 전환을 성공시킴에 따라 나눠지게 되었다

뭐 이런류의 주장입니다.  물론 정설은 아니며 이에 대한 만만치 않은 다양한 반론이 존재합니다. 

 

산업혁명 이전 또는 아편전쟁 이전 동양이 서양보다 얼마나 잘 먹고 잘 살았는가?

이 문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이 있으니 군사력 분야에서는 서양은 동양을 분명히 압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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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홍이포라는 것입니다.

대항해시대 게임을 하면 살 수 있는 가장 비싸고 좋은 대포인 켈버린포입니다

과거 네덜란드인을 통해 명나라에 수입이 되었죠

이 대포를 덕분에 명나라는 산해관에서 후금의 누르하치를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청나라는 이 대포 때문에 오삼계가 투항하기 전까지 만리장성의 산해관을 넘지 못하였습니다.

 

한국 역사에도 영향을 준 대포입니다.

병자호란 시절 인조가 항복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무기입니다. 

청나라 군이 침공해 수도인 한양이 함락되어도 인조 임금은 항복을 안했죠 

피난을 못 간 백성들이 도륙을 당해도 인조 임금은 항복을 안했습니다 

근왕군이 오는 족족 쳐발려서 전멸 당해도 임조 임금은 안했고 

포위 된 남한산성에 식량이 떨어지고 병사들이 얼어죽어도 인조 임금은 항복을 안했습니다.  

마지막 희망이라 여긴 강화도가 함락되어 세자와 비빈들이 포로가 되어도 같았습니다. 

오랑케 따위에게 결코 항복할 수 없다!! 인조 임금은 강한 인내와 의지로 버티며 저항했죠 

하지만 청나라 군대가 홍이포를 끌고와 남한산성을 향해 사격을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포탄이 인조 본인이 살고 있는 행궁 바로 앞에 마구 마구 떨어지게 됩니다

 

그때서야 인조는 자신의 부덕함을 깨닫고 바로 항복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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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대포 뿐이었나요 조총은 그럼 어떤가요

포르투갈 상인을 통해 일본에 전파 된 조총은 100년 넘게 분열되어 전쟁을 지속한 일본이 통일 되는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들고 온 이 서양의 신무기 조총에 조선군이 어찌 박살났는지 우린 너무 지겹게 들었죠

이렇게 서양이 자신들의 우수한 무기 기술을 알리고 동아시아의 역사를 바꿔가며 영향을 끼친게 벌써 1600년대의 일입니다

 

그 후 200년이 지난 시점이죠.

 

참고로 위에 올린 홍이포 사진은 바로 강화도 광성보의 대포입니다.

병인양요, 신미양요 때 조선군이 사용하던 것이죠. 

그러니까 19세기 프랑스와 미국이 쳐들어 왔을 때 조차도 임진년,병자년에서 변한게 없었습니다. 

조선은 여전히 200년 전에 전래 된 무서운 서양의 신무기? 홍이포를  썼습니다 

개인화기도 무려 200년 전에 전래가 된 그 조총을 사용했고요  

솔까말 병인양요, 신미양요 때 프랑스와 미군은 조선군의 전리품을 모아 진품 명품쇼를 해도 될 지경이었습니다 

 

이는 아편전쟁을 치르게 될 청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청나라 군대의 주력 무기도 여전히 홍이포와 조총이였습니다. 

나아가 청나라 최정예 부대이자 청나라의 꿈과 희망이라는 팔기군은 그 주력 무기가 무려 활이었죠.

실제 전투력 보다 중요한게 만주족의 소중한 전통문화가 되어 버렸거든요

 

1600년대에도 이미 서양무기가 동양의 무기기술을 월등하게 앞 질렀습니다.

1800년대에 이르게 되면 동양과 서양의 무기수준은 사실상 비교 자체가 안되는 넘사벽의 격차로 벌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전의 1840년 6월 15일

청나라 광저우 앞 바다에 영국에서 레이저포와 광자포를 달고 온 이지스함대가 나타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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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최신예 증기전함입니다. 이름도 간지나게 네메시스...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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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유명한 아편전쟁 삽화)

 

아편전쟁이 터진 것이죠

 

아편전쟁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영국을 쉴드를 치는게 불가능한 전쟁입니다

해도 해도 너무한 짓거리 였거든요

 

다른 나라에 마약을 팔아먹다가 그 나라가 마약을 단속했단 이유로 선포한 전쟁입니다.

무슨 명분이란게 존재할 수가 없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쓰레기 짓입니다

 

이런 생각은 지금 뿐만이 아니라 그 당시에서도 그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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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영토에 거주하고 있으면서도 그 법률을 따르지 않는 외국인에게 식량공급을 거부한 것이 어째서 죄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이 전쟁이 얼마나 오래갈지 그 수행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 지 감히 판단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역사상 이것 만큼 더러운 전쟁을 이것 만큼 영국을 부끄럽게 한 전쟁을 이제 껏 보지도 못했다고 그 어떤 책에서도 읽어 본적 없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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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당 월리엄 클래드스턴의 의회 연설 中 -

 

요약하면 아 시바 그래도 이건 쫌...아니잖아...

영국의회 조차도 너무 쪽팔려한 전쟁입니다. 

 

그러던 말던 전쟁은 이미 기정사실이었죠

아편전쟁은 아편을 처음 팔았을 때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전 청나라와 합법적인 무역만을 할 때는 몰랐겠지만 막상 아편이란 것을 팔아 보니 너무 달콤한 걸요.

중국이 개꿀 노다지란걸 알아 버렸는데 이제와서 뭘 어쩔까요

 

대박 호구가 바로 앞에 있는데 이젠 이걸 포기하고 공행체제로 되돌리 수가 없습니다. 

억지로 한다고 해도 어차피 오래갈 수 없습니다. 전쟁의 빌미가 뭐든지 필요했죠 

영국이 인도에서 이미 그러하였듯 숭고한 자유무역의 확대 위해 한번쯤 밟아주는 절차가 필연적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임칙서는 순진하게도 여전히 국제법과 영국법을 들먹이며 쓸데없는 논쟁을 했습니다. 

영국인들도 인간의 탈을 썼으니 윤리를 가지고 있을거라 믿었던 거죠

같은 시기 영국에서는 이미 청나라와 개전을 이미 준비하는 중이었습니다. 

영국인들이 광저우에서 추방했단 소식은 수개월이 지나 영국 본토에도 전해졌습니다. 

영국 마약상들의 호소가 본국에 도착을 한 10월 쯤에 영국 내각은 즉시 개전을 결정하였죠 

광저우 앞 바다에서 1차 천비해전이 발발했을 쯤에는 이미 병력을 소집하는 단계에 있었습니다 

이런 모든 전쟁 준비를 진행한 뒤 영국 의회에서 개전 여부를 두고 의회에 최종 결정을 물었던 것 뿐입니다 

 

그러니까 이웃집 털어먹으려고 연장을 다 챙겨 놓고서 아 쪼까 거시기 하네..

우리 그렇게 나쁜놈들 아니잖아~ 토론을 시작한 것이죠 

서양 근대사에 종종 나오는 이른바 "백인의 의무"라는 자기합리화 관행이죠 

 

영국군은 벌써 아시아에 새로 투입할 철갑 증기선의 건조를 시작한 상태였습니다 

그 이름을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로 정했죠 그게 위에 사진으로 올린 그 최신예 전투함입니다. 

 

특이한 점은 아편전쟁에 앞두고 이견이 없는 것이 있습니다. 

전쟁을 찬성하던 전쟁을 반대하던 공통적으로 당시 모든 영국인들은 자신들이 이길 걸 알았단 것입니다

과거 영국은 인도를 정복할 때 이미 인도 토호국과 한판 붙은 경험이 있습니다. 

아시아 좁밥군대 정도는 영국군이 쉽게 박살 낼 수 있단걸 스스로 알고 있었단 뜻이죠

 

전투력 격차 뿐만 아닙니다. 

영국은 청나라를 어찌 상대해야 하는지도 어느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중국이 서양과 교역을 한게 이미 수백년이고 영국은 청나라 중앙정부에 뇌물까지 주려 시도한 적이 있는 나라였습니다

영국은 이런류의 국가 시스템이 어찌 돌아가는지 대충 파악한 상태였죠  

 

아편전쟁의 전개를 보면 더 확실히 알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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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칙서는 제1차 천비해전에서 청나라 구식 정크선들이 영국 전함에 개쳐발렸을 때  

조만간 영국이 광저우를 공격할 것이라 예견 하고 대비를 한 바 있습니다

 

미국 상인들에게 다급하게 신식화포 300문을 구매하여 광저우 주변 11개 요새에 배치 하였죠 

이어 광저우에서 서양인들과의 내통을 사전에 막고 해군함정 60척 정규군 1만명을 준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민병대를 소집해 광저우 시내의 우주방어 태세도 갖췄습니다.

때문에 영국의 원정군이 전함 16척 증기선 4척과 보급함 27척의 함대로 광저우 앞바다에 도착했을 땐

감히 광저우를 공격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죠

 

사실 처움부터 광저우를 공격 할 계획도 아니었습니다

 

우왕 임칙서형 우주방어 쩌네효~ 그래서 어쩌라고? 하며

영국군은 간단히 광저우를 버리고 걍 북상해 버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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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군 청나라 원정대가 최초로 침공한 장소는 무역분쟁이 일어난 광저우가 아닌 양자강 하구였습니다.

영국군은 광저우를 피해 북상해 양자강 하구에 위치한 주산군도를 공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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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영국이 청나라에게 뺏어서 교두보로 삼고 싶었던 지역은 홍콩이 아니라 상해와 가까운 여기 주산군도였습니다

중국의 경제중심지인 강남지역과 인접하고 강을 따라 중국 내륙 진출에 매우 용이하죠  

 

영국군이 주산군도 앞에 도착해 협상을 걸었습니다 

요구사항은 "먹을거 내놔!" 무슨 왜구임? 

 

주산군도의 방어를 책임진 정해진 총병은 그야말로 어리둥절입니다

뭐 하는 자식들이지? 싶죠

정해진 총병은 당연히 거절했고 영국군은 공격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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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투라고 할게 없었습니다. 

영국 전함들이 함포로 포격을 때리니 걍 무너졌거든요

주산군도의 정해진을 지키는 방어병력은 나름 2천명 가량이 있었습니다   

근데 차마 군대라고 부르기 힘든 부대입니다. 

전쟁이란게 없던 지역이라 단 한번도 군사훈련이란 걸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그냥 진영 보수를 위한 노동자들이였죠 

그럼에도 나름 분전하여 정해총병 장조발은 싸우다 전사했고 

지현인 요회상은 함락이 되자 물에 투신해 스스로 자결을 했습니다

 

병사 2천명은 죄다 도망갔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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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주산군도를 공격한게 단순히 보급을 위함이란건 그 목적지가 따로 있단 뜻이죠

 

바로 텐진이었습니다.

 

아편전쟁의 과정을 보면 알지만 영국군은 진짜 중요한 공격지점이 어딘지 파악하여 알고 있었습니다.

아편전쟁이 단순히 우발적으로 일어난 전쟁이 아님을 충분히 알수 있죠

 

베이징 바로 옆에 있는 이 항구는 명나라 영락제가 황위를 찬탈하며 출정할 때 이용한 항구입니다. 

황제가 도착한 항구라는 뜻의 천진(天津) 즉 텐진으로 개명되었죠 

그 이름에서 알수 있듯 수도인 북경의 관문 역할을 하는 항구입니다. 

당연히 역사상 단 한번도 외적의 침입을 받아 본 역사가 없는 항구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인천항과 비슷하지만 그 정신적 체감과 충격을 보자면 한양성 바로 옆 마포와 비슷합니다 

한강 마포 나루에 서양인 함대가 나타난 것과 동급의 충격과 공포라 생각하면 됩니다.

 

당연히 청나라 조정은 이게 뭔 날벼락이냐며 발칵 뒤집어 집니다

영국과의 무역 문제는 먼 남쪽 변방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중앙조정을 위협하는 문제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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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에 질린 청나라 관료들은 죄다 들고 일어나 임칙서를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당장 전함과 함포를 들고 북경까지 온 영국군을 달래야 한다고 성토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기록을 보면 청나라 조정에서 논의하는 상소문에 정상적인게 없습니다. 

청나라 관료 시스템이 엉망이 된 건지 아님 죄다 아편을 빨아서 뇌가 어찌된건지 알수 없죠 

역사적으로 이미 알려진 상황과 당시의 기록이 황당하다 싶을 정도로 격차가 큽니다 

청나라 조정은 믿고 싶은 것만 거짓으로 올리고 그걸 또 모두가 굳게 쳐 믿는 기괴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이딴식입니다. 

 

"영국애들이 텐진까지 온 건 황제에게 억울함을 호소 하고자 온 것이다 

불쌍한 영국인을 괴롭힌 나쁜 임칙서를 벌주면 물러 갈거다" 

 

???

 

함포와 총 칼로 무장한 군대가 대놓고 위협을 하고자 코앞에 왔습니다. 

눈이 있으면 알아야 하는 현실이죠 근데 그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절단이라는 거짓 보고로 중앙에 올라갑니다

 

이럴테면 이런 믿기 힘든 개그들이죠

영국군이 텐진 앞바다에서 청나라 조정에 공식 서한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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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칙서가 영국의 재산을 파괴하여 영국의 위엄을 손상시켰다

대영제국의 해군을 파견하였으니 청나라 황제에게 사죄와 배상을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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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서가 청나라 관리의 손을 거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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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칙서가 영국인들을 핍박하였기에 영국왕은 해군을 황제께 보냈습니다

이 문제를 청나라 황제께 주청하여 영국의 억울함과 누명을 벗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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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딴식의 보고가 중앙 조정을 거쳐 황제에게 올라가니 도광제는 다음과 같은 황당한 답변을 내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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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은 전 세계를 지배하며 만국을 차별없이 대한다

영국인들 억울한 사정은 짐이 이미 알고 있으니 조사를 하여 엄중히 처벌할 것이다

남쪽으로 돌아가 짐의 명령을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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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파는 불 벼락이 되어 광저우의 임칙서에게 바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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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는 통상을 근절하지 못 했고 안으로는 범법자를 소탕하지 못 했다

그동안 거짓으로 어물어물 넘긴 것에 불과하다

임칙서 너는 그동안 이룬것이 아무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수많은 분란을 야기했을 뿐이니

생각하면 분하여 참으로 답답하다 그대는 무슨 말로 짐에게 변명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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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칙서는 군비만 지원한다면 영국군을 격퇴할 수 있다고 억울함을 하소연 했으나

영국애들이 지금 와서 전한 소리가 있는데 뭔 허튼소리라고 꾸짓고 도광제는 임칙서를 파면해 버립니다

답답한 건 도광제가 아니라 임칙서죠 암에 걸려 뒤질 지경입니다

임칙서는 고구마 100만개를 처묵하고 중앙아시아 신강으로 유배형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걸 수습하기 위해 서울시장격인 직예총독이 나서게 됩니다

'기선'이란 인물이죠

 

도광제는 기선에게 

 

"영국인들이 멀리서 왔으니 여비를 넉넉히 챙겨줘서 황제의 은혜에 감사하며 돌아가게 하라"

 

이딴 명령을 내렸습니다  

 

기선도 원래는 강경한 주전론자 였습니다.

서양오랑케는 토벌해서 뿌릴 뽑자! 그도 여느 청나라 관리들 마냥 아가리 파이터였던 사람이였죠

 

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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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 쩌는 철갑증기선 네메시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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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영국군이 끌고 온 레이저포 달고 있는 이지스함에 올라 보니까 이게 뭥미입니다 

에너지 입자포를 손에 들고 있는 영국군을 직접 보게 되니...어우야..이건 좀 아닌거 같거든요

 

이때 기선은 큰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아...영국이랑 싸우면 안되는구나! 곧 주화파로 입장을 바꾸게 됩니다

 

문제는 기선 본인도 청나라 조정에서 어떤 막장극이 펼쳐지는지 알고 있죠 

본인이 살기 위해선 영국군이 일단 텐진이 아니라 광저우로 반드시 가야만 합니다.  

그게 기선이 파견 된 이유고 황제가 바라는 결과물이거든요 안그럼 임칙서 처럼 됩니다 

 

영국 형님들 젭알~...우리 원래 무역하던 광저우로 협상 자리 옮기자..ㅜㅜ

사정사정하고 빌고 빌어 부탁을 하게 됩니다. 

 

심지어 영국군을 안심시켜 준다며 미친짓까지 했죠 

임칙서가 우주방어를 구축한 광저우의 무장을 해제하고 신식대포 방어시설도 철거합니다. 

광저우에 준비한 1만명의 병력을 2천으로 감축했으며 의용병을 전부 해산 시켜 버렸습니다

 

그리고 영국과의 협상 장소에 나와  불충하고 어리석은 임칙서를 파면했다

광저우는 무장해제 해서 이제 안전하다! 그딴걸 영국군에게 경하 할 일이라며 전달합니다 

 

영국군 사령관은..?? 뭔 개소리여 하며 이렇게 답 했습니다

 

"아니, 임칙서는 훌륭한 재능과 용기를 가진 대단한 총독이었소 애석하게 외국의 사정을 잘 몰랐을 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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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영국은 청나라의 요구를 수용해 다시 광저우 앞 바다로 돌아오게 됩니다

진짜로 영국군이 광저우로 물러나자 도광제는 기선을 몹시 칭찬했죠

그리고 영국문제를 마무리 하라며 전권을 위임한 흠차대신으로 임명해 광저우로 파견합니다. 

 

눈앞에서 영국군이 사라지자

청나라 조정은 무슨 닭대가리들만 모인 것인지 다시 주전파가 득세를 합니다

영국과 싸워서 이길 무슨 대책이나 방책이 있는게 아닙니다

그냥 안보이니 또 만만해 진거죠

 

아니 시부럴 걍 처음부터 싸우자 하던가... 

멀쩡히 수비하던 지휘관은 파면시키고 방어할 병력과 무장을 죄다 해산 시켜 놓고는

이제와서 다시 싸운다니 돌아버릴 지경입니다

이 명령을 받은 기선이 이제 큰일 났다죠 죽을 맛입니다. 

이걸 우짜지... 걱정하고 망설이며 시간을 끌자  

 

이에 영국군은 형...광저우로 오라며 대체 왜그래..무슨 문제있어? 하며

광저우를 공격합니다

 

그게 제 2차 천비해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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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칙서가 구축했다가 걸레짝이 된 포대는 영국의 이지스함 네메시스호가 중성자 레이져포로 상대해 마무리하고 

청나라 정크선은 영국이 토마호크 대함미사일로 모조리 격침시켜 버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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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건 놀랍게도 진짜임 이름하야 콩그리브 로켓입니다. 

 

이어 영국군은 상륙하여 광저우 주변 포대 점령을 시도합니다

원래 2천명이 주둔하여 수비하던 곳인데 병력을 감축하여 600명만 남겨졌죠

이걸 영국군 1500명이 공격을 한 것입니다

 

결국 1840년 12월 15일 사각(沙角) 대각(大角) 포대는 함락되고

광저우는 무방비 상태에 노출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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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박한 상황에 몰리게 되자 흠차대신 기선은 좆되었음을 직감하죠 

더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음을 알고 1841년 1월 20일 영국군과 조약을 체결했으니 

천비가조약이라고 합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아편몰수에 대한 배상금으로 순은 600만냥을 배상한다

2. 청의 핵심 항구 5곳을 개항하고 홍콩을 영국에 할양한다. 단 세금은 전부 그대로 청나라에 귀속된다

3. 영국 시민은 청국의 황제와 맞먹는 동등한 지위를 약속한다.

4. 광동지역에서의 무역을 전쟁 이전으로 복구한다.

 

위 내용을 보면 알지만 홍콩 할양이라는 부분만 빼면 완전 청나라 개꿀입니다. 

전력이 심각하게 불리한 상황에서 청나라 손해 볼 내용이 전혀 없는 조약 내용입니다

심지어 이면 계약도 있었습니다. 

 

영국이 차지한 땅은 돌려준다 

청나라가 아편 몰수에 대한 배상금 600만냥을 영국에게 건네어 주면

영국은 그 600만냥을 홍콩 할양에 대한 토지대금으로 다시 청나라에 지불한다.

 

즉 청나라는 따로 배상금을 줄 필요가 없습니다

청나라 조정에서 은자를 받을 수 없기에 기선도 나름 짱구를 굴린거죠

사실 청나라 입장에서 보면 돌섬 하나 맘대로 쓰게 해주고 전쟁 끝내는 그야말로 개이득인 조약입니다 

나중에 보면 알지만 이 조약의 조건이 얼마나 혜자스러운 내용인지 영국느님의 은혜에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근데 이 조약 내용은 기선의 바램과 다르게 영국, 청나라 모두에게 거절을 당했습니다.

 

영국의 경우 고작 홍콩을 얻자고 청나라와 전쟁을 한게 아니었죠

제너럴 엘리엇? 아유 크레이지???

 

청나라의 경우 조약에 그야말로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는 천인공노할 내용이 있었습니다

 

3. 영국 시민은 청국의 황제와 맞먹는 동등한 지위를 약속한다.

 

????????....

 

이 조약이 알려지자 도광제는 극대노 하였습니다. 

기산은 전 재산이 몰수 당한 후 시베리아 흑룡강으로 유배형에 처해졌죠

 

도광제는 기선을 유배 보내며 다음과 같이 엄중하게 그 천인공노할 죄악을 성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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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선이 영국군에게 협박을 당해 광동성의 정황에 대해 경솔하게 상주해 거짓 보고 하기를 

지리적 이점으로는 수비할 수 없고 무기는 예리함에 의지할 수 없고 청나라 병력은 취약하고 민간의 사정은 안정적이지 못하다고 했다. 

불필요한 우려를 자아내고 과장해 조정을 압박했다.

이처럼 은혜를 배신하고 나라를 망치는 것으로 양심을 깡그리 저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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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까말 우려와 과장이 아닙니다. 

기선이 조정에 보고한 것은 그야말로 팩폭 수준의 진짜 사실이었죠

그러나 임칙서가 그러했듯 기선 역시 고구마 100만개 먹고 유배형을 처해졌을 뿐입니다 

 

청나라는 곧 영국에 공식적으로 선전포고를 합니다 

그리고 청나라의 위대한 명장 양방을 후임으로 광저우로 보내 무지몽매한 서양 오랑케를 토벌하라 지시합니다

 

양방은 15세에 입대하여 55회 참전한 백전 노장이자 뛰어난 전공으로 후작에 봉해진 인물입니다. 

자금성에 말을 타는게 허락된 당시 청나라 최고의 명장이었죠

그런 그가 광저우로 출정하며  "오랑케에게 천조국의 공포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겠다" 호언장담했습니다 

 

근데 막상 광저우에 내려와 보니 이게 뭥미입니다. 

고작 4일 만에 청나라 정크선 수십척이 영국 전함에 종이배 마냥 작살나고

포대들이 차례로 개박발 나는 것 보게 되었죠 

결국 멘탈이 아예 나가 버립니다.

 

영국군이 저토록 대포를 잘 쏘는 것은 주술을 부리기 때문이다! 라며

여자가 쓰는 요강뚜껑을 모아서 영국놈들의 사악한 주술을 깨뜨린다고 여자들 요강을 모으라 명령했죠

 

그리고 양방 장군에게 전임자인 기산의 비참한 말로는 훌륭한 반면교사가 되었습니다

정직한 보고서를 조정에 올렸다고 흑룡강으로 유배형에 보내진 마당에 사실을 적은 보고서를 올리는게 불가능하죠

 

양방은 오직 살아남기 위해 이후 거짓 보고서를 올리게 됩니다 

 

영국군이 포대를 공격해 박살내고 청군이 대패를 했을 때는

영국군이 밖에서 순찰만 돌 뿐이다 보고서를 올렸고

영국 함선이 근처에 지나가자 놀라서 오지마 ㅜㅜ 대포를 사격했을 땐

당당히 영국 전함 2척을 침몰 시키고 영국군 수십명을 사살했다 보고서를 올리죠

 

그러면서 적이 겁을 먹고 뉘우치니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통상을 허락해주고 돌려 보내는게 어떻겠습니까 라고

호기로운 보고서를 올립니다. 실상은 젭알 휴전하게 허락해 주세효...

 

그러나 현장의 진실을 모르는 도광제는 더욱 기세가 등등해질 뿐입니다 

 

"그리 쉽게 용서할 거면 뭐하러 대군을 파견해 진압하겠느냐 오랑케들이 행여 도망칠 수 있으니 완벽하게 섬멸하라"

 

라고 지시를 합니다

 

사실 광저우 지역주민의 입장에서 더 큰 문제는 영국군이 아니었습니다. 

광저우 도시를 방어 하겠다고 내려 온 바로 황제의 군대 양방의 4만 대군이었습니다  

 

그냥 도적떼들이었거든요.

 

양방이 이끄는 청나라 4만 대군이 광저우를 지키겠다고 와서 실제로 한 짓거리는 약탈, 방화, 강간, 살인 이었습니다

광저우는 영국군의 침략을 받은게 아니라 청나라 군대의 침략을 받은 상황이였던 것입니다. 

청나라 군의 침공???으로 삽시간에 초토화가 된 광저우에서 백성들이 이를 못 견디고 전투를 하며 저항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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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개판이 벌어지게 됩니다.

 

전체적으로 정리를 하면  

청나라 중앙 정부는 멀쩡히 잘 방어가 된 광저우를 개뜬금 무장 해제하여 완전 무방비로 만들었습니다. 

이걸 나중에 방어? 한다고 파견 된 청나라의 장군은 여자들 오줌을 모으고 있죠   

그리고 청나라 4만 대군은 방어는 커녕 광저우를 침략을 해서 방화,살인,강간,약탈을 합니다 

졸지에 집이 초토화 된 주민들은 단지 살기 위해 봉기하여 청나라 군대와 전투를 하고 있던 중에  

 

드디어 영국군이 상륙해 광저우에 대한 공세를 시작한 것입니다.

 

아니 이게 뭔...ㅅㅂ

 

그렇게 영국군의 본격적인 공세가 시작되자  

청나라의 명장 양방은 백성들과 용맹하게 전투를 하던 것을 잠시 멈추고 광저우 200리 밖으로 영국군을 피해 후퇴했습니다. 

 

아편 전쟁에 대한 영국측의 기록을 보면 포대를 점령하고 군대를 격파 할 때 마다 청나라 군영에는 항상 아편이 있었다 합니다

청나라 군대의 기강이 당시 개판이었음을 말하죠

이에 반하여 영국군은 대영제국의 명예에 걸맞게 기강이 잡혔다고 크게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영국인들이 기록한 영국 측 기록에 그렇게 나온다입니다. 

 

서구 문명의 최선진국이자 기강이 잡히고 잘 훈련된 영국군은 야만적인 청나라 군대와 전혀 달랐습니다

원정군 사령관 엘리엇 소장은 군 기강을 잡고자 기존에 해 온 전리품을 획득을 금지합니다

그동안 영국군의 소박한 풍습이었는데 청나라 사람을 잡으면 그 변발을 잘라내 기념품으로 챙기는 행위였죠

같은 서구 문명국인 프랑스군의 경우 훗날 아메리카에서 배운 재미난 기술을 써먹어 

청나라 사람을 잡으면 머릿 가죽을 통채로 벗기었던 반면 영국군은 나름 이성적인 군대였습니다

 

또한 아편전쟁 기간 영국군은 기강 확립을 위해 나름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영국군이 원하는 보급 물자를 곱게 주는 마을은 명예롭게 살려주고 거부하는 마을은 전부 초토화한다 "

일종의 '백인의 의무'죠

 

다만 영국원정대 사령관 엘리엇 장군이 이런 합리적인 규칙을 선포했음에도

무지몽매한 청나라 주민들은 그 큰 뜻을 모르고 아니 시부랄 보급물자 걍 내놓으라니? 그게 약탈이잖아? 라고 반응해

안타깝게도 영국군은 어쩔수 없이 청나라 백성들을 그냥 전부 학살했습니다

 

청나라 군대가 잠시 물러 간 유서깊은 도시 광저우에서 역시 그러했죠

아편에 쩔어 기강이 없던 청나라 군대의 야만적인 약탈과 학살이 끝나자

이번에는 기강이 잘 잡힌 영국 군대의 문명적인 약탈과 학살이 벌어졌습니다

 

그런 영국군이 중국 땅에서 궤멸 될 뻔 한 위기가 딱 한번 있었습니다. 

삼원리 마을에서 발생한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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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를 점령하여 문명적이고 합리적인 약탈 방화를 마친 영국군 6천명은 광저우 외곽에 주둔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들만의 규칙에 의거해 마을들을 열심히 약탈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영국군이 우란강이란 마을에서 청나라 농민 위소강의 아내를 강간 하였죠 

이에 결국 격분한 마을 주민들이 봉기하여 1만여명의 농민들이 영국군을 포위하게 됩니다

때 마침 비가 내려 화약이 젖는 바람에 대응 사격을 할 수 없었던 영국군은 졸지에 데꿀멍합니다. 

 

이때 곡괭이와 삽을 든 청나라 농민의 놀라운 전투력을 보여주죠 

양방이 끌고온 청나라 정규군은 단 한번 사용 못한 유인, 각개 격파 전술을 사용해 가며 패닉이 된 영국군을 공격하였습니다. 

삽시간에 영국군은 4명이 사망하고 20여명이 부상당하는 피해를 입으며 퇴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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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진으로 다급히 피신한 영국군은 비가 오는 도중에도 쏠 수 있는 플린트락 머스킷을 공수해 저항을 시도 했습니다

하지만 청나라 농민들의 숫자는 더욱 늘어 영국군 본진을 포위하는데 가담한 농민들 숫자는 2만명에 육박하게 되었죠 

급기야 영국 원정군이 전부 청나라 농민들에게 포위 섬멸 될 위기에 처합니다. 

 

이때가 아편전쟁을 통털어 영국군이 가장 위급했던 순간입니다

아편전쟁이 청나라 농민들의 곡괭이에 끝나버릴 뻔했던 사건입니다.

 

하지만 영국군 사령관은 원정군의 전멸을 막고자 기지를 발휘해 다급하게 광저우 총독 여보순에게 연락합니다 

광저우를 돌려주는 조건으로 600만냥을 받기로 했고 양방 장군과 협상이 진행 중인데 왜 공격하느냐! 

지금 우릴 공격한다면 반드시 보복한다! 라고 농민들이 아니라 청나라 관료를 협박한 것이죠.

 

이에 총독 여보순은 마을에 가서 니들 영국군 포위 안 풀면 600만냥을 마을이 배상하도록 조치한다

농민들을 겁박하며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런 엄청난 금액은 갚을 수 없는 농민들은 막대한 빚더미에 두려움을 느끼고 포위를 풀어 영국군을 놔주게 됩니다

 

그럼 이 와중에 청나라 군대는 무얼했느냐?

영국군에게 항복하고 바칠 600만냥을 열심히 모으는 중이었습니다

농민들에게 전가하겠다고 한게 실제 진심이었죠

영국군 사령관이 600만냥 주고 항복해야 광저우를 돌려 주겠다고 했거든요

 

양방은 부족분을 사재까지 털어서 채웠고 납부하기로 한 날짜 보다 2일 빠르게 이를 바칩니다.

그리하여 청나라, 영국 양측에 약탈당해 초토화된 광저우를 겨우 돌려받게 되었으니 이를 광주화약(廣州和約)이라 부릅니다

 

이 와중에 거짓 보고는 또 성실하게 올립니다

영국의 기함을 격침시켰다고 당당하게 보고를 올렸죠  

이 당시 양방의 주옥같은 명문 상소문이 많은데 진정한 하이라이트는  

광주화약으로 양방이 영국군에 항복한 후 청나라 중앙정부에 올린 상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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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밖의 서양 오랑캐 두목 몇몇이 손짓 발짓을 동원해 뭔가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통역관을 불러다 물어보니 긴히 간청드릴 일이 있어 대장군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감히 대청 제국의 대장군을 만나기를 청하느냐. 우리는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어 네놈들을 공격해 싹쓸이할 것이다.’

이 말에 오랑캐 두목이 허겁지겁 모자를 벗고 좌우를 물리쳤으며 무기를 모두 땅에 내려놓은 뒤 성을 향해 정중히 예를 갖추었습니다.

통역관이 ‘대청제국에 항거하고 온갖 악행을 서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들은 ‘유일한 생계수단인 무역이 금지되어 화물이 유통되지 않아 손실이 막대하고 손해액을 보상받을 길이 없어 막막합니다.

이것만 해결되면 다시는 분란을 일으키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소연했습니다.

진심으로 사죄하고 있으며 부디 황제께서 너그러이 은혜를 베풀어 그들이 거래에서 손해 본 돈을 상환하고 통상을 허락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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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거 보면 네이트 판춘문예니 인터넷 주작 소설이니하는 것들이 얼마나 순진한지 새삼 느껴지죠

이거야 말로 목숨을 걸고 구라를 치는 구라일체의 경지에 오른 가히 명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1841년 8월에 이르면 농민 곡괭이 맞아 뒤질 뻔한 영국군들은 재보급을 받아 각성하게 됩니다 

전쟁을 질질 끄는 청나라를 상대로 대영제국의 무서움을 보이로 결심 합니다

 

다시 북상하기 시작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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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군은 양자강에 진입하여 마치 어른이 아이를 혼내기라도 하듯 일방적으로 청나라를 박살 내기 시작합니다

주산군도는 재차 함락되었으며 양자강 입구인 영파를 지키던 청나라 장수 여보윤은 이렇다할 전투도 없이 도주해 버립니다.

영국군이 일방적인 포격과 학살이 이뤄지며 절동지역의 3개 도시가 삽시간에 함락되어 버립니다.

 

근데 사실 이건 영국군이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입니다. 

중국의 가장 중요한 핵심 지역에 영국군이 진입을 시작했는데

지키는 병사들은 영국군 보다 적고 그 조차 공격을 시작하면 죄다 도망치기 바쁩니다

포격 몇방이면 도시가 무너지는 어처구니 없는 전쟁을 하죠 

이때 청나라 군대라는게 지휘관이고 병사고 죄다 아편중독자들이라 전투란게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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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광제는 그야말로 까무러칠 노릇입니다

광저우에서 올라온 보고서에는 영국군을 분명히 격퇴했습니다. 

근데 그 영국군이 개뜬금 없이 양자강 유역에 나타났다네요?

그 와중에 보고서는 또 다시 청나라 표준양식으로 올라와서 양자강 연안 도시들이 영국군에 개털렸다는 것은 또 숨겨졌습니다. 

이젠 황제가 전쟁이 대체 어찌 돌아 가는지 파악하는게 불가능할 지경이 됩니다

  

새로 혁경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해 이들 지역을 정리 하라 보내게 됩니다

 

그해 겨울 영국군은 양자강 하구에 점령한 도시들에 주둔했습니다

그리고 문명국의 합리적 규칙에 따라 약탈 방화 살인등을 하며 겨울을 지냈죠   

 

그동안 청나라는 춘계 반격을 준비하였습니다

새로운 사령관 혁경은 북경에서 이화원 관리를 하던 인물로 전투경험이란게 전무한 사람이죠

청나라 말기 대부분의 팔기군들이 그러하듯 특권층으로 서서히 부패해가던 전형적인 청나라 장군입니다

 

강남의 소주에 도착한 혁산은 정규군 1만 2천명 민병대 3만 2천명을 조직합니다

나름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영국군 해군 함대가 대단하긴 하지만 청나라는 전통적인 육군강국이고 육지에 붙으면 반드시 승리할거라 여겼죠

그 확신이 어느정도였는가 하면 소주에 도착해 한 일이 전투를 시작도 하기 전에 자신의 승전 개선도를 그리게 했습니다

대인배스럽게 천하의 인재를 구한다며 글을 배우고 똑똑한 소주의 문인들에게 오랑케를 격퇴할 계책을 물었죠 

이 기회에 출세를 해보겠다 여긴 자들이 몰려 들어 수 많은 병법과 계책이 그의 책상에 수북히 쌓였습니다.   

그 열망에 감동해 백일장을 열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정규군과 민병대는 겨울을 쓸데없이 허송세월 지내며 섞여버려 지휘체계가 엉망이 되었습니다. 

혁경은 나름 길일 잡아 출정을 한다고 점을 쳐서 어렵게 잡은 날짜에 출병을 선포합니다. 

하필 비가 심하게 오는 우기였죠...

1842년 3월 장대 비가 우중충하게 내리는 상서롭고 길한 날?

혁경의 대군은 비에 젖고 진흙탕에 빠진 채로 엉망진창이 되어 출정 진격하게 됩니다.

 

계획은 원대했습니다.

군대를 3부대로 나누어 3만명으로 영파를 공격하고 1만명으로 진해를 공격하며 1만명은 배를 타고 주산군도를 친다

왠지 계획상의 병력이 출정 병력 보다 좀 많은듯 하지만 사소한 건 무시해야죠

 

더 큰 문제는 계획만 그럴 뿐 실제는 전 병력의 60%는 소중한 지휘부를 보호하기 위해 후방에 남았다는 것입니다. 

사령관 혁경도 소흥에 남아 비오자나..  출병을 안했습니다. 

그냥 전방 지휘는 부하인 참모장에 맡겼습니다

그럼 그 참모장은 지휘란 걸 했느냐? 그도 청나라 장군인데 그럴리가요

후방에서 아편 빠느라 정신없죠 전투가 개전되었을 때에도 아편과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때문에 공식적으로 5만에 달한다는 영국군 격퇴를 위한 청나라 대군 중에

실제 전투에 임한 병력은 고작 4천명에 불과했습니다

 

3만 대군으로 공격한다는 영파를 치는 임무는 고작 700명의 병력이 칼을 들고 기습하는 것으로 바뀌었죠...

영국군은 곧 이를 발견하여 너넨? 뭥미? 하며 전부 학살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진행 된 영파, 정해 지역에서 전투 역시 일방적인 학살로 전부 궤멸되었습니다.

이런 청나라 군대의 괴상하고 이상한 도발과 어이없는 도주 궤멸을 보니 영국군은 대체 뭔가 싶습니다   

싸우자는건가? 하며 영국군 1200명이 나와 진격을 시작하자 이 소식을 들은 혁경과 나머지 군대는 전부 도주를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1842년 4월 영국군은 장강의 운하구를 봉쇄하는데 성공합니다

대운하의 조운이 막혔다는 뜻이죠

 

아편전쟁은 참으로 신기한 전쟁입니다

4억의 중국인이 있는데 침공해 온 고작 1만명의 영국군을 상대로 실제 전투에 임하는 군대라는게 거의 없습니다.

어이없을 정도로 그저 붙으면 도망가기 바쁠 뿐이죠

심지어 전투가 벌어지면 자기땅에서 싸우는데도 매번 더 적어요

수 만명을 대병력을 동원했다고 공식 주장해도 정작 실전에는 항상 그 1/10만 남는 기적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1842년 7월 영국군 7천명이 드디어 양자강의 최요충지 진강을 공격하기에 이릅니다

강남 최대 요충지로 대운하의 통제권과 제2의 도시 남경성의 운명이 달린 지역입니다

문제는 여길 수비하는 병력이 청나라 팔기군 주방기병 1200명과 청주병 200명 뿐이었단 것입니다

지구 반바퀴를 돌아서 온 영국도 공세에 병력 7천명을 동원했습니다

근데 중국대륙의 가장 중요한 심장부가 결정적인 공격을 당하는 마당에 여길 지키는 수비병은 고작 1400명이였습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건 이때의 전투가 아편전쟁 전 기간을 통털어 그나마 전투라고 부를 수 있는 싸움이었단 것이죠 

아마 그런 전투가 최초로 벌어진 곳이 아닌가 합니다

 

진강의 방어군들은 영국군이 그동안 보여준 학살과 강간을 익히 들어 알았습니다 (영국군이 무슨 19세기 몽골군 같죠.) 

때문에 아내와 가족을 제손으로 모두 죽이고 결사항전에 임하였고 결국 전원이 전멸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진강이 함락됨으로 써 아편전쟁은 사실상 끝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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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의 함락은 이제 시간문제가 되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영국군에 의해 강남의 대운하가 막혔다는 것입니다. 

황제가 살고 있는 북경이 경제적으로 고립되어 버린 것이죠

영국군이 중국의 목줄을 틀어 쥔 이상 게임이 끝난 것입니다.

 

아편전쟁의 시작에서도 이미 말했지만

영국은 이 전쟁에서 매우 영리한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1차 북상에서 바로 텐진을 쳐서 가장 위협적인 수비 사령관을 날리고 전략상 우위에 섰습니다 

2차 북상에서는 중국의 급소를 쳐서 바로 중국의 목숨 줄을 틀어쥐었죠

마치 오랜기간 치밀한 계획이라도 한듯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1842년 7월 29일 진강이 무너졌단 소식이 북경에 알려지자 더이상 전쟁을 지속할 수 없음을 깨닫죠    

그제서야 기영에게 전권을 주어 영국과 화친을 하라는 지시가 내려옵니다. 

1842년 8월 29일 영국 함선에서 청나라의 문호개방을 내용으로 하는 조약이 체결 되죠 

난징조약이 체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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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 조약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5개항구 개항

2. 홍콩 할양

3. 관세자주권 포기

4. 배상금 지불

5. 공행폐지

 

이때 난징조약의 굴욕을  다양하게 언급 하곤 합니다. 

 

근데 솔직히 이때 아편전쟁과 난징조약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청나라에 큰 충격이나 파장을 주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동안 신하들의 각종 거짓말이 밝혀지고 서양 오랑케와 화친을 하여 황제의 위신이 좀 실추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역사상 북방 유목민이 요충지 도시를 점령하고 약탈한게 한두번도 아니고 돈을 주어 평화를 산 것도 한두번이 아니죠

북방 오랑케나 서양 오랑케나 그놈이 그놈이며 관례대로 대우를 했다며 나름 정신승리가 가능한 영역입니다.

 

심지어 북방 유목민을 상대할 때 전통적으로 그러했듯 청나라는 나름 짱구를 굴려 이이제이 전술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영국을 견제하는 계책이랍시고 러시아, 프랑스, 미국과 조약을 맺은거죠

청나라 이 호구들은 지들이 하는짓이 어떤 븅신짓을 하는 중인지 똥인지 된장인지도 몰랐던 것입니다 

덕분에 청나라는 영국에게 난징조약으로 한번 털려먹고 끝날 걸 일을 아예 더 크게 벌렸죠 

영,프,미,러 모두에게 털려먹는 놀라운 기적을 스스로 이뤄냅니다

미국은 영국느님이 꿀재미라 가르켜준 아편무역에 가담해 터키산 아편을 수입해 청나라에 왕창 팔며 수익을 올렸습니다 

이 당시 영국의 꼬붕으로 전락한 프랑스는 숟가락 쪽쪽 빨며 옆에 붙어 있다가 2차 아편전쟁에 가담하죠

 

그리고 러시아는? 어찌되었을까요

 

잠시 난징조약으로 돌아가 홍콩 할양을 생각해 봅니다. 

중국인들은 이때 홍콩을 내어준 걸 무슨 영토주권의 상실이니 무슨 치욕이니 생쇼를 하며 엄살을 부렸죠.

지금은 홍콩을 탄압하며 하나의 중국 이지랄을 하는 중입니다. 

솔까말 지금 영국이 만만하고 홍콩이 금싸라기 땅이 되었으니 그런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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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 원이 이때 러시아와 아이훈 조약을 맺으며 청나라가 러시아에 넘겨 준 영토입니다

홍콩섬? 아니 한반도 크기 보다 큽니다

북만주 지역은 스스로 븅신짓 하며 자발적으로 넘겨줬으니 괜찮은가 봅니다

아니면 이건 홍콩보다 쪽팔려서 언급 안하나 봅니다. 

 

더불어 재밌는 사실은 아편전쟁을 종결한 난징조약을 보면 정작 아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오직 자유무역의 가치만 말할 뿐이죠

하지만 누구나 알듯 이 전쟁의 결과로 청나라는 두번 다시 아편을 단속할 엄두를 못냈습니다.  

청나라로 반입되는 아편은 이제 영국을 넘어 미국, 프랑스까지 가세해 엄청난 물량이 쏟아졌죠

결국 청나라는 자포자기하고 국내에서 아편을 제조하기 시작합니다

수입산 마약을 막을 방법이 더이상 없으니 차선책으로 신토불이 마약을 만들어 국산마약 애용운동이라도 해야죠  

그야말로 개막장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한편 영국의 입장에서 보면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룬것 같지만

솔직히 뭔가 찝찝함이 크게 남겨진 전쟁이었습니다

 

너무 쉽게 이겼거든요

 

영국이 뉴질랜드 마오리족을 토벌할 때 사용한 군비가 300만 파운드입니다. 

근데 청나라와 아편전쟁을 할 때 쓴 군비가 고작 150만 파운드였습니다

영국은 청나라와 전쟁을 하며 일개 부족민과의 전쟁보다 못한 수준의 전쟁을 치뤘던 것이죠...

청나라가 이 정도로 개판인 줄은 영국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 한 너무 충격적인 것이였습니다

 

아편전쟁은 사실 전쟁이나 조약 그 자체만 본다면 매우 미미한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를 보면 아편전쟁은 향후 중국에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가장 뼈아픈 피해를 가져왔죠

 

바로

 

중국이 사실은 개호구였단 것을 서구열강에게 들켜 버린 것입니다. !!!

 

이제 서구의 모든 국가들이 동네 바보형 청나라를 지켜보기 시작했으니

청나라에 또 다시 전운이 감돌기 시작합니다.

 

 

끝.

 

 

 

 

 

* 본 글과 관련한 다른 견해나 사실관계 정정은 언제든지 적어 주시면 항상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역사적 사실관계와 관련한 부분은 개인의 주관적 느낌이 아니라 합당한 근거를 함께 써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야 제가 놓친 부분이 있다면 배우고 다른 분들께도 도움이 될 듯 합니다.  

편하게 읽기 쉽게 요약한 글인지라 디테일에서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이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마약왕 영국의 아편전쟁 이야기. 1편 영국과 청나라.

https://www.dogdrip.net/281063214

마약왕 영국의 아편전쟁 이야기. 2편 아편무역.

https://www.dogdrip.net/281199558

마약왕 영국의 아편전쟁 이야기. 4편 최종 2차 아편전쟁.

https://www.dogdrip.net/281349078

13개의 댓글

굳굳. 잘 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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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역사인데도 개킹받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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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이 퍼지기전에 전쟁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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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2
@월급받으며개드립하기

그래도 못이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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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1

이 부분부터 시작하는 한중일 세계사 만화책 정보량도 많고 유익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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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1

신미양요 이후 미국이 한양을 군사적으로 점령하는데 필요한 병력의 수를 계산해본 결과 약 지상군 3만과 3만의 병력을 한번에 실어나를 수 있는 대함대가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와 조선을 무력으로 개항시키는 것을 완전히 포기했다고 함.

 

아편전쟁 당시의 청나라 군대가 영국군 상대로 조선군 정도의 결기만 보였어도 영국이 저렇게 쉽게 이기지는 못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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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1
@쉽지않은남자

 

 

2차 다구포대 전투 : 영국군 사상자 426명, 함선 4척 침몰 / 청군 사상자 32명

 

신미양요 : 미군 전사 3명 / 조선군 전사 24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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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1
@궁3초

그건 2차 아편전쟁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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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1
@쉽지않은남자

나중에 신미양요 조선군보다 더 열심히 싸우고 훨씬 더 좋은 성과를 실제로 보였더라도, 어차피 이길 수 없었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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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1
@궁3초

그보다는 신미양요의 광성보전투는 첫전투였고 다구포전투는 2차아편전쟁에서도 거의 끝자락 전투였다는 점이 중요한거지.

 

전쟁에 있어서 사기라는 것이 아주 중요한데 미군이 조선군에게 받은 인상은 독하다라는 거였거든. 그러니 한양을 점령하는 계획을 세울 때 주요 전략적 요충지를 모두 점령해야 하고 한양에서도 시가전을 해야한다는 가정을 했고 그 결과 약 3만 이상의 보병이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옴. 그런데 그럴만한 가치가 없으니 조선에 대한 강제 개항을 포기한거.

 

만약 청나라가 1차 아편전쟁의 첫전투에서 저 정도로 싸웠으면 영국도 저 전투결과를 바탕으로 새롭게 계산을 했겠지. 아마도 수십만의 병력 증원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을테고 그 경우 그렇게까지 해야할 가치가 있는가? 라는 고민도 하게 됐겠지. 근데 청나라는 이미 1차 아편전쟁에서 굉장히 무력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2차 아편전쟁에서 저런 기적적 승리를 거뒀어도 오히려 영국을 더 빡치게 만들었을 뿐이지.

1
2020.09.21
@쉽지않은남자

아. 예 ㅎㅎ;

1
2020.09.21

중국이 당한그대로 배워서 짱깨가 되어버린건가

0
2020.09.21

진짜 짱깨는 개병신들이다...

진짜 영국은 개새끼들이다...

웅장이 가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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