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노래로 알아보는 소련사

소련 노래의 가사를 자세히 파고들면 시대상황이 대강 드러나 있어 굉장히 재미있다.

 

 

 

 

1) <Если завтра война>

 

 

먼저 1938년에 발표된 노래 <Если завтра война, 만일 내일이 전쟁이라면>을 따져보자.

 

당시 소련은 스탈린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극단적인 중공업 육성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스탈린은 왜 그렇게 중공업 육성에 집착했을까? 그것은 소련이 사면초가의 형국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소련은 태동기부터 주변 열강의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제 1차 세계대전기에 삼국협상 진영에 섰던 국가들, 즉 영국과 미국, 프랑스와 일본은 동맹국이던 제정 러시아를 무너뜨리고 등장한 소비에트를 적으로 간주하여 간섭군을 결성, 적백내전에 백군 측으로 참전했다. 적백내전이 소비에트의 승리로 종결되고 소련이 성립한 후에도 이들 구미 열강은 지구상에 공산주의 국가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탐탁지 않았다.

 

 

Wladiwostok_Parade_1918.jpg

<간섭군의 시베리아 출병. 적백내전에 백군측으로 참전한 협상군이 블라디보스토크를 행진하고 있다. 한편 역시 간섭군이었던 일본제국군은 무려 7만 명이나 출병한데다 간섭이 종료된 후에도 시베리아에 남아 일본의 괴뢰국가를 건설하려는 야욕을 드러냈다. 이에 영국과 미국은 일본의 검은 속내를 알게 되어 견제를 시작했고 이들간의 갈등은 향후 태평양 전쟁의 단초가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스탈린을 포함한 소련 수뇌부는 언제라도 다시금 구미 열강이 공격해올지 모른다는 편집증에 가까운 강렬한 두려움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소련은 아직 후진 농업국가였으므로 그들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결국 스탈린은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최단시간 내에 중공업을 발전시키고 다가올 침략에 대비해야 소련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이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2446081_orig.jpg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선전하는 소련 포스터. 중공업 발전을 위한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라는 스탈린의 아이디어는 많은 후진 개발도상국이 차용하게 되었다. 다만 지나치게 중공업에 집착한 결과 여러 악조건이 겹쳐 농업 분야에서는 처참한 실패만을 거듭했고, 결국 수 백만~ 천만 명 가까이 아사한 홀로도모르 참사가 일어났다. 소련의 농업은 이후로도 회복하지 못했으며, 넓고 비옥한 평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곡물이 부족하여 냉전시대에도 미국으로부터 식량을 수입해야만 했다.>

 

 

더구나 구미열강보다 더 심각하고 가까운 위협이 태동하고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나치 독일이었다. 베를린의 골목에서 공산당과 피튀기는 주먹다짐을 하며 성장한 나치당은 공산주의자를 모조리 쓸어버리자고 공공연히 외쳤다. 그리고 그 외침은 단순한 겁주기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증오였으며, 나치 독일과 소련은 둘 중 하나가 쓰러질 수 밖에 없는 역사의 외나무다리 위에 서있었다.

 

 

Pavilions.jpg

<1937년 파리 엑스포 당시 에펠탑 앞에 세워진 나치 독일의 국가관과 소련의 국가관. 마치 서로 맞서는 듯한 구도로 세워진 양 국가관은 훗날의 대전쟁을 암시하는 듯하다.>

 

 

1938년, 히틀러가 주데텐란트의 할양을 요구하고 나서자 전 유럽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1938년 9월, 그 유명한 '우리 시대의 평화' - 뮌헨 협정이 체결되면서 히틀러는 성공을 거두었고, 영국과 프랑스는 체코슬로바키아를 배신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소련은 승승장구하는 나치 독일에 맞서기 위해 오랜 적이었던 바로 그 구미열강, 영국과 프랑스와의 다자안보체제를 제안하나 영국과 프랑스는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아무도 자기 편이 되어주지 않는, 그러면서도 전쟁은 시시각각 다가오던 바로 그 암울한 시대에 등장한 노래가 바로 <Если завтра война>다. "만일 내일이 전쟁이라면"이라는 제목 그 자체로 그 시대의 소련이 얼마나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Если завтра война,если враг нападет,

Если темная сила нагрянет,

Как один человек, весь советский народ

За свободную Родину встанет!

 

만일 내일이 전쟁이라면, 만일 적이 공격해온다면,

만일 검은 세력이 닥쳐온다면,

전 소련 인민이 마치 한 사람처럼

자유로운 조국을 위해 일어날 것이다!

 

На земле, в небесах и на море
Наш напев и могуч и суров.
Если завтра война, Если завтра в поход,
Будь сегодня к походу готов!

 

땅에서, 하늘에서, 그리고 바다에서

우리의 노래는 전능하고 강력하다.

만일 내일이 전쟁이라면, 만일 내일 공격해야 한다면,

오늘 전투를 위해 준비할 것이다!

 

 

 

 

2) <Воевать мы мастера>

 

 

<Воевать мы мастера, 우리는 전쟁의 장인이다>는 1941년 11월에 개봉한 영화 'Боевой киносборник № 6'에 삽입된 곡이다.

 

1941년 11월! 마침내 히틀러는 독소 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6월 22일 바르바로사 작전을 개시했다. 나치 독일은 세계 전쟁사를 다시 써나갔다. 타이푼 작전이 전개되던 11월이 되면 독일군은 북녘의 칼리닌으로부터 남으로는 툴라의 코앞까지 진출해 있었다. 브랸스크와 뱌지마의 포위망에 갇혀있던 66만명에 달하는 소련군은 11월이 되기 직전에 독일군에게 사로잡혔다. 독일군은 쌍안경으로 크렘린의 뾰족한 별을 관측할 수 있었고, 모스크바와 독일군 사이에는 엉성하게 급조된 모자이스크 최후방어선만이 위태롭게 버티고 있었다.

 

 

German_troops_crossing_the_Soviet_border.jpg

<소련 영내로 진군하는 독일군. 독일군이 지나쳐 가고있는 저 표지석이 바로 소련의 국경을 나타내는 것이다.>

 

 

혁명의 심장 모스크바가 나치의 손에 넘어가기 일보 전의 상황에서, 스탈린은 중대한 결심을 했다. 중세의 봉건적 전통과 군주들에 대한 찬양을 금지하고 민족주의를 강력하게 억눌렀던 기존 방침을 완전히 파기하고 러시아인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킨 것이다. <Воевать мы мастера>는 이런 상황에서 불려졌다.

 

 

orig.jpg

<1941년 11월 7일 10월 혁명* 기념일에 레닌 영묘 앞을 지나 붉은 광장을 행진하는 소련군. 모스크바 코앞까지 적이 닥쳐온 절체절명의 순간에 스탈린은 기존의 모든 방침을 파기하고 러시아의 애국주의에 불을 붙였다.>

 

 

 

 

Эй, герои! Разве не с кого Брать нам в доблести пример?
Вспомним ратный подвиг Невского, Боевой его манер.
Брал отвагой молодецкою Он на озере Чудском,

И остальсь псы немецкие Под холодным русским льдом!

 

아, 영웅들이여! 누구 본보기로 삼을 자가 없겠는가?

(알렉산드르) 넵스키의 위업을, 그의 전투를 상기하라.

그는 페이푸스 호 위에서 젊음과 용기로써,

개같은 독일인들을 러시아의 얼음 밑에 수장시켰도다!

 

Воевать мы мастера, И сегодня, как вчера,

По-геройски бьются русские бойцы.

И сегодня, как вчера, Под могучее "ура"

Сыновья идут на битву, как отцы!

 

우리는 전쟁의 장인들이요, 오늘 또한 어제와 같이,

영웅적인 러시아의 전사들은 싸운다.

오늘 또한 어제와 같이, 전능한 "만세(우라)" 함성 아래

아들들은 전장으로 나간다, 그들의 아버지처럼!

 

 

 

 

<Воевать мы мастера>는 알렉산드르 넵스키를 포함하여 표트르 대제와 알렉산드르 수보로프의 전설적인 군공을 언급한다. 가사는 시종일관 이들의 투지를 지금 전장에서 독일군과 맞서는 소련군에게 대입하고 있으며, 이들의 용기를 가슴 속에(В сердце) 간직하고 싸워나갈 것을 직접 주문하고 있다.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국난을 타개하기 위해 꺼내든 비장의 수, 민족주의 의식의 고취라는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 혁명 당시 러시아는 율리우스 책력을 사용했는데 이 책력에 따르면 거사일이 10월 25일이 되기 때문에 10월 혁명이라 불린다. 그러나 소련이 탄생한 이후 소련 역시 다른 국가들처럼 그레고리 책력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 책력에 따르면 거사일이 11월 7일이 된다.

11개의 댓글

소련에 스탈린이 아니라 트로츠키가 집권했으면 어떘을까

0
2020.03.15
@전설의호두껍질

적백내전 시즌2

0
2020.03.14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소림사였는데 머임>?

0
@구더기는레후

나돜ㅋㅋㅋ

0
2020.03.14

엥 테트리스 브금에 소련 역사 축약한거 있을줄 알았는데

0
2020.03.15
@Ludrik

222222

0
2020.03.15

Ура! Ура!

0
2020.03.15

라스푸틴 써주실수 있나요ㅋㅋㅋㅋㅋㅋㅋ

0
2020.03.15

국가관 디자인이 나치가 더 마음에 드네

심플하면서도 허영심이 잘 담겨져 있는듯

나치가 더 오랫동안 남아있었으면 멋진 건축물 많이 만들었을텐데

그렇다면 아직 일제 치하라서 그런것도 모르고 살았겠네ㅋㅋㅋㅋ

0
2020.03.16

센세 오래 기다렸습니다. 소비에트 글도 흥미있네요

0
2020.03.20

소비에트 ㅇㄷ 센세, 더 많은 노래, 더 많은 자료를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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