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해병 청룡부대의 패전 " 짜빈박 전투 "

 

 

베트남전이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던

 

 

1965년 6월 1일

 

 

베트남의 전투전력 파견 요청에 따라

 

 

국무회의에서 1개 사단과 지원부대를 파병하기로 결정합니다.

 

 

1965년 9월 20일

 

 

해병 제 2여단 " 청룡부대 "가 창설됩니다. 

 

 

> 해병 제 2연대를 증편하여 창설합니다.

 

 

캡처.JPG [군사작전] 해병 청룡부대의 처참한 패전 " 짜빈박 전투 " - 1

1330785568_청룡마크 (1).jpg [군사작전] 해병 청룡부대의 처참한 패전 " 짜빈박 전투 " - 1


 

1966년 8월

 

 

꽝응아이성 쭈라이 지역으로 이동한 

 

 

청룡여단은 

 

 

1967년을 시작으로 대대적인 평정작전에 들어갑니다.

 

 

04_cont_040504_01.jpg [군사작전] 해병 청룡부대의 처참한 패전 " 짜빈박 전투 " - 1

> 청룡부대의 작전 지역이었던 쭈라이 지역

 

> 훗날 미라이 사건이 벌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미라이 사건은 1968년 3월 16일, 청룡부대로부터 책임지역을 인계받은

 

미 제 23사단 11여단 제20연대 1대대 C중대가 작전 중 민간인을 대량사살한 사건입니다.

 

2.JPG [군사작전] 해병 청룡부대의 처참한 패전 " 짜빈박 전투 " - 1

 

 

 

베트남 중부인 쭈라이 지역은 베트콩들의 세력이 큰 지역이었습니다.

 

 

이에 작전지역 내 안전지역 즉 평정지역을 확대하기 위해

 

 

1967년 1월 5일부터 1월 14일까지

 

 

" 투망작전 "이라는 이름으로 작전을 실시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1월 5일 ~ 1월 10일 실시될 전반기 작전은 

 

 

집중호우로 인해 힘들어지고 있었습니다.

 

 

어렵사리 청룡부대 1대대와 2대대는 기지 주변 마을에 대해

 

 

수색 및 주민 소개작전을 강행하고 있었습니다.

 

 

212FE93F577A220C31.jpg [군사작전] 해병 청룡부대의 처참한 패전 " 짜빈박 전투 " - 1

> 최악의 날씨에도 어떻게든 작전을 강행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3대대의 목표인 적 점령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 섬멸을 위해

 

 

헬기의 기동이 꼭 필요했습니다.

 

 

우기 탓에 헬기 기동이 불가능해지자 

 

 

3대대 지휘관 조형남 중령은 헬기 없이는 작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근거로

 

 

작전 연기를 여단 본부에 건의하였고 승인을 받게 됩니다.

 

 

uh1b.jpg [군사작전] 해병 청룡부대의 처참한 패전 " 짜빈박 전투 " - 1

> 월남전의 상징인 UH-1 휴이 헬기

 

 

> 당시 헬기는 모두 미군이 운용하였고 요청 및 지원을 받아 한국군은 작전을 실시합니다.

 

 

이에 따라 

 

 

대대 전술 지휘소를 9중대 본부에서 

 

 

원래 대대 전술 기지가 있는 지역으로 철수를 결정합니다.

 

 

철수와 함께 헬기 지원을 요청하지만 날씨 탓에 지원은 거절됩니다.

 

 

대대 지휘부는 어쩔 수 없이 도보로 이동하기로 결정합니다.

 

 

> 당시 철수 과정이나 도보이동 결정과정을 살펴보면

 

 

1. 좁은 중대기지에서 대대 지휘 요원들의 불편과 혼잡

 

 

2. 철수 이동로는 3대대 9중대 인원들이 자유롭게 왕래할 정도로 안전지대

 

 

3. 대대 전반에 대한 지휘를 위한 주 지휘소의 필요성. 

 

 

이는 큰 실책이었습니다.

 

 

이 지역을 관할하던 월맹군(정규군)과 베트콩은

 

 

청룡부대의 이동 상황을 오랫동안 관찰하였고

 

 

기습매복공격을 실시하기 위해 1개 중대 규모의 병력을 

 

 

철수 이동로가 있는 197 고지에 매복시켜놓은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철수 이동로에 있는 

 

 

안디엠 마을에서 40고지에도 병력을 매복시켜놧죠.

 

 

1967년 1월 9일

 

 

투망작전을 힘들게 실시하고 있을 무렵

 

 

민사작전을 진행하던 3대대 민사장교 양영구 중위가 

 

 

1개 중대의 월맹군이 잠입했다는 정보를 얻었죠.

 

 

하지만 대대 작전장교 진우현 소령은 

 

 

" 믿을  수 없는 잡소리 " 취급해버립니다.

 

 

> 당시 하루에도 확인되지 않는 첩보와 제보가 수십건에 달했기에 

 

베트콩도 아닌 월맹 정규군 중대가 들어올리가 없엇죠.

 

 

이 첩보는 결국 대대 정보장교나 대대장에게 보고되지 않습니다.

 

 

 이는 큰 참사로 이어지게 됩니다.

 

 

 

아군 지역 내에 월맹 정규군 1개 중대 약 200명이 침투했다는 첩보를

 

 

보고하지 않은 결과는 곧 나타나게 됩니다.

 

 

철수 이동로 였던

 

 

3대대 9중대 기지에서 짜빈박 마을을 거쳐

 

 

안디엠 마을까지 이르는 구간은 약 4km였습니다.

 

 

이 구간은 9중대의 보급 추진 등 2~3명 단위의 병사들이 

 

 

자유롭게 출입하던 곳이었습니다.

 

4.JPG [군사작전] 해병 청룡부대의 패전 " 짜빈박 전투 " - 2

g.JPG [군사작전] 해병 청룡부대의 패전 " 짜빈박 전투 " - 2

 

 

 

따라서 이정도야 걸어서 복귀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죠.

 

 

1월 9일 대대 전술 지휘소의 복귀 계획을 알립니다.

 

 

> 당시 참전 용사의 수기에 의하면 

 

 

전편에서 말했던 첩보를 접하고 직접 작전장교에게

 

 

" 철수 전 이동로에 포사격으로 제압하는 것이 좋겠다 " 

 

 

라고 건의하였으나 당시 작전부대의 정보에 대한 불신이 강했고 

 

 

첩보를 접한 당일에 그 일대에 작전을 햇으나 적과의 조우가 없었기에 

 

 

첩보에 대한 근거가 부족했죠.

 

 

또한 당일 작전 시에도 대체로 아군의 기도비닉이 잘 유지되지 않았고

 

 

매복한 월맹군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기에 거의 포착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절차상 대대 전술 지휘소의 정보장교에게 첩보를 전해야 했으나

 

 

계급도 낮고 경험도 부족하기에 실질적으로 작전장교에게 전달되는게 흔했습니다.

 

 

 결국 작전장교에게 전달된 첩보는 묵살되고 말았죠.

 

 

1967년 1월 10일 14시 10분

 

 

9중대의 전술 기지를 출발한 3대대의 지휘 본부 병력은

 

 

지휘 본부 31명, 9중대에서 차출된 1개 소대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들의 무장은 주로 M1 개런드와 M1 카빈으로 무장했었습니다.

 

 

별도의 기관총이나 지원화기는 없었으며, 

 

 

당시 완전 신형인 M16 소총은 교육용으로 일부 배치되어

 

 

소대에 1정, 본부에 1정씩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본대인 지휘반은 절반이 권총을 휴대한 장교와 통신병이었으므로

 

 

화력을 말할 것도 없이 미미했습니다.

 

 

02eae59000e7392120c872f37f40b6a7.jpg [군사작전] 해병 청룡부대의 패전 " 짜빈박 전투 " - 2

> 사진과 같이 초기에는 M1 소총을 주력으로 M16 소총을 화력지원 용으로 쓰기 시작하다가

 

후기에는 완전히 M16 소총이 주력으로 자리잡기 시작합니다.

 

m1-garand.jpg [군사작전] 해병 청룡부대의 패전 " 짜빈박 전투 " - 2

> M1 개런드 소총

 

> 월남전 당시 한국군의 주력 소총으로 

 

8발의 단발 사격이 가능하였지만 정글과 같은 근거리 전투에서 화력열세를 보였습니다.

 

 

664ce363833c27f8f79e089bcebdde6e664d10516bdccdf9cffc184a53a9fa24623f7472fd8f2e018d5dc239d5549f30ad88d78f30163e26e9de1881ddc8325b62d7f2703433c05a6ff3926567188e90d56f7731c65ca26fe6988ff1fa579078.gif [군사작전] 해병 청룡부대의 패전 " 짜빈박 전투 " - 2


전투에 들어가기 앞서 전투가 벌어진 지형을 설명하겠습니다.

 

 

짜빈박에서 안디엠 마을까지는 1m~ 2m의 좁은 길을 따라

 

 

좌측에는 수로지대이자 개활지가

 

 

우측에는 197고지가 있었습니다. 

 

 

길은 따라 좀 더 가면 파손된 10채의 농가가 있었고 

 

 

농가에서 좌로 꺾어 수로지대를 가로지르면 40고지가 나옵니다.

 

 

40고지에서 우측으로 돌아서면 안디엠 마을이 있었죠.

 

 

지형적으로 197고지에 다가가게 되면 무전기 전파를 197 고지가 가로막아 

 

 

9중대 전술기지를 제외하고 불통이 됩니다.

 

 

매복한 월맹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bac18.jpg [군사작전] 해병 청룡부대의 패전 " 짜빈박 전투 " - 2
K-3.png [군사작전] 해병 청룡부대의 패전 " 짜빈박 전투 " - 2


 

1개 중대규모의 200명은 경기관총, 자동소총 등과 죽창, 곡괭이등 공격대용 무기까지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국군의 화력보다 월등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들은 위의 지도와 같이 197고지 하단에 주력부대를,

 

 

안디엠 쪽에서 국군증원부대를 차단할 의도로 40고지와 197고지 사이에 일부를 배치합니다.

 

 

각 부대 사이에 원활한 통신을 위해 지휘용 유선까지 가설했습니다.

 

 

아주 철저히 매복을 준비한 상태였죠.

 

 

14시 30분경

 

 

고지와 숲에 둘러싸여 시야는 더욱 제한되고 있었고

 

 

197 고지의 전파 방해로 여단 및 대대 지휘소와 연락이 두절됩니다.

 

 

후방 부대를 제외한 전위소대와 본부지휘반은 

 

 

수로지대에서 월맹군 매복 부대에 완전히 노출된 상태였죠.

 

 

> 매복한 월맹군 앞에 20여개의 무전기 안테나를 가진 집단이 나타났고 

 

 

곧바로 이들은 대대본부 이상의 지휘부라는 것을 눈치챕니다.

 

 

그들이 노릴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표적이었죠.

 

 

전위소대의 첨병이 수로지대의 절반지점을 지나던 그 때

 

 

첨병이던 제 2분대 1조장 기세창 병장과 박광남 일병은 

 

 

197고지 하단에서부터 40고지 쪽 숲으로 향하던 

 

 

월맹군을 발견합니다.

 

 

도주하던 월맹군으로 착각한 이들은 적 발견을 외치며

 

 

선 자세로 사격을 시작합니다. 

 

 

길 한복판 개활지에서 행군 대열은 일시적으로 멈춥니다.

 

 

전위 소대는 곧바로 자세를 낮추고 경계를 실시하지만, 

 

 

본부 병사 몇몇은 그대로 서있기도 합니다. 

 

 

사격을 받은 월맹군이 도주한다는 보고를 받은 소대장은 

 

 

추격 명령에 따라  전위소대가 추격을 하려는 그 순간.

 

 

우측 197 고지로부터 치명적이고 기습적인 사격을 받게 됩니다.

 

 

지휘 부대는 곧바로 좌측 논두렁으로 엄폐합니다.

 

 

1188358e71ecdf5e398df50ad083a517e355bc8468003c4b8eff12b0ca552e49ab3adec9a756bde0f66ebd0a2c96280e22f995c42a2f6844a83da5677d5d70551d0a134764d2836d8a663cda47b3541acbb5b4b18f7431be0f62a7e51a491308.jpg [군사작전] 해병 청룡부대의 패전 " 짜빈박 전투 " - 2



월맹군은 집요하게 전위 소대와 본부 소대의 선두를 향해 사격을 가합니다.

 

 

이들은 본부 소대의 본대와 떨어져 고립되어 가고 있었으며

 

 

전세는 점점 아군에게 불리하게 돌아갑니다.

 

 

 집중 사격에 전사자와 사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하였고

 

 

논두렁에 엎드려 최초 상황을 중대에 보고하던 통신병 신유웅 상병이 

 

 

적의 유탄에 맞아 쓰러집니다.

 

 

 

111.JPG [군사작전] 해병 청룡부대의 패전 " 짜빈박 전투 " - 2

 

이런 상황에서

 

 

본부 엄호는 커녕, 대항하기 조차 어렵다 판단한 전위소대장 김태철 소위가 

 

 

분대장들에게 40고지 방향으로 이동을 명령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 

 

 

40고지에서 총탄이 날아왔고

 

 

김태철 소위가 머리와 등이 피격되면서 전사합니다. 

 

 

거기다 첨병과 적의 거리는 수류탄 투척거리가 될 정도로 근거리가 됩니다.

 

 

격렬하게 반격하며 수류탄을 던지던 첨병들도 교전 중 머리에 총격을 받아 전사합니다.

 

 

이에 분노한 2분대장 송관석 하사가 전사한 첨병들을 향해 기어가 수류탄을 투척하지만

 

 

그 역시도 머리가 피격되어 전사합니다.

 

 

40고지에 완전히 노출된 전위 소대 2분대는 치열하게 교전하였으나, 

 

 

월맹군의 사격에 하나 둘 쓰러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월맹군도 전위 소대의 필사적인 저항에 막혀 

 

 

그들 사이에 있는 수로지대를 건너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쏟아지는 비와 흙탕물에 총기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아군 주변의 수로지대는 모두 아군의 피로 물들어가는 등

 

 

불리한 상황을 넘어 전멸하기 전까지 몰리자

 

 

이대로 있다간 소대가 전멸할 것이라 생각한

 

 

전위 소대 1분대 박광선 하사가 

 

 

적의 공격을 막고 전사상자를 보호하기 위해 

 

 

전사한 소대장의 M16을 가지고 자동소총수인 윤광열 상병과 함께 

 

 

맹렬히 엄호사격을 실시하였고 

 

 

남은 소대원들에게 서쪽 수로지대를 횡단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물이 찬 땅을 지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 명씩 움직일 때 마다 집중사격을 당했고 이 시도를 마지막으로 후퇴는 실패합니다.

 

 

저항이 줄어들자 숲에서 한무리의 적이 몰려나와 

 

 

전위 소대의 부상자와 사망자들에게 확인사살을 하는 만행을 거듭하였고

 

 

화기와 통신장비를 탈취해갑니다.

 

 

이 때 복부관통상을 당한 변운한 일병이 다음날 아침 구출되었으나 

 

 

일주일 후인 1월 17일 필리핀의 미공군 클라크 기지병원에서 숨을 거두고 맙니다.

 

 

전위 소대원 중 유일한 생존자는 교전 초 40고지방향으로 진출하여 홀로 숲에서 밤을 새우고

 

 

다음날 아군에게 구출된 이ㅇㅇ 일병만이 유일한 생존자였습니다.

 

 

전위 소대는 약 한시간 동안 날씨, 지형, 병력, 화력 등의 불리함을 무릅쓰고 

 

 

최후의 1인까지 포기하지 않고 적과 싸웠으며, 해병대의 투지를 보여주었습니다. 

 

 

bac08.jpg [군사작전] 해병 청룡부대의 패전 " 짜빈박 전투 " - 2

 

 

 

+

 

추가로 당시 전위 소대장인 김진철 소위는 몸이 성치 않은 상태라 경계부대로 들어가지 않앗지만

 

 

출발 직전에 갑자기 나가게 되엇고 서둘러 전위 소대장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생존자들 증언에 따르면 최초의 매복 공격 직후 엎드린 상태에서 지도를 펴며

 

 

"여기가 어디야"라고 하는 등 확실히 지휘하기에 상태가 좋지 았앗다고 합니다.

 


적의 사격은 계속 집중되고 있는데, 전령이 생각하기에 도저히 그 자리에 오래 머무르면 안될 것 같아

 

 

큰 소리로 소대장을 부르며 “여기 있으면 안 됩니다. 빨리 빠져나가야 합니다.”하고 외쳣고

 

 

“그래, 그래”하더니 197고지 하단 쪽으로 돌진했는데, 개활지를 벗어나지 못한 채 적탄에 맞아 전사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생존자 이일병은 소대장과 거의 동시적으로 40고지로 뛰었는데,

 

 

다행히 개활지를 벗어나 숲 속에 몸을 숨긴 뒤, 적에게 발견되지 않았지만 꼼짝도 하지 못한 채 밤을 새웠고

 

 

익일 아군의 탐색작전시 구출됩니다.

 


- 9중대 파견된 양 석교 포병관측장교의 증언
 

 

 

 

아시다시피 짜빈박 전투는 짜빈동 전투처럼 널리 알려진 전투가 아닙니다.

 

 

당시 정부의 승리만을 말하고 싶어했기에 묻힌 전투 중 하나고 

 

 

당사자들의 증언이 있기 전까지 제대로 된 정보가 없던 전투입니다.

 

 

청룡부대 참전자들의 수기와 당시 사건경위를 바탕으로 작성한 글입니당. ㅠ 

 

 

원래 여기서 끝이 아니고 더 있는데 다른 일 때문에 못쓰고 남겨놨는데 이거라도 여기 올려봤습니당 

 

 

조만간에 마저 다시 써보려고 합니당 ㅠ 

 

7개의 댓글

2020.03.11

라이라이라이라이 차차차!

0
2020.03.11

뭐임?

0
2020.03.12

역시 간부 새끼들이 문제야 ㅋㅋㅋ 병사들은 작전 입안하는 새끼들 따라서 움직이기만 하는데 간부가 병신이라 다 죽어야되네 ㅋㅋ

3
2020.03.12

해병은 흑룡부대지

0
2020.03.12

뛰어난 적군보다 더 무서운건 멍청한 우리 지휘관이다

1
2020.03.13

어디서본거같다

0
2020.03.20

확인사살이 왜 만행이냐? 부상자 죽이는 건 저때 전쟁이 개판이고 정글에서 이동하는데 포로 끌고 다니기 거추장스러우니 이해는 간다만.

0
무분별한 사용은 차단될 수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추천 수 날짜
1212 [역사] 지도로 보는 정사 삼국지 ver2 18 FishAndMaps 14 5 일 전
1211 [역사] 군사첩보 실패의 교과서-욤 키푸르(完) 1 綠象 1 6 일 전
1210 [역사] 아편 전쟁 실제 후기의 후기 3 carrera 13 9 일 전
1209 [역사] 왜 사형수의 인권을 보장해야만 하는가 72 골방철학가 62 20 일 전
1208 [역사] 세계역사상 환경적으로 제일 해를 끼친 전쟁행위 17 세기노비추적꾼 13 24 일 전
1207 [역사] 송파장과 가락시장 5 Alcaraz 9 26 일 전
1206 [역사] 미국인의 시적인 중지 4 K1A1 17 28 일 전
1205 [역사] 역사학자: 드래곤볼은 일본 제국주의사관 만화 17 세기노비추적꾼 13 2024.03.23
1204 [역사] 애니메이션 지도로 보는 고려거란전쟁 6 FishAndMaps 6 2024.03.13
1203 [역사] [English] 지도로 보는 광개토대왕의 영토 확장 3 FishAndMaps 4 2024.03.08
1202 [역사] 지도로 보는 우크라이나 전쟁 2년 동안의 기록 9 FishAndMaps 12 2024.03.06
1201 [역사] [2차 고당전쟁] 9. 연개소문 최대의 승첩 (完) 3 bebackin 5 2024.03.01
1200 [역사] [2차 고당전쟁] 8. 태산봉선(泰山封禪) 3 bebackin 4 2024.02.29
1199 [역사]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 이야기 3 에벰베 6 2024.02.28
1198 [역사] [2차 고당전쟁] 7. 선택과 집중 bebackin 4 2024.02.28
1197 [역사] [2차 고당전쟁] 6. 고구려의 ‘이일대로’ 2 bebackin 4 2024.02.27
1196 [역사] [2차 고당전쟁] 5. 예고된 변곡점 1 bebackin 3 2024.02.26
1195 [역사] [2차 고당전쟁] 4. 침공군의 진격 1 bebackin 3 2024.02.25
1194 [역사] [2차 고당전쟁] 3. 몽골리아의 각축 1 bebackin 5 2024.02.24
1193 [역사] [2차 고당전쟁] 2. 당나라의 ‘수군혁명’ 4 bebackin 9 2024.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