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2020년 신년사 + [독일 근현대 산책] 11. 1848년 「2월 혁명」 2/2

독일 근현대 산책이 10화를 넘기는 동안 해도 넘어가 어느덧 2020년 새해가 밝아왔습니다.

 

그동안 저와 함께 하셨고 앞으로도 함께 하게 될 독자 여러분께 늦었지만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독자 여러분의 지인 분들께도 독일 근현대 산책을 소개해주면서 덤으로 제가 드린 새해 복도 같이 전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쯤하여 독일 근현대 산책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 분들의 배경은 잘 모릅니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잠시 읽을거리를 찾는 직장인이실 수도 있고, 학교 과제를 위해 인터넷을 뒤적이던 학생이실 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그 누가 되었건 여러분은 사회 속에서 부딪히고 넘어지며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는 한 명의 인간일 것입니다.

 

저는 독일 근현대사를 아주 좋아합니다. 독일 근현대사를 공부할 때면, 주어진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도전하는 위대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도전이 언제나 성공했던 것은 아닙니다. 혹 안하느니만 못한 도전도 있었고, 어떤 때는 잿더미만을 남긴 도전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명이라는 거대한 벽을 부수고 무너뜨리고 기어오르는 끊임없는 도전의 정신은, 수백년이 지나 지구 반대편을 살아가는 제게 그 무엇보다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 율리시즈에 묘사된 위대한 정신처럼 말입니다.

 

자, 동지들이여! 떠나자
더 늦기 전에 새로운 세계로 배를 밀어내어라
순서대로 앉아 파도를 헤쳐나가자
내가 가는 곳은 해가 지는 곳,
서쪽 별들이 목욕하는 곳
죽을 때까지 그곳으로 향하노라
심연이 우리를 삼킬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행복의 섬에 닿아
우리 옛 친구, 위대한 아킬레스 다시 보리라

 

비록 잃은 것이 많지만
남아 있는 것도 적지 않도다
우리의 힘이 옛날처럼 하늘과 땅을 뒤흔들 수는 없으나
그래도 우리는 우리다

한결같이 영웅의 기개를 가진 우리는,
시간과 운명에 의해 약해졌다 하여도
추구하고, 발견하고, 결코 굴복하지 않을
강한 의지력을 지녔도다

 

부족한 실력에도 몇 자 글을 써서 독자 여러분께 독일 근현대사를 소개하는 이유도 다름이 아닙니다. 열심히 살아가는 독자 여러분이 독일 근현대사를 읽으면서 다시금 운명에 도전할 수 있는 영감과 용기를 얻으시길 바라는 것입니다. 결코 굴복하지 않고 끝없이 도전했던 그들처럼 독자 여러분도 부딪히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서 한없이 나아가시길 바라는 것입니다. 인명 몇 개, 연도 몇 개 외우는 것보다도 그 위대한 정신을 여러분이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으셨다면 그것만으로 제가 글을 쓴 목적과 보람은 충분히 이룬 것입니다.

 

아직 독일 근현대사 산책이 갈 길은 멀지만(솔직히 이름을 마라톤으로 지을걸 하고 후회하고 있습니다.) 신년을 맞이한 기념으로 잠시 독자 여러분의 의견수렴을 하고 싶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감상이나 건의사항(예컨대 글자 수를 키워달라던가, 분량을 줄여달라던가, 혹은 내용을 좀 더 쉽게 풀어서 써달라던가 하는)이 있으시다면 자유롭게 댓글로 남겨주세요.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독자 여러분의 추천과 댓글은 큰 힘이 됩니다!

 

 

 

 

시대의 발전에 따른 국가의 변화를 원했던 신흥 세력들에게, 기조는 타도해야 할 보수 세력의 화신과도 같았습니다. 그리하여 기조를 책잡아 끌어내릴 기회를 얻기 위해서, 어서 그의 내각이 어떤 실책을 저지르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기회는 기조 내각의 외교 정책 실패에서 찾아왔습니다. 유화적인 외교를 펼치려던 기조는 그 때 영국과 프랑스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에스파냐 왕실의 결혼 문제를 놓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프랑스와 피레네 산맥 하나를 두고 곧장 이어져 있는 에스파냐는 언제나 프랑스의 관심 대상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조는 당시 에스파냐 왕국의 여왕이었던 이사벨 루이사 데 보르본(1830~1904)를 반드시 프랑스인과 결혼시켜 에스파냐에 대한 프랑스의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사벨 여왕과 루이 필리프 1세의 막내아들인 몽팡시에 공작 앙투안(1824~1890)을 결혼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를 견제하려는 영국 역시 비슷한 의도로 이사벨 여왕에게 영국 왕실과 같은 가문인 독일의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의 작센 공작 레오폴트(1824~1884)와의 결혼을 제의했습니다. 결국 강대 강으로 맞붙게 된 프랑스와 영국은 서로 한발씩 양보하면서 몽팡시에 공작과 작센 공작 중 누구도 이사벨 여왕과 결혼시키지 말자는 내용의 밀약을 맺었고, 이 문제는 일단 해결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Queen_Isabella_II_of_Spain_by_Franz_Xaver_Winterhalter,_1852.jpg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 흔히 이사벨 2세라고 불린다. 남편인 카디스 공작 프란시스코와는 프랑스의 압력으로 결혼한 것이다보니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King_Francisco_of_Spain.jpg

<이사벨 여왕의 남편인 카디스 공작 프란시스코.>

 

 

 

 

그런데 1846년에 영국 외무성 장관이 된 파머스턴 자작 헨리 존 템플(1784~1865)이 슬그머니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과의 혼담을 다시 논의에 올리자 기조로서는 크게 화가 났습니다. 그리하여 기조는 그에 대한 반격으로, 19461010일 이사벨 여왕과 프랑스계인 부르봉 가문의 사촌 카디스 공작 프란시스코(1822~1902)를 결혼시켜 버렸습니다. 한술 더 떠서 아예 같은 날 14살 된 이사벨 여왕의 동생 루이사 페르난다(1832~1897)까지도 몽팡시에 공작 앙투안과 결혼시키는 무리수를 두었습니다. 물론 영국이 먼저 이러한 사태의 원인을 제공하기는 했지만, 영국의 입장에서는 그저 혼담을 논의만 해본 것인데 밀약을 깡그리 무시하고 순식간에 결혼을 진행시킨 프랑스가 고까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프랑스와 영국의 관계는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험악해지고 말았습니다. 기조의 반대 세력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 사건을 두고 기조가 너무 성급하여 대사를 그르쳤다는 비난의 소재로 삼았죠.

 

 

 

 

한편 국내의 상황도 결코 기조에게 좋지 못했는데, 1846년과 1847년에 유럽을 덮친 대흉작은 프랑스 인민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기조가 아닌 그 누가 재상이었더라도 자연재해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겠지만, 여하간 이 흉작으로 인한 기아는 이미 미운 털이 단단히 박힌 기조 내각의 인기가 더 떨어지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Famine_memorial_dublin.jpg

<아일랜드 더블린 시에 있는 대기근 추모 동상. 악명높은 아일랜드의 대기근이 바로 이 시기에 일어났다. 1840년대 말의 기후 이상으로 인하여 전 유럽에서 밀의 흉작이 있었으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미국으로부터 시작된 감자 역병 탓에 감자를 주식으로 삼던 아일랜드는 재앙을 피해갈 수 없었다. 대기근 이후 아일랜드의 인구는 25%가 줄었다.>

 

 

 

 

그런데 기조 내각이 비난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사실은 7월 왕정의 근본적인 모순 탓이었다고 해야 할 겁니다. 오를레앙 가문의 루이 필리프 1세가 부르봉 왕가의 전제 군주들처럼 철권통치로 일관한 것은 물론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원시적인 형태의 입헌 군주제라고 보아야 하죠. 그러나 이미 반세기 전에 대혁명을 일으켜 유럽 최초로 자유·평등·박애를 기치로 내세운 공화국을 건설했던 사람들에게는 이 7월 왕정마저 너무나 갑갑한 족쇄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시대착오적인 국가였습니다. 7월 왕정치하에서는 이웃인 영국·벨기에보다도 국민들의 정치참여가 제한되었습니다. 거기다 산업혁명의 선발 주자인 영국의 자본가들과 힘겹게 경쟁하고 있던 프랑스의 산업 자본가들에게 아무런 보탬이 되어주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대흉작으로 인하여 국민들의 배를 채워주는 일마저 못하고 있었던 것이죠.

 

 

 

 

18477, 개혁 연회라는 모임이 결성되었습니다. 이 모임은 표면적으로는 정치 결사의 형태가 아니라 단순히 먹고 마시는 연회의 형태를 띠었기 때문에 당국의 감시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7월 왕정이 가지고 있는 모순을 해결하고 나아가 새로운 프랑스를 만드려는 모임이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처음에는 선거권의 확대뿐이었지만, 점차 모임의 규모와 세력이 커지면서 이제는 7월 왕정의 축출과 공화국 프랑스의 건설까지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이쯤 되자 기조로서도 이를 두고 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Banquet_du_Château-Rouge_(9_juillet_1847).jpg

<1847년 7월 9일 샤토 루주에서의 개혁 연회 모임. 개혁 연회는 프랑스 각지를 돌면서 세력을 키워나갔다.>

 

 

 

 

1848119일에는 파리의 마들렌 광장에서 개혁 연회모임이 있을 예정이었는데, 기조는 이 모임을 금지했습니다. 정부에게는 모임을 마음대로 해산시킬 권한이 없었는데도 말입니다. 이에 개혁 연회의 파리 일정은 일단 1848222일로 미루어졌습니다. 다가올 모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기대는 점차 고조되었고, 221일이 되자 파리 시내는 온통 반정부 세력으로 메워졌습니다. 당황하고 겁먹은 기조는 아예 프랑스 전국의 모든 집회와 모임을 금지한다는 조치를 발표했는데, 이것은 오히려 반정부 세력을 크게 자극했습니다. 경찰 병력을 동원하여 잠잠해지는가 싶던 것도 잠시, 반정부 세력과 파리 시민들은 곳곳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정부군과 대치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위기를 무마하기 위해 223 루이 필리프 1세는 그동안 줄곧 비난의 대상이었던 기조를 해임시켰지만, 반정부 세력은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작은 승리의 기쁨에 도취되어 훨씬 흥분하여 외무성 건물 앞으로 몰려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우발적인 사고로 인하여* 외무성 건물을 지키던 군 병력이 시민들에게 발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죽는 대형 참사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Barricades_rue_Saint-Maur._Avant_l',attaque,_25_juin_1848._Après_l’attaque,_26_juin_1848_(Original).jpg

<파리 시내에 건설된 바리케이드. 다게레오 타입 카메라로 촬영된 사진으로 보인다.>

 

 

 

 

예상치 못한 이 참사로 인한 파리 시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 했습니다. 마지막까지 루이 필리프 1세를 지지했던 사람들도 이제는 모두 등을 돌렸으며, 정부군과 경찰까지도 시민들에게 합류하기 시작했습니다. 224, 루이 필리프 1세는 제복을 차려입고 그의 궁전을 경비하는 병력들 앞에 섰습니다. 그러나 병사들은 국왕 폐하 만세!라고 외치는 대신 공화국 만세!를 외쳤고, 루이 필리프 1세는 이로써 자신의 왕국이 종말을 맞이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곧바로 제복을 벗어두고 국왕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선언한 뒤 파리를 떠나 영국으로 망명했으며 2년 뒤에 거기서 죽었습니다. 이리하여 1848년의 2월 혁명으로 프랑스인들은 7월 왕정을 끝장내고 혁명의 심장 프랑스에 다시금 공화국의 깃발을 드높인 것입니다.

 

 

 

 

Lar9_philippo_001z.jpg

<2월 혁명을 완수하고, 삼색기를 프랑스의 국기로 선포하는 장면이다.>

 

 

 

 

*1. 기조 내각의 직접적인 발포 명령이 있었는지 아닌지는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실수로 인한 발포였다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9개의 댓글

2020.01.02

하~참... 저 시기 유럽은 정말 다사다난 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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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68운동과 통일은 언제나오나요.. 수업에서 배우는데 개드립에서 읽으면 더 잘 외워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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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2
@취업을못해졸업을못하는중

1789년에서 1848년 사이의 60년을 다루는데 11화가 걸렸으니 1968년이 되려면...33화쯤에 나오지 않을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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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2

의외로 독일의 이야기는 잘 나오지 않네요. 오히려 독일로써는 에스파냐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을 것으로 보는 데 독일은 영국이 나서기 전까지 움직이지 않았다는 걸로 보이네요. 너무 단편적으로만 보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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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2
@키시구루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은 독일인이긴 해도 영국 왕실과 같은 가문이라 사실상 영국계라고 봐야 해요. 독일로써는 이사벨 여왕의 남편이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이든 부르봉 가문이든 어차피 남의 이야기였죠. 그렇다고 "이사벨 여왕을 독일인인 호엔쫄레른 가문과 결혼시켜 우리도 에스파냐에 영향력을 행사해보겠다!" 고 주장하기에는 아직 국력이 영국과 프랑스에 미치지 못하는지라...님이 말씀하신대로 독일이 에스파냐에 관심을 가지긴 했습니다만 그걸 행동으로 옮길 실력이 없었던거죠.

 

그런데 독일(프로이센)의 국력이 크게 신장된 후에는 독일도 에스파냐 왕위계승 문제에 직접 뛰어들게 됩니다. 그 이야기는 보불전쟁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두 세편만 더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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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2
@키시구루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은 영국 왕실과 같은 가문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그냥 독일어를 쓰고 독일에 사는 영국인들이란 거죠.

 

한편 제 1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영국과 독일이 전쟁에 돌입하자, 높아진 반독 여론 탓에 영국 왕실은 작센-코부르크-고타 라는 가문명을 버리고 아예 윈저 가문이라고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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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2
@키시구루

이 당시 유럽에서는 한 국가의 왕실이 원래는 다른 나라 출신의 가문인 경우가 꽤 많았습니다. 대표적으로 러시아 제국의 로마노프 가문만 해도 정식 가문명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고토르프-로마노프 가문으로 독일 출신이었죠.

 

우리나라로 예를 들자면 중국 출신이지만 한반도 국가인 조선의 왕이 된 기자를 생각해보시면 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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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3

유럽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는데 아주 읽기 쉽게 잘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연재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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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3
@교토 아재

잘 읽으셨다니 저로서도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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