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독일 근현대 산책] 7. 빈곤과 절망의 시간 1/2

* 독자 여러분의 추천과 댓글은 큰 힘이 됩니다!

 

 

 

 

이처럼 19세기 전반부에는 정치적으로 부자유 했을 뿐 아니라, 경제적인 빈곤 역시 독일인들을 절망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당시의 경제적인 빈곤은 전근대로부터 근대 산업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필연적인 아픔이었는데, 이 사실은 그것이 일시적이고 작은 범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유럽에서 광범위하게 오랜 시간에 걸쳐 나타났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대규모 빈곤은 독어로 파우퍼리스무스(Pauperismus), 영어로는 포퍼리즘(Pauperism)이라고 부릅니다. 수많은 사람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곳곳에서 대규모 봉기가 일어나고, 이를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정부와 군대가 만들어내는 끔찍한 불협화음은 독일인은 물론 유럽인들 모두에게 자기들의 미래에 대한 불행한 예측만을 가능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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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로버트 맬서스(1766~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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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맬서스 인구론」의 표지. 흔히 「인구론」이라고 불리지만 정확한 제목은 「인구의 원리가 미래의 사회 발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에세이 - 고드윈, 콩도르세, 그리고 그 외 작가들에 대한 고찰을 포함하여(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 as It Affects the Future Improvement of Society, with Remarks on the Speculations of M.Godwin, M.Condorcet,and Other Writers)」이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의 이러한 경향을 영국의 경제학자 토마스 로버트 맬서스(1766~1834)1798년 저작 인구론에 나타난 맬서스 트랩을 통해 느껴볼 수 있습니다. 맬서스는 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에 의하여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에 비해 농업 증산량은 형편없어서 인구를 모두 부양할 수 없으므로, 인류가 계속 살아남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라도 인구를 감소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얼마 전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둔 월트 디즈니 픽처스의 상업영화 어벤져스시리이즈에 최종 악역으로 등장하는 타노스」*를 생각해봅시다. 작중 타노스는 이런 말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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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노스. 얼핏 보면 마냥 나쁜 놈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꽤 일리가 있는 말을 한다.>

 

 

입은 많고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니, 우주 인구의 절반은 멸망해야만 한다.

 

한편 맬서스가 인구론에서 주장한 내용의 골자는 이렇습니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러므로 미래의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구의 관리가 필요하다.

 

어떻습니까? 타노스의 주장과 맬서스의 주장은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 세기 후 미국의 헐리우드에서 제작된 영화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맬서스의 시대에 유럽이 겪어야 했던 빈곤은 너무나도 거대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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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붉은 선)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식량(푸른 선)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대로 나아간다면 맬서스를 비롯한 19세기 전반부 유럽인들이 예측했던 대로, 그리고 타노스의 생각대로 인류에게 내일이란 없을 것이다.>

 

 

 

 

파우퍼리스무스의 원인

 

파우퍼리스무스가 발생한 원인을 분석하자면 이렇습니다. [독일 근현대 산책] 2, 프로이센의 개혁을 기억하시나요? 프로이센은 나폴레옹에게 겪은 패배를 극복하기 위해서 여러 분야에서 개혁을 시도했었죠. 특히 농업 분야에서는 농노제를 혁파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농노제라는 것은, 윤리적으로 보자면 인간이 다른 인간의 인신을 구속하는 것이므로 그릇된 것이지만 경제적으로 보자면 분명히 사회에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특히 농민들은 자신의 인신을 토지귀족에게 내어맡기는 대가로 자신의 토지에서 계속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하는 보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초 일대 개혁이 벌어져 농노제가 사라지고 나자 토지귀족 덕분에 얻을 수 있었던 보호도 사라졌고, 많은 농민들은 계속되는 손해나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토지를 빼앗긴 채 도시로 떠밀려 오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인클로저(Enclosure)운동을 생각해보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인클로저 운동 당시 영국의 지주들은 농업보다 더 이익이 되는 목축업을 위해 농경지에서 농민들을 쫓아내고, 대신 소나 양을 치는 목장을 세웠습니다. 이 때문에 수많은 농민들이 도시로 한꺼번에 몰려와 기아에 허덕이게 된 일이 있었죠. 19세기 전반의 독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단 농노제가 폐지되고 나자, 그러잖아도 토지가 비옥하지 않아서 농민이 많아봤자 별로 쓸모가 없던 엘베 강 동쪽의 토지귀족들은 쾌재를 부르며 농민들을 내쫓았습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아직 산업 혁명이 일어나기 이전이었으므로, 도시로 간다고 해서 딱히 먹을거리가 생겨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나폴레옹 시대가 끝난 이후 평화에 힘입어 1815년부터 1848년까지 독일 인구가 2200만에서 3500만으로 50%나 증가했는데도 농업 생산량은 그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던 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농민이든 도시인이든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려야 했구요.

 

 

 

 

*1. 글의 재미를 위해 타노스를 인용하긴 했으나, 솔직히 말하자면 필자는 어벤져스 시리이즈를 안 봐서 타노스를 잘 모릅니다. 틀린게 있다면 알려주세요!

 

 

 

 

*2. 농민들이 안심하고 농사지을 수 있는 토지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아주 중요한 겁니다. 예컨대 우리네 역사를 살펴보자면, 왜정기에 일제는 의도적으로 우리를 분열시켜 관리감독을 용이하게 할 심산으로 친일적 성향의 인물들을 골라 농촌에서 토지를 관리하는 「마름」의 지위를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농민들은 자기 토지에 절대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마름」에게 복종할 수 밖에 없었고, 일제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농촌 질서를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확립할 수 있었습니다. 왜정기가 끝난 후 대한민국이 건국될 때 대통령 이승만은 「유상몰수 유상분배」의 기치 하에 농민들에게 자기들의 토지를 갖게 하였으며 비로소 농민들은 안심하고 농사지을 수 있는 토지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공산주의자들이 부의 재분배를 약속해도 이에 동요하지 않을 수 있었으며, 한국전쟁기에 「박헌영」 등이 주장했던 「남한 인민들의 자발적인 봉기」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한편 독일사에서 살펴보자면, 나치 정부가 시행했던 정책과 「상속농지법」 제정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벌어졌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https://www.dogdrip.net/220791842https://www.dogdrip.net/220794116https://www.dogdrip.net/220794713 를 참고하시면 될 겁니다.

9개의 댓글

2019.12.18
0
2019.12.18

이번 편 내용은 어렵네요... 인간이 많아지면 오히려 인간을 줄여야한다 라는 말이 심심치않게 들리니... 킹스맨보면서도 들었던 생각이 여기서도 드네요

0
2019.12.18
@키시구루

다시 설명을 드려보자면,

 

1. 19세기 초 농노제의 혁파

2. 농민들은 자유를 얻은 대신 토지를 빼앗기고 쫓겨남

3. 쫓겨난 이들이 도시로 몰려옴

4. 도시라고 해서 먹을거리가 있는 것은 아님

5. 식량부족

6. 대규모 빈곤(= 파우퍼리스무스)의 발생

7. 맬서스 : 이대로 가면 다같이 망하겠다. 인구를 줄이자!

8. 타노스 : 우주의 절반을 줄이자!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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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9
@Volksgemeinschaft

다음 주제는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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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9
@키시구루

올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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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9
@키시구루

업데이트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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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9
@Volksgemeinschaft

호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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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8

낙찌선생님 재미있게 잘보고있읍니다

연재중단하지마시고 끝가지 이어나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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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편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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