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대항해시대의 서막,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항해일지 -1편-

다 가마.jpg

-콜럼버스와 함께 대항해시대를 연 주역인 바스코 다 가마, 하지만 잘못된 계산으로 계획한 한 번의 터무니없는 항해가 행운을 불러온 콜롬버스와 달리 바스코 다 가마의 항해는 포르투갈의 국책사업으로 수 십년간 개척한 항로, 항해지식을 토대로 이루어졌다.

 

마누엘1.jpg

-포르투갈의 국왕 돈 마누엘 1세, 그의 치세동안 행해진 개척사업으로 포르투갈은 브라질에서 인도네시아에 이르는 방대한 무역네트워크와 식민제국을 건설하여 황금기를 맞이하지만 인구 3백만*의 소국인 포르투갈의 체급으로는 감당하기가 도저히 불가능한 팽창이였다. 거기다 포르투갈 식민제국은 스페인의 아메리카 식민제국처럼 거대한 영토 전부를 점령하여 영향권 아래에 놓는 방식과는 달리 무역거점들을 점으로 삼아 선으로 연결하는 선에서 나아가지 못했다. 결국 포르투갈은 북아프리카에서의 레콘키스타와 식민지로의 유출, 항해 중의 사고를 통한 지속적인 인구의 소모, 인도, 동아프리카, 인도네시아등 현지 경쟁자들의 성장, 네덜란드와 영국의 식민사업 참가로 인해 한 세기의 찬란한 황금기를 쓸쓸히 마무리하고 에스파니아와 영국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는 지역 소국으로 전락하고 만다.

 

*1 출처 : http://www.san.beck.org/8-4-Spain%26Portugal.html

 

 

 

 

 

 

 

 

 

 

 

*바스코 다 가마의 1차 항해*

 

신의 이름으로 아멘!


1497년, 포르투갈의 국왕 돈 마누엘 1세께서는 향신료의 탐색과 항로 개척을 위해 바스코 다 가마를 제독으로 네 척의 배를 급파하셨다. 한 척은 그의 사촌인 파올로 다 가마가 지휘하고 나머지는 니콜라우 코엘로가 지휘한다.

 

 

 

[리스본에서 카보베르데까지]

 

1497년 7월8일 우리는 헤스텔루*항을 떠나 긴 항해에 나선다. 우리의 주 되신 하느님께서 이 항해의 성공을 허하고 가호하시길, 아멘.

 

*1 리스본 남쪽의 항구

헤스텔루belemtower.jpeg

-리스본에 위치한 헤스텔루항, 이곳에서 세계사를 뒤흔들 여정이 시작되었다.

 

 

돌아오는 토요일(7월 15일)우리는 카나리아 제도를 관측했고, 밤에는 바람을 따라 란사로테섬(Lanzarote)을 지나쳤다*1. 이어지는 새벽(7월 16일)우리는 Terra Alta에 도달해 두시간 정도 낚시를했다. 그리고 황혼이 내릴쯤 Riodo ouro*2에서 벗어났다. 밤새 내린 안개가 짙게 깔려 파올로 다 가마는 기함을 시야에서 놓쳤다. 그리고 날이 밝았을 때(7월 17일) 기함도 함대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헤어졌을때를 대비해 사전에 약속했던 대로 카보베르데로 향했다.

 

*1 카나리아 제도의 섬 중 하나

*2 스페인령 사하라 지역 중 하나

란사로테.png

-카나리아 제도의 섬 중 하나인 란사로테 섬, 대항온 유저라면 인도항로에서 중간 기착지로 자주 들렀던 기억이 날 것이다.

 

1200px-Morocco_Protectorate.svg.png

-빨간 부분의 맨 아래쪽이 Rio de orou지역이다.

 

 

 

 

돌아오는 토요일(7.22), 날이 막 밝았을대 ilha do sal*1섬을 포착했다. 그리고 약 한시간 뒤 화물선으로 이루어진 세 척의 함대를 발견했는데 우리와 함께 Mine*2까지 항해한적이 있었던 바르톨로뮤 디아즈와 니콜라우 코엘로(다 가마 함대 지휘관 중 한명인 코엘로와 동명이인인지 아니면 본인인지 확실치 않음)가 지휘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과 합류하여 카보베르데로 향하였으나 바람이 잦아들어 수요일까지 발이 묶였다.(7.26) 오전 10시쯤 우리는 5리그(대략 8km) 앞에서 기함을 발견했고 저녁이 되어서 그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는 대포를 쏘고 트럼펫을 연주하며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다음 날, 목요일(7.27) 우리는 samtiago(산티아구)섬에 도달했고 즐거이 산타마리아 만에 닻을 내리고는 고기와 물, 목재를 싣고 활대를 수리했다.

 

*1 카보베르데 제도의 섬중 하나

*2 지금은 elmina 성으로 불리는 가나 남쪽 해안에 위치한 포르투갈의 전진기지겸 무역기지

 

ilha do sal.png

-ilha do sal 섬의 위치, 카보베르데 글씨가 적혀 있는 섬이 samtiago(산티아구)섬이다.

 

mine바르톨로뮤.png

-Mine의 위치, 한때 황금해안이라 불린 이곳은 포르투갈의 주요 무역기지였으며 여러 천연자원과 노예를 주로 거래했다.

 

디아즈.jpg

-아프리카 최남단인 희망봉을 발견한 위대한 탐험가인 바르톨로메우 디아즈, 다 가마의 인도항해에서도 까메오로 모습을 비춘다.

 

 

 

[남대서양을 가로질러]


 8월 3일, 목요일, 우리는 동쪽으로 항해를 나섰다. 8월 18일(주, 이 기록은 바스코 다가마의 계산 미스로 실제로는 8월 20일), 산티아구에서 200리그 정도 나왔을 때, 남쪽으로 향하던 중 기함의 중앙 활대가 부러졌고 우리는 앞 돛과 중앙 돛을 이틀 밤낮동안 내렸다. 같은 달의 22일, 남서쪽으로 향하던중 우리는 해론(Gaivotoes로 알려진 검은 날개와 흰 몸을 가진 새)과 닮은 새 때를 보았다. 다가오는 밤 새들은 그곳에 육지라도 있는 듯 남남동을 향해 활기차게 날아갔다. 같은 날, 산티아구에서 800리그쯤 나왔을때 우리는 고래를 보았다. 금요일, 8월 27일, 성 시몬과 성 유다(배신자말고 성 유다 타대오)의 축일 전날, 우리는 고래의 때와 물개, Quoquas들을 보았다. 수요일, 11월 1일, 모든 성인의 축일(할로윈 다음 날, 할로윈 = All Hallows Eve = 모든 성인의 축일의 전야제), 우리는 해안가 인근에서 자라는 Gulf weed등 근처에 육지가 있다는 표식들을 발견했다. 같은 달 4일, 토요일, 날이 밝기 한두시간전, 수심을 측량하자 110 포르투갈 패덤(약 192m)이 계측됬고, 9시 쯤 육지를 발견했다. 우리는 예복을 갖추고 배를 가까이 붙인 뒤 포를 쏘아 제독께 예를 표하고는 장식과 깃발로 배를 치장하였다. 하루 동안 우리는 육지에 접근할 침로를 찾아봤지만 실패했고 다시 바다로 나갔다.

 

 

 

모자반.jpg

-대항해시대, 탐험가들은 해초, 새 때, 목재등의 부유물, 수면의 깊이 등을 근거로 근처에 육지가 있다고 판단하곤했다. Gulf weed, 한국어로는 모자반이라 불리는 이 해초 또한 근처에 육지가 있다는 증거였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무쳐서 먹는다.

 

Maturin.jpg

- 갑자기 생태에 관한 자세한 묘사가 나와서 뜬금없다 생각할수도 있지만 탐험지의 생태, 지리, 기후, 자원, 거주민의 풍습과 문화등의 기록과 탐구는 학술적으로도, 국가 전략적으로도, 그리고 홍보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행위였다. 현지에서 조사한 여러 정보를 판단으로 본국에서는 향후 정책과 개척방향등을 정했으며, '검은대륙의 신비로운 풍습과 생명체들' 따위의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제목의 출판물들은 인쇄술의 발전에 힘입어 군중들에 널리 퍼져 개척과 식민산업의 당위성, 투자와 후원을 부추기는데 아주 좋은 재료였다. 물론 이 외에도 후원자인 귀족과 부호들의 흥미본위적인 이유 또한 빠질 수 없다. 실제, 이들에게 발견된 여러 종의 생명체에게 후원자의 이름이 학명으로 붙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탐험가들의 주먹구구식인 기록과 탐구가 주를 이뤘지만 어느 순간부터 수 많은 생태, 문화, 지리 학자들이 함대의 손님, 국왕의 칙령을 받은 정규 조사원으로서 승선하기 시작했고 충분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함대의 군의관으로 복무하기도 하였다. 또한 오로지 학술적 목적만을 위해 탐험대가 파견되기도 하였는데 이 중 가장 유명한것이 진화론의 계기가 된 비글호의 2차 탐험이다.

 

 

 

 

 

 

[St.Helena의 만]

 

 화요일, 11월 7일, 넓직하고 낮은 만을 찾았기에 우리는 육지 근처로 돌아왔다. 제독은 Pero d'Alenquer에게 수심을 재고 좋은 정박장소를 찾아보라고 그를 보트에 태워 보냈다. 만은 잠잠했고 북서풍을 제외한 모든 바람으로부터 안전했다. 만은 동서쪽으로 넓게 이어져있었고 우리는 이곳을 Santa Helena로 이름붙였다. 수요일, 11월 8일, 우리는 만에 닻을 내리고 8일간을 배를 청소하고 목재를 확보하고 돛을 수선하며 보냈다. Samtiagua강은 정박지에서 4리그 떨어진 남동쪽 방향에서 만으로 흘러들어온다. 이 강은 내륙에서 흘러들어오고 조류에 상관없이 최소 2~3패덤 가량의 깊이이다(3.4~5.2m). 이곳의 원주민들은 어두운 톤의 피부를 가지고있다. 그들의 식생활은 가젤, 물개, 고래, 약초의 뿌리로 한정되있다. 그들은 피부에 치장을 하고 피복을 둘렀으며 불에 그슬리고 끝에 뿔을 단 올리브 나무창을 애착을 가지고 들고다녔다.(실제로는 Lance Wood로 만든 창. 그리고 이때 이미 현지인들은 철검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그들이 끌고 다니는 수 많은 개들은 포르투갈의 것과 비슷했고 짖는 소리도 비슷했다. 새들은 포르투갈과 흡사하고 Cormorants, 갈매기, Turtle Doves, Crested Larks등 수 많은 종류들이 있다. 날씨는 항시 온화하고 안정적이며 좋은 목초지를 제공한다.

 

 

 

세인트헬레나.png

-이 세인트 헬레나가 아니라

 

세인트헬레나 만.png

-남아공 서안의 해변인 St.Helena만 이다.

 

NORWAY-nordkapp_01.jpg

-고된 항해 끝에 육지를 발견하고 바로 정박할 수 있으면 최고겠지만 정박장소를 찾고 정박시키는것 또한 고난의 연속이다. 위의 사진은 노르웨이의 피오르 절벽 지형인데 고된 항해끝에 발견된 육지가 저 꼴이라 생각해보자, 육지를 발견한 탐험가들은 근해를 돌아다니며 상륙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야했고 상륙장소를 찾더라도 외풍, 수심, 암초, 조석간만의 차 까지 계산해서 함선의 정박장소를 신중히 정해야했다. 혹여 신천지를 발견하고 상륙할 생각에 들떠 이 사항들을 잊는다면 그 대가를 크게 치루었다. 썰물 때 배가 뻘에 박혀 밀물이 올때까지 발이 묶이면 다행인 수준이고 암초에 걸려 좌초하거나 급작스레 불어온 강력한 외풍에 닻째로 함선이 외해로 밀려나가 기약도 없는 구조대를 기다려야 하기도 했다. 

 

7267187228_27a706c839_b.jpg

-예포는 보통 기쁜일이 있거나 예를 표할때 발사되는데 해군에서 시작됬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 예포로 인해 웃지못할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니, 17세기 인도네시아로 향하던 영국의 선박이 서아프리카 해안에 상륙하여 예포를 쏘다가 선장을 사살해버린 사건이 그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향료전쟁이라는 책을 참고하시길

 


 닻을 내리고 하루 뒤, 즉 목요일(11.9), 우리는 제독과 함께 상륙했다. 우리는 현지인 하나를 사로잡았는데 sancho mexia의 석상만큼 조그마했다. 이자는 모래 황무지에서 꿀을 모으는 일을 하는데, 이 땅에서는 벌들이 황무지의 언덕아래 수풀 근처에 꿀을 저장해놓는다 한다. 우린 그를 제독의 기함에 승선시켜 식당에 데려갔다. 그는 우리가 제공한 식사를 먹었으며 다음 날 제독은 그를 잘 차려입혀 해안으로 보냈다. 그 다음날(11.10) 14명에서 15명쯤 되는 현지인들이 우리배가 정박한곳에 찾아왔다. 제독은 하선해 그들에게 여러 상품들을 모여줬는데 이는 이 상품들을 이곳에서 찾을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였다. 상품은 계피, 정향, 진주, 금, 그외 여러종류의 물건들이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러한 물건들을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는것이 확실했고 방울과 주석반지를 받고 돌아갔다. 이 일련의 일들은 금요일, 그리고 토요일에 벌어졌다.

 

 

3HaJVw3AYyXB7bX9gHH45Dn2Lz3NUv6JhAm5yUzjzfssYRhjzZLFn9CT5EP4LidWPu4Smxp2upPHviGajbvUxWCJyemsUQgw7EaEYmg.jpg

4208_3554_131.png

1202505219_oQd7mXlF_100520504-spices5B15D.jpg

-부에 대한 갈망은 포르투갈인들이 대양을 향해 나서도록 했고, 향신료와 귀금속이야 말로 그 부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일요일, [11.12] 40에서 50명정도 되는 현지인들이 나타났다. 우리는 육지에 내려 우리가 포르투갈에서 가져온 구리동전과 그들이 귓가를 장식하는데 쓰는 조개껍질, 얼굴에 부채질할때 쓰는 여우꼬리 장식을 교환했다. 나는 그들이 입고다니는 피복을 구리동전 하나에 얻을 수 있었는데 이로 미루어 보아 그들은 구리를 매우 높게 취급하는듯 싶었다. 과연 그들의 귓가는 작은 금속제 구슬들로 장식되있었다. 같은 날 제독과 함께있던 페르나우 벨로소는 현지인들의 거주지에 들어가 그들의 생활상을 알고싶다는 욕구를 강하게 표했다. 제독은 그의 끈질김에 이기지 못하고 현지인들을 따라가는것을 허락했다. 우리가 저녁을 먹으러 제독의 배에 돌아갈때 그는 떠나가는 흑인들을 따라갔다. 그들은 우리를 떠나고 얼마 뒤 물개를 잡았고 황무지의 언덕 아래쪽에서 구운뒤 페르나우 벨로소에게 나눠주고 나머지는 자신들이 먹었다. 식사 후 그들은 페르나우에게 이 이상은 따라오지 말라 알렸고 페르나우는 배로 돌아왔다. 그는 소리쳐 그가 배 근처로 왔다 알렸고 흑인들은 덤불에서 그를 계속 주시하고있었다. 우리는 저녁식사중이였으나 그의 소리가 제독과 우리 귀에 들리자 보트를 내어 해변으로 접근했다. 그 순간, 흑인들은 해변가에 재빠르게 뛰쳐들어와 페르나우를 배에 태우려는 우리에게 Assegai(아프리카 전역에서 사용되는 투창)를 던졌고 제독을 포함해 4~5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모든 일은 우리가 그들을 폭력과는 무관한 작은 영혼을 지닌 자들로 보아 무장하지도 않고 상륙했기 때문에 벌어졌다. 우리는 선박으로 귀환했다. 

 

 

 

magellan-death-1521-granger.jpg

-원주민을 순진무구한 천사같은 사람들이라 생각하는것은 현대인들만의 오류가 아니였던 모양이다. 실제 많은 탐험가들이 상륙도중 원주민들에게 목숨을 잃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위 그림의 주인공인 마젤란이다.

 

 해변 바로 앞 수심이 수 미터 이상 깊지않다면 항구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 지지않은 육지에 상륙하기 위해서는 좌초를 막기위해 육지에서 멀찍히 떨어진 안정적인 위치에 닻을 내리고 상륙대가 해변까지 보트를 타고 내리는것이 일반적이였다. 그리고 상륙대는 보통 그 인원수가 함대 전체 인원에 비해 그리 많지 않고 선박에 가득한 고화력의 무장을 사용할 수 없기에 아무리 개인무장을 잘 갖추더라도 현지 지리에 익숙한 원주민들에게 압도적인 우위를 가지기 어려웠다. 다행히 다 가마의 경우 부상에 그쳤지만 세계일주의 주인공인 마젤란은 막탄 섬을 침공했다가 현지인들에게 패하고 살해당한다.

 

 

 

원래는 책 전체 번역 끝나고 가다듬어서 한번에 올릴 생각이였는데 생각보다 오래걸릴것같아서 쪼갠상태로 조금씩 올려보겠습니다.

 

1차 사료인 '바스코 다 가마의 첫번째 항해'의 영역본을 한국어로 번역하는거고 저의 영어 실력이 후달려서 오역이 있을 수 있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12개의 댓글

2019.10.22

아 대항온마렵다

0
2019.10.22
@코딩맨

유튜브서 uncharted water online bar ost 검색 ㄱㄱ 어느새 컴퓨터에 대항온 깔려있는걸 볼수있음 ㅎㅎ

0

방금 대항4 라파엘 엔딩보고 왔는데 개꿀이네ㅋㅋㅋ

0
2019.10.22

저때 당시에는 인도가 아프리카 옆에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건가?

0
2019.10.22

지금 향신료가 대폭락이야! -56%

0
2019.10.22

참고로 한국은 무쳐서먹는다 ㅋㅋㅋㅋㅋ 꿀잼

0
2019.10.22

번역추 정성추 노력추

0
0
2019.10.23

이런글 좋아

0
2019.10.23

이름부터가 다 가마

퍄퍄 이름은 그 사람 인생에 영향을 준다는

동양철학이 옳았읍니다

0
2019.10.23

살벌했던 시절

0
2019.10.25

다 가마는 아무데나 다 가마

ㅋㅋㄱㄱㅋㄱㄱㅋㄱㅋㄱㅋㅋㅋㄱㅋㄱㅋㄱㄱㄱㅋㄱㄱㄱㄱㄱㄱㅋ

0
번호 제목 글쓴이 추천 수 날짜
공지 [게임] 게임 연재, 게임 정보는 게임 연재 판을 이용 해주시기 바랍니다 91 overflow 5 2017.04.18
공지 [기타 지식] 후기, 리뷰, 감상문은 허용 하지 않습니다 overflow 2 2016.07.29
공지 [기타 지식] 글 작성 금지 항목들 overflow 2 2014.04.06
공지 [기타 지식] 연속적인 글과 제목에 대하여 28 overflow 2 2013.08.11
공지 [기타 지식] 읽을 거리 판 입니다. 44 애드립 2 2012.07.25
720 [역사] [독일 근현대 산책] 4. 낭만 속에 숨겨진 불편함, 「비더마이... 6 Volksgemeinschaft 6 16 시간 전
719 [역사] [독일 근현대 산책] 3. 「나폴레옹 시대」의 종언 12 Volksgemeinschaft 3 2 일 전
718 [역사] [독일 근현대 산책] 2. 프로이센의 개혁 13 Volksgemeinschaft 2 3 일 전
717 [역사] [독일 근현대 산책] 1.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시대」 31 Volksgemeinschaft 4 4 일 전
716 [역사] 독일인의 식탁 29 Volksgemeinschaft 33 22 일 전
715 [역사] 일뽕들의 주된 논리:욱일기는 역사성을 지녔다 44 김정최유이임박 37 2019.11.10
714 [역사] "사람을 신경써라" : 독일노동전선사 38 Volksgemeinschaft 9 2019.10.29
[역사] 대항해시대의 서막,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항해일지 -1편- 12 스카우루스 11 2019.10.22
712 [역사] 조선 전기의 토종 무기와 전통무술(무기술)을 알아보자 52 김삿깟이 18 2019.10.19
711 [역사] 동양(조선)에 플레이트 아머가 없었던 이유? 73 김삿깟이 43 2019.10.15
710 [역사] 중국 공산당의 장기적출 학살 8 안티파굳 23 2019.10.12
709 [역사] 황제를 도발해서 십족을 멸족 당한 사람. 30 문화충격 28 2019.10.08
708 [역사] 나폴레옹의 마지막 나날들 15 스압따위안붙임 18 2019.10.05
707 [역사] 다크폴 그리고 사신클랜 -1 12 관종>ㅆ< 1 2019.09.21
706 [역사] 국가사회주의 시대의 과학 ③ 11 Volksgemeinschaft 2 2019.09.19
705 [역사] 국가사회주의 시대의 과학 ② 3 Volksgemeinschaft 2 2019.09.19
704 [역사] 국가사회주의 시대의 과학 ① 22 Volksgemeinschaft 4 2019.09.19
703 [역사] 공포의 제국 아즈텍의 기괴한 풍습과 유적들 <8> 희생... 35 포치테카 44 2019.09.13
702 [역사] [히틀러의 결단] ④ 키예프 포위전편 3/3 18 Volksgemeinschaft 9 2019.09.11
701 [역사] [히틀러의 결단] ④ 키예프 포위전편 2/3 Volksgemeinschaft 6 2019.09.11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