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히틀러의 결단] ④ 키예프 포위전편 3/3

 

 

 

 

만슈타인 등이 마지막까지 반대 의사를 밝혔으나 히틀러는 결단을 꺾지 않았고, 815일 작전명령이 하달됐습니다. 8월 17일, 독일 중앙집단군과 남부집단군의 운명을 건 역사적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비록 작전에 반대했지만 명령을 성실히 이행한 만슈타인은 817일부터 제2 기갑집단을 이끌고 대규모 남하를 개시했으며, 이와 때를 맞춰 남부집단군의 클라이스트 원수가 제1 기갑집단을 이끌고 북상하면서 키예프 돌출부의 목을 죄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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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예프를 되찾자는 표어 아래 저항한 소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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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발적으로 저항하는 소련군을 물리치며 꾸준히 이동한 두 기갑집단은 드디어 작전 개시 한 달여 만인 916, 키예프 동쪽 200km 지점인 로흐비차에서 조우하면서 포위망을 완전히 닫을 수 있었습니다. 이미 포위망이 완성된 후 뒤늦은 후퇴 명령을 받아든 돌출부 내부의 소련군은 이때부터 완전히 붕괴하기 시작, 919일에는 키예프가 함락되고 926일에는 돌출부를 완전히 일소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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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에 앞장선 독일군 전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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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군하는 독일군.>

 

키예프 돌출부에 대한 작전이 9월 말 세계사에 전례 없는 대승으로 마무리된 것입니다. 독일군은 처음 노렸던 소련 남서전선군의 제5군 외에도 제21, 26, 37, 38, 40군을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히면서 지도상에서 지워버렸습니다. 키예프 포위전에서 전사한 소련군만 20만 명에 육박했으며 66만 명 이상의 포로가 독일군에게 사로잡혔습니다. 처음에는 작전을 반대했던 만슈타인도 이처럼 전쟁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대승을 직접 거두어 내면서 히틀러의 결단이 옳았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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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로잡힌 소련군 포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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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 히틀러는 모스크바 공략에 부정적이었습니다. 스몰렌스크 전투는 성공적으로 종결됐으나 소련군의 방어태세는 점점 견고해졌고, 모스크바 방면에 대한 진격은 지지부진한 상태였던 것입니다. 게다가 모스크바 점령에 성공해도 그것이 과연 전쟁의 승리를 가져다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은 히틀러가 모스크바 공략을 위한 중앙집단군 전력을 차출해서라도 우크라이나에서의 승리를 얻는 것이 먼저라고 인식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또한 히틀러는 기상대의 정보, 소련군에 대한 정찰보고를 귀담아 들으면서 눈앞의 모스크바에만 정신이 팔린 군부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는 한편 결단을 과감하게 밀어붙이면서 역사에 길이 남을 대승을 일구어 냈습니다.

 

부정 : 그러나 키예프 포위전을 벌이면서 모스크바에 대한 공격이 8월을 기점으로 소강상태에 들어간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게다가 흘러간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야심차게 시작한 타이푼 작전이 소련이 그동안 초인적인 근성을 발휘해 완성한 방어선을 뚫지 못하고 좌절된 채로 겨울을 맞이하면서 바르바로사 작전은 사실상 실패하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소련군에게 80만 명(2019년 기준 국군 총병력이 60만 명)을 넘는 피해를 입혔으니 전선이 안정화될 것이라는 히틀러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간 것이었습니다. 소련군은 독소전쟁으로 총 1000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지만 끝까지 버텨 최종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저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80만 명의 손실 정도는 소련에게 감내할 수 있는 것이었고, 오히려 불굴의 투지에 불을 붙인 격이 됐습니다.

 

총평 : 모스크바와 우크라이나의 우선순위에 대한 논란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주제입니다. 양측 다 일리가 있는 의견이지만, 결정적으로 독일이 패망하면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증명할 기회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순수한 추론의 영역으로 남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우선순위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히틀러가 거둔 키예프 포위전에서의 대승은 충분히 연구할 가치가 있으며, 과감하게 기갑전력을 동원한 대규모 양익포위의 교과서나 다름없는 것이었습니다.

18개의 댓글

2019.09.11

그런데 모스크바를 점령했어도 소련의 전쟁수행의지가 꺾였을까요? 듣자하니 스탈린은 모스크바 함락을 대비해서 산업능력을 싸그리 우랄산맥 뒤로 옮겼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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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1
@옥탑방개드립

글에도 써있듯 모스크바를 독일군이 점령해본 적이 없으니 실제로 어땠을지는 잘 모르죠. 히틀러는 모스크바를 점령해봤자 정치적 승리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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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1
@Volksgemeinschaft

그런 바른 생각하시던 총통각하께서 독소전을 외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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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1
@옥탑방개드립

소련에 대한 터무니없는 과소평가가 모든 일을 그르친 원흉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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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탑방개드립

그런말이 나온 배경이

러시아 철도의 중심이 모스크바였기 때문에

병력집결 물자 수송등의

물류흐름을 막을 수 있거든

급소를 찌르느냐 전쟁수행능력을 증강하느냐의 선택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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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1

밑에 장군들말좀 믿고 고집좀 넣어두지 모스크바 점령했으면 협상이라도 해볼수있었을것같은데... 정보글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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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1
@취업하자제발

나폴레옹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그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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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1

국군 총 병력보다 많은 수를 한 전투에서 잃어도 타격이 없는 군대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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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2

스탈린그라드 가는 제6군 ss무장친위대 되기 vs 이오지마 가는 미해병1사단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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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2

전쟁 극초반 기습으로 수십사단이 갈려나가고

진격로 길목사수한다고 군단이 갈려나가고

주요거점에서 버틴다고 또 수십사단이 갈려나갔는데

 

반격해오는 놈들 규모가 집단군임

 

체급 자체가 남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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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2

러시아쪽 얘기나오면 항상 의문이 드는게...

그 동네는 어디서 그런 인력이 많이 생겨나는거임??

애초에 땅덩이가 크니까

인구수도 그만큼 많았어서 인력충원이 잘됐던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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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2
@또임

나치독일 인구가 약 7천만 명(1940년)인데 반하여 소련 인구는 거의 2억 명(1941년)에 달했습니다. 소련은 언제나 중국과 인도 다음가는 인구 대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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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2
@Volksgemeinschaft

단순히 소련자체 인구가 많았던거군요. 물량빨 무시못하는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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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2
@또임

원체 인구와 자원이 넘쳐나는 나라가 미국의 막대한 지원까지 받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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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임

질소비료 개발 이전에는

러시아 인구가 독 프 영 이 합한것보다 항상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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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3
@후쿠시마재폭발기원

놉 1700년대에도 프랑스보다 조금 많은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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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3

아조씨 글 밥 먹으면서 읽었는데 꿀잼이어서 밥이 어디로 들어갔는지 모르겠음. 앞으로도 많이많이 써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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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3
@야옹선생

체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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